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츠키의 전환 강령: 그 활용과 오용 *
한때의 혁명가들이 트로츠키의 전환 강령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중간주의적·개혁주의적 실천을 혁명적인 양 포장하는 일이 있었다. 이는 오늘날 한국에서도 볼 수 있다. ‘전환 강령’은 국내에서는 ‘이행기 강령’이라고도 번역된다.
이 글은 오스트레일리아의 극좌파 조직이었던 Democratic Socialist Party (이하 DSP)가 중간주의 단체 Socialist Alliance (이하 SA)를 주도적으로 결성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우경화 논쟁을 다룬 것이다.
당시 DSP 내 다수파였고 오늘날 SA 지도부의 일원이 된 사람들은 혁명가들이 대중의 의식에 다가가려면 그런 방향 전환이 필수적이고 트로츠키도 비슷한 취지로 전환 강령을 제기했으니 만큼 자신들의 행보는 우경화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글의 필자를 비롯한 DSP 소수파는 그런 식의 설명이 트로츠키의 전환 강령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것이고 SA로의 전환은 청산주의라고 반박했다.
나중에 DSP 소수파는 제명됐고, 제명된 이들은 그 뒤 오스트레일리아의 또 다른 극좌파 단체이자 미국 ISO에 친화적인 Socialist Alternative (이하 소셜리스트얼터너티브)와 조직을 통합했다.
이 논문은 소셜리스트얼터너티브의 이론지 《맑시스트 레프트 리뷰》 2014년 여름호에 실렸다. [ ] 안의 내용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추가한 것이다.
1 에 대한 심각한 오해와 이 오해가 오늘날 혁명적 활동에 끼치는 영향을 다룰 것이다. 2005~08년에 벌어진 DSP 내부 논쟁은 과거지사가 됐지만, 전환적 요구를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 사회주의자들의 실천과 여전히 관련이 있다.
이 글은 세기의 전환기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큰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이었던 ‘민주적 사회주의당’(Democratic Socialist Party; 이하 DSP)이 지난 10년 동안에 사라진 이유를 가능한 한 풍부하게 규명하려는 노력에서 비롯했다. 그 정당은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데도 사회주의동맹(Socialist Alliance; 이하 SA)이라는 “광범한 좌파 정당”을 건설하려는 잘못된 시도를 고집하는 바람에 사라지게 됐는데, 이 글에서 그것 자체를 다루지는 않겠다. 이 글은 DSP가 사라지는 문제에서는 부차적이었지만 여전히 중요한 문제, 즉 이른바 ‘전환적 요구’(transitional demands) 개념2 그리고 같은 해 9월에 열린 전국위원회에서는 이렇게 주장했다. “SA를 ‘사회민주주의적[개혁주의적] 잡탕’이라고 폄하해선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SA가 내세운 전환적 선거공약의 진가를 파악하고 그것을 노동자의 정치 학교로 여겨야 한다.” 3
DSP 내부 논쟁에서 소수파의 주요 주장 중 하나는 SA를 만들기로 한 것 때문에 다수파가 DSP의 강령을 개혁주의 방향으로 수정했다는 것이다. 이 제기에 다수파는 전환적 요구들, 즉 전환 강령으로 널리 알려진 글에서 레온 트로츠키가 주장한 것과 비슷한 종류의 요구들을 통해 기존 DSP 강령의 핵심을 반영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다수파는 2007년 4월 전국위원회 회의의 당 건설 논쟁을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이번 전국위원회에서 소수파는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전환적 방식으로 제기하는 것을 좌파 개혁주의라고 일축했다.”이를 보면 요구나 강령이 전환적인지 아닌지 구별하는 방식이 [다수파와 소수파 사이에]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 분명하다. 이런 차이를 알려면 “전환적 요구들”이 제기된 역사적 맥락을 살피는 것이 도움이 된다. 도대체 왜 그런 게 필요한 것일까? 어차피 노동자 계급과 그 동맹 세력들의 이익을 위해 싸울 거라면, 노동자들의 처우에 관한 쟁점이 떠오르거나 노동자들이 그런 쟁점을 제기할 때 그저 닥치는 대로 싸우고 그러다가 자본가와 그들의 정부를 패퇴시키면 그만인 거 아닐까? 그저 당면한 현실에서 시작해서 자본가들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싸우면 그만인 거 아닐까?
충분히 짐작했겠지만, 그럴 수 없는 이유는 개혁주의 때문이다. 개혁주의는 우리 계급의 이익을 위한 일련의 투쟁들을 작위적으로 두 부류로 나눈다. 개혁주의는 체제 내에 머무는 투쟁은 “정당한” 것이라 간주하지만 자본주의를 전복하려는 투쟁은 “정당하지 않다”거나, 먼 미래에는 어떻게 될진 몰라도 중단기적으로는 “비현실적”인 것으로 본다. 역사적으로 개혁주의자들은 자본주의 하에서 성취할 수 있는 개혁, 즉 “최소 강령”에 집중하고,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최대 강령”은 기약 없는 미래의 과제로 떠넘겼다.
4 이와 비슷하게, 레닌이 “러시아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 사이에 만리장성은 없다”고 말했을 때, 5 그는 최소강령과 최대강령의 분리는 순전히 이데올로기적인 것이지 사회적 필요에 따른 것이 아니라고 지적하는 것이었다. 트로츠키의 《전환 강령》도 개혁과 혁명 사이의 “간극”에 다리를 놓으려는 시도로 제기된 것임은 자명하다. 트로츠키와 레닌이 이 문제에 관해 말한 것을 살펴보고, 그런 다음 오늘날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이것을 어떻게 적용할지를 검토해 보자.
마르크스주의적 혁명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최소강령과 최대강령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으로 통합하는 것이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소책자 《개혁이냐 혁명이냐》에서 이렇게 썼다. “사회민주주의[당시에는 ‘혁명적 사회주의’라는 뜻으로 쓰였다]에서는 사회 개혁과 혁명 사이에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개혁을 위한 투쟁은 그 수단이고, 사회혁명은 그 목적이다.”그러려면 트로츠키가 말하지 않은 것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유의미하다. 오늘날 대체로 《전환 강령》으로 알려진 문서는 트로츠키가 1938년에 제4인터내셔널을 창립하기 위해 쓴 것이다. 그러나 그 문서의 제목은 트로츠키가 붙인 것이 아니다. 훗날 트로츠키의 지지자들이 붙인 것이다. 트로츠키가 붙인 제목은 《자본주의의 단말마적 고통과 제4인터내셔널의 임무》였다. 트로츠키는 자본주의의 단말마적 고통이 파시즘, 세계적 경제 붕괴, 소련과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코민테른)의 퇴보를 초래했고, 이런 위기 때문에 미래 세대의 앞날이 걸린 새로운 세계 전쟁이 곧 발발할 것이라고 봤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계급은 늦어도 몇 년 안에 권력을 쟁취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봤다.
6 [트로츠키의 잘못된 예측에 대해서는 토니 클리프의 《트로츠키 사후의 트로츠키주의 – 국제사회주의 경향의 기원》(책갈피) 1장 ‘문제 인식’을 보시오.]
그러므로 그 문서는 매우 즉각적이고도 단기적인 강령이었다. 트로츠키는 제4인터내셔널에 속해 있던 소규모 정당들이 극도의 위기 상황에서 급속히 성장하여 프롤레타리아의 지도력을 획득하기를 바랐다. 그 문서는 1970년대나 1990년대 혹은 2010년대의 혁명가들을 위해 쓰인 것이 아니었다. 트로츠키는 당시의 위기가 빠르게 발전해 전 세계 사회주의 혁명이 시작되거나 아니면 세계 노동계급의 역사적 패배(회복하는 데 수십 년은 걸릴)를 낳을 것이라고 예측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트로츠키는 소련이 당시의 모습으로는 다가오는 세계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는 스탈린주의 지배층이 제국주의에 의해 전복되거나 아니면 노동자들에 의해 전복될 것이라고 보았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 혁명가들이 전환 강령으로부터 배울 게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그 문서가 쓰인 상황을 유념해야 그 문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 문서는 미래로 부치는 편지가 아니었고, 시대를 초월한 강령으로 삼으라고 쓴 것도 아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트로츠키는 마르크스주의라는 과학적 방법을 따랐을 뿐, [DSP 다수파가 말하는 것과 달리] 그 문서를 통해 새롭고 보편적인 모종의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는 게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자본주의의 단말마적 고통과 제4인터내셔널의 임무》의 첫 문장에서 트로츠키가 밝혔듯이, 당시 세계 프롤레타리아가 직면한 위기는 새로운 강령과 방법론을 개발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지도력의 위기”였다. 마르크스주의 강령을 간직한 사람들이 그 강령을 배신한 사람들에게서 노동계급에 대한 지도력을 탈환해 오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 강령은 한 사람의 새로운 발명이 아니다. 이 강령은 볼셰비키의 오랜 경험으로부터 나왔다. 나는 이 강령이 한 사람의 발명품이 아니라, 혁명가들의 오랜 집단적 경험에서 나왔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 강령은 오래된 원칙을 지금의 상황에 적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트로츠키는 제4인터내셔널의 주된 임무가 노동자들에게 권력 장악 필요성을 설득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전환적 요구들은 노동자들에게 그 필요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설득하려고 고안된 것이었다. 그 요구들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었다. 하나는 그 요구들이 노동계급의 현재 의식과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전환적 요구들이 논리적으로 노동자들을 노동자 정부 건설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1930년대의 프랑스나 스페인에서조차 다수 노동자들의 의식은 노동자 권력의 필요성을 이해하는 것과는 상당한 간극이 있었다. 그래서 트로츠키는 전환적 요구들을 연결된 요구들의 “체계”라고 말했다. 요구 A를 성취하면(또는 지배계급이 양보하기를 거부하면) 노동자들은 요구 B가 필수적임을 납득한다. 요구 B에 대한 유사한 경험이 노동자들에게 요구 C의 필요성을 확신시킨다. 그렇게 해서 결국 권력 장악이 필요하다는 것까지 나아간다는 것이다.
일상적 투쟁 과정에 있는 대중이 현재의 요구와 혁명적 사회주의 강령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를 발견하도록 도와야 한다. 이런 다리를 놓으려면 현재 조건과 광범한 노동계급의 현재 의식에서 출발하면서도 프롤레타리아의 권력 장악이라는 하나의 최종 결론으로 확고하게 이끄는 전환적 요구들의 체계가 필요하다.
트로츠키는 이 점을 훨씬 더 간단명료하게도 표현했다. “소비에트라는 슬로건은 … 전환적 요구들의 대미를 장식한다.”
전환적 요구가 그처럼 정치적 연쇄고리의 일부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어떤 개별 요구도 그 자체로는 전환적 성격을 띨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어느 요구든, 노동자들의 현재 의식에서 출발해서 혁명 지지로까지 중단 없이 이르게 해 주는 연쇄고리에 꼭 맞아 들어갈 때에만 비로소 전환적이다. Y년도에 A라는 나라에서 그런 조건을 충족시키는 요구가 Z년도에 B라는 나라에서는 그럴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SA 지도자이자 과거 DSP와 그 전신 조직들의 지도자인 데이브 홈즈가 쓰고 2013년 1월 〈링크스〉 웹사이트[여러 좌파 조직들의 글을 모은, 일종의 오스트레일리아 좌파 포털 사이트]에 게재된 글은 전환적 요구를 전혀 다르게 이해한다. SA 전국위원회에서 연설한 내용을 담은 그 글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SA는 은행과 광산/자원 부문을 지역 사회의 통제 하에 국유화하자는 요구를 제기했고 이 요구를 우리의 총선 캠페인의 주요한 특징으로 삼고자 한다. 자본주의 경제의 특정 부문들을 국유화하자는 요구는 분명 전환적 요구다. 트로츠키의 《전환 강령》에는 민간 은행 장악에 관한 절과 함께 국유화에 관한 절이 포함돼 있다.
상황과는 무관하게 국유화 요구를 그 자체로서 전환적인 요구인 것처럼 보는 것이다. 국유화 요구가 과연 오늘날 오스트레일리아의 광범한 노동계급의 의식과 관련 있는가? 정말로 그리 생각한다면, 자명한 것이라고 전제하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입증해 보여야 한다. 그 요구는 과연, 노동자들이 자신의 수중에 권력을 장악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하는 일련의 체계를 이루는가? 분명 그러한 체계를 가공해 내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SA는 자신들의 국유화 요구를 그 이상의 요구나 노동자 정부의 필요성과 연결시키지는 않는다. 이 점은 뒤에서 더 논의하겠다.
《전환 강령》에서 특정 부문의 국유화 문제를 다룬 절을 더 자세히 검토하면, 트로츠키가 그러한 요구들이 자체로 전환적 성격을 띠는 것은 아니라고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트로츠키는 국유화 요구들도 얼마든지 “혼란스러운 개혁주의”적 요구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트로츠키는 그 다음 절에서 “민간 은행을 몰수하고 전체 신용체계를 국가의 수중에 집중시킬 것”을 호소하는데, 소액 예금자들을 이롭게 하고, 농민과 소상공인들에게 값싼 신용을 제공하고, 노동자들의 이익에 복무하는 경제 관리 메커니즘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경고로 그 절을 끝마친다. “이러한 결과들은 노동자들이 착취자들에게서 권력을 완전히 빼앗아 왔을 때에만 일어날 수 있다.”우리는 전쟁 산업, 철도, 원자재 같은 가장 중요한 부문 등을 독점하고 있는 기업들을 몰수하자고 요구한다. 우리의 요구들과, 혼란스러운 개혁주의적 국유화 슬로건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1) 우리는 보상 없이 무상 국유화를 주장한다. (2) 국유화에 대해 사탕발림하면서 실제로는 자본의 대리인으로 행동하는 인민전선의 선동가들을 경계하라고 우리는 대중에게 경고한다. (3) 우리는 대중에게 오직 그들 자신의 혁명적 힘에 의지하라고 호소한다. (4) 우리는 몰수 문제를 노동자와 농민의 권력 장악 문제와 연결시킨다.
국유화가 노동자 정부나 노동자·농민 정부라는 슬로건과 연결돼야 한다고 트로츠키가 주장한 것은 레닌 생전의 코민테른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코민테른 제3차 대회가 채택한 ‘전술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결의문은 이렇게 적고 있다.
현재 쇠퇴기에 있는 자본주의가 노동자들에게 존엄한 생존 조건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한데도, 모든 곳에서 사회민주주의자들과 개혁주의자들은 그들 강령의 가장 온건한 요구들조차 쟁취할 의지나 능력이 없다는 점을 나날이 보여 주고 있다. 중간주의 정당들이 가장 중요한 산업 부문의 사회화나 국유화를 요구하는 것도 기만이기는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그것은 부르주아지를 밟고 승리해야 한다는 요구와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간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이 당면한 목표를 위한 실질적이고 중요한 투쟁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려고 산업을 하나씩 점진적으로 장악한 뒤 경제를 “체계적으로” 건설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한다.
오늘날 오스트레일리아의 정치 상황은 개혁주의자들이 유상 국유화를 주장하고 있거나, 거짓 선동가들이 마음에도 없는 요구를 말로만 떠벌리는 것에 혁명가들이 맞서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트로츠키가 국유화 요구를 놓고 그것이 전환적 요구인지 개혁주의적 요구인지 구별하면서 제시한 셋째와 넷째 차이는 더 일반적이고 오늘날에도 적용될 수 있다.
요구(demands)와 슬로건(slogans)
전환적 요구라는 개념을 둘러싼 흔한 오해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내 알기로, 이 점은 RSP와 그 전신 조직들의 고참 지도자였고 지금은 작고한 더그 로리머가 최초로 제기한 것이다. 2009년 3월 RSP 전국위원회 회의에서 로리머는 ‘슬로건’과 ‘요구’는 같은 것이 아니며, 이 둘을 혼동할 경우 사회주의자들이 잘못된 정치 실천으로 빠져드는 상황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요구’란 당신이 원하는 어떤 일을 “다른 누군가에게 하라고 강하게 제기하는 것”이다. 예컨대, 임금을 인상하라거나, 어떤 사람을 감옥에서 석방하라거나,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라거나, 노동악법을 철폐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구는 관련 쟁점에 대한 직접적 통제권이 있는 사람을 상대로 제기하는 것이다. 정치적 맥락에서 볼 때, 그 대상은 보통 자본가나 정부·의회·경찰 같은 자본가 기구이다.
다른 한편, “슬로건은 하나의 사상을 짧고 기억하기 쉽도록 요약한 문구”다. 우리가 논의하는 글의 맥락에서 볼 때, 대개 노동자들이나 노동자 운동이 특정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상을 표현한 것이 된다 — 파업 하기, 시위 조직하기, 특정 정당에 투표하기, 어떤 기업이나 국가 보이코트하기, 부르주아지를 무장해제하기 등. 그래서 슬로건은 적대 계급에게 무엇인가를 하도록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 적대 계급에 대항해 어떤 행동을 취하도록 우리 편에게 촉구하는 것이다.
‘요구’와 ‘슬로건’을 혼동하는 것은 오래된 일이고 때로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앞에서 인용한 코민테른 결의문은 중간주의자들이 “부르주아지를 밟고 승리해야 한다는 요구”를 결여하고 있다고 비판했는데, 이 구절은 “부르주아지를 밟고 승리하도록 노동자를 동원할 슬로건”이라고 쓰는 게 더 명확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코민테른은, 노동자들이 누군가에게 부르주아지를 타도해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21년에 이 결의안을 읽은 사람들이 결의문의 취지를 오해했을 가능성은 낮다.
초기 코민테른 글을 보면 ‘요구’와 ‘슬로건’을 동일시하는 몇 가지 사례가 있다. 이런 사례 때문에 공산당이 실천에서 혼란을 겪지는 않았다고 본다. 하지만 트로츠키는 《자본주의의 단말마적 고통과 제4인터내셔널의 임무》 등에서 훨씬 더 체계적으로 ‘전환적 요구’와 ‘전환적 슬로건’을 동일시했다. 트로츠키가 “’전환적 슬로건’을 … ‘전환적 요구’라고 지칭한 것”은, 그런 요구들을 집행할 정부가 기존 부르주아 정부인지[이 경우 ‘전환적 요구’가 맞다] 장차 들어설 노동자 정부인지[‘전환적 슬로건’]를 얼버무림으로써 좌파 개혁주의와 혁명적 정치를 혼동하게 만들 위험이 있었다.
13 [따라서 ‘자본주의 정부에게 완전고용 보장을 요구하는 것’이 중요한 전환적 요구라는 주장은 틀렸다.]
로리머는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하면서 [SA의 신문] 〈그린 레프트 위클리〉에 실린 한 기사를 사례로 인용했다. 이 기사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자본주의 정부에게 완전고용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더 급진적인 발전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적 요구”라고 주장했다. 로리머는 “완전고용을 보장한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필수 조건인 산업예비군을 없앤다는 뜻이므로, 자본주의 정부가 들어줄 수 없다는 점에서 그 요구에 급진적 항의의 성격이 있다는 말은 옳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이 요구를 내걸고 대중 운동을 일으키려면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다수의 노동자들을 상대로 정치적 선전을 하고 그럼으로써 노동자들이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설득하는 게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당신이 그들에게 진실을 말하면, 즉 어떤 자본주의 정부도 완전고용을 보장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 대중 운동이 조직될 리가 없다. … 따라서 대중을 속여야 한다는 결론, 즉 ‘자본주의 정부’가 ‘완전고용’을 보장할 수 있다는 부르주아-개혁주의적 환상을 유포해야 한다는 결론에 봉착하게 된다.”‘완전고용 보장’을, 정부를 상대로 한 요구로 삼느냐 아니면 노동자와 노동자 조직(특히 노동조합)이 채택할 슬로건으로 삼느냐에 따라 상이한 동학이 작동한다는 지적에 주목하자. 후자의 경우에 사회주의자들은, 사용자가 특정한 조치들을 취하도록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게 된다 — 해고를 막기 위해 기업들이 임금 삭감 없이 노동시간을 단축하도록 요구하거나,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해 사용자들이 특정 규모의 견습생 일자리를 만들도록 요구하는 것 등. 현재의 오스트레일리아 계급투쟁 상태에서는 이런 슬로건이 노동조합 운동에서 주되게 채택될 것 같지는 않다. 결국 그 슬로건이 현재로서는 선동적이기보다는 주로 선전적이며, 그런 점에서 전환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그런 슬로건을 중심으로 투쟁에 나설 노동자 계급의 실질적인 운동이 존재하거나 그런 슬로건이 더 널리 통용되도록 할 충분히 거대한 혁명 정당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선전으로서는 유용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내용이 핵심을 집어내기 때문이다. 그 슬로건은 실업의 책임이 사용자들에게 있음을 제기하고, 정부가 나서지 않는 한 도리가 없다는 사용자들의 거짓말을 반박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동자 조직들이 실제로 행동에 나서는 상황이 도래하면 이 슬로건은 다른 전환적 슬로건들과 자연스럽게 맞물릴 것이다. 사용자들이 그런 조처를 취할 수 없다고 답하면, 노동자들은 그 말을 논리적으로 되받아치며 사용자들에게 회계장부를 공개해서 모든 사람들이 실제 상황을 볼 수 있도록 하라거나, 기업 임원들의 봉급 같은 낭비성 지출을 줄이고 투자를 늘려 노동자들을 더 고용하도록 하라거나, 기업에게 그 생산방식이나 심지어 생산물을 교체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런 슬로건을 둘러싸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본가들의 경제 운영“권”에 도전하고 노동자 통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노동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완전고용을 보장하라는 요구를 제기하면 어떻게 될까? 정부가 “우리 나라” 경제 사정으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답변할 때 그 운동은 “그것을 믿을 수 없어! 회계장부를 공개해! 우리에게 수치를 공개해!” 하고 대응할 것인가? 그러면 정부는 통계 더미와 학술적 경제 논문들을 넘겨줄 것이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렇듯, 요구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
어떤 종류의 전환인가?
트로츠키와 코민테른은 ‘전환적’이라는 말을 아주 구체적 의미로 사용했다. 그러나 SA의 지도자들은 그 의미를 흐려서 더 넓게 적용하고 갖가지 이질적인 전환들을 한데 눙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문건에는 전환적 요구, 전환적 슬로건, 전환 강령 외에도 전환적 선거공약, 전환적 조처, 전환적 접근방법, 전환적 조직, 전환적 당 건설 방법, 전환적 방식, 전환적 수단, 심지어 전환적 신문까지 언급하고 있다.
물론 영어 단어 “전환적”(transitional)은 “한 위치/상태/단계 등에서 다른 위치/상태/단계로 이동하는 것”(맥쿼리 영영사전)을 뜻하는 일상적 낱말이다. 이런 의미로 보면 앞의 모든 표현이 틀리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회주의자들이 보통 ‘전환적’이라고 말할 때는 그런 뜻이 아니다. 혁명가들에게 ‘전환적’이라는 말은 어떤 위치/상태/단계에서 다른 위치/상태/단계로 이동하는 문제(예를 들어 ‘회사가 흑자에서 적자로 전환했다’)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집단적 의식이 현재 상태에서 권력 투쟁의 필요성을 깨닫는 상태로 나아가는 것, 자본가 정부에서 노동자 정부로 더 나아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로까지 발전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SA는 ‘전환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그 의미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전환적 행동이나 전환적 슬로건을 그렇지 않은 것들과 동일시하고, 그 결과 전환 강령과 전환적 슬로건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게 만든다.
SA의 지도자들이 자기 조직의 선거공약을 묘사할 때 사용한 “전환적 선거공약”이라는 표현을 살펴보자. 이때의 ‘전환적’이 혁명가들이 말하는 ‘전환적’인가? 소비에트 선거라면 전환적 선거공약이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자본주의 국가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 국가의 정부를 선출하는 부르주아 선거에서는 ‘전환적’이라는 말이 성립하지 않는다. 물론 부르주아 선거에서도 사회주의 정당은 선거공약으로 많은 쟁점들을 선전하며 자신들과 접촉하는 사람들의 의식을 높일 수 있다. 이것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활동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환적’인 것은 아니다.
더욱이 이런 선거 활동은 현실의 모순이 품고 있는 위험들을 충분히 의식하면서 수행돼야 한다. 개별 선거공약이 아무리 급진적이더라도 결국 선거공약은 본질적으로 부르주아 국회에 자기가 세운 후보를 보내자고 유권자들에게 호소하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의식을 현재 수준에서 권력 장악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부르주아 국회에 참여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더욱이, 부르주아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내재적으로 계급 협조주의나 개혁주의 경향을 포함하고 있다. 왜냐하면 선거공약에서 제시한 변화들이 자본주의 선거 체제를 통해 성취될 수 있다는 인상을 심어 주기 때문이다. 나는 선거에 참여하지 말라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선거에 참여할 때에는 사회주의자를 선출하여 특정한 국회 기구에 들여보낸다고 해서 유권자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대중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이 없다면 선거공약은 전환적인 것이 아니라 흔한 최소강령을 모아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 전환적 조직이나 전환적 구성물이라는 개념을 살펴보자. DSP 내부 논쟁에서 데이브 홈즈는 이들 개념과 전환 강령을 여러 차례 동일시했다. “우리가 전환적 강령을 가지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DSP가 추진하는] SA도 전환적 구성물이다. SA는 혁명 정당으로 가는 가교이며, 혁명정당의 영향력과 강령을 구현해 줄 구조물이자 수단이며, 새로운 대중적 사회주의 노동자 정당을 위한 종잣돈이다.”
가교, 구조물, 수단, 종잣돈 등 각종 은유는 이 주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징후적으로 보여 주긴 하지만 핵심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전환적”이라는 말밖에는 공통점이 전혀 없는 서로 다른 두 개를 동일시하는 것이다. 어떻게 한 조직이나 정당이 강령과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거나 기능할 수 있는가? 이미 설명했듯이 전환 강령은 투쟁 과정에서 노동자 계급이 자신의 정부를 세울 필요를 깨달을 때까지 그 의식을 점진적으로 높이기 위해 고안된 일련의 요구들이다. [반면에] 홈즈가 설명한 “전환적 구성물”은 작은 혁명정당이 더 큰 혁명정당으로 성장하기 위한 단기적인 전술로 그려졌다. 전환 강령을 가진 정당이 그런 전술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고, 어떤 정당이 전환 강령 없이도 이런 전술을 채택할 수도 있다. 이 경우에 있어서 강령과 전술은 어떤 직접적 연계가 없는데도 그렇다고 믿는 것은 정치적으로 혼란을 야기한다.
15 DSP의 정치를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1991년에 DSP가 당 기관지 〈그린 레프트 위클리〉를 발간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 전까지의] DSP 기관지 〈직접행동〉이 충분히 전환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이 변화는 경제적 현실 때문에 DSP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궁여지책이었다. 당시의 정치 상황에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주간신문을 유지하기에는 잠재적 독자가 매우 적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신문 〈그린 레프트 위클리〉는 당장 혁명 정당의 잠재적 청중은 되지만 좌파나 환경주의자를 자임하는 더 넓은 대상을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새 신문의 일부만이 기존 DSP 기관지의 구실을 수행했다.
‘전환적’이라는 낱말의 오용 사례를 한 가지 더 짤막하게 검토해 보자. 2006년 10월 홈즈는 DSP 당원을 대상으로 “당 건설의 전환적 방법”에 관한 글을 썼다. 이 글에서 그는 [SA의 기관지] 〈그린 레프트 위클리〉가 “전환적”이라고 주장했는데, 왜냐하면 이 신문이 “DSP의 당 기관지보다 더 넓은 계층에게”급진화하는 사람들이 현재의 생활조건에 반대할 뿐 아니라 레닌주의 정당에 가입하고 당 건설 필요성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고자 한다는 의미에서 〈직접행동〉과 〈그린 레프트 위클리〉는 둘 다 “전환적”이다. 하지만 〈그린 레프트 위클리〉는 더 적은 내용만이 독자들을 혁명 정당으로 획득하는 것을 지향하기 때문에 분명 덜 전환적이다. 홈즈는 〈그린 레프트 위클리〉가 DSP와의 동일성이 덜하기 때문에 더 전환적이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이런 주장은 자신의 정치 중 일부를 숨기는 것(적어도 지금으로서는)이 더 전환적이라는 말로 이어진다. 이것은 레닌과 트로츠키가 주장한 바와는 매우 거리가 멀다.
‘전환적 방법’
홈즈와 SA의 다른 지도자들은 이런 다양한 ‘전환적’ 개념과 목적들을 한데 묶어 자칭 “전환적 방법”이라는 말로 요약한다. 데이브 홈즈가 [2003년] 1월에 열린 SA 협의회에서 한 연설의 제목도 ‘전환적 방법을 방어하며’이다. 이 연설은 2012년 모어랜드[수도 멜버른 근처의 베드타운] 시의회 선거에서 SA가 했던 캠페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트로츠키에게 전환적 강령이란 노동자 계급 의식이 혁명의 필요성을 받아들이도록 이끄는 전환적 요구들의 체계였다는 점을 상기하자. 하지만 홈즈의 글에서 제시된 ‘전환적 방법’에 따르면, 전환적 강령은 전환적 요구를 단 한 개도 포함하지 않아도 된다. 홈즈는 이렇게 썼다. “우리가 선거 공보물에서 밝힌 선거공약은 즉각적 요구와 민주주의적 요구를 섞어 놓은 것이다.” 즉 선거공약은 어떠한 전환적 요구나 슬로건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몇 문단 뒤에서 그는 이렇게 선언한다. “주어진 상황에서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의 모어랜드 선거공약은 전환적 선거공약이었다. 우리의 공약은 우선순위가 전혀 다른 사회를 제시했고, 누구든 우리가 제안한 것을 진지하게 시행하려고 들면 사회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진실은 홈즈가 그의 글과 함께 첨부한 선거 공보물로 판단해 보건대, SA의 모어랜드 선거 캠페인이 다른 선거 캠페인과 정치적으로 전혀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요구는 대부분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것이 완전히 새로운 사회를 지향한다는 것을 알기 어려웠다. 자전거 도로와 녹지 공간과 공중 화장실 확충, 임대주택에 태양광과 집수탱크 설치, 신규 주택 건설 시 저가 주택 20퍼센트 의무화와 “동네 주민 보고회” 신설 등이 그 요구였다. 물론 이것들은 성취된다면 모어랜드 주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할 즉각적이고도 민주주의적 요구들이지만, 그 이상의 투쟁으로 연결되거나 궁극적으로 노동자 계급 권력을 위한 투쟁으로 이끌어 줄 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사실 시의회 이상의 정부에 대해 선거 공보물이 언급한 것이라고는 더 많은 대중교통을 제공하도록 시의회가 주정부에 “압력”을 넣어야 한다는 것뿐이다.
그런데도 홈즈가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이런 온건하고도 즉각적인 민주주의적 요구들을 “전환적 강령”이라고 부르는 것을 정당화한다. 첫째는 그 요구가 대중적이라는 점이었다. SA의 후보 수 볼튼이 당선자 네 명 중 한 명이었으므로, 이 말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인기가 있으면 기분은 좋지만 인기가 많다고 해서 어떤 요구가 전환적 요구로 되는 것은 아니다. 홈즈가 제시한 둘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SA 선거 캠페인의] 많은 요구들이 온건한 것처럼 보이지만, 신자유주의는 모든 측면에서 100퍼센트 그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개발업자의 탐욕이 아니라 지역 사회의 필요를’, 그리고 ‘이윤보다 인간을’ 같은 우리의 중요한 슬로건들이 이를 요약해 준다. …”
그게 전부였다. 홈즈의 “전환적 방법”에 따르면 전환 강령이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면서 대중적 지지가 있는 즉각적이고도 민주주의적인 요구들을 모은 것이다. 하지만 녹색당 후보자들도 대부분 각종 선거에서 이런 기준을 충족시키는 선거공약을 제시하지 않는가? 시의회 선거에서라면 이런 선거공약을 제시하는 노동당[주류 개혁주의 정당] 좌파 후보도 드물기는 하겠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의 선거를 넘어서 보자면, 〈뉴욕 타임스〉 등에서 신자유주의에 100퍼센트 반대하고 민주주의적이고 즉각적인 요구들을 반영한 경제적 방안들을 정기적으로 제시하는 폴 크루그먼 같은 자유주의 케인스주의자들도 존재한다. 이런 인물들도 모두 “전환적 방법”을 채택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SA와 이들 자유주의·개량주의자들을] 다르다고 봐야 할 근거는 무엇인가?
홈즈가 글에서 제시한 기준만 놓고 본다면, SA의 모어랜드 시의회 선거 캠페인만 ‘전환적’이고 녹색당의 선거 캠페인이나 폴 크루그먼의 글은 전환적이지 않다고 주장할 근거가 없다. 홈즈가 생각하는 구별 기준을 알려면 그 글이 말하지 않는 것을 봐야 한다. 즉, 자신들이 제기하면 전환적이라는 것이다. SA는 사회주의를 건설할 의도를 갖고 있지만 다른 경우는 그렇지 않으니까 구별된다는 것이다.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를 구원해 주는 것은 언제나 사이비 혁명가들이라는 오래된 격언은 제쳐놓더라도 이런 식의 접근은 정말 도움이 안 된다. 왜냐하면 상당수 녹색당원이나 케인스주의자 등도 지금은 사회주의를 말하지 않더라도 혁명 직전의 상황이나 혁명적 상황에서는 사회주의를 원한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 중 일부는 심지어 입발림을 넘어서 진지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어떻게 사회주의에 이를지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그들 가운데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홈즈가 글에서 제시한 방법대로라면, SA는 그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인기를 얻는 것은 전환적이며, 전환적인 것은 우리를 사회주의로 이끈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대꾸할 것이다. “그래 맞아! 우리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또 당연하게도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기를 원해. 그러면 노동당과 동맹을 맺으면 되겠네. 그들은 이제 케인스주의를 도입했고 우리를 인기 있게 만들어 줄 것이거든!” [이렇듯 홈즈의 “전략적 방법”은 완전 엉터리다.]
정세
소셜리스트얼터너티브의 다니엘 로페즈는 홈즈가 SA의 모어랜드 시의회 선거 강령을 “전환 강령이나 전환적 방법”이라고 묘사하는 것은 “공상적이고 대리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로페즈는 이렇게 썼다. “공교롭게도 이 글에서 인용되는 주요한 두 인사 ― 레닌과 트로츠키 ― 는 모두 자신들의 전환적 방법이 현실적이라는 근거로 정세를 꼽았다. 명시적으로 그 둘 모두 혁명적 정세가 아니라면 전환적 방법이 구현될 수 없다고 강하게 암시했다.” 로페즈는 그 사례로 다음과 같이 트로츠키를 인용했다. “혁명정당에게 일상적 활동을 면제해 준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일상적 활동이 혁명을 실제로 준비하는 일과 불가분하게 연결돼 수행되어야 한다는 점 때문에 현 시기는 독특하다.” 그리고 이렇게 레닌도 인용했다. “현 시기가 혁명적인 이유는 노동자 대중의 가장 온건한 요구조차도 자본주의 사회의 존속을 위협하기 때문이고, 그런 요구들을 위한 투쟁이 공산주의를 향한 투쟁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로페즈의 주장은 레닌과 트로츠키의 저작들에 바탕을 두고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정치적 논리에도 부합한다. 전환적 강령이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의 의식을 혁명의 필요성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끌도록 고안된 일련의 요구들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그만큼의 의식 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노동자들의 현재 의식과 소비에트라는 슬로건 사이에 간극이 크지는 않아야 전환적 강령을 제출할 수 있다는 것이 자명하다. 즉, 노동자 계급의 현재 의식 수준은 사다리 맨 꼭대기에 거의 다다랐거나, 의식이 매우 급속하게 성장할 만큼 노동계급 투쟁이 일고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계급의식은 정체하거나 퇴보할 수 있고, 또 여기서는 전진하지만 저기서는 후퇴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다루는 노동계급의 집단적 의식은 분명 조직을 통해 어느 정도 보존되기는 하지만(그 정도는 다양하다), 자본주의는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다면 결국 급진적 계급 의식을 갉아먹는다. 그래서 제아무리 잘 만든 ‘전환적 요구’라 하더라도 효과를 발휘할 수 없게 된다. 계급세력 관계가 뒷받침돼야 전환 강령을 제출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 관계에서 혁명적 세력의 규모도 결정적으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로페즈에 답변하면서 홈스는 처음에는 트로츠키와 레닌을 이런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내, 홈즈는 오늘날 자본주의가 이전의 두 시기[레닌과 트로츠키가 각각 말한 시기]보다 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상황은 1921년이나 1938년과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위기는 여전할 뿐 아니라 실제로는 어쩌면 더 심각하다.” (이 대목에서 홈즈는 이전에 부인하던 것을 인정하는 듯 보인다. 왜냐하면 특정한 정치적 상황에서만 전환 강령이 가능하다고 레닌과 트로츠키가 지적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해야만 논의하는 시기들이 정치적으로 비슷하냐 그렇지 않냐 하는 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본주의가 일반적이고 전체적인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자본주의가 인류 문명과 심지어는 인류의 생존을 절멸시킬 위험이 75년 전이나 90년 전보다도 더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기가 더 심각해졌다고 해서 오늘날 자본주의가 전복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실, 자본주의 위기가 이토록 더 심각해진 것은 자본주의 전복 위협이 1921년이나 1938년만큼 크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용한 구절에서 레닌과 트로츠키가 논의한 것은 자본주의를 대체할 필요성의 크기가 아니라 머지 않은 미래에 노동자 계급을 동원하여 자본주의를 전복할 잠재력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문제였다.
더그 로리머가 슬로건과 요구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이 지점에서 중요하다. “완전고용 보장”은 자본가 정부에 제기하는 요구라는 것이 분명하지만, 요구인지 슬로건인지 명확하지 않은 것들도 있다. 볼셰비키가 “빵, 평화, 토지!”를 제기했을 때 그것은 슬로건인가 아니면 요구인가? 로리머는 자신의 글에서 그것들을 “동원을 위한 선동적 슬로건”이라고 불렀다. 부르주아 임시정부가 그것을 실행할 것이라는 환상을 볼셰비키는 전혀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볼셰비키에게는 분명 슬로건이었다. 하지만 “빵, 평화, 토지!”를 들은 노동자와 농민들은 “그래, 이것들이 필요해”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은 곧바로 누가 이것을 제공해야 하느냐는 의문을 제기하지만 “빵, 평화, 토지!”만 들어서는 답을 얻지 못한다. 적어도 일부 노동자와 농민들은 당연히 임시정부가 그것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임시정부는 그럴 의사가 없었고, 그래서 다음 결론으로 이끈다 — 새로운 정부가 필요하다. 로리머가 지적했듯이, 볼셰비키는 “빵, 평화, 토지!”를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와 결합시켰다. “빵, 평화, 토지!”가 전환적일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와 결합됐기 때문이었다.
17 했기 때문에 이 요구는 혁명으로 길을 터줄 수 있었다.
더욱이 “완전고용 보장”과 달리 “빵, 평화, 토지!”에는 자본주의 정부의 본성에 반하는 그 어떤 내용도 포함돼 있지 않다. 비상시 식량 공급, 전쟁 중단, 심지어 토지개혁조차 부르주아 정부의 계급적 성격을 꼭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빵, 평화, 토지!”는 [슬로건일 뿐 아니라] 요구일 수도 있고, 그 자체로는 당면한 요구이지 전환적 요구는 아니다. 임시정부가 들어줄 수 없는 구체적 상황 덕분에, 그리고 노동자 계급과 농민 대중이 “자신들의 요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고 확신”선전과 선동
초기 코민테른과 1938년의 트로츠키는, 각각 자본주의의 특정 측면들에 대항해 대중 운동이 부상하고 광범하게 급진화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활동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환적 슬로건을 제기하는 것은 이미 투쟁에 나선 청중을 특정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것이었다. 즉, 전환적 슬로건들은 선전용이 아니라 주로 선동을 위한 것이었다. (물론 코민테른과 트로츠키 모두 전환적 슬로건과 함께 체계적 선전도 필요하다고 봤다. 혁명 전야의 상황에서조차 둘 다 필요한데, 상이한 집단과 개개인들이 급진화하는 시기와 속도는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대중 운동이 자본주의의 이런저런 측면들에 도전하지 않고 급진화가 광범하게 벌어지지 않을 때 전환 강령을 만들어 제출하면, 그런 선동에 귀 기울일 청중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제에 봉착한다. 자신이 참여하고 있지도 않은 투쟁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기하는 슬로건에 관심을 많이 둘 리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시기에 사회주의적 미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사상은 주로 선전에 어울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그에 맞게 정치 활동을 조정하는 것은 수동적이거나 종파적인 게 아니다. 물론, 이런 진단이 옳고 아주 작은 변화라도 예의주시하고 또 향후 주요한 급진화를 재촉할 작은 톱니바퀴가 되려고 언제나 기회를 노려야 한다는 것이 전제돼야 하지만 말이다.
게다가, 〈링크스〉 웹사이트에서 벌어진 토론에서 홈즈와 크리스 슬리(DSP와 SA의 오래된 당원으로 홈즈를 방어하는 입장)는 SA가 국유화를 ‘전환적 요구’로 제기하는 것은 선동이 아니라 선전을 위한 것이었다고 결국 인정해야 했다. 그래서 슬리는 “단기적으로 국유화 요구는 선전감이다. … 하지만 국유화 요구가 좋은 반응을 얻으면 향후 단계에서는 대중 행동을 위한 것이 될 수 있다”고 썼다. 여기서 그가 미래의 대중 행동에 희망을 건다는 사실은, 현재 전환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어떠한 동력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드러낼 뿐이다. 마찬가지로 홈즈도 “SA는 광산 등의 자원 부문과 은행을 국유화하자고 제기하려 한다. 우리는 이 쟁점에 관한 선전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광산, 은행, 기타 산업을 국유화하자고 선전하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선전은 정확한 내용을 담아야지, 그것이 선동이 될 수 있다는 착각, 다시 말해 이미 행동하고 있는 대중에게 행동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라는 착각에 기대서는 안 된다. 선전은 세부적인 내용과 해설을 담아야 하고 부르주아 국가를 대체할 혁명의 필요성도 다뤄야 한다. 이것이 결여되면, 선전을 듣는 사람들은 선전이 말하지 않는 부분을 부르주아 사상으로 메울 것이다.
홈즈의 글에 대한 논평에서 내가 이런 점을 경고했음에도, 홈즈는 이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답변했다.
우리는 〈그린 레프트 위클리〉의 기사들을 통해 그리고 SA의 강령을 통해 국유화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더 많이 수행될 필요는 있다. 우리의 후보들도 국유화 쟁점을 부각시킬 것이다.
우리가 《사회주의 오스트레일리아를 향하여》라는 공약집에서 경제의 주요한 요소들을 사회적으로 소유하고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제기한다는 사실도 지적해야겠다.
18 는 국가 권력의 문제에서는 모호할 뿐이고 사회적 소유와 경제의 통제로 나아가는 과정에 대한 언급은 없다. 자본주의 의회에서 “대중적 지지를 받는” 정부를 선출한 다음 “진보적인 조처를 방어”하기 위한 대중 동원을 말하고 있지만 그런 식으로는 사회적 소유와 경제 통제에 이를 수 없다.
그러나 이 말은 그다지 설득적이지 않다. 물론 SA의 선전물은 국유화가 왜 필요한지는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를 “사회가 소유하고 통제”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는 설명하지 않고 있다. ‘사회주의’라는 단어는 등장하지만, 자본주의 국가를 프롤레타리아 국가로 대체할 필요성은 물론이고 노동자 정부라는 전환적 구성물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 전혀 없다. 아무리 좋게 봐도 《사회주의 오스트레일리아를 향하여》19 에서도 정부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데 총선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행할 수 있거나 행해야 하는 바람직한 정책들에 대한 언급은 많이 있지만 이런 정책을 행하는 데 어떤 종류의 정부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다. 이 신문은 전환적이기는커녕 독자들에게 좋은 국회의원을 선출하라는 것 이상은 말하고 있지 않다.
2013년 총선에서 SA가 내놓은 선전물에도 노동자 정부가 필요하다는 언급은 그 어떤 형태로든 없다. SA가 선거 때 발간한 신문《공산당 선언》
홈즈는 자신의 “전환적 방법”이 《공산당 선언》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나는 링크스에서 홈즈의 글을 비판하며 이 점을 초기부터 반박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공산당 선언》에는 혁명적 노동자 정부가 해야 할 10가지 요구를 담고 있다. 실행된다면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거대한 진전을 이룬다는 점에서 이것들은 바로 전환 강령이다.”
20 은 요구도 아니고 전환 강령의 한 부분도 아니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그 10가지 사항을 현존 정부나 자본가들에게 실행하라고 강요하는 조처로서 제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요구가 아니다. 또, 현존 정부를 전복하도록 노동자들을 동원하고자 하는 의도로 제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전환 강령도 아니다. 오히려 미래의 노동자 정부, 즉 자본가 정부가 전복되고 난 뒤에 생겨날 노동자 정부가 수행해야 할 조처라는 점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10가지 사항나의 이런 비판에 홈즈는 전환 강령(노동자 계급이 권력을 장악하도록 하기 위한 일련의 슬로건)과 전환적 조처(노동자들이 권력을 장악한 뒤에 행할 필요가 있는 행동들) 사이의 차이를 고집스럽게 무시했다. 홈즈는 이 둘이 같은 것이라는 말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앨런은 내가 이것들을 “요구들”이라고 말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으며, 내가 “이것들이 전환 강령을 구성한다”고 말했을 때 “더 큰 잘못”을 했다고 말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같은 오류를 범한 사람은 나 말고도 또 있다. 예를 들어 오늘날 RSP에서 앨런의 동료인 더그 로리머는 레지스턴스 출판사가 발간한 《전환 강령》의 서문에서 이 10가지 사항들을 “전환적 조처들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제시한 것”이라고 썼다.
나는 자본주의 정부 전복을 위한 강령[전환 강령]과, 혁명 정부가 수행할 조처들[전환적 조처]는 전혀 다른 것임을 이미 지적했다. 사실상 홈즈의 대답은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전환적이다” 하고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0가지 사항을 노동자 정부가 자본주의적 소유권을 “전제적 방식으로 침해하는 것”의 일부로 제기했고, 자본가 국가를 노동자 국가로 전환하는 것의 일부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것들을, 자본가 정부를 이미 대체한 노동자 정부나 노동자·농민 정부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나아가기 위한 “전환적 조처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완전히 정확하다. 하지만 “전환적”이라는 단어를 쓴다고 해서 혁명적 슬로건[자본주의 정부 타도를 목표로 하는]이, 혁명 정부가 수행할 조처들이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것은 마치 사회주의라는 말이 공통으로 들어 있으니 “사회주의 정당”과 “사회주의 정부”는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홈즈는 심지어 ‘전환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하찮게 만들기까지 한다. “새롭게 수립된 노동자 정부에게조차 자본주의 제거는 하나의 과정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 조처들은 전환적이다. 기술적·물질적 조건들이 충족되고 대중의 정치적 지지가 공고해지면 그 과정은 앞으로 나아간다.”
여기서 ‘전환적’이라는 것은 “한 과정의 일부”라는 의미로 축소된다. 그런데, 이 세계에서 과정의 일부가 아닌 것이 어디 있는가?
두 가지 결과
전환적이라는 것에 대한 거듭되고 지속적인 여러 혼란은 적어도 두 가지 결과를 낳았다.
23 홈즈는, 마치 1920년대 초반에 코민테른이 “광범한 전환적 구성물 건설”을 주장했다는 듯 읽히도록 교묘하게 이 단락을 썼다. 당연히 코민테른은 그런 주장을 한 적이 없다.
첫째는 레닌, 트로츠키, 《전환 강령》과 동일시함으로써 SA 건설 전술이 혁명적 전략인 것 같은 냄새를 풍기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SA 건설을 둘러싼 DSP 내부 토론에서 홈즈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적어도 두 번이나 했다. “유럽에서 제1차세계대전 이후의 거대한 고조기가 진정된 1920년대 초반에 코민테른은 노동자 계급 내 사회민주주의 등의 경향과 공동전선을 펼치자는 노선을 발표했다. 대중적 혁명정당으로 가는 또 다른 전술에는 좌파들간의 합종연횡, 입당 전술 그리고 광범한 전환적 구성물 건설 등이 포함된다.”2006년 10월에 열린 DSP의 전국위원회에서 소수파에 속한 한 회원은 DSP 다수파의 “전환적”이라는 단어 사용에 대해 예언적으로 묘사했다.
처음에 다수파는 [SA로 – 앨런 마이어스] 전환하면 새 정당에서 핵심 간부층을 비교적 더 빨리 키울 수 있을 것이라며 SA 건설 계획을 옹호했다. 그러나 4년이 지났지만 그런 새 정당은 없고, DSP는 모든 면에서 축소되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명분이 필요해지자 레닌주의 정당 건설에 대한 이른바 “전환적 접근”을 만들어냈다.
이런 노선이 DSP에게 재앙이라는 증거는 매우 많다. … 그러면 이런 “전환적 형태”의 실제 유용성은 무엇인가? 바로 DSP가 SA로 바뀌도록 해 준다는 것이다.
슬로건, 조처 그리고 조직을 모두 뭉뚱그린 둘째 결과는, 이른바 “전환적 방법”을 사용하면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이 개혁주의로 타락하지 않을 수 있다는 환상을 조장한 것이다. 홈즈가 일련의 요구들을, 그것들이 제기되는 상황과 무관하게 그 자체적으로 전환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앞서 보였다. 홈즈는 자신의 생각을 강변하려고, 전체를 아우르는 모종의 “전환적 방법”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정치적으로 언제 어디서나 적용될 수 있다고 (적어도 암묵적으로) 주장한다.
전환적 슬로건 또는 전환 강령에 대한 초기 코민테른과 트로츠키의 생각은 노동자 계급이 자본주의 국가를 전복하도록 이끈다는 목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트로츠키는 전환 강령이 수단과 목표의 결합이고 그 둘은 분리될 수 없다고 분명하게 설명했다. 노동자 계급의 현재 의식에 개입하는 수단인 동시에, 노동계급을 권력 장악을 위한 투쟁으로 이끌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SA의 지도자들은 《공산당 선언》과 SA의 모어랜드 시의회 선거 캠페인이 모두 “전환적 방법”의 본보기라고 주장하면서 둘을 동일시하는데 이런 주장은 작위적으로 수단과 목적을 분리해서 오로지 수단에만 천착하고 목적은 영영 오지 않을 미래로 미루는 것이다. 요구들에 담긴 정치적 내용보다는 “전환적 방법” 자체를 더 중시하는 이런 자세는, 노동자 계급의 현재 의식과 연관 맺는 것만 강조한 채, 이런 요구들이 제 알아서 미래에 더 나은 기회를 던져 줄 테니까 막연하게 기다리자는 것이다. 정작 그런 과정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한 현실적인 생각은 전혀 갖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홈즈의 “전환적 수단”은 최소강령과 최대강령을 분리시키는 오래된 행태를 반복하는 것으로 끝난다. 초기 코민테른이나 트로츠키와 결정적 차이는 이제 최대강령이 사실상 완전히 무시된다는 것이다. 홈즈에 따르면, 자전거 도로 건설 따위의 공약이 우리를 사회주의 혁명으로 인도할 “전환적 방법”의 본질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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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DSP에서 소수파에 속해 적극 활동했지만, 2008년에 소수파의 다른 당원들과 함께 추방당했다. 우리는 ‘혁명적 사회주의 정당’(Revolutionary Socialist Party; 이하 RSP)으로 재결집했다. 2012년에 소셜리스트얼터너티브는 우리에게 조직 통합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당장의 혁명적 활동에 영향을 주지 않는 역사적 쟁점 등에 대해서는 지금은 이견이 있더라도 이를 인정하고 차차 토론하자는 데 합의했다. 통합 과정은 2013년 [소셜리스트얼터너티브가 주최한] 맑시즘 대회 때 완료됐다. RSP의 이전 멤버들은 소셜리스트얼터너티브 내에서 별도 형태의 조직이나 토론모임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글은, 달리 언급이 없다면, [RSP 전체가 아니라] 나 개인의 견해를 반영한 것이다.
출처: Allen Myers, ‘Trotsky's transitional program: its uses and abuses’, Marxist Left Review(Summe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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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주] 글 중반부에서 필자는 ‘요구’(demand)와 ‘슬로건’(slogan)이라는 단어를 구분해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코민테른과 트로츠키가 이를 혼용했기 때문에 혼란이 생겨났고 DSP 논쟁에서 다수파가 그런 잘못된 용법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혼란이 더 커졌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전환적 슬로건’(자본주의 국가에 맞서도록 노동계급의 행동을 촉구하는 것) 또는 ‘전환적 조처’(정치 혁명을 이미 완수해 권력을 거머쥔 노동자 정부가 사회주의로의 사회 혁명을 이루는 데 필요한 조처들) 같은 표현만이 올바르다고 여긴다. 반면에 ‘전환적 요구’, ‘전환적 방법’, ‘전환적 선거 강령’이라는 말은 모두 형용모순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필자는 ‘전환적 요구’ 등의 표현에 매번 따옴표를 치지는 않았고 본 번역에서도 이를 그대로 따랐다. ↩ - Activist 17 (4), p35. ↩
- Activist 17 (8), p38. ↩
- 내가 여기서 사용한 영역글은 〈위키피디아〉에 실린 《개혁이냐 혁명이냐》이다. 로자 룩셈부르크 아카이브(http://www.marxists.org/archive/luxemburg/1900/reform-revolution/intro.htm)에 있는 영역은 다음과 같다(좀더 딱딱하다). “개혁을 위한 일상적 투쟁, 즉 현존하는 사회질서의 틀 내에서 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하는 투쟁과 민주적 기관 창출을 위한 투쟁은 사회민주주의에게 불가분의 연결고리로써 제기된다. 개혁을 위한 투쟁은 그 수단이고, 사회혁명이 그 목적이다.” ↩
- Lenin, 1921. ↩
- 예컨대 Trotsky, 1936의 마지막 문단. ↩
- Trotsky, 1973. ↩
- Trotsky, 1938, section “The Minimum Program and the Transitional Program”. ↩
- Holmes, 2013. 이하에서 인용한 이 논문에 대한 비판과 답변은 원래의 웹페이지에 첨부돼 있다. ↩
- Trotsky, 1938, Part One. ↩
- Trotsky, 1938, Part One. ↩
- Communist International, 1980. ↩
- Lorimer, 2009, p27. ↩
- Holmes, 2005, p4. 강조는 원문 그대로임. ↩
- Holmes, 2006, p60. ↩
- Holmes, 2013. ↩
- Communist International, 19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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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여러 판본을 거쳤지만 여전히 ‘초안’으로 남아 있다. 가장 최근의 판본은 http://socialist-australia.blogspot.com.au/p/about.html에서 볼 수 있다. 더 자세한 비판을 보고 싶으면 나의 다음 두 글을 보라.
http://directaction.org.au/what_can_be_the_basis_of_unity_on_the_left
http://directaction.org.au/issue38/what_kind_of_organisation_in_an_age_of_revolution ↩ - 이 신문은 http://www.socialist-alliance.org/news/socialist-alliance-2013-federal-election-campaign에서 볼 수 있다. 선거용 신문 ‘2호’는 선거 캠페인 때 SA의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었다. 그 내용은 첫 호와 본질적으로 같다. 그러나 나중에 웹사이트에서 사라졌고, 그래서 나는 그 신문이 실제로 발행되지는 않았다고 가정했다. ↩
- [역자 주] 10가지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토지 소유의 몰수와 모든 지대의 공공 목적을 위한 사용. 2) 고율의 누진 소득세. 3) 상속권의 폐지. 4) 모든 망명 분자들 및 반역자들의 재산 압류. 5) 국가 자본과 배타적인 독점권을 가진 국립 은행을 통한 국가 수중으로의 신용의 집중. 6) 교통과 통신 수단의 국가 수중으로의 집중. 7) 국영 공장과 생산 도구들의 확대, 공동 계획에 기초한 토지의 개간 및 개량. 8) 모두에게 동등한 노동의 의무, 산업 군대, 특히 농업을 위한 군대의 육성. 9) 농업과 공업의 결합, 좀더 균등한 배분을 통해 도시와 농촌 간 차이의 점차적 근절. 10) 모든 아동에게 공공 무상교육 실시.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아동 공장 노동 폐지. 교육과 산업 생산의 통일 등. ↩
- Holmes, 2013. ↩
- Holmes, 2013. ↩
- Holmes, 2005, p5. ↩
- Activist 16 (7), p50. 강조는 원문 그대로임. ↩
참고 문헌
“Party building perspectives report”, Activist 17 (8), September 2007.
“Party Building report”, Activist 17 (4), May 2007.
“Party building counter- report and summary” Activist 16 (7), October 2006.
Communist International, 1980 [1921], “On Tactics”, in Theses, Resolutions and Manifestos of the First Four Congresses of the Third International, Ink Links, http://www.marxists.org/history/international/comintern/3rd-congress/tactics.htm.
Holmes, Dave, 2005, “A project worth persevering with”, Activist 15 (23), December.
Holmes, Dave, 2006, “The transitional approach to party-building”, Activist 16 (7), October.
Holmes, Dave, 2013, “In defence of the transitional method”, http://links.org.au/node/3202.
Lenin, V.I., 1921, “Fourth Anniversary of the October Revolution”, http://www.marxists.org/archive/lenin/works/1921/oct/14.htm.
Lorimer, Doug, 2009, “RSP constitution and program”, RSP Discussion Bulletin 1 (1), March.
Trotsky, Leon, 1936, The Revolution Betrayed, http://www.marxists.org/archive/trotsky/1936/revbet/index.htm.
Trotsky, Leon, 1938, The Death Agony of Capitalism and the Tasks of the Fourth International, http://www.marxists.org/archive/trotsky/ 1938/tp/index.htm.
Trotsky, Leon, 1973 [1938], “The Political Backwardness of the American Workers”, in The Transitional Program for Socialist Revolution, Pathfinder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