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 분석
칼 폴라니 사상에 대한 비판적 평가
머리말
2008년에 본격화한 세계적 경제 위기로 신자유주의 경제 모델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지난 30년 동안 주류 경제 이론으로 자리 잡은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정치·경제 제도를 확립했을 뿐 아니라, 문화와 이데올로기 영역에서도 시장 지상주의가 지배하도록 했다. 신자유주의는 사회의 공공 영역을 사적 이윤 추구의 대상으로 전환시켰고(민영화), 시장 메커니즘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국가와 노동조합의 기능을 제한하고자 했으며, 주주 가치 실현을 위해 단기적 성과주의를 정착시켰다. 전기·가스·수도·교육·보건 등 사회의 기본재utilities는 물론, 자연까지 이윤 추구의 대상으로 바꿔 놓았다. 그래서 원시림 파괴, 환경오염, 극지방의 해빙, 온실효과와 각종 기상 이변 등이 인류의 장기적 생존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정치·경제 측면에서 신자유주의가 실패했다는 사실은 이번 위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가 처음 등장한 대처와 레이건 정부 이래 세 차례의 심각한 위기(1984년, 1989년, 1997~98년과 그 뒤의 여파)가 있었고 경기회복은 지지부진했다. 남미와 일본은 불안정하고 취약한 세계 경제에서 좀 더 큰 타격을 받은 곳이다. 정치적으로도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자유와 평화를 가져다주지 않았다. 옛 소련과 동유럽의 몰락은 ‘역사의 종말’이 아니었다. 발칸 전쟁과 유고 내전과 미국의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침략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언제든지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음을 보여 줬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흐름은 1999년 시애틀 시위에서 시작됐고, 그 뒤에도 WTO 각료회담 반대 시위나 세계사회포럼 등 극적인 사건과 행사를 통해 사람들에게 많은 자극과 영감을 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경제 위기는 신자유주의가 아닌 대안적 경제 모델을 모색하는 자극제가 됐다.
경제 위기에 직면한 각국 정부가 적극적인 경기부양 정책을 사용하면서 국가가 다시 한 번 최후의 구원자로 등장했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주도권이 신자유주의자들에게서 케인스주의자들에게로 넘어간 듯하다. 케인스주의 경제정책들이 경제의 자유낙하를 모면하는 데서는 약효가 있는 듯하지만, 위기를 회복으로 되돌리는 데서도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후의 장기 호황도 케인스주의 덕분이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아닌 대안으로 케인스주의만 있는 게 아니다. 개혁주의에서 혁명적 사회주의에 이르는 다양한 조류가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제기되고 있는데, 이 글에서는 신자유주의, 더 나아가 자본주의 자체의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칼 폴라니Karl Polanyi, 1886~1964의 기여와 논의를 주요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폴라니의 주저인 《거대한 전환》의 영문판은 2002년에 제2판이 출간됐고, 또 한글판이 2009년에 발간됐다. 세계적으로나 한국 사회에서나 폴라니를 살펴봐야 할 이유는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홍기빈이 비교적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2002년 영문판에 처음 실린 발문에서 스티글리츠는 IMF와 세계은행을 비판했고, 1997년 동아시아 경제 위기와 뒤이어 나타난 러시아 위기가 ‘신자유주의적 워싱턴 컨센서스’의 “시장경제 전환”(《거대한 전환》, 26쪽. 이하 쪽수만 표시)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폴라니가 제기하는 문제들과 관점들은 여전히 두드러진 힘을 잃지 않고 있다”(18쪽)고 적었다.
《거대한 전환》의 한국어판 번역자인 홍기빈도 “세계적 금융위기가 발생했고 … 신자유주의적 금융 자본주의가 큰 타격을 입”고 “시장 지상주의 혹은 시장 근본주의에 대한 항간의 신념의 밑동에 금이 가고 근본적인 의구심이 확산되기 시작한 … 맥락의 연장에서 2009년 봄부터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위기로부터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돌파구로서 폴라니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급격하게 고조되었다”(636쪽)고 지적했다.
폴라니의 생애
폴라니는 1886년에 헝가리의 도시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러시아 출신으로 제1차세계대전이 벌어지기 전에 부다페스트에서 지적 토론장으로 이용되던 살롱을 운영했다. 학생 시절 폴라니는 진보적 학생들로 구성된 ‘갈릴레이 서클’을 결성하고 주도했다. 이 서클은 대학의 후진성, 교권주의, 부패, 기회주의, 특권과 관료제에 반대하는 경향이 있었다. 폴라니가 자신의 사상을 형성하던 시기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부패와 제1차세계대전으로 헝가리 중간계급 지식인들이 매우 급진화하던 때였다. 하지만 폴라니는 제2인터내셔널의 경제결정론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에 동조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도덕적 원칙에 바탕을 둔 의식적 인간 행동을 통해 세상이 진보한다고 생각했다.
제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헝가리에서는 사회주의자들이 참여하는 카롤리Karolyi 연합정부가 등장했는데, 이때 폴라니는 오스카르 야시Oscar Jaszi가 이끄는 급진정당에 참여했다. 그러나 급진정당이 추진하던 개혁이 좌절되자 급진화하는 중간계급 지식인들이 벨라 쿤의 헝가리 공산당으로 대거 가입했다. 벨라 쿤의 헝가리 소비에트 공화국이 단명할 것이 예견될 무렵 폴라니는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갔다. 여기서 폴라니는 〈오스트리아 경제〉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미제스 등의 시장주의자들과 논쟁을 벌였다.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이 세력을 확대하면서 그 영향이 빈에도 미치기 시작하자 폴라니는 1933년 영국으로 건너갔다. 영국에서 폴라니는 ‘노동자교육센터’에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강의했는데, 토니R. H. Tawney나 콜G. D. H. Cole 같은 길드사회주의자들이 큰 도움을 줬다.
1947년 폴라니는 미국의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하려 했지만, 당시 미국에서 횡행하던 매카시즘 때문에 아내 일로나가 미국에 입국할 수 없었다. 결국 캐나다에 살면서 1957년 은퇴할 때까지 토론토와 뉴욕을 오가며 생활했다. 폴라니는 1953년까지 컬럼비아 대학교의 교수로 일반경제사를 강의하면서 사회과학연구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여러 경제제도의 기원을 연구했다. 이 당시 연구 결과는 폴라니가 죽은 후에 《원시, 고대, 현대 경제》, 《인간의 경제》, 《초기 제국의 교역과 시장》 등으로 출판됐다. 생애 말기에 폴라니는 《공존》이라는 잡지를 출간했는데, 이 잡지는 냉전이 균열을 보이고 있을 당시 동방과 서방의 평화공존을 염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폴라니의 영향
폴라니가 생전에 연구한 분야가 다양하고, 또 말년에는 학제적 연구를 하다 보니 그의 영향은 한두 학문 분야에 한정되지 않는다. 경제학에서는 시장을 제도로 파악하는 제도주의 학파에 영향을 미쳤는데, 블리쓰M. Blyth, 이병천, 제솝B. Jessop, 먼델M. Mendell, 노스D. North 등이 여기에 속한다. 각 논자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기조정적 시장이 ‘이중 운동’의 영향으로 새로운 제도로 전환된다는 점에 착목한다는 것이다.
폴라니는 시장경제가 아닌 대안 사회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원시사회나 고대사회를 연구하고 경제학과 인류학을 접목하기도 했는데, 이것에 관해서는 달톤G. Dalton, 핼퍼린R. Halperin 등이 논의했다. 대안 사회의 기본 원리로서 호혜성, 재분배, 교환의 개념을 확장하는 다양한 논의들이 있다.
1 과 원용찬 2 등이 그런 예다. 대안 경제와 관련해 김상준 3 은 시장 경제와 국가 경제 사이에 있는 새로운 형태의 경제 영역을 중간 경제라고 명명하고 그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다.
폴라니의 영향을 받아 지역 경제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논의들도 있다. 옛 소련이나 동유럽의 몰락과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목도하면서 지역적 계획경제 모델을 추구하는 논의가 활발하다. 김정원4 은 사회적 제도 영역에 관심을 보인다. 김균이 폴라니 논의의 핵심을 “시민사회에 의한 풀뿌리 차원의 자발적인 시장 통제”라고 지적했다면, 5 그 영역을 국제적 차원으로 확장해 논의한 분야는 콕스R. Cox, 길S. Gill 같은 논자들의 네오그람시적 국제정치경제학이라고 할 수 있다.
김상준이 시장 경제와 국가 경제 사이의 경제적 영역에 집중한 반면, 김균그 밖에도, 폴라니는 토지·노동·화폐는 결코 상품이 될 수 없다고 했는데, 그 각각이 상품이 되는 과정을 추적하는 연구들도 있고, 이런 것들 외에 지식도 허구적 상품으로 간주해 최근의 지적재산권 논의와 연결하려는 시도도 있다.
또한, 신흥공업국들의 경제 성장과 제도 변화를 폴라니의 논의를 바탕으로 사례별로 분석하는 시도들도 있는데, 헝가리나 폴란드 같은 동유럽, 중국과 한국 등의 동아시아, 터키 등의 사례 분석이 있다.
신흥공업국들의 국가와 경제 성장 사이의 연관성을 폴라니의 ‘묻어 들어 있음embeddedness’ 개념에 입각해 규명하는 연구들(에번스P. Evans)도 있고, 전후 브레튼우즈와 가트GATT 체제의 제도적 성격을 규명하면서 자유주의가 정착하는 과정을 논의한 것(러기J. Ruggie)도 있다. 이 외에도 블록F. Block, 아리기G. Arrighi, 헤튼B. Hettne 등 다양한 정치학·사회학 연구자들이 폴라니의 개념과 논의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폴라니가 현대 사회과학에 미친 영향들 가운데 시장경제 비판과 대안 사회 논의만을 한정해 다룰 것이다.
시장경제와 이중 운동
폴라니는 19세기 문명의 몰락에서 ‘거대한 전환’이 시작되고 있다고 보는데, 이 19세기 문명의 제도 체제를 이해하는 열쇠가 바로 자기조정 시장이라고 주장한다. 폴라니에 따르면, 19세기 문명을 떠받치던 제도는, 유럽 강대국들의 장기적 세력균형 체제, 국제 금본위제, 자기조정 시장, 자유주의 국가, 이렇게 네 가지인데, 그중에서 자기조정 시장이 핵심 요소다(93~94쪽). 금본위제는 국내의 시장경제 체제를 국제적 영역으로 확장하려는 노력에 불과하고, 세력균형 체제란 금본위제에 기초를 둔 상부구조이며, 자유주의 국가라는 것도 그 자체가 자기조정 시장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폴라니는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아이디어는 한마디로 완전한 유토피아”(94쪽)라고 단언한다. 그런 제도는 “아주 잠시도 존재할 수가 없으며, 만에 하나 실현될 경우 사회를 이루는 인간과 자연이라는 내용물은 아예 씨를 말려 버리게 되어 있”(94쪽)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시장경제란 다음과 같다.
시장경제란 여러 시장이 모여서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단일 체제를 형성한다는 것을 뜻한다. … 이는 경제 활동의 방향이 오로지 여러 시장에서의 다양한 가격을 통해 결정되며 그 외의 어떤 것도 경제 활동을 좌우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 일절 외부 간섭 없이 스스로 경제생활 전체를 조직할 수 있는 체제라면 실로 자기조정적이라고 불릴 만하다(180쪽).
원래 경제란 사회에 ‘묻어 들어’ 있으면서 “인간의 사회관계 속에 깊숙이 잠겨 있”(185쪽)는 것이다. 그래서 폴라니는 “시장에 의해 통제되고 조절되는 경제란 우리 시대 이전에는 엇비슷한 모습조차 찾을 수가 없”(182쪽)었다고 지적한다. 원시 부족사회나 고대 공동체 사회 또는 중세 사회에서도 경제는 시장이 아닌 다른 원리로 조직됐는데, 그 원리는 호혜성과 재분배와 가정 경제였다.
그런데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시장 메커니즘이 산업 생산의 다양한 요소들과 맞물리게 되면서 “모든 산업 요소를 거래하는 시장이 존재”하게 되고 “그 시장에서 각 요소들은 수요자와 공급자 집단으로 조직”되며, “모든 요소들이 수요 공급과 상호 작용하는 가격을 갖게” 됐다. “무수히 많은 이 시장들이 서로 연결돼 총체적 시장One Big Market을 형성”(243쪽)하게 된다. 여기서 핵심은, 판매를 위해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결코 상품이 될 수 없는 노동·토지·화폐가 매매된다는 점이다.
폴라니는, 노동이란 인간 활동의 다른 이름으로 인간의 생명과 함께 붙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상품이 될 수 없으며, 토지란 자연의 다른 이름으로 인간이 생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화폐는 구매력의 징표일 뿐이고 은행업이나 국가 금융의 메커니즘을 통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노동·토지·화폐를 상품으로 묘사하는 것은 전적으로 허구”(243쪽)다.
폴라니는 자기조정적 시장경제가 인간을 ‘시장 내에서의 개인들’로 전환시켜서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이 갖는 자유를 제약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처럼 경제의 사회 지배가 인간 관계를 기본적으로 물질적·상품적 관계로 전환시킨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의 ‘상품 물신성commodity fetishism’과 유사하다. 또 허구적 상품의 등장은 일반화된 상품 생산이라는 개념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자기조정적 시장은 주류 경제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되지는 않았다. 자유주의 국가의 각종 입법 조처와 인위적인 노력의 결과였다.
그럼에도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은 오늘날 신자유주의자들과 너무나 흡사하다. “모든 악의 근원은 바로 다름 아닌 이러한 고용·무역·통화의 자유에 대한 부당한 개입에 있으며, 그것을 실행한 이들은 19세기의 마지막 25년간에 나타나기 시작한 다양한 조류의 사회주의적·민족주의적·독점주의적 보호주의자들”이라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노동조합과 각종 노동자 정당들이 독점 산업가들과 농업의 여러 이해 세력들과 결탁하는 악마의 동맹이 나타났다”(400쪽)고 주장한다. 그러나 1884년에 허버트 스펜서가 자유주의자들이 ‘제한 입법’을 얻으려고 자신들의 원칙을 스스로 방기했음을 지적한 것처럼, 현실은 이와 달랐다.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은 오늘날의 신자유주의자들처럼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면 다양한 규제를 지지했다. 따라서 폴라니는 “경제적 자유주의자들 스스로가 계약 자유와 자유방임에 대한 제한 조치들을 옹호한 바 있었다”고 지적한다.
이런 자기조정적 시장의 형성과 사회로부터의 분리가 사회 자체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기 때문에, ‘이중 운동double movement’이라는 사회의 자기보호 기제가 작동한다는 것이 폴라니 사상의 또 다른 특징이다. 폴라니는 19세기 역사가 “이중적 운동의 결과”이며, “진짜배기 상품에 대해서는 시장적인 조직 방식을 확장해나가는 과정이, 그리고 허구 상품에 대해서는 시장적 조직 방식을 제한하는 과정이 서로 나란히 나타났던 것”(248쪽)이라고 지적한다.
폴라니는 ‘이중 운동’에서 각 계급의 구실이 중요하다고 지적하지만,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옹호해서라기보다는 “두 가지 조직 원리의 활동을 인격화”(381쪽)하는 표현으로서 의미를 가질 뿐이다. 즉, 첫째 원리인 자기조정적 시장은 경제적 자유주의가 추동하는 것으로서, “자유방임과 자유무역이라는 방법”을 채택한다. 다른 하나는 “사회 보호의 원리로서 인간, 자연뿐 아니라 생산 조직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시장의 해로운 운동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이들, 즉 주로 노동계급과 토지 계급의 다양한 지지에 의존하며, 보호 입법, 경제 규제를 위한 연대 및 기타 경제 개입의 수단들을 방법으로 삼는다”(381쪽)고 폴라니는 지적한다. 따라서 폴라니는 노동·토지·화폐를 상품으로 전환하는 자기조정적 시장에 맞서는 계급이 오로지 노동계급만이 아니라 토지 귀족 같은 반동적인 계급일 수도 있음을 지적한다(382쪽).
폴라니는 시장 체제가 본질적으로 모순을 내포하고 있고, 또 시장 체제의 작동이 무리를 빚게 되면 곧 사회 계급들 사이에 갈등이 깊어지게 된다고 본다. 그리 되면 전쟁과 대공황 같은 사회 전체의 위기가 오는데, 20세기 들어 파시즘과 소련의 ‘사회주의’ 그리고 미국의 뉴딜정책이 등장한 것은 이런 위기에 대처한 나름의 대응이었다는 것이 폴라니의 주장이다(559~562쪽).
대안 사회 논의
파시즘도 자기조정적 시장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라는 점에 대해 폴라니는 “산업 영역과 정치 영역을 가리지 않고 민주주의적 제도들을 깡그리 뿌리 뽑아 버릴 것이며, 그것을 대가로 삼아 시장경제를 개혁”(566쪽)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파시즘이 자기조정적 시장에 대한 퇴행적 해결 방식일 뿐 아니라 여러 문명들을 절멸시키는 방식이라고 지적한다.
다른 하나의 대안은 소련의 일국사회주의 노선인데, 폴라니는 1930년대에 국제 체제의 붕괴와 세계무역의 축소와 전 세계적 농업 불황 등 때문에 소련 내부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고, 이를 해결하려는 자체의 방식이 집단 농장과 고도의 산업화였다고 지적한다. 그는 “일국사회주의 노선이란 결국 시장경제가 모든 나라들에 연결 고리를 제공해 줄 능력을 잃는 바람에 촉발된 것이다. 비록 나타난 사건의 외양은 러시아에서의 자급자족 경제의 출현이지만, 기실 그 본질은 자본주의적 국제주의의 사멸이었다”(585쪽)고 지적한다.
전 세계적 위기에 대한 세 번째 대안이자, 폴라니 자신이 기대를 건 대안은 미국의 뉴딜정책이었다. 폴라니는 미국이 자기조정적 시장경제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했고, 이런 기대 때문에 현실에서는 자기조정적 세계 경제를 회복하고자 하는 미국의 움직임을 중단하도록 호소하기도 했다.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의 마지막 장에서 대안 사회의 기초는 바로 노동·토지·화폐가 상품이 아니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리 되면 시장 체제는 원리 차원에서 더는 자기조정적인 것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노동을 끄집어낸다는 것은 “공장의 노동조건과 노동시간, 계약 양식뿐 아니라 기본급 자체마저 시장 외부에서 결정되고”, 이 속에서 “노동조합과 국가, 기타 공공기관 등이 어떤 역할을 새롭게 맡게 되는가를 그 제도들의 성격과 함께 생산관리의 실제 조직에 의해 결정”(589쪽)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토지를 시장에서 제거한다는 말은 “농가, 협동조합, 공장, 지방자치체, 학교, 교회, 공원, 야생 동물 보호구역 등과 같은 구체적인 제도들에 토지를 통합한다는 것과 동일한 말”(590쪽)이다. 화폐를 시장의 통제에서 꺼내오는 일은 금본위제의 해체와 예금통화 창조 그리고 중앙은행의 구실을 통해 여러 나라들에서 이뤄지고 있다.
폴라니는 자기조정적 시장경제가 더는 작동하지 않는 사회를 ‘복합사회’로 규정하는데, 이런 사회에서도 개인의 자유 확대와 이를 저지하는 관료주의 등의 문제는 발생할 수 있다고 보았다.
폴라니는 시장 유토피아를 버리게 되면 사회 실재의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다며, 이때 나타날 수 있는 주요한 두 대안이 파시즘과 사회주의라고 보았다. 그런데 “파시즘과 사회주의 사이의 차이점은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것이 아니다. 이는 도덕적이며 종교적인 문제”(602쪽)라고 지적하는 폴라니는 현대를 위한 가르침을 공상적 사회주의나 복음서에서 찾으려는 로버트 오언의 시도가 비록 충분하지 않을지라도 의미 있는 것으로 여긴다.
폴라니에 대한 평가
폴라니의 사상 체계에는 사민주의나 마르크스주의 등 기존의 좌파와는 다른, 독특한 측면이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이해하기 쉽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곡해되기도 했고 일부 구절이나 용어가 남용되기도 했다. 또, 옛 소련의 붕괴와 복지국가[사회보장제도]의 몰락이라는 시대 분위기 속에서 폴라니에게서 모종의 대안을 기대하는 움직임 때문에 뜻밖의 ‘폴라니 특수’가 나타나기도 했다.
물론 폴라니에게는 큰 매력이 있다. 자기조정적 시장과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은 매우 통렬하고 생생하며 오늘날에도 적실성이 있어서, 마치 그가 오늘날의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것으로 오인할 정도다. 또한, 자기조정적 시장이라는 것이 유토피아에 지나지 않는다는 통찰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럼에도 오류와 한계도 몇 가지 있다. 그는 자기조정적 시장의 확대와 이를 저지하는 ‘이중 운동’이라는 개념으로 19세기와 20세기를 설명하는데, 과연 전체 경제생활 영역이 가격 결정 메커니즘으로 운영됐는가 하는 점이다. 노스 같은 제도주의 경제학자는 19세기는 물론이고 인류 역사 전체에서 자원이 시장가격으로 배분되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주류 경제학에서 제시하는 완전경쟁 시장은 결코 현실적인 모델이 아니라 하나의 이념형일 뿐이고, 실제 경제 현상과 각종 결정들은 시장뿐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국가와 각종 사회 제도의 영향을 받는다. 폴라니도 자기조정적 시장은 유토피아일 뿐 아니라 그것이 국가에 의해 강력히 추진됐음을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자기조정적 시장이 사회에서 분리disembeddedness된다는 개념은 폴라니의 분석에서 큰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약점은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 이후에 다시는 자기조정적 시장이 지배적인 것이 되지 못하리라고 예측한 전후 사회 분석에서도 나타난다. 전후 선진국들, 특히 미국은 국내에서는 각종 개입주의 정책을 폈을지라도, 세계 경제 규범을 확립하는 데서는 철저하게 시장 메커니즘을 추구했다. 전후에 확립된 브레튼우즈 체제에는 영국의 헤게모니가 쇠퇴한 자리에 자신의 지배력을 각인시킨 미국의 의도가 배어 있었다. 세계 자본주의는 자기조정적 시장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더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그 추동력은 폴라니가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바로 그 ‘개혁주의’ 국가들이었다. 따라서 폴라니의 주장에 기초를 두면 전후의 세계 자본주의가 자기조정적 시장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향을 전혀 설명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 결과로 나타난 신자유주의라는 역류(폴라니가 보면 ‘거대한 역전환’이라 할 만한 사건)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이 문제는 국가가 이중적 성격을 지닌 것이라는 결론으로 이끈다. 즉, 폴라니의 논의에서 자기조정적 시장을 확립하는 것도, 사회 파괴에 맞서 이를 저지하는 것도 국가이기 때문이다. 정치학과 사회학의 주류 논의에서 국가와 시장을 대립시키는 관점의 오류가 국가를 자본주의 외부의 제도로 인식하는 경향인데, 폴라니도 이런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폴라니의 경우 자기조정적 시장과 시장의 국제적 확장이 금본위제로 정착된 사실을 영국 제국주의의 지배와 연결하지 못하고, 자기조정적 시장의 힘으로 금본위제를 확립한 것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역사 분석의 한계도 드러낸다.
또 하나의 쟁점은 시장경제에 관한 폴라니의 이해가 매우 독특하다는 점이다. 그는 유통주의적 관점에서 시장을 거래 자체 또는 거래가 이뤄지는 장소로만 이해했고, 따라서 자본주의와는 상관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 오히려 앞에서 지적했듯이, 자본주의(와 산업혁명)와 큰 관련이 있는 것은 시장 자체보다는 자기조정적 시장과 허구적 상품의 등장이다.
폴라니가 염두에 둔 대안 사회는, 시장 자체의 존재 여부와 상관 없이, 자기조정적 시장이 억제되거나 제거된 상태를 말한다. 물론 사회의 주요한 재화(노동·토지·화폐)가 상품이 되지 않고 사회의 경제적 결정이 효율성 추구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를 자본주의가 아니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인류가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미래 사회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또한, 시장경제가 지배하지 않는 사회의 동역학은 무엇이냐는 의문도 남는다.
마지막으로 대안 사회 논의와 관련해서는 세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는 폴라니 자신의 논의에서 드러나는 약점이다. 그는 “19세기 사회의 태생적 약점은 그것이 산업 사회였다는 것이 아니라 시장 사회였다는 것”(588쪽)이라고 지적한다. 이어서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유토피아적인 실험이 완전히 기억 속으로 사라진 뒤에도 산업 문명은 계속해서 존속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런데 폴라니 자신의 논지에 의하면, 산업혁명이 확립한 산업 문명이 시장을 위한 상품 생산을 확대하려고 노동·토지·화폐라는 허구적 상품을 만들어 냈기 때문에 산업 사회가 유지되면서도 자기조정 시장이 사라질 수 있을까 하는 모순이 생긴다.
6 최근에는 이 논의가 사회적 경제로 확장되고 있다. 국가의 시장 억제를 대안으로 추구한다면, 폴라니처럼 복지국가 모델이나 케인스주의적 경제정책에서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둘째 쟁점과 연결되는데, 이 모순에서 벗어나는 길은 자기조정적 시장경제에서 벗어난 지역적 경제를 모색하거나 아니면 국가와 같은 시장경제 외부의 힘으로 자기조정적 시장을 억제하는 길이다. 최근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대안으로 지역주의 경제(동아시아 경제블록, 특정 지역의 지역 화폐나 지역 경제 공동체를 추구하는 등)를 모색하면서 폴라니의 논의를 끌어들이는 것이 그 예다.셋째는 대안 사회를 건설하는 주체와 관련된 문제다. 폴라니는 계급과 계급 관계는 인식했지만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은 부정했다. 이런 태도는 공상적 사회주의 전통과 맞닿아 있다. 폴라니 자신은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에 관해 깊게 고민하고 연민도 느꼈지만, 그들에게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잠재력이 있다는 점은 보지 못했다. 폴라니는 마르크스주의를 경제적 자유주의와 마찬가지인 경제결정론이라고 기각함으로써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과 그 체제에서 노동계급이 갖는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힘을 인식하지 못했다. 폴라니의 이런 약점은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이 없는 다양한 대안을 모색하는 개혁주의 흐름에 문호를 열어놓게 됐다.
주
참고 문헌
김균, ‘칼 폴라니와 자유주의 비판’, 《자유주의란 무엇인가》, 삼성경제연구소(2001).
김상준, ‘중간경제론’, 《경제와 사회》 80호(2008년 겨울).
김영진, ‘칼 폴라니의 시장사회 비판 연구: ‘이중운동’ 개념을 중심으로’, 《국제지역연구》 8권 3호(2004).
김영진, 《시장자유주의를 넘어서: 칼 폴라니의 사회경제론》, 한울아카데미(2005).
김정원, ‘한국에서 사회적경제의 재조직화를 위하여’, 2009년 8월 27일 ‘한국사회포럼2009’ 발표문.
블록, 프레드 & 소머즈, 마가렛, ‘3장 경제주의적 오류를 넘어서: 칼 폴라니의 전체론적 사회과학’, 테다 스카치폴 편, 박영신 외 옮김, 《역사사회학의 방법과 전망》, 대영사(1986).
원용찬, ‘칼 폴라니의 실체경제와 지역문화운동’, 《문화경제연구》 6권 1호(2003).
이병천, ‘칼 폴라니의 제도경제학과 시장사회 비판’, 《사회경제평론》 23호(2004).
폴라니, 칼 엮음, 이종욱 옮김, 《초기 제국에 있어서의 교역과 시장》, 민음사(1994).
폴라니, 칼, 박현수 옮김, 《인간의 경제Ⅰ》, 《인간의 경제Ⅱ》, 풀빛(1983).
폴라니, 칼, 홍기빈 옮김,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외》, 책세상(2002).
폴라니, 칼, 홍기빈 옮김, 《거대한 전환: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 길(2009).
홍기빈, ‘옮긴이의 말’, 《거대한 전환》, 길(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