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계급 이해하기》
에릭 올린 라이트의 계급론 비판 *
조셉 추나라(Joseph Choonara)가 쓴 이 글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이 발간하는 계간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International Socialism에 실릴 예정이다.
1 라이트는 통찰력 있는 이론가일 뿐 아니라 보기 드물게 스스로 반성하고 또 자기 비판도 하는 인물이다. 그가 지난 40여 년 동안 전통적 마르크스주의 계급 분석을 발전시켰을 뿐 아니라 이에 문제 제기도 하면서 수많은 통찰들을 제공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에릭 올린 라이트는 40년이나 계급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 라이트가 숙고에 숙고를 거쳐 형성한 많은 개념들은 계급 구조와 계급 의식에 관한 실증적 조사(처음에는 미국과 이탈리아에 집중했지만 이후에는 그 범위를 넓혔고 기간도 20년 동안이나 계속했다)의 결과물들이다.2 발전시킨 계급 체계에 대한 라이트의 비판, 카를 마르크스와 막스 베버의 계급론 비교 등이 실려 있다. 또한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 관한 유용한 논의도 포함돼 있는데, 라이트는 지난 세기 불평등의 오르내림에 대한 피케티의 실증적 분석이 지닌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가 지닌 주요 약점(특히 그의 자본 개념과 계급에 관한 엄밀한 개념 부재)을 지적한다. “프레카리아트”가 하나의 뚜렷한 사회 계급이라는 가이 스탠딩의 개념을 다룬 라이트의 글이 이 책에서 처음 출판된 것도 반갑다. 라이트는 스탠딩의 주장을 대부분 일축하며, 불안정한 처지에 있는 프레카리아트가 “노동계급의 특정한 한 부문”이고 더 광범한 프롤레타리아와 대단히 중요한 장기적 이해관계를 공유한다고 본다. 3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구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라이트가 1995~2015년에 쓴 논문들을 모아 놓은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에는 계급에 관한 라이트의 최근 입장뿐 아니라 다양한 저자들이이 책의 광범한 내용을 하나하나 다루기보다 이 책에 담긴 글들에 영향을 미친 계급 이론화에 관한 라이트의 공헌 중 몇 가지를 평가하고자 한다.
신중간계급 아마 이 저널[《인터내셔널 소셜리즘》International Socialism]의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라이트의 공헌은 이른바 “신중간계급” 개념에 관한 그의 초기 설명일 것이다. 라이트의 설명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의 전·현 편집자의 글에 영향을 줬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가 생산수단을 실질적으로 통제(대개는 소유)하는 자본가 계급과 임금을 받는 노동계급으로 양극화된다고 예상했다. 마르크스는 충분히 발전한 자본주의 체제보다 먼저 생겨난(자신이 탄생한 사회보다 더 오래 살아남은) 계급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들 중 가장 중요한 집단이 프티부르주아지인데, 이들의 대부분은 전 세계적으로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는 소규모 농업 생산자들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이 집단의 상대적 규모와 사회적 비중이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6 신중간계급이 단지 자본가라면 자본가 계급은 훨씬 커질 것이고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경계는 이전에 인식했던 것보다 훨씬 흐려질 것이다. 신중간계급이 노동자라면 노동계급은 여전히 압도적 다수가 되겠지만, 자본주의의 특징인 계급 적대가 노동계급 내부로 들어올 것이며 과연 노동계급이 일관되게 세계를 바꿀 수 있는지 의문이 제기될 것이다. 이 상황을 분석할 새로운 개념이 필요했다.
하지만 마르크스 사후 마르크스주의는 계급 구조에서의 위치가 명확하지 않은 집단들이 대거 등장하는 사태에 직면했다. 마르크스주의 저술가들 내에서도 이 신중간계급 범주에 누가 포함되는지를 두고 견해가 달랐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자본주의 기업 내에 형성돼 있고 전통적으로 자본가와 관련 있는 관리자 구실을 하지만 프롤레타리아처럼 임금을 받기 위해 일하는 집단이다. 1960년대 말부터 부활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 이 집단의 정체성과 성격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는데, 당시 이 집단은 이미 많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력 중 큰 부문을 형성하고 있었다.풀란차스 비판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풀란차스의 접근법은 계급을 매우 광범하게 재정의하는 것이었다. 풀란차스의 경우, 계급은 단순히 생산수단이나 다른 계급들과 관련한 지위뿐 아니라 “정치적·이데올로기적 기구”와 관련한 위치로도 규정한다. 경제적 지위가 여전히 “결정적 구실”을 한다면서도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요소도 “매우 중요하다”고 여긴다. 7 하지만 풀란차스는, 경제적 관점으로 보면 생산적이고, 즉 마르크스주의적 의미로 잉여가치를 생산하고, 유형의 상품을 만들어야만 노동자 계급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게다가 풀란차스는 “사회 계급은 계급적 실천과 일치”하고 “계급은 오직 계급투쟁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쓴다. 8 이 분석에 따라 풀란차스는 “임금을 받는 이 새 집단은 … 전통적인 프티부르주아지와 같은 부류”라고 주장했다. 즉, 이들은 “신新프티부르주아지”라는 것이다. 9
그리스의 마르크스주의자 니코스 풀란차스가10 생산적 노동자만을 노동자 계급으로 보므로, 금융이나 회계 같은 비생산적 부문에 종사하는 임금노동자는 노동계급에서 제외하고 신프티부르주아지에 포함시킨다. 11 공공부문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12 풀란차스는 사무직 같은 “정신노동” 종사자도 제외하는데, 더 광범한 노동계급과 노동조건이 비슷하고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전복하는 데서 이해관계가 같은 데도 말이다. 13 풀란차스의 근거는 그들의 노동이 노동계급의 노동과는 구분되는 일련의 “의례적인 일, 전문 지식, ‘문화적’ 요소 등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래서 “일반적인 ‘서류 작업’과 ‘사무직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전통적인 존경을 받는다”는 점이다. 14
라이트는 풀란차스를 철저히 비판한다. 첫째, 라이트는 풀란차스의 노동계급 정의가 너무 좁다고 주장한다.15 이 집단의 특징은 “그들이 유지하고 있는 정치적 관계의 우위”다. 16 하지만 작업장에서 그들이 하는 구실 중 경제적인 것이 아닌 특별히 정치적인 것이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 17 둘째 집단은 “엔지니어와 기술자”로, 이들은 생산적이라 여겨진다. 이들은 과학을 생산에 적용하는 작업을 하는데, 이 일은 “지배 이데올로기에 상응하는 이데올로기적 활동과 뒤섞여 있다.” 18 이 주장에서도, 이른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구분을 왜 단순히 같은 노동자 계급 내 구별되는 집단들로 나누는 기준 정도가 아니라 계급을 나누는 분할선으로 여겨야 하는지 분명치 않다. 19
둘째, 라이트는 “신프티부르아지” 개념의 일관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 범주에 해당하는 주요 집단은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관리자와 감독자인데, 풀란차스가 전적으로 비생산적이라고 잘못 판단한 집단이다(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살펴볼 것이다).20 이는 경제가 중심적 구실을 한다는 풀란차스 자신의 주장과 어긋나는 것이다. 사실상 풀란차스에게 정치와 이데올로기는 “거의 대등한 지위를 차지한다.” 21
풀란차스의 연구는 한편으로는 노동자를 규정하는 엄격하고 융통성 없으며 부정확한 범주와 관련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기준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은 누구든 (그들이 수행한다고 인지된 정치적·이데올로기적 구실 때문에라도) 프티부르주아지로 분류된다. 이 기준에 따라 라이트가 추정한 결과를 보면, 미국에서 프티부르주아지는 1969년 미국 노동인구의 70 퍼센트까지 차지한다.모순된 계급적 위치
22 “모순적 위치를 … 그 자체로” 연구해야 한다고 본다. 23 라이트는 모순된 위치들 세 가지를 구체적으로 명시한다.
라이트의 대안적 설명이 1978년에 출판된 《계급, 위기, 국가》의 중심 내용을 이룬다. 여기서 그의 관심은 “계급 구조의 모호함을 … 다룰 대안적 방식”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는 계급 구조 내의 몇몇 지위를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계급 관계에서 객관적으로 모순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해야 하고,라이트는 자신의 정의를 사용한 1969년 연구를 바탕으로 미국의 여러 집단들의 규모를 추정했다. 그 결과, 미국 노동인구의 12 퍼센트는 상층과 중간층 관리자와 테크노크라트[비교적 권한이 많은 과학 기술 분야 전문가]이며, 18~23 퍼센트 사이의 얼마는 노동계급에 가까운 모순된 계급 위치를 차지한다. 라이트가 쓴 바에 따르면, 엄밀한 의미의 노동계급은 “경제활동인구의 41~54 퍼센트 사이”이며 “노동계급의 경계에는 경제활동인구의 25~35 퍼센트가 존재한다. … 따라서 사회주의 운동의 잠재적 계급 기반은 전부 합쳐서 … 경제활동인구의 60~70 퍼센트 사이의 얼마다.”관리자와 감독자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 사이라는 모순된 위치를 차지한다. (2) 직접적 노동 과정을 비교적 높은 수준으로 통제할 수 있는 특정 범주의 반半자율적 피고용인은 노동계급과 프티부르주아지 사이라는 모순된 위치를 차지한다. (3) 소규모 고용주는 부르주아지와 프티부르주아지 사이라는 모순된 위치를 차지한다. 24
사회적 노동 분업 내에 존재하는 세 가지 지위 군群들은 계급 관계 내에서 모순된 위치를 점하는 특징이 있다. … (1)
라이트가 생각해 낸 돌파구는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지만 문제점도 있다. 그는 치열히 논쟁하고 자기 비판을 한 끝에 해결되지 않은 쟁점들이 뭔지를 지적했다. 그런데 그가 이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자신의 초기 연구를 수정하지만, 이는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를 만들고 타당한 통찰도 약화시킬 뿐이다.
모순된 위치는 한 개인가 세 개인가?
첫째 문제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모순된 계급 위치가 다른 두 위치(프티부르주아지와 자본가 사이, 프티부르주아지와 노동자 사이)와는 다른 중요성이 있다는 점이다.
26 사실상 자본주의에서 프티부르주아지는 두 가지 모순된 구실을 수행하도록 강요받는다. 착취자와 피착취자, 즉 자본가와 노동자다. 프티부르주아지는 “두 사람으로 나뉘어진다.” 27 심지어 “실제로 자본에 예속돼 있지 않은 노동도 생각 속에서는 예속돼 있다. 예컨대 자영업자는 자기 자신에게 임금노동자다. 그가 소유한 생산수단은 그의 마음속에서 자본으로 보인다. 그는 스스로 자본가로서 자기 자신을 임금노동자처럼 일하게 한다.” 28
자본주의가 지배적 생산양식이 되면, 이전에 존재하던 여러 계급들은 자본주의에 맞게 바뀌어 흡수된다.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형태의 사회에서는 한 가지 특정한 종류의 생산이 나머지보다 우세하며, 그 생산관계가 나머지에게 순위를 부여하고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것은 다른 색깔을 모두 감싸고 그것의 특수성을 변형시키는 보편적인 불빛이다.”프티부르주아인 사업주는 필연적으로 착취자와 피착취자의 구실을 모두 수행해야 한다. 그들은 자신에게 임금으로 보상하면서 동시에 그들 자신의 잉여노동을 이윤으로 전유해야만 하며, 자본주의적 경쟁 과정 속에서 수익성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압력을 느낀다. 이는 이 계급의 구성원들이 자본가 계급과 노동계급으로 점차 바뀔 것임을 암시한다. 첫째 경우에는 소자본가가 될 것이고, 둘째 경우에는 자본가와 계약한 반半자율적 피고용인이나 고용 상담사 등이 될 것이다. 이렇게 점차 바뀌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두 가지 새로운 모순적 계급 위치를 창조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이들이 두 구실을 어느 정도로 수행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이를 신중간계급층과 비교해 보라. 신중간계급은 자기 착취나 재산 소유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들은 자본주의 기업이 만들어 낸 새로운 방식으로 자본과 노동의 사회적 기능들을 결합해 수행한다. 라이트의 모순적 계급 위치 개념이 가장 잘 들어맞는 것은 이런 경우다.
29 그러나 상품 교환이 대부분 사회의 특징이지만 단순상품생산이 예컨대 봉건제나 자본주의와 구분되는 별도의 생산양식으로 존재한 적은 없다. 그런 생산양식이 역사적으로 존재했다손 치더라도, 라이트처럼 관련 계급들을 단지 역사적 유물로서 자본주의 논리 바깥에서 작동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대단히 충격적이고 모순적인 방식일지언정 자본주의 사회에 자리 잡고 통합된 계급으로 봐야 한다.
라이트는 두 종류의 모순적 계급 위치가 차지하는 지위의 차이를 언급한다. 안타깝게도 그는 프티부르주아지가 별도의 “단순상품생산”양식이라는 자본주의 바깥의 생산양식에 속한다고 주장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자율성, 통제, 착취
30 라이트는 자신의 초기 기준에 따르면 학교 경비 노동자가 항공기 조종사보다 더 자율적이라고 분류될 것이고 따라서 더 모순된 위치에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31 밸 버리스가 묻듯이, “어느 정도까지 통제할 수 있어야 노동계급에서 제외될 것인가?” 32
라이트는 이후 저작에서 자신의 모순적 위치 개념의 둘째 문제를 언급한다. 초기 저작에서 라이트는 프티부르주아지와 노동자 사이에 위치한 집단의 주된 특징을 자율성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자율성을 프티부르주아의 특징이라고 보는 것은 의심스럽다. 프티부르주아의 작업 방식이 자본주의 체제가 가하는 압력을 받기 때문이기도 하고, 일부 노동자들이 작업장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누리기 때문이기도 하다.33 지배는 당연히 작업장 내에 존재하며 노동자 착취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계급 지배에 고유한 것이 무엇인지를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라이트가 사회에 대한 “다중적 차별” 관점이라고 부른 것으로 미끌어지고 말 것이다. ‘다중적 차별’ 관점은 사회가 중첩된 여러 형태의 지배를 특징으로 한다고 보는 관점으로, “성적·인종적·민족적·경제적 지배 중 그 어느 것도 설명적 차원에서 우위를 갖지 못한다”고 본다. 34
더 일반적으로 라이트는, 자신의 초기 저작에서 계급 간 착취가 계급 지배를 위한 단순한 “배경적 개념”이 돼 버렸다고 말한다.35 오히려 쟁점은 착취를 얼마나 잘 이론화하느냐이다. 《자본론》 제1권에서 마르크스는 생산과정에서 노동자 착취가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는지를 보여 줬다. 사회적 추상 노동이 새 가치를 창출하는데, 이 가치는 상품을 만드는 데 드는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으로 결정된다. 반면 노동자는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가치만을 (과거의 투쟁들을 통해 자본으로부터 얻어 낸 추가분을 포함해) 임금이라는 형태로 받는다. 36 그 차이인 잉여가치는 자본주의 하에서 지불받지 못한 노동시간이 전유되는 특징적 형태다.
라이트는 자신의 초기 저작들에서 착취가 부차적이었다고 자기 비판하는데, 이것은 설득력이 조금 떨어진다. 예컨대 1979년에 출판된 《계급 구조와 소득 결정》에서 라이트는 착취를 상당히 정설적으로 서술했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 착취는 지배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종속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잉여노동을 전유할 수 있는 관계를 뜻한다.” 게다가 그는 이것을 “계급 관계의 핵심”이라고 묘사했다.37 라이트를 포함해 분석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가장 가치 있고 독창적인 것은 세계에 관한 본질적 명제들이다. 마르크스주의가 방법 면에서 특출하다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은 대체로 좋게 말해 오해의 소지가 있고 나쁘게 말해 유해하다.” 38 이 이론가들은 대부분(로버트 브레너는 부분적으로 예외다) 마르크스의 방법을 폐기하고 그 대신 학술적 사회과학에서 유래한 방법을 채택하면서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신리카도주의”나 “스라파주의”의 비판을 수용했다. 39
그러나 라이트는 당시의(그리고 이후 더 많아진) 여러 마르크스주의자나 포스트마르크스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 이론의 이 측면을 점점 더 회의하게 됐다. 라이트는 존 로머, G A 코헨, 욘 엘스터 등 스스로 분석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밝히는 이론가 집단과 같은 방향으로 이동했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생산을 사회적이면서 기술적인 과정으로 다루는 데 반해 스라파주의자들은 생산을 순전히 기술적인 과정으로만 본다. 노동을 포함한 물리적 투입물들과 기술의 특정한 집합이 투입물의 가격에 의해 그 가격이 결정되는 특정한 물리적 산출물을 낳는다는 것이다. 이 설명에서 “죽은 노동”(기계 등)은 노동자가 수행하는 산 노동과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취급된다. 스라파주의자들은 각각의 상품 가격을 정하는 연립방정식들을 만들어 냄으로써 그 체계를 수학적으로 풀 수 있었다. 그래서 스라파주의자들은 예컨대 이윤율은 생산의 기술적 조건과 임금률의 조합에 달려 있다는 점을 보여 줬다. 하지만 이 해법은 주어진 생산 사이클에 들어간 투입물의 가격이 그 사이클에서 나온 산출물의 가격과 같다는 수학적 접근법을 채택하고 있다. 다시 말해 사실상 시간이 사라진 정적인 평형 체계였다.41 마르크스가 《자본론》의 초기 비판자에게 보낸 편지에 쓴 다음의 지적이 라이트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라이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노동이 가치의 원천이라는 생각은 노동 착취 개념을 증명하는 데 유용한 장치일지 모르지만, 노동만이 인과적으로 가치를 창출한다고 믿을 만한 설득력 있는 이유는 없다. 마르크스는 분명 이 가정에 대해 어떤 수미일관한 옹호론도 제시하지 않았다.”불운한 그 친구는 (내 책에 “가치”에 관한 장이 전혀 없다 할지라도) 내가 실제 관계에 대해 내놓은 분석이 실제 가치 관계를 증명하고 보여 준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논의하고 있는 문제와 과학적 방법 둘 다에 대해 완전히 무지해야만 가치 개념을 증명할 필요성에 대해 떠들 수 있다.마르크스는 이 가정을 매우 “일관”되게 방어한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의 세 권에 걸쳐 자신의 가치 이론을 기반으로 해서 자본주의의 동학에 관한 설명을 발전시켰다.
44 이 개념은 다양한 모형과 게임이론의 사고(思考) 실험을 포함하는데, 착취를 생산 외부에서 부를 전유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이런 종류의 접근법에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약점이 있다. 첫째는 완전히 추상적이라는 점이다. 자본주의를 역사적으로 특정한 체제로서 보지 않는 것이다. 버리스는 다음과 같이 쓴다. “로머의 방법은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연역적 모형처럼 자본주의 사회의 역사적 특징을 무시하며, 형식적·몰역사적 유사성에만 초점을 맞춘다.” 45
라이트가 마르크스의 입장을 거부하면서도 자신의 분석의 중심에 착취를 놓고자 했을 때, 그는 동료 분석 마르크스주의자 존 로머가 발전시킨 착취 개념으로 그 간극을 메웠다.46 로머의 접근법은 서로 다른 자산을 갖고 있는 개인들에서 출발해, 거기서 착취에 대한 설명을 끌어낸다. 이는 마르크스주의 접근법과 완전히 반대된다. 마르크스주의는 생산관계로부터 출발해, 개인들을 그 맥락 속에 자리매김시킨다. 47
둘째 문제는 “방법론적 개인주의”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방법론적 개인주의’는 계급 같은 집단의 집합적 능력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사회를 [단지] 개인들의 합으로 설명하며 “미시적 차원의 분석이 거시적 차원의 분석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한다.48 라이트는 《계급 이해하기》에서 그 주장을 다시 펼쳤는데, 방법론적 개인주의를 “원자론”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라이트는 “개인들 사이의 관계”와 달리 “관계들 사이의 관계”를 사회적으로 설명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고 명시적으로 주장한다. 49 따라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나 자본(마르크스가 사회적 관계로 본)과 노동의 모순 같은 개념이 들어설 자리는 거의 사라진다. 하지만 실제로 라이트는 이처럼 자신이 거부하는 주장들에 기초해 있는 언어를 종종 채택하는데,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썼다. “착취는 한 계급의 이해관계가 다른 계급의 이해관계와 대립하는 동시에, 그 두 계급이 진행 중인 상호작용에 결합되어 있는 사회적 관계인데, 이는 불이익을 받는 집단에게 착취자의 이해관계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한다.” 50 착취에 관한 이런 훌륭한 묘사가 “계급 같은 집단적 실체를 행위자로서 상정”하는 “방법론적 집단주의”와 어떻게 다른지는 이해하기 어렵다. 51
라이트는 방법론적 개인주의의 극단적 형태에는 비판적이다.모순된 계급 위치를 재구성하기
52 하지만 로머의 상상 속에 있는 몰역사적 사회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사회를 고려하면, 생산에서 착취가 일어나는 방식과 생산수단의 분배를 별개인 것으로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가들이 생산수단을 통제하고 노동자들은 그러지 못하므로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팔고 자본가를 위해 잉여가치를 생산해야만 한다. 53 이로부터 비롯하는 착취 덕분에, 자본이 축적 과정을 통해 팽창함에 따라 자본가의 생산수단 통제력은 더한층 굳건해진다.
라이트가 착취를 재개념화한 것은 자신의 계급 분석에 두 가지 깊은 영향을 줬다. 첫째, 그가 쓰는 글의 초점이 생산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에서 재산 관계(서로 다른 계급 사이에서 자산이 분배되는 방식)로 옮겨 간다. 라이트는 생산 지점에서의 지배가 “대부분의 자본주의 생산이 보이는 가장 역사적인 형태의 중요한 특징”이긴 하지만, “자본-노동 관계의 기초”를 실제로 구성하는 것은 “생산적 자산”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라는 점을 인정한다. 둘째, 라이트는 사회 전반에 분배될 수 있는 여러 형태의 자산들(생산수단, 노동력, 기술, “조직적 자산”)을 언급하며, 이 자산들이 일련의 이질적이고 모순적인 위치를 특징으로 하는 훨씬 더 파편화된 계급 구조를 만든다고 본다. 이를 보면, 라이트가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에서 얼마나 많이 멀어졌는지를 알 수 있다. 굴리엘모 카르케디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이제 “조직, 기술, 자본이 노동력과 동등한 생산적 자산이 된다. 반면 마르크스주의 노동가치론은 노동력만을 가치의 원천으로 본다. 다른 요소들은 노동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라이트는 ‘생산요소’ 이론의 한 변형을 채택한 것이다.”55 “기술 착취에서 희소한 기술의 소유자는 그들의 임금에서 지대 요소를 뽑아낼 수 있다. 이는 임금에서 기술 자체를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비용을 넘어서는 요소다.” 56 라이트는 다른 곳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기술과 전문 지식은 피고용인에게 특별한 권한을 제공하기 때문에 계급 관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규정한다.” 57
라이트는 접근이 제한된 기술 소유자들이 다른 사람들을 착취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생산하는 “한계생산물”의 가격이 제 가치보다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다.58 숙련 노동을 둘러싼 논쟁(“환원 문제”로 알려져 있다)이 가치 이론에서 중요한 미해결 문제 중 하나로 남아있으므로, 기술을 마르크스의 가치 이론의 맥락 속에 놓는 것은 간단하지 않은 문제다. 59
하지만 우선 어떻게 기술이 노동력과 구분되는 자산인 것인지가 분명치 않다. 또, 라이트는 어떻게 숙련 노동자들이 미숙련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을 전유하는지도 설명하지 않는다.60 그러나 자본은 결국 이 매듭을 풀어 “단순” 노동이라는 바다에 담그는 경향이 있다. 노동 과정을 쪼개서 기계화하거나 일반적 교육 수준을 높이고 노동력의 일부 부문을 훈련시켜서, 즉 데이비드 하비가 “독점 불가능 기술”이라고 부른 것을 창출해서 말이다. 61 마르크스에 따르면, 이런 역사적 과정이 일어나기 전까지에는 예외적 형태의 노동력이 일정 기간 동안에는 단순 노동보다 더 큰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복잡 노동은 보수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재생산하는 데 더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노동자들이 자본으로 하여금 더 많은 비용을 내도록 관철시킬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62 그런 지위에 있는 노동자들은 임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한동안 자신을 신중간계급과 동일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이유로 숙련 노동자들이 덜 숙련된 노동자들을 착취한다고 전제로 할 수는 없다.
나는 예외적 형태의 숙련 노동(나는 마르크스를 따라 “복잡 노동”이라고 부르는 것을 선호한다)이 자본주의라는 천에서 매듭 구실을 하는데, 자본주의라는 천에서 특정한 형태의 노동은 다른 많은 사람들이 대체할 수 있느냐는 실질적·물리적 면에서 아직 추상적 노동이 되지 않았다고 본다. “물질적 생산양식”으로서 자본이 그런 노동 과정을 “실질적으로 포섭”할 수 있는 “적절한 양식”을 아직 창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63 이 맥락에서 볼 때 하나의 특화된 노동자가 필연적으로 다른 노동자들보다 가치를 더 많이 생산할 것이라고 가정할 근거는 없다. 64 여기서 임금의 차이는 상이한 노동력들이 노동시장 구조에서 재생산되고 착근되는 방식의 차이, 노동력 부문이 자본으로부터 얻어 낸 임금의 ‘역사적·도덕적’ 요소의 상이한 배분, 노동자들이 여러 직종이나 생산 분야에 배치되는 데 일조하는 임금 차이를 반영할 뿐이다. 65 복잡 노동은 재능이나 훈련 덕분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능숙”하게 일하는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 노동자는 단지 상품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을 사회적 필요노동시간 이하로 줄임으로써 노동생산성 향상에 기여할 뿐이다(마르크스도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66
이 분석에서 말하는 복잡 노동은 “특화된 노동”이라고 불리는 것과 같이 것은 아니다. 각 노동자는 자본주의 생산의 특징인 “집단적 노동자” 내에서 특정한 지위를 차지하는데, 자본주의 생산은 서로 다른 특화된 노동력을 서로 구분되지 않도록 섞어 버린다.67 이 분석에서는 기술 “수준”이 어느 정도에 이르러야 그 노동자가 착취자로 바뀌는 것인지, 혹은 진정한 노동계급에서 제외되는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이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라이트가 전후 미국에서 “전문 경영자”와 함께 “전문가”의 규모가 증대한 것을 근거로 “전통적 마르크스주의”보다 탈산업사회 이론들의 예측이 더 잘 들어맞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68
라이트는 이렇게 가치 이론에 입각해 사고하지 않은 채 “복잡 노동”을 특화된 노동으로 뭉뚱그리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라이트 자신의 표현에 따르러다도 “관계에 기반한 계급 분석과 점진적 계층화에 기반한 분석 사이의 날카로운 구분이 흐릿해진다. 어쨌든 기술은 계속해서 존재한다. … 따라서 기술 ‘수준’은 계급 관계 구조 내 위치라기보다는 불평등 구조 내 계층을 암시한다.”스탈린주의의 그림자 라이트의 이론이 형성된 시기의 역사를 고려하면 “조직적 자산 착취” 개념이 생겨난 이유가 더 분명해지겠지만, 그럼에도 이 개념은 미심쩍다. 라이트는 소련과 소련을 모델로 한 사회들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 사회들에 엄연히 존재하는 구조적 불평등을 고려할 때, 어떻게 계급으로 나뉘어져 있는 그 사회들을 탈자본주의적이라 할 수 있을까? 라이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계급에 대한 실증 분석의 많은 부분에서 사용된 형식적 조작 기준이 자본주의나 ‘현존 사회주의’에 거의 아무런 수정 없이 적용되었다.”
70 이 사회들에서는 전통적으로 사적 자본가들이 하는 구실을 국가 관료가 한다. 라이트는 “국가 권력이 사용돼 상이한 목적을 위한 자원 배분을 명령하는 권위적 국가 조정”을 시장을 통한 경제적 조정과 대비시킨다. 71 하지만 이 관점은 국가자본주의 사회의 국가가 마치 자원을 마음대로 배분할 수 있는 것처럼, 즉 서로 경쟁하는 자본주의 국가들이 벌이는 제국주의적 경쟁의 맥락 ― 자본주의 사회들이 서로의 생산 조건을 따라잡도록 강제하는 경향이 있는 ― 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처럼 여긴다.
이 말에서 이끌어 낼 수 있는 결론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토니 클리프가 내린 결론으로, 소련과 그 비슷한 사회들을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로 설명하는 것이다.72 그 대신 라이트는 그 사회들을 또 다른 착취 논리가 작동하는 탈자본주의 계급사회라고 보며, 지배적 관료들이 “조직적 자산”을 통제하므로 착취가 생긴다고 주장했다. 73 그들이 “조직적 자산”을 통제하는 덕분에 사회 전반에 적용되는 생산 방식을 결정하고 따라서 노동하는 사람들로부터 잉여가치를 전유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전통적 자본주의와 무엇이 다른가? 전통적 자본주의에서도 생산에 대한 궁극적 통제력이 자본가에게 지극히 중요하다. 자본가들도 지배계급이기 때문에 “조직적 자산”을 통제할 수 있다. 74 소련 대중이 법률적으로는 생산수단을 소유했을지도 모르지만, 이는 가식에 불과했다. 카르케디가 다음과 같이 지적했듯이 말이다.
라이트는 클리프식 분석을 선험적으로 배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실 국가사회주의가 ‘실제로는’ 자본주의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자본 자산의 조직체를 통제하려면 실질적·경제적 면에서 그것을 소유해야 하므로 자본 자산 소유와 조직적 자산 소유 사이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이 구분을 고수하는 것은 소유를 법적 소유로 축소하는 것이고, 이는 라이트의 문제틀에서 볼 때 불합리한 결과로 이어진다.
76 라이트에게 그 구분은 투자의 흐름을 관리하는 자들이 자신이 통제하는 잉여를 “자본화”하고 난 뒤에 이를 착취의 원천으로 전환할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는 듯하다. 77 하지만 소련을 다스리던 자들도 서방 세계의 지배자들과 마찬가지로 잉여를 축적해야 했고, 이어서 착취를 더한층 강화해 지배계급으로서 지위를 확고히 해야 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상당한 물질적 혜택을 얻었다. 78
라이트는 “‘국가주의’ 사회에서 국가 계획자들이 사회 전반에서 투자의 흐름을 통제하고 있으며, 그래서 그들이 무엇이든 ‘소유’하거나 ‘통제’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조직적 자산’뿐 아니라 생산수단을 소유한다는 의미”라는 점을 인정한다.79 실제로 라이트는 “관리자-관료”를 자본가계급의 잠재적 경쟁자로 보며, 전통적으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노동계급에게 부여한 사회의 대안적 지배자로서 구실이 ‘관리자-관료’에게로 이동했다고 여긴다. 80 하지만 서방 자본주의에서든 소련에서든 잉여가치를 투자로 돌리는 행위를 포함한 궁극적 생산 조직 구실(이는 자본가 지배계급이 감독한다)과 조직 관리 기능(이는 감독자와 관리자가 생산 과정 속에서 위임받는 것이다)은 구분된다. 81
이런 혼란은 특히 문제이다. 왜냐하면 라이트는 자신의 초기 저작에서는 관리자들이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모순된 위치를 차지한다고 보며 서구 자본주의의 계급 구조를 분석했는데, 이제는 이를 수정해 관리자들을 조직적 자산에 대한 통제력과 결부시켜 규정하기 때문이다.82 이제 라이트는 이렇게 쓴다. “자본주의 사회에는 단지 자본주의적 착취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착취가 있다고 이해해야 한다.” 중간계급은 “자본주의적 메커니즘의 측면에서는 착취당한다. … 하지만 하나 이상의 이차적 착취 메커니즘의 측면에서는 착취자다.” 83
라이트가 이론틀을 수정해 자신의 초기 연구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다가 대체로는 훨씬 더 파편화되고 혼란스러운 계급 개념으로 나아갔고, 또한 양립할 수 없는 몇 가지 기준(경제, 조직, 기술 기반)에 의해 결정되는 중첩적 착취 개념을 수용하는 데로 나아갔다.84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라이트가 재구성한 모형은 베버주의 사회학에 훨씬 더 친화적인 “착취에 기반한 이해관계들의 진정한 그물망” 체계로 이어진다.지배이론가들이 초점을 맞추는 사회적 권력의 여러 원천들이 포함되도록 생산적 자산의 목록을 확장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 … 만약 확장 가능하다면, 라이트의 착취 개념과 니체·신베버주의의 권력·지배 개념 사이의 차이는 오직 말뿐인 것으로 보인다.
관리자와 감독자에 대한 재고再考
라이트의 방법론으로 돌아가기 전에, 관리자층의 모순된 계급 위치를 개념화하는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음을 언급할 가치가 있다. 사실 이 방법은 생산을 잉여가치 전유 과정이자 구체적인 노동 과정으로 이해한 마르크스 자신의 생산에 관한 설명에서 기인한다. 이미 19세기에 마르크스는 이 과정이 어떻게 중간적 집단을 창출하는지를 연구해야 했다.
자본가의 지휘는 그 내용에서 이중의 성격을 띠는데, 그 이유는 그가 지휘하는 생산과정 자체가 한편으로 생산물의 생산을 위한 사회적 노동과정이고, 다른 한편으로 자본의 가치 증식 과정이라는 이중의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가의 지휘는 그 형식에서는 독재적이다. 협업의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이 독재도 자기의 특유한 형태들을 전개한다. … [자본가는 — 추나라] 이제 개별 노동자들과 노동자 집단들에 대한 직접적이고 끊임없는 감독 업무를 특수한 종류의 임금노동자들에게 넘겨 준다. 군대에 장교와 부사관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자본의 지휘 아래에 있는 산업 노동자 집단도 노동과정의 진행 중에 자본의 이름으로 지휘할 장교(지배인)와 부사관(십장·감독자)이 필요하다. 감독이라는 업무가 그들의 전문 기능으로 확정된다.
87 카르케디는 대규모 작업장에서 관리자들이 일련의 특정한 구실들을 수행하지만 그 사회적 내용들은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것 또한 마르크스를 따른 것인데,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노동을 조율하고 감독하는 업무가 훨씬 더 복잡해지고 흔히 대기업의 대규모 작업장에서 그렇다. 라이트가 처음으로 모순된 계급 위치를 이론화한 때와 거의 같은 시기에 썼지만 훨씬 덜 알려진 저작에서 굴리엘모 카르케디는 관리자층의 성장을 자본주의 대기업의 지배력 증가와 동일시했다.직접적 생산과정이 독립적인 생산자들의 고립된 노동의 형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결합된 과정의 형태를 취하는 곳에서는 필연적으로 감독 업무와 관리[지휘] 업무가 생긴다. 그러나 그 업무는 이중의 형태를 가진다. 한편으로 다수 개인들이 협력하는 모든 노동에서는, 과정들을 서로 연결시키고 통일시키는 일은 필연적으로,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은 하나의 지휘 의지에, 그리고 각각의 작업이 아니라 작업장 전체의 활동을 담당하는 기능들에 맡겨진다. 이것은 어떤 결합된 생산방식에서도 수행되어야 하는 생산적 노동이다. 다른 한편으로 … 감독 업무는 직접적 생산자인 노동자와 생산수단의 소유자 사이의 대립에 바탕을 두는 모든 생산양식에서는 필연적으로 생긴다. 이 대립이 크면 클수록 그만큼 감독 업무의 기능이 더 커진다.
89 동일한 특정 관리자가 서로 다른 때에 두 기능을 모두 수행할 수 있다. 90 카르케디는 다음과 같이 쓴다.
카르케디는 마르크스가 파악한 두 가지 사회적 구실을 각각 “집단적 노동자의 기능”과 “자본의 포괄적 기능”으로 설명한다.직무 내용은 … 순전히 기술적 설명, 업무 수행이라는 측면에서의 설명이다. … 한 가지 이상의 기능을 수행하는 행위자가 기술적 직무만을 수행하는 것이 결코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그의 활동은 사회적 중요성이 있는 동시에 사회적 기능이 있다. 즉, 그는 (집단적) 노동자의 기능 혹은 자본의 (포괄적) 기능을 수행한다. 91
92 카르케디는 다시 마르크스를 따라 이렇게 본다: 집단적 노동자의 기능은 “노동과정의 조율과 통일” 93 작업을 포함하는데, 이는 가설적으로 적대적 사회관계가 없는 세계에서조차 필요한 것이다. 반면, 자본의 포괄적 기능은 “통제하고 감시”하는 업무이다.
집단적 노동자의 기능을 수행한다는 면에서 관리자는 생산적이다. 관리자들은 노동자처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따라서 자신들의 임금 가치의 일부를 만들어 낸다. 자본의 포괄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면에서 관리자는 가치를 창출하지 않으며 그들의 임금은 잉여가치로부터 떼온 것이다.노동은 규칙적이고 제대로 끊임없이 수행되어야 한다. 노동자는 기계를 제멋대로 다루거나 손상을 입혀서는 안 되고, 원자재를 낭비해서는 안 되며, 자신의 임금에 담긴 시간보다 더 오래 일하면서도 자신의 노동력을 재생산하고 잉여가치를 생산해야 한다, 등등. 생산량은 노동일의 길이와 노동 강도의 함수이기에, 노동자가 평균적인 노동 강도로 일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점이 특히 중요하다.
95 라이트의 초기 정식화처럼 카르케디의 설명도 관리자 층이 자본주의 계급 관계에서 모순된 위치를 형성하는 것으로 개념화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카르케디의 설명은 관리자층을 단순히 지배 관계로 파악하는 단점을 보이지 않는다. 또, 가치 이론 면에서 엄밀하게 착취 개념을 도입한다.
관리자들의 위계에서 상층은 생산에서 잉여가치를 뽑아내는 것에만 관심을 두며 자신을 진정한 자본가들과 직접적으로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꼭대기에 있는 대기업의 최고위 경영자는 자본가계급의 일부로, 즉 자본주의적 축적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자본의 인격화”로 봐야 할 것이다. 투자, 즉 축적 과정과 관련한 전략적 핵심 결정은 진정한 자본가계급의 수중에 있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투자 결정을 할 때 일부 요소를 아래에 위임하라도 말이다. 관리자 구조의 하층은 노동계급에 가까운 지위를 차지하며, 그들의 소득은 잉여가치에 덜 의존적이다. 카르케디의 설명에서 관리자와 감독자는 프티부르주아지와 분명히 구별되는 집단이다. 이 새로운 관리자층은 프티부르주아지의 제한적이고 잠재적인 계급 통일성조차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관리자층을 묘사할 때 신중간계급이라는 용어를 쓰기보다는 라이트를 따라 관리자와 감독자라고 하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하다. 친숙한 용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뿐 아니라 사회집단으로서 응집력과 역사적 안정성을 실제보다 더 부여하는 문제를 피한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자본주의 발전으로 위협받는 별개의 사회 집단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 발전의 산물인 이 집단은 자본주의에서 일련의 계층으로서 존재한다. 그들의 사회적 지위는 모순을 담고 있다. 사회적 투쟁이 벌어질 때 강력한 노동자 운동은 때때로 이 계층의 일부를 끌어당길 수 있다. 관리자와 감독자 개인들은 자신의 지위가 위협받는다고 느낄 수도 있고, 작업장 내 주변 사람들과 비슷하게 임금이나 노동조건에 대한 공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러한 조건 하에서 그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도 있고 심지어 파업에 나설 수도 있다. 그와 동시에 관리자의 상층은 노동자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고 자본가와 더 가깝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으며, 출세 사다리의 훨씬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길 갈망하고, 어쩌면 진짜 자본가계급에 진입할 수도 있으며, 자본가계급의 하층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길 수도 있다. 게다가 관리자들 임금의 일부는 잉여가치에서 오는 것이므로 그들은 주변의 보통 노동자들보다 훨씬 더 많은 임금을 받을 것이고, 따라서 그들은 광의의 지배계급으로 결속될 수 있다. 그들은 프티부르주아지처럼 매우 개인주의적일 수 있지만, 이는 다소 다른 종류의 개인주의이다. 라이트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옛 프티부르주아지의 개인주의는 개인의 자율성, 스스로 사장이 되기, 자기 운명을 개척하기 등을 강조한다.” 반면 신중간계급층은 “출세주의적 개인주의, 조직적 이동에 맞춰진 개인주의”를 보인다.더군다나 관리자들의 관료적 위계 체계는 특정 형태로 굳어져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 구조는 노동 과정이 조직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지므로,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최근 수십 년 동안 공공 부문 곳곳에서 일어난 것처럼, 전통적으로 산업에서 이용되던 관리 통제 방식이 새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다. 또, 자본가들이 관리자의 위계를 더 효율적으로 만들려 하며 몇몇 계층이 사라질 수도 있다. 그래서 노동인구의 다른 성분들의 규모를 추정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 문제에서 우리는 라이트가 개발한 프레임으로 수행된 실증적 연구에 계속 의존한다. 1990년대 후반 라이트는 영국 노동인구의 61퍼센트가 “권한이 없고”(그 일부는 “전문가”일지라도), 12퍼센트는 모종의 감독자이고, 12퍼센트는 관리자라고 추정했다(나머지 14퍼센트는 자본가이거나 프티부르주아지다). 감독자의 일부는 노동계급에 가까울 것이고, 프티부르주아지의 일부는 1인 고용주(예컨대 건설 산업에서 흔한 은폐된 형태의 고용)일 것임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노동계급이 다수라는 뜻이다. 이 수치는 미국, 스웨덴, 캐나다, 노르웨이와는 비슷하고 일본과는 다르다. 일본은 자영업 비중이 높다.
베버의 그림자
계급에 관한 라이트의 초기 통찰들이 베버주의 관점으로 전락하는 경향에 관해서는 앞에서 언급했다. 라이트는 자신의 새 모델에 대한 비판에 답하며, 자신도 비판자들이 지적한 문제를 많은 부분을 인정한다고 밝힌다.
마르크스주의적 계급 개념과 내가 옹호하는 계급 개념은 상당히 다른데, 내 개념을 받아들이면, 사실 실천 면에서는 신마르크스주의·신베버주의의 틀로 만든 실증적 계급 구조 “변수”의 성격과 다를 게 없다. 어쨌든 자산, 기술/자격증/자율성, 권위의 차이가 계급 구조 내 위치 차이의 토대임을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라이트는 《계급 이해하기》 실린 한 논문에서 이런 방법론적 변화를 더 정당화한다.
나는 마르크스주의 전통 내에서 계속 작업을 해 왔지만, 더 이상 마르크스주의를 “부르주아” 사회학과 어울리지 않는 포괄적 패러다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실용적 실재론”이라고 불리는 것이 거대 패러다임 전쟁을 대체한 것이다. …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에 이루어진 나의 이론 작업에서는 마르크스주의 계급 개념이 주요 사회학적 경쟁 상대들, 특히 베버주의 계급 개념과 주류 계층연구 전통의 계급 (개념)보다 일반적인 우위에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은 계급에 대한 이런 다양한 접근방법들이 자본주의 사회에 내재한 경제적 불평등의 미시적·거시적 측면을 형성하는 여러 인과과정들을 밝힌다고 보는 것이 훨씬 적절한 것 같다.
102 예를 들어 계급에 관한 후기 베버의 설명을 보면 “분명히 마르크스주의적인 어조”를 띠는 다양한 역사적 연구가 있는데, 이것들이 대체로 간과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베버의 가장 유명한 저작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자본주의 “정신”이 어떻게 사회의 다른 부문에 나타나는지를 논의하기 위해 계급 범주를 사용한다. 103
이처럼 사회 이론에 ‘취사선택식’ 접근법을 취하는 것을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교조적 믿음으로 일축하는 것은 실수일 것이다. 사실 막스 베버를 다루는 장章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의 하나다. 라이트는 계급에 관한 베버의 전체 견해를 알려면, 그의 사후死後에 출간된 논문집 《경제와 사회》의 “지위 집단과 계급”이라는 장 하나만 봐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라이트는 계급에 관한 마르크스와 베버의 설명에서 서로 닮은 구절들을 능숙하게 골라내 둘 사이의 공통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물론 라이트는 차이도 분명히 지적한다. “베버에게 있어 핵심적인 주제는 계급이 고도로 합리화된 경제적 상호작용, 특히 계급이 시장 안에서 어떻게 사람들의 생활기회를 결정하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반면, 마르크스에게 있어 핵심적인 주제는 계급이 생활기회와 착취 모두를 어떻게 결정하는가를 살펴보는 것에 있다.”하지만 베버 등에게서 얻을 수 있는 통찰이 무엇이든 간에, 계급에 관한 이처럼 서로 다른 견해들을 같은 풍경을 향한 여러 창문들처럼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것으로 여길 수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이 점을 이해하려면, 독특한 방법론으로서 마르크스주의의 구실을 탐구해야 한다.
마르크스와 방법
105 하지만 마르크스가 이 방법을 채택한 것은 그의 이상한 지적 기벽 때문이 아니었다. 마르크스주의는 방법론적으로 사회과학과 구분된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주의는 사회과학을 가치 중립적인 과학적 접근법으로 보는 않고 역사적 조건의 영향을 받는 사회 분석법으로서 계급사회에 의해 제약을 받으며 그 속에서 발전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라이트는 자신이 “헤겔주의적 마르크스주의”라고 이름붙인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러나 사회를 “총체”로서 보며 변증법적으로 분석하는 이 방법이 그가 채택한 기계론적이고 사회과학적인 언어보다 더 우수하다.106 하지만 마르크스는 훨씬 더 나아가서 애덤 스미스나 데이비드 리카도 같은 최상의 부르주아 사상가들조차 방법론적 약점 때문에 자본주의의 물신적 겉모습을 완전히 꿰뚫어 보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107 이런 면에서 “과학적 객관성”은 특정 계급의 관점이 필요하다.
사회학은 세계에 관해 중요한 진술을 내놓은 다음 그것을 전통적인 사회학적 기법으로 검증하는 학문인데, 마르크스주의는 그런 사회학의 한 학문 분야가 아니다. 마르크스주의는 프롤레타리아의 자력 해방에 관한 이론이자 실천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의식적으로 프롤레타리아의 관점에 일체감을 느끼며, 프롤레타리아의 투쟁에서 배우고, 태생적으로 자본주의의 대척점에 서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데 기반을 둔다. 라이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마르크스도 [베버처럼 — 추나라] 과학적 객관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였지만, 실제 사회분석에서 분석가가 사회세력들과 맺고 있는 관계(특히 계급적 이해관계)의 영향을 받지 않고 연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108 서로 다른 전통의 계급 분석은 서로 다른 “인과 과정들”을 파악한다고 지적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109 어떤 인과 과정은 다른 인과 과정보다 더 중요하다. 단조롭게 말해, 우리의 목표가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것이라면 무엇이 2011년 아랍 혁명을 추동했느냐는 물음은 사람들이 웨이트로즈, 테스코, 리들 중 어디서 쇼핑하는 것을 더 좋아하느냐는 물음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마르크스가 식별한 계급 분할은 광범한 역사적 측면에서 특정 계급의 역량과 이해관계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는 인식틀을 제공하는데, 그 틀로 보면 다른 구분들은 생겨나서 역사적으로 스스로 해소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110 바로 이런 입장을 라이트는 《계급 이해하기》에서 거부했다.
라이트는 마르크스주의의 “계급 해방을 위한 규범적 헌신”을 말하는데, 이 말에는 방법론적 함의가 들어 있다.계급분석이 가치 있는 연구 프로그램이 되기 위해서는 중요한 인과 메커니즘을 확인해야 할 때 계급분석이 이 메커니즘을 충분히 확인시켜줘야 한다. 하지만 계급을 사회현상에 대한 가장 중요한 혹은 근본적인 결정요인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다. …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계급관계가 갈등의 지속적인 토대를 형성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재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관심은 계급타협이 이루어지고, 계급갈등이 중심에서 밀려나게 된 조건들을 이해하는 데 맞춰져 있다. … 계급이 “사회조직”의 가장 강력한 혹은 근본적인 원인이 아닐 수 있고, 계급투쟁이 오늘날 세계를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아닐 수도 있다. …계급의 우위를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을 것이다.
개혁주의의 그림자
112 첫째, 1917년 혁명의 또 다른 지도자인 레온 트로츠키의 주장에 따르면, 관료의 등장은 노동자들의 자발적 활동 수준과 반비례 관계에 있었다. 둘째, 이 관료들은 결국 스스로 자본주의적 지배계급이 돼, 혁명의 성과를 뒤집어 버렸다. 113 라이트는 이러한 종류의 접근법을 결여한 채, 더 큰 “당내 민주주의”가 관료적 지배로 향하는 경향을 저지할 수 있었을지 여부만을 묻는다. 114
라이트의 실용주의적 방법론은 전략에 대한 비관적 실용주의와 연결된다. 이 또한 그의 초기 저작에 그 뿌리가 있다. 1978년 작 《계급, 위기, 국가》에서 라이트는 베버를 또 달리 비교하는데, 이때는 《재건 독일의 의회와 정부》에서 보이는 베버의 국가관을 《국가와 혁명》에서 나타난 레닌의 국가관과 비교했다. 이 비교 속에서 라이트는 두 견해를 합치려 하며 1917년 혁명 이후 매우 실질적인 문제로 등장한 관료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레닌은 소비에트 관료의 등장이 러시아 대중의 낮은 문화 수준과 러시아의 낮은 경제적·산업적 발전 수준을 반영하는 것으로 봤는데, 라이트도 이 점을 알고 있다. 하지만 라이트는 러시아의 관료화에서 나타난 두 가지 다른 측면은 대체로 간과했다.115 이 주장은 국가를 분쇄하자는 레닌주의적 접근과 국가를 이용해 자본주의 틀 내에서 개혁을 도입하자는 사회민주주의적 접근 사이의 중간적 방법으로 제기된 것이지만, 실천에서는 서방 공산당들이 전통적 사회민주주의 방향으로 변모하는 데 대한 알리바이로 사용됐다. 116
이로부터 1970년대 말에 라이트가 이끌어 낸 결론은 당시 유러코뮤니스트 사이에서 유행하던 주장을 지지하는 것이었다. 그 주장은 사회주의자들이 “자본주의 국가기구를 통제하고 … 자본주의 국가 권력 자체를 … 공격하는 데 그 기구를 체계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117 이 맥락에서 라이트는 “계급이 없는” 사회에서 “계급성이 덜한” 사회로 강조점을 옮길 동기를 갖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계급성이 덜한” 사회는 “공상적 전망”으로 남는다. 즉,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이 창시한 수정주의 전통의 관점에서 사회주의라는 최종 목표가 먼 미래의 일인 것과 비슷한 것이다. 118 라이트는 다음과 같이 썼다.
라이트의 다음 행보는 자본주의 국가를 초월한다는 포부까지 버리는 것이었다. 그는 공산당 정권들이 무너진 뒤에 쓴 글에서 “자본주의는 자기 자신의 무덤을 팔 균질적인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충분히 만들어 낸다”는 주장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해방적 변혁의 체제적 단절 전략이 적어도 현존하는 역사적 조건 아래에서 가능하지 않다고 믿는다면,유일하게 현실적인 대안은 변혁을 대체로 누적적인 변형과정으로 보는 전략이다. 여기서 변혁이란 비교적 작은 변혁들이 누적되어 사회 체계의 동학과 논리에 질적인 변화를 낳는 변형과정이다.
120 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단순한 주장이다. 진지한 마르크스주의적 설명은 예를 들어 노동조합을 균질한 프롤레타리아 집단이라고 여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자본주의 이윤율이 높은 상황에서는 노동조합 조직률과 노동조합 인정률이 높을 수 있다. 라이트의 분석에는 결정적 요소가 빠져 있는데, 바로 노동자의 자발적 활동 수준이다. 이는 노동계급의 조합적 힘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고, 때로는 그것의 요소들과 충돌을 빚는다. 거센 현장조합원 운동이 견고한 노동조합 관료와 충돌할 때가 그렇다.
《계급 이해하기》에서 분량을 꽤 차지하는 한 장章은 계급 타협을 전략으로 분명하게 제기한다. 이 장에서 라이트는 분석적 목적을 위해 계급에 관한 복잡하고 파편화된 묘사를 내려놓고 노동자와 자본가로 양극화된 사회 모형을 집어든다. 이 모형을 가지고 라이트는 노동계급에게 힘을 부여하는 주축을 노동계급의 “조합적 힘”으로 보며, 전통적으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 ‘조합적 힘’을 자본가들의 이익 실현과 반비례 관계에 있는 것으로 봤다고 주장한다.121 라이트가 인정하는 유일한 민주주의는 혁명적 이행기에 노동자들의 활동에서 생겨나는 훨씬 철저한 형태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의회민주주의인 듯하다.
이러한 활동에서 생겨날 수 있는 노동자들의 자기 통치 기관이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위한 잠재적 기반을 제공한다. 반면에 라이트는 사회주의를 선거적 돌파나 “비민주적 파열”을 통해 이룰 수 있다고 본다(그러나 라이트는 이행기에 초래될 어려움과 혼란 때문에 사람들이 사회주의를 거부할 것이라는 이유로 선거적 돌파를 통한 사회주의로의 이행 가능성은 배제한다).라이트는 최근의 강연과 글에서 반자본주의로 향하는 네 가지 접근법을 대략적으로 묘사하면서 자신의 새 입장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두 가지 “거시-정치적” 접근법과 두 가지 “미시-정치적” 접근법이 그것이다. “거시-정치적” 접근법으로는 “자본주의를 분쇄하는”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의 접근법과 “자본주의를 길들이는” 사회민주주의의 접근법이 있고, “미시-정치적” 접근법으로는 다양한 방식의 개인적 도피를 통해 “자본주의에서 탈출하는” 방법과 “자본주의를 침식시키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그중 “자본주의를 침식시키는” 방법은 자본주의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을 창출한다는 자율주의적 마르크스주의의 주장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라이트는 적절한 반자본주의는 “자본주의를 분쇄하는 환상”을 포기해야 한다고 본다.
당신이 해방적 미래를 진정으로 건설하고 싶어 하더라도 자본주의는 분쇄할 수 없다. 당신은 현대적 설비를 이용하지 않고 화폐경제와 시장을 최소한으로 이용하며 개인적으로 자본주의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는 대부분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다. … 당신이 다른 사람들의 삶을 걱정한다면 어떻게든 자본주의의 구조와 제도를 처리해야 한다. 자본주의를 길들이고 침식시키는 것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선택지다. 당신은 공공 정책을 통해 자본주의를 길들이는 정치적 운동, 해방적 형태의 경제 활동을 확장하는 것을 통해 자본주의를 침식시키는 사회경제적 프로젝트 둘 모두에 참여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접근법이 개혁주의와 자율주의의 전통적 한계를 극복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또, 그 둘을 결합시키는 것은 또 다른 어려움을 낳을 수 있다. 첫째, 노동자들이 독립적 공간을 얻어 내는 동안 자본은 마음 편히 물러서 지켜보고만 있지 않는다. 자본은 쉼 없이 확장하는 힘으로, 사회의 모든 영역으로 더 깊이 파고든다. 비자본주의적 생산 형태가 차지하는 공간이 줄어드는 것이 역사적 경향이며, 노동자들이 저항하더라도 자본과 국가는 그 경향을 밀어붙인다. 개혁 프로그램으로 이 압력에 대응하기는 불충분하다. 둘째, 개혁주의는 본질적으로 자본이 개혁을 얼마나 허락할 태세가 돼 있느냐에 제약된다. 자본과 국가가 양보하도록 강제하는 계급적 힘이 있어야 체제로부터 개혁을 얻어 낼 수 있다. 자본주의 생산 영역 바깥에 공간을 만드는 것은 자본을 압박할 노동계급의 능력을 줄일 뿐이다. 왜냐하면 자본은 재생산되려면 노동자들에게 의존해야 하는데, 가장 투쟁적인 노동자들을 그 현장에서 내보내기 때문이다. 다른 전략이 하나도 없어야지만, 자본주의를 분쇄하는 것이 최악의 전략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라이트는 자본주의를 분쇄하자는 접근법을 경험주의적 근거로, 특히 20세기에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혁명적 사회주의가 실패했다는 것을 근거로 거부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1917년 혁명의 역전과 고립은 제1차세계대전 이후 유럽을 휩쓴 혁명 물결이 실패로 끝나면서 생긴 일이고, 이 때문에 스탈린주의가 전통적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주된 대안으로 제시되는 조건이 형성됐다. 스탈린주의 정권들을 “현존 사회주의”로 여기지 않는 우리가 보기에, 레닌, 트로츠키, 로자 룩셈부르크 등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서 있는 이들과 연관된 혁명적 사회주의 전략은 1920년대 이후 시험대에 오른 일이 거의 없다. 더군다나 라이트도 자신의 접근법을 똑같은 실증적 시험대에 올리지 않는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 이래 여러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이 급진적 개혁과 자본주의 침식이라는 전략을 검증하는 실험실 기능을 했음을 고려해 보라. 그 사례는 멕시코의 사파티스타부터 2001년 아르헨티나의 항쟁, 브라질 도시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노동자당 정부 하에 이뤄진 참여예산제, 차베스 하의 베네수엘라와 모랄레스 하의 볼리비아의 경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자본주의를 침식시키고 개혁하는 전략이 체제가 사람들에게 가하는 참상에 대한 효과적이고 장기적인 대응인지 아닌지는 입증됐다고 주장할 수 있지 않을까?
결론
내가 라이트의 연구를 비판하는 데 집중한 까닭은 그가 좌파들의 계급 분석에 미친 영향력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라이트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그랫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듯이 마르크스주의 계급 이론을 발전시키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피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뿐 아니다. 라이트의 이론적 틀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가 《계급 구조와 소득 결정》과 《계급 계산》 같은 저작에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구조에 관한 실증적 자료를 생산해 왔고, 그것들이 지속적 가치가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계급 이해하기》는 그의 중요성을 다시금 확인해 주며, 읽고 활용할 가치도 있다. 하지만 라이트의 많은 통찰들을 보존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그가 독특한 방법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를 일축하는 것이나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의 굴레에 도전해 자본주의를 전복시킬 수 있는 세력으로 행동할 전망을 비관하는 태도에는 도전해야 한다.
주
-
출처: Joseph Choonara, ,
↩
- Wright, 2000, pxv. 이 서평 초안에 대해 유익한 조언을 준 알렉스 캘리니코스에게 감사한다. ↩
- 찰스 틸리, 오게 쇠렌센, 마이클 만, 데이비드 그루스키와 킴 위덴, 잔 파쿨스키와 말콤 워터스가 있다. ↩
- Wright, 2015a, p172(국역 p265). ↩
- Callinicos and Harman, 1987을 보면 된다. ↩
- 이에 관해 미국 마르크스주의자 핼 드레이퍼가 번역한 《공산당 선언》의 유명한 구절과 이 문제에 관한 더 광범한 논의를 알고 싶다면, Draper, 1978, pp613-627을 보면 된다. ↩
- 이보다 일찍이 이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1890년대 독일 마르크스주의자 카를 카우츠키는 구스타프 슈몰러와의 논쟁에서 신중간계급이 노동계급과 점점 같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1909년 네덜란드 마르크스주의자 안토니 파네쿡은 “신중간계급들”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는데, 카우츠키와 반대로 이들은 기껏해야 노동계급에게 미덥지 못하고 동요하는 동맹이고 대개는 적의에 찬 적(敵)이라고 보았다. 신중간계급 문제는 로자 룩셈부르크와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사이의 논쟁에서도 중요했는데, 베른슈타인은 자본주의가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적대를 초월할 능력을 갖고 있다는 증거가 신중간계급이라고 주장했다 — Carter, 1985, pp16-31; Burris, 1995; Pannekoek, 1909. ↩
- Poulantzas, 1978, p14. ↩
- Poulantzas, 1978, pp14, 16. ↩
- Poulantzas, 1978, p204. ↩
- 반면에 부르주아지의 정의는 너무 느슨하다. Wright, 1978, pp59-61을 보면 된다. ↩
- Poulantzas, 1978, pp211-212. ↩
- Poulantzas, 1978, pp213-214. ↩
- Wright, 1978, p48. ↩
- Poulantzas, 1978, p258. ↩
- Poluantzas, 1978, p206. ↩
- Poulantzas, 1978, p228. ↩
- Wright, 1978, p52. ↩
- Poulantzas, 1978, pp241, 236. ↩
- Wright, 1978, p53; Carter, 1985, p77. ↩
- Wright, 1978, pp 51, 55. ↩
- Wright, 1978, pp 51-52. 또 다른 비판가가 지적하듯이, 풀란차스가 루이 알튀세르에 의존하는 것이 “융통성 없는 개념 체계와 실천에서 계급 범주의 잡다한 적용의 독특한 결합이라는 … 기묘한 방식[을 낳는다.] … 역사는 개념의 원통이 빙글빙글 돌 때마다 재정립될 수 있는 만화경이 된다.” — Connell, 1982, p135. ↩
- Wright, 1978, p61. ↩
- Wright, 1978, p62. ↩
- Wright, 1978, pp62-63. ↩
- Wright, 1978, p87. ↩
- Marx, 1993, pp106-107. Marx, 1978, pp407-408도 보면 된다. ↩
- Marx, 1978, p408. ↩
- Marx, 1990, p1042. ↩
- Wright, 1978, pp74, 79; Wright, 1985, pp48-52(국역 pp84-86). 이와 비슷하게 이후 저작에서 라이트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 국가가 예컨대 보건과 산업안전 입법으로 경제에 개입하는 것을 생산양식들(이 경우에는 자본주의적 양식과 사회주의적 양식)의 “상호 침투” 사례로 본다. — Wright, 1994, pp244-245. ↩
- Wright, 1985, p53(국역 p87). ↩
- Wright, 1985, p55(국역 p91). ↩
- Burris, 1999, p316. ↩
- Wright, 1985, p56(국역 p94). ↩
- Wright, 1989a, pp5-6. ↩
- Wright, 1979, p15. ↩
- 마르크스의 가치 이론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Choonara, 2009를 찾아보면 된다. ↩
- 라이트는 1980년대 중반에 “마르크스주의에 공감하는 좌파 학자 그룹들이 일 년에 한 번 모여서 서로의 연구에대해 토론했다”고 말한다. —Wright, 1985, p2(국역 p14). ↩
- Levin, Sober and Wright, 1987, p84. ↩
- 각각 고전 정치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와 이탈리아 경제학자 피에로 스라파의 이름을 딴 것이다. ↩
- 신리카도주의/스라파주의 학파에 대한 상세한 비판이 여럿 있다. Kliman, 2007, pp41-53은 논쟁의 등장과 관련된 역사를 간략히 설명하는데, 그의 책 전체에서는 특히 시간적 차원을 고려하지 않는 관점과 가치 개념을 “물리적 산출물” 중 하나로 대체하려는 경향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Fine and Harris, 1979, 특히 pp25-48은 신리카도주의를 매우 훌륭히 비판하는데, 특히 마르크스의 착취 이론이 기초로 하는 생산과정보다는 분배과정와 유통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관점을 비판한다. ↩
- Wright, 2010, p101(국역 pp154-155). ↩
- Marx, 1988, p67. ↩
- 라이트의 가장 초기 저작들은 훨씬 더 전통적인 가치 이론적 접근을 시도했다. 예를 들어 Wright, 1978, pp111-180의 위기에 관한 논의를 보면 된다. 스라파주의 접근법을 채택한 초기에조차 라이트는 잉여가치 개념을 완전히 버리는 데 주저했다. 라이트는 잉여가치 개념을 생산에 들어간 기술적 투입물과 획득한 이윤 사이에 있는 일종의 중간 단계에 포함시켰는데, 이는 이윤율의 범위를 제약하는 조건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스라파주의자들처럼 그는 기술적 조건과 임금에서의 변화가 잉여가치 생산을 바꾸지 않고도 이러한 한계 내에서 이윤의 변화를 초래한다고 덧붙였다. 사실 라이트가 “잉여가치를 제약 조건으로 선택한 것은 … 이윤을 계산하는 구체적 문제에서는 자의적이다.” 생산에 들어가는 어느 투입물이든 일정하게 유지되면서 이윤을 제약할 수 있다. — Wright, 1981, pp44, 52. ↩
- Roemer, 1982를 보면 된다. 로머에 대한 비판으로는 분석 마르크스주의의 전성기(다행히 오래전에 지나갔다) 때 쓴 Callinicos, 1987c; Callinicos, 1995, pp68-76; Houston, 1989; Howard and King, 1992, pp335-355를 보면 된다. ↩
- Burris, 1989, p165. ↩
- Wright, 2015a, p74(국역 p123). ↩
- Lebowitz, 2009, p53. ↩
- Levin, Sober and Wright, 1987을 보면 된다. ↩
- Wright, 2015a, pp73-75(국역 pp123-126). ↩
- Wright, 2015a, p45(국역 pp79-80). ↩
- Wright, 2015a, p73(국역 p124). ↩
- Wright, 1985, pp72-73(국역 pp107-108). ↩
- Carchedi, 1989, p109. ↩
- Carchedi, 1989, pp112. Meiksins, 1989, p176도 보면 된다. ↩
- Wright, 1985, p76(국역 p114). ↩
- Wright, 1994, p251. ↩
- Wright, 2000, pp18-19. ↩
- Carchedi, 1989, pp110-111. ↩
- 관련 문헌으로는 다음을 보면 된다. Rubin, 1973, chapter 15; Kidron, 1974, pp64-67; Itoh, 1987; Rosdolsky, 1989, chapter 31; McGlone and Kliman, 2004; Harvey, 2006, pp57-61; Bidet, 2009, chapter two. 각각의 접근법들이 서로 다르고, 내 접근법도 이들과 다르다. ↩
- Marx, 1990, pp135, 1035. “실질적 추상”으로서의 노동에 관해서는 Saad-Filho, 2002, pp10-12, 55-61을 보면 된다. ↩
- Marx, 1990, pp618-619; Harvey, 2006, p109. ↩
- 하지만 추가적 보수 또는 복잡 노동을 생산하는 데 드는 추가적 비용과 복잡 노동이 산출하는 추가 가치 사이에 필연적 관계는 없다. — Bidet, 2009, p26. ↩
- Marx, 1990, p1024; Bidet, 2009, p29; Kidron, 1974, p67. ↩
- 달리 말해, 가치 이론에는 기본적으로 “평등주의”가 존재한다. — Itoh, 1987. ↩
- 이 문제에 관해 더 살펴보고 싶다면 Fine, 1998, pp175-200을 보면 된다. ↩
- 예를 들어 Marx, 1990, p129를 보면 된다. ↩
- Wright, 2000, p19. ↩
- Wright, 2000, pp60-62. ↩
- Wright, 1985, pp55-56(국역 p93). ↩
- Cliff, 1996. ↩
- Wright, 2010, p34(국역 p70). ↩
- Wright, 1985, p56(국역 p93). 라이트가 스탈린주의에 특별히 호의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라이트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사회의 생산적 자원이 노동자들에 의해 민주적으로 통제되지 않았다는 면에서 스탈린주의 국가들은 사회주의가 아니었다. 그 국가들은 자본주의적 재산을 억제했고, 따라서 그 국가들의 실패는 선진국들의 인센티브와 효율성에서 자본의 사적 소유가 필수적이라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 Wright, 1994, p241. ↩
- Wright, 1985, pp79-80(국역 pp119-120). Roemer, 1986, p82도 보면 된다. ↩
- Brenner, 1989, p186. ↩
- Carchedi, 1989, p110. ↩
- Wright, 1985, p81(국역 p121). ↩
- Wright, 1985, p82(국역 p123). ↩
- 소련 지배계급의 최고위층에 있던 이들을 제외하더라도, 1953년 “주요 공장 관리자”의 소득은 “미숙련 노동자”보다 “약 25~30배” 많았다. 역진세 체계를 감안할 때, 이것은 서방 세계보다 불평등이 더 심했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 Bottomore, 1991, p51. ↩
- Wright, 1985, p88(국역 p127). ↩
- Wright, 1985, p90(국역 p130). 에런라이크 부부는 “전문가-관리자 계급”이라는 새 지배계급이 출현했다는 비슷한 견해를 공유한다. — Ehrenreich and Ehrenreich, 1979, p42를 보면 된다. ↩
- Brenner, 1989, p188; Bottomore, 1991, p59를 보면 된다. ↩
- Burris, 1999, p315를 보면 된다. ↩
- Wright, 1989b, p191. ↩
- Wright, 1985, p123. ↩
- Callinicos, 1995, p193. ↩
- Marx, 1990, p450(국역 pp451-452). ↩
- 카르케디의 설명에 관한 라이트의 평가로는 Wright, 1980, pp361-365를 보면 된다. ↩
- Marx, 1972, pp507-508(국역 p489). Marx, 1975, pp496-498을 보면 된다. ↩
- Carchedi, 1977, pp58-62. ↩
- 조해너 브레너는 이와 비슷한 뜻으로 다음과 같이 쓴다. “관리자는 노동과정을 조율하기 위한 권한을 행사할 수도 있고 노동자를 통제하기 위한 권한을 행사할 수도 있다.” — Brenner, 1989, p186. ↩
- Carchedi, 1977, p62. 밥 카터가 그 지위를 잘 요약한다. “여전히 자본의 기능과 노동의 기능을 구분하는 것이 분석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순수한 방식으로 이런 또는 저런 기능에 부합하는 직업은 점점 줄어든다. 두 가지 기능 모두로 구성된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 Carter, 1995, p40. ↩
- 나는 작업장을 비생산적 자본이 아니라 생산적 자본의 하나라고 보지만, 카르케디의 설명은 비생산적 자본으로 곧바로 일반화할 수 있다. — Carchedi, 1977, pp64-65, 67-68. 덧붙이자면, 관리자 임금에 대한 카르케디의 설명은 “피고용인의 실증적 임금”은 노동력 재생산 비용과 동등하며 잉여가치를 포함할 수 없다고 하는 마르크스의 설명을 어리석게 거부하는 견해를 극복하게 해 준다.—Wright, 1994, p251을 보면 된다. ↩
- Carchedi, 1977, p63. ↩
- Carchedi, 1977, p63. ↩
- Carchedi, 1977, pp92-96. Wright, 1979, pp36-37은 관리자층에 관해 카르케디의 연구에 의존해 그와 비슷한 관점을 보여 준다. 또한 라이트는 관리자층에 속한 이들의 소득 결정에 관해 대단히 흥미로운 설명도 하고 있다. — Wright, 1979, pp165-181. ↩
- Callinicos, 1987b, p35는 신중간계급이라는 용어의 부적절함을 지적했다. 캘리니코스는 “자본과 임금노동 사이의 근본적 모순과 비교해 모호하고 중간적인 지위를 공통으로 갖고 있는 이질적인 사회 계층들의 집합”으로 보는 게 낫다고 썼다. Harman, 1987, p74도 보면 된다. ↩
- Wright, 2000, p17. ↩
- Wright, 1978, pp58-59. Carter, 1985, p204도 보면 된다. ↩
- Wright, 2000, pp44-45. ↩
- Wright, 1989b. ↩
- Wright, 2015a, pp1-2(국역 pp20-21). ↩
- Weber, 2013, pp926-939. ↩
- Wright, 2015a, pp22-25(국역 pp51-55). ↩
- Wright, 2015a, p42(국역 p77). ↩
- Wright, 1994, p239. ↩
- Wright, 2015a, p55(국역 p96). ↩
- Marx, 1990, pp163-177. ↩
- Wright, 2015a, p2(국역 p21). ↩
- Wright, 2015a, p2(국역 p21). ↩
- 계급에 관해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상세히 요약하고 옹호하는 주장을 보려면 Choonara, forthcoming 2017을 보면 된다. ↩
- Wright, 2015a, pp142-155(국역 pp222-240). ↩
- Wright, 1978, pp220-221. ↩
- Trotsky, 1972, p105; Cliff, 1996, pp178-200. ↩
- Wright, 1978, pp224-225. 당내 민주주의는 성장하던 스탈린주의 관료에 맞서 트로츠키가 이끈 반대파의 요구 중 하나였지만, 이것 하나만으로는 사회주의 사회로 이행할 물질적 기초가 부재한 상황에 대처할 수 없었다. 트로츠키가 지적했듯이, 그 물질적 기초는 국제적 지형 하에 있었다. 따라서 러시아 혁명은 혁명이 러시아 땅을 넘어 국제적으로 확산되느냐에 달려 있었다. — Trotsky, 1962를 보면 된다. ↩
- Wright, 1978, p230. 이에 대한 비판으로는 Harman and Potter, 1977을 보면 된다. ↩
- Birchall, 1986, pp142-152. ↩
- Wright, 1994, p243. ↩
- Wright, 1994, p245. ↩
- Wright, 2010, p321(국역 p441). ↩
- Wright, 2015a, p186(국역 pp284-285). 국역본은 ‘associational power’를 ‘단결력’으로 번역했다 ― 옮긴이. ↩
- Wright, 2015a, p239(국역 p355). ↩
- Wright, 2015b. ↩
- 이러한 몇몇 경험들에 대한 대차대조표로는 Gonzalez, 2013을 보면 된다. ↩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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