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회주의자의 프레카리아트론 반박
불안정은 노동계급 전체가 겪는 문제다 *
신자유주의와 “탈산업화”로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 구조가 바뀌었고, 그로 말미암아 계급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주장이 흔하다. 그중 국내외 많은 좌파들에서 유행하는 것이 ‘프레카리아트’론이다. 다음은 찰리 포스트가 미국의 좌파적 잡지 〈자코뱅〉과 한 인터뷰다. 그는 프레카리아트 개념이 오늘날 노동자들이 겪는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오히려 방해만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신디컬리즘 경향을 보이긴 하지만 프레카리아트론에 대한 비판은 읽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자로, 미국 뉴욕 시립대학교 사회학 교수다. 대표 저서로 《미국 자본주의는 어떻게 형성됐는가》(The American Road to Capitalism, Haymarket, 2012)가 있다. 이 책은 2011년 도이처기념상 후보에 올랐고 2013년 마르크스주의 사회학상을 수상했다. [ ] 안의 말과 각주는 〈마르크스21〉 편집팀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보충한 것이다.
Q 독자들에게 배경 지식이 될 질문부터 하겠습니다.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아나키스트 등 급진적 사상가들이 전통적으로 조직 노동자 운동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A 몇 가지로 나눠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역사적으로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는 작업장과 산업 노동계급(제조업, 운수업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왜냐하면 분석상 이 노동자들이 사회를 바꿀 힘을 갖고 있다는 분석 때문입니다. 이 노동자들은 상점과 영세 작업장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보다 자본주의 사회의 작동에 더 큰 지장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산업 노동계급은 생산관계에서 차지하는 지위 때문에 민주적이고 집산주의적인 사회주의 사회가 필요하다는 사상으로 집단적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점이 마르크스주의를 따르는 각종 사회주의자들과 아나키즘적 신디컬리스트 등이 작업장에 주목한 근본 이유입니다. 그래서 작업장에서 조직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Q 당신은 ‘프롤레타리아’와 전체 노동계급을 구분하시는군요?
A 핼 드레이퍼가 그렇게 구분했었습니다. 저는 산업 노동자들, 그러니까 제조업·운수업·건설업·통신업 등에 종사하는 노동자들과 다른 사회적 영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구분하고자 합니다. 역사를 보면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아나키즘적 신디컬리스트들은 교사와 병원 노동자 등에게도 개입했지만 산업 노동계급에 전략적 중요성을 부여했습니다.
그러나 대규모 작업장 노동자들이 사회를 바꿀 잠재력을 갖고 있더라도, 조직되지 않으면 그들은 계급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계급의식을 갖지 않는다는 것도 이해해야 합니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들은 이중적 존재입니다. 노동자는 집단적 생산자의 일원으로 작업장의 통제권을 놓고 자본에 맞서 투쟁하지만, 노동력 판매를 위해 다른 노동자와 경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20세기 초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부문적 이해관계”라고 표현한 것이 등장합니다. 즉, 인종, 시민권, 국적, 젠더, 성 등을 따라 노동자들이 나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전투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을 결성해 작업장에서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은 언제나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셋째 요소도 있습니다. 바로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급진주의자들과 혁명가들이 작업장에서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계급의식을 고취하려 할 때 맞닥뜨린 쟁점입니다. “기존 노동조합과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지?” 이 쟁점이 중요한 이유는, 20세기 초부터 노동운동에서 관료들이 노조를 상명하복식으로 운영하며, 사용자들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그들과 거래하는 데 더 큰 관심을 가졌고, 그 과정에서 조합원들이 희생되는 경우가 자주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1차세계대전 전에는 도처에 혁명적 좌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기존 노조에서 떨어져 나와] 혁명적 “적색” 노조를 건설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주장은 미국에서는 아나키즘적 신디컬리스트들이 세계산업노동자동맹IWW을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기존 노동조합 안에서 활동하면서 관료적 지도부에 대한 반대파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노동조합 관료들을 설득해서 더 진보적으로 행동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대체로 1920년대 이래로 혁명적 좌파는 둘째 견해(기존 노동조합 안에서 반대파 건설)를 따랐습니다. 현실에서는 미조직 작업장의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조직화하고 사용자에 맞서 싸우려 할 때, 기존 노동조합이 자신들을 조직하고 투쟁을 이끌어 줄 것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혁명가들과 급진주의자들은 기존 노동조합과 연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행동에 나서는 노동자들과는 동떨어져 있게 될 것입니다.
Q 노동자들을 급진화시키고 사회주의 사상을 조직으로 구현하기 위해 급진주의자들이 조직 노동자 운동에서 사용한 전술은 무엇이 있습니까? 지난 수십 년 동안 일어난 노동계급 구조 변화를 어떻게 보십니까? 1920년대 이래로, 노동 형태와 노동자들의 성격이 많이 달라졌다는데요.
A 맞습니다. 1920년대에는 전체 노동자 중 소수(대체로 숙련직)만이 노동조합으로 조직돼 있었고, 그나마 그 수도 빠르게 줄고 있었고, 노조 관료들은 좌우파를 가리지 않고 모두 사용자들과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으므로, 겉보기에는 오늘날과 비슷했습니다.
1 를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소수 노조란 [해당 작업장 노동자 절반 이상의 지지를 얻는 공식 노조는 아니지만] 현장의 불만을 해결할 행동을 조직하는 노동자 집단을 말하는데, 이런 집단에 속한 활동가와 조직가들이 대체로 해당 사업장의 급진주의자들일 것이라는 데 착안한 것입니다.
1930년대 혁명가들은 ‘노동조합 안에서 반대파로 활동하기’ 전략을 채택하면서 노동조합이 있는 작업장에서는 그 노조에 가입해 활동하며 산업별 노조로의 전환 등을 주장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노동조합이 없는 작업장에서는 소수 노조1930년대 말부터 1940년대 초까지 공산당은 기존 노조가 비록 관료화됐고 파산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기존 노조와 관계를 맺어야 할 뿐 아니라 그 속에서 진보적 지도자를 찾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이래로 미국 내 사회주의 좌파들은 노동운동에 개입할 때 대체로 이 기조를 유지했습니다.
1990년대 초 사회주의자들이 [미국노동총연맹-산업별회의(AFL-CIO) 위원장 선거에서 — 〈자코뱅〉] 존 스위니를 지지하는 데 믿을 수 없을 만큼 몰두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스위니가 새 부문의 노동자와 이주민을 조직하겠다고 말하자 그가 다시 노동운동을 부흥시킬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뒤 앤디 스턴이 이끄는 전미서비스노동조합연맹SEIU 모델이 많은 급진주의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는데, SEIU가 새 부문의 노동자들을 조직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와 비슷하게 많은 사람들이 시 차원의 지방노동조합평의회[해당 지역의 노동조합들로 구성된 일종의 연합체로 조합원 교육, 입법 청원, 캠페인 조직, 소속 노조 지원, 조직 사업 등의 활동을 벌임]를 통해 지역의 진보적 노조 지도자를 발굴해서 관계를 맺으려 합니다.
불행히도, 이렇게 기대를 받았던 많은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비록 이라크 전쟁이나 정부의 건강보험 정책에 대해서는 괜찮은 태도를 취하더라도 작업장 문제에서는 보수적인 노조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사용자와 협력하는 정책을 폅니다.
지난 30~40년 동안 미국 좌파 중 소수만이 노동운동에서 아래로부터의 전투성을 재건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런 활동은 [노조] 개혁 모임[reform caucus: 대개 기존 지도부의 관료성 보수성에 반발해 노동조합 민주주의와 투쟁성을 강조하는 조합원 및 지지자들의 의견그룹 성격을 갖는 모임으로, 시카고 교사 파업을 이끈 CORE가 대표적이다]을 건설하는 형태를 띠는데 ‘민주적 노조를 위한 팀스터스’가 가장 성공한 사례입니다. 노조가 없는 미국의 대부분의 작업장에서는 소수 노조를 건설하는 활동이 여기에 속합니다.
Q 오늘날 노조 조직률은 전국노동관계법이 도입돼 노동조합의 교섭권이 처음 보장된 1935년보다 더 낮습니다. 많은 청년들은 사회주의 전망에서 또는 투쟁을 건설하는 데서 노동계급이 중요하다고는 여기지만 경제 구조가 심대한 변화를 겪었으므로 산업 중심의 전략은 더는 유효하지 않다고 보는 듯합니다. ‘프레카리아트’는 이런 변화를 지칭하는 낱말인데요, 이 개념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시고 왜 일부 사람들이 이 개념에 매력을 느끼는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A 새로운 사회계급이 출현했다거나 노동계급 안에서 새로운 계층이 생겼다는 생각은 신자유주의 공세가 시작된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사회보장이나 복지를 박탈당한 채 단기 계약, 임시직, 시간제, 저임금을 특징으로 하는 일자리에서 일하는 일군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프레카리아트》[국역: 김태호 역, 박종철출판사, 2014]입니다. 스탠딩은 프레카리아트가 노동계급과 다른, 별개의 사회계급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1950~60년대 선진국에서 노조로 조직됐던 노동자들을 노동계급으로 규정합니다. 즉, 노동계급은 전일제로 일하고, 고용이 안정되고, 한 사용자 밑에서 20~30년 동안 일하고, 사용자가 마음대로 해고할 수 없는 노동자들이라는 것입니다.
1980년대 말에 많은 프랑스 사회학자들이 ‘불안정’ 노동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영어권에서 이런 주장을 가장 체계적으로 편 것은 가이 스탠딩의 책스탠딩은 또한 프레카리아트가 특히 청년과 유색인종 사이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졌다고 주장합니다. 노조가 없는 작업장에서 일하고, 시간제로 일하고, 가장 중요하게는 [고용이] 불안정한 집단이라는 겁니다. 프레카리아트에 속한 사람들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일자리가 끊임없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즉, 스탠딩은 이 프레카리아트가 다른 집단보다 더 급진적인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내가 제기하고 싶은 문제는 프레카리아트가 노동계급 내에서 고용이 불안정한 별개의 부문이라거나 심지어 아예 다른 계급이라는 경험적 묘사가 정확한지는 확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케빈 두건이 쓴 《새로운 자본주의?: 노동의 변화》라는 아주 괜찮은 책이 있습니다. 그 책 내용은 대부분 노동의 불안정성에 관한 것입니다.
분명히 시간제 일자리가 늘었습니다. 특히 보건, 소매업이나 창고형 마트 부문에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케빈 두건은 이 부문의 사용자들이 모두 건강보험이나 연금을 지급하지 않으려고 시간제를 더 많이 채용하지만, 고용 자체는 상당히 지속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노동자들은 단지 몇 달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는 10~15년 동안 같은 사용자를 위해 일합니다. 그런데도 정규직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케빈 두건은, 프레카리아트 개념이 그토록 널리 회자되는 이유가 많은 사람들의 고용이 더 불안정해졌다거나 노동계급과는 다른 이해관계를 갖는 별개의 집단이 출현했다는 것 때문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지난 30년 동안 겪은 패배, 신자유주의의 부상, 복지국가 해체 때문에 오늘날 노동자들이 실업에 처했을 때 겪는 고통이 제2차세계대전 직후보다 훨씬 가혹해진 것이 그 이유라고 주장합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였던 1970년대에, 저는 막 급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많은 제 친구들은 우체국이나 브루클린 네이비 야드[미 해군의 조선소]에서 일했습니다. 그들은 정치 활동 때문에 해고되더라도 실업 급여와 식품 할인 구매권은 물론 대체로 메디케이드[국가 의료보험]까지 받으며 지냈고 금세 새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신자유주의 공격 이후 사회보장제도를 갖춘 전일제 일자리는 얻기 어려워졌고 복지 혜택은 전체적으로 나빠지거나 사라졌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에는 해고되면 몇십 년 전보다 더 가혹한 현실에 부딪힙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모두 갈수록 고용이 불안정해진다고 느낍니다. 일각에서 ‘특권적’ 노동자라 불리는 전일제 노동자부터, 월마트 등에서 시간제로 일하지만 전일제가 되리라는 희망이 없는 노동자까지 모두 말입니다.
이런 상황이 잇따라 겪은 패배와 조직률 하락과 맞물리자, 이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한때 가졌던 객관적 힘이 이제는 사라지고 없다는 생각이 자라났습니다. 게다가 많은 좌파는 노동계급 내 제조업 부문의 상대적 비중 감소가 마치 새로운 현상이라도 되는 양 과장되게 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진실은 제조업 부문 노동자들의 상대적 비중은 일찍이 1880~90년대부터 줄어 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자본이 지리적 중심부에서 떠나 이동할 수 있게 돼서가 아니라 기계화 때문이었습니다.
기계화가 아주 빠르게 진행되면서 작업 속도도 빨라졌습니다. 사람들을 강도 높고 빨리 일 시키기 위해 작업 공정을 아주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으로 잘게 쪼개어 일자리를 줄이거나 통합하는 이른바 ‘린lean 생산방식’도 도입됐습니다.
오늘날 미국은 지난 1백 년 중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자동차가 더 적은 노동자에 의해 생산되고, 사용자들의 공격 탓에 그중 적은 노동자들만이 노조로 조직돼 있습니다.
2 가 노동운동을 막다른 골목으로 이끈 현실을 직시하지는 않은 채 전국노동관계위원회[미국의 노동법원에 해당하는 기구로, 사측의 합법적 단체협상 파트너로 인정받고자 하는 노조는 이 기구가 주관하는 노동조합 선거를 통해 사업장 노동자 과반수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를 통해 노조 조직률이라도 보전하자고 말합니다.
이렇듯 불안정성에 대한 논의는 탈산업화에 대한 논의와 맞물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바로 노동조합 관료들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노조 지도자들은 노동조합 운동이 오늘날 망가진 것은 사용자들이 제2차세계대전 이후 노조들과 맺은 사회적 협약을 깼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제는 우리를 전일제로 고용하지 않아서’, ‘이제는 사회보장을 지급하지 않아서’, ‘공장을 중국으로 옮겨서’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관료적 비즈니스 노동조합주의Q 사람들이 행동에 나서도록 하는 데 이런 ‘상식’을 활용할 수는 없을까요? ‘프레카리아트’ 개념에 관심을 보이는 시간제나 서비스업 노동자들을 어떻게 조직할 수 있을까요?
A 가장 유용한 방법은 “우리 모두 불안정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노동조합 조직률 하락, 신자유주의 공세 탓에 노동자는 누구나 이런저런 방식으로 고용이 불안정해지고 있습니다. 오직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만이 이런 현실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많은 불안정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되려고 전일제 일자리, 고용안정, 사회보장을 얻으려고 투쟁한다는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 말은 급진주의자들이 전략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미국에서 가장 거대한 매장인 월마트 노동자들을 어떻게 조직할지를 두고 논의가 많습니다. 노조를 만들려고 한 많은 사람들이 매장별로 조직하려 했습니다. 제 솔직한 견해를 말씀드리면, 이 방식은 아주 중요하고 또 결코 포기해서도 안 되지만, 그럼에도 전략의 핵심이 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각각의 매장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설령 정규직이더라도, 월마트 운영에 지장을 초래해서 월마트가 양보하게끔 만들 사회적 힘을 갖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별 매장이 아니라 물류센터 노동자를 조직하려 한 연합전기노동자UE의 시도에 더 주목합니다. 연합전기노동자는 주로 소수 노조를 조직하는 곳 중 하나입니다. 물류센터는 적시(Just-in-time) 재고 관리시스템에 맞춰 온갖 상품이 들어오고 나가는 곳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종사하는 소매업에서 사람들을 조직하려면 (전통적 산업인 자동차, 고무, 운송 등에서도 조직해야 합니다) 전략을 잘 세워야 합니다.
월마트에서 노동자들을 조직하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봐야 합니다. 매장과 물류센터 중 어디를 조직하는 것이 더 중요할까? 물류센터를 조직하면 소규모라도 일치단결한 활동가들이 커다란 파장을 만들어 내고, 일시적으로라도 회사를 무릎 꿇리고, 큰 사회적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모든 노동자들이 탈숙련화, 파편화, 노동강도 강화, 고용 불안에 시달리면서 힘이 약해졌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특히 린 생산방식과 적시 재고관리시스템의 도입으로 일부 노동자들은 전략적으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됐습니다.
만일 월마트에서 노조를 본격적으로 건설하려 한다면 연합전기노동자처럼 물류센터에 집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물류센터 하나를 멈추면 한 개가 아닌 십여 개 매장을 멈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자동차 산업에서는 핵심 부품 공급업체 조직하기를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운송업에서도 운송 네트워크의 핵심고리를 공략해야 할 것입니다.
Q 자본주의가 노동자를 위해 마련하는 자리는 언제나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자본주의가] 불안정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했다거나 별개의 [사회적] 범주[프레카리아트]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평범한 노동자들을 의식적으로 조직하는 것이야말로 불안정성에 맞서 싸우고 사람들의 삶에 안정성을 가져다주는 방법이라고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A 그렇습니다. 제1차세계대전 이전에 노동자들의 고용 조건은, 예컨대 1890년대 대다수 노동자들의 처지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불안정했습니다.
저는 소위 ‘노동귀족’이라고 하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숙련 노동자들을 연구한 바 있습니다. 이 노동자들은 1년에 절반가량만 일했고, 장기 실업에 시달렸고, 일감을 못 구하면 살던 집조차 빼앗기는 처지였습니다. 일부 소수 노동자들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전일제 정규직처럼 고용됐지만, 다수는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역사를 보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정상”이라고 여기는 그런 노동조건은 실제로는 예외였습니다. 194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의 시기는 선진국 노동계급에게 예외적 시기였습니다. 1930~40년대에 노동자들이 자본에 대대적인 정치적 위협을 가했고 자본은 크게 양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자본이 경쟁과 이윤율 압박 때문에 다시 반격에 나서고 있는데, 우리가 커다란 저항으로 막지 않으면 다시금 1880~90년대와 같은 처지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Q 지방정부나 국가 기구에 압력을 가해 노동개혁을 쟁취하려는 일부 노동조합의 시도는 어떻게 보십니까? 이런 시도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작업장이 너무 소규모라서 노동조합은 힘을 갖기 어렵고 그래서 정부를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요. 이처럼 자본과 국가기구를 서로 대립시키려는 시도에 대해 해 주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A 먼저, 더 나은 노동조건을 위해 지방정부에 압박을 가하는 것이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흔한 방법의 일부인 것은 맞습니다. 그것은 노동자들이 지역사회의 다른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 손길을 내미는 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미국 노동조합 지도자들, 특히 전미식품및상업노동조합UFCW과 전미서비스노동조합연맹SEIU이 작업장에서 조직하는 대신에 이런 활동을 하려는 것은 문제입니다.
이런 방식은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힘을 발휘할 수 없고 그래서 정부가 개입해 조절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과 맥락을 같이합니다. 이것이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가진 세계관의 핵심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연좌하거나 공장을 점거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노동위원회만 믿으면 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노동자들이 진정한 사회적 힘을 발휘하지 않으면, 선거자금을 대주고 ‘지역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주들을 정부 관료가 굳이 내칠 이유를 못 느낀다는 것입니다. 노동자들이 작업장에서 사회적 힘을 갖지 못하면, 지역 운동을 통해 정부의 개입을 이끌어 낼 여지도 별로 크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 곳에서 진행된 생활임금 운동을 살펴보면, 작업장에서의 행동이 수반하지 않은 경우에는 운동이 성공을 거두지 못했거나, 아주 제한적인 법률이 제정됐거나, 제정되더라도 그냥 무시됐습니다.
Q 더 좌파적인 사람들은 노동운동이 국가에 의존하는 것 자체를 문제로 보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태프트-하틀리법[미국의 노사관계법]과 전국노동관계위원회로는 어떠한 실질적 성과도 거둘 수 없다고 봅니다. 그런 사람들은 세계산업노동자동맹에 초점을 맞춰 법의 테두리 밖에서의 행동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당신의 견해는 그 둘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것 같은데 그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 주시겠습니까? “[법 제도가] 우리 편에게 이렇게나 불리하다니. 에라 모르겠다, 다 집어치워” 하고 말하는 것은 일견 이해할 만한 것이잖아요.
A 대부분의 경우 그런 반응은 건강한 편에 속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대로 된 전략인 것은 아니지요. 노동자들이 각자의 작업장에서 자본에 맞서 싸울 힘을 가진다 하더라도, 작업장을 뛰어넘는 행동을 조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남습니다.
과거 1980년대에 세계산업노동자동맹은 탄탄한 조직을 갖춘 스페인 부두 노동자들의 사례를 모범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이 조직들은 신디컬리스트적 경향 때문에 임단협을 전국 규모로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사용자들이 더 공세적으로 나오면서 항만 시설을 한 부두에서 다른 부두로 옮기겠다고 하자 문제가 됐습니다. 전투적 노동자들이 부두별로 서로 싸우게 됐고 결국 더 낮은 임금과 끔찍한 작업 규칙을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우리가 제기해야 할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강력한 작업장 조직이 다른 작업장 조직과 행동을 조율할 때 어떻게 해야 관료적이지 않고 민주적으로 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 과거 노동자들이 쟁취한 합법적 권리들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노동운동에 기여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책으로 조 번즈가 쓴 《파업 되살리기》가 있습니다. 그는 전국노동관계위원회라는 제도에 대해 아주 균형 잡힌 관점을 제시했고, 그 제도가 어째서 1950~60년대 호황기에는 제대로 작동한 것처럼 보였는지 분석했습니다. 그러나 호황이 끝나고 사용자들이 더 공세적으로 나오자 그 제도는 노조가 반격에 나서는 것을 가로막는 구실을 하게 됐습니다.
번즈는 이제 우리가 전국노동관계위원회를 무시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노동조합이 더 체계적으로 법을 위반할 태세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파업 기간을 늘리고, 다른 작업장으로 파업을 확산시키고, 관할 영역을 뛰어넘는 것 등 말입니다.
그 책에서 번즈는 소수 노조로 행동을 건설한 사례들을 소개합니다. 소수 노조는 마치 노동조합처럼 노동자들이 느끼는 불만을 중심으로 단체를 만들고 비슷한 업종의 다른 노동자 단체와 관계를 맺게 해 줍니다. 하지만 사용자한테서 공식적 노조 지위를 얻어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려면 아래로부터의 진정한 힘과 압력을 유지하는 것과 전국노동관계위원회가 주관하는 선거에 참여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해집니다. 노동운동 내 좌파는 이 문제에 좀더 신경을 써야 하는데, 그동안은 두 극단(“전국노동관계위원회 선거에서 이길 전략만 잘 짜면 된다” 대對 “다 집어치워. 우리는 공식 노조 지위에 연연하지 않을 거야”)만 있었습니다.
Q 프레카리아트 개념에 여전히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해 주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당신은 프레카리아트 개념이 현실을 설명하기보다는 오히려 은폐하는 효과를 내고, 노동계급 전체가 불안정을 느끼고, 그래서 그런 정서가 거의 보편적이 됐다는 것을 보여 주는 매우 설득력 있는 근거들을 제시하셨습니다. 하지만 서비스업이나 소매업에서 조직하기를 중시하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A 큰 틀로 볼 때, ‘우리는 모두 불안정하다’는 명제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각자 자신이 있는 곳에서 조직을 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 누구도 “거봐라, 내가 뭐랬어”라면서 어차피 안 될 일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다음과 같이 물어야 합니다. “이 작업장에서 우리는 어떤 힘을 가질 수 있을까? 우리의 잠재력과 한계를 갖고서 어떻게 그 힘을 키울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은 월마트 등 대형 마트의 노동자들, 노조가 없는 병원의 노동자들, 가정 간병인 등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를 둘러싼 논의의 일부입니다. 노조를 건설하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겪어 보면서 계속 대화를 나눠야 할 것입니다.
누구든 자기 작업장에서 노조를 건설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절대 그것이 헛수고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그런 보수적 태도 때문에 극좌파들은 그동안 스스로 위신을 떨어뜨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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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국의 좌파적 저널 〈자코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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