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러시아 혁명 100주년
《레닌 평전 1: 당 건설을 향해》
레닌의 당 건설 경험에서 배우기
레닌 사후 스탈린이 자신의 관료적 지위를 공고화하기 위해 ‘레닌주의’라는 말을 사용한 이래 레닌주의만큼 왜곡과 비방에 시달리는 용어도 없을 것이다. 흔히 레닌 하면 ‘일당 독재’, ‘엘리트주의’, ‘스탈린주의의 원흉’ 따위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한때 스탈린주의를 신봉했던 좌파들도 스탈린주의 체제의 몰락이 레닌의 사상과 실천에서 비롯됐다고 믿고 있다.
일부 급진 좌파들은 이제 레닌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자고 제안한다. 레닌주의의 실체, 즉 레닌이 마르크스주의에 기여한 독창적 성과가 없거나 오늘날에는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1 레닌과 카우츠키의 연속성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이는 목욕물 버리려다 애까지 버리는 격이다.
라스 리Lars T Lih도 레닌주의에 대한 자유주의적이거나 스탈린주의적 해석에 도전하면서 레닌의 실제 주장과 실천을 옹호했지만, 레닌이 마르크스주의의 발전에 적극적인 기여를 했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는다.레닌은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어떤 기여를 했는가? 레닌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혁명적 사상을 20세기 초엽에 크게 세 차원에서 발전시켰다. 제국주의 이론과 국가 이론 그리고 당 이론이다.
2 레닌주의는 무엇보다 레닌이 발전시킨 당 이론과 실천을 뜻한다.
이 중에서도 레닌이 발전시킨 당 이론과 실천은 제2인터내셔널의 숙명론과 결별하면서 마르크스주의 정치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헝가리 혁명가 죄르지 루카치는 노동계급이 자본주의를 뒤엎는 데 필요한 의식을 어떻게 발전시키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면서 이렇게 말했다. “레닌은 이 문제를 그 이론적 근원까지 파고들어 가서, 결정적인 실천의 측면, 즉 조직의 측면에서 해결하려고 한 최초의, 그리고 오랜 기간 동안 유일했던 지도자이자 이론가였다.”이런 점에서 《레닌 평전 1: 당 건설을 향해》는 레닌의 당 건설에 초점을 둔다. 토니 클리프는 볼셰비키가 소수의 선전 서클에서 대중 정당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그것은 길고 험난하며 굴곡이 심한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1880년대와 1890년대 초 조그마한 마르크스주의 학습 서클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성장해 나갔다. 1890년대 중반 이후에는 노동자 운동에 개입했고, 1900년대 초에는 규율 있고 집중된 조직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1905년 혁명이라는 거대한 ‘예행연습’과 뒤따른 패배의 기간을 경험했고, 노동자 투쟁이 부활하는 시기를 거친 뒤 1914년에 이르러서 볼셰비키는 대중 정당이 됐다.”
볼셰비키가 대중 정당으로 성장하는 데서 혁명적 신문이 큰 구실을 했다. 볼셰비키가 1912년에 합법 일간지 〈프라우다〉를 발행하기로 결정한 후, 1912년 4월 22일부터 1914년 7월 8일까지 645호를 발행했다. 당이 불법 상태에 있었음에도 〈프라우다〉는 하루에 4만 부에서 6만 부 정도 팔렸고, 수십만 노동자들 사이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날마다 노동자들의 편지와 투고가 35개 정도 실렸다. 1914년에는 2천8백73개 노동자 그룹한테서 지지금을 받을 정도로 계급에 뿌리내릴 수 있었다.
1917년 10월 러시아에서 세계 최초이자 지금까지 유일하게 노동자들이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레닌이 이끈 정당이 대중 정당으로 성장해서 필수적 구실을 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러시아 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볼셰비키가 대중 정당으로 성장해서 마침내 노동계급 다수의 지지를 획득해 나가는 과정을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이 책의 저자인 토니 클리프는 국제사회주의 경향의 창시자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창건자이다. 저자의 이런 약력이 다른 레닌 평전에 비해 이 책을 단연 돋보이게 한다. 첫째, 클리프는 레닌에 대해서 철저히 연구했지만, 수천 명 규모의 혁명 정당을 건설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클리프는 자서전에서 “내가 1930년대부터 레닌의 글들을 읽어 왔지만, 1970년대 와서야 비로소 레닌이 당에 대해 쓴 많은 요소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하고 썼다.
이처럼 이 책은 저자가 당을 건설한 경험을 바탕으로 썼기 때문에 레닌의 당 이론과 경험에서 배워야 할 교훈을 더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 계급 세력 관계 변화에 따른 급격한 방향 전환, 당 조직의 유연함, 혁명적 직관의 중요성, 무장봉기 조직부터 의회와 노동조합 참여 문제, 사회주의 신문을 통한 당 건설 등 오늘날 사회주의자들은 이 책에서 많은 영감과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둘째, 클리프는 레닌의 문구를 구체적 맥락과 무관한 도그마처럼 여기지 않았다. 클리프는 “앵무새는 결코 혁명을 일으키지 못한다”고 말하곤 했다. 클리프가 레닌을 매우 현실주의적이고 유연한 정치가로 묘사해서 그런지 그의 《레닌 평전 1: 당 건설을 향해》는 초좌파들의 공격을 받기도 한다.
5 이들은 “노동자주의에 찌들은 절충주의자로 레닌을 묘사”했다며 클리프를 비판한다. 6 공동전선이나 비판적 지지에 대한 이해가 없고, 원칙과 전술을 구분하지 못하는 초좌파들에게 클리프의 《레닌 평전 1: 당 건설을 향해》는 ‘기회주의적’으로 보인다.
‘국제볼셰비키그룹IBT’을 지지하는 한국 활동가 모임인 ‘볼셰비키그룹’은 “클리프의 레닌 전기는 당 문제에 대한 레닌의 입장을 진지하게 연구한 작업이라고 볼 수 없다. 우리는 그의 저서를 무시할 권리가 있다”고 썼다.그러나 클리프는 “레닌의 현실주의와 틀에 박힌 수동적 ‘현실노선’은 아무 공통점이 없다”며 레닌의 현실주의가 혁명적 원칙에 기반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클리프가 이끈 국제사회주의 경향은 옛 소련을 ‘타락한 노동자 국가’로 분석한 트로츠키를 비판하고 국가자본주의 이론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그 덕분에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이라는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사회주의 원칙을 보존할 수 있었으며, 정설 트로츠키주의자들의 강령 만능주의적 공상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현실에 기초한 당 건설 방식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마르크스주의는 과학이지만, 행동지침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는 기예이기도 하다. 클리프가 강조했듯이 “레닌의 주된 공헌은 마르크스주의를 기예로까지 발전시켰다는 것에 있다.”
당의 강령은 노동계급의 역사적 잠재력을 출발점으로 삼지만, 전략과 전술의 출발점은 노동자의 의식이다. 트로츠키는 “대중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탁월한 능력은 레닌의 최대 강점이었다” 하고 지적한 바 있다. 레닌이 어떻게 전략과 전술을 발전시켰는지를 다룬 장은 《레닌 평전 1: 당 건설을 향해》에서 가장 유익한 부분이다.
오늘날 레닌주의를 옹호한다는 것, 특히 레닌이 발전시킨 혁명 정당 개념을 옹호한다는 것은 혁명이냐 개혁이냐 하는 문제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일 뿐 아니라, 노동계급의 혁명적 잠재력을 인정하느냐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엘리트주의라는 비난에서 레닌을 구하기
클리프는 《레닌 평전 1: 당 건설을 향해》에서 레닌을 엘리트주의라고 왜곡하는 흔한 비난을 잘 반박한다.
레닌은 노동자들의 혁명적 잠재력을 철저히 신뢰했기 때문에 대리주의나 엘리트주의를 배격했다. 레닌이 건설한 당은 대중을 대신해 혁명을 일으키는 정당, 수동적으로 좌파 정치인들을 지지해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종류의 정당과는 거리가 멀었다. 레닌이 이끈 볼셰비키당은 대중 스스로 투쟁에 참여하도록 설득하고, 노동자들의 자주적 활동을 위해 정치 의식과 힘을 강화시키고 투쟁의 발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 전투 정당이고 혁명적 정당이었다.
8 레닌의 당 이론은 노동계급의 혁명적 잠재력과 현재 상태를 혼동하지 않았고, 계급 내의 의식의 불균등성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서 나왔다. 물론 레닌의 ‘전위당’ 개념은 전위 정당을 자처한 스탈린주의의 엘리트주의적이고 관료적 행태로 인해 많이 왜곡됐지만 말이다.
레닌의 당 이론의 주요 성과는 당과 계급을 구분했다는 점이다.9 또 레닌이 1902년에 쓴 《무엇을 할 것인 것인가?》에서 쓴 일부 구절을 과도하게 일반화해 레닌의 정치 전체를 규정하는 시도가 많다. “노동자계급 외부로부터 사회주의적 정치 의식을 도입하는 목적의식적 활동, 그것이 그[레닌]가 생각하는 정치다”라는 주장이 한 사례다. 10
레닌이 정당의 구실을 강조한 것이 “노동계급의 자기 의식이 발전할 필요성을 불필요하게 만들었다”는 주장은 심각한 왜곡이다.그러나 클리프는 레닌이 1902년에 쓴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윤곽이 잡힌 ‘엘리트주의적인 당 독재 모델’이 일당 독재의 스탈린주의라는 괴물을 만들었다는 식의 주장을 잘 반박한다. 최근 연구는 클리프의 해석이 근본적으로 옳았다는 것을 입증한다. 레닌이 엘리트주의적이고 획일적 당을 건설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도 중앙위원회의 역할은 단 한 번만 언급됐다. ‘민주집중제’라는 개념도 1865년에 독일 사회주의 운동에서 처음 사용했는데, 멘셰비키가 먼저 차용했다.
11 사실 볼셰비키와 멘셰비키를 갈라놓은 당원 자격 규정(누가 당원이 될 수 있는가)을 둘러싼 논란은 당원이 아닌 지식인들을 좀 더 쉽게 당원으로 만들고자 했던 멘셰비키의 열망에 대한 견해 차이였다. 레닌은 지식인들이 당원이 되는 것을 좀 더 엄격하게 하려고 싸웠다. 12
레닌이 노동자들의 능력을 불신해서 지식인들이 사회주의를 외부에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은 악의적 왜곡이다. 클리프는 “레닌은 지식인들을 불신했고, 운동에 충원될 직업혁명가의 대상을 학생과 인텔리겐챠(지식인)의 서클들로만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고 썼다. 그래서 멘셰비키는 1904년에 “지식인에 대한 신뢰 부재를 이유로 레닌을 맹렬하게 질타”하기도 했다.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쓴 다음 해인 1903년에 열린 2차 당대회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당 조직을 직업적 혁명가들로만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아주 특별한 비밀조직에서부터 매우 포괄적이고 개방적이며 느슨한 조직까지 아우르는, 모든 유형, 모든 등급, 모든 색깔을 포함하는 아주 다양한 조직들이 필요하다.
레닌은 2차 당대회에서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나온 주장을 일반화하지 말라며 논쟁했다. 1907년 11월, 예전에 썼던 논문들을 묶어서 낸 책 《12년》에서 이 점을 다시 강조했다.
1917년 혁명기에 레닌이 쓴 《국가와 혁명》에는 당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당이 국가 권력을 장악한다는 전략은 개혁주의나 스탈린주의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다. 당의 기능은 국가의 구실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의 더 후진적인 사람들 속에서 그들이 노동자 평의회를 수립하는 동시에 부르주아 국가의 조직 형태들을 전복하려고 싸우는 수준까지 그들의 자의식과 자주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끊임없이 선전하고 선동하는 것이다.”오늘날 《무엇을 할 것인가?》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저지르고 있는 근본적인 실수는 그 책과 연계되어 있는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 즉 지금은 오랜 과거가 되어버린 당 발전과정의 특정기간을 고려하지 않고 그 책을 다룬다는 점이다.
최근 일부 트로츠키주의자들도 레닌의 당 개념이 엘리트주의인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 그동안 스탈린주의자들이 레닌주의와 트로츠키주의를 대립시켜 왔는데, 최근에는 일부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레닌과 트로츠키의 당 개념을 대립시키고 있다.
14 이런 주장은 전위당과 대중 정당을 대립시킨 혼란도 문제이지만, 트로츠키가 레닌의 당 이론을 받아들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1904년에 [트로츠키가] 《우리의 정치적 과제》에서 레닌주의 전위당 조직이 대리주의, 자코뱅주의로 전락할 것을 예견한 것은 이후 레닌주의 당의 역사에서 보듯이 정확한 통찰로 입증되었다”며 현대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레닌의 전위당 개념이 아니라 트로츠키의 혁명적 대중정당 대안”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트로츠키가 1917년에 볼셰비키당에 입당한 것은 레닌의 강조점이 “당에서 소비에트로 이동했기 때문”이 아니라 레닌이 건설한 ‘전위당’의 필요성을 트로츠키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트로츠키는 볼셰비키 당에 가입하고 나서야 혁명을 성공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하면서 효과적으로 역사 과정에 개입할 수 있었다. 트로츠키는 자서전 《나의 생애》에서 자신이 레닌의 당 개념을 공격한 것은 실수였다고 인정했다. “그 당시의 나는 구질서와의 전쟁에서 몇 백만의 대중을 이끌고 나가려면 혁명 정당이 얼마나 열정적이고 당당한 중앙 집권주의를 필요로 하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 1903년 런던에서 당 대회가 열릴 무렵에는, 혁명은 아직도 내게는 주로 이론적 추상물이었다.”
스탈린에게 암살당하기 직전에 쓴 글에서도 이렇게 주장했다.
로자 룩셈부르크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만, 조직에 대한 그녀의 관점은 큰 약점이 있었다. 독일에서 로자는 혁명적 정당이나 분파를 결성할 수 없었고, 이것이 1918~1919년 독일 혁명이 실패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 1904년에 내가 쓴 《우리의 정치적 과제》에서 나는 조직 문제에 대해 로자 룩셈부르크와 비슷한 견해를 전개했다. 그러나 그 후의 모든 경험은 이 문제에서 로자 룩셈부르크와 내가 아니라 레닌이 옳았음을 보여 줬다.
민주집중주의
토니 클리프는 볼셰비키가 채택한 민주집중주의를 받아들였는데,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이를 두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충분히 토론한 후에 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일단 다수결로 결정을 하면 모든 당원이 이를 따라야 한다. 이는 우리 생각을 실천에서 검증하고자 한다면 꼭 필요한 것이다. 둘째, 이런 결정을 이행해서 투쟁에 효과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강력한 정치적 지도부가 당의 실천에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려고 당을 조직한다. 그 지도부는 정기협의회에서 평가를 받는다.
혁명 정당은 응집력 있는 개입을 위해 정치적 동질성을 추구한다. 행동 통일을 위해서는 추상적 원칙과 강령에 대한 동의 수준을 넘어 현재 정세에 대한 인식과 당면 정책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의 정치적 동질성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의 다원성이 당 내에서 표출될 수밖에 없다. 이견을 해소하고, 상황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투쟁에 효과적으로 개입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적절한 전술과 슬로건을 제시하기 위해 민주적 토론과 논쟁이 필수적인 이유다.
클리프의 책을 보면, 레닌이 당원들에게 엄청난 권위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당 내 다수의 지지를 얻기 위해 투쟁해야 했던 경우도 적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민주적 토론과 논쟁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행동 통일을 위한 수단이다. 혁명적 당이 전술적 논쟁에 개방적이라 하더라도 전략적 차이에 근거를 둔 다양한 세력들이 당에 공존하면 행동 통일이 불가능하고 투쟁적인 당을 건설할 수 없다. 전략적 차이를 내포한 상시적 분파가 허용되는 당 구조는 상시적인 내부 논쟁 때문에 당의 현실 응집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유럽에서 가장 큰 극좌파 조직 중의 하나인 프랑스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이 주도해 2009년에 반자본주의 신당NPA을 창당했는데, 이 당의 많은 당원들이 2011~12년에 내부 분열을 거쳐 좌파전선으로 이탈했다. 상시 분파들의 쟁투가 이런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
레닌은 민주집중제라는 개념을 독일 사회주의 운동으로부터 물려받았지만 러시아에서 독창적으로 적용했다. 레닌은 혁명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투쟁하는 조직을 건설하기 위해 전략적 일치와 민주적 책임 구조를 발전시켰다. 반면, 독일 사회민주당 지도부는 모든 대가를 치르더라도 당을 유지하는 것을 최고 목표로 삼았다
19 1890년대 독일에서 카우츠키가 당 총회에서 형식적으로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를 단죄하는 데 만족했고, 로자 룩셈부르크는 《개혁이냐 혁명이냐》를 써서 베른슈타인의 주장을 낱낱이 반박하는 데 머물렀다. 반면 레닌은 독일 사회민주당과 인터내셔널에서 개혁주의자들을 축출하라고 요구했다. 20 모든 대가를 치르더라도 단결을 유지하려는 카우츠키의 시도가 재앙으로 끝났지만, 레닌의 시도는 혁명이 성공함으로써 그 유용성이 입증됐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879년 독일 사회민주당 지도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독일 혁명가와 개혁주의자들이 같은 조직 안에 함께 있다면 반드시 조직을 마비시키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물론 레닌주의 당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혁명가들이 상황에 따라 전술적으로 좌파 개혁주의 정당에 참가하거나 동맹을 맺을 수 있다. 그러나 그때조차도 반드시 혁명가들의 조직을 별도로 유지하고 자체 기관지를 발행해서 정치적·조직적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르크스주의 원칙에 입각하여 구체적 투쟁의 경험을 일반화하고, 이런 일반화를 바탕으로 운동을 전진시킬 수 있는 강령과 전략을 정식화하고, 이 광범한 개념들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개입하기가 힘들어진다.
우리가 클리프의 《레닌 평전 1: 당 건설을 향해》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오늘날에도 레닌주의 당이 유효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다양한 노동자들에게 생기는 경험의 불균등성과 의식의 파편화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거대한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의 의식과 자신감이 높아진다 해도 의식의 불균등성이 자동으로 극복되지 않는다. 혁명적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오늘날 노조 관료들에 뿌리내린 개혁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정당 그리고 스탈린주의의 개혁주의에 대처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개혁주의가 대다수 노동자들의 ‘상식’에 부합하고, 자본주의가 끊임없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서로 경쟁시키면서 자신감과 사기를 갉아먹기 때문에 개혁주의의 영향력은 자동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고도로 집중된 국가 권력에 맞서야 할 필요성도 있다. 최근 박근혜·최순실 사건이 보여 주듯이, 자본주의 국가 권력은 고도로 집중돼 있다. 청와대는 지배계급의 총사령부 구실을 하며 인력과 자원을 끌어모으고, 국가 기구들을 적절히 활용하며, 계급 지배를 유지한다. 따라서 우리 운동도 응집력 있게 대응해야 한다. 클리프는 마르크스주의를 모종의 지적 활동으로 여기는 것을 싫어했다. 마르크스주의는 무엇보다 행동의 지침이다. 그리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규모, 즉 세력이 있어야 한다. 1917년 8월에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당원이 25만 명이 있었기 때문에 10월에 3백만 명의 노동계급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클리프는 수백만 명을 이끌기 위해서는 수십만 명의 당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규모만 중요한 게 아니다. 독일공산당은 1923년에 당원이 50만 명이었지만 결정적 국면에서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지 못했다. 혁명 정당이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 능력과 영향력을 얻기 위해서 혁명 훨씬 이전부터 미리 준비되고 온갖 경험을 통해 훈련돼 있어야 한다.
레닌의 위대함은 혁명이 먼 미래의 일처럼 보이는 일상적 시기에서조차 최상의 투사들을 당으로 끌어모아 당면한 운동에 효과적으로 개입하면서 다가올 혁명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불법 조건에서 활동한 볼셰비키들이 혹독한 반동의 시기를 거치면서도 10여 년이 넘게 수천 명의 간부 조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주목할 만한 성과였다.
그람시는 혁명 정당이 미리 준비돼 있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모든 상황에서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어떤 상황이 유리하다고 판단될 때 즉각 전장으로 투입될 수 있는, 항구적으로 조직되어 있고 장기적으로 준비된 세력이다(그리고 어떤 상황이 유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러한 세력이 존재하였고 또 전투정신으로 충만하였을 때뿐이다). 그러므로 근본적인 과제는 이러한 세력이 형성·발전되고 더욱더 동질적·응집적·자각적으로 될 수 있도록 체계적이고 끈질기게 작업해 놓는 일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속성으로 볼 때, 위기와 혁명은 계속 발생할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혁명을 성공으로 이끄느냐 하는 것이다. 21세기에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우리는 레닌이 건설한 당에서 여전히 배울 게 많다.
주
- 폴 블랙리지는 라스 리의 저작(Lih 2006)을 논평하면서 그의 업적을 높이 사면서도 이런 한계를 비판한다(Blackledge 2006). ↩
- 루카치 1985, p32. ↩
- 클리프 2010, p11. ↩
- Cliff 2000, p173. ↩
- 시모어 2016, pp10-11. ↩
- 시모어 2016, p9. ↩
- 캘리니코스 2009, p39. ↩
- 이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하먼 2012에 있다. ↩
- 클락 2000, p52. ↩
- 이진경 2008, p22. ↩
- 리 2008. ↩
- 드레이퍼 2007. ↩
- 하먼 2012, p61. ↩
- 정성진 2016, p9. ↩
- 트로츠키 2001, pp264-265. ↩
- Trotsky 1939. ↩
- 캘리니코스 2013. ↩
- 캘리니코스 2013. ↩
- Marx & Engels 1879. ↩
- Blackledge 2006. ↩
- 클리프 2012, p36. ↩
- 그람시 1999, p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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