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청년 실업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과 대안 논쟁
1 문재인은 ‘일자리 대통령’을 자처했지만, 청년 노동시장의 여건이 결코 순탄치 않다는 점에서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지난해 청년 실업률은 2 9.9퍼센트로 역대 최고치를 갱신했고, 청년층 체감실업률(통계청 ‘고용보조지표3’)은 무려 22.7퍼센트에 달하는데 이 역시 작년보다 소폭 상승한 수치다. 3 그야말로 청년고용시장은 얼어붙어 있다.
지난 1월 25일 대통령 문재인은 청년 일자리 점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청년 일자리에 대해 향후 3~4년간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각 부처가 그 의지를 공유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내각을 질책했다.5 게다가 청년층에는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는 집단이 많기 때문에 이들 중 실질적인 장기 실업자들을 포괄하면 현실은 더욱 엄혹할 것이다.
그림1에서 볼 수 있듯, 2011년도부터 청년실업률은 꾸준히 빠른 속도로 상승해왔다. 실업자 규모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당연한 얘기지만, 구직 시간도 늘어났다. 구직 기간이 6개월 이상인 장기실업자 10명 중 4명이 청년이다. 한국의 장기실업률이 낮은 편이라고들 하지만, 청년 세대에게 다가오는 현실은 이와 사뭇 다를 것이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에서 총 실업자 대비 장기실업자 비중의 증가폭이 세 번째로 높은 국가였다(2016년 기준). 장기 실업 상태에 놓인 청년들은 실업 급여도 의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구직을 해야 하므로 이들에 대한 안전망 마련은 중대하고 시급한 문제다. 그런데 비록 장기 실업자들 중에서 다수는 청년이지만, 청년 실업자들 중 압도 다수가 장기 실업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니다. 청년 실업 문제의 이면에는, 높은 이직률, 즉 이대론 살 수 없기 때문에 구직 경쟁에 다시금 몸을 맡겨야 하는 경우도 상당히 존재한다. 2017년 기준, 1년 미만에 이직을 한 청년 노동자는 전체 36.2퍼센트에 달한다. 학력별로 나눠보면, 고졸 이하의 경우 무려 45.9퍼센트에 달했고, 대졸 이상에서는 그보다 높지는 않지만 29퍼센트에 달한다. 남녀를 불문하고 첫 직장을 이직하는 가장 분명한 요인은 임금 수준이었다. 월평균 실질임금에서 10만원이 줄어들 때 남성의 경우 이직 확률이 1.3퍼센트, 여성의 경우 0.9퍼센트 증가한다. 특히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정규직에 비해 이직률이 뚜렷이 높았다. 청년들이 “그토록 원하던 첫 직장을 스스로 빠르게 나가”서 다시 실업자가 되는 것을 감수해가면서까지 구직 시장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데에는, 기껏 구한 직장에서의 조건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열악하기 때문이다.요컨대 청년들 중 결코 작지 않은 수는 오래도록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구직시장을 떠돌고 있고, ‘장기’ 실업자라는 딱지가 붙기 전에 기껏 첫 직장을 구한 이들도 워낙 저임금/비정규직 일자리가 많다 보니 조금이라도 더 번듯하게 생계를 영위하기 위해선 다시 구직시장에 들어가고 있는 게 오늘날 청년들의 현실이다.
실업 문제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이해 7
그런데 청년 실업률이 왜 끊임없이 치솟는가? 기업들이 채용을 안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기업들은 왜 채용을 안 하는가? 이에 대한 답 역시 간단하다. “기업의 인력 조정은 채용에서 시작된다.”9 산업예비군이 늘어난다는 것은 생산수단 대비 유휴 노동력의 공급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따라서 실업은 일반적 임금 수준을 낮출 뿐 아니라 이미 취업한 노동자들에 대한 자본가들의 착취를 강화하게 만든다.
마르크스가 지적했듯, 자본가들은 강박적인 축적 경쟁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이들은 더 많은 이윤을 생산수단에 투자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이고, 그 결과 시장을 독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한다. 더 진보된 기술력을 활용한 자본가는 이전과 같은 수의 노동자를 고용해도 더 많은 상품을 만들어내게 되고, 심지어 더 적은 노동자를 고용해서 비용을 절감해도 지금과 같은 수준의 산출을 낼 수가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뒤쳐진 자본가들은 모두 망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자본가들은 강박적으로 생산성 경쟁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자본주의적 경쟁은 ‘자본의 구성’(노동력 대비 생산수단의 비율)은 상승하는 경향을 추동한다. 기업들이 경쟁적 축적을 위해 ‘인력 조정’을 필요로 하는 자본주의의 내재적 속성 탓이다. 마르크스는 이 과정에서 배출된 사람들이 ‘산업 예비군’의 주요한 구성인자를 이룬다고 말한다.물론 이와 같은 축적 과정에서 자본가들은 많은 투자를 해가면서 생산규모를 늘린다. 생산의 규모가 늘어나면 그에 따라 노동력 수요도 증가하므로, 자본 구성이 상승한다고 실업률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진보된 생산수단이 도입된 결과 자본의 증가가 인력조정 속도보다 빠르게 진행된다면 실업은 오히려 감소한다. 자본축적과 인력조정 중 어느 변수가 앞서는가가 그 결과(실업)를 결정한다.
경기가 회복되고 있지 않은가?
실제로는 어땠을까? 한국 제조업에서는 생산성이 증가하면서 제조업 산출은 여전히 많은 데 비해서 고용은 크게 늘지 않았다. 그 대신 서비스업에서 자본이 성장하면서 일자리를 창출했다. “제조업의 노동생산성이 증가하면, 제조업에서 노동인구가 빠져나가 서비스업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리고 제조업 생산물 가격이 하락해 노동자들의 구매력이 증가함에 따라 소매업이나 음식·오락·여가 관련 서비스 부문이 확장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제조업이 발전할수록 기반 서비스는 더 많이 필요해진다. 가령 자본간 경쟁이 심해지면 물류(운수·보관업)는 더욱 중요해진다. 상품을 생산지에서 소비지로 더 빠르게 운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찍이 마르크스는 이를 “시간에 의한 공간의 폐지”라고 불렀다.” 2000년대 들어서는 서비스업이나 보건·사회복지 등이 전체 서비스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는 추세를 볼 수 있다.하지만 지난 수년 간 한국 자본주의는 이윤율 회복이 부진했고 상당히 위태로운 국면도 여러 차례 넘겨왔다. 이 과정에서 서비스업에서의 인력 흡수 또한 더뎌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경기가 회복되고 있지 않은가? 최근의 추세를 보면, 여전히 이조차도 청년에게 좁은 문이다.
그림 2를 보면, 대다수 부문에서 취업자수가 늘어나고 있지 않다. 아마 간신히 퇴직으로 사라지는 일자리를 채용할 뿐인 모양인데 그 정도로는 새로이 경제활동인구로 유입되고 있는 노동계급 청년층을 계속 흡수할 수가 없다. 최근 일자리 증가를 추동하고 있는 것은 건설업을 제외하면 서비스업, 그 중에서도 오직 사업·개인·공공서비스, 기타 항목뿐이다.
하지만 여기도 ‘공공행정, 국방 및 사회보장행정’과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을 제외하면 취업자수가 늘지 않았다. “사회복지 서비스 분야는 간병인 등 요양·보호, 보육교사 등의 비중이 높은 데 대개 중장년 여성 취업자를 늘려온 부문이다. 금재호 과학기술교육대학교 교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들 사회서비스 분야를 통해 새로 만들어진 일자리가 100만개 가량인데 80% 정도는 중장년 여성이 고용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연령별 취업자수 증감을 살피면 50~59세 장년층과 60세 이상 노년층 취업자만 전년 동기 대비 10만명 이상 늘고 있다. 30대와 40대는 취업자수가 줄어들고 있다. 결국 청년층 입장에서 일자리가 늘어난 산업은 공공행정 정도에 불과하다.
13 제조업 중에서도 IT부문과 석유·화학 계통은 수출의 증가를 겪었지만, 제조업에서 여전히 불안정한 요소나 구조조정에 직면해 있는 부문은 적잖다. 또한 2017년 한국의 설비 투자 증액 14조 1천억원 중 10조 원이 반도체 산업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투자가 늘어야 고용이 느는 것인데 그것도 자본집약적인 산업 일부가 투자 증가를 이끌고 있으니 일자리가 늘어날 리 없다.
이는 최근의 경기 회복이 여전히 불균등·불안정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한 단면인 듯하다.14 또한 1991~1996년생이 대학을 졸업하기 이전부터 청년실업률은 수년째 꾸준한 상승세였다는 점 역시 지적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혹자는 경기가 회복되는데도 일자리가 늘고 있지 않으니 노동력 수요 측면이 아니라 노동력 공급 측면이 문제라고 말한다. 예컨대 청년 대졸자 ‘인구’가 많은 것이 문제라는 식이다.(3월 15일에 발표된 문재인 정부의 청년 일자리 대책안에도 이러한 분석이 깔려 있었다.) 2차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1991~96년생)의 청년기(25~29세) 진입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림 2에서 볼 수 있듯, 인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일자리가 많고 적음을 따지기 전에 일자리 수 자체가 절대적으로 적다. 또한 인구구조의 변화보다 노동수요가 더 큰 폭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1991~1996년생의 노동시장 진입은 아직 초기라서 그 효과가 아직은 미미하다.마찬가지로 청년 대졸자가 많다는 사람 중에는, 청년 중에서 ‘대졸자’가 많다는 점을 실업의 원인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소위 ‘4차산업혁명’론에 기대어 최근의 기술진보 추세 탓에 4년 대졸자 수준의 숙련을 요구하는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특히 4년 대졸 실업자가 증가하고 대졸 고용률이 꾸준히 하락했다는 점, 고졸자 실업률이 4년 대졸자들에 비해서 크게 낮다는 점 등을 지적한다.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는 언론 기사들이 그 증거로 다음의 그래프(그림 3)를 제시했다.
15 을 선택한다. 대졸 이상의 학력자는 하향취업을 하게 될 확률이 고졸자에 비해 36배는 높다. 16
얼핏 보기에는 실제로 대졸자가 기업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많아서 실업이 발생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몇 가지 함정이 있다. 첫째로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절대적 일자리 수 자체가 적은 것이 보다 근본적 문제란 점이다.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다면 설사 대졸 이상의 청년들의 학위가 모두 없어진다 해도 청년실업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가 없다. 둘째로 전문대졸의 고용상태가 근 2~3년 동안 매우 열악해진 것을 볼 수 있다. 고용률이 급격히 떨어지고 실업률은 급속히 상승했다. 셋째로 4년 대졸자들이 꼭 자신의 ‘숙련수준’에 맞는 일자리만을 찾고 있지도 않다는 점을 봐야 한다. 청년층 구직활동의 결과를 분석해봤을 때, 무려 3명 중 1 명 가량이 ‘하향취업’
18 요컨대 청년 3분의 1은 이미 자신의 눈높이를 낮추고 있으며, 그 중 3분의 2는 평생 그 멍에를 평생 짊어지고 산다. 마지막으로 이상의 비교에는 약간의 속임수가 있다는 점 역시 지적해야겠다. 그림 3은 25~29세를 기준으로 작성됐다. 하지만 고졸 청년 실업자들은 학업을 마치고 노동시장에 진출하는 시점이 조금 더 빠르므로 대졸·초대졸의 25~29세와 비교하려면 이들의 경우 15~24세 실업률로 비교해야 한다. 그런데 2017년 2월 기준으로 고졸 이하 15~24세 청년 실업률은 9.0퍼센트로, 대졸·초대졸에 비해선 낮을지 몰라도 여전히 전 연령 실업률의 두 배를 넘는다. 19
한 분석에 따르면, 직장이 열악하면 일단 대졸 하향취업자 중 64.3퍼센트는 (두세 차례의 이직을 통해 처우 개선을 꾀한다고 해도) 첫 하항취업 상태에 고착된다고 한다.20 요컨대 학력이나 기술이 기업이 요구하는 바와 달라서 청년 실업이 발생한다는 식의 미스매치론은 지금의 청년실업 문제를 설명하기엔 설득력이 부족하다.
‘직장과 전공의 불일치’가 문제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한국일보〉에 실린 한 기사에 따르면, “직장과 전공의 불일치 역시 대졸보다 고졸에서 그 비율이 훨씬 높았다. 고졸 청년은 일반고등학교에서 82.6%, 특성화고등학교조차 62.4%가 일자리와 전공의 불일치를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대졸 청년은 전공과 직장의 불일치 비율이 가장 높은 인문사회계열도 50.3%로 고졸 청년보다 훨씬 낮았다.”사실 정부에서 ‘높은 진학률이 문제다’라고 말하는 것은 청년들이 눈이 너무 높아서 열악한 일자리에는 잘 취업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학에 가서 더 나은 조건의 일자리에 대한 기대를 키우지 말고 고졸·초대졸로서 일손이 모자라는 ‘저질 일자리’에나 취업해서 만족하라는 뜻이다. 실제로 진학률과 별개로 ‘중소기업은 사람 없어 속탄다’는 말이 종종 나오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의 수급 불일치(‘미스매치’)는 존재한다. 눈물을 삼키고 하향취업을 선택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저질 일자리’에 취업하고 싶어하는 청년 대다수는 당연히 적기에 나름 괜찮은 조건을 제시하는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구직 경쟁에 오랜 시간을 쏟아 붓는다.
21 따라서 청년들보고 ‘진학하지 말고 중소기업에 취업하라’고 종용하는 것은 완전히 부당한 일이다. 요컨대 노동계급 청년들의 입장에서 지금 열악한 곳에서 일하게 되느니 시간을 더 들여서 취직·이직을 해서라도 더 나은 조건에서 일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한국의 노동시장에서는 임금수준의 격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 대다수 노동계급 청년의 입장에서 대학진학과 중소기업과 기피가 ‘정상적인 전략’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따라서 청년들의 눈높이를 탓하는 것은 부당할뿐더러, 효과적이지도 않을 것이다. ‘저질 일자리’의 질을 끌어올리고, 양질의 일자리를 정부가 앞장서서 더욱 많이 창출해야 일자리의 질 차이로 인한 ‘미스 매치’가 생기는 일이 없을 것이다.
퇴행적인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 정책은 어떠한가? 문재인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일자리 대통령이 되겠다, ‘노동존중 사회’를 만들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그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내놓았던 노동공약들은 여러모로 부실했다. 현실화된 ‘블라인드 채용’은 긍정적으로 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은 오직 52시간 상한제만을 제시했다. 이러한 조치는 보수정권에서의 후퇴를 원상 복구시키는 것 이상이 아니었다. 또한 공공부문 일자리도 3퍼센트포인트를 올리겠다고 했는데, OECD 평균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공공부문 고용비중을 생각했을 때 이 역시 부족하다.
22 예컨대 문재인 정부 하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이 추진되는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62만 명 중 고작 17만 5000명만이 전환 대상으로 선정됐는데, 전환 대상에서 배제된 사람들 중에서 일부 노동자들이 해고되는 일마저도 벌어지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인건비 총액을 증액해주지 않은 채 기관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정규직 전환 비용을 최소화시키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공공부문 일자리에 더 많은 돈을 쏟아 부어서 고용을 창출해도 모자랄 판에 말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 하에서 현재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부족하다 못해 아주 퇴행적이다.최근 근로기준법 개악 역시 청년 실업을 악화시켰다. 그가 약속한 주 52시간 상한제 적용(즉 박근혜 정부 시절의 노동부 행정해석 폐기) 역시 문재인 정부 임기 마지막 해에야 이뤄질 수 있도록 유예가 됐다. 휴일연장근로수당의 중복할증 폐지 역시 사용자들이 저렴하게 장시간 노동을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안이다. 또한 양대 노총에서는 노동시간 특례업종 폐지를 요구해왔는데 그 업종의 숫자가 줄어들었을 뿐 여전히 그 악법은 남겨두고 있다. 노동시간을 줄여서 일자리 창출을 하겠다는 문재인의 공약은 어느 세월에 이뤄질 것인가?
문재인 정부가 부족한 공약조차 후퇴하고 더 나아가 노동계급을 공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상황은 청년 실업자들에게도 크나큰 절망감을 안겨줄 것이다. 민주당 정권 하에서도 이런 배신이 벌어지는 까닭은 그들도 결국에는 우파들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자본가 계급에 기반을 둔 정치세력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대중의 기대를 저버리고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고 있는 만큼, 사회적 대화에 의존해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망한 일이다. 사회적 대화가 아니라 사회적 투쟁이 공공부문에서 노동자들의 요구를 지켜내는 데 필요한 상황이며 이는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노동계급 일반에 대한 공격이 청년 일자리 문제에 주는 악영향은 제쳐두더라도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라고 천명한 정책들 역시 청년 구직자들에게는 별 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내용들로 가득하다. 오히려 노동계급을 분열·공격하는 내용들이다. 지난 3월 15일 정부 차원의 청년 일자리 대책이 발표됐는데, ”특단의 한시 대책 + 구조적 과제 대응 병행 필요”성이 강조됐지만 ‘특단’이라고 할 만한 것도, 구조적 과제에 대한 대응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다. ‘특단’이라기에는 청년 일자리 관련 재원 마련 ‘미니 추경’이라고 할 정도로 소박했다. 그 내용 역시 형편 없었다. ‘정규직 과보호 해소’·‘학력별 미스매치 해소’와 같이 청년실업 문제 해결이라는 빌미 하에 노동계급을 공격하고 분열시킬 방안들을 슬쩍 끼워 넣고 있다.
23 에 (따라서 돈을 쏟아 붓더라도 일자리 창출이 활발히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분야에) 정부 재원을 투하하는 것이 무슨 ‘청년 일자리 대책’인지 모를 노릇이다. 연관 산업 분야의 기업주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정책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청년을 추가적으로 고용한 기업들에게 보조금 등 인센티브를 받아가게 해주는 정책의 경우, 기업의 청년 고용 확충을 강제하지는 않으면서 인건비 절감 수단으로나 활용될 수 있다. 또한 중소·중견기업에 취업한 노동자에게 지원금을 제공하겠다는 정책은 ‘저질 일자리’의 개선이라는 근본적 과제의 해결 없이 우선 ‘저질 일자리’에 청년들의 취업을 유도하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비판 받아 마땅하다.
게다가 일부 정책들은 이것이 청년 일자리 대책인지 기업주 지원책 내지는 산업정책인지 헷갈릴 정도다. 대표적으로, 청년실업 대책이랍시고 일자리 창출을 위해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를 육성하는 데 정부가 앞장서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실제로 산업으로서 크게 성장할 잠재력이 있는지 상당히 의심스러운 분야들이 외에도 창년 창업 활성화·청년 해외 취업 장려와 같이 한국 자본주의의 문제에서 비롯된 청년 실업 문제를 청년들 스스로의 모험심에 전가하는 방안들도 청년 일자리 ‘대책’이라고 내놓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한숨 나오는 수준이다. 이런 방안들이 실행된다 한들 얼마나 잉여 인구를 흡수할 수 있을지조차도 의문이다.
청년 실업 대안 논쟁과 노동시장 이중구조론
24 . 하지만 그럼에도 우려되는 점은 청년유니온은 박근혜 정부 시절부터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면 노사정 대화를 해야 하며, 정규직 노동자들이 더 많은 금액을 분담해야 하는 고용보험료 인상 등의 조처를 견지해왔다. 25 문재인 정부는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의 파트너로 보지만, 정규직 노동자들은 청년을 위해 양보해야 할 당사자로 여기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청년유니온 김민수 위원장이 청와대의 ‘노동계 초청 대화’에 참석하여 청년층을 대변하여 사회적 대화에 힘을 실어주는 듯한 움직임을 보인 것은 아쉬운 일이다. 물론 청년유니온 측이 문재인 정부의 노동시장 정책에 무비판적인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권이 고용의 질을 끌어올릴 적극적 방안을 내놓고 있지 않다는 점을 비롯해서 이전 정부들의 정책에서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 정당한 비판을 제시한다26 분단선은 단결한 노동계급과 정부·기업주 사이에 있어야 하는데, 노동계급 내부에 분단선이 놓여 있다고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청년유니온에서 보는 것처럼 ‘주변부’에 놓인 청년과 ‘핵심부’에 놓인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는 별개의 것이 아니다. 이러한 분석의 기초가 되는 것은 바로 청년유니온을 비롯한 한국의 진보진영에서는 광범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론 문제다. 고용안정·고임금·숙련형성이 보장된 이른바 ‘내부노동시장’이 일부 노동자들에 의해 완전히 점유되어 있어, 청년들이 ‘외부노동시장’에 내몰려있기 때문에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 말고는 취업할만한 일자리가 남아나질 않는다는 것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론의 가장 큰 약점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계급 분단선을 흐리고 정부에 도전해야 할 때에도 투쟁을 자제하고 대화와 양보를 추구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는 청년 실업자들을 포함한 노동계급 청년들과 상충하는 이해관계에 놓인 집단이 누구인지에 대한 분석이 잘못됐기 때문에 도출되는 정치적 결론이다.청년유니온은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에 대해서도 다소 방향이 어긋난 논평을 달기도 했다. 이들은 “민간에서 좋은 일자리가 조성되지 않는 조건에서 공무원 부문에 신규로 진입하기 위한 청년층의 경쟁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며, “청년들은 노동시장의 극심한 양극화와 불공정한 채용 기회에 대한 박탈감이 상당”하므로, “공무원을 증원하는 방식은 청년층의 공공부문 진입 경쟁을 강화시키고 열악한 민간 부문과의 격차를 심화시킬 우려가 제기”된다고 말한다. 물론 청년 유니온은 그와 별개로 공공서비스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사회 서비스의 확대와 청년문제의 해결은 엄연히 다른 주제”라고 딱 잘라서 선언한다. 또한 이들은 한국의 장기실업자 비중이 OECD 국가 중 낮은 축에 든다면서 “신속하게 취업을 유도하는 방향”의 고용정책이 아니라 “막상 취직하여 진입한 직장에서도 견디지 못하는 상황”을 극복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요컨대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안착하는 것이 청년 정책에서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청년유니온이 내놓은 분석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문제의식을 내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첫째,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정책이 노동계급 청년들의 문제 해결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둘째 ‘노동시장 이중구조’야말로 청년 실업 등의 문제를 심화시키는 더 결정적인 요인이며, 이것이 일자리 창출보다도 선결적으로 극복돼야 할 과제이다.
물론 청년들이 그토록 원하던 첫 직장을 빠르게 빠져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극복하려면,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들의 조건이 훨씬 개선되는 상향 평준화가 이뤄져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자리의 질적 격차 문제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게 되면 청년 실업에 대해서 제시할 수 있는 대안이 불충분해질 수밖에 없다. 앞서 분석한 것처럼, 장기 실업문제는 여전히 가벼이 볼 수는 없는 문제이며, 일자리 창출의 부족은 최근의 청년 실업률 상승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아주 중대한 요인이다. 일자리의 양적 창출은 여전히 중요한 의제인 것이다. 더군다나 공공부문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창출된다면 이것은 노동시장 ‘진입’뿐 아니라 청년들의 ‘안착’에도 당연히 도움이 된다. 요컨대 공공부문의 확대는 청년문제의 해결과 결코 “엄연히 다른 주제”라고 볼 수 없다.
이와 같은 분석 또한 ‘노동시장 이중구조론’이 빠질 수 있는 함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론자들은 ‘격차 해소’를 최우선의 과제로 여기면서 노동계급 내에서 보다 조건이 양호한 부문(청년 유니온의 경우 공공부문)에 대해서 우호적이지 않은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이끌리기가 쉽다. 노동계급 내에서의 보다 안정적인 부문과 보다 열악한 부문 사이의 격차를 절대적인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물론 노동시장 이중구조론자들이 주장하듯 낮은 직위에 놓인 노동자가 취직을 한 후에 ‘직무사다리’를 타고 더 나은 지위로 올라가기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내부노동시장’과 ‘외부노동시장’ 사이에 만리장성은 없다. 우선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가는 것이 어려워 보이니 두 시장은 완전히 분단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용자들의 공격에 밀린다면 거꾸로 내부 노동시장에 있는 노동자들은 얼마든지 ‘외부’로 내몰릴 수 있다. 정리해고의 칼날과 임금 등 노동조건에 대한 공격은 정규직 노동자들을 피해가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들은 애당초 ‘외부’노동시장 때문에 자신들의 지위를 안정적으로 보장받는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가 이야기했듯이 산업예비군의 증가는 전체 노동계급의 조건에 하방 압력을 가한다. 한편 정규직 노동자들이 속한 이른바 ‘내부 노동시장’이 지배계급으로부터 공격 당하는 것이 청년 실업자들과 ‘외부 노동시장’에 소속된 이들의 입장에서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인 것도 아니다. 공격 이전에는 ‘직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었던 극소수의 노동자만이 문제였다면, 이후에는 아예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자리를 지배계급이 치워버리려고 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이 ‘정규직 과보호론’을 비판한 것을 참고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정규직의 임금 인상 수준 또한 오랜 세월 또한 경제 성장률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에서 이뤄져 왔으며, “근속년수와 이직률 통계를 볼 때 우리나라 노동현장은 비정규직은 말할 것도 없고 정규직도 고용불안정 수준이 높다.”
즉 노동계급의 성원들은 전혀 상관없는 두 개의 노동시장에 갈라진 채 있지 않다. 이 둘은 여전히 같은 이해관계를 공유하며 서로간에 동반상승적 상호작용을 주고받는다. 이런 점들을 미뤄보아도, ‘강요된 게으름’과 ‘강요된 혹사’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관계라고 말한 마르크스의 주장은 타당하다.
대안은 정부가 일자리 창출에 나서는 것
일자리 창출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청년실업률이 치솟는 것이라면 우리는 일자리를 늘리라고 요구해야 한다. 실업 문제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이해에서 나오는 함의 중 하나는 실업이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자연스러운 작동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정책을 내야 한다고 요구해야 한다.
30 부족한 여러 사회서비스 인력만 충원해도 공공부문 일자리를 갑절로 늘릴 수 있다.
정부 정책으로 직접 해결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다. 여러 가지 방안들이 강구될 수 있겠지만 채용을 효과적으로 늘릴 수 있는 강력한 방안은 두 가지다. 한국의 공공부문 일자리는 2015년 기준 8.9퍼센트인데, 2013년 OECD 평균인 21.28퍼센트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31 과로사 기준인 주 60시간 노동을 초과해서 일하는 노동자도 1백만 명이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초과노동 포함 주 48시간 상한제가 적용되면 1백만 개가 넘는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 다만, 노동시간을 단축하더라도 임금 총액 또한 보전될 필요가 있다. 임금 총액이 삭감되면 결국 임금 부족분을 메우려고 많은 노동자들이 초과노동이나 ‘투잡’을 선택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일자리가 늘어나기는커녕 일부 노동자들의 취직 기회가 줄어드는 역효과가 날 것이다. 32
한국의 노동자들은 연평균 2000시간이 넘는 초장시간을 노동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OECD 평균은 1706시간인데 말이다.요컨대 일자리를 늘린답시고 박근혜 정권 당시 추진되던 것처럼 저질 일자리를 마구잡이로 늘려봐야 (그 일자리가 ‘저질’이라는 점 그 자체도 문제지만)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저질 일자리가 많아지면, 그래서 더 나은 일자리들과의 격차가 심화되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첫 직장을 스스로 빠르게 빠져나가서’ 다시 구직 활동에 전념하게 되는 청년들도 상당히 늘어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도 청년 실업률을 끌어 올리는 작용을 할 수도 있다. 따라서 노동조건이 열악한 일자리들의 조건을 끌어올림으로써 노동자들 사이의 격차를 해소하는 것은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는 것뿐 아니라 청년실업률을 끌어내리는 데에서도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대안을 쟁취해내기 위해선 청년 실업자들과 조직된 노동자들이 자본에 맞서 단결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단결이 가능한 것은 실업자들도 큰 틀에서 노동계급의 일부이며 조직된 노동자들과 이해관계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초장시간 노동을 줄이고 일자리의 질을 높이게 되면 청년들은 일자리를 얻어낼 수 있지만 이는 기존에 취업한 노동자들에게도 두말 할 것 없이 이로운 조건 개선이기 때문이다. 우편 집배원의 과로사나 소방인력의 부족 등 다양한 문제에서 볼 수 있듯이 (다른 부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에게도 인력 충원은 절실한 요구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의 말마따나, 실업자들의 ‘강요된 게으름’은 취업자들의 ‘강요된 혹사’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관계에 있다. 한편 실업자의 수를 줄이는 것 외에도 청년 실업자들이 구직활동을 하고 있는 동안 안정적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복지를 확충해야 한다. 청년유니온에 따르면, 현재 실업급여 수급 자격이 있는 청년은 5명 중 1명 수준에 불과하다. “청년층에서 수급 가능자 비중이 이토록 낮은 이유는 자발적 이직에 대해서는 실업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권고사직이나 계약기간 만료 후 갱신 거부를 한 사례가 아니면 실업급여 수급자격이 인정되지 않는다.” 수급 요건이 이토록 까다로울 뿐 아니라 정보의 부족 등 실질적 사각지대에 속하는 경우까지 합하면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물론 이러한 조처들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비용을 누가 분담할 것인가, 재원을 누가 마련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예컨대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노동계급의 상위층도 그 비용을 함께 분담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청년실업 문제의 근원은 이윤 극대화를 위해 작동하는 자본가들의 축적 경쟁에 있다. 여기에 노동자들은 책임이 없다. 따라서 비용의 분담은 자본가들이 져야 한다.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의 경우 재원마련을 위해 필요한 세수를 기업과 자산 소유자들에 대한 과세를 강화함으로써 마련해야 한다.
결론
자본주의는 경쟁적 축적을 추동하는 체제다. 경제가 활발히 성장하는 시기에는 고용이 늘어나겠지만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는 그리고 경기가 회복 중이더라도 여전히 불안정하고 취약한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고용이 정체되거나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청년 실업률이 증가하게 된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 정부가 나서서 ‘시장에 맞서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을 보면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심지어 일부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공격을 하고 있다. 따라서 청년 일자리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사회적 대화가 아니라 사회적 투쟁을 통해서 나서야 한다.
(청년) 실업자, 비정규직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들은 같은 계급으로서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또 함께 단결하여 투쟁을 건설할 수 있는 잠재력 또한 존재한다. 단결 투쟁을 통해서 우리는 지배계급이 청년 실업자들의 고통에 책임을 지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한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과 조직을 건설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가 될 것이다.
주
- 김보협 2018. ↩
- 특별한 언급이 없을 경우 ‘청년’ 실업자는 15~29세를 가리킨다. 이를 두고 협소한 연령대 설정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제법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일자리 문제에 관한 대부분의 문헌이 기준으로 삼고 있는 15~29세를 따랐다. ↩
- 정은주 2018. 고용보조지표3은 시간 관련 불완전 취업자와 잠재 경제활동인구(비경제활동인구 중 지난 4주간 구직활동을 했거나 구직활동은 하지 않았어도 취업을 희망했고 가능했던 사람)을 포함한 것이다. ↩
- 최경수 2017, p2. ↩
- 김복순 2017, pp75-76. ↩
- 김종욱 2017, pp25, 31. 이 외에도 업무 적합도 등 여러 주관적 만족도가 열악한 경우가 작용한다. ↩
- 이 부분에 대한 보다 친절한 설명은 김종현·박한솔·김승주가 쓴 《청년실업 – 마르크스주의적 분석과 대안(개정판)》의 2장을 참조하라. 해당 글에는 이 외에도 마르크스주의적 설명을 뒷받침할 만한 데이터들도 좀 더 자세히 제시하고 있으며, 부르주아적 관점에 대한 반박을 더 자세히 다루고 있다. ↩
- 최경수 2017, p3. 기업들은 인력 조정이 필요하다고 느껴도 그것이 사활적으로 급박하지 않다면 해고같이 강경한 조치를 시행하지는 않는다. 특히 당장 인력이 덜 필요하다고 해서 오랫동안 보유해둔 노동자들을 내보낼 경우 기업주들은 숙련 노동력이라는 귀중한 ‘생산요소’를 잃어버리는 셈이 된다. 또한 추후에 다시 노동력을 벌충하려 할 때 들어가는 초기 교육 비용도 적잖이 고려한다. 많은 경우, 노동자들의 반발 역시 그들이 함부로 과감한 공격에 나설 수 없는 이유다. ↩
- 물론 산업예비군(혹은 그 동의어인 ‘상대적 과잉인구’)은 실업자와 완전히 같은 의미는 아니다. 산업’예비군’이란 말 그대로 자본가들이 확장하는 자본축적을 위해 추가적 노동력이 필요할 때 임금의 등귀라는 부담을 갖지 않고 언제든 ‘소집’할 수 있는 인구를 말한다. ↩
- 김하영 2017, pp183, 185. ↩
- 조귀동 2017. ↩
- 같은 글. 도소매·숙박음식업은 사드 보복으로 인한 중국인 관광객 감소 등이 압박이 됐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이들 산업은 꾸준히 감소세를 보여온 영역이다. ↩
- 강동훈 2017. ↩
- 최경수 2017, p4. ↩
- 자신의 학력보다 낮은 학력을 필요로 하는 일자리에 취직하는 것을 일컫는다. ↩
- 김종성·이병훈·신재열 2012. 이 글에 따르면, ‘객관적 측정방식’(한국직업사전에 기재된 직종별 요구 교육연수 기준)을 활용하든 ‘주관적 측정방식’(업무 내용의 수준과 자신의 교육 수준을 비교한 설문조사)을 활용하든 청년층의 하향취업은 2003~2008년 사이 30퍼센트 전후를 보인다. ↩
- 최경수 2017, p5. ↩
- 전재식 2012 참조. ↩
- 조슬기나 2017. ↩
- 박선영 2017. ↩
- 박성재 외 2014, pp7-8. ↩
- 〈노동자 연대〉 239호의 2면과 4~5면에 실린 관련 기사들을 읽어보라. ↩
- 이에 관하여서는 홍성욱 외, 2017을 참조하라. ↩
- 청년유니온 2017a를 참조하라. ↩
- 박한솔 2017, p85. ↩
- 한편 계급을 가로질러 상이한 집단들을 뭉뚱그리지만 노동계급 내부에 분단선을 상정하는 것은 ‘프레카리아트론’ 또한 공유하는 약점이다. 한국의 좌파 운동진영 일각에서도 이를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 역시 전략과 실천 상의 오류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서는 김하영 2017, pp366-367을 참조하라. ↩
- 청년유니온, 2017b ↩
- 김하영 2017, p327. ↩
- 김유선 외 2017, pp67, 80. ↩
- 방준호 2017. ↩
- 박태우·이지혜 2018. ↩
- 김종현 2017, p69. ↩
- 청년유니온 2017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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