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구글과 인지자본주의론 그리고 노동가치론
‘4차 산업혁명’, ‘지식기반 경제’ 담론이 유행하면서 인지자본주의론Cognitive Capitalism에 관한 논의도 주목받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나 지식기반 경제에 관한 인지자본주의론의 핵심적 전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구글 같은 기업이 자본주의의 대세가 되면서 공장에서의 ‘물질노동’이 축소되고 있다. 둘째, ‘비물질노동’의 생산물은 소모되지 않고, 무료로 복사할 수 있기 때문에 기존의 노동생산물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셋째, 비물질노동은 노동시간과 여가 사이의 구분을 사라지게 하고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의 측정을 원리로 삼는 노동가치론과 가치법칙은 폐기될 수밖에 없다. 인지자본주의에 관한 다양한 주장들이 있음에도, 그 핵심에는 공장과 사무실에서 이뤄지는 집단적 노동을 통한 생산이 더는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이 깔려 있다. “잉여가치 생산이 기존의 공장 담벼락을 넘어 사회 전반에서 이루어지는 소위 ‘사회공장 시대’”에 이윤과 지대는 구별되지 않게 되고 자본은 생산 내부적 요소가 아니게 된다는 것이다.
2 이 주장들의 핵심은 이렇다. 구글 등의 거대 기업의 이윤은 노동과정에서 일어나는 착취의 결과라기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수고와 정보들을 독점해 얻는 일종의 지대이다. 이 ‘약탈’ 행위에 적절한 과세나 규제를 해서 기본소득 제도 등을 도입하면 정보 자본주의의 여러 폐해를 극복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인지자본주의론과 기본소득론의 만남도 활발해지고 있다.3 의 논의를 다루지는 않겠다. 이 논의를 다루려면 별도의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기본소득을 둘러싸고도 여러 세심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 글에서 필자는 마르크스가 《자본론》 제3권에서 ‘이윤의 지대 되기’를 명제화했다는 자율주의자들여기서는 구글 같은 거대 정보통신 기업의 이윤이 노동 착취와 직접 관련됐다는 점만 주되게 다룬다.
필자가 보기에 노동을 표준화시키는 ‘산업자본주의의 특징’은 ‘정보통신 혁명’으로 사라지기는커녕 갈수록 더 분명해지고 있다. 다양한 인간 노동은 자본에 고용되면 비교·측정 가능한 것으로 환산된다는 것이 마르크스 노동가치론의 핵심 요지다. 그렇다면 인지자본주의론과는 달리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은 정보통신 혁명의 시대에 더 유용한 무기가 되지 않을까?
이제부터 인지자본주의론의 전제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물질노동’은 축소되는가?
인지자본주의론에 따르면, 비물질노동이 일반화되면서 물질노동은 축소되거나 점차 사라진다.
4 생산성 향상의 결과로 육체노동이나 물질노동의 상대적 비중은 꾸준히 감소해 왔다. 이 과정은 마르크스가 《자본론》 제1권에서 언급한 바대로 노동시간 단축과 병행되는데, 그 결과 레저나 유통 영역에서 서비스가 증대된다. 게다가 자본은 경쟁 격화 때문에 금융과 유통 등 더 많은 서비스 기반을 필요로 하게 된다. 이것은 이른바 오늘날 비물질노동의 지식산업으로 불리는 수많은 업종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는다. 한마디로 비물질노동의 증가는 자본주의 초기부터 나타나는 경향이다. 5
어찌 보면 현대 자본주의에서 제조 부문(이른바 물질노동)보다는 지식·정보 생산(비물질노동)의 비중이 높아진다는 것은 자본 축적의 자연스런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굳이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노동생산성이 오랜 기간 상승하면 더 적은 노동자들이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게 될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산업자본주의 시대의 물질생산으로 여겨지는 제조업의 고용 비중은 지속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1911년 영국의 제조업 고용 비중은 전체 고용의 40퍼센트였는데, 이미 서비스 부문보다 작은 수치였다.그러나 정보통신의 신기술들은 물질노동에 더욱 의존한다. 이는 ‘4차 산업혁명’에 해당하는 각종 신기술들이라 불리는 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 3D 프린팅, 자율주행차 등의 사례에서도 나타난다. 그런 기기나 시스템은 데이터 저장용 서버가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 사물인터넷 시대가 도래한다면 수많은 기기들이 서로 연결되고 클라우드에도 연결된다. 이 데이터는 최종적으로 데이터 저장용 서버에 저장된다. 다른 기기와 통신하려면 통신 반도체가 필요하고, 데이터를 저장하려면 메모리 반도체가 필요하다. PC에만 쓰이던 메모리 반도체가 스마트폰은 물론 데이터 저장용 서버에도 쓰이면서 삼성전자의 매출이 급격히 오른 것도 이 때문이다. 정보통신 기술은 물질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에 더 의존하게 되는 셈이다.
물질노동의 축소는 통계 분류의 변화와도 관련 있다. 과거 제조 기업 내에서 하던 서비스 업무가 하도급 형태로 외주화되는 경우, 제조업 생산 과정 자체가 크게 변하지 않더라도 통계에 나타나는 제조업 취업자수는 감소하고 지식 관련 서비스업 취업자수 ― 예를 들어 교통, 저장, 통신, 수리 ― 는 증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발명진흥회는 지식기반서비스업을 “생산과 기업 경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요의 일부를 생산·공급하는 산업으로써 기존 기업의 외주 수요를 담당(전문디자인, 시험, 검사, 연구개발)”하는 것으로 정의하는데, 이 업무들은 모두 제조업 생산 과정의 일부다.
6 로봇을 직접 제조하는 노동력이 더 늘어난다는 것이다. 7
미국의 기술혁명 100년을 돌아보는 책을 출간한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J 고든은 소형 로봇과 3D 프린팅의 등장으로 “노동자들은 더욱 소중한 존재”가 됐고, “또 새로운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음을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물질노동의 축소 담론은 자본주의의 현실과 거리가 먼 허상에 가깝다. 자본은 여전히 물질생산의 중심에 있다.소모되지 않고 무료 복사?
정보통신 생산물들은 자본주의의 다른 물질 상품과 달리 무료로 널리 생산되고, 한 번 생산되면 소모되지 않고 무한정 복사와 재생이 가능하다는 인지자본주의론의 둘째 전제를 살펴보자.
9 또한 자본가들이 지적재산권을 통해 지식을 전유하는 현상 때문에 지식의 무료화보다는 유료화 현상이 현실에 훨씬 더 가깝다. 10
이 주장은 두 차원에서 반박할 수 있다. 첫째, 정보생산(산출물)이 무료 지식(투입물)에 점점 의존한다는 주장과는 달리 실제로 지식 생산에는 막대한 개인적 비용이 소요된다.11 《구글의 배신》의 저자는 구글이 어떻게 개인 정보를 광고에 활용해서 매출을 올리는지를 상세하게 폭로하고 있다. “오래전에 사라진 검색 엔진 회사 고투닷컴GoTO.COM은 1998년에 검색 결과와 광고를 연결하는 방식을 개발했다. 구글이 2002년에 이 기법을 수용하기로 결정했을 당시, 구글은 검색어 주위에 가장 좋은 자리를 파는 실시간 경매하는 기발한 방식을 도입했다. 만약 사용자가 검색창에 ‘신발’이란 단어를 넣으면, 구글 컴퓨터는 신발업체에 즉각 경매 입찰을 요청한다. 회사가 지불할 금액의 한도를 정해 놓은 상태에서 클릭당 가장 큰 돈을 건 회사, 즉 최대 입찰자가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 12 구글 수익의 95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광고 수익은 검색 엔진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과정에 들어간 노동, 셀 수 없는 ‘구글링’ 과정에서 드러난 개인 신상이라는 정보 등이 반영된 것이다.
구글은 이용자들이 정보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선의를 베푸는 것이 아니다. 막대한 광고 수익을 통해 이윤을 얻는다. “구글의 핵심 사업은 검색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광고 공간을 파는 것”이다.13 정보재의 가격과 가치의 차이를 가치이론에 근거에서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는 그동안 정보재 가치 논쟁의 핵심 논점 중 하나이기도 했다. 흔히 소프트웨어 개발 노동의 경우 재생산에 거의 비용이 들지 않는 비경합재임이 강조된다. 14
둘째, 무한정 복제된다는 가정을 살펴보자. 지식이나 정보는 물질 상품과 달리 한 번만 생산되면 계속 복사·이전될 수 있어 재생산에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마르크스의 가치법칙에 대한 중대한 도전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그러나 최초 생산물the first unit과 복제품의 가격 차이는 가치법칙을 허물지 않는다. 자본가들은 복제품의 가치를 완전히 실현하기 위해 그 상품을 유통시키는 데 필요한 법적 조건, 즉 복제품의 사용가치를 전유하는 조건을 규제한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를 공유하거나 복사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지적재산권은 단지 외적인 강제가 아니라 복제품의 잉여가치를 실현하는 법적 형식이라고 봐야 한다.
15 그는 소프트웨어 원본prototype이 사실상 생산수단, 즉 기계와 비슷한 구실을 한다고 본다. 새롭게 개발된 소프트웨어는 현재 노동과정에서 생산적으로 소비될 과거 노동의 결정체이다. 기계와 마찬가지로, 특정한 소프트웨어의 가치가 생산과정에서 최종재로 이전되는 것이다. 최종재 생산에서 보자면, 그 원본은 과거에 객관화된 노동을 대표한다. 가치 형성 과정에서 본다면 이러한 특정한 ‘인지적 생산수단’의 무중량성이 가치법칙을 훼손하지 않는다.
필자는 디지털 상품의 재생산에 거의 비용이 들지 않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서 마르크스주의 친화적 경제학자인 스타로스타 같은 이들의 설명이 유용하다고 본다. 소프트웨어와 기계 사이에 차이는 있다. 즉, 소프트웨어는 물리적으로 소모되지 않는다. 그러나 소프트웨어도 “도덕적 감가”에서 자유롭지 않다. 즉, 지식이나 기술도 진부화되면서 가치를 잃는다. 정보통신 생산물들은 더 획기적인 버전이 나오면 누구도 이전 버전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정보통신 산업의 기술 혁신 주기는 6개월로 다른 산업보다 훨씬 짧다.무료 복제는 무한정 유효한 것이 아니다. 진부화한 특정 프로그램은 더는 복제되지 않고 시장에서 퇴장(폐기)되고 만다. 이는 죽은 노동, 즉 생산수단에 경쟁적 투자를 하는 다수자본 경쟁의 숙명 때문이다. 한마디로 무료 복제는 신화일 뿐이다.
지식노동은 측정 불가능한 노동인가
그럼에도 인지자본주의론자들은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지식노동을 포함한 인지노동, 즉 구상構想과 관련된 노동이 확대됨에 따라 가치법칙이 더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18 포스트-오페라이스모 혹은 인지자본주의론적 주장에 따르면 “대부분의 물질노동들은 기계적 시간 척도에 의해서 측정 가능”하지만, 19 비물질노동은 노동시간으로 측정될 수 없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는 노동가치론과 가치법칙은 폐기된다고 본다. 둘째, 그들은 더 나아가 ‘측정되는 가치’처럼 양적 가치 개념이 아니라 측정되지 않는 ‘삶의 넘쳐남’이라는 질적 가치 개념을 제시한다. 이 두 가지 이유는, 생산력의 산출 근거는 공장에서의 노동만이 아닌 삶의 영역 전체이고, 자본주의의 가치화 영역이 “노동에서 삶”으로 옮겨 갔다는 테제로 요약된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가치법칙이 붕괴돼도 가치법칙이 유지되는 효과가 나타나게 하는 ‘명령’command을 접점으로 자본과 ‘다중’ 사이의 투쟁이 전개된다는 게 인지자본주의론의 핵심 요지다.
인지자본주의론자들이 마르크스의 가치법칙의 폐기를 주장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비물질노동이 증대함에 따라 노동시간과 여가의 구분이 불필요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지자본주의론자들이 말하는 가치는 마르크스의 추상적 노동시간 개념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다. 상품교환에서 각 구체적 노동시간이 추상돼 재계산되고 총노동시간으로 승인되는 ‘추상적 노동시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국내외의 여러 논자들이 비판적으로 다룬 바 있다.21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마르크스의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의 그 시간, 즉 조정환이 선형적 진보를 표상해 왔다고 거부하는 그 ‘선형적 시간’은 결코 고정불변의 것이거나 절대적 기준으로 사고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 시간은 자본주의에 와서야 비로소 획득된 것이다. 자본주의에 와서야 비로소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다시 말해 과거의 반복이 아닌 직선적 형태가 됐고 그 때문에 추상적 양으로 인식됐다. 리프킨은 사회 변화에 따라 시간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매우 흥미롭게 다룬다. 그에 따르면, 갈릴레오가 1649년 진자운동을 발견하자마자 시계가 작동의 균등성과 정확성을 획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분·초가 기계 시계 다이얼에 나타나자 그것은 하루 일상의 일부가 되었고, 하루가 마치 화폐처럼 잘게 쪼갤 수 있는 추상적 시간의 단위로 재구성된 덕택에, 대규모 산업의 행위들이 이윤을 위해 조직화됐음을 지적했다. 시간은 돈이 됐고 경제는 시간의 경제가 됐으며 노동자들의 삶이 점차 시계 리듬 22 으로 조절되는 기계의 지배를 받게 됐고 생물학적·우주적 시간 개념은 이제 형식적이고 공허한 시계의 째깍 소리로 대체됐다. 23
그런데 필자가 주목하는 바는 인지자본주의론자들이 사회적 필요노동시간 적용의 불가능성을 주장할 때, 그 시간을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점이다. 인지자본주의론은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의 그 ‘시간’을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존재로 가정한다.한마디로 자본주의 경제와 사회를 재생산하는 데 기능하는 시간의 사회적 내용은 결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며,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의 그 ‘시간’은 자본주의적 규정성을 갖는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비물질노동 또한 자본주의 하에서 수행되는 한 그 “선형적 시간”에 의해 끊임없이 비교되고 동등화되는 데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노동 태도, 즉 표현의 규칙까지 정량화 시도의 대상이 되고 있다.
24 에는 “상한 우유를 살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이 나온다. 이 책이 강조하는 바대로 애플은 시간당 수요를 측정해서 생산 예상치를 매일 조정해 재고를 줄이는 시스템을 가동시킨다. 이 책은 개발 비용을 떨어뜨리기 위해 제품 개발에 걸리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려는 미국 지식경제의 시간 경쟁 시스템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국내 기업인 삼성전자의 연구개발 노동에도 동일한 시간의 압력이 작용한다. 애플과 마찬가지로 삼성전자의 연구개발 노동은 신기술과 제품 개발 속도를 높이는 전략에 종속돼 있다. 삼성전자는 복수의 팀이나 조직이 특정 기술이나 제품을 병행 개발하도록 하는, 치열한 내부 경쟁을 통한 개발 속도 향상 전략을 추구해 왔다.
실제로 지식기반경제에서 매우 중요시되는 연구개발 노동도 “시간 경쟁”에 노출돼 있다. 사실 여가 시간도 업무의 연장이 되기 일쑤인 연구개발 분야의 노동도 “시간”에 종속돼 있다. 애플과 삼성전자의 연구개발 노동자들은 출고 시기를 맞추기 위해서 “시간과의 경쟁”을 하는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애플의 팀 쿡이 모든 애플 노동자들에게 의무적으로 읽히는 《시간과의 경쟁》IT의 소프트웨어 개발 노동도 마찬가지다. 소프트웨어 개발 노동자들은 주어진 시간 안에 특정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위해서 야근과 밤샘을 강요당한다. IT 노동자들은 불공정한 하도급 구조와 하청업체 사이의 과다 경쟁 속에 주당 평균 56시간, 1년에 3000여 시간을 일한다. 시간 경쟁에 노출된 삼성전자 연구개발 노동자들의 심각한 스트레스는 연구원의 잦은 자살로 증명된다. 크리스티안 푹스는 구글 직원들의 인트라넷에는 장시간 노동과 형편없는 삶에 관한 글이 가득하다고 지적했다. 구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무료 식당, 스포츠 시설, 레스토랑, 카페, 예술 행사, 강연을 누리며 행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모두 “피고용인들이 더 오래 머물고 일하도록 고무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느낀다. “관리자들이 장시간 노동을 공식적으로 지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더 오래 일하도록 하는 압력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에릭 슈미트가 쓴 《구글은 어떻게 일하는가》를 읽으면 숨이 턱 막힌다. 이 책에는 ‘창의’와 ‘혁신’이라는 미명 하에 직원들의 능력을 규격화해서 평가하고 관리하는 자본가의 노하우가 담겨 있다. 조직의 맨 꼭대기에 있는 의사 결정권자들의 권한은 늘리는 한편, 직원마다 들쭉날쭉한 업무 성과의 편차는 줄이고 비용은 절감시킴으로써 ‘지식 노동’을 규격화하는 노하우 말이다. “데이터로 결정”하고 “각 책임자 밑에 7명 이상은 두지 않는” 섬세한 착취는 ‘혁신’과 ‘긍정의 문화’ 같은 말들로 포장되고 있다.
비물질노동의 노동시간은 측정하기 어렵다는 인지자본주의론의 전제는 지식노동이 추상적 시간에 의해 측정되고 정량화되는 현실과 매우 거리가 멀다. ‘디지털 테일러주의’로 표현되는, 일련의 포스트포디즘적 착취 현상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디지털 기업은 명확히 시간으로 정의된 단위로 노동을 측정하고 비교하면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자본가들이 끊임없이 양적으로 가치를 측량하는 현실을 단순히 거부해서는 자본주의적 착취 현실을 극복할 수 없다.
26 한다고 분명히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지자본주의론이 비물질노동에 새 사회로 나아가는 역동성을 각별히 부여한다는 점이다. “인지노동의 헤게모니를 통해 삶과 노동의 경계가 사라지면, 역설적이지만 사회적 삶 자체가 하나의 잠재적 공동체로서의 성격을 띠게 된다. 이것은 노동 외부의 삶에 속했던 활동들 대부분이 노동으로 전화되며 공동체 활동의 사회화가 이루어지는 것의 결과”가 생성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지노동의 헤게모니는 “노동을 통한 삶의 해방의 가능성 증대라는 또 다른 특성을 지”닌다. 27 이는 “협동은 비물질적 노동활동 그 자체에 완전히 내재적”이라고 했던 하트·네그리의 주장과도 상통한다. 28 “노동 내용의 공동체적 경향과 그것의 자본주의적 산업 형태가 가져오는 비참 사이의 모순이 증폭”한다고 지적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인지노동 확대와 대안사회로의 이행 사이는 아무리 봐도 매끄럽다. 29
물론 인지자본주의론자들도 정보통신 혁명이 더한층의 경제적 불평등을 가져온다고 지적한다. 조정환도 “비물질노동과 물질노동 모두 그 소재적 구분에도 불구하고 잉여가치를 생산”30 브라운은 이것이 구성요소, 모듈, 효율성 같은 핵심어로 구성된 디지털 테일러주의를 통해 가능해진다고 설명한다. 그에 따라 지식노동은 엄격히 통제받고, 개별 업무들로 세분되면서 지식 노동자들의 창의적 요소들은 수많은 파편으로 흩어진다. 그 결과 지식 노동자들 또한 보편적 소외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현대 자본주의의 특징 중 하나는 지식의 상업화다. 구글에서 일하는 디자인 담당 노동자도 자동차 생산 과정에 종속된 노동자들과 꼭 마찬가지로 자본가의 재산이며, 자본가들은 육체 노동을 이용해 부를 쌓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정신 노동자들의 노동을 전유해서 부를 쌓는다. 사회적 분업은 지식 노동자들이 사회의 새로운 진실을 발견할 잠재력을 갉아먹고 그들의 지적 활동에서의 전문화는 경쟁에 종속되고 총체성을 잃으며 전체와 고립된 채 이뤄진다.
비물질노동의 헤게모니에 대한 찬양이 비물질노동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착목과 분석의 실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필자는 지식노동에서 나타나는 디지털 테일러주의야말로 지식기반경제론의 핵심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자들의 지식을 가장 단순한 수준까지 분해해서 하나의 벽돌처럼 만드는 과정을 디지털 테일러주의로 정의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IBM은 500명 이상의 전문가를 고용해 “업무 내용과 방식을 조사하고 ‘군살 없는’, ‘효율성 높은’ 생산 방식을 연구하도록 시킨다.”정치권력의 전복
31 라 부른다. 이 과정을 통해 파편화된 노동자들이 자유시간의 가능성을 최대화하는 동시에 삶의 자율성을 회복한다고 주장한다. 32 이는 인지자본주의론이 주장하는 가장 중요한 투쟁 과제이다. 기본소득이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자 목표로 제기되는 맥락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인지자본주의론의 대안 논의는 기본소득이 보장돼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성 인정과는 별개로 현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의 ‘칼날’을 무디게 하는 효과를 낸다.
이탈리아의 자율주의자 프랑코 베라르디 등은 정보자본주의 하에서의 노동을 ‘노동의 프랙탈화’물질생산과 비물질생산이 공장과 사무실, 즉 생산 과정 내부에 있는 자본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착취가 이뤄지는 그 생산 현장에서 일어나는 반란이 핵심적으로 중요하다. 4차 산업혁명은 모든 지역이 와이파이 무료존이 되는 복지혜택이 넘쳐 나는 사회 속에서만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와이파이가 제대로 터지지 않는데 자율주행이 가능할까? 그러려면 누구나 인터넷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사영화의 이윤 중심 사회에서는 불가능하다. 정치권력, 더 나아가서 경제권력의 전복만이 “삶의 넘쳐남”을 가져올 수 있고 이는 착취가 행해지는 공장과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반란 없이는 불가능하다. 정보통신 혁명의 시대에도 여전히, 아니 한층 더 중요해지는 진실이다.
주
- 이항우 2017, pp29-30. ↩
- 안현효 2017, 이항우 2017 등의 신간들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
- 카를로 베르첼로네(C Vercellone)가 대표적이다. ↩
- Hardy & Choonara 2013. ↩
- 노동력을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데에 필요한 교육과 의료 부문은 꾸준히 팽창돼 왔다. 2009년 OECD 국가들의 자료를 보면, 교육과 의료 부문에서 고용이 해마다 10퍼센트씩 증가했다. Hardy & Choonara 2013. ↩
- 그는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에서 3차 산업혁명이 생산성 증가에 미친 영향은 고작해야 1994년부터 2004년에 한정될 정도로 수명이 짧았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 책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 자체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
- 고든 2016, p541. ↩
- ‘지식생산’ 이론을 통찰력 있게 분석한 카르케디는 지식생산은 신체와 사회와 독립돼 있다는 도그마(교조)를 지식 생산이론이 수용하기 때문에 모순이 있다고 본다. Carchedi 2011, pp183-202. 그에 따르면, “인간 에너지와 물질을 소비한다는 점에서 모든 생산은 물질생산”이며 “차이가 나는 것은 생산의 결과”일 뿐이다. ↩
- 디지털 지식 생산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훈련과 교육 과정이 필요한데, 이것이 개별 노동자들에게 내맡겨지는 현실에 대해서는 이규원 2006을 참고하시오. ↩
- 오픈 라이센스 프로그램 등도 있지 않느냐는 반박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실제로 오픈 라이센스 프로그램 등의 한계는 올레타 2010이 잘 다뤘다. ↩
- 바이디야니단 2012, p51. ↩
- 바이디야니단 2012, p53. ↩
- 카르케디는 정보 재생산을 위해서도 노동자들의 지적 능력과 기술이 끊임없이 개선돼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재생산 비용이 0이라는 전제에 의문을 가져야 하며, 이것만으로도 지식생산이 물건 생산의 메커니즘과 다르다고 볼 이유는 없어 보인다고 말한다. Carchedi 2011, pp183-202. ↩
- 스타로스타는 인지자본주의론자들이 ‘인지재Cognitive good 재생산 비용이 0’이라고 하는 점을 가치법칙 위기의 주된 요인으로 설명한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인지자본주의론자들이 주류 경제학의 전제들에 타협한다고 비판한다. Starosta 2012, pp365-392. ↩
- Starosta 2012, pp381-386. 정보재 원본을 생산수단으로 보는 국내의 대표적인 연구자로는 김창근 등이 있다. ↩
- 이정구 2017이 정보재의 “도덕적 감가”를 지적했다. ↩
- 국내 제조업의 평균적 기술지식 진부화율은 0.3289인데, 그중 정보통신 산업의 진부화율이 0.49로 가장 높다. 자동차는 0.31, 섬유는 0.2이다. 박지영 2009. ↩
- 이에 대해서는 조셉 추나라가 잘 반박했다. 추나라 2017, pp156-161. ↩
- 조정환 2012, p23. ↩
- 김공회 2012, 전병권 2006, 전희상 2009. ↩
- 조정환 2011, p292. ↩
- 기계 시계는 기원후 7세기에 베네딕트 수도회에 의해 처음으로 소개됐다. 베네딕트 수도회는 다른 종교와 달리 하루의 매 순간마다 기도하고 종교의식을 치러야 했다. 시간은 모자랐고 따라서 낭비해서는 안 됐다. 기도할 시간, 먹을 시간, 목욕할 시간, 일할 시간, 잠잘 시간이 정해졌다. 그들은 시간의 단위로 ‘시hour’를 다시 소개했다.(이 시 개념은 중세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모든 행동이 특별한 시에 맞춰 짜여 있었다. 예를 들어, 하루의 첫 네 시간은 필요 행동을 하고 나머지 두 시간은 독서를 하는 식이다. 이것은 현대의 시간 개념이 베네딕트 시대에도 있던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 개념은 여전히 구체화된 시간의 개념이다. 각 시간은 특별한 행위를 위한 시간이었다. 자본주의에 와서야 특별한 시간에 특별한 행위를 하는 것과는 관계 없는 시간의 추상화가 가능해졌다. ↩
- Rifkin 1989, pp64-65. ↩
- Stalk 1990. ↩
- Fuchs 2014. ↩
- 조정환 2012, p22. ↩
- 조정환 2011, p327. ↩
- 하트·네그리 2001, p386. ↩
- 조정환 2011, p328. ↩
- 브라운 2013, p133. ↩
- 프랙탈이란 단순한 구조가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복잡하고 묘한 전체 구조를 만드는 과정을 뜻한다. ↩
- 필자가 보기에 자율주의 이론에서는 인지자본주의와 대안 사회의 불연속성보다는 연속성이 강조된다. 조정환에 따르면 “인지자본주의의 권력은 분명 삶/생명과 관계한다는 점에서 생명 권력이다. 하지만 그 권력 속에서 ‘살게 함’과 ‘죽게 함’은 분리되지 않고 연결되며 배제하기보다 공존하는 것처럼 보인다.” 조정환 2017, p2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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