자유무역과 보호무역 ― 어느 것도 대안이 아니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8년이 지났지만 장기불황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각국은 보호무역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선두 주자는 미국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다. 그는 한미FTA가 “일자리 킬러(살인자)이자 재앙”이라고 비판했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버지니아 지역 내 제조업 일자리 3개 중 1개를 잃었다”고 주장했다. 미국 대선 경쟁자인 힐러리 클린턴도 보호무역 강화 대열에 합류했다. 그는 국무장관 시절에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21세기 무역협정의 ‘금본위제’라며 극찬했지만, 이제는 반대로 돌아섰다.
세계무역경보GTA에 따르면, 2008년 이후 미국은 인도 다음으로 많은 보호무역 조처를 취했다. 최근 2년 동안 미국이 반덤핑과 상계관세 명령(수출국의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해 가격을 낮추는 것에 대해 부과하는 관세)을 내린 횟수는 2008년 이전의 갑절 이상이다. 지난 5월 미국 상무부는 중국산 냉연강판에 대해 사상 최고 수준인 522퍼센트의 관세를 부과했고, 최근에는 한국산 냉연강판·열연강판·도금강판에 대해서도 높은 반덤핑과 상계관세를 부과했다. 중국도 ‘강제성 제품인증’ 같은 각종 비관세장벽을 통해 외국 기업의 중국시장 접근을 실질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올 상반기에만 전 세계적으로 철강 관세 85건이 도입됐다”고 밝히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49퍼센트 증가한 수치로 전 세계에 보호주의가 심화되고 있는 신호로 여겨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각국 지배자들은 경제 위기로 인한 일자리 축소와 임금·복지의 삭감을 세계화와 무역 자유화 탓으로 돌리며 보호무역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각국 정부는 수출업자들을 돕기 위해 은밀한 수입 규제나 수출 장려 정책들(소위 ‘스텔스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추진하거나, 자국 화폐의 평가절하를 통한 수출 경쟁력 제고(아베노믹스가 대표적이다)를 시도해 왔다. 세계경제 불황이 장기화되면 각국 정부들은 자국 산업과 자본가들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무역 정책을 더 강화하려 할 것이다. 9월 4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의 공동선언문에 보호무역주의 반대라는 구절이 삽입된 것은 세계경제가 다시 침체로 빠지면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지 않을까 하는 세계 지배자들의 우려가 반영된 것이다.
2007년 4월 타결된 한미FTA를 시작으로 주요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던 한국의 행보와 비교해 보면 최근의 보호무역주의 추세에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다. 한미FTA 협상이 진행될 당시 노무현 정부는 한미FTA 거부는 쇄국정책을 채택하는 것과 같다며 반대 세력들을 겁박했다. 노무현 정부의 뒤를 이어 이명박 정부는 한미FTA가 체결되면 10년간 일자리가 34만 개 늘어날 것이고, 경제가 5.6퍼센트 더 성장할 것이라는 장밋빛 미래를 제시했다. 더 나아가 한EU FTA가 체결되면 일자리 27만 개가 생길 것이라고 광고했다. 그 뒤로도 한국 정부는 2015년 중국과 FTA를 정식으로 서명했고, 미국이 주도하는 TPP에도 가입할 채비를 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 지배자들은 자유무역 운운하며 한미FTA를 추진했지만, 국민의 절반 이상은 한미FTA 체결에 반대했다. 특히 한국 정부는 한미FTA 협상을 위해 미국 정부가 선결조건으로 내세운 것을 이행한다며 광우병 의심 대상인 미국산 쇠고기를 한국 시장에 개방하고, 배기가스 규제를 완화하고, 쌀 시장을 개방하고, 스크린쿼터제를 폐지했다. 이는 우파 정부의 재등장 등에 대한 대중의 불만과 결합돼 2008년 촛불 항쟁이라는 대규모 운동을 촉발했다. 한중FTA의 경우에도 중국산 농산물의 유입으로 피해를 보게 될 농민들의 반대가 거셌다.
그런데 정부의 이런 자유무역 조처에 반대하는 세력 중에는 외국 자본과 상품(특히 농산물)의 국내 유입이 국내 산업과 농업을 파괴하므로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주장의 논리적 귀결은 보호무역주의다. 자유무역론자들의 온갖 약속이 환상에 지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유무역의 대안이 보호무역주의인가 하는 물음이 제기된다. 이에 대한 답변을 하기 전에 먼저 자유무역주의의 허구부터 살펴보자.
자유무역의 허구와 실제
신자유주의자들은 대부분 자유무역을 지지한다. 자유무역의 핵심적 근거는 비교우위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국제 무역은 무역 당사국 모두의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는 ‘윈윈 게임’일 뿐 아니라 자유무역을 받아들이는 모든 나라에 시장의 효율성이 전파되는 동력이다. 영국의 양모와 포르투갈의 포도주 교역이 두 나라 모두에 득이 된다고 한 리카도의 설명이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자유무역으로 두 나라가 모두 득을 본다는 리카도의 주장은 현실에서 충족되기 힘든 가정에 기반한 이상적 모델에서나 실현 가능한 것이다. 예를 들어 생산요소 중 하나인 노동력은 국경 통제 때문에 국가 간 이동이 자유롭지 않다. 자본의 이동도 국민국가의 적극적 지원이나 방해 때문에 생각보다 자유롭지 않다. 그래서 국제 무역의 실제 양상은 주류 무역이론이 제시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국제 무역은 절대적으로 성장했을 뿐 아니라 경제성장률과 비교해 보더라도 더 빨리 늘었다. 부유한 나라들의 경제에서 원자재를 포함한 산업 생산의 비중이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국제 무역의 비중은 통계 수치들이 보여 주는 것보다 더 커졌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특정 국가에서 소비되는 재화 중 수입품의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대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국내에서 생산된 재화·서비스 대비 수입품의 비중을 비교해 보면, 국제 무역의 비중은 생각만큼 크지 않다. 많은 국가의 경제에서 ‘국산품’의 비중은 두드러지게 높다. 국제 무역의 비중이 증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현지에서 생산된 상품의 비중이 더 높은 것이다.
국제 무역 관련 수치가 과장이라는 점도 봐야 한다. 많은 국제 무역이 사실은 다국적기업의 내부 거래이기 때문에 실제 무역 규모는 통계치보다 더 작다. 다국적기업의 내부 거래는 전체 무역량의 대략 3분의 1을 차지한다. 상품이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동하지만, 한 기업이 자사 내부에서 사고파는 것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이것은 시장 거래가 아니다. 따라서 자유무역의 근거로 제시되는 국제 무역량 수치는 에누리해서 봐야 한다.
교역품의 가격뿐 아니라 국가들 사이의 정치적·군사적 경쟁과 지정학적 갈등도 국제 무역에 큰 영향을 미친다. 즉, 국제 무역에서 국가가 중요한 구실을 한다. 국가는 일부 품목의 수출입을 장려하기도 제한하기도 한다. 관세뿐 아니라 비관세 장벽 정책이나 수출장려제도도 국가가 국제 무역에 개입하는 주요 정책 수단이다. 그래서 대체로 국민국가들이 국제 무역에서 국내 시장 개방을 정책적으로 관리한다고 볼 수 있다. 국가의 이런 정책은 수많은 자유무역 협정과 쌍무적 무역협정들로 나타난다. 그중에서 유럽연합이 가장 광범한 지역 연합체다. 그리고 국가가 관리하는 개방이라는 개념은 자유무역을 추구하는 WTO의 정책과도 모순되지 않는다. 따라서 자유무역론자들의 주장과 달리 국가는 국제 교역에서 외부적 요인이 결코 아니다.
신자유주의 이론은 자유무역을 증명할 필요가 없는 자명한 진리처럼 받아들이지만, 국제 무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완전한 자유무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극소수 신자유주의자들은 국가 간 또는 국가 내에서 모든 상품들의 무제한적 교역을 지지할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신자유주의자들은 생산이나 거래를 금지해야 할 재화들도 있다고 보기 때문에 국가의 규제를 받아들인다.
국제 무역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자유무역을 가장 철저하게 옹호하는 신자유주의자들조차 마약이나 인신매매 또는 우라늄 같은 위험물질의 거래 규제는 예외로 인정하고 있다. 사실 애덤 스미스나 데이비드 리카도 같은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은 더 많은 예외를 인정했다. 스미스는 국가 안전을 우선으로 여겨, 영국 해군이 무역을 통제하고 제한하는 항해조례를 지지했다. 리카도는 곡물 수입을 제한하는 곡물법에 대해 조건부 반대 입장이었다.
현실에서 국제 무역은 자유무역론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완전한 자유무역도 아니고, 그렇다고 국가들 사이의 교역이 하나도 없는 완전한 쇄국 상태도 아닌 그 사이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세계 자본주의가 처한 상황에 따라 국제 무역은 좀 더 자유무역 쪽으로 기울기도 하고(1970년대 이후) 보호무역 쪽으로 기울기도 하는(1930년대의 대공황 시기) 흐름을 보인다.
자유무역과 경제발전의 상관관계
한미FTA와 한중FTA를 추진하던 당시 한국 정부는 이런 협정 덕분에 한국 경제가 더 발전하고 일자리가 증대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주장들은 모두 거짓임이 드러났다. 그리고 역사를 보더라도 무역 개방과 경제성장은 상관관계가 약하다.
물론 1930년대의 끔찍했던 대공황을 제2차세계대전 이후의 경제 발전과 비교해 보면, 무역 개방이 경제 번영과 관련 있는 것처럼 보인다. 1930년대 대공황기에는 주요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자국 화폐의 가치를 절하하고 수입 제한 정책을 강화했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은 각국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기만 했다. 그런데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로 전 세계적 차원에서 무역 개방이 증대하고 경제성장 속도도 빨라졌다.
그러나 세계경제를 더 장기적으로 보면, 무역 개방과 경제 발전의 연관성은 그리 크지 않다. 1860년대 유럽에서는 무역 개방과 번영이 있었지만 곧장 제1차 ‘대불황’에 자리를 내줬다. 그래서 당시 보호무역주의를 채택한 미국·독일이 자유무역주의를 내세운 영국·프랑스를 추월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에는 무역 개방을 덜했던 독일·일본 같은 국가들이 미국보다 더 빨리 성장한 반면, 가장 개방적이었던 영국 경제는 경제적 성과가 가장 뒤쳐졌다.
그럼에도 전후 주요 국가들 내에서는 자유무역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고, 후진국이나 제3세계 국가들에서는 자유무역 반대와 국가 주도 경제 건설이 대세였다.(물론 서방 선진국들에서도 국가의 경제 개입 정도가 강했다.) 그리고 경제성장으로 비교해 볼 때, 자유무역을 받아들이지 않은 국가들의 실적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수입대체공업화 정책이 결국 실패하고 폐쇄적 국가자본주의 정책을 추진했던 국가들의 경제 실적이 별 볼 일 없게 됐지만 수출 지향적 경제를 추구했던 몇몇 동아시아 국가들이 경제적 성공을 거뒀다. 그러자 무역 개방과 부의 증대 사이에는 연관성이 있다고 보는 관점이 상식처럼 됐다.
하지만 무역 개방과 경제성장 사이의 상호관계에 대한 많은 실증적 연구들은 이 둘 사이의 관계가 유의미한 정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줬다. 대표적으로 로드리게스F Rodriguez와 로드릭D Rodrik은 계량경제적 모델을 사용해 무역 개방과 경제성장 사이의 연관이 약하다는 실증적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렇다고 보호무역주의가 대안일까?
게다가 현대의 국제 무역 체제가 실제로는 불평등하다는 옳은 지적도 있다. 다국적기업인 네슬레나 필립 모리스는 제3세계에서 커피를 생산하는 농부를 결코 대등한 파트너로 대하지 않는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공식·비공식 구조의 권한을 이용해 가난하고 허약한 국가들의 희생을 강요한다. 그 밖에도 많은 제3세계 국가들이 단일 수출품으로 국제 무역에 포함된 뒤로도 그 국민의 삶은 결코 나아지지 않았는데, 그 참혹한 현실도 국제 무역 체계의 불공정성을 입증한다.
그래서 영국의 국제 구호 단체 옥스팜Oxfam 같은 기구들이 ‘자유무역’ 낳은 빈곤에 항의하고 불공정 무역에 반대하는 활동을 벌인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장하준 교수는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자로 영국 제국주의에 맞서 독일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무역주의를 주장했던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주장에 기초해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책을 썼다. 그는 이 책에서 부유한 국가들이 자신들이 걸어 온 길을 후발 국가들이 뒤따르지 못하도록 하면서 부자 국가가 됐음을 보여 줬다. 장하준 교수는 세계 열강들이 국제 무역에 개입해 자국에게 유리한 정책을 펼치는 것을 비판한다.
비록 1970년대 이후에는 그 인기가 시들해졌지만, 종속이론은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처럼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저발전이 지속되는 문제와 1차 원자재 수출국들이 겪었던 불이익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의미 있는 통찰을 제공했다. 종속이론가들은 국제 무역 체계가 가난한 국가들에게 불리하게 돼 있다고 강조했다.
근대 초기에도 자유무역을 반대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완고한 보호무역주의자였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폐쇄적 고립경제를 주장하지도, 수출을 장려하고 수입을 제한하자는 중상주의적 태도를 견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국제 무역 체계의 개혁이나 특정한 상품 무역의 개방 또는 제한을 주장했다.
사실 현실에서 자유무역주의와 보호무역주의는 서로 보완적으로 기능했다. 자본가들은 어떤 시장에 대해서는 무역 자유화를 주장하면서도 다른 시장에 대해서는 무역 제한 정책을 지지한다. 그 기준은 자신의 경쟁력이 강하냐 약하냐의 차이일 뿐이다.
이는 역사적 경험에서도 확인된다. 19세기 세계 최강의 산업국이었던 영국은 자국 수출품이 어떤 시장에서든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자유무역 정책을 주장했다. 반대로, 당시 독일과 미국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자국 산업을 영국 수출품으로부터 보호하려고 무역 규제 정책을 실시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에는 상황이 바뀌었다. 세계 최강의 산업국으로 부상한 미국은 자유무역을 주장한 반면, 독일·일본 같은 국가들은 무역 규제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1980년대에 상황이 다시 역전됐다. 미국이 강력한 무역 규제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국가들은 산업과 시장의 상황에 따라 추구하는 무역 전략을 달리한다. 미국은 막대한 무역적자를 보고 있는 중국에 대해서는 상계관세를 부과하는 등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펼치지만 다른 국가들에 대해서는 무역 자유화를 강조한다. 일반으로는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국가들조차 자국의 특정 산업을 보호하거나 부양하기 위해 다양한 관세나 비관세 정책들을 조합한 선별적 보호무역주의를 활용한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현실에서는 순수 자유무역주의나 순수 보호무역주의는 거의 없다. 그 둘을 절충적으로 조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앞에서 언급한 종속이론가들은 자유무역의 불공정성을 비판하며, 국민국가가 경제에 개입해 경제계획을 세우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한미FTA나 한중FTA에 반대한 세력 중 일부는 국가 기간산업이나 농업이나 국제 경쟁력이 취약한 산업의 시장 개방을 반대했다. 그런데 보호무역주의의 정책들은 일자리나 임금 등이 아니라 국제 경쟁에서 취약한 산업과 그 자본가 보호를 우선으로 한다. 따라서 보호무역주의의 궁극 목표는 강력한 국민국가 건설이다.
또, 장하준 교수는 선진국과 다국적기업 또는 국제 금융자본에 맞선 제3세계 국가 내의 계급연합적 단결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는 한국에 대해서는 다국적기업이나 국제 금융자본에 맞선 한국 정부, 재벌 대기업, 노동자의 사회적 대타협을 주장한다.
이를 보면, 사회주의자들이 자유무역주의와 보호무역주의 중 어느 하나를 대안으로 내세우거나 지지할 수는 없다. 자유무역이든 보호무역이든 노동계급에게는 이익을 가져다 주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한미FTA나 한중FTA 같은 ‘자유무역’ 협정은 자본의 힘을 키우고 대중의 삶을 파괴하는 신자유주의적 조처(민영화, 환경 규제 완화 등)를 다수 포함하고 있으므로 반대해야 하겠지만, 그 대안으로 자국 산업과 자본가들의 보호를 의미하는 보호무역주의를 주장할 수는 없다. 사회주의자들은 ‘자유무역 대 보호무역’이라는 잘못된 이분법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교환관계가 아니라 생산관계가 중요하다
여기서 마르크스가 생산관계보다 교환관계에 우선적 중요성을 부여하는 태도를 속류 경제학이라고 비판한 것이 힌트가 될 수 있다. 즉, 국제 무역은 생산 과정이 아니라 교환 과정이므로, 무역만 봐서는 경제 발전, 부의 증가, 빈곤의 축적 등을 설명할 수도 대안을 제시할 수도 없다. 마르크스는 생산 영역에서 벌어지는 착취와 자본 간 경쟁으로 말미암은 이윤 축적 드라이브를 밝힘으로써 자본주의의 동역학을 규명했다. 이 토대 위에서 봐야 국제 무역이 국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자유무역주의든 보호무역주의든 모두 잉여가치 생산의 필수조건인 자본축적 과정과 생산에서의 착취 과정을 보지 못하므로 방법론과 목표가 놀랄 만큼 비슷하다. 바로 국부의 증대, 즉 국가의 부강이다. 자유무역 지지자와 반대자 모두 이런 목적을 위해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체제를 유지하고 노동자들을 서로 경쟁시킨다. 그래서 착취에 기반한 생산관계(자본주의 세계체제를 의미한다)에 도전하지 않고 불공정한 무역 구조를 좀 더 평등하게 바꾸려는 시도들이 계속 한계에 부딪힌다. 예를 들어 선진국과 제3세계 국가들 사이의 국제 교역이 제3세계 국가들에게 구조적으로 불리하게 돼 있다는 부등가교환 이론은 겉보기로는 급진적이지만, 따지고 보면 제3세계의 노동자들이 자국의 자본과 국가를 지지해야 한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국제 무역은 생산과정이 아니라 재분배 과정이다. 재화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은 이전에도 있었고, 미래의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 형태와 방식은 다를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효율성을 추구하는 노동분업이 문제인 이유는 무엇보다 소외된 노동에 기초해 추진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엇을 생산하고 소비할지에 대한 선호가 바뀌면 재화의 유통과 교환에서도 변화가 생길 것이다. 그래서 교환과 유통보다는 무엇을 어떻게 생산할지의 문제가 우선적이다. 물론 어떤 원재료는 특정한 곳에서만 채취할 수 있고, 일부 제품은 특정 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만들기가 더 쉬울 수가 있다. 애덤 스미스가 주장했듯이, 프랑스의 포도밭이 가까이 있다면 스코틀랜드에서 비닐하우스와 히터를 동원해 포도를 재배하는 것은 비합리적일 것이다.
생산관계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고 해서 자본주의 세계경제에서 국제 무역이 지니는 특수한 성격과 중요성을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많은 가난한 국가들은 외채를 갚거나 투기세력으로부터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하려 한다. 또 많은 국가들은 IMF나 세계은행으로부터 구조조정을 추진하라는 압력을 받게 된다.
그러나 국제 무역의 혜택을 강조하면서 경제발전이나 국부 증대의 수단으로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것, 또는 국제 무역이 초래하는 국가 간 불평등을 지적하면서 국제 무역에 대한 관리와 국가 개입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자유무역과 이에 대한 반대로 제기되는 보호무역주의 경향 모두를 뛰어넘는 사회주의 전략이 필요하다. 오늘날의 국제 무역 관계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이 드러나는 주요한 영역이다. 국제 무역 관계는 생산 착취관계와의 연관성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MARX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