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 분석
새사연의 경제 분석과 대안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이하 새사연)은 삼성경제연구소에 대항해 “한국 사회의 대안 정책 수립을 목표로 2006년 2월 설립”된 진보적 연구원이다. 손석춘 이사장, 김병권 부원장, 박세길 등 1백여 명의 운영위원이 주축이 돼 새사연을 설립했고, 현재 연회비 10만~20만 원을 내는 온라인 회원이 6백여 명 된다고 한다. 설립 이후에 꾸준히 발전해, 최근에는 일주일에 서너 편의 글을 발표하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2008년에는 《한경비즈니스》가 선정한 ‘대한민국 100대 싱크탱크’ 가운데 15위(정치사회 분야)에 올랐다. 새사연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신자유주의를 찬양하던 보수 학계와 기업계가 위기에 대해 침묵으로 답하고 있는 동안, 이명박 정부는 신자유주의 최신 버전도 아닌 30년 전 원시 버전을 강행하고 있다. 지금의 금융위기를 지켜보면서도 말이다” 하고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2 그리고 “1천5백만 노동자가 주주 자본주의를 넘는 대안 실현 주체로 거듭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분명 기업의 울타리와 고용 형태의 장벽을 깨고 ‘총노동’으로 단결하는 것”이라며 옳게도 노동계급의 단결도 강조한다. 3
또, “대규모 토목 공사 대신 대규모 사회 서비스 사업으로 내수 창출과 경기 부양 그리고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으며, 이를 발판으로 경기 회복 이후 사회 서비스 영역을 현대화시켜 나가는 기회를 열 수 있다”며 대운하가 아니라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고 역설한다.이 글에서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이하 《상상력》),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이하 《희망의 조건》), 《신자유주의 이후 한국경제》(이하 《한국경제》)를 중심으로 새사연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신자유주의와 주주 자본주의
4 금융주주 자본은 국민경제의 균형발전·선순환 등과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으므로 단기적 수익을 올리는 데만 골몰하고, 한국 경제를 이에 적합한 형태로 바꾸고 있다고 한다.
많은 진보 단체 또는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새사연도 신자유주의의 특징을 ‘주주 자본주의’로 규정한다. 주주 자본주의란 간단히 말해, “(미국 금융자본 중심의) 주주 이익을 최우선시하여 기업경영과 고용정책, 투자정책이 결정되는 시스템”이다.한국에서 주주 자본주의는 크게 두 가지 방식, 즉 주식시장 개방과 기간산업 민영화를 통해서 확립됐다. 1997년 경제 위기 이전에 10퍼센트대에 머물던 외국인 주식 소유 비중은 급격히 늘어 2003년에는 40.1퍼센트까지 올라갔다. 그 결과, 외국 자본이 국내 은행 대다수의 지분을 보유하게 됐고(70퍼센트 이상), 주요 재벌 계열사와 포스코·KT·KT&G 등 민영화된 주요 기간산업의 지분도 절반 가까이 외국인 소유가 됐다. 새사연은 외국 금융자본들이 한국 경제의 중추를 장악해서 이를 ‘단기적인’ 수익 창출을 위해 이용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주주 자본주의의 특징은 우선, 외국 금융자본이 장악한 은행들의 ‘장기적 자금중개’ 기능(기업에 자금을 대출해 주는 기능)이 크게 약해진다는 것이다.
외국인이 소유지분을 장악한 은행은 민영화되고 대형화, 겸업화되면서 외환위기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경영에 나섰다. 위험 부담이 많고 장기적인 기업대출을 대폭 줄이는 대신 신용대출과 주택 담보대출을 급속히 늘렸다. … 전통적으로 은행이 담당해 온 산업에 대한 금융 중개 기능은 사라지고 철저한 수익성 위주 경영이 자리잡았다.
7 의 거대 금융자본들은 대기업 경영 등에 적극 개입해, 8 자신들의 투자 이익을 단기간에 회수하려고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 등을 강요한다.
둘째, 은행의 자금중개 기능이 떨어지면서 기업들의 주식시장 의존도가 커진다. 이에 따라 사모펀드·헤지펀드 같은 금융자본은 주식시장을 통해 주요 대기업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 주로 미국 중심재벌 기업의 경영 관행도 주주 자본주의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재벌 대기업들도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대거 감원을 실행했고, 설비투자를 줄여 왔으며 주주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거액의 돈을 쏟아 붓고 있는 실정이다.
셋째, 주주 자본주의의 단기 수익성 경영은 주주 배당 등에만 신경을 쓸 뿐, 일자리 유지나 설비투자에는 신경을 쓰지 않아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성장 잠재력 약화가 설비투자 부진 때문이라면, 왜 설비투자를 하지 않는가? 국내 산업을 선도하는 주요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꺼리는 주요 이유는, 설비투자보다는 유동성 확보와 단기 수익성 위주의 경영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게다가 외국 금융주주 자본이 대주주인 한국 기업들은 최근에 이윤을 많이 낸 금융기업과 대기업이고, 이들에게는 다른 기업들보다 특별히 많은 배당금이 돌아갔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생산된 국부가 국민경제의 각 부분에 재투자되지 않고, 외국자본의 이윤 회수로 해외 송출”되면서 한국 경제가 더욱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요컨대 새사연은 ‘주주를 배고프게 하지 말라’는 주주 자본주의의 원칙 때문에 기업 이윤의 상당 부분이 외국의 금융주주 자본에게 배당되고, 이 때문에 경제성장이 가로막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모든 현상이 주주 자본주의 때문에 발생한다는 주장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우선, 새사연은 현재 한국 경제의 문제점을 주주 자본주의로만 설명하다 보니 재벌의 중소기업 ‘수탈’과 고용불안정·저임금까지 주주 자본주의에서 발생한 일로 설명하려 한다.
주주 자본주의 경영 풍토 아래 대기업들이 지속적인 감원으로 비용을 줄이고, 중소기업에 납품단가를 내릴 것을 강요하면서 수익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일부 첨단 벤처기업 역시 주주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지속적인 기술혁신과 투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주 자본주의 아래에서는 중소기업가 역시 제대로 기업을 성장시키고 안정적으로 경영하기가 갈수록 어렵다.그러나 새사연도 인정하듯이 납품단가 인하 같은 중소기업 ‘수탈’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던 일이다.
14 저임금은 개발독재 시대의 주요 특징이었다.
저임금도 마찬가지다. 새사연은 “신자유주의는 금융자본에 막대한 이익을 보장하면서도 노동자에게는 생산성에도 훨씬 못 미치는 소득 분배 시스템을 유지해 왔다”고 주장하는데,15 자본가들은 핵심 인력이 아닌 노동자들에게는 언제나 유연화를 추진해 왔다.
노동유연성도 마찬가지다. 노동조합을 설립할 자유도 없었던 개발독재 시대에 노동자들은 해고에 무방비 상태였다. 개발독재 시대에 노동유연성이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지 않은 것은, 그때가 고성장 시기여서 완전고용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반면 최근에는 저성장 때문에 실업자가 급증하면서 노동유연성이 훨씬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 것이다. 따라서 새사연처럼 “노동시장 유연화는 금융 중심 주주 자본주의의 단기 이익 추구의 결과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다.둘째, 현실에서 주요 대기업들이 오로지 주주 배당에만 신경 쓴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는 주주를 위한 배당금으로 나가기도 하지만 대기업들은 엄청난 수익을 남긴다. 그러나 설비투자를 공격적으로 확대하진 않는다. 그러다 보니 기업이 쓰지 않고 쌓아놓고 있는 현금(현금유보율=자본금 대비 잉여금 비율)은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증가했다. 12월 결산 제조업체 4백87개 사의 평균 유보율은 5백 퍼센트, 2006년에는 6백 퍼센트를 넘고 있다.
한국의 대기업 경영주들은 언제 변할지 모르는 경제 상황에 대응하고자 현금보유율을 늘려 온 것이다. 기업이 현금보유율을 늘렸다는 것은 그만큼 배당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는 주주 배당이 최우선이라는 주주 자본주의 가설이 현실에서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기업들이 현금보유율을 높이며 투자하지 않는 상황은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때문에 투자를 못한다는 주장도 현실과 맞지 않음을 보여 준다.
한편, 이것은 외국 금융주주 자본들이 한국의 대기업과 은행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진보진영 내 다수의 주장이 현실과 다르다는 점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외국 금융주주 자본들이 일치단결해 경영에 개입하고 주주 배당만 고집했다면 대기업들은 엄청난 사내유보금을 쌓아 두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소유 지분이 꽤 높고 따라서 한국 경영진이나 정부가 그들을 조심스럽게 대하지만, 그들을 따로따로 보면 대부분 경영권을 위협할 만큼의 지분은 갖고 있지 못하다. 외국 자본들은 서로 경쟁하고 있으며, 따라서 얼마든지 서로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금융주주 자본들이 단기적 배당 확대만 바란다고 볼 수도 없다. 장기적으로 사업 전망이 밝고 수익성이 좋은 곳에 투자하는 것도 기업의 주가를 올리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셋째, 새사연은 배당 확대의 한쪽 면만 보고 있다.
자사주 매입과 현금배당, 그리고 유상감자는 기업의 자본조달 목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오직 기존 주주들의 주주이익 실현을 위한 수단이다. 증권시장에서 시세 차익을 바라고 주식을 매수하고 매도하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이미 발행된 주식을 유통하는 과정에서 발생된 차익을 주주들이 나눠 가지는 것일 뿐 기업의 자금조달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19 이 배당금을 다시 투자에 썼다면 기업 투자 총액이 줄어들 이유가 없다. 이 돈을 만약 금융투기에 썼다면 다른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이 말은 맞다. 그러나 새사연은 기업 이윤을 대주주들에게 나눠주는 것만 볼 뿐 대주주들도 배당이나 주식 매도로 얻은 막대한 자금을 어딘가에 투자해야 한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은 지배자들 내 이윤 분배의 변화일 뿐 이윤의 감소가 아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대규모 배당을 하면 기업 보유금은 줄겠지만, 이건희 일가나 정몽구 일가를 포함한 주주들의 자산은 그만큼 늘어난다. “6년 동안 … 주식시장을 통해 40조 원 가량이 기업으로부터 주주에게로 빠져나”갔더라도, 외국 금융주주 자본이 한국 주식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외국인 비중이 높아졌다는 말은 한국인이 보유 주식을 그만큼 팔았다는 말이다. 자금과 주식이 서로 교환됐을 뿐이다. 새사연은 배당의 해외 송금 현상만 보는데, 한국 주식을 판 많은 한국인들이 ‘펀드 열풍’을 타고 해외의 주식·채권 시장에 투자했다는 점은 보지 않는다. 게다가 막대한 수출 증대로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2005년에 이미 2천억 달러를 넘었는데, 외환보유액의 상당 부분은 미국의 주식·채권 시장에서 낸 수익일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 자본이 미국 자본만큼 수익을 얻었다는 말은 아니다.그렇더라도 한국의 자본가들이 배당 확대와 주식 매도로 얻은 수익을 들고 외국으로 나간 것은 한국에 마땅한 투자처가 없었기 때문이지, 외국 금융주주 자본이 국내 투자를 막아서는 아니다.
넷째, 은행의 자금중개 기능(기업대출) 약화와 기업의 주식시장 의존 비중 증가도 좀 더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21 기업의 자금조달에서 주식시장 비중이 커진 것도 사실이지만, 이는 은행차입 비중이 줄어서가 아니라 은행차입과 주식시장 조달을 제외한 자금조달(채권 발행 등) 비중이 줄었기 때문이다. 은행차입의 비중은 1997년 이전과 별 차이가 없고, 은행차입이 여전히 기업의 가장 큰 자금조달 원천이다. 22
은행 대출에서 기업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줄었지만 기업대출 금액은 꾸준히 증가했다. 기업대출 비중이 준 것은 기업대출이 정체해서가 아니라 가계대출이 훨씬 더 늘었기 때문이다.23 한국 기업들은 영업이익률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는데도 부채비율을 낮춰 금융비용 부담을 줄임으로써 더 높은 이윤율을 기록했다. 24
물론 IMF 경제 위기 이후로 한국의 기업들은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도 은행차입을 줄여 부채비율을 낮춰 왔다. 이것은 경제 성장 시기 한국 기업들의 특징이던 “고부채 모델”을 끝내려는 한국 정부와 IMF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은 부채비율을 IMF와 한국 정부의 권장치인 2백 퍼센트보다 더 떨어뜨렸다. 부채비율을 낮춘 것이 단지 한국 정부나 외국 금융주주 자본의 대리인인 IMF의 강요 때문만이 아니라 기업들의 필요이기도 했기 때문이다.25 결국 이전에 “고부채 모델”에서 은행 이자로 지급하던 돈의 상당 부분이 최근에는 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으로 나간 것이다. 26
재벌들이 자사주 매입에 많이 나선 것도 부채비율 감소와 연관돼 있다. 재벌들은 부채비율을 낮추면서 1998년 이후에 일어난 주식시장 붐을 타고 주식 발행으로 자금을 많이 조달했는데, 그 결과 재벌 총수의 지분율이 하락하자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응하기 위해 자사주 매입에 나섰던 것이다.27 그 후에도 신용카드 거품 붕괴 등으로 경기가 하강하면 투자 증가율이 떨어지고, 경제가 조금 회복되면 투자 증가율도 다시 상승했다. 결국 투자 부진이 주주 자본주의 때문이 아니라 수출이나 소비의 증감 같은 다른 수요 요인 때문이라는 것이다. 28
다섯째, 주주 자본주의가 설비투자를 막고 이 때문에 경제 성장이 안 된다는 가설이 옳다면,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한국의 기업투자가 계속 부진했어야 한다. 설비투자 증가율은 경제 위기 상황인 1998년에 마이너스 42.3퍼센트였지만, 곧바로 1999년과 2000년에는 극적으로 반전돼 30퍼센트가 넘었다.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주주 자본주의 체제가 확립되면서 고용불안정·저임금 문제가 생기고,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등이 늘어나 투자할 돈이 부족해 경제 성장이 안 된다는 주장은 모두 현실에 들어맞지 않는다. 오히려 이윤율이 떨어진 상황에서 기업들이 노동자들을 쥐어짜 벌어들인 이윤을 투자에 충분히 사용하지 않은 채 남은 돈으로 부채를 상환하고 배당을 늘린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물론 배당을 늘린 데는 외국인 대주주들을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는 한국 지배자들의 의도도 작용하겠지만, 이것이 주된 요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국가의 구실과 재벌 주주 자본주의 분석에서 살펴본 것처럼, 새사연은 한국에서 주주 자본주의를 확립시킨 추진력이 IMF를 앞세운 미국 중심의 초국적 금융자본에서 나왔다고 주장한다.
30 단기 수익성 위주 경영의 수혜자로서 외국 금융자본과 이해를 같이하면서 주주 자본주의로의 전환을 환영했다. 다른 한 축인 한국 국가는 “시장과 자본에 대해 최대한의 자유를 부여해 주면서 실질적인 권력을 경제 권력에, 주요 금융주주 권력과 재벌에 이양한다.” 31
그 전까지 한국 경제를 지배하는 한 축이었던 “한국의 재벌 대기업 소유자들은 한편으로는 미국 금융 주주자본의 기업 경영 개입에 대해 경영권 방어 논리를 들이대며 갈등하기도 하지만”32 으로 보는 시각의 연장이다. 초국적 금융자본 책임론은 IMF 경제 위기의 최종적인 원인을 외부에서 찾고, 주주 자본주의 이전 모델인 국가 주도형 성장 모델을 어느 정도 긍정한다. 새사연도 개발독재 시대의 한국 경제를 어느 정도 긍정한다. “한국 경제는 국민경제 전반의 선순환과 균형보다 ‘주주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여 기업경영과 고용정책, 투자정책이 결정되는 시스템’에 가깝게 바뀌었다”(강조는 인용자)고 말하는데, 33 이는 달리 말하면 주주 자본주의 이전의 한국 경제가 “국민경제 전반의 선순환과 균형”을 추구했다는 말이다. 34
이런 분석은 IMF 경제 위기를 “초국적 금융자본 책임”35 이 말은 IMF 위기 전의 한국 경제가 식민지가 아니었음을 함의한다. 새사연도 IMF 이전에는 사실상 경제 식민지가 아니었다고 본다.
둘째, 이런 분석은 개발독재 시대의 한국 경제가 식민지였다는 분석을 거부하는 것이기도 하다. IMF 경제 위기 시기에 초국적 금융자본 책임론을 제기했던 진보진영도 “IMF, 초국적 자본, 미국, 신자유주의, 신제국주의 세력 등의 경제 신탁통치와 그것을 통한 경제 식민지화 기도에 맞서 그것을 저지하는 싸움”이 핵심적 요구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 국민에게는 경제 자주화의 요구보다는 항상 정치·군사적인 자주권 요구가 선행되었고 전면에 부상하였다. 이 당시까지 경제 자주화의 문제는 기껏해야 ‘외채 위기’의 문제거나 극히 제한된 영역에 들어와 있었던 외국인 투자 기업에서의 노동운동 문제 수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찬가지 입장에서 1997년 이후로 한국 경제가 “최신의 주주 자본주의”로 전환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의 한국 경제를 이제 더 이상 낙후된 천민자본주의로 치부할 수 없다. … 한국에 이식된 경제 제도는 영미식 모델의 전형보다는 훨씬 조악하고 가혹한 주주 자본주의다. … 이를 기형적인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겠지만 후진 자본주의라고 보는 것은 맞지 않다. … 한국은 상당히 고도화된 자본주의를 극복해 나가는 높은 수준의 운동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강조는 인용자)
내가 보기에 한편으로 주주 자본주의의 식민성을 주장하고(예를 들어, “주주 자본주의 이식”, “미국 금융자본 중심의 주주”, “경제 주권 실현”, “경제 자주화 요구” 등), 다른 한편으로 선진 자본주의라고 주장하는(예를 들어, “최신의 주주 자본주의”, “후진 자본주의가 아니다”, “고도화된 자본주의” 등) 새사연의 입장은 모순이다.
38 외국 금융주주 자본이 한국 경제를 지배하고 있다는 주장은 진보적인 사회 변화의 동력을 노동계급의 독자적인 투쟁이 아니라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농민까지 포괄하는 계급연합에서 구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39 그리고 개혁주의적 태도는 국가를 계급 지배의 도구가 아니라 사회 변혁 목표에 사용할 수 있는 도구로 보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40
그런데 이런 모순된 두 개념은 새사연을 노골적인 개혁주의로 이끄는 명분이 된다. 한국 경제가 후진 자본주의가 아니라는 분석은 급진적 투쟁(“민중 주체의 민족 자주화 전략”)을 회피하는 수단이 되고,41 경제 자주화 요구는 “경제 주권의 실현과 국민경제의 복원”을 목표로 외국 투기자본 규제, 민영화된 기간산업의 재공기업화, 금융 공공화, 국내 자본시장 보호 등을 포함한다. 최신 자본주의인 만큼 경제 자주화와 동시에 경제 민주화도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경제 민주화에는 한국 경제의 전근대적 특징인 재벌 총수 체제를 극복하자는 요구와 함께 주주 자본주의의 주요 특징인 고용불안정과 양극화를 극복하자는 요구들도 포함된다.
셋째, 새사연은, 한국 경제가 최신의 주주 자본주의로 전환됐다는 것은 한국 경제에서 “경제 자주화와 경제 민주화라는 새로운 과제”(강조는 인용자)가 중요해졌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내가 보기에 이 두 요구에는 어지간한 내용이 모두 포함되는데, 새사연은 이를 “새로운 과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만약 이 과제가 새롭다면 과연 주주 자본주의 이전의 한국 경제는 어떻게 분석하고 무엇을 핵심 요구로 제기했어야 한다는 것인지 파악하기 힘들다.
42 하자고 주장하는 근거가 된다. 그렇다고 새사연이 재벌과의 타협에 명확하게 반대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43 이런 혼란은 재벌에 대한 모호한 태도에서 비롯하는 듯하다. 새사연은 재벌이 주주 자본주의에서 금융자본과 함께 이득을 본다고 주장하면서도, 경제 자주화를 주장하면서는 재벌이 외국 금융자본과 다투는 모습도 말한다. 물론 새사연의 개혁주의가 계속 재벌과 타협하게 만드는 주된 힘인 것 같다. 44
경제 자주화 요구는 NGO식의 개혁주의와는 다르게 국가의 개입을 옹호하고, ‘재벌과의 타협론’에 맞서 재벌을 개혁다수화 전략과 계급연합 전략
45 이런 주장은 중소기업인들까지 주주 자본주의 때문에 피해를 본다는 분석에서 나오는 것이다. 46 물론 새사연은 다수화 전략에서 노동자들이 중심에 서야 하며, 47 따라서 노동자 내부의 분열 극복이 절박한 과제라고 지적한다. 48
새사연은 “경제 자주화”와 “경제 민주화”를 성취하려면 계급연합이 필요하다고 한다. 고용 문제를 중심으로 노동자와 자영업자, 대학생, 게다가 중소기업인까지 단결시키는 “다수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그러나 정작 구체적 대안을 제시할 때는 노동자들이 중심에 선다는 주장이 공문구가 된다. 새사연은, 계급연합을 추구하다 보면 노동자들이 분열될 수 있다는 점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49 이것이 뜻하는 바는 노동운동만이 아니라 자영업자, 중소기업인에 더 관심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새사연의 김병권 부원장은 올해 한국사회포럼에서 진보진영이 7~8월에 한 실천을 비판했는데, 진보진영이 진 싸움인 쌍용차에만 관심을 두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는 기업형 슈퍼마켓SSM에 반대하는 상인들의 투쟁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노동계급 중심이라는 말은 공문구가 돼 버린다.
우선, 새사연은 다수화 전략을 주장하면서 진보진영이 지금까지 소수화 전략을 구사했다고 비판한다.50 결국 주주 자본주의에서 중소기업이 계속 성장해 왔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둘째, 새사연은 중소기업과의 연대를 정당화하려고 주주 자본주의에서 중소기업의 처지가 더 열악해진 것처럼 묘사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새사연 스스로 “산업 생산과 고용에서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비중이 1990년대 이후에, 특히 외환위기 이후에 지속적으로 높아졌고 우리 국민경제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말하는데, 중소기업에 대한 다른 연구를 보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제조업의 경우, 1990년대 초중반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매출액 격차가 제법 컸는데, 1998년 이후 오히려 크게 줄었고, 1999년과 2001년, 2002년에는 오히려 중소기업 매출액 증가율이 대기업을 앞질렀다. 경상이익률은 1995년까지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앞섰지만 1996년부터 2001년까지는 오히려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능가했다. 2002~2003년에 대기업의 경상이익률이 7퍼센트로 크게 늘어나면서 중소기업(3퍼센트)의 갑절이 됐는데, 이는 대기업이 순금융비용과 인건비를 낮췄기 때문이지 중소기업의 이윤을 수탈해서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하도급 중소기업이 특별히 고통을 겪는 것도 아니다. 산업별로 비교해 봤을 때, 하청 중소기업 비중이 높은 산업에서 중소기업 이윤율이 더 낮은 것도 아니었고, 산업 내에서 본다면 하청 의존도가 높을수록 이윤율도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하청기업은 비하청기업보다 이윤마진율은 낮지만 총자본회전율이 높아서 높은 이윤율을 실현할 수 있었다.52 흔히 중소기업은 국내 대자본과 해외 자본의 이중적인 수탈 구조 속에서 몰락과 해체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 집단으로 묘사돼 왔다. 그런데 이런 묘사는 중소기업의 수와 비중, 더욱이 하도급 거래의 범위와 강도가 그동안 빠르게 증대돼 왔다는 역사적 경험과 상충된다.
따라서 “일방적인 납품단가 인하로 중소기업의 채산성이 떨어지고 노동자의 소득이 감소하는 연쇄 구조가 형성”되고 이는 “경제 전체의 고용 창출력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새사연의 주장은 틀렸다.53 중소기업의 채산성이 좋아지면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도 올라갈 수 있어 결국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가 단결하게 되고, 여기에 중소기업인도 동참하는 구조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셋째, 새사연은 대기업 노동자들이 중소기업인의 주요 요구인 ‘납품가 원가 연동제’를 요구하며 함께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그러나 이런 주장은 새사연이 계급투쟁의 동역학을 전혀 모른다는 것을 보여 준다. 노동자들이 ‘납품가 원가 연동제’를 함께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은 결국 기업 이윤이 충분해야만 임금을 올릴 수 있다는 논리를 노동자들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과 같다. 이렇게 되면 대기업 노동자들은 자신이 일하는 기업의 이윤을 잠식하는 납품가 인상에 불만을 느낄 것이다. 반면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이 너무 높아 납품가가 충분히 오르지 않고 자신들의 임금도 오르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특히 지배자들은 이런 식으로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려 할 것이다. 따라서 노동운동이 ‘납품가 원가 연동제’를 중소기업인들과 함께 요구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오히려 분열할 것이다.
54 그러나 정규직 양보론도 노동자들을 단결시키기보다 분열시키는 이데올로기를 유포한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의 임금인상이나 정규직화 때문에 자신들의 임금이 줄어든다고 여길 것이고,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충분히 양보하지 않아 자신들의 처지가 어렵다고 느낄 것이다.
마찬가지로 새사연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을 위해 비정규직의 임금을 어느 정도 양보해야 한다는 ‘정규직 양보론’을 받아들인다.55 진보진영의 일부도 받아들이는 ‘노동귀족론’에는 반대한다. 노동자들을 진정으로 단결시키려면 이 반대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여야 한다.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단결하는 길은 이들이 기업의 벽을 넘어 함께 임금인상과 고용 안정을 요구하며 싸우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중소기업의 이윤을 우선 고려하는 방식은 오히려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효과만 낼 것이다.
물론 새사연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원들의 집단이기주의화를 공박하는 목소리가 큰데, 대기업 노동자들 역시 오늘은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하더라도, 내일까지 고용안정이 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며넷째, 자영업자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긴급 경영 안정 자금”, “창업 지원, 교육 및 컨설팅, 폐업 자영업자 전업자금 지원 등 창업에서 재기에 이르는 전 영역에 대해 지원”,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등의 요구를 내걸고 싸워야 한다는 새사연의 주장도 핵심을 놓치는 것이다.
56 결국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 영세 자영업자를 흡수하는 것이 핵심이지 나머지는 임시방편적 대안일 수밖에 없다.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나서 기업주들에 맞서 싸울 때만 가능하다. 그러나 자영업자의 처지 개선을 자영업 내부에서 해결하려 하다 보면 김병권 부원장처럼 일자리를 지키는 노동자들의 투쟁과 영세상인들의 투쟁을 동급에 놓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새사연도 지적하듯이 “[한국의 자영업은] 생산성이 낮고 저소득 직종이 많으면서도 공급 과잉 상태에 있다. 좋은 일자리의 자영업이 확대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즉, 비자발적인 선택에 따른 자영업 증가가 한국 자영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다섯째, 다수화 전략의 결정판으로 새사연은 ‘노동 주도형 경제’를 제시한다. 여기서 노동은 노동자만이 아니라 중소기업인과 자영업자도 포함한다. 새사연은 자본주의가 지식기반 경제로 이동하고 있으므로 노동 주도형 경제가 가능해졌다고 주장한다. 즉, 노동자와 중소기업인이 함께 지식기반 경제를 발전시키면 ‘고효율→고성장→고임금→고효율’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새사연은 중소기업이 고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 중심으로 이런 발전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59 지식노동이 늘어 효율성이 높아지면 사용가치는 증대하겠지만, 가치는 증대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식노동이 보통노동 이상으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경우는 지식노동 이외에 보통노동이 존재하거나 다른 지식 노동이 지식을 모방할 수 없을 때뿐이다. 지식은 지식 격차가 있는 경우에만 보다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60
그러나 지식기반 경제론은 가치와 사용가치를 구분하지 않고 혼동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노동자를 지식 노동자로 전환시키면 모두 고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새사연의 주장은 틀린 것이다. 일부 노동자와 중소기업은 이런 전환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다수의 노동자와 경쟁에서 승리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새사연은 자본주의 체제가 생산력 발전의 질곡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기술 발전은 기업의 이윤 창출에 종속돼 충분히 발전할 수 없다. 기업주들은 이윤 창출이 가능하도록 신기술의 확산을 막으려 애쓰며, 만약 신기술이 확산되면 높아진 효율성을 근거로 노동자들을 구조조정하고 저임금을 강요한다.
62 실현 불가능한 몽상일 뿐이다. 자본이 존재하는 한 이들은 보조자에 머물기는커녕 오히려 기술 발전을 규정할 것이다.
따라서 “노동 중심 경제 모델은 전혀 다른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노동의 주도성이 확고하게 서 있는 조건에서 자본을 배제하지 않고 포용합니다. 자본의 존재를 인정하고 일정한 이익을 보장함으로써 자본이 생산을 보조하는 순기능을 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라는 새사연의 주장은지금까지 살펴봤듯이, 중소기업인과 노동자를 단결시킨다는 새사연의 다수화 전략은 (중소)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 대립을 애써 보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결코 실현될 수 없다. 이를 일관되게 밀어붙이려 하면, 오히려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기만 할 것이다.
결론
63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변혁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64
새사연은 신자유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유용한 진보적 대안을 여럿 제시한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이, 이들은 주주 자본주의라는 틀로 한국 경제를 설명하려다 보니 현실을 왜곡하고 자신들의 분석에 현실을 꿰맞추고 있다. 이들이 자본주의의 동학을 보지 않으려 하는 것은이렇게 잘못된 분석을 바탕으로 계급연합 전략을 정당화하는데, 이는 실제로는 선거에서 더 많이 득표하려는 전략일 뿐이다. 특히 최근에 경제 위기가 심각해지고 미국 정부 등도 경제 개입을 늘려가는 것을 보면서 ‘실현 가능한 대안 제시’라는 쪽에 더 무게를 두면서 좀더 개혁주의로 나가고 있는 듯하다. 김병권 부원장은 “집권했을 때 사용 가능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며 이런 방향을 옹호한다.
그러나 노동계급이 단결해 체제에 도전하지 않는다면 경제 위기 시기에 집권은 고사하고 사소한 개혁도 달성하기 힘들다. 이런 면에서 새사연의 ‘실현 가능한 대안’은 진보적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대안으로서는 함량 미달로 보인다.
주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신자유주의 이후 한국경제》, 시대의창(2009), 98쪽. ↩
- 같은 책, 79쪽. ↩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 시대의창(2008), 231쪽. ↩
- 같은 책, 380쪽. ↩
-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 경제는 은행을 매개로 한 금융과 산업의 ‘장기적 관계금융’이 위축됨과 동시에 은행의 자금중개 기능이 현저히 약해졌다.” 《한국경제》, 72~73쪽. ↩
- 같은 책, 70쪽. ↩
- “우리 나라 증시 시가총액의 약 15퍼센트, 외국인 투자액 전체의 약 50퍼센트를 미국 자본이 차지하고 있다.” 《희망의 조건》, 56쪽. ↩
- “‘주주 행동주의’는 … 사전적, 사후적으로 기업경영과 성과 배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단기간에 자신들의 투자 이익을 회수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같은 책, 62쪽. ↩
- 같은 책, 67쪽. ↩
- 같은 책, 120쪽. ↩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 시대의창(2006), 51쪽. ↩
-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 40~41쪽. ↩
- “국가주도형 경제구조가 유지되던 1970~80년대에 중소기업은 재벌을 정점에 둔 수출 중심 산업구조에서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하청업체의 역할과 내수 공급기지라는 어려운 역할을 담당해 왔다.” 같은 책, 95쪽. ↩
- 《신자유주의 이후 한국경제》, 112쪽. ↩
-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 196쪽. ↩
- 같은 책, 66쪽. ↩
- 새사연도 “가령 [투기 자본] 규제 조치에 대한 반발로 외국자본의 일시적인 철수가 이루어질 경우를 떠올려 볼 수는 있는데, 상식을 초월하는 무리한 조치가 아닌 이상 외국자본들이 꼭 일사불란하게 행동 통일을 이룰 거라는 생각도 다소 기우 아닌가 합니다” 하고 인정한다. 《상상력》, 160쪽. ↩
- 같은 책, 60~61쪽. ↩
- 같은 책, 61쪽. ↩
- “미국의 총 해외투자 가치는 미국으로 들어오는 외국인 투자 가치의 80퍼센트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미국의 해외투자가 벌어들이는 이윤과 이자 수익의 총량이 더 크다. 사실상 나머지 세계의 정부들과 자본가들은 미국에 자본을 들여놓는 대가로 미국 경제에 보조금을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자본가와 정부 관료는 자선 사업가들이 아니다. 그들이 미국에 사실상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미국 국가의 힘 때문이다.” 크리스 하먼, ‘스냅사진으로 보는 자본주의의 오늘과 내일’, 《21세기 대공황과 마르크스주의》, 책갈피(2009), 76쪽. ↩
- 김창근, ‘한국 경제의 장기침체 원인’, 《한국 자본주의의 축적체제 변화: 1987-2003》, 한울(2006), 212쪽. ↩
- 같은 글, 214쪽. ↩
- “2004년 한국 기업들의 부채비율은 전체 산업과 제조업에서 각각 114퍼센트와 104.2퍼센트로, 일본과 미국에 비해서도 훨씬 낮은 수준이다.” 김창근, ‘한국 경제의 장기침체 원인’, 《한국 자본주의의 축적체제 변화: 1987~2003》, 한울(2006), 218쪽. “새로운 금융체계 하에서 가장 크게 자금난을 겪고 있을 것으로 가정되는 중소기업들이 오히려 자신들이 벌어들인 이윤을 부채 상환에 사용하여 부채비율을 낮추고 있는 것이다.” 같은 글, 217쪽. ↩
- 같은 글, 216쪽. ↩
- 같은 글, 215쪽. ↩
- “비금융법인의 영업이익으로부터 이자, 배당, 임대료 등의 형태로 금융 부문으로 유출되는 비율 … 은 1980년대 이래 50퍼센트 수준으로 안정적이었다.” 정성진, ‘한국 경제와 마르크스의 비율’, 《마르크스와 한국 경제》, 책갈피(2005), 27~29쪽. ↩
- 같은 글, 220쪽. ↩
- 같은 글, 221쪽. ↩
- “누가 국가 주도형 자본주의를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최신의 자본주의로 전환시켰는가? 물론 이전부터 한반도에 절대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미국이라고 할 수 있다.” 《희망의 조건》, 28쪽. “1997년 후반 월가의 큰손들이 한국에 투자했던 자금을 일시에 빼내감으로써 외환위기를 고의적으로 재촉함과 동시에 미국 정부는 일본의 한국 지원을 차단하여 한국 정부가 꼼짝없이 국제통화기금 앞에 무릎을 꿇도록 유도했습니다.” 《상상력》, 44~45쪽. ↩
-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 28~29쪽. ↩
- 같은 책, 381쪽. ↩
- 이에 대한 논의는 정성진, ‘경제위기 논쟁과 마르크스주의 공황론’, 《마르크스와 한국 경제》, 책갈피(2005)를 참조하시오. ↩
-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 27쪽. ↩
- “국가 주도형 모델에서는 권위주의적 통치 집단이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경제의 외형적 성장에 관심을 기울이고 국민경제라는 틀을 유지하는 데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상상력》, 88쪽. ↩
- 정성진, ‘경제위기 논쟁과 마르크스주의 공황론’, 168쪽에서 재인용. ↩
- 《희망의 조건》, 383쪽. 다음도 참조하시오. “과거 미국의 한국 지배는 정치군사적 지배권을 주요 지렛대로 이용했다. 이는 냉전시대에 한국을 반공기지로 삼으려는 그들의 요구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1990년대 냉전이 해체되자 한국에 대한 미국의 주된 관심은 경제 분야로 돌려져 경제 장악을 주요 지렛대로 한국을 통제하는 상황으로 전환되었다.”(강조는 인용자) 같은 책, 44쪽 후주 14번. ↩
- 같은 책, 379~380쪽. 새사연은 한국이 일종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가 됐다는 것은 농민운동의 중요성이 전보다 감소했다는 것에서도 드러난다고 본다. “지금은 도시가 중심이 되는 사회운동에서 농민이 주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같은 책, 394쪽. ↩
- NL의 주요 활동가인 박경순은 새사연이 한국 경제의 구조적 종속 문제를 우선시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새사연은] 한국의 신자유주의를 외국 금융자본 주도의 주주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규정하고 외국 금융자본이 한국 경제의 명맥을 장악하고 있다고 분석하면서 … [대안은] 비타협적인 계급투쟁 전략(민중 주체의 민족 자주화 전략)에서 찾기보다 구체적 대안 실현을 추구하는 참여형 국민운동(선거혁명론)에서 찾고 있다.” 2009년 9월 16일에 열린 ‘한국 신자유주의 대안 체제 모색’ 토론회 박경순의 발제문 ‘종속적 신자유주의 대안 체제로서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를 참조하시오. ↩
- “현 단계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외국자본이 경제의 명줄을 쥐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부를 제외한 한국의 자본가 계급 상당수는 이런 조건에서 이중적 지위에 처해 있습니다. 국내적으로는 여전히 자본 이익 창출에 매달리는 계급적 속성이 분명하면서도 세계화 무대에서 초국적 거대 자본과의 경쟁에서는 자체의 생존 전망이 불투명한 존재 조건이지요. 따라서 우리는 이들 자본가조차도 노동의 발전을 통해 강화된 국민경제를 기본 단위로 세계적 차원에서 경쟁하는 전략에 얼마든지 동참 가능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상상력》, 100쪽. ↩
- “국민과 국민경제를 보호하고 육성, 지원하는 기구가 될 때 비로소 국가는 지배 기구라는 낡은 틀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같은 책, 187쪽. 이런 주장은 국가를 중립적 도구로 간주하는 개혁주의적 입장이다. ↩
-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 382쪽. ↩
- “재벌 대기업과의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서 현재 우리 경제의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새로운 중소기업의 역할에 대한 고려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 더욱이 현재 중소기업을 혁신적으로 재건하지 않고서 대기업의 역할을 더 키워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도 냉정하게 재검토해야 한다.” 《희망의 조건》, 96~97쪽. 그렇다고 NGO식의 재벌개혁론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재벌 그룹의 총수 일가 지배 체제를 견제해야 한다면서 사실상 외국 금융주주 자본과 한 짝으로 움직이는 주장”을 비판한다. 같은 책, 55쪽을 참조하시오. ↩
- 다음을 참조하시오. “대기업 총수들은 최근 2년간 기업 수익이 반 토막 난 것에 대해 그것이 본인들의 투자 회피와 위험 회피 때문은 아닌지 스스로 자성해야 한다.”(강조는 인용자) 같은 책, 127쪽. “대기업은 지금까지의 ‘나 홀로 성장’에서 벗어나 청년 고용 확대를 위한 사회적 협약에 나서야 한다.” 《한국경제》, 281쪽. ↩
- 신정완 교수는 진보진영의 경제 대안 논의를 검토하면서 재벌과의 타협론자들과 재벌 개혁론자 모두 재벌의 권리와 의무를 명확히 하는 ‘기업집단법’으로 수렴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신정완, ‘한국 진보진영의 대안적 경제발전 전략 검토’, 《시민과 세계》 15호(2009년 상반기), 115쪽을 참조하시오. ↩
- “다수화 전략에서 우선 ‘고용 문제’를 국민적 의제로 전환시켜 내는 것이 시급하다. 주주 자본주의 한국에서 고용 문제는 노동부의 노동정책 문제도 아니고, 노동자만의 문제도 아니다.” 《희망의 조건》, 402쪽. ↩
- “경제 구조적으로 볼 때에도 5퍼센트의 재벌 대기업, 급부상한 금융기업, 그리고 민영화된 공기업만이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이익을 향유하고 있고, 95퍼센트 이상의 중소기업과 중견기업, 농업, 서비스업이 피해를 보는 구조다.” 같은 책, 393쪽. ↩
- “그렇다면 누가 어떤 의제를 반신자유주의 국민적 의제로 제기하고 이끌어나갈 것인가? 현재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공동 의제’를 주도할 세력은 노동자밖에는 없다. 노동자 중심 사회로, 완전한 도시형 사회로 전환된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전체 국민을 대변하는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같은 책, 224쪽. ↩
- “노동자들은 내부의 분열과 일정한 이해관계의 상충을 극복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아우르는 반신자유주의 공통 ‘경제 강령’을 세워야 하고 이 강령을 ‘총노동’의 단결을 보장할 정치적 좌표로 삼는 것이 절박한 과제다.” 같은 책, 220쪽. ↩
- “양극화의 최대 수혜자를 고립시키는 다수화 전략을 펴기보다는 양극화의 최대 피해자를 지원하는 소수화 전략을 짜온 점.” 같은 책, 393쪽 ↩
- 같은 책, 76쪽. ↩
- 중소기업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황선웅, ‘제조업 기업 규모 간 양극화의 실체와 원인’, 《중소기업의 구조적 문제와 지역산업의 실태》, 진보정치연구소(2005)를 참조하시오. ↩
- 《신자유주의 이후 한국경제》, 216쪽. ↩
- “대기업 노동조합들과 민주노총 등 전국적 노동조합 조직들도 중소기업 회생이 노동자의 최대 현안인 고용문제 해결의 핵심임을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중소기업들의 납품가 연동제를 푸는 데 동참할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 218쪽. ↩
- “보건의료노조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비용을 정규직 임금 인상분에서 일부 할애(3백억 원 예상)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더욱 의미가 크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정규직이 자신들 임금의 일정 부분을 ‘양보’할 의사를 적극적으로 보여 주었고 정규직 입장에서 ‘더 낮은 곳’으로의 연대를 실천했기 때문이다.” 《희망의 조건》, 230쪽. ↩
-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 197~198쪽. ↩
- 같은 책, 343쪽. ↩
- “노동 주도라 할 때 노동의 범위를 임금노동자 또는 전통적인 노동계급으로 국한시키지 않는다는 관점입니다. 우리 국민 가운데 대자본가, 부동산이나 자본소득만으로 살아가는 극히 일부를 제외한 일하는 국민 전체가 수행하는 노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노동자·농민 등 기층 계급만이 아니라 자영업자, 중소기업가 모두 발전은커녕 현상유지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 국민 중 거의 대다수가 자본의 발전이 아니라 노동의 발전을 축으로 하는 경제 시스템을 옹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상력》, 99쪽. ↩
- “내수 기반을 회복할 열쇠는 국내 고용의 88퍼센트를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 경기의 활성화에 있다.” 《한국경제》, 217쪽. ↩
- 강남훈, ‘지식노동과 보통노동: 지식기반경제에 관한 네 가지 주장에 대한 가치론적 비판’, 《동향과 전망》 51호(2001년 겨울), 205쪽. ↩
- 강남훈, ‘지식노동과 보통노동: 지식기반 경제에 관한 네 가지 주장에 대한 가치론적 비판’, 《동향과 전망》 51호(2001년 겨울), 205쪽. 중소기업을 부품소재 산업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이런 비판은 그대로 적용된다. ↩
- “‘진보적 경쟁력’ 논리는 자본에 대한 지원이 아닌, 이른바 ‘인적자원 개발’, 즉 노동자의 ‘인적자본’에 대한 교육훈련 투자의 증대를 통한 노동자 숙련의 향상과 슘페터적 혁신에 의해 경쟁력 강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의 시장 근본주의와 구별된다. 그러나 ‘진보적 경쟁력’ 논리는 신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경쟁력 담론, 성장 담론, 비용편익 분석을 중심으로 한 효율성 담론을 공유하고 있다. 단지 차이는 그와 같은 경쟁력 혹은 성장을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가 하는 방법의 차이일 뿐이다. … 본질적으로 ‘진보적 경쟁력’ 논리, ‘이웃 거지 만들기’ 논리로서, 진보진영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정성진, ‘한국에서 사회주의 변혁과 대안적 경제전략의 방향’, 《대안적 경제전략과 한국경제》, 한울(2009), 27~28쪽. ↩
- 《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 130쪽. ↩
- “이윤율의 구조적 저하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적 관점에서 외환위기를 설명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자본 이윤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상상력》, 46쪽. ↩
- “시장을 없애자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인류 역사는 그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항상 시장을 끌어안고 발전해 왔습니다.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복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시장을 조성하자는 것이지요.” 같은 책, 73~74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