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호를 내며
이번 호에는 모두 9편의 글을 실었다.
오늘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혹은 그 반대로 성별 전환을 시작하거나 성별 이분법을 벗어나 성 중립적 인칭대명사를 사용하는 등 자신이 선택한 성별로 살아갈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익 언론은 트랜스 여성을 공격하고, 일부 페미니스트(근본적 페미니스트)들도 트랜스젠더의 성별 자기 결정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트랜스젠더 정치’는 젠더에 관한 논의를 통해 여성과 트랜스젠더 해방을 위한 투쟁이 왜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과 연관성이 있는지를 주장하는 글이다.
요즘 젠더와 섹슈얼리티 분야의 일부 활동가와 이론가들이 ‘퀴어’라는 명칭으로 글을 쓰거나 단체를 만들고 있고 심지어 퀴어 이론과 그 정치가 주류 LGBT와는 다른 급진적 대안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퀴어 이론과 그 정치’는 이런 주장을 검토한다. 물론 마르크스주의는 퀴어 이론·정치와 많은 목표를 공유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역사와 사회에 대한 퀴어 이론의 설명 중 적어도 몇몇 요소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퀴어 이론의 다른 측면들은 젠더와 성의 해방을 위한 투쟁을 전진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제주 4·3항쟁 70주년 — 분단과 미국 제국주의에 맞선 저항’은 분단과 미국 제국주의에 맞섰던 제주 4·3항쟁의 진상 규명과 정당한 평가가 온전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까지 역사적 격변기 한가운데 위치한 4·3항쟁을 둘러싼 논쟁이 첨예하며 4·3항쟁의 성격을 둘러싼 역사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의 세 번째로 “제주 4·3사건의 완전한 해결”을 약속했지만 그 약속이 제대로 지켜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NGO지도자들과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퇴진 촛불의 수혜를 입고 부상한 개혁주의의 한 버전인 NGO가 어떤 역할을 하며, 사회 변화를 바라는 대중이 왜 그들을 지지하는지 잘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그들에게 공감하는 개혁 염원 대중과 관계를 맺을 수 있고, 그 대중을 좌파적이고 혁명적인 입장으로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년 실업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과 대안 논쟁’은 최근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청년실업 문제의 실상과 원인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공약과 정책을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청년 일자리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사회적 대화가 아니라 사회적 투쟁을 통해서 나서야 하는데, (청년) 실업자, 비정규직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들은 같은 계급으로서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또 함께 단결하여 투쟁을 건설할 수 있는 잠재력 또한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데이비드 하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책’은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는 마르크스주의자이자 《자본론》 해설가로 유명한 데이비드 하비의 《데이비드 하비의 세계를 보는 눈》에 대한 서평이다. 이 책이 하비의 핵심 주장을 담은 글을 발췌하거나 수정해 한 권의 단행본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한 권으로 하비의 사상을 조망하면서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몇 가지 정치적 약점들도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혐오의 켄베이어 벨트를 멈추기’는 노동자들이 “국익”을 옹호해야 한다고 여기도록 하는 데 일조하는 민족주의, 국민국가에 따라 우리와 남이 규정된다고 보는 사상에서 비롯한 인종차별, 민주적 동의라는 개념 일체를 거부하는 파시즘 사이의 관계를 분석한다.
‘68반란 50주년 — 반란의 불길이 세계를 휩쓸다’는 올해로 50주년을 맞는 68반란의 의미를 짚고 있는 글이다. 이 글에서도 지적하듯이, 1968년은 세계사의 분수령이었다. 프랑스, 미국, 체코, 베트남 등 많은 곳에서 대중 운동이 일어나 자국 정부를 뿌리부터 뒤흔들었다. 세계 반대편의 사람들이 서로의 투쟁에서 영감을 얻었다. 권위에 도전한 이 반란으로, 서구의 시장 자본주의와 동구권의 스탈린주의 독재 정권들이 모두 억압적 체제임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이 글은 양 체제 모두에서 진정한 대안이 필요하다는 점이 분명해졌다고 지적한다.
‘베트남 설 공세 50주년 — 미국 제국주의를 패퇴시킬 수 있음을 보여 준 베트남 민중’은 세계를 뒤흔들었던 1968년 국제적 반란의 신호탄이 됐던 1968년 1월 31일 남베트남 전역에서 벌어진 설 공세를 다룬 글이다. 설 공세는 50년 전 베트남 게릴라들이 미국 제국주의에게 치욕적인 수모를 안겨 준 사건이었다. 민족해방전선이 설 공세로 엄청난 타격을 입었지만 미국 지배계급에게 엄청난 타격을 주었고 그래서 정치적으로 승리한 사건이었다.
이번 호도 예정에 비해 조금 늦게 나왔다. 독자들의 양해를 부탁드린다. 기획됐지만 이번 호에 실리지 못한 글들을 다음 호에 꼭 싣도록 하겠다고 약속하며 머리말을 마무리할까 한다. 이번 호에 실린 글에 대해서도 많이 활용하기를 바라며 또 다양한 문제제기도 기대한다.
편집팀을 대표해 이정구
MARX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