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컨베이어 벨트를 멈추기 *
노동자들이 “국익”을 옹호해야 한다고 여기도록 하는 데 일조하는 민족주의, 국민국가에 따라 우리와 남이 규정된다고 보는 사상에서 비롯한 인종차별, 민주적 동의라는 개념 일체를 거부하는 파시즘 사이의 관계를 도니 글룩스타인이 분석한다. 글룩스타인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당원이고 에딘버러 칼리지에서 역사학을 가르친다. [ ] 안의 말은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옮긴이가 덧붙인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인종차별적 사건을 다루는 뉴스가 쏟아져 나온다. 지금까지 가장 기괴한 사례는 트럼프이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 트럼프는 ‘영국 우선’이라는 조직의 영상을 트위터에 게시했는데, 이 작은 파시스트 조직은 [2016년 노동당 의원] 조 콕스 살해범이 범행 당시 그 이름을 외친 것 외에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집단이었다. 민족주의·인종차별·파시즘이 무엇인지, 그 셋이 어떻게 연결돼 있고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분명히 알면 이런 사건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이 글에서 필자는 이 뚜렷이 구분되는 세 조류를 서로 잇는 컨베이어 벨트를 자본주의의 위기가 만들어 낸다고, 그리고 이 결과로 우경화 흐름을 한층 더 강화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민족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에 기본으로 내장돼 있다. 극소수가 압도 다수를 착취해 부를 쌓는 사회는 무력만으로 통치될 수는 없다. [대중의] 동의도 필요하다. 서구 의회민주주의 국가에서 이 동의는 표현의 자유 인정, 선거, 복지 제공 등을 통해 얻어진다. 그 결과 보통 사람들이 체제를 대체로 인정하게 된다.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지배적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인 것이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사장에게 좋은 것이 내게도 좋다”는 생각을 큰 틀에서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이 민족주의의 뿌리이다.
국가와 경제 같은 자본주의의 제도는 “우리의 국가”와 “우리의 경제”라고 인식된다.(그러나 실제로는 “그들의 국가”이고 “그들의 경제”이다.) 민족주의는 다양한 방법으로 작동한다. 예를 들어, 천대받는 나라에서 노동자와 사용자는 제국주의에 맞서 (일시적으로) 단결할 수 있다. 스코틀랜드와 카탈루냐 같은 곳에서 민족주의는 긴축에 반대하는 대중과 자체 국가를 갖기를 바라는 그 지역 자본가들을 (역시나 일시적으로) 단결시킨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 민족주의는 대체로 지배자들의 사상이 지배적임을 보여 준다.
지배계급 입장에서 보면 순수한 민족주의는 전적으로 합리적인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에게는 다르다. 민족주의와 삶의 경험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노동시간이 길어지고 임금이 줄어드는 것은 사용자에게는 좋은 일일 테지만 노동자의 건강과 행복에는 나쁜 일이다. 이런 충돌의 결과로 노동자들은 대체로 순응적 의식과 저항적 의식을 둘 다 가진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나 노동조합으로 조직될 때 그런 [모순된] 의식은 개혁주의로 표현된다. 개혁주의는 조악한 형태의 민족주의에는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국민국가와 국민경제라는 틀은 받아들인다.
샌드위치
상층 계급과 노동자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는 존재가 중간계급이다. 이 층위의 사람들은 좌파 사상으로 이끌릴 수 있다. 이들 역시 은행, 대기업, 경제 위기 때문에 고통을 겪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층위의] 많은 사람들은 대기업가가 되기를 바라고, 하위 관리자에서 고위직으로 승진하기를 갈망한다. 따라서 중간계급은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이끌릴 수 있다. 가난하지만 노동계급과는 이질적이라 느끼며 지배계급의 사상에 사로잡힌 사람들 ― 마르크스는 그들을 룸펜프롤레타리아트라고 불렀다 ― 도 마찬가지다.
민족주의 사상은 한 나라 안에서는 [한 민족이나 한 국민이] 공통의 이해관계(실체는 없다)를 갖는다고 강조하지만 외부를 향해서는 다른 색조를 띤다. 자본주의 국가들은 서로 경쟁하고, 그래서 외부인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 즉 인종차별로 민족주의가 나아가는 경우가 흔하다. 어느 정도의 인종차별은 서구 의회민주주의 안에 항상 존재한다. 그러나 대체로는 정치적으로 그다지 중요하거나 결정적인 쟁점이 되지 않는다. 보건, 교육, 고용, 주택 등 다른 문제들이 중심적 지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더 흔하다.
그러나 경제 위기 때는 상황이 변한다. 대중이 겪는 고통은 사용자들 탓인데, 사용자들은 대중의 관심이 그 사실을 비켜 가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지배자들은 ‘이간질을 통한 각개격파’라는 오랜 전술을 꺼내든다. 복지 수급자나 싱글맘 등 누구든지 그 공격의 표적이 될 테지만, 가장 즐겨 쓰이는 방법은 대중에게 널리 수용되는 민족주의를 이용하고 더 반동적인 형태로 벼리는 것이다. 19세기에 아일랜드인에 대한 [영국인들의] 인종차별을 다루는 글에서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인종차별은) 언론, 교회 설교, 만화책 등 간단히 말해 지배계급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통해 인위적으로 유지되고 심화된다.”
그 과정은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눈에 띄게 나타났다. 난민, 이민자, 무슬림이 하나씩 하나씩 공격의 표적이 됐다. 이는 정치에 영향을 끼친다. 앞에서 말했듯이 인종차별은 항상 어느 정도 존재하지만, 호황기에는 인종차별을 정책의 중심으로 삼는 정당의 주장은 대체로 주목받지 않는다. 그러나 경제 위기 때는 독특한 상황이 펼쳐진다. 주류 정당들이 인종차별을 부추기는데, 동시에 사람들의 삶을 어렵게 하는 바로 그 주류 정당들에 대한 환멸이 존재한다. 영국이 그 사례였다. 보수당은 경쟁 정당인 영국독립당을 고무할 의도가 없었지만, 인종차별적 언행을 일삼은 결과로 사실상 그런 효과를 냈다.
요약하면, 위기에 대응해 지배자들은 민족주의의 인종차별적 측면을 강조하며, 그 과정에서 부차적 지위에 있던 정치인들이 인종차별적 포퓰리즘의 리더로 재등장한다.
극단적 인종차별은 파시스트 정당의 본질적 특징이 아니다.(비록 파시스트들은 인종차별 광풍을 기꺼이 이용하지만 말이다.) 파시즘을 창조한 무솔리니는 초강경 민족주의자였지만 유대인들을 자당의 지도적 지위에 앉혔다. 파시즘의 독특한 점은, 의회민주주의를 통해 대중의 동의를 얻는 체제 일체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이민자들 때문에 임금이 삭감되고 복지가 축소된다고 비난하는 세력은 파시스트 외에도 있다. 파시스트의 핵심 인자들은 훨씬 더 나아가서 의회민주주의, 노동운동, 좌파 정당 자체도 문제의 근원이라 본다. 파시스트들은 다른 정당이나 “체제”를 비판하며 급진적이고 반체제적인 척할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에서 파시스트들은 자본주의 친화적 주장의 반동적 버전들을 과장된 형태로 쏟아 낼 뿐이다.
포퓰리스트
경제 호황 시기에 파시스트의 주장은 설득력이 거의 없다. [그러나] 경제가 어려움에 빠지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 지배자들의 ‘이간질을 통한 각개격파’ 전술이 키워 놓은 시궁창이 (인종차별적 포퓰리스트들과 함께) 파시스트들에게 활개칠 공간을 주기 때문이다. 이제 파시스트들은 위기 때문에 극단으로 내몰리는 중간계급과 룸펜프롤레타리아트로부터, 동시에 결정적으로는 상층 계급의 영향력 있는 일부로부터 지지를 끌어 낼 기회를 노릴 수 있다.
1930년대 파시즘의 성장을 연구한 결과는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 준다. 당시 지배계급의 일부는 ‘이간질을 통한 각개격파’ 전술로만은 부족하다고 결론 짓고, 의회 등의 제도를 통해 대중의 동의를 구하는 데 들이는 비용을 더는 지불하지 않겠다고 결론 지었다. [1929년] 월스트리트 붕괴 뒤 1938년이 되면 유럽에서 의회민주주의가 작동하던 곳은 체코슬로바키아와 북유럽·서유럽 일부 ―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아일랜드, 스칸디나비아 반도 ― 에 불과했다. 다른 곳에서 의회민주주의 체제는 여러 형태의 쿠데타로 무너졌다.
그 쿠데타가 모두 파시스트에 의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군대나 귀족 등의 세력이 일으킨 경우도 있다. 많은 경우 지배계급은 파시스트를 선동가들의 허장성세에 휘둘리는 존재로 보면서 경멸했다. 그래서 파시스트 정당은 (루마니아와 벨기에에서처럼) 주제도 모르고 권력을 탐하는 세력으로서 여겨지며 반대에 직면하거나, (스페인의 프랑코처럼) [지배계급의] 하위 파트너로 인정될 뿐이었다.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일은 이런 양상과 달랐다. 두 나라의 지배자들은 너무 약해서 자력으로는 민주주의를 파괴할 수 없었던 반면, 파시스트들은 사활적 자산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의회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좌파를 분쇄한다는 목표에서 봤을 때, 선거에서 득표하는 것도 유용할 테지만 부차적이다. 더 중요한 방법은 기존 구조를 박살낼 거리의 군대를 양성하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검은 셔츠단’과 독일의 돌격대가 한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파시스트 혁명’이라는 신화 ― 1922년 3월 무솔리니의 ‘로마 진격’ 같은 신화 ― 를 내세웠지만, 사실 둘 다 깊은 위기에 빠져 있던 기득권층의 임명으로 권력을 잡았다. 그러나 일단 집권한 파시스트들은 그 지위를 이용해 아주 치명적인 자체 정책을 추구해 나갔다.
증오의 컨베이어 벨트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제 분명하게 드러난다. 정부는 사회에 내장된 민족주의에서 인종차별을 끄집어내 부추긴다. 이는 인종차별적 포퓰리즘의 먹이가 되고, 파시즘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주류 정당들은 스스로 풀어놓은 램프의 거인을 제어하려고 오른쪽으로 이동하지만, 이는 반동적 벨트를 더욱 강화할 뿐이다. 이 과정을 어떻게 중단시키거나 선순환으로 뒤집을 수 있을까?
대중의 머릿속에는, 민족주의와 그것의 불결한 친척인 인종차별과 파시즘에 반하는 생각도 많이 있다. 그런 생각에는 사회적 연대란 좋은 것이란 생각, (난민처럼)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마땅히 지원해야 한다 여기는 것, 노숙자 발생이나 복지 혜택 축소나 임금 삭감이 이민자가 아니라 자본가들의 탐욕 때문이라고 이해하는 것 등이 있다. 정당이나 ‘인종차별에 맞서자’ 같은 연대체가 그런 정서를 행동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면, 인종차별이나 파시즘을 물리칠 수 있다.
지난해 영국 총선에서 제러미 코빈 지지 물결이 일어난 것은 그 가능성을 보여 줬다. 영국독립당은 정치 의제를 선도하기는커녕 난파해 버렸고, 보수당은 몇몇 공격을 한동안 완화했다.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정치 담론은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으로 이끌렸다.
역사는 또 다른 방법도 있음을 보여 준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파시즘 사상에 치를 떠는데, 파시즘이 기존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끝장내자고 하기 때문이다. 이는 [히틀러 시대의] 독일에서도 진실이었다. 히틀러는 자유 선거에서는 3분의 1 이상을 득표한 적이 없다. 파시즘의 본질이 폭로되면서 대중의 정서가 행동으로 연결된다면, 그리고 사람들이 파시즘에 맞서 단결한다면, 파시즘의 성장은 저지될 것이다.
이 전술이 성공적이라는 것은 1970년대 [영국에서] 국민전선에 맞선 연대체 ‘반나치동맹’과, 최근에는 영국국민당과 영국수호동맹에 맞선 연대체 ‘파시즘에 맞서 단결하자’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더 극적인 사례는 1934년 프랑스에서 파시스트들이 의회를 습격한 뒤에 일어난 일이다. 노동운동은 함께 뭉쳐 거대한 항의 시위를 벌였다. 1936년에 이르러 이 운동은 대중파업으로 발전했고 그 해 선거에서 좌파적인 민중전선 정부가 들어섰다.
결국에는 자본주의와 그 위기를 종식시켜야 악순환을 영원히 끊어 낼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MARX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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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Donny Gluckstein, ‘Halting the conveyor belt of hate’, Socialist Review January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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