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정신의학
마르크스주의와 정신적 고통 *
최근 영국에서 출간된 《마음의 정치학: 마르크스주의와 정신적 고통》Politics of the Mind의 저자 이언 퍼거슨이 《소셜리스트 리뷰》와 인터뷰하며 자본주의에 만연한 우울증과 불안을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우리의 감정과 심리적 경험을 표현하는 용어들은 그런 경험의 기원과 본질에 관한 이론과 연관돼 있다. 그런데 오늘날 주류 심리학과 정신의학은 문제의 원인을 대개 그 개인(혹은 그의 뇌나 유전자 또는 신경전달물질, 그의 일부 경험)의 문제로 환원하는 이론을 받아들인다. 그러다 보니 정신적 문제를 표현하는 많은 용어들(정신병, 광기, 미친, 정신질환, 정신장애 등)이 그런 함의와 연결돼 낙인 효과를 내곤 한다. 이언 퍼거슨은 그의 책에서 이런 낙인 효과를 피하면서도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을 표현할 수 있는 용어로 ‘정신적 고통’mental distress을 사용한다고 밝혔다. 한국에서도 2010년대 들어 정신분열병Schizophrenia의 낙인 효과를 완화하고자 ‘조현병’調絃病이라는 용어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런 시도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익숙지 않은 용어 사용이 이해를 어렵게 하는 경우가 있어 이 글에서는 예전 용어인 정신분열병을 그대로 사용했다.
Q. 오늘날 우울증과 불안이 만연한 듯합니다. 이 문제와 관련된 말은 훨씬 많고, 흔히 사람들의 결근(결석)과 결부돼 논의됩니다. 최근 정신 건강 문제가 대두한 까닭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A. 단연 중요한 이유는 정신적 고통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엄청나게 증가한 것이라고 봅니다.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업무 수행 평가 압박을 받는 사람들, 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자리를 구하라는 압력을 받는 복지 수급자들이 그 영향을 가장 분명하게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영국뿐 아니라 그리스 같은 나라들에서도 우울증과 불안은 물론이고 자살이 엄청나게 증가했습니다. 다른 집단도 영향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높은 수준의 불안과 우울증을 겪는 청년, 특히 젊은 여성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이는 어느 정도 소셜 미디어에서 겪는 경쟁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직장이 있는 사람들의 불안과 우울증 수준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가난한 저임금 노동자들이 그런데, 그중 일부는 빚과 관련이 있고 또 다른 일부는 고용 불안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우울증과 불안의 증가는 꽤 보편적입니다. 저는 책에서 노동강도 강화, 빚, 복지 혜택 축소 같은 신자유주의 사회의 삶이 가하는 압력이 이 현상과 연결된 요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Q. 왜 지금 이 책을 쓰게 됐나요?
A. 책을 쓰게 된 핵심 이유는 우울증, 불안증, 정신분열병 등 뭐라고 부르든 간에 정신적 고통을 사회 현상이나 사람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아무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는 의학 모델에 도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모델은 정신적 고통을 개인 문제로 여깁니다.
이런 모델에 문제를 제기하고 정신적 고통이 오늘날의 수준으로 증가한 것이 자본주의가 대중의 삶에 가하는 압력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말하려는 것이 책의 출발점입니다.
다른 두 가지 요소도 중요했습니다. 하나는 최근 정신 건강과 정신적 고통을 이해하는 방법을 둘러싸고 여러 견해 사이에서 일어나는 논쟁입니다. 런던의 ‘맑시즘’ 포럼과 《소셜리스트 리뷰》 지면에서도 그런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프로이트에 대한 논쟁, 신경 과학에 대한 논쟁 등이 있었습니다. 그런 논의를 일부라도 다루려고 애썼습니다.
[사회적] 요인들에 맞선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정신 건강 문제가 대두한 또 다른 요소로는 ‘긴축에 반대하는 장애인 운동’ 같은 조직들이 한 구실이 있습니다. 최근 위기가 끼친 긍정적 효과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정신적 고통을 자주 겪거나 그런 가족을 둔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낳은
Q. 당신이 언급한 의학 모델이 득세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또, 얼마나 오랫동안 그랬습니까?
A. 그 모델은 150년 이상 득세했습니다. 첫째, 이데올로기적 이유 때문입니다. 그 모델은 정신적 고통을 개인의 내면에서 찾습니다. 매우 편리한 설명이죠. 이 모델은 원인이 우리의 두뇌나 도덕적 결함에 있다고 암시합니다. 당연히 낙인 찍기 효과를 냅니다. 그 탓에 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패배자 취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그들 스스로 ‘나는 패배자야’ 하고 여기기도 합니다.
둘째, 그 모델의 핵심 요소는 병이 있으니 치료해야 한다고 보며 약이든 뭐든 써서 처리한다는 사고 방식입니다. 그런 치료가 실제로는 효과가 없다는 증거가 수없이 많은데도 말입니다. 제약 산업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수익성이 높은 산업이라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 까닭이죠.
Q. 그렇다면 그런 의학 모델의 탄생 이전, 자본주의 이전에는 정신적 고통이 어떻게 설명됐습니까?
A. 가장 유력한 모델은 종교적 설명이었습니다. 즉, 정신적 고통을 신이 내린 벌이나 귀신에 씌인 것으로 봤습니다.
그러나 종교적 모델과 나란히 그리고 그와 더불어 정신적 고통의 원인을 신체에서 찾는 유물론적 설명도 항상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체액으로 설명하는 견해가 있었습니다. 몸 안의 체액이 균형을 잃었다고 본 것입니다. 이 모델은 19세기까지 영향력이 매우 컸습니다. 제가 책에서 〈조지 왕의 광기〉라는 영화를 언급했는데요. 이를 꽤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책에서도 강조했듯이,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전환기나 프랑스 혁명기처럼 거대한 사회 변화가 일어날 때 특히, 훨씬 더 진보적인 설명이 등장했습니다. 이런 설명들은 스트레스의 수준을 사람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속에 자리매김해서 살핍니다.
Q. 이처럼 복잡한 문제를 다루는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은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요?
A. 마르크스주의적 접근법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는 유물론적 설명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필요(육체적·정서적 욕구) 충족을 우선시하지 않고 이윤 축적의 필요에 따라 작동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이 탓에, 정서적인 것이든 성적인 것이든 무엇이든 사람들의 욕구가 억눌리고 왜곡되거나 소외돼 있습니다. 이것이 정신 건강을 이해하는 진정한 출발점입니다.
둘째 측면은 역사적 설명입니다. 왜 정신 건강에 대한 특정한 견해가 특정한 시기에 유력한 것인지를 이해하고, 한 사람의 삶도 일대기 수준에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정말로 물어야 하는 질문은 “잘 지내니?”(영어로 How are you?)가 아니라 “무슨 일 있니?”(영어로 What happened to you?)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즉, 삶에서 일어난 사건들, 유일한 것은 아니지만 특히 어릴 적에 일어난 사건들이 그 사람이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셋째는 변증법적 접근법입니다. 여기에는 두 측면이 있습니다. 개인 수준에서 정신분열병의 가장 흔한 증상인 환청을 듣는 사람들은 그 목소리에 반응해서 두려움을 느끼거나 환청을 조절하려 애쓰는 등의 행동을 보입니다. 그런데 그 반응 방식 자체가 매우 흔하게는 정신분열병의 증상으로 취급됩니다.
따라서 첫째 요점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과 기분을 이해하고 그에 대처하려고 능동적으로 애쓴다는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우리의 집단적 정신 건강은 계급 투쟁 수준에 크게 좌우됩니다. 이것이 제 책의 핵심 주장 중 하나입니다.
집단적 저항이 없는 곳에서 사람들은 고통과 스트레스의 일부를 내면화할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사람들이 체제에 맞서 집단적으로 저항하고 싸우는 것이 정신 건강에 유익한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가 꽤나 많이 있습니다.
Q. 책에는 “피켓 라인부터 걱정 라인까지”라는 인용문이 있습니다.
A. 그렇습니다, 저는 그 말을 좋아합니다. 여러 면에서 이 말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의 현실을 잘 요약해 줍니다. 정신 건강을 개선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 하나는 집단적으로 투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소외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제가 책에서 언급했듯이, 많은 정신적 고통은 무력감을 느끼는 것과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행위 주체라고 여기고 자신에게 힘이 있음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은 정신 건강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CBT를 받을 텐데요. CBT는 여러 현상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바꾸는 데 도움을 주지만 매우 개인적인 수준의 방법인 듯합니다.
Q. 지금 말씀하신 내용은 사람들이 의사를 찾아갔을 때 듣는 견해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 같습니다. 의사를 찾아간 사람들은 약을 먹지 않더라도 인지행동치료A. 당연히 그 치료가 유용하다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CBT는 개인이 세계를 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세계를 바꾸는 것과 대조적이죠. CBT의 다른 측면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특징을 보여 줍니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본질적으로는 진보적인 아이디어를 가져다가 자기 목적에 맞게 바꿔 버립니다. 예를 들어, 정신 건강 회복이라는 개념은 현재 영향력이 매우 큽니다. 이 개념의 긍정적인 측면은 사람들이 인생을 불행하게 살 필요가 없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부정적 측면은 “잘 살아야” 한다는 책임을 개인에게 부과한다는 것입니다.
Q. 당신은 책에서 유력한 모델에 중요한 문제 제기를 하는 한편, 그 모델이 상황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도 살펴봅니다. 분명히 정신분석학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프로이트인데요. 당신은 그의 접근법이 이룬 혁신과 그것의 강점을 인정하면서도 비판도 했습니다.
思考에는 대단히 급진적인 요소도 있습니다. 그는 사회가 사람들의 섹슈얼리티뿐 아니라 다른 기초적 욕구도 억누르고 왜곡해 그가 ‘신경증’neurosis이라고 부른 것을 일으킨다고 했습니다.
A. 프로이트는 혁명가가 아니었지만, 그의 사고정신분석학의 전통은 대부분 정신적 고통을 개인의 문제로 다루는 매우 보수적인 전통이었지만, 제가 책에서 말하고자 한 것의 하나는 마르크스주의 내에는 프로이트 사상의 급진적 핵심을 파악하려 한 조류가 항상 있었다는 것입니다.
Q. 당시 저명한 마르크스주의자들 몇몇이 프로이트와 관계를 맺었죠?
A. 예, 특히 1920년대 초 러시아처럼 혁명적 시기에 그랬습니다. 이 책을 쓰려고 탐구하다가 발견한 매우 흥미로운 정보 하나는 1920년대 초 러시아에서 정신분석학이 공식 승인을 받은 학문으로 보일 만큼 널리 퍼져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소비에트 정부의 출판 기구가 프로이트의 책을 출간했죠. 트로츠키, 라데크, 비고츠키 같은 인물들이 프로이트를 비판적으로 지지했습니다.
같은 시기 독일에서도 다수의 여성 정신분석가들을 비롯해 정신분석학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프로이트 사상에 매료됐고 프로이트 사상에 급진적 잠재력이 있다고 봤습니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은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미국으로 수입되면서부터는 달라져서, 거의 공식 이데올로기가 되고 급진성을 거의 다 잃었습니다.
R D Laing입니다. 그는 최근에 좀더 유명해졌죠. 데이비드 테넌트가 레잉 역을 연기한 영화가 있었습니다. 레잉은 어떤 기여를 했습니까?
Q. 당신은 1960년대를 또 다른 위대한 시기로 언급하셨습니다. 다시 찾아온 엄청난 혼란과 정치 투쟁의 시대였죠. 이 시기와 관련된 인물 한 명이 로널드 레잉A. 저는 레잉이 매우 흥미롭고 모순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초기에 한 기여는 당시 행해지던 더 야만적인 정신과 치료법, 예컨대 전두엽절제술(사람의 두뇌를 절단하는 것)이나 광범하게 사용되던 전기경련요법 등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레잉을 억압받는 사람들의 호민관이라고 봅니다. 그가 정신분열병 등을 앓고 있다고 판정된 사람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행동과 감정은 단순한 화학 반응이 아니라 그들이 삶에서 겪은 경험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레잉은 부모와 가족을 정신분열병의 원인으로 지목한 것으로 비쳐서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약간 불공정한 평가라고 보지만, 그는 그 문제에 대해 모호했습니다.
레잉은 이 기간에 신좌파에 깊숙이 관여했고 1960년대 후반 런던에서 중요한 회의를 조직하기도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1970년대 이후 그의 지적 기여는 훨씬 작아졌고, 개인적으로는 점점 알코올에 중독됐습니다.
그러나 정신적 고통에는 의미가 있다는 1960년대 레잉의 핵심 사상과, 그 의미를 알아내는 방법이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이라는 점은 중요합니다. 훗날 실증적 연구로 수집된 매우 풍부한 증거 자료는 레잉의 명예를 회복시켰습니다. 그 연구들은 학대 경험을 포함해 사람들이 살면서 겪은 경험과 정신적 고통 사이에 매우 강한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Q.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지난 몇 해 사이에 등장한 새로운 운동에 대해 얘기하셨습니다. 특히 정신 보건 서비스 이용자들과, 학술적으로든 실천적으로든 당신처럼 급진적 사회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참가하는 운동에 대해서 말이죠. 이 운동은 과거 운동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습니까? 그리고 새 운동의 접근 방식은 얼마나 새로운 것입니까?
A. 지금은 매우 흥미로운 시기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운동의 기초는 정신 건강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더는 병원에 가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지역 사회에 머무르면서 다양한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람들이 지역 사회에 머무른다는 사실은 그들이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보다 조직되기가 훨씬 쉬워지는 요인의 하나입니다. 정신 건강 문제가 매우 광범하게 퍼져 있다는 사실과 낙인 찍기에 맞선 도전이 있다는 사실 덕분에 오늘날에는 조직하기가 더 쉽습니다.
정신 건강 운동이 급진화하며 확산되고, 정신 보건 서비스 이용자들이 ‘긴축에 반대하는 장애인 운동’ 같은 조직 내에서 매우 능동적인 구실을 하게 된 것이 긴축의 한 효과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mad studies라고 불리는 활동이 있는데, 그것의 긍정적 측면 하나는 사람들이 1960년대와 그 전의 투쟁 사례를 되돌아보고, 로널드 레잉 같은 사람들의 사상을 살펴보면서 오늘날 활용할 수 있는 것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이 운동은 아주 새롭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운동들은 자신의 역사를 되짚어 가기도 하는데,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미친 연구”정체성 정치가 운동을 전진시키는 최선의 방법인지 아닌지에 관한 논쟁이 더 많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하도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어서, 낙인 찍기의 효과가 감소하고 기반이 광범한 운동을 건설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봅니다.
지난해 영국 전역에서 지역 사회 기반 정신 보건 서비스 폐지에 반대하는 운동이 매우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 운동에서 서비스 이용자와 노동조합원 등 다양한 활동가들이 긴밀히 협력했습니다.
Social Work Action Network와 ‘긴축에 반대하는 심리학자들’Psychologists Against Austerity 같은 조직에서 서비스 이용자, 사회복지사, 심리학자 등이 긴축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며 긴밀히 협력하고 있습니다.
‘소셜워크액션네트워크’
Q. 끝으로, 마르크스의 소외 개념이 정신적 고통을 다루는 데 더 철저한 방법을 제공한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제가 책에서 중점을 둔 것은 정신적 고통의 뿌리가 특정 정책이나 특정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사회, 즉 자본주의에 있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삶을 통제할 힘을 모두 박탈하고,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욕구가 창조적으로 발전하고, 세계를 형성한다는 것을 부인합니다.
노동강도 강화든, 아이들이 학교에서 겪는 경쟁의 심화든, 점점 더 원자화되는 사회에서 노인들이 겪는 외로움이든, 이 다양한 측면들이 모두 같은 문제를 가리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인간의 사회적·정서적 필요가 아니라 축적을 위해 작동되고 있다는 사실 말이죠.
따라서 정신 건강의 위기를 진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윤 축적보다 인간의 필요 충족을 위해 세워진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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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ain Ferguson, ‘Interview: Marxism and Mental Distress’, Socialist Review(November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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