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Ⅱ: 러시아혁명 100주년
레닌의 《국가와 혁명》 *
《국가와 혁명》은 레닌이 러시아에서 혁명이라는 중대한 사건이 일어난 1917년 여름에 쓴 책이다. 레닌은 모든 혁명에서 제기되는 핵심적 문제를 다뤘다. 바로 국가 권력은 무엇이고 어느 계급이 그 권력을 쥐고 있느냐였다. 이 문제는 추상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2월 혁명으로 러시아 황제(차르)가 제거됐지만 그 혁명의 배경이 된 쟁점들은 다수가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2월 혁명으로 들어선 임시정부는 농민들에게 토지를 분배하기를 거부하고, 전쟁을 계속하고, 노동자에게 주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러시아 대중은 계속해서 그 문제들을 직접 해결하고자 했고, 그래서 2월 뒤로도 혁명적 과정이 전개됐다. 그 과정에 수많은 노동자, 농민, 병사가 참여했다.
이 과정의 결론이 무엇일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레닌이 《국가와 혁명》을 쓰던 때 러시아는 ‘이원(이중) 권력’ 상황이었다. 2월 혁명으로 소비에트가 생겨났다. 소비에트는 그 이전의 어떤 정부 기구보다 훨씬 민주적이었다. 그러나 소비에트와 나란히 임시정부도 있었다. 임시정부에서는 자본주의 국가(즉, 소비에트가 존재할 자리는 없을 국가)를 건설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득세했다.
이원(이중) 권력이라는 불안정한 상황
이원(이중) 권력 상태는 무한정 지속될 수 없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밀어내고 승리해야만 한다. 이원(이중) 권력이라는 극도로 불안정한 상황에서 제기되는 다음의 문제들을 레닌이 《국가와 혁명》에서 다뤘다. 어떻게 혁명이 전진할 수 있을까? 어떻게 여러 문제를 자본가가 아니라 노동자와 피억압 대중의 이익에 맞게 해결할 수 있을까?
그 뒤로 100년이 지난 지금은 혁명적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국가는 여전히 존재하고, 레닌이 1917년에 개진한 주장의 많은 것은 오늘날에도 적절하다. 현재 정치적 동요와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고, 그것을 배경으로 새 정치 세력이 형성되고 있다. 영국에서 사회주의자 제러미 코빈이 노동당 대표로 선출되고 좌파 정부가 들어설 가능성이 보이는 등의 상황은 국가를 노동자의 이익에 맞게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제기한다. 또, 그 과정에서 자본주의를 결국 사회주의로 변모시킬 더 근본적 변화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제기한다.
혁명이 제기하는 긴박한 문제들에 직면한 레닌은 국가를 다룬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글을 살펴봤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출발점은 국가가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국가는 중립적이기는커녕 계급 지배의 수단이다. 엥겔스는 국가가 항상 존재한 것이 아니라, 경제 발전의 특정 단계에서야, 즉 사회가 계급으로 나뉘고 나서야 필요해졌다는 점을 알아냈다.
계급 사회에서는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에서는 자본가의 이익과 노동자의 이익은 근본적으로 상충한다. 바로 이 계급 모순이 해소될 수 없기 때문에 국가가 생겨난다. 지배계급은 인구의 소수인데 나머지 압도 다수를 착취해야 하므로, 자신의 지배를 관철할 수단이 필요하다.
국가는 다양한 방법으로 그 임무를 수행한다. 우선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법률과 대중에게 합법적 힘을 행사하는 비민주적 기구들의 네트워크가 있다. 가령 선출되지 않는 판사들이 운영하는 법원, 마찬가지로 선출되지 않는 고위 공직자들이 운영하는 정부 기구가 있다. 이런 기구들이 질서를 유지할 수 없으면 결국에는 물리적 폭력과 강제력이 동원된다. 경찰, 군대, 감옥 등이 그것이다. 레닌은 이 기구들을 “특별한 무장조직체”라고 불렀다.
그러니 국가는 사회 바깥에 있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국가는 서로 갈등하는 계급들 사이를 중재하는 중립적 기구가 아니다. 국가는 지배계급에 의해, 지배계급의 이익에 복무하고자 생겨났다. 그래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다음의 사실을 명확히 했다: 노동계급은 기존 국가기구를 인수해 자기 목적에 맞게 이용할 수 없다. 노동계급은 국가를 완전히 분쇄해야 한다.
그런데 국가를 분쇄한다는 말은 현실에서는 무엇을 뜻할까?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은 대중이 혁명적 격변을 일으킨 맥락에서 국가를 분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소수 혁명가들이 뛰쳐나가 법원 건물을 훼손하거나 의회 건물을 폭파하는 것을 옹호하지 않았다.
국가기구가 어떻게 와해되고 무엇이 그것을 대체할 것인지를 마르크스에게 알려 준 것은 1871년 파리 코뮌 경험이었다. 파리 코뮌은 1871년 3월 18일 대중이 들고일어나 정부, 군대, 관료들을 도시 밖으로 밀어낸 때에 생겨났다. 72일 동안 파리 시민들은 도시를 직접 통치했다. 어느 코뮤나르드(코뮌의 일원을 지칭하는 말)는 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법률적으로는, 정부도, 경찰도, 판사도, 재판도, 고위 관료도, 장관도 없었다. 극심한 혼란에 빠진 지주들은 건물을 두고 달아났다. 병사도 장군도, 우편도 전보도, 세관원도 세금 징수원도, 교사도 없었다. …”
코뮌이라는 이름의 평의회는 이 도시의 여러 구역에서 선출된 평의원들로 구성됐다. 코뮌은 이전에 존재한 어떤 기구와도 달랐다. 코뮌이 발표한 첫 포고령은 군대와 경찰을 폐지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코뮌은 “특별한 무장조직체”를 없애고 그 자리에 “무장한 인민”을 세웠다. 그것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무력 기구로 국민방위대라고 불렸다. 모든 공직자는 선출·소환 대상이었고 노동자 평균 임금만 받았다. 이 국가와 그 기능을 수행하는 공직자들은 대중의 머리 위에 앉아 있는 별개의 존재가 더는 아니었다.
민주주의의 폭발적 확대
이런 변화는 민주주의의 폭발적 확대를 수반했다. 매일 저녁 도시 곳곳에서 ‘클럽’ 집회가 열렸다. 각 집회에는 5000명 이상이 모여 공무를 어떻게 수행할지,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각 결정을 어떻게 이행할지를 논의했다. 이런 직접민주주의의 방식으로 코뮌은 대중운동에 책임졌다.
노동자와 빈민들이 도시를 스스로 운영했다. 그들은 상점이 문을 열도록, 우편 서비스가 작동하도록, 쓰레기가 치워지도록, 수도가 흐르도록 했다. 국가의 폭력 기구들은 폐지되고 훨씬 더 민주적인 기구로 대체됐다. 바로 다수 대중이 운영하고 통치하는 노동자 국가였다.
그러나 이것은 사회주의의 최종 목표가 아니다. 노동자 국가는 전환적 성격의 기관이다. 즉, 국가가 완전히 사라진 상황으로 나아가는 길의 한 국면이다. 우리는 계급 구분이 없는, 그리하여 생산수산을 가진 사람들과 노동하는 사람들의 구분이 없는 세계를 위해 투쟁한다. 앞에서 국가는 계급 간 갈등의 산물이고 국가는 한 계급의 지배를 유지·강화하기 위해 생겨났다는 점을 얘기했다. 그러므로 계급 분할이 사라지면 그 어떤 종류의 국가도 존재할 필요가 사라진다.
하지만, 타도된 자본가 계급이 반격을 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파리 코뮌은 재결집된 프랑스 군대의 폭력으로 처참하게 진압당했다. 러시아에서는 혁명을 짓누르려는 백군을 도와 13개국의 군대가 침공했다. 그러므로 자본가 계급을 타도한 직후 순간에 노동계급은 나름의 중앙집권화된 국가가 필요하다. 그 국가에 집중된 권위로 노동자의 사회 통치에 반기를 드는 세력을 진압해야 한다. 이 시기는 자본주의적 착취자들의 저항을 물리치고 사회주의적 경제의 작동을 조직하는 전환적 상황의 특별한 시기일 것이다.
노동자 국가는 자본주의 국가와 완전히 다르다. 극소수가 나머지 압도 다수를 지배하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자 국가에서는 인구의 다수가 지배계급으로 조직돼 옛 억압자들을 제압할 것이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민주적인 과업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역사상 처음으로 부자를 위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빈민을 위한 민주주의, 인민을 위한 민주주의”일 것이기 때문이다. 다수 대중이 극소수에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것은 그 반대의 것보다 훨씬 더 쉬운 일이다. 노동자들은 특별한 기구 없이도 자신의 통치를 관철할 수 있다. 인구의 다수이기 때문이다.
노동자 국가: 말라 죽어 가는 국가
그렇지만 노동자 국가는 태어나는 즉시 말라 죽기 시작할 것이다. 계급 모순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억압받지 않고 그 누구도 계급이라는 것을 모르게 되면서” 대중을 억압하는 특별한 기구의 필요성은 사라지기 시작한다.
물론 계급이 사라진 사회에서도 의견 충돌은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토론과 중재로 대처하며 민주적 결정에 도달할 수 있다. 이상론을 피하려고 항상 큰 주의를 기울인 레닌은 개인들의 일부가 “과도한” 행동을 할 수 있고 이는 억눌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는 별도의 특별한 무력이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들의 관여와 제지로 할 수 있는 일이다.
레닌은 개인들이 벌이는 파괴적 행위의 바탕에 깔려 있는 사회적 요인으로는 착취, 차별, 빈곤이 있는데, 이 요인들이 제거될 것이므로 일부 개인의 “과도함”도 말라 죽어 갈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자본주의라는 노예제의 “감춰진 공포와 야만성”으로부터 해방된 대중은 “공동체 생활의 기초적 규칙에 점차 익숙해질 것이다. … 그들은 무력, 강제력, 종속이 없는, 국가라고 불리는 특별한 강제 기구가 없는 자신을 보는 데 익숙해질 것이다.”
자본가도 계급도, 그리하여 억압받는 계급도 사라지면서 노동자 국가가 존재할 필요도 줄어들고, “능력에 따라 기여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것이 사회의 통념이 되면 국가는 말라 죽게 된다. 모두가 자기 능력만큼 사회에 기여하고 필요만큼 가져가는 원리는 부르주아 사회의 권리 개념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레닌은 지적했다.
그러므로 국가의 사멸은 기존의 자본주의 국가가 아니라 노동자 국가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국가와 혁명》에서 레닌이 펼친 격렬한 비판은 국가에 관한 마르크스의 가르침을 왜곡해서는, 기존의 자본주의 국가가 말라 죽어 갈 것이므로 혁명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향했다. 마르크스주의의 국가 사멸 사상은 혁명이 일어나 자본주의 국가를 파괴한 상황을 전제로 한다.
레닌은 혁명에서 잠시 떨어져 《국가와 혁명》을 썼다. 하지만 레닌은 이 책을 마치지 못했다. 그가 후기에 남겼듯이, “1917년 10월 혁명의 전야라는 정치적 위기로 방해”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닌이 이어서 썼듯이, 그런 “방해는 환영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 ‘혁명을 경험하기’가 혁명에 대해 쓰기보다 더 즐겁고 유익한 일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만큼 중대한 혁명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지만, 국가를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의 사회주의 전략에도 핵심적으로 중요하다. 역사적 경험을 보면 제러미 코빈 같은 좌파가 이끄는 좌파 정부가 들어서 급진적 개혁을 시행하려 하더라도 자본주의 국가가 그것을 좌절시키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언론, 기업주, 부자 등 사회 상류층이 투표를 통해 표출된 국민의 민주적 의지를 받아들여, 기꺼이 세금을 더 납부하고 철도 등 민영화된 기업을 재국유화하거나 핵심적으로는 자신들이 가진 부와 권력을 순순히 포기할 가능성은 낮다. 그들의 저항은 우익 신문이 선정적 표제로 내놓는 기사에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좌파 정부를 굴복시키려 할 것이다. 금융시장을 통해 환율을 변동시키는 압박이 통하지 않으면, 역사에서 많이 보여 왔던 방식을 채택할 것이다. 바로 군부 쿠데타이다.
대항 권력
이에 저항하려면 자본가들의 경제 권력과 국가의 정치 권력에 맞서는 대항 권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노동자들이 거리와 작업장에서 조직될 때 생겨나는 권력이다. 집단으로서 행동에 나서 파업을 벌이고 이윤 생산을 멈출 때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의 심장을 타격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형태의 민주적 조직을 창조한다.
그러므로 제러미 코빈 같은 좌파를 우파로부터 방어하는 것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국가와의 투쟁에 직면할 것이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명확한 전략을 가지고 조직해야 한다. 그 전략은 국가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즉, 국가는 자본가들의 도구이므로 노동자들이 그것을 인수해서 사용할 수는 없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는 투쟁을 건설하려 헌신하는 동시에 노동계급의 권력을 위해 분투해야 한다. 기존 국가를 파괴하도록, 노동자와 다수 대중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르고 매우 민주적인 방식으로 사회를 통치하게 되도록 애써야 한다.
MARX21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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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my Leather, The state and revolution, Socialist Review(September 2017) 너무 영국적인 내용은 옮긴이가 좀더 일반적으로 각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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