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장기파동론 비판
사회주의자들은 항상 경제 상황 변화에 큰 관심을 보인다. 경제 상황이 직접적이고 기계적이지는 않을지라도 노동자 대중의 자신감과 투쟁 의지 등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경제가 심각한 불황이면 노동자 대중이 받는 고통도 증대하므로 자동으로 혁명적 투쟁에 나설 것이라는 추론은 마르크스주의와 무관할 뿐 아니라 경험적 사실과도 맞지 않다. 노동자들이 고통을 더 크게 느끼면 체제에 대한 반감이 커질 수 있겠지만 사기와 자신감이 떨어질 수도 있다. 오히려 경기가 불황에서 회복될 때 노동자들이 자신감을 회복하고 투쟁에 나서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경제 상황과 그 변화가 노동자들의 의식과 자신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1 자본주의 경제가 실제로 이와 같이 움직인다면 경기 상승기와 하강기를 쉽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므로 굳이 자본주의 경제 상황을 분석하려 애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 상황의 변화를 파악하려면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 원리뿐 아니라 경제 외적 요소들, 즉 사회적·정치적 요소들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그 강도도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경제적 요소와 사회적·정치적 요소 등의 상호작용이 자본주의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자본주의 경제가 일정한 패턴과 리듬과 주기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는 주장들이 있다. 재고의 형성과 소진을 중심으로 40개월 주기로 경기 순환이 나타난다고 보는 키친 순환, 고정자본 투자와 관련해 10년 주기가 나타난다고 보는 주글러 순환, 15~25년 주기의 건설 투자 순환을 말하는 쿠즈네츠 순환, 50년 주기의 가격 변동을 기반으로 한 콘드라티예프 순환 등이 그런 예들이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좌파들이 자본주의 경제가 장기적이고 규칙적인 순환을 지니고 있다고 여긴다. 아날학파의 페르낭 브로델이 주장하는 ‘장기 지속’이 그렇고, 그 영향을 받은 세계체제론자들이 모두 경제의 장기순환론을 받아들인다. 조절이론가인 브와예나 사회적 축적구조론자인 데이비드 고든도 장기순환론을 받아들이다. 사회적 축적구조론을 주창한 데이비드 고든은 자본 축적을 위한 개별 자본가의 선택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경제적 환경, 즉 자본 축적이 이뤄지는 제도적 환경을 사회적 축적구조라고 불렀는데, 이런 사회적 축적구조의 성립과 붕괴가 50~60년 주기의 콘드라티예프 순환을 보인다고 봤다. 비교적 최근에 국역된 책에서 폴 메이슨은 “콘드라티예프의 이론은 옳았다. 그리고 인과관계와 관련한 그의 주장은 1945년 이후 세계경제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정확히 설명해 준다” 하고 주장했다.3 정성진 교수는 “장기파동 및 사회적 축적구조 개념이 1960년대 이후 한국 자본주의 역사를 서술하는 개념으로 유용하다”고 주장한다. 4
한국의 좌파 경제학자들도 자본주의 경제의 장기순환론을 받아들이는데, 윤소영 교수와 정성진 교수가 대표적이다. 윤소영 교수는 “50년이 아니라 100년을 주기로 하는 이윤율의 장기순환을 제시하는” 아리기의 축적체계론이 “과학적 의미에서 타당한 체계사”라고 말한다.1920년대에 시작된 장기파동론이 1970년대 초반에 부흥하더니 2017년에 다시 부상한 것을 보면 이 이론 자체가 장기파동을 보이는 것 같다. 자본주의 경제가 장기순환의 리듬을 보인다고 처음 주장한 콘드라티예프의 장기파동론과 그 현대적 계승자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은 또한 오늘날 장기순환론을 받아들이는 이들 좌파 경제학자들에 대한 적절한 대응일 것이다.
콘드라티예프의 장기파동론
5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몰라도 콘드라티예프의 사상이 부르주아 경제학자들과 일부 좌파 경제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 그의 이론은 1930년대에 조지프 슘페터에게 흡수됐고, 1973년 이래 세계경제 위기에 대한 설명을 찾던 로스토우에게 영향을 줬다. 좌파 중에서는 에르네스트 만델이 콘드라티예프 장기파동론의 부활에 동참했다. 6
1892년 러시아에서 태어난 콘드라티예프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 비판적이었던 뵘-바베르크의 제자였고, 멘셰비키였으며, 1917년에는 임시정부의 식량 공급 책임자로 일했다. 스탈린의 반혁명 이후 그는 1938년 9월에 ‘노동농민당’을 건설하려 했다는 날조된 혐의로 총살당했다. 폴 메이슨은 스탈린이 콘드라티예프를 사살한 진짜 이유는 자본주의가 위기를 겪으며 무너지는 대신 적응하고 진화한다는 용납할 수 없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콘드라티예프는 1922년에 출간한 자신의 책 《전쟁 중과 이후의 세계경제와 그 정세》에서 처음으로 장기파동 개념을 언급했다. 콘드라티예프는 가격, 이자율, 주가, 임금, 대외무역, 국민생산 등에 대한 통계 자료를 기초로 해서, 단기적인 호황·불황뿐 아니라 장기적 파동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20~25년 동안의 상승기에는 평균 이하의 금리, 가격 상승, 평균 이상의 물질적 생산의 증대, 대외무역의 급속한 증가 등이 나타나고, 그다음 20~25년 동안 하강기가 이어진다. 그래서 그는 1789년 이래 자본주의는 대략 50년 주기의 장기파동을 두 번 겪었는데, 1896년부터는 세 번째 장기파동이 시작해 1920년까지 지속되고 있다고 봤다.
1790년부터 1810~17년까지의 상승 국면과 1810~17년부터 1844~51년까지의 하강 국면으로 이뤄진 1차 파동, 1844~51년부터 1870~75년까지의 상승 국면과 1870~75년부터 1890~96년까지의 하강 국면으로 이뤄진 2차 파동, 1890~96년부터 1914~20년까지의 상승 국면으로 진행되고 있는 3차 파동이 그것이다.
콘드라티예프의 주장에는 올바른 지적이 있다. 즉, 자본주의 발전의 불균등성 때문에 빨리 발전하는 시기도 있고 느리게 발전하는 시기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콘드라티예프는 자본주의가 항상 균형에 도달하려는 속성이 있다고 여겼다. 이는 자본주의가 자본주의인 한 그 동역학은 항상 똑같이 작동한다고 가정했기 때문이다.
여러 단계를 거치더라도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이며, 그 기본 특징과 규칙성은 유지된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 단계들을 자본주의의 단계들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가치법칙과 가격법칙, 이윤과 생산 기준과 관련된 경향들, 경제 정세의 동요와 위기는 각 단계마다 이러저러한 특징과 함께 스스로 나타난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나 경제학의 어떤 경향도 가치법칙과 가격법칙, 이윤법칙, 경제 정세의 변동 법칙들은 자본주의 발전의 상이한 단계들마다 절대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해 일반화를 불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혈액 순환 법칙과 호흡의 법칙이 유기체의 나이에 따라 완전히 다르다고 주장하며 일반화를 허용하지 않는 생리학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콘드라티예프는 자본주의 운동의 특징은 규칙적인 리듬과 균형으로의 복귀라고 주장한 것이다. 예를 들어 1920~21년의 경제 상황은 파괴된 세계시장의 생산력 분배 균형이 회복되는 상황이었다고 봤다. 콘드라티예프는 세계 자본주의 경제에서 균형의 파괴가 경제 위기를 낳는다고 여겼는데, 이런 균형 개념을 이어받은 것이 조지프 슘페터의 경기순환론이었다. 이 균형 개념은 나중에 트로츠키와의 논쟁에서 핵심 쟁점이 됐다.
콘드라티예프 장기파동론 비판
트로츠키는 1923년에 콘드라티예프의 저작을 처음으로 접하고 ‘자본주의 발전의 곡선’이라는 제목의 비판 글을 썼다. 트로츠키의 콘드라티예프 비판에서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는 자본주의의 동역학이 언제나 똑같이 작동하며 또한 결국 균형을 회복한다는 콘드라티예프의 주장이었다.
트로츠키는 자본주의에 장기적 추세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리고 이 역사적 추세와 8~10년마다 반복되는 주기적 순환을 구분해야 한다고 봤다. 그러나 이 둘 사이의 관계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자본주의 경제는 언제나 “기본 특징과 규칙성은 유지된다“는 콘드라티예프의 생각과 달리, 자본주의 경제가 순전히 경제적 요소들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경제 외부적 조건에 의해서도 결정된다고 비판한 것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경제의 장기적 추세는 경제 외적인 여러 요소들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자본주의 경제에서 장기적이고 규칙적인 순환이 반드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고 비판한 것이다. 그래서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콘드라티예프 교수가 조심성 없이 ‘주기’라고 지칭한 자본주의 발전 곡선의 장기적 분절점(50년)에 관해 말하자면, 그것의 특성과 지속성은 자본주의적 힘들의 내적 상호작용이 아니라 … 외부적 조건들에 의해 결정된다. 새 나라나 신대륙의 자본주의로의 편입, 새 천연자원의 발견, 그와 더불어 나타나는 전쟁과 혁명 같은 ‘상부구조적’ 질서의 주요한 사건들이 자본주의 발전에서 나타나는 상승·정체·하강 시기의 특성과 그 교대를 결정한다. 그렇다면 어떤 방향으로 연구를 해야 할까? 자본주의 발전의 비주기적(기본적) 국면과 주기적(이차적) 국면을 고려한 곡선을 규명하고 우리의 흥미를 끄는 개별 나라와 세계시장과 관련한 한계점을 구명하는 것, 이것이 일차 과제다.트로츠키와 비슷한 관점에서 수하노프는 콘드라티예프를 적절히 비판했다. “콘드라티예프는 천문학자가 불변의 천체 궤도를 조사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경제학을 연구한다. 자본주의가 유년기, 성숙기, 노쇠기 — 그리고 나아가서는 죽음까지 — 를 거친다는 것을 고려하는 편이 좀 더 합리적인 접근법일 것이다.” 또한 트로츠키는 자본주의의 장기적 추세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콘드라티예프의 주장을 비판하면서 엥겔스가 쓴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서문을 인용한다. 여기서 엥겔스는 개별 사건들이나 일련의 사건들을 평가할 때 궁극적인 경제적 원인까지 모두 규명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세계 시장에서 일어나는 교역의 움직임과 생산 방법 변화를 나날이 추적하여, 특정 시점에 복잡하게 얽혀 있고 항상 변하는 요인들로부터 일반적 결론을 도출해 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반면 콘드라티예프처럼 자본주의에서 경제의 장기적 추세가 정해져 있고 언제나 동일하다고 본다면, 특정 사건의 경제적 원인을 일반적 결론으로 도출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엥겔스는 “동시대사를 고찰하기 위해서는 이 가장 결정적인 요소[경제적 요소]를 불변의 것으로 취급하고, … 우리의 눈앞에 확실히 존재하는 사건 자체로부터 발생하며 따라서 마찬가지로 뚜렷이 목격될 수 있는 변화만을 주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엥겔스가 죽기 직전에 쓴 이 글의 내용을 발전시킨 인물이 바로 트로츠키다. 트로츠키는 코민테른 제3차 대회에서 ‘세계경제 위기와 코민테른의 과제’라는 보고서를 제출해 자본주의가 자동으로 새로운 토대를 재확립함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여기는 개혁주의자들, 자본주의는 단절이나 부분적 회복 없이 완전한 붕괴에 이를 때까지 계속 하락하기만 할 것이라고 본 초좌파 모두를 비판했다. 여기서 콘드라티예프의 입장은 바로 전자에 속했다. 앞에서 말했듯이, 콘드라티예프는 1920~21년 상황을 자본주의의 불균형이 회복되는 과정으로 봤지만, 트로츠키는 장기 불황의 지속 속에서 나타난 부분적 회복으로 봤다.
두 번째 쟁점은 장기파동 자체의 존재 여부다.
11 그 때문에 콘드라티예프의 장기파동론을 발전시키려던 사람들도 입장이 달랐다. 로스토우는 장기파동을 단순한 가격 변화로만 이해했던 반면, 에르네스트 만델은 생산 면에서도 장기파동이 존재한다고 여겼다.
우선 콘드라티예프의 방법이 통계적으로 극도로 자의적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오파린, 그라노프스키, 게르츠슈타인, 보그다노프 등은 콘드라티예프의 파동이 물가 차원에서만 적용되며, 실제 생산 차원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라노프스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격 운동 말고는 장기파동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어디에도 없다. … 장기파동은 콘드라티예프 교수의 상상력의 산물이다.” 사실 콘드라티예프가 하강기로 분류한 시기에도 생산의 급속한 팽창이 나타나기도 했고, 반대로 상승기로 분류한 시기에 생산력 증가의 둔화가 나타나기도 했다. 콘드라티예프를 비판한 인물들은 과연 그 주기가 50년으로 분명하게 나타나느냐는 의문도 제기했다. 예를 들어 20~25년의 상승기 내에 있는 단기적인 불황기를 그 앞의 하강기나 그 뒤의 하강기와 묶어서 보면 50년의 장기파동이 나타나지 않는다. 후대에 장기파동론을 연구한 프리먼, 클락, 소에토는 50년 주기의 존재를 증명하기에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그들의 연구는 트로츠키와 당시 소비에트 경제학자들의 콘드라티예프 비판이 옳았음을 보여 준다.13 사실 가비의 이런 비판은 모든 장기파동 이론가들에게도 해당된다.
장기파동론은 이론 면에서도 심각한 결함이 있다. 장기파동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기술혁신을 통해 새로운 상승기를 준비할 수 있다고 본다. 도래하는 새 상승기에 투자될 수 있는 자본이 하강기에 이미 마련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강기는 자본주의의 평균적 시기보다 더 심각한 불황이 지속되는 기간이고 따라서 자본의 전면적 파괴와 평가절하가 수반되는 시기다. 따라서 상승기를 대비한 자본이 비축될 수 없다. 이 오류는 콘드라티예프가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여유 자본이 항상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뵘-바베르크의 전통을 따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이에 대해 조지 가비는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자유롭게 대출할 수 있는 자금이 4반세기 동안 연속적인 경기 순환의 팽창과 수축에 영향을 받지 않은 채로 재투자되기를 기다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콘드라티예프의 가정은 확실히 그의 논의에서 가장 취약한 점 중 하나이며 경험적인 분석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콘드라티예프의 후계자들
14 만델은 트로츠키가 콘드라티예프의 장기파동을 분명히 비판했다고 지적한 조지 가비의 주장도 묵살했다. 만델은 “조지 가비는 위의 논점을 트로츠키가 장기파동의 존재를 인정했으나 그것의 주기적 성격은 부정했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이러한 견해는 … 그렇게 정확한 견해가 아니다”고 항변했다. 15 하지만 조지 가비는 “트로츠키가 장기순환이라는 개념은 유용하지 않다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16
1920년대 트로츠키가 호되게 비판한 입장이 트로츠키의 후계자들에 의해 부활했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에르네스트 만델은 ‘트로츠키 대 콘드라티예프 논쟁’에서 콘드라티예프의 주장을 현대 자본주의에 적용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런데 그러려면 만델은 트로츠키의 주장을 왜곡해 콘드라티예프의 주장과 절충해야 했다. 그래서 만델은 트로츠키의 콘드라티예프 비판을 “순수하게 경제적인 자료의 한계를 극복하고 연구 과정 속으로 일련의 사회적, 정치적 발전 방향도 통합시켜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식으로 왜곡했다.사실 만델이 자신의 책 《후기자본주의》에서 추구한 목표의 하나는 정설 마르크스주의 주장으로 콘드라티예프의 결론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만델은 연속적인 산업 순환을 유지하는 내재적 동학은 바로 기술혁신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장기파동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통해 나타난다고 봤다. ‘자본의 과잉축적이 나타난다. 이윤율이 낮아도 일부 과잉 자본은 투자를 할 수밖에 없다. 이 투자가 쌓이면 새로운 기술 혁명이 시작된다. 이때 새로운 생산과정이 나타나고 이윤율이 상승하고 투자가 증가하고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는 새로운 장기파동이 시작된다. 그리고 유휴자본들이 다시 투자된다. 그 뒤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상승하고 이윤율이 하락하는 시기가 이어진다.’
그러면서 만델은 자본주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① 18세기 말부터 1823년 가속 성장 시기, 1824~47년 감속 성장 시기. ② 1848~73년 가속 성장 시기, 1874~93년 감속 성장 시기. ③ 1894~1913년 가속 성장 시기, 1914~39년 감속 성장 시기. ④ 1940년(또는 국가에 따라 1940~48년)부터 1966년까지 가속 성장의 시기. 그래서 만델은 1970년대는 장기파동의 하강 단계라고 주장했다.
만델은 투자와 경제성장률 수준을 이윤율과 연관시킴으로써 콘드라티예프의 주장에 내재해 있는 모호함과 복잡성을 모면할 수 있었다. 또한 만델은 이윤율을 주요 결정 요인으로 주장함으로써 자본주의의 내부적 동학과 외부적 조건이라는 트로츠키의 구분을 뛰어넘으려 했다. 하지만 만델은 기술혁신의 내적 동역학을 묘사할 때 장기적 리듬이 존재하는 듯 주장한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 경제 이론과 콘드라티예프 장기파동론의 절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만델의 주장도 다른 장기파동론이 걸려 넘어진 문제를 똑같이 반복한다. 즉, 어째서 기술혁신에 장기적 주기가 존재하는지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장기파동론은 자본주의의 불균등 발전을 신비화하고 주기적 변화와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 사이의 관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17 ‘체계적 축적 순환’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아리기의 체계적 축적 순환은 자본주의 역사가 실물적 팽창 국면과 금융적 팽창 국면이 서로 갈마드는 과정을 거친다는 뜻이다.
만델과 마찬가지로 콘드라티예프의 장기파동론을 발전시키려 한 인물은 조반니 아리기다. 그는 페르낭 브로델의 장기 순환이나 그보다 짧은 콘드라티예프의 장기파동 같은 순환 개념이 “상품 가격의 장기 변동에서 도출된 불확실한 이론적 입장에서 만들어진 경험적 구성물”이라고 비판하면서도,18 자신이 주창한 체계적 축적 순환들이 콘드라티예프 파동을 개념화한 거하드 멘쉬의 사회경제 발전 ‘변형 모델’과 형태상 매우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아리기는 가격의 장기 변동을 보여 주는 콘드라티예프 장기파동이 “자본주의적인 것의 모순과 팽창을 밝혀 주는 신뢰성 있는 지표는 아니”라면서도,19 정작 그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다. 이것이 그의 진정한 약점이다.
아리기는 “체계적 순환 개념의 주목적은 중세 말 하위 체계의 맹아로부터 현재의 전지구적 차원까지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그것을 통해 팽창해 온, 연이은 체제들의 형성, 공고화, 그리고 해체를 묘사하고 밝혀내는 것”이라고 밝혔지만,20 순환론적 역사관이 지닌 문제점은 제쳐 두더라도 왜 이런 순환이 반복되는가, 다른 가능성은 없었는가 하는 물음에 답변이 없다는 점도 아리기의 핵심 약점이다. 아리기는 고전 마르크스주의와 달리 역사적 과정을 역사적 행위자가 주어진 조건과 구조 하에서 투쟁을 벌이는 과정으로 보지 않는다. 그저 주어져 있는 전제일 뿐이다.
아리기는 20세기를 세 시기로 구분한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금융적 팽창기,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실물적 팽창기, 현재의 금융적 팽창기. 이때 “금융적 팽창은 ‘낡은’ 체제가 되풀이해서 파괴되는 동시에 ‘새로운’ 체제가 탄생하는 필수적 측면”이라고 아리기는 주장한다. 따라서 현재는 “’낡은’ 체제가 된 미국체제의 구조는 파괴되고 있고, ‘새로운’ 체제의 구조가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오늘날의 경제 정세는 1920년대 초반 세계 자본주의의 장기적 불황과 비슷하다. 당시 등장한 장기파동론은 이미 경험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논박됐다. 트로츠키는 자본주의의 불균등 발전이라는 추세선과 경제의 주기적 등락을 함께 고려해야 하고, 또 그 변화들 속에서 변곡점들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1920년대 초반 경제 상황의 일시적 회복이 노동자들의 의식과 자신감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변증법적으로 분석하고자 했다. 오늘날 필요한 것은 장기파동론 같은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이론이 아니라 트로츠키의 방법론과 그것을 실제에 적용해 보는 것이다.
주
- 이 글에서는 주기·순환과 파동을 구분하지 않고 사용했다. 영어의 cycle은 보통 주기나 순환으로 번역하고 wave는 파동으로 번역하지만 같은 의미이다. 특히 콘드라티예프가 말한 long wave라는 용어 때문에 자본주의 경제가 장기적으로 일정한 패턴을 나타낸다는 주장이 장기파동론으로 번역되곤 한다. 주류 경제학계에선 business cycle이라는 표현이 사용되는데, 보통 경기 변동이나 경기 순환이나 경제 순환으로 번역된다. 콘드라티예프의 주장을 이어받는 조지프 슘페터가 business cycle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대표적인 주류 경제학자다. ↩
- 메이슨 2017, p91. ↩
- 윤소영 2012, pp16-18. ↩
- 정성진 2005, p126. ↩
- 메이슨 2017, p82. 메이슨은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스탈린주의자들 외에도 극좌파의 대다수가 자본주의 자동붕괴론 같은 초좌파적 입장을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처럼 묘사한다. 이에 대한 비판은 메이슨의 책에 대한 추나라(2017)의 서평을 보라. ↩
- 하먼 1995, p213. ↩
- Day 1976, p79에서 재인용. 강조는 원문. ↩
- Trotsky 1923. ↩
- Day 1976, p78-79에서 재인용. ↩
- 엥겔스 1993, p16. ↩
- 하먼 1995, p215. ↩
- 하먼 1995, p217. ↩
- Garvy 1943, p219. ↩
- 만델 1985, p126. ↩
- 만델 1985, p127. ↩
- Garvy 1943, p213. ↩
- 아리기 2008, p39. ↩
- 아리기 2008, p40. ↩
- 아리기 2008, p44. ↩
- 아리기 2008, p18. ↩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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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슨, 폴 2017, 《포스트자본주의: 새로운 시작》, 도서출판 길벗.
아리기, 조반니 2008, 《장기 20세기》, 그린비.
엥겔스, 프리드리히 1993, 《프랑스 혁명사 3부작》 ‘프랑스에서의 계급 투쟁’ 서문. 소나무.
윤소영 2012, 《역사학 비판》, 공감.
정성진 2005, 《마르크스와 한국 경제》, 책갈피.
추나라, 조셉 2017 ‘최신 유행을 따르는 듯하지만 구식인 주장.’ 《마르크스21》 19호(2017년 3~4월호). 책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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