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16호를 내며
얼마 전에 계간지 《마르크스21》 15호가 발간됐지만, 그것도 2년 만에 나온 것이다. 계간지를 발간하기 위해서는 다루는 쟁점에 대한 분석이나 예측에서 깊이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잡지 발간을 위한 역량이 비교적 많이 필요하다. 편집진이나 투고하는 필자들의 역량에 비춰볼 때 계간지 《마르크스21》을 지속적으로 발간하기 힘들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마르크스21》 같은 잡지가 필요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마르크스21》을 계간이 아닌 격월간으로 발간하려 한다. 추상 수준이 높은 이론적 분석글을 실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주요 쟁점들을 탐구하고 분석한 글들을 모아서 발간한다면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 잡지는 이론적인 긴 글도 가끔 싣겠지만, 주로는 A4 3~10쪽 분량의 글들을 실을 계획이다. 독자들의 많은 성원과 지지 그리고 투고를 바란다.
16호에는 모두 9편의 글을 실었다.
특집으로는 ‘마르크스주의와 오늘날의 페미니즘’과 ‘“교차성”은 차별을 설명하는 유용한 개념인가?’의 두 편의 글을 실었다. 얼마 전부터 페미니즘 서적 출판과 판매가 급증하고, 20~30대 여성들 사이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고, 여성단체에 대한 후원이 늘어나고, 대학에서 페미니즘 동아리들이 새롭게 생겨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양성 평등에 대한 관심과 기대는 높지만 여성 차별은 여전한 현실 사이의 간극 때문일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와 오늘날의 페미니즘’은 최근 부흥하고 있는 페미니즘이 개혁주의, 분리주의, 특권 이론, 교차성 개념 등의 정치에도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마르크스주의가 이런 정치적 경향을 가지는 페미니즘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를 제시하고 있다. ‘“교차성”은 차별을 설명하는 유용한 개념인가?’는 흑인 페미니즘에서 처음 등장한 교차성 개념을 살펴본다. 교차성은 여러 차별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벌어진다는 의미로, 이전의 백인 중간계급 주도의 페미니즘보다는 진일보한 측면이 있음을 이 글은 지적한다. 또한 교차성 개념이 차별의 진정한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정체성 정치로 나아갈 여지를 남겨 둔다는 점에서 약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화여대 본관 점거 농성 조직자들의 “외부세력”, “운동권” 배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먼저 지배자들이나 우익들이 펼치는 ‘외부세력’ 배제 논리가 역겨운 위선임을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운동 내부에서도 ‘외부세력’이나 ‘운동권 배제’ 논리가 나오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는 참신한 전술이 아니라 지지와 연대를 축소하고 운동의 발전을 방해하는 전술일 뿐임을 보여 준다. 또한 이런 주장의 이면에는 급진적인 전략·전술을 배제하려는 아니키즘과 개혁주의 정치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관료적으로 퇴보한 노동자국가 이론은 어떻게 현실의 검증을 이기지 못했나?’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 트로츠키주의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든 문제, 즉 소련 사회의 성격에 관한 문제를 두고 정설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주장한 내용과 그 주장의 정치적 함의를 설명하고 있다. 옛 소련 사회가 관료적으로 퇴보한 노동자국가라는 정설파의 주장은 결국 노동자 계급의 자력 해방 사상 포기하기로 나아감을 지적하며, 옛 소련 사회를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자유무역과 보호무역 ─ 어느 것도 대안이 아니다’는 자유무역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공통의 전제와 목적을 갖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더 근본적으로는 국제 무역을 자본주의 생산체제와의 관련 속에서 이해해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아동 학대의 근원’은 오늘날 한국에서도 많이 등장하고 있는 아동 학대나 성범죄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쟁점을 다룬다. 이 글은 보호시설에 있는 아동들이 학대나 성범죄에 취약하다는 점을 지적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오늘날 인간관계가 자본주의 사회와 가족에 의해 형성되는 것에 아동 학대의 근본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번 호의 논쟁은 자본주의 경제 위기의 핵심 원인으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을 받아들이지 않는 ‘데이비드 하비 비판’이다. 먼저 마이클 로버츠가 쓴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은 경제 위기를 설명할 수 있는가?’는 자본주의 경제 위기가 발생하는 이유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을 받아들이지 않는 하비를 비판하면서 이 법칙을 둘러싼 마르크스주의자들 내의 논쟁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앤드루 클라이먼이 하비를 비판한 글들인 ‘마르크스를 오해하기’와 ‘이윤율을 오해하기’는 2008년의 대침체와 그 뒤에 나타난 여파 그리고 경제 위기와 이윤율 저하 경향 법칙 사이의 관계 등을 다루고 있다. 이 세 편의 글은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자들 내에서 벌어지는 중요한 논쟁 중 하나인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을 둘러싼 논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마르크스21〉 15호에 실린 데이비드 하비 비판 글과 함께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편집팀을 대표해 이정구
MARX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