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지금의 이슈들
피델 카스트로, 쿠바, 사회주의 *
오랫동안 쿠바의 지도자였던 피델 카스트로가 지난해 11월 사망한 후, 좌우 양쪽에서 판이하게 다른 반응이 나왔다. 기득권층은 카스트로가 쿠바를 망친 독재자였다고 비난한 반면, 좌파 일부는 카스트로를 무비판적으로 찬양했다. 사회주의자는 두 관점 모두에 비판적이어야 한다고 앤디 브라운이 주장한다.
피델 카스트로가 지난해 말 사망하면서 크게 보면 두 가지 반응이 나왔다. 첫째는 우파들이 보인 고약하고 철저히 위선적인 태도다. 도널드 트럼프는 [성명을 발표해] 이렇게 말했다. “카스트로는 총살형, 절도, 상상할 수 없는 고통, 가난, 기본권 탄압이라는 유산을 남겼다.”
우리 좌파들은 이런 말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전혀 없다. 우파들이야말로, 그들 자신이든 동맹 세력이든 간에, 예나 지금이나 자국 내와 해외를 가리지 않고 (특히 남미에서) 총살형, 절도, 상상할 수 없는 고통, 가난, 기본권 탄압을 자행해 온 자들인 것이다.
자유주의 좌파와 개혁주의자 다수는 카스트로 정권을 찬양한다. 주로 카스트로 정권이 의료·교육 부문에서 보인 부정할 수 없는 성취와, 쿠바가 국제[외교]적으로 했던 구실 때문이다. 혁명가를 자처하는 좌파를 비롯한 다른 일부는 카스트로 정부를 훨씬 더 찬양하는데, 이들은 카스트로 정권을 정치적 모범 사례로 보기 때문이다.
어떤 좌파는 조사弔詞에서 이렇게 썼다.
피델 카스트로의 지도 하에 건설된 혁명적 사회[체제]는 굳건하다. 그가 영도한 사회주의적 발전으로 가는 길에 대한 정치적 헌신 역시 마찬가지다. … ‘민중의 힘’, 참여민주주의는 오늘날 쿠바 사회의 정수다. … 이것이야말로 자유와 민주주의의 본보기이며, 쿠바가 세계에 기여한 바이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부합하지 않는다. 카스트로의 쿠바를 마르크스주의적으로 분석하려면 쿠바 정권의 실재적 현실과, 그 정권의 정치경제적 관계를 검토해야 한다.
첫째 [검토할] 지점은 쿠바 혁명의 성격이다.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에서 혁명은 노동계급이 집단적 행동으로 쟁취하는 자력 해방 과정이다. [쿠바 혁명을 이끈 단체인] ‘7·26 운동’이 1956~59년에 취한 전략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당시 쿠바에서는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는지를 두고 정치적 쟁투가 벌어졌다. ‘산악 대 평원’이라 불렸던 이 논쟁은, 산악 지방에서 게릴라들이 벌이는 무장 투쟁과, 도시를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 노동자·학생·농민들이 벌이는 더 광범한 사회 운동 중 무엇이 핵심적인지를 두고 벌인 논쟁이었다. 노동자·학생들의 대중 행동에 기초한 전략이 패배하면서, 기층에서의 사태 전개와 논쟁 모두에서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이끄는 게릴라 투쟁이 굳건한 주도권을 갖게 됐다. [게릴라] 저항군이 변화의 [핵심] 수단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사회 운동은 게릴라 투쟁을 물리적·정치적으로 뒷받침하는 데 머물렀다.
권력 장악
권력 장악을 위한 [정치] 강령은 필연적으로, 투쟁이 승리한 후 득세하게 되는 사회 세력을 수반한다. 쿠바 혁명의 지도층은 본질적으로 군사 지도자들이었다(카스트로가 죽을 때까지 그의 직함은 ‘사령관’이었다). 대중은 [지도자들에게] 지지를 보내기만 하면 되는 존재였다. 쿠바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 계층이었던 (도시와 농촌의) 노동자 계급이 카스트로 정권에 지지를 보냈음은 명백하다. 노동자 계급은 부패하고 잔학한 친제국주의자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권에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었고, 바티스타 정권이 전복된 후 가장 악질적이었던 바티스타의 심복들이 처형당할 때도 슬퍼할 까닭이 없었다.
그러나 혁명의 성격 자체로 보나, 1959년 혁명 이후 국가 권력을 장악한 것은 게릴라 군대뿐이었다는 사실로 보나,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에 대중의 능동적 참여는 제약됐다. 혁명가들이 혁명을 일으켰고, 그들이 노동자·농민을 대변해 새로운 국가를 수립했다. 게릴라 투쟁의 전통에서는, 혁명의 지도자들과 노동계급 사이에 유기적·민주적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둘 사이의 분리를 강조했다.
정부 정책 측면에서 보면, 토지 개혁을 신속히 시행하는 것이 사활적이었다. 대지주의 토지는 국유화됐고 결국에는 집단 농장 혹은 국가가 운영하는 협동조합으로 대체됐다. 토지의 소유권은 대체로 국가의 손에 들어갔다. 경제의 통제권은 중앙집중적 계획 경제를 지향하는 국립은행의 손에 들어갔다.
미국의 경제 봉쇄가 심해지면서, 쿠바는 무역 상대국으로 점차 소련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이는 소련을 경제 모델로 삼는 데까지 나아갔다. 특히, 미국계 정유소들이 소련 산 원유의 정제를 거부하는 데에 대응하면서 [경제에서] 국영 부문이 확장됐다.
노동조합은 노동부 산하 카스트로 지지자들의 통제 하에 들어갔다가, 나중에는 국가 기구가 돼 지금까지도 그런 상태다. 쿠바여성연맹과 혁명수호위원회도 국가 통제를 강화하는 기구라는 점에서 [노동조합과] 비슷한 구실을 했다.
카스트로 정권 내내, 쿠바 경제의 작동 원리는 경쟁적 축적이었다. 생산 수단의 형태는 (주로 외국계였던) 사적 자본에서 국유의 사회적 자본으로 바뀌었고, 국가 관료는 [쿠바 사회에서] 새로운 지배계급이 됐다. 잉여가치는 노동계급에게서 추출돼 나와 세계 [자본주의] 경제[하]에서의 상품 생산을 위해 재투자됐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이는 설탕 산업에 주력하던 1960년대와, 생명공학과 관광업에 주력하는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냉전기 쿠바는 소련·동유럽과의 경제적 관계에 주력했고, 이 국가들이 몰락한 후에는 세계 시장, 외국계 자본과의 합작회사 설립으로 초점을 돌렸다. 경제의 소유·통제·운영은 쿠바 공산당과 군부의 고위 관료들의 손에 집중됐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이것은 평등한 사회가 아니다(애초에 평등하게끔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쿠바는 다른 나라에 대한 개입으로도 유명하다. 냉전 때문에, 남미에서 벌어지는 사회 정의·민족독립·자유를 향한 운동은 모두 미국에 위협으로 다가왔다. 쿠바 혁명으로, 잔혹한 친미 세력을 몰아낼 수 있었고 미국 자신도 도전받을 수 있음이 드러났다. 쿠바는 미국 제국주의에 맞선 저항의 상징으로 남았고, 이후 수십 년 동안 남미 어디서든 쿠바 혁명을 찬양하지 않는 반제국주의자를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집권 초 쿠바 혁명 정부는 남미 내 다른 반제국주의 세력들과의 연계를 확립·확장하고자 했다. 그 반제국주의 세력들 중 다수는 [혁명 직후] 쿠바로 몰려들었는데, 이들에게 쿠바 혁명의 권위는 엄청났다. 그러나 쿠바와는 상황이 다른 나라들에서 쿠바 혁명을 본보기 삼았던 시도들은 종종 재앙으로 끝났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정치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부적절한 전략을 적용하려다, 최고의 청년 투사 한 세대가 무의미하게 희생됐다. 쿠바 혁명을 본보기 삼았던 도미니카공화국·파라과이·니카라과·과테말라·아르헨티나·페루·볼리비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헛되이 목숨을 잃었다.
반제국주의
1960~70년대에 쿠바는 러시아의 원조·투자·시장 제공에 의존했는데, 이 때문에 쿠바는 남반구와 비동맹운동에서 소련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구실을 하게 됐다. 그렇다고 이것이 예속적 충성은 아니었다. 소련과 별개로 쿠바의 독립적 이해관계도 있었다. 또한 쿠바 혁명가들은 독립과 반제국주의라는 원칙에 진지했다. 예컨대 1975년 앙골라에 대한 쿠바의 개입은, 소련의 이해관계뿐 아니라 쿠바의 [독립적] 이해관계와 [쿠바 혁명가들의] 반제국주의 원칙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앙골라인민해방운동에 대한 쿠바의 지원은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했을 뿐 아니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을 상당히 골치 아프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쿠바는 소련의 지정학적 이득을 증진시키는 데 일조했을 뿐 아니라, 사회주의적이지도 민주적이지도 않은 정권들이 수립되게끔 돕는 구실도 했다.
쿠바가 남미에서 페루의 벨라스코 정부나 파나마의 토리호스 정부 등 어느 모로 보나 사회주의적이기는커녕 매우 억압적인 정부들과 연계를 맺은 것을 봐도 그렇다. 쿠바가 특정 정부에 대한 지지 여부를 결정할 때 유일한 기준은, 그 정부가 미국의 이해관계에서 독립적인지 뿐이었다. 에티오피아에서 데르그[임시군사·행정위원회] 군부 독재 정권이 수립되면서 [에티오피아가] 서방 진영에서 동구권으로 옮겨오자, 이 정권이 혁명가들을 투옥하거나 국외 추방하고 유혈 낭자한 내전을 벌여 다른 부족의 땅을 빼앗았는데도 쿠바는 주저 없이 데르그 정권을 지지했다.
사회주의는 노동자들이 [지배자들의 손에서] 세계를 빼앗아 오는 의식적인 과정이다. 노동자들 스스로가 노동자 권력을 행사하는 조직을 스스로 만들고 운영해야 한다. 노동자들 스스로가 직접적·능동적·민주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국가가 노동자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장할 만한 근거는 전혀 없다. 그 국가가 혁명가들에 의해 운영되더라도 마찬가지다. 바로 이것이, 카스트로가 이끄는 쿠바의 성격을 가늠할 때 중요한 점이다. 제국주의 세력[미국]에 대해 독립적이고 자주적이라고 자처하는 약자[카스트로]를 응원하고 환호를 보낸다 해서, 정치적으로 무비판적 지지를 보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영국의 자유주의 주간지 〈옵서버〉에 실린 카스트로 조사에서 윌 허튼은 카스트로가 “평생 엄청난 불리함을 무릅쓰고 부단히 투쟁했다”고 썼다. 이것은 정치적 분석으로는 부족한 서술이다. 사회주의자라면 모두 쿠바가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 단호하게 독립을 유지했던 것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고 환호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이 카스트로와 쿠바 정부를 최종적으로 평가할 때는 반드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누구인가’, ‘착취에 기반한 국가를 [대중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국가로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에 대한 분석에 기초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카스트로 정권은 많이 부족하다.
쿠바 혁명은 단호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잘못된 노선을 택하고 정치적 실수를 저지른 것 때문에 질식사했다. 당시의 쿠바 혁명에서 오늘날 그리스의 저항과 베네수엘라의 ‘21세기 사회주의’에 이르기까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막론하고 지구 전역에서 일어난 저항은 모두 운동 세력·민중·정부에게 종속, 의존성, 빈곤을 강요하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와 세계 시장의 잔혹함 때문에 질식사했다.
또한 쿠바 혁명은 제국주의의 냉소주의와 폭력과 잔혹함 때문에 고사했다. 해결책은 국제 노동계급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에 달려 있다. 그런 투쟁이야말로 착취 당하고 억압 받는 사람들을 현 체제를 타도하는 투쟁으로 단결시킬 것이다. 쿠바에서든, 미국에서든, 영국에서든, 어디서든 마찬가지다.
MARX21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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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ndy Brown, Fidel Castro, Cuba and socialism, Socialist Review (January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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