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본관 점거 농성 조직자들의
‘외부세력’, ‘운동권’ 배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사드 배치 결정에 분노가 커지자 박근혜는 “불순 세력들이 가담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엄포를 놨다. 이화여대 당국도 본관 점거 투쟁에 대해 “외부세력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며 같은 논리를 폈다.
여러 논평가들이 지적했듯이, 이런 일은 역사상 한두 번 반복돼 온 것이 아니다. 으레 지배자들은 운동이 대중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보이면 ‘외부세력’ 운운한다. 연대가 확산되는 것을 막고, 특히 좌파들이 운동을 급진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을 차단하려 하기 위함이다.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 시위, 쌍용차 점거 파업, 홍익대 청소노동자 투쟁,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밀양 송전탑 반대 시위, 제주도 강정마을 미군기지 반대 시위, 세월호 진실 규명 운동 …. 이 모든 운동에서 지배자들과 우파들은 ‘외부세력’ 반대를 말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과 같은 역사적 사건도 ‘외부세력’이 ‘순수한’ 노동자들을 속여서 일으킨 재앙으로 왜곡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대중을 ‘선동꾼들’에 의해 쉽사리 속아 넘어가는 바보로 보는 순전히 엘리트주의적인 관점이다. 게다가 역겨운 위선이다.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이 박근혜 정부를 등에 업고 학생들을 탄압하려고 경찰 1천6백 명을 동원한 것처럼 지배자들은 내부, 외부를 가리지 않고 서로 연대한다. 많은 기업들이 노조를 파괴하려고 창조컨설팅 같은 노조 파괴 전문 업체들의 자문을 구하고, 정치인들과 유착 관계를 형성한다.
이렇게 지배자들은 자신들이 돈과 권력을 통해 맺은 연대는 정당하지만, 노동자들과 억압받는 사람들이 연대하는 것은 불순하다고 주장한다. 지배자들은 자신들에 맞선 저항이 커지지 않게 하려고 ‘외부세력’ 반대를 말할 뿐, 여기에는 아무런 정당성이 없다.
이화여대 투쟁은 다른 “정치 이슈와 무관”한가?
그런데 올해 7월 말부터 이화여대 본관을 점거하고 있는 농성 주도자들이 자신들의 투쟁은 “그 어떤 외부 세력, 정치 이슈와도 무관”하다며 운동권을 배제해 와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운동권 배제”가 효과적인 전술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예를 들어, 노동운동 내에서 온건한 국민파 경향인 이수호 민주노총 전 위원장은 한 칼럼에서 운동권을 차단한 것이 “이번 싸움의 적절한 전술적 판단”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보수 언론의 공격을 차단하고 운동을 키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화여대 학생들이 8월 초에 미래라이프 단과대학을 철회시키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우병우 스캔들로 대표되는 박근혜 정부의 위기와 함께, 사드 반대 투쟁, 갑을오토텍 노동자 공장점거 투쟁 등이 벌어지는 상황이 있었다. 이런 조건에서 이화여대 학생들이 전통적인 투쟁 수단인 본관 점거를 단호하게 유지했기 때문에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오히려 운동권을 배제하고 연대를 거부한 것은 투쟁이 더 전진하는 데 악영향을 미쳤다. 본관 농성을 주도한 학생들은 이화여대의 노동자연대 회원들만 배제한 것이 아니라 세월호 팔찌, 무지개 배지, 위안부 팔찌, 메갈리아 티셔츠 등의 착용도 배제했다. 이 때문에 소수자 인권에 큰 관심을 가진 학생들 사이에서 불만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고 한다.
이렇게 운동권 배제 주장이 농성 주도자들에게 먹히자 <조선일보>와 같은 우파 신문은 왜 운동권 출신 졸업생 모임인 이화민주동우회가 발표한 ‘총장 사퇴 시위 지지 성명’은 본관 농성자들이 문제삼지 않느냐며 더욱 이간질했다.
이렇게 운동권을 배제한 결과 총장 사퇴 투쟁이 약화돼 왔다. 총학생회가 주도하는 학생 총회와 재학생·졸업생 총시위 등이 본관 농성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각각의 운동으로 분산되는 것은 운동의 힘을 키우는 데 방해가 된다.
또, 운동권을 배제하고, ‘순수한’ 이화여대 커뮤니티를 강조하는 것은 연대를 거부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7월 28일에 본관 점거 농성이 시작되고 여러 학생회들이 지지하면서 연대가 확산될 가능성이 있었다. 7월 30일 경기대·경희대·부산대·한양대, 7월 31일 고려대·동국대·덕성여대·상지대·연세대 사회대·연세대 원주캠·카이스트, 8월 1일 국민대·서울대·울산과기대·연세대·인하대 문과대·한국전통문화대·한국외대·한신대, 8월 2일 서울대 사회대 등 전국 대학에서 이화여대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저지 투쟁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여러 총학생회들이 이대 경찰 투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려고 했을 때 농성을 주도하는 학생들은 이를 극구 반대해서 결국 기자회견은 취소됐다.
이화여대 내에서 운동이 정점에 도달했을 때, 그 운동이 총장 사퇴 운동으로 발전하려면 박근혜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에 맞선 투쟁의 일환으로 자리매김하며 여러 대학 학생들과의 연대를 강화해야 했다. 이화여대 학생들의 투쟁에 고무받아 한국외국어대 학생들도 점거 투쟁에 들어가고 동국대 학생들의 투쟁도 벌어지는 등 연대가 확대될 가능성은 실제로 존재했다. 이런 가능성을 농성 조직자들이 스스로 차단해 버린 결과 8월 중순 이후 이화여대 본관 점거 투쟁은 다소 정체하며 동력이 약해져 왔다.
이화여대 본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학생들은 왜 ‘운동권’을 배제했을까?
일상적 시기에 사람들의 의식은 매우 불균등하다. 좌파도 존재하지만 우파도 존재하고, 좌파와 우파 모두에 반감을 가진 자유주의적인 중도 학생들도 존재한다. 이화여대 본관 점거 농성을 주도하는 사람들의 신분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친 민주당 경향의 급진 자유주의 경향의 학생들이 투쟁을 이끌고 있는 듯하다.
옛 소련과 북한의 독재에 대한 반감으로 좌파들이 권력을 잡으면 독재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그동안 좌파들이 운동을 이끄는 과정에서 효과적이지 못한 방법들을 제시해 신뢰를 받고 있지 못할 때 좌파에 대한 회의적 시각은 커질 수 있다. 이화여대에서는 운동권 학생회가 자기 제한적인 전술로 투쟁을 제대로 이끌지 못했던 경험이 운동권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데 한몫한 듯하다.(‘최경희 총장 아래서 벌어졌던 항의 운동을 돌아본다’, <노동자 연대> 179호.)
이런 상황에서 학교 당국과 경찰 등이 ‘외부세력’을 탄압의 명분으로 삼으려 하자, 탄압을 피하려는 실용적인 방책으로 운동권 배제가 지지를 얻은 듯하다. 중도계의 자유주의적 학생들이 펴고 있던 운동권 배제 주장은 애초에는 그렇게 강력하지 않았던 듯하지만, 경찰 투입 이후에 보통의 학생들이 가진 불안감과 공포 속에서 힘을 얻었던 듯하다.
게다가 정치적 경험이 부족한 젊은이들이 난생 처음으로 운동의 활력과 자발성에 고무되면, 정치 조직은 필요 없고 운동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이화여대 투쟁에서도 ‘정치 세력이 개입하고 지도부가 생기면 나머지 다수는 수동화되고 끌려다니기만 할 것이다’ 등의 주장이 제기됐다.
이처럼 자발성만으로 충분하고 정치조직을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운동이 처음으로 부상할 때 흔히 제기돼 왔다. 아나키즘은 이런 정서를 가장 극단적으로 반영하는 조류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아나키스트였던 바쿠닌과 논쟁하며 <정치 문제에 대한 무관심>과 <권위에 관하여>와 같은 글들을 발표했다. 레닌도 제정 러시아에서 자발성주의의 꽁무니를 좇는 경제주의자들과 논쟁을 하며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정치적 조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람시는 《옥중수고》에서, 로자 룩셈부르크는 《대중파업론》에서 자발성과 리더십의 관계를 다뤘다. 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운동에 참가한 대중의 자발성과 그 운동에 방향성을 제시하려는 정치적 지도 사이의 관계에 대해 깊이 천착한 글들을 썼다. 그중 《옥중수고》의 ‘자생성과 의식적 지도’라는 장은 짧지만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순수한’ 자생성이란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만은 강조해 두어야 한다. 그런 것이 있다면 그것은 ‘순수한’ 기계성과 동일한 것일 게다. … 모든 ‘자생적’인 운동에 의식적 지도, 혹은 규율의 초보적인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 1》, 거름, pp202~203)
이화여대 본관 농성을 주도한 학생들은 자신들의 운동에 지도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하지만, 사실 거기에서도 ‘자원봉사 벗’이라는 주도적 그룹이 생겨나서 농성에 필요한 다양한 일들을 조직해 왔다. 식사를 준비하고, 성명서를 쓰고, 기자회견을 조직하고, 시위를 준비하고, 법률 대응을 고민하는 것 등은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통해 가능했다. 이들은 스스로를 지도부라 칭하지 않았지만 실질적인 지도부 구실을 한 것이다.(물론 그들 내부에 핵심 인자들이 있다는 것쯤은 바보가 아닌 이상 다 알 수 있는 점이다.)
사람들의 의식은 불균등하기 때문에 모든 투쟁에서 운동을 좀 더 주도적으로 이끌려고 하는 지도부가 생겨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문제는 지도부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효과적으로 투쟁을 이끄는가 하는 점이다.
그람시는 자발성만을 강조하며 정치 조직을 배제하는 방식은 결국 “[‘운동권’이라고 부른] 현재의 지도부를 다른 것으로 대체시키고자 하는 직접적인 욕망”이 반영된 것이라고 지적한다.(위의 책, p203)
이화여대 농성을 주도한 학생들은 노동자연대 학생 회원들을 비롯한 운동권을 배제해 운동이 더한층 확대될 가능성을 막았다. 심지어 정의당 연세대학교 학생위원회가 점거 투쟁을 지지하는 성명이 이화여대 학내에 붙자 이를 제거하려고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더민주당 의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물론 더민주당 의원들에게 이화여대 사태 해결에 나서 달라고 요구하는 전술이 완전히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비판을 철저히 삼가는 것은 그들에 대한 환상을 조장해 운동이 덜 투쟁적이 되게 만들고 마침내 탈선시키는 효과를 낼 것이다. 게다가 최경희 총장은 노무현 정부의 대통령 비서실 교육문화비서관으로 일한 바 있다. 그는 박근혜 치하 청와대의 뒷받침만을 받고 있는 게 아니다. 친자본주의적 정치인들은 기회주의적으로 서로 밀접하게 연계돼 있을 뿐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느린 민주주의”?
이처럼, 이화여대 본관 농성 투쟁을 정치 단체와 지도부가 없는 “느린 민주주의”라고 추켜세우(거나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는 진실이 아니다.
그런데 스스로를 운동 내에서 특정한 정치적 경향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운동 그 자체를 나타내는 것으로 여길 때 그 지도부는 필연적으로 배타성과 비민주주의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스스로를 운동 자체로 여기다 보니 자신과 정치적 의견이 다른 집단은 아예 운동 속에 포함할 수 없다고 여기게 된다. 그래서 운동권의 대자보를 훼손하고, 발언권을 빼앗고, 본관 농성에 참가하지 못하게 하는 등의 비민주적인 일들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졸업식 시위 때는 본관 농성에 참가하는 학생들이 노동자연대 이화여대 학생 회원들이 건 현수막을 떼어 내려 하자, 학부모들까지 반대한 일도 있었다.
이런 비민주성과 독단성은 스스로가 곧 운동임을 자임하는 자들이 역사적으로 많이 보여줬다. 예를 들어, 바쿠닌은 당시 마르크스와 엥겔스 등이 활동하던 제1인터내셔널 내에서 매우 음모적이고 파괴적으로 활동했다. 그는 다른 정치적 경향의 위상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말했다. “우리에게 불리하거나 명백하게 해로운 단체는 해체해 버려야 하고, 최종적으로 정부를 파괴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그저 진실을 선전한다고 이뤄지지 않습니다. 교활함, 외교적 책략, 속임수가 필요합니다.” 이런 파괴 행위는 결국 제1인터내셔널이 해체되는 데 한몫을 한다.
바쿠닌은 제1인터내셔널에서 지도권을 장악하지 못했다. 그러나 만약 지도권을 장악했다면 다른 정치 경향을 가차없이 배제하는 이화여대 점거 농성 지도자들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는 스스로가 하나의 정치 경향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운동 그 자체라고 착각했을 때 초래될 수 있는 결과이다.
진정으로 민주적이라면 대학 구조조정에 반대하고 최경희 총장을 반대하는 단체와 개인들이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수결로 결정한 것들을 실행에 옮겨 결정이 옳았는지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지도부를 민주적으로 선출해서 공식화해야 한다. 그래야 지도부가 제시한 방향이 옳았는지 그렇지 않았는지가 드러나고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할 수 있다.
책임성 있는 ‘운동권’이라면 이런 방향으로 투쟁을 지지하는 사람들 속에서 토론과 논쟁을 해야 한다. 대세를 추수하는 (뒤꽁무니를 좇는) 것은 운동이 전진하는 데 기여하지 못할 뿐 아니라 단순한 기회주의일 뿐이다. 추수주의(그냥 대세를 따르는 태도)의 사례를 한 가지 들고자 한다. 2008년 촛불운동 당시 5월 말에 거리 행진이 제기될 때, 광우병국민대책회위를 주도했던 ‘진보’ 단체들은 대중을 선동한다는 비난을 받을까 봐 거리 행진을 조직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결국 다함께(노동자연대의 전신)가 거리 행진을 선동했고, 이 행진 성공은 투쟁이 확대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당시 촛불운동에 민주노총이 조직으로 참가하지 않은 데에도 추수주의가 작용했다. 1백만 명이 모였던 6월 10일 촛불시위에 이어 투쟁이 더 확대되려면 노동자들이 거리 항의에 조직적으로 참가하는 데 이어 생산현장을 마비시킬 수 있는 힘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했는데도 말이다. “민주노총이 선동한다고 할까 봐 이번 촛불문화제에는 나서지 않을 것 … 시민들이 연 촛불문화제에 열심히 참여하고, 시민들 속에서 촛불 들고 함께하겠다.”(당시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
2008년 촛불운동의 지도자들인 개혁주의자들은 이렇게 뒤꽁무니를 좇다가 운동이 기로에 놓인 국면에서 국회 대응 등을 강조하며 운동을 사그라들게 하는 데 결정적으로 일조했다.
대중운동의 성장을 바라는 좌파라면 운동에 동참하며 그 운동이 효과적으로 전진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해 단호하고 굳건하게 토론과 논쟁을 해 나가야 한다.
MARX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