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NGO지도자들과 문재인 정부 *
박근혜 퇴진 촛불의 가장 큰 수혜자는 문재인과 민주당이다. 민주당만큼은 못 돼도 NGO 등 개혁주의도 부상했다. 이는 대중의 변화 염원이 투영된 결과일 것이다. 특히 문재인의 집권과 함께 NGO 인사들이 대거 정부에 입각했다. “박근혜 정부에는 한 명도 없던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던 인사 11명(20퍼센트)이 문재인 정부에 뛰어든 게 큰 특징이다. 특히 참여연대 출신이 핵심 요직에 진출했다.”(〈중앙일보〉)
NGO의 지도적 인사들이 정부에 입각하면서 몇 가지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우선 주요 NGO들이 한국 사회를 개혁하려면 문재인 정부가 성공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주장하고 있다. 우파의 공격에 맞서 문재인 정부를 (무비판적으로) 지지·엄호해야 한다고 호소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인 김금옥 전 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평화운동 단체들을 만나 평창올림픽에서 한반도기를 들고 응원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우파들이 문재인 정부를 물어뜯는 데 이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인 듯하다. 김금옥은 지난해 말 트럼프 방한 반대 운동에 여성단체들이 참가하지 못하게 압력을 넣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NGO 지도자들은 “NO트럼프” 기조를 문제 삼아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항의 행동에 참가하지 않고 별도의 행사를 했다. 사실상 트럼프 방한 반대 운동을 분열시키려 한 것이다.
최근 여성가족부 장관 정현백 전 참여연대 공동대표는 개신교 우익의 압력에 물러섰다. 양성평등기본계획에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동성애·동성혼 합법화’라며, ‘양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는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우파 달래기에 앞장선 정현백 장관은 한국기독교연합을 방문해 성평등이라는 표현이 동성애 지지로 오해할 소지가 있었다며 해명까지 했다.
박근혜 퇴진 촛불에서 운동의 변곡점마다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모두 미쳤던 NGO는 이제 문재인을 대신해 진보진영에 압력을 넣는 전동벨트 구실, 우파 달래기에 나서며 정치적 후퇴를 정당화하는 구실을 동시에 하고 있다.
NGO들과 민주당의 긴밀한 관계는 박근혜 퇴진 촛불 시기부터 강화돼 왔다. 퇴진운동 초기에 민주당 등 주류 야당이 박근혜 퇴진을 내걸지 않자, NGO들은 처음에는 모호한 태도를 취하며 퇴진 촛불에 뛰어들지 않았다. 참여연대는 2016년 10월 29일 박근혜 퇴진 운동이 크게 확대된 뒤에야 “대통령 퇴진 없이 거국중립내각 구성 어불성설”(10월 31일자)이라며 공개적으로 박근혜 퇴진을 내걸었다.
박근혜가 탄핵된 뒤 황교안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뒤 거리의 대중은 황교안의 퇴진도 요구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황교안 퇴진에 반대했다. 이때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이하 퇴진행동) 안에서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황교안 총리를 인정하자고 주장했다. 퇴진행동을 대표해 민주당 지도부와 면담한 권태선 환경운동연합 대표는 황교안 퇴진을 촉구하지 않고, 황교안 역할 축소론을 주장했다. 게다가 면담 과정에서 퇴진행동의 공식 요구인 ‘사드 배치 철회’를 ‘사드 배치 유보’로 낮춰 말했다. 민주당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요구를 낮춘 것이다. 민주당은 이조차도 내팽개쳤다.
그렇다면 혁명적 좌파는 진보진영 내 가장 온건 개혁주의 경향인 NGO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일부 좌파처럼 문재인 정부의 이중대라고 낙인 찍고 비난만 할 것인가? 대중운동 속에 혁명적 대안을 구축하려는 좌파는 NGO를 비난만 해서는 안 된다. 개혁주의의 한 버전인 NGO가 왜 부상하고, 어떤 역할을 하며, 사회 변화를 바라는 대중이 왜 그들을 지지하는지 잘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들에게 공감하는 개혁 염원 대중과 관계를 맺을 수 있고, 그 대중을 좌파적이고 혁명적인 입장으로 설득할 수 있다.
우선 사회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은 대체로 홍준표 등 우파가 득세하는 것에 반대하며 문재인 정부가 개혁을 제공해 주기를 기대한다. 사회적 이데올로기 지형을 보면, 그중 다수는 NGO가 제시하는 개혁 비전에 적잖이 공감할 것이다. 현 국면에서 NGO가 부상하는 것은 변화를 바라는 대중 정서의 일면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개혁주의의 성격을 잘 이해해야 한다. 개혁주의는 단지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고안해 낸 허위의식이 아니다. 저항에 처음 나서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성향이다. 사람들은 대개 처음 저항에 나설 때 체제 전체보다는 체제의 특정 양상에 반대해 싸운다. NGO는 이 점에 착목해 활동한다.
노동자 투쟁도 마찬가지다. 흔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의 협상이나 진보·좌파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긴다. 개혁주의는 대중의 이런 자기 제한적 성격도 반영하는 정치다. 그러므로 대중의 자신감이 충만해 사회의 근본적 변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시기가 아닌 동안에는 개혁주의가 계속 부활할 것이다. 역사를 보면 심지어는 혁명기에도 그렇다. 특히 퇴진 촛불 참가자 상당수의 정치는 모종의 개혁주의에 가까웠고 이 운동이 정권 교체라는 NGO적 전략에 공감했다.
따라서 좌파는 개혁주의의 이런 특징을 잘 파악해 대응할 수 있어야 이들을 지지하는 대중이 더 급진적인 대안에도 마음을 열도록 할 수 있다.
거버넌스
NGO는 ‘공정한’ 게임 룰이 적용되는 자본주의를 바란다. 체제와의 전면 충돌이라는 생각을 거부하고, 국가가 개혁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여긴다.
한국의 NGO는 1987년 6~8월 대중투쟁의 결과, 권위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로 전환이 시작된 1990년대 초에 부상했다. “1989년 경실련의 출범 이후 다른 시민단체들의 창립도 뒤이었는데 특히 리우 환경회의를 계기로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등 환경단체들이 만들어졌고 여성단체연합, 한국시민단체협의회의 결성, 그리고 1994년 참여연대의 창립에 이르기까지 90년대를 거치면서 많은 시민단체”들이 만들어졌다. 시민단체의 56.5퍼센트가 1990년대에 창립됐다.
또 다른 요인은 소련과 동유럽 붕괴 이후 한국의 운동가들이 더는 체제 변혁 지향적 운동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보며 노동계급 운동으로부터 후퇴한 것이었다. 한홍구 교수는 1980년대까지 민주화 추동 세력의 상당 부분이 사회주의에 매력을 느꼈지만 동구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자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에서 시민운동으로 이동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때 NGO 운동에 뛰어든 대표적 인물이 김민영, 이태호, 박원석 등이다. 김민영은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거쳐 민주당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고, 낙선한 후 서울시가 운영하는 120다산콜재단 이사장으로 있다. 박원석은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거쳐 정의당 소속으로 19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태호는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거쳐 지금은 시민사회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민영은 당시 “별다른 실천을 못하는 커다란 운동이 아니라 작은 거라도 바꿀 수 있는 실용적인 운동을 하고 싶었다”고 술회했다.
NGO는 “감시받지 않는 모든 권력은 부패”하고 “모든 종류의 권력을 감시하고 정의를 세우는 것”을 자신들의 임무로 삼았다(참여연대 창립취지). 국가, 정당, 의회 영역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감시·견제·견인하는 일을 주요 과제로 삼고 이를 위한 개혁입법에 주력해 왔다.
2 사회서비스 NGO들도 대체로 (지방)정부와 밀접한 연계를 맺고 활동한다.
물론 참여연대와 같은 ‘대변형’ 활동, 즉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권리 옹호 운동이나 사회적 캠페인을 주로 하는 NGO도 있지만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NGO도 꽤 늘어나고 있다. 최근 사회서비스 분야 NGO비율은 32.8퍼센트다. 서울시에만 해도 25개 자치구에 평균 115개의 NGO가 있다. 이 단체들 가운데 77퍼센트는 서울시와 연계돼 있고 나머지는 각 구청과 연계돼 있다. 특히 박원순이 서울시장에 당선한 이후 “권익주창형 시민운동에서 점차 사회서비스로 옮겨지고 있다.”이런 활동이 강화될수록 NGO들은 주류 정당, 의회, 정부와의 ‘상시적 거버넌스(협치)’를 중시하게 됐다. NGO들은 비정부기구를 표방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국가기관, 그중에서도 민주당 같은 부르주아 자유주의 정당이 통제하는 기관들과 오랫동안 밀접한 정치적 관계를 유지해 왔다.
주류 NGO 지도자들은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 하에서 청와대와 총리실, 각 부서의 위원회 등에 참가하거나 그 기구들과 협력하며 자신들의 개혁 프로그램(과 개혁입법)을 실현하려 했다. 이런 NGO의 프로젝트에 따라 적잖은 주요 NGO 리더들이 정부와 부르주아 개혁 정당으로 들어갔다. 9년 만에 정권이 교체돼 문재인 정부가 등장하자 이 흐름이 다시 강화되고 있다. 게다가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만들어진 후 인권 활동가들도 국가기구·지방정부와의 협치를 강화했다.
이렇게 되면 NGO들은 개혁적 정부와 운명을 함께하게 된다. 이홍균 전 참여사회연구소 연구실장은 “정권 교체나 지방자치단체장의 성향에 따라 시민단체의 운명이 바뀌는 현실”을 우려했다. 실제 지난 9년 동안 우파가 연속 집권하고, 국회도 우파 정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었으니 거버넌스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시민운동의 대부격인 박원순이 서울시장이 된 뒤의 경험을 고려하면 NGO들에게 정권 교체는 절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2016년 12월 9일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조기 대선으로 국면을 전환시키는 것이 NGO들에게 무척 중요했다. 그리고 NGO들은 민주당 집권을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당시 촛불 집회에서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 석방을 주요 요구로 삼지 말 것을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상균 석방으로 표현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강화하면 민주당 대선 후보가 그 눈치를 봐야 하고 사회 주류 측에 대한 득표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다. 또, 박근혜 탄핵소추안 가결에 고무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내걸고 투쟁을 본격화하면 조기 대선 국면에서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둔 듯하다.
NGO와 민주당과의 긴밀한 관계는 무엇보다 민주당에 대한 정치적 비판을 삼가며 운동의 전진을 가로막는 구실을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재개되고 있는 ‘사회적 대화기구’도 거버넌스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고, 이는 노동운동의 발목을 잡는 구실을 할 수 있다. 인구의 다수인 노동자들이 잘 해봐야 3분의 1 또는 4분의 1의 발언권을 얻는 것이니, ‘사회적 대화기구’는 동등한 동반자가 아니라 불평등한 권력 관계를 강요하는 테이블일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이 요구를 쟁취하려면 대화 테이블 바깥에서 압도 다수의 힘을 발휘해야 한다. 특히 파업 등 노동계급 고유의 방식을 사용할 때 더 효과적이다.
따라서 혁명적 좌파는 협치 전략의 모순을 잘 파고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태도를 취하며 대중의 변화 염원이 실질적 투쟁으로 표출될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모순된 처지를 잘 파악하고 미국의 한반도 평화 위협에 항의하는 목소리와 노동운동의 저항 등에 깊숙이 개입해, 정부와 동반자 관계를 중시하는 NGO들과 날카로운 논쟁을 벌이며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지난해 트럼프 방한 반대 운동이 가능성을 보여 줬다. NGO 지도자들은 문재인 정부를 압박하는 트럼프 방한 반대 운동을 분열시키려 했지만 좌파가 이들과 논쟁을 하며 흔들림 없이 운동을 건설해 꽤나 성공을 거뒀다.
계급 연합 전략
NGO는 사회 변화의 주력 부대로 대체로 신중간계급에 주목한다. NGO에게 신중간계급은 전문직에 종사하는 광범한 부류를 지칭한다. 변호사, 언론인, 중견 기업인, 학자에서부터 교사, 간호사 등 노동계급 일부까지도 포함한다. 무엇보다 NGO의 경제 정의는 분배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을 뜻하므로 신중간계급 정서와 딱 맞아떨어진다.
그리고 NGO는 자본주의 체제와 계급 문제에서 후퇴해 환경, 평화, 여성, 동성애, 인종, 반핵 등으로 잘게 쪼개어 대응한다. 게다가 사회 갈등과 저항의 초점을 경제적 생산 영역에서 사회문화적 재생산 영역으로 이동시킨다. 이 과정에서 NGO는 당사자 운동에 주목하고, 그에 따라 정체성 정치를 강화시킨다. 한편, NGO의 정치 전략은 좌우 모두와의 계급 연합을 추구한다. 그래서 좌우 대립을 강조하는 좌파를 비판한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진영화에 맞서야 할 것 같다. 예를 들어 복지를 위해서 세금을 더 걷으려면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 대화 상대가 보수일 수도 있다. 따라서 진영 간의 모욕과 비난은 자제하라.”
이 논리는 퇴진 촛불 때 우파의 준동에 맞서지 말고 사실상 회피하는 태도를 낳았다. NGO는 상식적인 보수도 촛불집회에 나온다며, ‘좌우 대립’이 아니라 ‘5퍼센트 친박 세력 대 95퍼센트 국민’의 구도가 돼야 한다고 했다. 퇴진운동이 숨 고르기를 하던 2017년 2~3월 우파가 수만 명씩 동원해 거리 시위를 벌이는 것에 정면으로 대응하기를 무척 부담스러워했다. 최장집 교수는 한 줌밖에 안 되는 친박은 “이제 사멸할 세력”이라고 했고, NGO들은 우익이 세를 결집하고 반격을 도모하는 것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했다. 심지어는 바른정당도 합리적 보수라며 협치가 가능하다고 했다. 이는 소위 “입법을 위해 좌우파 모두와 협력할 수 있고 국민적 압력에도 유리하다는 NGO식 실용주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좌우 대립이 현실이었고, 그래서 필자가 속한 노동자연대는 우파의 준동에 맞서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NGO 리더들과 논쟁을 벌였다. 인권NGO 지도자였던 박진은 ‘박근혜 세력의 준동, 반격, 맞대응’이라고 결정된 문구를 임의로 삭제하려 했다. 이런 행동은 퇴진행동이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게 했다. 우파들이 총결집한 3·1절 ‘태극기’ 집회에 퇴진행동은 뒤늦게야 광화문광장 집회 조직에 나섰다. 당일 퇴진행동의 집회가 없었다면 우파는 군가를 부르며 광화문광장을 점령했을 것이고, 이를 통해 기세를 더 높이고 더 과감한 행동에 나섰을 것이다.
시민사회론
한편 사회서비스 제공형 NGO가 늘어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까지도 받아들이는 경향이 생겼다. 그런 NGO는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악화되는 일부 사회서비스 제공을 자신들이 감당하는 구실을 자임한다.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서려 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NGO 일반의 시민사회론과 깊은 연관이 있다.
5 하지만 구체제의 지배 세력과 투쟁하는 전선에서 하나의 대오를 이뤘던 ‘시민’은 이해관계에 따라 자본가 대 노동자로 대립하기 시작했다.
시민사회론은 20세기 내내 별로 주목받는 사상이 아니었다. 적어도 1970년대까지는 시민이 아닌 계급이 더 유력한 개념이었다. “원래 시민사회는 대략 18세기 후반부터 중세 봉건사회를 대체해 등장한 새로운 사회질서를 통칭하는 용어다. 프랑스 혁명은 인류 역사에서 시민으로서 인정받지 못한 사회집단을 시민의 핵심으로 만든 것이다.”하지만 시민이 계급을 대체하는 지위로까지 격상된 배경에는 바로 동구권의 붕괴와 냉전 해체가 있다. 시민사회론은 시민사회와 국가를 구별했고 당연하게도 국가보다 시민사회가 우선적인 가치를 지녀야 한다고 여겼다. 이를 위해 국가의 역할이 작아지고 시민사회의 개입력이 높아져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시민사회론은 복지국가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그래서 “제2차세계대전 이후 한동안 사회주의 국가의 번성과 복지국가 체제의 등장으로 시민사회론은 커다란 어려움을 겪었다.” 작은 국가론을 주장하는 시민사회론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뒷문을 열어 주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다른 한편, 일부 NGO는 개인의 역할을 강조하는데, 이는 소위 풀뿌리 운동으로 표현된 “삶의 정치”로 나타난다. 고립된 개인에 초점을 맞춘 개별적 삶의 혁신을 대안적 방안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는 동구권 붕괴 후 계급 정치와의 단절과 그에 대한 적대감 속에 제기된 것이기도 하다. NGO 내에서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구호에 바탕을 둔 활동, 즉 개인의 삶을 바꾸기 위한 활동이 부각돼 왔다. 1980년대 서구의 급진 지식인들이 노동운동의 패배와 퇴조 속에서 좌절하며 이 방향에 희망을 걸었듯이, 한국에서도 이 전망은 1990년대 이후 급부상했다. 인권NGO의 지도자 박진이 퇴진 촛불 이후에는 개인적 삶의 대안을 추구하자고 주장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반상회를 찾아가고 노조를 만들고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이야기를 나누자. 시민단체 한 곳 이상을 후원하고 독서 모임과 영화 모임을 만들자. … 이제 주어는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로 시작할 때가 되었다.”
이 주장은 문재인 정부에 맞서는 집단적 투쟁을 회피하는 논리로도 이용될 수 있다. 운동이 국가에 요구하기를 두려워하거나 회피하면 안 된다. 국가는 우리의 요구를 성취하기 위한 자원들을 동원하는 데서 여전히 가장 효과적인 메커니즘이다. 단,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대중운동을 통해 국가의 양보를 이끌어 내야 한다.
공동전선
NGO의 우경화 흐름, 문재인 정부와의 동반자 관계 설정 등은 진보·좌파 운동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NGO들은 노무현 정부가 이라크 파병, 비정규직법과 한미FTA 추진 등으로 지지자들에게 실망과 환멸을 준 집권 후반기에 동반 위기를 겪었던 경험을 비판적으로 되돌아봐야 한다.
한편, 지금의 NGO 등 개혁주의의 부상은 대중 의식의 급진화와 변화 염원을 반영하므로 두려워할 (또는 운동의 부정적 요소로 볼) 필요는 없다. 물론 무비판적으로 환영만 해서는 안 되지만 말이다. 그래서 혁명적 좌파는 개혁주의와 정치적으로 예리하게 논쟁을 하면서도 공동전선의 원리를 적용해 공동행동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개혁주의는 근본적 사회 변혁에 못 미치는 모든 대중투쟁의 자기 제한적 성격에서 비롯하는 것이고, 운동에 첫발을 내디디며 급진화하는 청년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상이자 실천이다. 개혁 염원 대중을 고스란히 NGO에 내맡겨서는 안 된다. 특히 문재인이 모순된 처지에서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배신을 하고 이를 NGO 지도자들이 계속 변호하는 것이 지속되면 그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대중 사이에 간극이 벌어질 수 있다.
혁명적 좌파는 이 점을 염두에 두고 NGO 활동가·지지자들과 개방적인 자세로 협력해 단결된 운동을 건설하려 노력해야 한다. 이런 협력 속에서 누구의 전술이 효과적인지 대중에게 입증받을 기회를 얻어야 한다. 특히 거버넌스가 정부와 기업에 맞서 싸우는 데 왜 장애물이 되는지, 대중 자신의 행동이 왜 중요한지, 근본적 변혁은 왜 비현실적 몽상이 아닌지 등을 토론하고 경험을 나누면서, 대중이 더 나은 대안을 찾아가는 데 도움이 돼야 한다. 물론 개혁주의와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는 계급 세력균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들 전체와 관계를 맺을 수도 있고 일부와 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
혁명적 좌파가 공동전선을 효과적으로 구사한다면 운동의 전진과 함께 급진적 대안을 구축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MARX21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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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김하영 2009를 많이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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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김하영 2009, 《한국NGO의 사상과 실천》, 책갈피.
박진 2017, ‘촛불시민혁명, 민주주의의 승리.’
시민운동정보센터 2012, 《한국민간단체총람 2012년》.
신진욱 2008, 《시민》, 책세상.
이태호 2014, 참여연대 이태호 사무처장 인터뷰.
조철민 2015, ‘NGOs의 활동공간으로서 서울 지역 시민사회의 지형,’ 《공간과 사회》 51호.
홍일표 2004, ‘한국 사회와 시민운동, 그리고 시민단체’. 미출판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