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 최순실 게이트와 퇴진 운동
이 글은 11월 하순에 강연한 내용을 녹취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측근 부패는 양상과 규모 면에서 총체적 권력형 부패라고 할 수 있다.
워낙에 해괴망측한 내용들이 쏟아져 나오니, 자꾸 음험하고 음습한 동기로 사건을 설명하려는 유혹을 느낀다. 워낙에 추접한 집단이라 그런 측면이 없다고 할 수 없지만, 구조적인 것을 밑바탕에 깔고서 좀 더 구체적인 인물들의 개성을 덧붙이는 식으로 봐야 한다. 언론에서 다루듯이 인상주의적으로만 보려 하지 말고, 사건의 본질을 잘 짚어야 한다.
지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양상을 보면, 박근혜를 중심으로 두 축, 청와대와 행정부 요직에 포진한 측근 실세들과 이른바 비선 실세들이 나뉘어 움직였다. 이 두 라인이 목표로 한 거래 대상은 (대)기업들이다.
공식 라인으로는 김기춘이나 우병우 등이 검찰 통해서 기업을 압박하기도 하고, 최경환이 경제부총리를 하면서 경제 정책이나 정부 예산 같은 걸로 특혜도 주고 하면서 박근혜 식 정경유착 네트워크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최순실 등은 박근혜의 위세를 등에 업고 전경련을 통해서 돈을 걷어 박근혜 비자금 마련과 개인적 치부 용도의 재단을 만들었다.
이런 정경유착, 부정 축재는 청와대를 고리로 해서 서로 엉켰다. 박근혜와 최순실의 특별한 관계를 이용해 정부의 특혜를 얻으려 접근한 기업들이 있는가 하면, 최순실 개인에게 필요한 일들, 가령 딸 정유라를 명문대에 보내려고 정부를 동원해 압력이나 청탁을 넣었다.
한마디로, 국가기관 핵심부의 통치 권력(문체부 국장·과장 인사까지 간섭하고 쫓아낼 정도로 인사권 같은 것)을 총동원해, 부패의 ‘우주적’ 네트워크를 만든 것이다. 그야말로 ‘혼이 담긴’ 노력을 했다.
그러니 누가 봐도 ‘농단’이 맞는 것이다. 농단을 어지럽히고 엉망으로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농단의 정확한 뜻은 “독차지, 독식”이다. 국가권력을 대통령과 가까운 일단의 무리들이 독차지하고는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썼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는 국정 농단도 맞는 얘기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관점에서 봐도, ‘공공재’인 선출된 정치권력을 사익을 위해 썼으니 농단이 맞다. 그러나 우리 같은 혁명적 사회주의자는 자본주의 국가의 ‘국정 정상화’를 지지하지 않으니 국정 농단이라는 표현은 안 쓰고 농단이라고만 했다.
사실, 이런 권력형 부패는 김영삼 정부 때 김현철 사건, 이명박 정부 때 ‘4자방’(4대강, 자원외교, 방산) 비리 의혹과 비슷하다. 김현철은 아버지 대신 처벌 받았고, 이명박은 친형이 대신 감옥에 갔는데, 사실 다 제대로 밝혀지진 않았다. 박근혜 퇴진 운동이 성공하면, 그 여세로 이명박도 뒤져야 한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뿐 아니라 김대중·노무현까지 역대 정부는 모두 대선자금 때문에 ‘고초’를 겪었다. 그러나 선거자금을 둘러싼 부패를 한국의 특수한 일이라고 봐서는 안 된다.
미국에서는 기업들에게 대선자금을 걷는 게 합법이다(선거 결과에서는 힐러리가 매번 들러리였지만, 대선자금 모금에서는 자기 기록을 경신하며 역대 최대 모금 기록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합법이든 불법이든 당선한 정권에게 미치는 영향은 한국과 다를 바 없다. 그러니 형식적인 불법 여부만으로 부패를 판정하는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물론, 한국 지배자들은 스스로 정한 법도 지키지 않고 비리를 저지르는 놈들이니 더 나쁘다고 볼 수는 있지만, 이는 양적 차이 정도이지 질적 차이는 아니다.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 현직 대통령이 대선자금을 마련해서 차기 주자에게 물려주고, 또 당선해서는 ‘통치자금’으로 쓰다가 그 일부를 새 주자에게 주고 뭐 이런 식이다. 이게 선거와 통치를 위한 비자금으로 쓰이다 보니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맡아야 했다. 모금·관리 문제로 친아들, 친형 등이 처벌받은 까닭이다.
그래서 자금을 만들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최측근 비선 실세가 국정에 개입하고 농단한 점은 박근혜 정부가 다른 정부와 다르거나 새롭지 않다. 오히려 아주 전형적이다. 물론 워낙 망측한 내용들이 많아서 특별한 일이 벌어진 것 같은데, 그 부분은 박근혜의 개성에다가 심각한 경제 위기 때문에 개인적인 치부까지 마구 폭로되는 상황이 만든 것이라고 봐야 한다.
부패의 성격
이런 권력형 부패에 대해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계급사회에서 부패는 필연이다. 소수가 사회의 권력과 부를 쥐고 통제, 즉 농단하기 때문이다. 그 소수끼리, 소수에 의한, 소수를 향한 은밀한 거래, 독직, 특혜, 강탈, 뇌물 수수 등이 벌어진다.
자본주의에서 부패는 더 보편화됐다고 볼 수 있다. 경쟁이 더 심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쟁, 자본과 국가의 의존 관계가 결합하면서 정치적 부패로 이어진다. 자본과 국가는 구조적 상호의존 관계이다. 국가는 자본 축적이 원활하게 진행되는 데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국가는 법과 제도들을 자본에게 유리하도록 만들고, 노동력 관리나 저항을 관리하는 차원 등에서 노동계급을 관리·통제한다. 그러나 구체적 현실에서는 자본이 다수 자본으로 존재하므로, 이 과정이 단순하지 않다. 특정한 정책이 어떤 자본에게는 유리하고 다른 자본에게는 불리하다.
가령 2009년 노동법 개악 때, 마치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맞바꾸는 식으로 진행될 듯 보였을 때, 노조가 없는 삼성은 복수노조 금지 조항이 유지되길 바랐고, 꽤 잘 조직된 노조가 이미 자리잡은 현대차그룹은 복수노조가 허용되더라도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이 금지되길 바랐다. 최종 결과는 노조 지도자 다수의 배신과 소심함 때문에 전반적으로 노조에 불리하게 노동법이 개악됐다.
그러니 우리가 자본주의 하에서 부패를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려면 현실을 좀 더 구체적으로 봐야 한다. 현실에는 자본‘들’과 국가‘들’이 있다.
한 나라로 좁혀 보면, 지금 같은 시장자본주의에서는 하나의 국가와 다수의 자본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이때 다수의 자본은 국가와 다양한 관계 맺기를 시도한다. 총자본 같은 건 추상적 용어다. 총자본을 자처하는 세력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경제 위기 때 자본들은 산업 구조조정에 모두 동의하지만, 자기 기업을 정리하는 것에는 반발한다. 물론, 예를 들어 중국과 교역을 많이 하는 자본도 중국과의 국가적 갈등이나 전쟁 단계에서는 자기 국가를 지지한다. 그럼에도 자본들 간의 경쟁적 관계 때문에 국가에 대해 이들의 이해관계가 단일하지 않다는 걸 봐야 한다.
특정 기업이 특정 정당의 한 분파와 주로 관계를 맺고, 행정부, 사법부, 언론 등과도 특수한 관계를 맺는다. 부처도 서로 나눠 먹는다. 이런 관계들을 교차된다. 각 주체들은 복수의 관계망에 속하게 된다. 그 형식은 직접 거래, 혈연, 지연, 학연, 이념 등 여러 요소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관계망은 구조화돼 상부구조의 특수한 면을 형성한다. 그러니 특히 부르주아 민주주의 국가는 구체적인 자본들의 이해관계에 대해 단일하지 않다.
그래서 1997년 경제 위기 때는 위기 대처 문제나 삼성·기아 자동차 공장 처리 문제 등을 두고 집권당 내에 분열이 일어나기도 했다. 신자유주의 정부에서는 국가 관료 대다수가 민영화에 찬성하지만, 민영화의 각론으로 들어가면 자기의 권력을 훼손하는 민영화에는 찬성하지 않을 수 있다.
이번에 총리 후보로 내정된 김병준이 2009년에 노무현 정부 때의 경험을 강의한 적이 있다. 김병준에 따르면, 의료 민영화를 하려고 측근들을 계속 보건복지부에 보냈는데, 딱 석 달 만 지나면 청와대로 돌아와서 의료 민영화가 안 좋은 것이라고 반발해 계속 장관을 교체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그 강연록을 모아서 책(《99퍼센트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 개마고원)을 냈는데, 이 책에는 그 사례가 빠졌다. 그럼에도 행정부처들이 몇 년 만에 임기가 끝나는 대통령보다는 자신들의 오랜 “고객”과의 관계를 더 중시하더라는 얘기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대통령을 5년짜리 계약직이라고 불렀던 것 아닌가.
어쨌든 김병준은 그 관계를 “고객”, “친구”라고 표현했다. 이 부분에서만큼은 김병준이 거짓말을 한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그 강연에서 그가 강조한 바는 대통령이 돼도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애초에 약속을 하지 말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2012년에 기초연금 공약을 놓고 문재인이 박근혜에게 실현불가능한 공약을 한다고 비판한 일을 기억할 것이다. 여기서 본질은 문재인이 박근혜의 사기극을 예언한 게 아니다. 문재인이 박근혜보다도 더 취약한 복지 공약을 냈다는 게 본질이다.
김병준이 주장하는 바는 노무현 정부가 기대감을 너무 키운 것, 즉 지지층이 너무 많은 걸 기대하게 만들고 그걸 채워 줄 수 없었던 것에서 반면교사를 얻자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얘기는 유시민도 몇 번 언급한 바 있다. 문재인이 대선 때 보인 태도나 공약을 보면 이런 관점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섥힌 여러 부패 관계망이 상부구조의 일부로 굳어진다. 부패의 연결망이 굉장히 뿌리 깊고, 이 특수한 관계망들로 국가기구가 분열돼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에도 자본 간의 경쟁이 반영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얽히고물론 이렇게 분열돼 있다 하더라도 계급적 이해관계에서는 뭉친다. 그런 기술을 가장 잘 발휘한 게 박근혜가 아닌가 싶다. 이런 경쟁적 부패 관계망이 국가 안에서 매우 뿌리 깊게 박혀 있는 현상을 가리키려고 조합된 단어 하나가 ‘삼성공화국’이다.
그런데 특히 경제 위기나 권력 교체기에는 이런 관계들의 재조정이 벌어진다. 경제 위기는 이윤이 줄어드는 시기이기 때문에 자본 간 경쟁도 격렬하고, 정부의 금리·환율 정책 등으로 기업들이 얻는 득실이 호황기보다 더 두드러진다. 권력 교체기에는 뇌물을 제공하던 쪽에서 줄을 갈아타려고 할 수도 있고, 새로운 권력으로 부상하는 세력이 새로운 줄 서기를 요구할 수 있다. 구 권력이 이런 과정을 막으려 애를 쓰기도 한다.
가령 레임덕 정권이 예전처럼 충실하지 않은 정부 기관들이나 특정 기업에게 “어라? 이놈들 봐라” 하면서 손보려고 하다가, 새로운 ‘기둥서방들’이 이를 반대하고 나서거나, 특정 집단이 뇌물 수수 사실을 폭로함으로써 새로운 관계망 정립을 기정사실화하려고 한다. 특히 권력 교체기에 이런 방식의 음모, 숙청, 폭로가 빈번하다.
박근혜 부패에 대한 최근 폭로는 자본주의 부패 구조, 경제 위기와 레임덕 시기, 그리고 이 시기 변화하는 관계망들의 문제가 결합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경제 위기라는 근본 배경
그래서 현 상황이 경제 위기를 근본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박근혜는 첫해부터 부패한 인물들을 기용하려다가 된통 혼이 났다. 국가기관 대선 개입 문제로 정통성 시비도 있었다. 첫해에 철도 파업 때문에 지지율 하락 위기도 겪었다. 세월호 참사로 무책임성, 야비함 등이 노출돼 집권 내내 시달리는 쟁점이 됐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가 경제를 회복시킬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기대감이 깨졌다. 경제 회복에 실패하자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실망이 커졌다. 올해 한진해운 부도 건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면서는 지배계급도 상당히 실망했을 것이다. 고통전가에 반대하는 투쟁과 여론도 성장했다.
2015년에는 더 늦지 않게 임금 삭감 ‘개혁’을 하려고 서둘렀다. 자본가 계급이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의제인데다가, 노동운동을 제압하면 우파의 지지를 굳힐 수 있다. 이렇게 노동개악이 성공하면 정권이 안정되고, 그러면 다시 각종 개악을 추진하기도 더 쉬워진다고 봤을 것이다. 개악들을 성공시킴으로써 레임덕 없이 총선도 잘 치르고, 정권 재창출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려 한 것이다. 개악과 레임덕 방지의 선순환을 추구한 것이다.
박근혜 정치 스타일은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쪽에는 애당초 별 신경을 쓰지 않고 배제하는 식이다. 자기 지지층 결집을 중시하고, 그것에 의존해 난관을 돌파한다. 그래서 세월호 사건 같은 게 터져도 눈 하나 깜짝 않는 것은 박근혜의 개성 문제도 있지만, 이런 통치 방식 문제도 있다. 세월호 7시간을 감추려고 눈물 쇼, 조문 쇼 하더니, 자기 지지층이 결집했다 싶으니 바로 내쳐버리지 않느냐. 이런 게 야당일 때는 잘 안 드러난다. 그러나 한국 같은 대통령 중심제 나라에서 대통령이 이러면 반감이 누적된다. 주로 당하는 쪽은 노동계급, 하층민들인데, 이들이 받은 모욕감은 누적되고 폭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가 본격화하려던 개악 드라이브에는 두 가지 문제가 생겼다.
사실 박근혜 집권은 우파를 강력하게 결집했기 때문이지만 강고한 반대파 세력도 만들었다. 대선에서 거의 절반이 강한 반감을 나타냈다. 첫해, 두 해는 위기 속에서도 그럭저럭 지지율 40퍼센트 언저리를 유지했지만, 반대도 늘고 있었다.
대통령 지지율은 국정 수행에 대해 긍정 평가와 부정 평가를 조사한다. 따라서 추세를 보려면 이 둘을 봐야 한다. 박근혜 긍정 평가가 유지되고 있었지만, 부정적 평가도 꾸준히 증가해 왔다.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는 부정 평가가 더 높았다. 박근혜의 위세 때문에 억눌려 있었지만, 잠복된 분노가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자본가 상층부는 아니겠지만) 거의 모든 계급의 사람들이 박근혜한테 정나미가 떨어지는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노동개악부터는 가장 강력하게 조직된 반대 세력인 민주노총과 부딪치게 된다. (우리 같은 혁명가들이 보기에는 조금 미흡했지만) 민주노총이 좌파 집행부 아래서 딱 체면치레할 만큼은 투쟁을 했고, 이 투쟁은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노동개악이 박근혜 의도대로 진행되질 않았다. 임금, 고용을 악화시키는 노동개악은 1천9백만 경제활동인구에게 해당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분명하게 저항하는 세력이 있으면 불만을 가진 여론이 결집한다. 대중 투쟁이 노동개악에 불만인 사람들의 정서를 정당화해 주기 때문이다. 즉, 노동자 투쟁이 박근혜 반대 여론의 구심점 구실을 한 것이다.
그리고 한 기점이 총선이었다. 서중석 교수가 정리한 걸 보면, 암울한 분위기가 확 바뀌고 격변을 예고하는 선거들이 있다. 1978년 총선, 1985년 총선이 그 사례인데, 2016년 총선도 그런 선거였는지도 모르겠다. 박근혜는 레임덕을 막으려고 여당 내에서 투쟁을 벌여서 공천권을 쥐고 선거를 치렀는데, 이 선거에서 참패했다. 그래서 총선 패배로 명백하게 레임덕이 시작됐다. 민주노총은 총선 직후에 투쟁 기회를 놓쳤지만, 9월 하순부터 시작한 공공 파업이 폭로 정국으로 가는 디딤돌이 됐다.
이걸 비유하자면, 단단해 보이던 바위에 경제 위기 등으로 금이 쫙 갔는데, 노동자 투쟁이 쐐기를 박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쐐기를 때리는 힘이 충분하질 않아서 바위가 완전히 갈라지지는 않고 틈만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걸 보면서 사람들이 들썩이기 시작했는데, 여기에 최순실 폭로가 터지자 그 벌어진 틈으로 뛰쳐나온 것이다. 별것도 아닌 것들이 그동안 우리를 때려 잡고 있었네, 이러면서. 박정희인 줄 알고 기대도 하고, 겁도 내고 그랬는데, 이제 보니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모욕감이 순식간에 분노와 비웃음으로 변했다.
노동운동이 돌파구를 여는 구실을 했으니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고까지는 할 수는 없지만) 현 운동에 큰 지분이 있고, 또 환영받고 있는 것이다.
순식간에, 박근혜 퇴진 집회가 시작된 지 2주 만에 집회 규모는 1백만 명이 됐다. 이렇게 운동이 갑자기 치솟은 것은 사람들이 그동안 새누리당 정권, 특히 박근혜 정부 아래서 고통전가 정책, 우익과 기득권 편향, 더 불평등해지는 현실에 얼마나 불만이 커져 왔는지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운동을 2008년 촛불과 비교하기도 하는데 차이점이 적지 않다. 이 운동은 시작부터 정권 퇴진을 내걸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정치적이었다. 반면 2008년에는 정권 퇴진 주장이 나오는 데 한 달이 걸렸다. 2016년 운동은 노조·좌파를 꺼리지 않고, 신문·리플릿 등 정치적 주장에도 관심이 많다. 2008년에 강했던 반反정치적 자율주의 분위기와는 판이하다. 물론 주된 정치적 분위기가 개혁주의, 선거정치라서 곧장 좌파 지지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반정치나 개인주의적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에 토론하기가 더 쉽다.
그래서 이 운동에서 우리 같은 혁명가들을 배제하려는 시도들이 나오지만, 이는 자율주의의 반대가 아니라 개혁주의가 좌파를 배제하려는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운동은 시작부터 좌파가 선도했다. 10월 29일 첫 집회부터 박근혜 퇴진을 걸고 청와대로 행진했는데 이것이 대중의 ‘자발성’에 부합했다. 이 집회가 성공하자 그 다음 주에 더 많은 사람이 나왔다. 엔지오NGO들은 처음에 박근혜 퇴진에 반대했고, 집회에도 반대했다. 엔엘NL도 그랬다. 이들 중에서도 솔직한 사람은 자기들이 “무임승차” 했다고 표현한다. 그래도 주도권을 뺏으려고 무섭게 달려든다. 정권 퇴진 운동이라서, 결국 차기 정권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대선 대응이 전술이지만, 그들에게는 중요한 전략이고 엔엘 같은 경우에는 돌파구가 생길 수도 있는 기회로 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동기를 잘 꿰뚫어 보면서 분석해야 한다.
각 세력의 동기들
박근혜와 친박은 무조건 버티기다. 쏟아지는 비를 누구도 그치게 할 수는 없다. 그칠 때까지 자기가 어떻게든 피하고 옷과 몸이 제일 적게 젖을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새누리당 단속, 내분 방지가 제일 중요하다. 그런데 비박에게 줄 것이 없다. 부산 엘시티 협박이 그런 게 아닌가 싶다. 해운대 개발이 이명박 때 본격 시행됐으니, 친이명박 쪽에 어떤 메시지는 될 것 아닌가.
그런데 검찰이 뜻대로 움직여 줄 지는 모르겠다. 나는 한국 검찰이 수사 능력이 없다고 보진 않는다. 맘만 먹으면 누구든 괴롭힐 수 있다. 그런데 그래서 문제다. 그걸 자기들 임의로 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친박, 비박 다 쥐고도 권력 동향 보면서 누구는 기소하고, 누구는 감추고 할 수 있다. 여론에 밀려서 기소는 하지만, 일부러 수사를 허술하게 할 수도 있다.
지금 검찰이 박근혜 뜻대로 비박이나 문재인을 일차 타겟으로 수사할 것 같지는 않다. 김영삼 말기 때도 검찰이 김대중 수사를 덮어줬고, 노무현 말기에도 검찰이 이명박을 덮어줬다. 비박은 박근혜가 탈당해 주길 바란다. 올해 총선 공천 때문에 19대 때보다 새누리당 의석수가 줄었는데도, 지금이 친박이 더 많다. 비박이 별로 힘을 못 쓰는 이유다. 물론 그렇게 공천 주도했다가 총선 참패했기 때문에 레임덕이 가속화된 것도 있지만. 비박은 계속 상황을 볼 것이다. 분당 결심이 서면 탄핵에도 동참할 수 있다고 본다.
민주당과 문재인. 지금 민주당은 거의 ‘문재인당’인데, 이들의 현재 대선 프로젝트 기조는 ‘현상 유지’와 ‘양날개론’으로 보인다. 현상 유지는 올해 총선에서 이긴 세력관계를 유지하자는 것이다.
양날개론은 2012년 대선에서 너무 왼쪽으로 보여서 졌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놓친 중원 표 확보하자는 것이다. 김종인을 끌어들인 이유, 총선에서 진보정당들과의 야권연대를 경계한 이유다. 그런데 그러면서 왼쪽 표를 그대로 얻으려면 어찌 해야겠는가. 그건 진보정당들이 성장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좀 ‘양아치’스럽기도 하다.
이런 기조를 상황에 대입해 보면, 민주당은 즉각 퇴진도, 그 무엇도 바라지 않았다는 걸 추론할 수 있다. 박근혜가 지금처럼 새누리당에 딱 달라붙어서 같이 죽는 구실을 내년까지 해 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대선 앞두고 야당들이 흔히 요구하는 대통령 탈당을 이 판국에 제기하지 않았다. 야당들은 안 한다. 탈당 요구는 새누리당 안에서 나온다. 옛날 오락 중에 폭탄 게임이란 게 있는데, 박근혜는 거기 나오는 폭탄 같은 처지가 됐다.
민주당은 즉각 퇴진은 너무 정치상황을 불확실하게 만들고, 조기 대선 치르면 야권 후보를 단일화하기에 짧다고 여긴 듯하다. 그러나 자기들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려고 2선 후퇴와 총리 문제에는 관심이 많았다.
어쩌면 이는 1등의 딜레마일 수도 있다. 문재인은 아무것도 안 하고 지금 대선 후보 차기 1위가 됐는데, 뭐든 던지고 해 봐야 하는 3등, 4등과 처지가 다른 것이다. 그런데 정치상황에서 현상유지론은 먹히지 않는다. 문재인 민주당도 어려움을 겪는 이유다.
그러나 운동이 계속 커지니까, 일단 탄핵 국면으로 와서 이를 수렴하려고 한다. 운동이 계속 커지면, 탄핵 가결로 가서 야당으로서 면은 세우고 책임은 넘기는 그런 방식을 취할 것 같은 구체적인 양상은 더 봐야 알 것이다.
국민의당은 박지원과 안철수가 역할 분담해서 안철수가 박근혜 퇴진으로 치고 나갔다. 이재명이 첫 집회에 올라서 기운을 타자, 곧바로 월요일 오전에 박원순이 퇴진 투쟁 선언하고, 부랴부랴 안철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오후에 “박근혜 대통령은 물러나십시오” 외쳤다. 국민의당은 지금 대선보다는 내각제에서 집권에 참여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고 그걸 선호한다는 얘기가 많다. 그러나 지금은 새누리당과 개헌 협상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엔지오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해 왔다. 이번에는 그중에서도 박원순을 더 밀지 않을까 싶다. 박원순은 엔지오 대부代父다. 엔지오와 일부 온건 노동계 상근 간부층도 기반으로 삼는 듯하다. 이들이 박원순에게 퇴진 투쟁에 조기에 동참하라고 조언한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엔지오들은 퇴진 운동에 뒤늦게 들어와서 현재는 발언력이 약하다. 그래서 좌파가 대중의 자발성 지도하면 안 된다는 등의 얘기를 한다. 퇴진행동이 시민들의 자발성을 보조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좌파들의 주도력을 빼앗아 민주당 주도의 운동을 만들려고 혈안이 돼 있다. 그러나 대중의 자발성에 뒤쳐진 건 본인들이다.
엔엘 경향은 지금 범국민운동본부로 야당과 운동세력이 모두 결합해 퇴진 운동을 하자는 것인데, 이는 이 범국본이 박근혜 퇴진 후 과도 내각의 기초가 돼야 한다는 발상이다. 민주적 국민내각. 그렇게 해야 자기들이 과도 내각을 거쳐 차기 정부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인민전선 전략에서 나오는 범국본 건설 제안이다. 그래서 그들의 매체에서 국민혁명을 주장하는데, 이게 범국본 건설의 필연성을 도출하려고 내놓는 정세 분석이 아닌가 싶다. 자신들의 전략적 의도에 객관적 상황 분석을 꿰맞추는 것이다. 스탈린주의라면 능히 그럴 법한데, 허황된 낙관도 할 때가 많으니….
어쨌든 이들과 운동과의 관계에서 특별히 주의할 쟁점은 국회 탄핵이라고 본다. 국회가 탄핵을 소추하면, 헌재가 탄핵 여부를 심판하는 것.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의결한다고 한다. 줄여서 탄핵, 탄핵 하지만, 헷갈리면 안 된다. 탄핵은 헌재가 하는 것이다. 잡다한 상식 자랑하는 게 아니고, 국회에서 탄핵을 한다고 박근혜가 물러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하려면 새누리당 의원 30명가량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이들과 거래를 해야 한다. 그렇게 가결되면, 새누리당 비박 일부에게 면죄부 줄 수 있다. 위험하다. 헌재에서 몇 달을 질질 끌 수 있다. 헌재 9명이 수천만 명이 이미 정치적으로 탄핵한 박근혜 탄핵 여부를 법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 9명은 전교조 법외노조화에 합헌 판결하고 진보당 해산 판결했던 자들이다.
이들에게 박근혜 탄핵을 기대하기도 난망하지만, 그들이 박근혜를 탄핵해도 문제다. 이들은 이제 용서 대상이 되는가. 한마디로 즉각 하야 운동이 탄핵을 지지하는 건 실용주의다. 어떻게든 박근혜가 물러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목표와 목적, 수단을 모두 잘 구분해야 한다. 박근혜 퇴진은 목표다. 목표만 이루면 수단은 상관없다는 게 실용주의다. 그러나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우리는 노동계급의 정치의식과 자신감, 투지, 사기가 오르는 걸 목적으로 한다. 그런 점에서 새누리당과 동맹하는 탄핵은 목적에 부합하는 목표나 수단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즉각 퇴진이 바로 안 되면, 탄핵에 대한 관심이 늘어날 것이다. 퇴진은 박근혜가 하는 거지만, 탄핵은 ‘우리’가 박근혜를 (탄핵) 시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게 더 강제로 하는 걸로 보이고, ‘우리’가 더 능동적으로 하는 걸로 보인다. 그러나 그 ‘우리’에 함정이 있다. 아까 말했듯이 탄핵은 여야 정당들이 하는 것이다.
지금 운동은 미조직 노동계급이 다수인 사람들, 민중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구분이 안 가겠지만, 우리는 구분해야 한다. 주체가 다른 것이다. 따라서 목적과 목표, 수단이 달라야 한다.
좌파의 혼란
이렇게 보면, 각종 버전의 음모론에 영향 받지 않고 지금 정치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그 음모론들은 정말 허황되고 유치하다. 가령 《중앙일보》나 삼성이 사태를 움직이는 주장이 횡행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재용은 뇌물죄를 걱정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가장 먼저 질서 있는 2선 후퇴 얘기하다가 탄핵 얘기 꺼냈는데, 지금은 다시 질서 있는 하야를 얘기하고 있다. 사태에 떠밀리고 있는 것이다. 그럼 그 떠미는 주체가 누구냐? 그러니 누구 보고 허수아비 꼭두각시라고 하는 건지? 그런 것들은 주류 언론이 박근혜와 최순실의 민망하고 엽기적인 것들을 파헤치니, 자본의 음모 어쩌고 하는 게 그럴싸해 보여도 사이비 좌파성이다. 일본에선 우익들이 미국의 음모 운운하고 산다.
이런 음모론들은 현 국면이 ‘폭로’에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그런데 이 폭로들이 왜 시작됐는지 설명할 수 없으니 음모론적 설명을 채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음모론은 정태적 세계관이다. 음모론이 배격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의 자기의식적 행동, 즉 노동계급의 자력해방이다. 따라서 이런 식의 관점으로 운동에 일체감을 느끼기 힘들다. 또 혼란스러움이 말끔히 사라지지 않는다. 노동당은 집회에서 보면 겉돈다는 느낌을 받는다.
좌파 일부가 습관성 비관주의에 젖어 있다가 정치상황이 바뀌는 것을 보고는 상황 파악에 어려움을 겪는 게 아닌가 싶다. 실용주의도 문제다. 노동당이나 민주노총 같은 곳에서 이 국면의 초기에 “최순실은 물러나라”나 “박근혜는 대통령 아니었음을 고백하라” 하는 사이비 선동을 공식 성명에 내는 걸 보면 내가 창피하다. 요즘 유행어로 ‘왜 창피함은 우리의 몫인가’.
정리하면, 지금 이 운동은 성장 속도와 규모를 보건대, 꽤 누적된 불만과 분노가 폭로를 계기로 터져 나온 것으로 봐야 한다. 그래서 갑자기 정치 세계의 시계가 빨라졌다. 어제 옳은 것이 오늘 틀릴 수 있다.
이 운동은 여러 불평등한 현실, 나쁜 정책들의 문제를 정권의 문제로 나름 일반화하는 운동이다. 각 부문의 의제, 운동들이 이 운동으로 수렴된다. 그런 점에서도 정치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파편적인 것보다는 훨씬 좋은 것이다.
박근혜 퇴진 주장은 지금 계급을 뛰어넘는 지지를 받고 있다. 따라서 박근혜 퇴진을 위해 노동계급이 복무해라 하는 건 이상하다. 사고의 순서가 달아야 한다.
마르크스주의는 노동계급의 해방 사상이다. 노동계급에게 박근혜 퇴진이 필요하다. 노동계급이 퇴진이라는 자기 목표를 위해 파업이라는 수단을 쓰는 건 다르다. 퇴진이라는 목표도 자기해방이라는 목적에 비추면 수단이다.
연결되는 쟁점으로서 파업을 전제조건으로 걸면 안 된다. 충분조건이든 필요조건이든 파업이 없으면 투쟁 승리가 없다는 것이다. 파업은 더 좋은 것이지만, 그것 아니면 안 된다는 건 결정론적이고, 대중파업이 쉽지 않은 조건에서 오히려 수동적이기 쉽다.
그래서 좌파에게 기회가 있다.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즉, 얼마 전에는 안 되던 일들이 지금은 가능해진다.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고 대담해야 한다. 진취적으로 주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나 이 운동에 결합한 세력들의 이후에 대한 계산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운동은 스스로 퇴진 이후 단일한 정권을 추구하려고 하면 안 될 것이다. 어차피 분열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단지 정권 교체, 선거, 조기 대선의 문제로 협소화시켜서는 안 된다. 각자 알아서 준비할 일이고, 우리는 기본으로 진보가 단결해 나가자는 전술을 이미 내놓은 바 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투쟁이 박근혜와 박근혜 정부로 상징된 문제들, 즉 친기업, 친제국주의, 반노동, 반민주 정책들을 역전시키고, 이런 개악 드라이브가 만든 적폐들을 곳곳에서 격퇴하는 투쟁으로 심화되고 확산되는 것이다. 더 좌파적이고, 더 계급투쟁적 방식으로 운동이 확산돼야 하는 것이다. 이게 우리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