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데이비드 하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책
《데이비드 하비의 세계를 보는 눈》, 창비, 데이비드 하비, 최병두 옮김, 2017년
하비는 매우 충격적인 사실로 책을 시작한다. 중국이 2011∼2013년에 소비한 시멘트의 양(66억 톤)이 20세기 100년 동안 미국이 사용한 양(44억 톤)보다 많다는 점이다. 이런 일이 왜 벌어졌고, 어떤 환경적·경제적·사회적 결과를 초래했을까? 이것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비의 문제의식이다. “이들 글에서 나의 목적은 우리의 지리를 만들고 새롭게 하는 과정, 그리고 그것이 인간 생활과 지구 환경에 미친 결과를 이해하기 위한 틀을 찾는 것이다.”(하비 2017, 22쪽. 이하 쪽수만 표기.)
하비는 1968년 반란 직후 볼티모어에서 벌어진 흑인들의 도시 폭동에 도움을 주기 위해 도시 주거 조건에 대한 연구를 했다. 그 과정에서 하비는 주거가 상품의 특성이 있다는 점을 보고 마르크스 《자본론》의 분석틀을 차용했다. 하비가 당시 지리학계에서 유력했던 실증주의 경향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방법론을 형성하는 데 마르크스의 방법이 큰 도움이 됐다.
마르크스의 방법
하비는 마르크스의 방법을 지리학에 적용하려면 마르크스의 기본 범주를 단순히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확대하고, 수정하고, 확장해야 한다고 봤다. 예를 들어 위기 형성의 역동성, 고정자본의 순환, 신용체계의 작동 등과 같은 점들이 공간과 지리에 대한 고려를 염두에 둬야 하며, 실제로 마르크스도 그런 점들을 고려했음을 분명히 보여 주는 풍부한 증거가 있다는 것이 하비의 주장이다. 일례로 《자본론》 앞부분에 “화폐란 ‘상품에 내재된 사용가치와 가치 간 대립을 발전시키는’ 교환의 ‘역사적 과정과 확장’을 통해 ‘필연적으로’ 형성되는 ‘결정체’라는 서술”(74쪽)이 있는데, 이런 점에서 교환이 국지적 굴레를 벗어나는 만큼 상품의 가치는 추상적 인간노동의 체현으로 점점 더 확장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장교환과 자본순환의 지리적 통합 및 공간관계의 변화에 대한 연구가 중요하다는 점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하비는 마르크스의 주장에서 공간상의 교통이 가치생산적이라는 점, 공간적 장애를 극복하는 능력은 생산력에 속한다는 점, 사회적 노동분업은 공간에서 노동자의 집적과 생산력의 집중에 좌우된다는 점, 노동력의 가치는 지리적 상황에 따라 다양하다는 점 등이 지적돼 있음을 근거로, 마르크스 이론 전반에서 공간적 현상에 근본적 위상을 부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비가 만들어 낸 교통관계, 공간적 통합, 시간에 의한 공간의 절멸 등과 같은 널리 알려진 개념들이 이런 문제의식에서 생겨났고, 그의 이런 통찰들이 《자본의 한계》에 포함돼 있다.
개별 자본이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경쟁, 과잉축적, 기술 변화,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를 낳는데, 이것을 하비는 자본의 1차 순환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자본은 1차 순환에서 과잉축적과 과소투자 같은 위기를 완전히 극복할 수 없기 때문에 신용체계와 금융관계를 통한 위기의 유예를 도모한다. 하비는 이 때 생산을 위한 물리적 틀로 기능하는 고정자본을 ‘생산을 위한 건조환경’으로, 소비를 위한 물리적 틀로 작용하는 것을 ‘소비를 위한 건조환경‘이라고 불렀다. 전자는 거대한 물류창고 같은 것이고 후자는 주택이나 보도 같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생산을 위한 건조환경과 소비를 위한 건조환경을 위해 자본과 국가가 결탁하여 대규모 장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금융을 통해 지원하며 보증을 해준다. 그리고 이런 투자를 위해 대규모 ‘의제자본’을 창출한다. 이어서 하비는 자본순환의 전체 그림을 완성하려면 자본의 3차 순환을 상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과학과 기술에 대한 투자, 노동력의 재생산과 연관된 광범한 사회적 지출(교육, 건강, 복지, 이데올로기, 경찰과 군대 등)의 영역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1945년 이후 미국이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구가할 수 있게 한 “주택을 건설하고 이를 물건들로 채웠던” 바로 그 방식이 2008년의 위기를 초래했다. 따라서 하비는 세계경제 위기 이후에도 많은 국가들, 특히 중국이 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건조환경에 대한 과잉투자를 진행하고 있는데, 세계경제의 건전성을 위협하는 이 방식이 어떻게 귀결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오늘날 물류기지와 대규모 아파트 건설, 복합문화·쇼핑단지의 설립, 특정 지역의 종합 개발 등은 하비가 말한 ‘생산·소비를 위한 건조환경’과 딱 맞아떨어지는 현상들이다. 하비가 역사유물론에 지리라는 개념을 추가하여 역사지리적 유물론이라는 말을 주조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지리나 공간 개념을 마르크스주의에 통합시켰다. 그래서 하비는 도시의 경제지리적 환경 변화를 자본축적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발전과 확장에 기여했다.
또한 하비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장과 테제를 적절하게 마르크스주의에 포함시키는 노력을 기울였다. 물론 하비는 포스트모더니즘 주장에 결코 동조하지 않았다. “사고의 포스트모던한 혼합에는 내가 결단코 맞서고자 하는 것이 있었다. 맑스주의적 사유에 대한 빈번한 무시를 보면 짜증이 났다. 그리고 메타이론(증거 제1호로 맑스를 포함하여)의 모든 지침이 모든 사람의 머리에서 삭제되어야 한다는 독단은 전혀 와닿지 않았다.”(222-223쪽) 그럼에도 하비는 1970년대 중반부터 자본의 작동 방식에서 중요한 변화가 있었고, 그것을 포스트모더니즘은 유연적 축적, 탈산업화, 국제금융의 힘의 증대, 지구화, 자신이 주장한 시공간 압축의 강한 흐름 등으로 테제화하고 있었으며,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런 주장들이 노동계급의 제도와 문화의 힘을 파괴하기 위해 이용되고 있다고 봤다. 하비의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은 바로 이런 물결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개입이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순간성, 꼴라주, 파편화, 분산을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자본의 유연적 축적 조건들을 모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비는 지적한다. 이런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장에 대항해 하비는 장소 정체성이나 장소 귀속적 정체성 개념을 강조한다. 세계는 유동적이고 변화하며 중심이 없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에 반대해, 하비는 개인이나 가족 또는 지역사회나 국가가 존재하는 장소는 구체적이고 특정한 관계가 형성된 곳이지 무정형의 유동적인 곳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런 관점은 계급 투쟁에서 중요한 함의가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유연적 축적체제로 자본주의가 바뀌었고, 유연적 자본주의 하에서 구래의 계급 투쟁은 쓸모없게 됐다고 주장했다. 노동자 투쟁에 직면한 자본은 족적 없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자본의 이동성을 과장하고 노동자 투쟁의 의미를 과도하게 축소했다. 노동자들이 이런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분명 사기가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하비가 말한 장소 귀속적 정체성이 중요하다. 하비는 지역적 저항들, 장소 귀속적 조직 등이 비록 한계는 있을지라도 정치 행동을 위한 훌륭한 기반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탈취에 의한 축적과 신제국주의
3 하비는 “자본축적의 다중적인 역동적 중심지들이 지구경제의 많은 여러 공간에 발생하는 과잉축적의 강한 조류에 직면하여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게 됨에 따라 국제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고 지적하고(427쪽), 이어서 “이들은 장기적으로 모두 성공할 수 없기 때문에, 가장 취약한 영토들이 압도되어 일련의 심각한 감가로 빠지거나 또는 무역전쟁, 통화전쟁, 심지어 군사적 대립의 형태로 분출되는 지정학적 대결에 빠지게 된다”(427쪽)고 설명했다. 이런 설명은 자본주의에서 경제적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영토 장악이나 식민지 쟁탈을 위한 군사적 충돌로 이어진다고 보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과 통하는 분석이다.
하비가 마르크스주의에 기여한 또 다른 분야는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제국주의로 파악한 것이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직전에 집필됐고 침공 이후에 출판된 《신제국주의》에서 하비는 자본축적의 지구적 역동성을 파악하기 위해, 자본축적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영토적·지리적 이해관계의 결합이라는 독특한 관점을 제시했다.4 하비의 주장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에서 자본축적은 노동자 계급을 착취하는 것에 기초한 축적, 식민 전쟁과 국제 대부 체계 등을 통해 비자본주의 생산 영역을 탈취하는 것에 기초한 축적이 있다. 이 둘은 유기적으로 연계돼 있고 자본주의 역사는 이 둘을 함께 고려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 하비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주장을 더 확장해, ‘탈취에 의한 축적’이 자본주의의 원시적(또는 기원적, 시원적) 축적에만 있었던 “순전히 역사적인 과정”이 아니라 “지속되고 있는 과정”(439쪽)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비의 《신제국주의》가 부시의 이라크 전쟁과 오늘날의 제국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확장한 점은 있지만 그의 제국주의 개념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비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자본축적 설명을 차용해 ‘탈취에 의한 축적’이라는 개념으로 정식화했다.하비는 ‘탈취에 의한 축적’의 오늘날의 사례로 신용체계와 금융자본의 약탈, 헤지펀드 등 주요 금융자본기관이 저지르는 투기적 침탈, 인플레이션을 통한 구조화된 자산 파괴, 인수합병을 통한 자산 삭감, 전체 인구를 채무자로 전락시키는 부채 수준의 증대 등을 들고 있다. 하비는 “그리스에서 극적으로 불행하게 예시된 것”이 보여 주고 있는 것이 “조직화된 탈취”라고 지적하면서, 이런 “탈취에 의한 축적”이 “1982년 멕시코의 부채 위기 이래 대중을 위한 ‘구조조정과 긴축’의 이름으로 지구적 자본주의에서 자행된 표준적 정치가 됐다”고 지적한다(460-461쪽). 아마도 하비는 신자유주의 시기 자본축적의 핵심적 특징을 바로 ‘탈취에 의한 축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현실을 이해하는 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등장기에 나타났던 원시적 축적의 특징을 생산자와 생산수단의 분리라고 지적했다. 봉건제에서 농노에 해당하던 사람들이 생산수단으로부터 축출당하면서 도시의 거대한 노동자 계급을 형성했다. 그런데 하비는 탈취에 의한 축적 개념을 확장함으로써 원시적 축적이 지니는 이런 역사적 특징을 없애 버렸을 뿐 아니라, 자본주의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생산 영역 바깥에서의 약탈과 원시적 축적을 구분하지 않고 뒤섞어 버렸다.
다른 한편 탈취에 의한 축적 개념은, 하비가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자본의 일반적 작동에서 나타나는 착취, 즉 자본이 노동자들로부터 잉여가치를 흡수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증대한다는 점을 과소평가할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자본주의의 전개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비는 우리가 살고 있는 모순된 세계가 “예측 불가능하고 통제 불가능한 방식으로 급속하게 계속 진화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525쪽). 그리고 자본주의 공간 조직의 진화, 이것의 지리적 역동성, 이에 따른 환경적 영향과 제약에 관한 문제를 제쳐 두고 시간에 따른 자본주의의 발전을 고찰해 볼 때, 자본이 이윤 추구를 위해 벌이는 다양한 활동 영역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불균등발전과 투쟁적 특수주의
하비는 자본주의 진화의 일곱 가지 독특한 활동 영역을 제시한다. “기술과 조직형태, 사회적 관계, 제도적·행정적 재편, 생산과 노동과정, 자연과의 관계, 일상생활과 종의 재생산, 세계에 관한 정신적 개념화”가 그것들이다(528쪽). 예를 들어, 기술과 조직형태에 대해 하비는 기계의 등장으로 노동자들이 “기계의 유연한 부속물이라는 지위로 점점 더 전락함에 따라 계급·젠더·가족관계도 바뀌었다”고 지적한다(533쪽). 이는 제도적 변화도 초래하는데, 바로 공장법이 그것이다. 하비는 “새로운 조직형태(법인공장)는 새로운 제도적 편제 하에서 새로운 기술을 촉진했고, 이 새로운 제도적 편제는 사회적 관계와 자연과의 관계에 파급 효과를 미쳤다”(533쪽)고 지적했다.
하비는 이 영역들이 불균등하게 발전하며 빚는 변증법적 긴장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일곱 가지 요소 중 중심적인 것이 있다고 보지 않아 절충주의에 뒷문을 열어 놓고 있다. 절충주의는 여러 요인들 중에서 어느 것이 핵심인지를 분간하지 못하고 그 요인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왜곡하는 문제를 낳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소련 문제에 대한 분석이다. 하비는 사회주의를 건설하려는 시도가 실패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 영역들 간 변증법이 미래의 가능성을 열도록 유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즉, 1920년대의 혁명적 실험기 이후 소련에서 스탈린이 “영역들 간 관계의 변증법을 생산력(기술)이 변화의 선봉에 위치하는 단선적 프로그램으로 축소시켰다”고 지적하며, 이런 접근이 정치체제와 행정적·제도적 편제의 침체를 초래했고, 일상 생활을 단조롭게 했으며, 자연과의 관계에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재앙적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545쪽).
하비는 스탈린 치하 소련의 생산력 우선주의가 만악萬惡의 근원인 것처럼 주장하지만, 왜 스탈린이 생산력 우선주의를 채택했느냐는 묻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소련이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의 군사적 압력에 맞서 군사력 강화를 우선시해야 했고, 이 때문에 1920년대의 혁명적 실험을 되돌려 노동자와 농민들의 조건을 자본 축적에 종속시켜야 했으며, 그래서 경제개발계획과 강제적 집산화로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서방 열강과의 경제적·군사적 경쟁에 대응했어야 한다는 사실을 하비는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동역학으로 운영되는 사회가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의 한 변형이었음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하비는 “어디서부터 혁명적인 반자본주의 운동을 시작할 것인가” 묻고는 “우리가 시작한 곳에 머물지 않는 한 어떤 곳에서 그리고 모든 곳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답한다(547쪽). 이 때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방안은 ‘투쟁적 특수주의’이다. 1988년 하비 자신이 영국 옥스퍼드의 로버 자동차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한 카울리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때 국지적 투쟁과 지구적 힘의 결합을 고민하던 중 레이먼드 윌리엄스에게서 차용한 개념이 투쟁적 특수주의다. 투쟁적 특수주의를 쉽게 말하면 국지적인 투쟁도 항상 전체적이고 일반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관점이다. 하비는 이를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국지적으로 행동하라”(215쪽)는 1960년대의 혁명적 슬로건을 되살려 내는 것으로 본다.
이런 관점은 세계화된 자본주의에서 국지적 투쟁의 한계를 지적하며 사실상 노동계급의 무력감을 설파하는 주장에 대해 훌륭한 반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비 자신도 지적했듯이, “’지역적 저항들’, 지방자치를 위한 투쟁, 장소 귀속적 조직 등은 정치적 행동을 위한 훌륭한 기반일 수는 있지만, 이들은 그 자체만으로는 급격한 역사적 변화의 짐을 감당해 낼 수 없다.” 하비는 국지적으로 벌어지는 투쟁이 노동자 계급 전체의 투쟁이라는 의미를 내포할 수는 있겠지만, 둘 사이에 긴장도 있음을 감지한다. 예를 들어 탄광 폐쇄에 맞선 광원들의 국지적 투쟁은 조직된 노동계급 또는 프롤레타리아 투쟁으로 바뀔 수 있겠지만, 그럴 경우 “특수한 장소들에서 달성된 투쟁적 특수주의의 바탕을 이루는 가치 의식과 공동의 목표”(387쪽)는 위협받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하비는 이런 문제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공진화 이론을 제기한다. “여기서 제안된 공진화 이론의 함의는 우리가 시작한 곳에 머물지 않는 한 어떤 곳에서 그리고 모든 곳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547쪽) 하비는 “상이한 영역을 둘러싸고 편성된 모든 다양한 사회적 세력 간 연대를 구상하는 것이 불가피해진다”고 강조하지만, 그 연대가 자발적으로 생겨나지는 않을 것이다. 누가, 어떤 세력이, 어떤 목적과 의도로, 어떤 수단을 통해 그 연대를 이룰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하비는 유용한 조언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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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김종현 2016, ‘신랄한 신자유주의 비판, 아쉬운 설명과 대안’, 《마르크스21》 15호.
로버츠, 마이클 2016,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은 경제 위기를 설명할 수 있는가?’, 《마르크스21》 16.
이정구 2016, ‘데이비드 하비의 경제 이론과 정치 비판’, 《마르크스21》 15호.
최병두 2016, 《데이비드 하비》, 커뮤니케이션북스.
클라이먼, 앤드류 2016, ‘마르크스를 오해하기’, 《마르크스21》 16.
하비, 데이비드 1994,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 한울.
하비, 데이비드 2005, 《신제국주의》, 한울아카데미.
하비, 데이비드 2017, 《데이비드 하비의 세계를 보는 눈》,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