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호를 내며
2017년은 여러모로 격동의 한 해가 될 것 같다. 국내에서는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탄핵 인용과 조기 대선의 가능성이 높은데, 박근혜 퇴진 운동이 형성해 놓은 정치적 지형에서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기 때문에 여러 변수와 쟁점이 등장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브렉시트 등으로 말미암은 불확실성 증대, 트럼프의 등장으로 말미암은 보호무역주의와 미·중 갈등의 대두, 이로 인한 동아시아 긴장의 고조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 직면해 고전 마르크스주의 관점으로 사태를 분석하고 변혁적 견해를 주장하며 정치적 경청자들을 조직하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질 듯하다.
18호에는 모두 12편의 글을 실었다.
‘2017년 경제 전망’은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세계경제와 한국 경제를 분석하는 글이다. 이 글은브렉시트,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 정책, 미·중 갈등, 중국의 부채 위기 등 작년부터 드러나기 시작한 불안정 요소가 올해 세계경제에 큰 파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런 배경에서 2017년은 한국경제에게 무척 힘든 한 해가 될 것임을 예상한다.
‘국정 역사교과서의 역사 왜곡을 마르크스주의 시각으로 비판한다’는 박근혜 정부가 적극 추진하고 있는 국정 역사교과서가 친일이나 식민지 근대화론 등의 문제들을 넘어서 경제 위기에 대응해 노동계급 착취를 강화하려는 의도에서 추진되고 있는 ‘역사 전쟁’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뉴라이트의 주장에 대한 좌파 민족주의적 비판이 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지도 잘 보여 준다.
‘사회적 재생산 이론의 약점’은 마르크스주의적 페미니즘의 사회적 재생산 이론이 생산 영역과 재생산 영역을 나누고, 생산 영역에 견줘 재생산 영역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한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생산 영역과 재생산 영역을 나누는 이런 견해는 여성이 생산에서 하는 구실에 주목하지 않으며 여성의 다음 세대 노동력 재생산 구실에만 초점을 두기 때문에 계급을 초월한 여성운동이나 지역사회 운동 등을 강조하고, 생산현장에서 벌어지는 투쟁이 지니는 핵심적 중요성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신자유주의 합의는 끝나는가?’는 영국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 결정이 나고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한 것이 지난 30년 동안 추진된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에 큰 타격을 입혔다고 지적한다. 또, 현재 신자유주의 위기의 정도를 평가하며 선명한 사회주의 정치로 무장한 반자본주의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본 오늘날의 국가와 자본’은 최근에 드러난 청와대와 재벌 기업들 사이의 유착 관계를 살피며 정경유착과 부정부패가 한국 자본주의의 특징임을 지적한다. 더 나아가 이 글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국가와 자본이 맺는 구조적 상호의존 관계를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적 사례를 통해 잘 보여 준다.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는 동유럽 혁명과 소련 붕괴 이후 정치 논쟁의 중심 주제가 된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를 설명하고, 노동자 투쟁이 민주주의의 본질임을 드러내며, 민주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태도를 제시한다. 최근 박근혜 퇴진 운동에서 제기된 진정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화두 삼아 읽으면 좋을 듯하다.
올해는 러시아혁명 100주년이 되는 해다. 그래서 글 네 편을 특집으로 묶었다. 먼저 ‘러시아 혁명사 저술에서 무엇을 알 수 있을까?’는 최근 러시아 혁명사 저작들에서 나타난 많은 왜곡들을 비판하고 냉전적 관점과 스탈린주의적 시각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오늘날 되살려야 하는 러시아 혁명의 의미를 제시하는 유익한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1917년 러시아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대안은 있었나?’는 10월 혁명이 역사적 실수라는 주장, 즉 볼셰비키는 권력을 잡지 말았어야 한다는 주장을 평가하기 위해 1917년의 역사적 과정을 낱낱이 살펴본 다음, 당시 러시아에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대안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린다.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이 어떻게 일어났고 그 의미는 무엇인지를 밝히기 위해 세 권의 책을 소개한다. ‘10월 혁명을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책’은 존 리드가 쓴 《세계를 뒤흔든 열흘》과 알렉산더 라비노비치가 쓴 《혁명의 시간》을 소개한다. 특히 《세계를 뒤흔든 열흘》은 자신의 힘으로 역사를 만드는 노동자와 병사 들의 모습을 미국 기자인 존 리드가 생생하게 묘사한 책이다. ‘레닌의 당 건설 경험에서 배우기’는 작고한 혁명가 토니 클리프의 《레닌 평전 1: 당 건설을 향해》에 대한 서평이다. 토니 클리프가 자신의 당 건설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 책은 우리가 우리의 ‘10월 혁명’을 준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 준다.
‘왜 자본주의는 전쟁을 낳는가?’는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 외에도 끔찍한 전쟁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전쟁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의 논리에 내재돼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최근 국내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E P 톰슨의 ‘절멸주의’를 염두에 두고 이 글을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과거의 유산에 사로잡혀 오늘날의 “제국주의와 전쟁”을 오해하다’는 볼셰비키그룹이 발간한 《제국주의와 전쟁》에 담긴 문제점들, 즉 옛 동구권 사회의 성격, 제국주의론, 소련 방어의 문제, 중국 사회 성격, 아랍 혁명 평가 등에서 나타난 심각한 오류들을 지적하며, 이런 문제들이 비단 볼셰비키그룹에 한정된 현상이 아니라 좌파들이 대체로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2017년은 사회주의자들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할 듯하다. 이 잡지를 읽는 독자들이 국내외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정치 쟁점들을 분석하고 평가하고 대안을 수립하는 데 《마르크스21》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더불어 독자들의 활발한 문제제기와 토론을 기대한다.
2017년 1월 16일
편집팀을 대표해 이정구
MARX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