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호를 내며
박근혜가 민중의 힘에 의해 물러나고 다음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선 정국이 시작됐다. 박근혜는 파면됐지만 박근혜 정부가 남겨 놓은 온갖 적폐들은 거의 해결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박근혜 정권 퇴진을 외치던 많은 촛불 민중은 자신들이 바라던 사회 변화와 거의 바뀌지 않은 현실 사이의 간극을 보며 많은 물음을 던진다. 도대체 민주주의란 무엇이고 또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이것 외에도 많은 쟁점들이 제기될 수 있다. 이런 물음들을 던지는 촛불 세대들에게 다가가 사회주의적 주장을 펴기도 하고 현실 쟁점을 두고 토론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선전과 이데올로기 주장을 강화할 때다. 《마르크스21》이 이런 청중을 만나 토론하는 데 좋은 도구가 됐으면 한다.
19호에는 모두 9편의 글을 실었다.
‘사반세기의 북핵문제─제국주의 체제의 압력이 빚어낸 괴물’은 사반세기 동안의 북핵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글이다. 최근 북한이 중장거리탄도미사일 북극성-2를 발사하고 역대 최대 규모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는 상황에 맞는 시의적절한 글이다. 제목이 암시하듯이 이 글은 199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진행된 북핵 문제를 북한과 미국 그리고 주변국들의 이해관계와 제국주의적 각축을 중심으로 드라마틱하게 설명하고 있다.
1917년 2월 러시아에서는 차르를 타도했던 노동자들이 대중 항쟁을 통해 8개월 뒤에는 부르주아 국가기구까지 분쇄하고 자신들의 국가를 세웠다. ‘1917년 2월 혁명─잔잔한 강물이 급류로 변하다’는 어떻게 대중의 분노가 혁명으로 나아갔는지를 살펴본다.
‘부자가 아니라 민중을 위한 민주주의’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러시아 민중의 염원이 러시아 혁명의 동력이었음을 지적하는 글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은 노동자 민주주의가 당시의 가장 선진적인 부르주아 민주주의보다 수백 배, 수천 배나 더 민주적이었음을 입증해 보였다. 이 글의 말미에 언급하고 있지만, 박근혜를 대통령 자리에서 퇴진시키기 위해 거리로 나온 수백만 명의 대중에게서도 이와 같은 염원을 볼 수 있었다.
‘러시아 혁명과 여성해방’은 100년 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페트로그라드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이 2월 혁명을 촉발시켰음을 상기시킨다. 이 글은 러시아 혁명을 여성 노동자들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는데, 당시 어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성취한 적이 없는 여성 해방 조처들이 러시아 혁명 과정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사회주의 혁명과 여성 해방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을 러시아 혁명의 사례에서 알 수 있다.
‘여성 차별의 현실과 쟁점’은 지난 3월 5일 노동자연대가 주최한 ‘여성해방 하루학교’에서 발표한 내용으로, 오늘날 여성들의 삶과 사회적 지위가 크게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다양한 차별을 겪고 있는 여성들의 현실을 잘 요약하고 있다. 또한 이 글은 여성 차별의 근원과 그 해결책도 함께 제시한다.
‘피델 카스트로, 쿠바, 사회주의’는 2016년 11월 피델 카스트로가 사망한 것을 계기로 그에 대해 독재자라는 기득권층의 비판과 좌파의 무비판적인 찬양의 극단적 평가가 나오고 있는데, 사회주의자는 그 모두에 대해 비판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20년 동안 북한식 “시장화”와 김정은 정권의 불안정’은 최근 북한에서 진행된 시장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쟁점을 다룬 글이다. 이 글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시장화가 경제 위기에서 비롯했지만 관료적 통제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런 시장화로 인해 북한 사회가 안정을 찾기보다는 오히려 긴장과 위기를 증폭시킨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최신 유행을 따르는 듯하지만 구식인 주장’은 폴 메이슨의 최신작 《포스트자본주의》에 대한 서평이다. 이 글은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한 메이슨의 상상이 사실은 앨빈 토플러 등 미래학자들이 수십 년 전에 제시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구식이고, 자본주의 장기파동, 정보재 가치에 대한 메이슨의 주장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가치를 포기하는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에릭 올린 라이트의 계급론 비판’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구조에 대한 에릭 올린 라이트의 공헌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그의 계급 이론화에 내포돼 있는 문제점과 그 정치적 함의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이 글은 신중간계급, 프레카리아트, 관리자와 감독자의 모순적 위치, 베버주의 계급론과 마르크스주의 계급론 등 계급과 관련한 중요한 쟁점들을 다루고 있다.
지난호 말미에 “2017년은 사회주의자들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할 듯하다”고 예상했는데,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기회를 붙잡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마르크스21》의 독자들은 주변의 지인들과 정치적 대화를 하는 데 이 잡지를 적극 활용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독자들의 활발한 문제제기와 토론을 기대한다.
편집팀을 대표해 이정구
MARX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