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Ⅰ: 트럼프 등장 이후 한반도
제국주의와 한반도
이 글은 아일랜드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요청으로 그 당의 계간 잡지 《아이리시 맑시스트 리뷰》에 기고한 글이다. 주로 아일랜드인을 염두에 두고 썼지만 한국 독자들에게도 유용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10월 현재 한반도를 휘감은 긴장이 좀체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 긴장 속에 살면서, 많은 한국인들은 동아시아와 한반도가 전 세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큰 지역이 됐음을 실감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지로 부상한 동아시아에서 말이다.
25년 전만 해도 북한은 핵무기도 중거리 미사일도 없는 국가였다. 그러나 오늘날 북한은 최근의 수소폭탄 실험을 포함해 6차례나 핵실험을 감행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할 수 있는 국가가 됐다.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만한 능력을 갖췄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적어도 서울·도쿄 같은 미국 동맹국의 핵심 도시나 오키나와·괌 같은 미국의 서태평양 군사 거점을 핵무기로 타격할 수는 있다고 본다.
그래서 전후 맥락을 잘 모른다면, 북한의 ‘도발’이 오늘날 동아시아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주범이라고 여기기 쉽다.
물론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분명 끔찍한 소식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반도 주변에서 세계 1위·2위·3위의 경제 대국들이 대립하고 핵무기 경쟁을 포함한 군비 경쟁을 벌이고 있는 구체적 맥락 속에서 보면 북한의 ‘도발’은 사뭇 달리 보일 것이다. 북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불안정은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역대 정부들이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실행한 정책들이 누적적으로 쌓인 결과이다. 미국의 핵확산 통제 정책이 반대로 북한으로의 핵확산이라는 역풍을 초래한 셈이다. 또한 한반도가 제국주의 간 경쟁의 최전선이 돼 있다는 현실에서 비롯한다. 즉, 오늘날 한반도 불안정은 제국주의 세계 체제의 문제다.
한반도 불안정을 이해하려면, 우선 지도부터 봐야 한다. 한반도는 유라시아 동쪽 끝에 있는 반도다. 북쪽으로는 중국 동북 지방과 러시아에 접해 있다. 특히 오늘날 중국과 북한의 국경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1500킬로미터에 이른다. 한반도에서 중국 수도 베이징은 여객기로 2시간 이내에 도착할 만한 거리에 있다. 한반도 남쪽은 일본에 매우 가까워서, 남해안 도시 부산에서 일본 쓰시마 섬을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다.
19세기 후반 서구 제국주의가 동아시아로 진출한 이래, 이런 지정학적 조건 때문에 한반도는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자신의 세력권에 넣기 위해 싸우는 경쟁 무대가 됐다. 대표적 사례가 1904~1905년 러일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러시아와 일본은 중국 동북 지방(만주)과 한반도를 놓고 맞붙었다. 당시 영국과 동맹을 맺은 일본 제국주의는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려 했고, 러시아 제국주의는 만주를 차지하고 한반도에서 부동항不凍港을 확보하려 했다. 전쟁 발발 전에 러시아와 일본은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한반도를 남북으로 분할해 각각 차지하는 타협책을 논의했지만, 양측 모두 만족스런 합의가 이뤄지지 않자 결국 정면 충돌로 나아갔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1910년 한반도 전체를 식민지로 삼아 버렸고, 이후 한반도는 일본의 중국 진출을 위한 교두보가 됐다.
35년간의 식민 지배는 한반도 민중에게 매우 끔찍한 경험이었다. 1945년 일본이 제2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하자 한반도 민중은 오랜 제국주의 지배에서 벗어나기를 열망했다. 그러나 미군이 한반도 이남에, 소련군이 한반도 이북에 들어와, 한반도를 남북으로 분할·점령했다. 바로 그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말이다.
미국과 소련은 모두 한반도를 안보적 중요 지역, 또는 동아시아 세력권 확보를 위해 반드시 차지해야 할 곳으로 인식했다. 미국에게 한국은 일본을, 그리고 태평양을 방어하는 전초기지였다. 소련도 미국처럼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를 갖고 한반도에 들어왔다. 미국과 소련 양대 제국주의는 한국인들의 온갖 저항을 짓누르며 자국에 우호적인 정권을 남·북한에 각각 수립했다.
냉전은 1950년 한반도에 참혹한 열전을 일으켰다. 스탈린의 승인을 받은 북한 김일성이 통일을 위한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곧 미국과 중국이 개입했고, 전쟁은 무려 3년 동안 지속되며 30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희생자는 대부분 민간인이었다. 당시 미국은 여러 차례 핵무기 사용을 검토했는데, 하마터면 평양이 제2의 히로시마가 될 뻔했다. 핵무기가 실제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한국전쟁은 한반도 전역(특히, 미군의 무차별 폭격을 맞은 북한)을 잿더미로 만든 매우 야만적인 제국주의 간 대리전이었고 냉전의 집약판이었다.
1 을 하며 한반도 핵전쟁 연습을 지속하고 있다.
북위 38도선 인근에서 전선이 오랜 시간 고착되자, 1953년 정전이 이뤄졌다. 그러나 이후에도 전쟁 위기가 여러 차례 일어났다. 미국은 남한에 미군을 대규모로 주둔시켰고, 정전협정을 위반하고 핵무기를 남한에 들였다. 한때 남한에 배치된 핵무기가 1000기에 육박했다. 냉전이 종식되면서 1991년에 핵무기는 철수했지만, 미군은 지금까지 한국군과 함께 매년 대규모 연합 훈련남·북한 지배자들은 휴전선 남북으로 대치하며 제2의 한국전쟁에 상시적으로 대비해 왔다. 수십 년 동안 군사 경쟁을 벌이다 보니, 오늘날 한반도 휴전선 일대는 세계에서 재래식 전력이 가장 밀집된 지역이 됐다.
휴전선을 사이에 둔 군사 경쟁의 압력 속에, 남·북한 모두에서 독재가 강화됐다. 북한에서는 김일성과 그의 핵심 측근들이 경쟁 관료 분파들을 제거하고, 냉전 내내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중공업 중심의 공업 발전에 매진했다. 남한에서도 친미 독재자들이 잇따라 통치하며,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국가가 주도적으로 산업 성장을 추동했다.
이렇게 남·북한에서 급속한 공업화가 이뤄졌고, 양쪽에 독립적인 자본 축적의 중심지가 형성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남·북한 모두에서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는 사람들인 노동계급이 거대하게 형성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한에서는 1987년 대중 항쟁이 일어나 부르주아 민주주의로의 전환이 시작될 수 있었는데, 그 저항의 핵심 사회 세력이 노동계급이었다.
냉전 이후
냉전이 종식되면서, 한반도는 다소 유동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그러나 냉전 종식은 많은 한국인들이 기대한 해빙이 아니라, 새로운 불안정의 출발점이 됐다.
동구권이 붕괴하면서, 미국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정치적·군사적 위상은 커지게 됐다. 그러나 미국 경제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하락하고 있었다. 반면에 독일과 일본 같은 다른 자본주의 강대국들의 경제가 크게 성장하고 신흥공업국들이 등장하는 등, 세계 경제력의 지리적 분포가 달라지고 있었다. 미국 지배자들은 앞으로도 계속 미국이 국제 서열의 꼭대기를 지킬 수 있을지 불안감을 갖게 됐다. 미국 제국주의에게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유지하는 문제로도 고심했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핵심은 일본이 미국의 지도력을 따르게 하는 것이었지만, 미일동맹은 1990년대 중반까지 안정되지 못하고 삐거덕댔다. 소련이라는 공통의 적이 사라지자, 중국도 잠재적으로 미국의 경쟁자로 부상했다.
그래서 미국 지배자들은 1990~1991년 걸프전에서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을 사용해 세계 지배자들한테 세계의 안전은 결국 미국의 힘에 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 했다.
미국이 보기에 북한은 동아시아판 이라크였다. 즉, 미국의 개입이 필요한 새로운 ‘위협’으로 지목하기에 적합했다. 당시 북한은 소련과는 소원해진 채, 제멋대로 구는 골칫거리 같은 이미지에 딱 맞아 보였다.
1990년대 북한 국가자본주의는 심각한 대내외적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북한 경제는 1970년대까지는 남한에 앞서 있었지만, 북한식 자립 경제 모델은 점차 한계에 부딪혀 1980년대에 경제가 추락하기 시작했다.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는 안 그래도 위기에 빠진 북한 경제에 결정적 타격을 줬다. 이 때문에 남·북한의 경제 격차가 심하게 벌어졌다. 이 추세는 최근까지 지속돼, 오늘날 남·북한의 GDP 격차는 45대 1까지 벌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여전히 미국과 수교를 맺지 못한 가운데 소련과 중국이 남한과 수교를 맺은 것도 북한 지배자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북한은 이를 심각한 안보 위기 상황으로 받아들였다. 1990년 소련이 남한과 수교하겠다고 북한에 통보하자, 북한은 처음으로 “희망하는 무기(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고 소련 측에 밝히게 된다.
그러나 북한 지배자들이 핵무기 개발로 곧장 나아간 것은 아니었다. 경제 위기에서 벗어날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북한 지배자들은 미국·일본 등 서방과의 관계 정상화를 계속 시도했다. 1992년 김일성은 “미국에 가 낚시도 하고 친구도 사귀고 싶다”고 말했다. 2002년에도 그의 아들 김정일이 일본 총리 고이즈미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부시 대통령과 밤새 목이 쉬도록 노래 부르고 춤추고 싶다.”
북한이 내민 손을 뿌리친 건 바로 미국이었다. 1991년 북한은 일본과 수교를 맺는 데 근접했는데, 미국이 개입해 북·일 관계 개선을 방해했다. 미국은 북한 영변의 핵시설이 핵무기 개발 목적의 시설이라고 의혹을 제기하며 북한을 몰아세웠다. 한반도 정세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미국은 북한의 ‘위협’을 엄청 과장했지만, 미국이 걱정한 것은 북한 자체가 아니었다. 미국이 북핵을 문제 삼은 것은 핵무기 확산 통제 정책의 일환이었다. 미국은 냉전 해체 이후 여러 국가들이 핵무장에 나설 가능성을 우려하며, 이에 제동을 걸고 미국의 핵 우위를 유지하려고 북한을 본보기로 삼은 것이었다.
미국의 압박에 북한은 여러 양보 조처를 하고 진지한 제안들을 내놓았지만, 미국은 이를 모두 경시했다. 1994년 여름에 이르자, 미국은 북한에 온갖 협박을 퍼부으며 군사 행동을 준비했다. 클린턴 정부는 북한 핵시설을 공격할 것을 검토하며, 그 사전 단계로 미군의 대대적인 한국 증원을 준비했다. 이 결정은 한반도 전쟁 위험성을 내포한 것이었다. 당시 주한 미국 대사는 대사관 직원과 그 가족들에게 “이른 여름휴가”를 고려하라고 지시했다.
4 전면전이 발발하면 미국과 그 동맹국들도 막대한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만약 1994년 미국이 북한을 공습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은 빌 클린턴에게 제2차 한국전쟁이 일어나면 적어도 사상자 100만 명, 비용 1000억 달러, 산업 피해 1조 달러가 생길 것이라고 보고했다.위기는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로 봉합됐다. 북한이 미국의 핵심 요구를 받아들였다. 북한은 기존의 핵시설을 폐쇄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을 받기로 하는 등 명백히 자국에 불리한 협정에 서명했다.
대북 전쟁 위협에서 제네바 합의에 이르는 과정에서, 미국은 냉전 종식 후에도 동아시아에서 손 뗄 생각이 없음을 대내외에 보여 줬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안정은 미국에 달려 있음을 잊지 말라고 그 지역의 국가들(중국·러시아·일본·남한)에게 천명한 셈이었다.
미국은 처음부터 제네바 합의를 제대로 이행할 의사가 없었다. 합의상에는 북한과 미국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미국은 핵 공격을 포함한 대북 군사 위협을 중단하며, 미국의 대북 무역·경제 장벽을 제거하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진전된 게 없었다. 합의 이후에도 미국은 북한에 번번이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며 새로운 요구들을 들이밀었다. 이렇게 북한 ‘위협’을 부각시키는 것은, 1990년대 미·일 동맹을 새롭게 갱신하면서 일본이 미국의 전략적 종속 아래에 있도록 유지시키는 데 도움이 됐다.
2001년 조지 W 부시가 미국 대통령이 되면서, 미국의 대북 압박 수위는 다시금 매우 높아졌다. 부시의 집권을 도운 신보수주의자들(네오콘)은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이용해 세계적 경제적·정치적 권력 분포를 자국에 유리하게 변화시키려고 했다. 즉,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이 갖지 못한 우월한 군사력을 이용하면 미국이 시장 경쟁에서 잃고 있는 것을 만회할 수 있다고 기대한 것이었다.
네오콘을 비롯한 미국 지배자들은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경제성장을 우려스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중국의 경제성장이 군사력 증강으로 이어져,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지위를 흔들까 걱정한 것이다. 그래서 부시 정부는 동아시아에서 미사일방어체계MD와 동맹을 강화하는 등 중국을 겨냥한 조처들을 내놨다.
그러나 부시 정부로서도 중국을 공공연히 적이라고 규정하기보다는 북한의 ‘위협’을 들먹이며 동아시아에서 자국의 군사력을 전진 배치하고, 동맹국과의 연합훈련을 하고, 군사 동맹을 강화하는 게 훨씬 쉬웠다.
그리고 “불량국가”에 의한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막는 것이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에서 핵심 목적의 하나였다. 가장 문제가 된 것이 북한이었다. 부시 정부는 처음부터 제네바 합의를 싫어했고, 결국 북한을 이란·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했다. 2002년 10월 부시는 북한이 비밀리에 고농축 우라늄 계획으로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의혹을 명확한 근거 제시 없이 제기했고, 그 직후 제네바 합의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북한은 부시 정부의 대북 압박 강화에 반발하며, 핵시설을 재가동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이 급속도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을 보며, 북한 지배자들은 나름의 교훈을 이끌어냈다. 2003년 6월 북한 관리들은 북한을 방문한 미국 의회 대표단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핵무기를 제조하는 것은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얼마 안 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남한·북한·미국·중국·일본·러시아)이 시작됐다. 이라크 전쟁에 집중하기 위해 부시는 이 회담을 이용해 북핵 문제가 더 악화하지 않게 관리하며 시간을 벌기를 원했다. 6자회담에서 부시 정부는 처음부터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에는 관심이 없었다. 엄포를 놓았다가 북한이 반발하면 양보할 듯한 태세를 보이며 협상장에 나가 시간을 끄는 게 부시 정부의 패턴이었다.
5 그러나 정작 북핵 문제가 불거지자, 노무현 정부는 부시에 협력하며 대북 압박에서 미국에 보조를 맞췄다. 부시의 이라크 파병 요청에 응하는 대신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서 부시 정부의 협력을 얻어내겠다고 변명하며, 노무현은 이라크에 미국·영국에 이어 가장 큰 규모의 군대를 파병했다. 노무현 정부는 이런 행보를 “친미적 자주”라는 해괴한 말로 포장했다.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의 배신에 깊은 환멸을 느꼈다.
남한 노무현 정부(2003~2007)는 남한 우익들과 다르게 기존의 친미 일변도 외교에서 탈피할 것을 공언해, 많은 한국인들의 기대를 받았다.2005년 부시 정부가 시간을 끌면서 새로운 대북 금융 제재를 단행하자, 6자회담 북한 측 대표는 북한 측의 분노를 이렇게 표현했다. “금융은 피와 같다. 이것이 멈추면 심장이 멈춘다.” 북한은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 힘을 집중한 상황을 이용해 점차 강도 높은 반작용을 벌였다. 2006년 북한은 처음으로 핵실험을 감행했다. 부시 정부의 제국주의적 압박이 북한 핵무기라는 역풍을 낳은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할 즈음, 부시는 이라크 수렁에 빠져 있었다. 부시는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을 상대로 호통을 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악의 축”을 상대로 협박을 가하던 부시 정부의 애초 의도와 달리, 미국의 힘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통제력이 약화했음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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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미국은 상대적으로 하락해 온 자국의 (경제적) 지위를 만회하기 위해 이라크 전쟁을 비롯해 여러 시도를 했지만,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게다가 미국이 2008년에 시작된 세계경제 위기의 진원지가 되면서, 미국의 패권이 더 약화됐다. 그 사이에 “나머지의 부상”이 더 두드러졌다. 그중 중국의 부상이 단연 돋보였다. 중국은 당시 경제 위기에서 빨리 탈출하면서 다른 나라 경기도 함께 회복시켰다. 남한·일본 등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들도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가 깊어지는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위상이 높아졌다. 이제 중국은 아시아·태평양에서, 그리고 장차 세계 무대에서 미국의 헤게모니에 맞설 주요한 도전자로 떠올랐다.
2008년 미국 대통령에 당선한 오바마는 중국의 경제적·정치적 부상을 위협으로 느끼며 적극 대처하려고 했다. 그래서 중국의 부상을 겨냥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역량을 재배치하려고 했다. 이것이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이라는 용어가 나온 배경이었다.
오바마 정부는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대응해 동아시아에서 힘의 우위를 유지하려고 군사적 노력을 쏟았다. 중국을 포위하기 위해 아시아에서 동맹을 확대·강화하려고 했다. 일본·남한·호주 등 기존 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협력 범위를 베트남·싱가포르·인도 등으로 확대하려고 애썼다.
중국의 부상과 그것을 견제하고 헤게모니를 유지하려는 미국의 전략으로 동아시아 불안정이 증대돼 왔다. 한반도는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불안정과 긴밀히 연동돼 있었다.
미국은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을 표방하면서 남한을 대중국 포위 전략의 한 축으로 삼고자 했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군사 협력을 증진시켜 한·미·일 삼각 동맹을 구축하기를 원했다. 한·미·일 동맹을 구축하는 데서 미국의 핵심적 관심사는 MD의 한·미·일 협력 추진이었다.
오바마 정부도 다른 미국 정부들처럼 북한의 ‘위협’을 과장하고 압박하면서 이를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관철시키는 데 이용했다. 미국은 동맹 강화, 한·미·일 안보협력, 한·미·일 MD 협력 등이 필요한 으뜸 가는 이유로 항상 북한의 ‘위협’을 꼽았다.
오바마가 북한의 ‘위협’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명확히 보여 준 사례가 2010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상호 포격 사건이었다. 3월 남한의 군함 천안함이 서해(한반도와 중국 사이의 해역)에서 갑자기 침몰하자 ― 침몰 원인은 지금도 정확히 알 수 없다 ― 남한 우익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정부는 이를 북한 소행이라고 단정지었다.
오바마 정부는 천안함 사건을 명분으로 주일 미 공군 기지를 오키나와 밖으로 이전시키려는 일본 하토야마 정부의 계획을 무산시켰다. “일본 국민도 북한 공격의 위협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 미국의 논리였다.
또, 미국은 한국에도 동맹의 필요를 각인시키고 한반도 주변에서 연합훈련을 지속했다. 이는 한반도 긴장을 증대시키는 효과를 냈고 그런 과정에서 같은 해 11월 서해 연평도에서 남북 간 상호 포격 사태가 일어났다. 그다음 날 미국은 항공모함을 서해에 투입했다. 연평도 사태를 이용해,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중국 앞바다에 항공모함을 들여놓은 것이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과연 미국이 정말로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해 긴장을 낮추려 하느냐는 의문이 제기돼 왔다. 오바마 정부는 자신의 대북 정책을 “전략적 인내”라고 부르며, 북한을 향해 아무런 관계 개선 이니셔티브를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북한더러 대화를 원한다면 먼저 핵무기부터 포기하라고 했다. 남한의 우익인 이명박 정부(2008~2013)와 박근혜 정부(2013~2017)가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에 적극 협력한 것은 물론이었다.
북한의 처지에서는 “전략적 인내”를 대북 적대 정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2009년 미국이 북한이 인공위성을 발사했다는 이유로 경제 제재를 강화하자, 북한은 우라늄 농축 시설을 지었다.
미국과 남한은 북한의 돈줄을 죄는 경제 제재와 한·미 군사력 강화를 결합해 북한을 압박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감행할 때마다 그 강도를 높였다. 그래서 남·북한 간의 경제 교류는 거의 끊기다시피 했다. 2010년 이후로 한·미 연합훈련은 매년 그 규모가 확연히 커지고, 미국의 주요 전략자산들이 공공연하게 투입됐다. 미국의 전략 폭격기를 한반도에 전개하는 것을 공개하고, 북한 집권자 참수 작전 훈련까지 실시하는 것은 북한을 긴장시키기에, 그리고 중국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대북 압박 강도 강화의 측면에서 남한의 MD 참여가 특히 두드러졌다. 남한은 중국 등의 반발을 의식해 MD 참여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으나,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강화되자 점차 태도가 바뀌었다. 마침내 2016년 박근혜는 중국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 MD의 핵심 무기 체계인 사드THAAD의 한국 배치 계획에 동의했다. 사드의 한국 배치는 미국이 유사시 중국의 미사일을 요격하는 데 필요한 조처였다. 오랫동안 남한에 사드 배치를 요구해 왔다는 점에서, 미국이 숙원을 풀었다고 할 만했다.
오바마 임기 8년 동안 미국과 북한의 대화는 비공식 접촉 수준을 넘지 못했다. 결국 같은 기간에 북한은 핵실험을 4번이나 하는 등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트럼프가 몰고 온 폭풍
서두에서 나는 한반도 불안정이 제국주의 세계 체제라는 맥락 속에서 봐야 하는 문제임을 지적했다. 지난 25년 동안 미국에게는 북핵 문제를 해결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언제나 북핵 문제를 동아시아에서 자국의 영향력과 주도권을 유지·향상시키는 문제와 연계해 대처했다. 이런 점에서는 주변의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중국, 러시아, 일본)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미국의 협박에 대응해 벼랑 끝 전술을 동원하며 생존 게임을 벌여 왔다. 김정은과 북한 지배 관료들은 핵무기를 통해 미군과 한국군의 재래식 전력과 군사 훈련에 대항해 생존력을 높이려 한다. 유사시 발휘할 수 있는 핵 보복 능력을 보여 주면서 말이다. 그리고 핵탄두와 미사일을 미국을 협상장으로 부르는 수단으로도 활용한다. 북한 공식 매체와 외교관들은 미국을 향해 거친 말을 자주 내뱉지만, 다른 한편으로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를 계속 추진해 왔다. 북한의 민족주의 정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국가 체계 속에서 자신의 안정된 위치를 확보하는 것이다.
제국주의 세계 체제의 압력에 직면한 북한 지배자들은 핵무기 개발을 선택했다. 그리고 북한 조선로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 국가가 핵보유국이 됨으로써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 세계의 평화와 안전이 수호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 핵무기는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효과적 수단이 되지 못하고, 북한 지배자들은 북한 정권 붕괴를 바라는 제국주의 지배자들을 계속 상대해야 한다.
더욱이 이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다. 트럼프 정부 내각에는 월스트리트 출신자들과 군 장성 출신자들이 매우 많지만, 과거의 공화당 정부와는 분명 다른 점이 있다. 트럼프의 지지 세력에는 스티브 배넌처럼 유럽 우익 포퓰리즘에 일체감을 느끼는 자들도 포함돼 있어, 트럼프의 집권은 국제적 맥락에서 우익 포퓰리즘의 부상과 무관하지 않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 구축해 놓은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국제 질서에 금이 가는 한편, 미국 주류 정치인들이 미국 제국주의가 패권을 계속 유지할 해법을 딱 부러지게 제시하지 못한 가운데, 트럼프가 백악관을 차지했다. 트럼프는 미국 지배자들에게 전략상의 방향 전환(이른바 “미국 우선주의”)을 주장했다. 그의 등장은 전 세계에, 그리고 동아시아와 한반도에 불안정성을 높였다.
오바마는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려 애쓰면서, 특히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고 동아시아에 역량을 재배치하고자 했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는 동유럽과 중동, 아시아의 세 지역에서 동시에 제기되는 도전을 다뤄야 했고, 이 때문에 오바마 정부의 대외정책의 수사와 현실적인 재정적·군사적 기반의 간극은 더 벌어지고 말았다. 오바마는 미국과 다른 강대국들의 격차가 줄어드는 것을 막지 못했다.
트럼프는 오바마 정부의 대외정책을 비판하며 자신에게 대안이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9·11 이후 미국의 중동 전쟁을 비판하고, 북한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래서 지난해 한국 내 일부 자유주의자들은 차라리 클린턴보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한반도 평화 진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집권 후 오바마 정부가 유약했던 게 문제라며, 군사 행동을 강화하며 최고사령관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올해 4월 시리아에 토마호크를 쏟아붓고, 아프가니스탄에 핵폭탄 다음으로 가장 강력하다는 폭탄을 투하했다. 최근에는 아프가니스탄에 병력 증파를 결정했다. 그는 핵무기를 10배 늘릴 수 있다고 말해 그의 장군들마저 당황하게 할 만큼 군비 증강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다.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에 폭탄이 떨어질 때와 같은 시기에, 트럼프는 한반도에 항공모함을 보내 긴장을 높이기 시작했다.
지금 한반도는 21세기 들어 가장 위험한 상황에 직면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트럼프의 말이 낳은 효과가 컸다. 북한을 상대로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하겠다고 한 그의 협박은 트럼프의 입과 트위터에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위협의 하나였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9월 트럼프의 유엔 연설은 꽤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의 “미국 우선주의”가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줬고, 북한을 상대로 한 그의 험악한 말도 최고조에 이르렀다.
트럼프는 유엔 연설에서 “국권”과 “주권”이라는 단어를 22차례나 썼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외교 업무에서 우리는 국권이라는 원칙을 다시 강조하고자 한다. … 미국 대통령으로서 나는 항상 미국을 우선에 둘 것이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국가를 항상 우선시할 것이고 또 그렇게 해야 하듯이 말이다.
그는 유엔 연설에서 국권을 거듭 강조함으로써 미국의 이익이 최우선이고, “우크라이나에서 남중국해”에 이르기까지 이에 대한 어떤 국가나 세력의 도전에 대해서도 매우 단호하게 대처할 것임을 천명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기존의 신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무시하고 뒤흔들 태세가 돼 있음도 보여 줬다.
트럼프는 유엔에서 이란·베네수엘라를 “불량국가”라고 맹비난했지만, 그의 가장 큰 공격을 받은 “불량국가”는 바로 북한 김정은 정권이었다. 그는 북한을 향해 이렇게 경고했다.
미국은 강력한 힘과 인내심이 있다. 하지만 미국이나 동맹국을 방어해야 할 때는 북한을 완전히 파괴시키는 것 말고 다른 대안이 없을 것이다. 로켓맨은 자신을 위해서나 그 정권을 위해서 자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북한을 향한 트럼프의 말은 이전의 다른 미국 대통령과는 다르다. 오바마나, 심지어 조지 W 부시도 북한 전체를 파괴하겠다는 식의 협박은 하지 않았다. 북한 정권을 위협했지만, 정권과 북한 인민은 ― 분명, 위선적이지만 ― 구분해서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에게는 그런 구별이 의미 없는 것 같다.
단지 말에 그치는 게 아니다. 트럼프 정부의 주요 인사들, 유엔 대사 니키 헤일리, 국방장관 제임스 매티스, 국무장관 렉스 틸러슨 등은 군사 옵션이 준비돼 있음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트럼프의 유엔 연설 후, 9월 23일 미국 공군의 전략폭격기 B-1B 랜서가 괌을 출발해 북한 코앞의 동해 국제 공역을 비행했다. 미국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21세기 들어 북한 해상으로 날아간 미군 전투기나 폭격기를 통틀어 이번이 휴전선 최북단까지의 비행이다.” 미국 국방부 대변인 다나 화이트는 이 작전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작전은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위협도 격퇴시킬 수 있는 많은 군사적 옵션들을 갖고 있다는 미국의 결의와 명확한 메시지를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9월 25일 북한 외무상 리용호가 “미국이 북한에 선전포고했다”며 반발한 까닭이다.
트럼프가 북한을 상대로 전면전을 각오했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미친 개” 매티스를 비롯한 트럼프의 장군들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는지 잘 안다. 미국의 선제 대북 공격은 한반도에 즉각 전면전 위기를 불러올 것이다.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일어나면, 그게 재래식 전쟁이더라도 남·북한 군대와 미국 본토에서 증원된 미군 병력까지 포함해 총 200만 명 이상의 군인들이 한반도에서 뒤엉켜 싸우게 된다. 200만 명이라는 숫자는 중국이 이 전쟁에 휘말리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하고 얘기하는 것이다. 북한 수도 평양과 남한 수도 서울은 200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그 사이에서 벌어질 재래식 공격만으로도 민간인 수백만 명이 희생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 핵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 그런 전쟁에서 미국이 북한을 핵무기로든 재래식 무기로든 완전히 파괴하고 이길 가능성이 크겠지만, 십중팔구 서울과 도쿄가 잿더미가 된 후에 얻는 승리일 것이다. 휴전선에 가까운 서울과 그 인근 지역에 2500만 명 이상이 살고 있다. 핵폭탄이 떨어져 서울이 파괴되는 것은 상상만으로 끔찍한 일이고, 워싱턴에게도 뼈 아픈 손실이 될 것이다.
제2의 한국전쟁이 줄 피해가 막대하다는 점은 상호 간의 행동이 아주 위험한 수준을 넘지 않게 제약하는 요소다. 그러나 이 때문에 앞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지 않으리라 확신하는 것은 섣부르다.
트럼프 정부로서는, 북한 핵무기 강화가 다른 국가로 핵무기가 확산되는 계기가 돼 미국의 절대적인 핵전력 우위가 흔들리는 것을 경계할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 정부로서는 여전히 자신이 상황을 통제하고 있음을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에게 보여 주면서 미국 핵무기의 세계적 우위를 계속 유지시켜야 한다.
따라서 트럼프는 “최대한의 압박”을 계속 유지할 것이다. 10월 6일 트럼프는 군 수뇌부를 부른 자리에서 지금이 “폭풍 전 고요”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제재 강화와 함께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며 대북 압박 수위를 높이려는 것 같다. 예컨대 전략 폭격기에 이어, 미군 항공모함도 북한 해안 쪽으로 북상해 무력 시위를 벌일 수 있다. 1968년 푸에블로호 사건 당시 미국이 항공모함을 북한 원산 앞 바다로 들여보낸 적이 있었다.
미국은 앞으로 전략무기의 한반도 순환 배치를 강화할 예정이다. 이런 군사력 전진 배치는 북한을 크게 자극할 행위다.
이렇게 트럼프가 제국주의적 대북 압박 수위를 계속 높인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은 더욱더 커질 것이다. 북한 지배자들은 더 많은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로 대응하려 할 것이다. 그런 악순환 과정 속에 한반도에서 우발적 충돌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
한반도의 상황을 악화시킬 또 하나의 변수는 한반도 인근의 제국주의 국가들의 경쟁, 특히 미국과 중국의 점증하는 경쟁이다. 트럼프와 그의 핵심 측근들은 중국을 경제적으로 찍어 누르는 것이 중국의 정치적·군사적 부상을 막는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고 믿는다.
10월 18일 국무장관 틸러슨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한 연설에서 중국을 향해 이렇게 경고했다. “중국이 규칙에 기초한 질서에 도전하고 이웃 나라들의 주권을 침해하며 미국과 동맹국들에게 불이익을 가하더라도 우리는 움츠러들지 않을 것이다.” 그는 경제가 활발하게 성장하는 지역이자 주요 해상 교통로가 위치한 인도-태평양에서 미국의 이해관계를 지키는 게 사활적이라고 강조했고, 이를 위해 인도, 일본, 호주 등 주요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정부는 남아시아에서 인도, 일본과의 협력 강화로 중국의 확장을 경계하는 한편, 미국의 전임 정부들처럼, 중국의 동쪽에서 미국, 일본, 한국의 3자 협력 강화를 재촉하고 있다. 늘 그래 왔듯 북한의 ‘위협’은 그것을 촉진하는 명분이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에 대북 경제 제재를 강화하라고 요구해 왔다. 그것을 거부하면, 중국 기업과 개인들을 제재하겠다는 위협과 더불어 말이다.
그동안 서방의 제재가 강화됨에 따라, 북한은 이를 우회해 필요한 외환을 확보하고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지난 20년 동안 그 과정에서 중국과의 무역 비중이 엄청 커졌다. 오늘날 북한 경제는 중국과의 무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경제로 변모했다.
그러나 오늘날 북한과 중국의 밀접한 교역은 북·중 관계에 미묘한 긴장을 낳는 요소이기도 하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중국과의 교역에서 북한이 불리한 조건을 감수해야 하는 게 불만이다. 무엇보다 이런 경제적 밀착으로 중국의 대북 정치적 영향력이 커져, 북한이 자칫 중국 동북 지역의 ‘네 번째 성’으로 취급받는 것을 염려한다. 최근 북한이 러시아와 교역을 증진시키는 등 대러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은 중국 경제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중국의 보호 아래에 있던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이 올해 말레이시아에서 의문의 살해를 당한 일이나, 그에 앞서 2013년 중국 지도자들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 온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이 북한에서 전격 처형된 것은 모두 북·중 관계의 현실을 보여 준다. 장성택이 처형될 때 김정은 정권은 그의 잘못의 하나로 석탄 등의 자원과 토지를 “외국”에 헐값에 팔아 넘긴 “매국행위”를 꼽았다. 그 “외국”이 중국이라는 점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중국도 걸핏 하면 핵실험을 하는 북한 김정은 정권이 골치 아프다. 북한의 ‘도발’이 미국이 이 지역에서 남한, 일본 등을 앞세워 전진하는 명분이 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북한의 핵무기가 자칫 남한과 일본으로 핵무장 도미노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말이다.
그럼에도 중국은 북한 정권의 붕괴를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트럼프 정부의 제재 강화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하지는 않고 있다. 북한 정권이 붕괴한다면, 중국은 자칫 북한-중국 국경을 넘어 수많은 난민이 중국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게다가 북한이 남한에 흡수된다면, 중국은 처음으로 미군 2만 8000명 이상이 주둔해 있는 친서방 국가와 국경을 마주하게 된다. 그것도 수도 베이징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말이다.
그래서 8월에 중국 정부가 발행하는 〈글로벌 타임스〉는 사설에서 이렇게 천명했다. “미국과 한국이 힘을 모아 북한 체제를 전복하고 한반도의 정치 상황을 바꾸려 하면 중국은 이를 적극 저지할 것이다.”
러시아는 제국주의 국가로서 중국과 이해관계가 다른 점들이 있지만, 북한 정권의 붕괴를 바라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중국과 의견이 일치한다. 러시아도 북한 ‘위협’을 앞세워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MD를 구축하는 것을 못마땅해 한다.
이처럼 한반도는 제국주의 간 갈등에 얽혀 있다. 그것도 부차적·주변적으로 얽혀 있는 게 아니라 한복판에 휘말려 있다. 따라서 이런 현실은 그리 머지 않은 미래에 특정한 상황과 맞물려 한반도의 긴장을 증폭시킬 수 있고, 최악의 경우 또다시 한반도에 제국주의 간 대리전으로 이어질지 모른다.
한반도의 긴장이 계속 높아지자, 남한에서 많은 사람들이 대중 항의로 우익 정부가 무너진 후 올해 5월 등장한 문재인 정부가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노력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문재인은 그를 지지한 대중의 기대를 배신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한미동맹에 충성하며 트럼프의 대북 압박, 제재 강화에 협력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사드 배치 등 미국의 MD 프로그램에도 적극 협력했다. 남·북한 간의 관계 개선은 북핵 문제 해결 다음으로 미뤄 버린 채 말이다. 6월 30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과 트럼프는 “북한과의 대화는 적절한 상황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발표했는데, 거기서 “적절한 상황”은 미국이 동의하는 여건이 형성돼야 남·북한 대화를 진전시키겠다는 문재인 측의 약속을 의미했다. 문재인은 트럼프의 UN 연설을 공개적으로 칭찬한 유일한 서방 정상일 것이다.
또한 문재인은 미국으로부터 첨단 군사 자산을 지원받고 미국의 첨단 무기를 대거 수입하기로 하는 등 미국과의 군사 협력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그의 친미적 행보 때문에 지지 세력 내에서 미세한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향후 이 균열은 더 커질 수 있다.
지금까지 북핵 문제를 중심으로 제국주의가 어떻게 한반도의 불안정을 낳았고 이를 악화시켜 왔는지를 살펴봤다. 특히, 트럼프 집권 이후의 상황이 우려스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짚었다.
물론 한반도에서 당장 또는 미래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1994년처럼 한반도가 운 좋게 그런 위기를 비켜갈 수 있을지 모른다.
8 는 소식은 우리가 마냥 행운을 바랄 수 없음을 보여 주는 경험적 사례의 하나다. 북한 ‘위협’에 대응하자고 선동하며 총선에서 승리한 일본 우익 아베 정권이 평화헌법 개헌을 준비하며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탈바꿈시키고 있는 점도 그 사례들에 추가돼야 한다. 분명 현재의 한반도를 둘러싼 추세는 위험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런 행운을 바라고 핵무기 위협 하에 불안하게 살 수는 없다. 9월 15일 북한이 일본 열도를 넘어 미사일을 날렸을 때, 한반도 인근 해역을 순찰하던 미군 함정이 “북한 목표물을 겨냥한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 발사를 준비하라는 경고명령WARNO을 받았다”그러나 이 추세를 다른 방향을 꺾을 수 있는 대안을 구축할 가능성도 있다. 남한에는 거대한 노동계급이 형성돼 있고, 노동자들은 저항을 건설해 온 경험이 있다. 이라크 전쟁과 남한군의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대중 운동 건설의 경험이, 그리고 주한미군의 기지 확장 등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의 전통도 있다. 최근에는 온갖 부패에 찌든 독재자의 딸인 우익 대통령을 대중 항의로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남한 좌파들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중 운동 건설을 시작해야 한다. 그 과정에 온갖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그 운동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바가 많을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런 불안정을 낳는 근본 원인인 자본주의 체제를 쓰러뜨릴 수 있는 노동계급의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점에서 아일랜드 혁명가 제임스 코널리가 남긴 격언을 한반도에 사는 혁명가들이 가슴에 새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최고의 예언자들은 바로 자신이 예언하는 미래를 이룩하기 위해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주
- 대표적인 한·미 연합훈련이 매년 봄에 실시되는 키리졸브 연습이다. 이것은 1976년에 시작된 팀 스피리트 훈련이 이름을 바꿔서 이어진 것이다. 훈련명이 키리졸브로 바뀌면서, 훈련의 목표와 내용이 더 공격적으로 변했다. 이 훈련은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연합훈련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매년 여름에 실시되는 전쟁 시뮬레이션 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을 비롯해 여러 한미 연례 연합훈련이 한반도와 그 인근에서일년 내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시행된다. ↩
- 오버도퍼·칼린 2014. ↩
- 차 2016. ↩
- 차 2016. ↩
- 남한의 현 대통령 문재인이 바로 노무현의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이다. ↩
- 김하영이 오바마 정부 등장 전후의 제국주의와 동아시아 불안정에 관해 탁월하게 분석했다. Kim 2013. ↩
- 실제로 최근 남한 지배계급 내에서 핵무장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우익은 독자 핵무장이 미국의 반대로 가능하지 않다면 1991년에 철수한 미국 핵무기라도 재배치하자고 주장한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 핵무기 배치에는 동의하지는 않지만, 핵추진 잠수함 건조로 핵무장의 우회로를 가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
- http://foreignpolicy.com/2017/10/18/armageddon-by-accident-north-korea-nuclear-war-missiles/ ↩
참고 문헌
오버도퍼, 돈·칼린, 로버트 2014, 《두 개의 한국》, 길산.
차, 빅터 2016, 《불가사의한 국가》, 아산정책연구원.
Kim, Ha-young 2013, ‘Imperialism and instability in East Asia today’, International Socialism No.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