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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투고

4월 테제를 통해서 본 레닌의 연속혁명론

MARX21

  1. 트로츠키는 ‘프롤레타리아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 공식을 대수(代數)적 정식이라고 했다.
  2. 레닌 1992b, p28.
  3. 레닌 1992b, p123. 1905년 혁명에 대한 통찰이 낳은 이런 서술은 《두 가지 전술》 일년 후에 쓴 글에서도 반복된다(레닌 1991, pp520-525). 이 글은 카우츠키의 논문에 대한 서문인데, 레닌은 이 논문을 전폭 지지하며 자신의 민주주의 독재 전술이 뜻하는 것이 정확히 이와 같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카우츠키의 입장은 레닌보다 더 일관되게 러시아 혁명이 부르주아적 한계를 벗어난다는 점을 강조했고, 그런 점에서 트로츠키의 입장과 더 비슷했다. 같은 시기 트로츠키도 카우츠키의 이 논문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여겼다.
  4. 레닌 1992b, pp28, 29, 33, 59, 64, 65, 98, 103, 104, 106, 134, 136, 150, 157.
  5. 요구와 슬로건의 구분에 관한 마이어스(2016, pp98-102)의 내용을 떠올리게 만드는 대목이다.
  6. 사회배외주의란 말로는 사회주의를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민족에 대한 제국주의적 침략을 지지하는 우익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사상과 행동을 말한다.
  7. Lenin 2011e, pp21-24.
  8. 레닌 1992b, p64.
  9. 레닌 1992b, pp163-164. 엄밀히 말하면 프랑스 농민을 봉건적 사슬에서 해방시킨 것은 부르주아지가 아니라 1792년의 프티부르주아지이다(트로츠키 2017, pp711-712).
  10. 러시아 자본주의 발전에 대한 레닌의 연구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따라 농촌의 사회적 분화에서 출발한다(레닌 1988). 반면, 트로츠키는 러시아 자본주의가 차르 국가와 외국 자본에 의해 ‘외부로부터 이식’되어 자본주의 발전이 ‘전형적’이지 않고, 여러 단계들을 건너뛰게 됐다는 것에서 출발한다(트로츠키 2010, pp63-73). 이것은 정치 전략의 구상에 있어서도 차이를 만들어 냈다. 레닌이 거대한 농민의 존재와 농업 문제에 천착한 반면, 트로츠키는 러시아의 다른 계급과 비교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상대적 강력함, 러시아와 유럽 프롤레타리아와의 동맹에 더 주목했다.
  11. 레닌 1992b, pp15-16.
  12. 농업 노동자와 빈농의 독립적인 조직화를 1917년에 처음 주장한 것은 아니다. 1905년 혁명을 겪으면서 그 필요성을 알게 됐고, 《두 가지 전술》 이후에 쓴 글들에서 이런 언급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다만 여기서는 혁명과 권력에 대한 중요한 전술적 전환과 함께 제기됐다는 점이 중요하다.
  13. 리브만 1985, pp125-128.
  14. 리브만 1985, pp134-135.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러시아 혁명을 논하면서 1789년, 1848년 혁명과 비교하는 것은 1905년 혁명 이전부터 행해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Kautsky 1901, Parvus 1905). 트로츠키도 《평가와 전망》에서 1789년, 1848년, 1905년을 직접 비교했다(트로츠키 2010, pp82-95). 고전적인 형태의 부르주아 혁명과 러시아를 비교하며 혁명을 전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비교를 통해 이론을 실재의 역사 상황에 맞게 적용하고 이론 자체의 변경을 시도한 경우는 드물었다. 트로츠키는 1905년 전후에, 레닌은 1914-1917년에 이를 해냈다. 결국 ‘고전적인’ 부르주아 혁명은 오히려 예외였고, 제국주의가 자본주의 발전을 ‘왜곡’시킨 것처럼 부르주아 혁명도 고전적인 형태를 벗어났다. 트로츠키와 레닌이 1905-1906년 사이 파리코뮌에 대해 논평한 것을 ‘4월 테제’와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트로츠키는 영국이나 미국처럼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나라들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후진적인 ‘프티부르주아적 파리’에서 1871년 노동자들이 권력을 잡았다는 것은, 후진국 노동자들이 선진국 노동자들 보다 먼저 권력을 잡을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이라며 러시아에서도 그 가능성을 주장했다(트로츠키 2010, p97). 레닌은 파리코뮌의 패배가 혁명의 부르주아적 과제와 민주주의적 과제를 구분하지 못한 데 있다고 보며 혁명의 단계적 구분에 더 의존했다(레닌 1992b, p98). 1905년 이러한 레닌의 생각은 ‘4월 테제’의 전환을 통해 트로츠키와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15. 레닌 1992a, p759.
  16. 리브만 1985, pp135-137.
  17. 4월의 논쟁에 대한 보다 생생한 묘사는 트로츠키(1996) 2-4장, 트로츠키(2017) 15-16장 참조.
  18. Callinicos 1982.
  19. 레닌 1993, pp106-107, 156-157.
  20. 레닌 1993, pp99, 112-120. 이 글과 관련하여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읽을 때 주의할 점은 독점의 지배력에 대한 과장, 제국주의 전쟁과 혁명의 불가피성에 대한 과장 등이다.
  21. Lenin 2011b, pp307-308.
  22. Lenin 2011b, p313.
  23. Lenin 2011b, p308.
  24. Lenin 2011b, pp315-316.
  25. Lenin 2011b, pp329-330.
  26. Lenin 2011d, pp371-373.
  27. 아래에서 다룰 글의 제목, 집필 날짜, 레닌 전집의 해당 부분은 다음과 같다.
  28. Lenin 2011c, pp406-407. (미주 126)
  29. Lenin 2011c, p297.
  30. Lenin 2011c, p306.
  31. Lenin 2011c, pp335-336.
  32. Lenin 2011c, p323.
  33. Lenin 2011c, pp299-300.
  34. Lenin 2011f, p44.
  35. Lenin 2011c, p304.
  36. Lenin 2011c, p324.
  37. Lenin 2011c, p304.
  38. Lenin 2011c, p305.
  39. Lenin 2011c, p316.
  40. Lenin 2011c, pp318-319.
  41. Lenin 2011c, p327.
  42. Lenin 2011c, pp328-329.
  43. Lenin 2011c, pp337-338.
  44. Lenin 2011c, p331.
  45. Lenin 2011c, p302.
  46. Lenin 2011c, pp307-308.
  47. Lenin 2011c, p318.
  48. Lenin 2011c, p341.
  49. 트로츠키 1996, p36.
  50. Lenin 2011g, p57. 물론, 2월혁명이 낳은 이중권력은 권력의 이분이 아니라 동요와 불안정을 뜻했다.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제거해야 했다. 또한 이중권력 시기는 부르주아적 과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차르는 제거됐지만 농민문제 해결이나 왕조적 잔재의 제거 등 다른 개혁 조치들은 임시정부가 방해했다. 러시아에서 소위 ‘부르주아적 과제’가 해결된 것은 10월혁명 직후 얼마 동안의 시기였다.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통해 부르주아적 과제가 해결됐다. 바로 트로츠키가 전망했던 바였다. 부르주아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필요했던 것이다.
  51.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병사들은 군복 입은 농민이지만 농촌의 노동 방식보다는 공장의 노동규율에 가까운 군대의 규율 안에 있었고, 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에 참여한 병사들은 도시 방어를 위해 주둔한 군사들로서 노동자들과의 접촉이 빈번했다. 이들은 이미 조직돼 있는 하나의 집단으로 존재했고 그래서 농촌의 농민에 비해 집단행동에 용이했다. 한편, 이 시대 러시아 노동자들은 여전히 농촌과의 연계가 강했다. 1917년 혁명 동안 농촌 운동을 선동한 사람들은 바로 이들 병사와 노동자였다.
  52. Lenin 2011a, pp371-373. 이 부분은 마르토프가 자신의 글에서 인용한 트로츠키에 대해 레닌이 논평한 것이다. 레닌이 연속혁명론에 대해 잠깐이라도 언급한 적이 네 번 있었는데 이 글은 그 중 하나다. 한편, 이 글은 레닌이 이때까지 트로츠키가 연속혁명론을 다룬 《평가와 전망》을 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이 글은 트로츠키가 지적한 것처럼 레닌이 노동자와 농민의 독재 공식을 혁명에서 주요 동맹 세력이 누구인지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권력 문제를 분명히 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글에서 정치동맹에 대한 레닌의 서술은 권력 문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러시아에서 노동자와 농민의 다양한 공동행동의 역사만을 거론한다.
  53. Lenin 2011g, p67.
  54. 트로츠키 1996, p36.
  55. Callinicos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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