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Ⅰ: 미국 정치 이해하기
트럼프, 심각해지다 *
1 의 그림에나 나올 듯한 내각을 꾸리며 선거 유세 때 이야기한 것 대부분과 맞지 않는 정부”를 구성했다고 신랄하게 논평했다. 2 트럼프 행정부가 실제로 행한 것으로 판단해 볼 때 이런 견해를 뒷받침하는 게 여럿 있었다. 금융 규제를 완화하고, 부자들의 세금을 대거 깎고, 오바마케어를 폐지하는 것 모두 전통적인 공화당의 계획에 해당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을 수행하는 방식을 두고 많은 전문가들은 (백악관에서 들려오는 드라마틱한 각종 일화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로널드 레이건이나 조지 W 부시 같은 전형적인 친기업 우익 공화당 행정부가 좀 더 변덕스럽게 행동하는 것뿐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페리 앤더슨은 트럼프가 “은행가와 사업가, 장군과 몇몇 우익 정치꾼을 선발해 게오르게 그로스 마이클 울프가 트럼프 정부의 끔찍하게 부풀어 오른 오장육부를 아주 재미있게 취재한 책 《화염과 분노》는 주의력 지속시간이 금붕어 수준인 자기 중심적 멍청이가 한가운데에 있으며 내부 경쟁과 분열로 마비된 백악관을 보여 줬다. 경쟁의 두 축은 대안 우파의 경제 국수주의를 대변하는 백악관 수석전략가였던 스티브 배넌과, 골드만 삭스의 전 사장이자 미국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게리 콘으로 울프는 콘을 두고 “힐러리 클린턴에 투표한 민주당원이자 세계화주의자 뉴욕내기”라고 묘사했다. 콘은 [트럼프의 딸] 이방카 트럼프와 그 남편 재러드 쿠슈너에 의해, 스티브 배넌을 견제하는 동시에 현 정부가 월스트리트에서 너무 이반하지 않도록 하는 균형추 구실을 할 것을 독려받았다.하지만 이제는 둘 다 사라졌다. 배넌은 지난해 경질된 데 이어 울프의 책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얘깃거리를 제공한 것이 이후 드러나자 정계에서 한층 더 먼 외곽으로 쫓겨났다. 콘은 트럼프가 3월 1일 수입 철강·알루미늄에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한 것에 항의하며 사임했다. 따라서 두 사람의 이탈은 정치적으로 대칭을 이루지 않는다. 개인 생활 측면에서 배넌은 아마 더 고통받을텐데, 배넌이 울프한테 누설한 것을 트럼프가 맹렬히 비난한 뒤 억만장자 후원자인 로버트·레베카 머서와의 관계가 끊겼고 그 결과 [배넌이 회장직을 맡았던 극우 웹사이트] 〈브레이트바트 뉴스〉에서도 쫓겨났기 때문이다. 반면 콘은 분명 머지않아 월스트리트에서 안락한 고위직을 찾을 것이다.
4 콘이 백악관을 떠난 뒤, 주류 출신 주요 인사 두 명이 빠르게 그 뒤를 따랐는데 국무장관 렉스 틸러슨과 국가안보보좌관 허버트 맥매스터이다. 엑슨모빌의 전 CEO인 틸러슨은 콘과 마찬가지로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자본을 대변하는 핵심 인물이었다. 맥매스터는 비서실장 존 켈리, 국방장관 제임스 매티스와 마찬가지로 트럼프가 “국가 안보” 문제에서 옆길로 새지 않도록 보좌하리라 기대를 받은 트럼프의 최측근 장군들 중 한 명이었다. 그 말은 미국 제국주의의 전 지구적 이익을 수호하는 것을 의미했고 이는 다시 (배넌이 비난한)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에 긴밀히 묶여 있다. 5
그럼에도 배넌은 패배했지만 승리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관세 부과는 선거에서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라는 경제 국수주의로 트럼프가 선회하고 있다는 더 일반적인 변화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또한, 미국이 제2차세계대전 이후 쌓아올린 “전후 확립된 이 자유주의적이고 규범에 기반한 질서”(배넌의 표현)에서 멀어지고 있다. 틸러슨과 맥매스터는 둘 다 사임한 게 아니다. 둘은 경질됐고, 트럼프의 사고방식에 훨씬 더 맞는 인물들로 교체됐다. [공화당 내 강경 우파] 티파티의 지원을 받아 하원의원으로 당선됐으며 트럼프가 CIA 국장으로 임명했던 마이클 폼페이오가 틸러슨의 자리를 넘겨받았고, 조지 W 부시가 임명한 UN 주재 대사였던 전쟁광 존 볼턴이 새 국가안보보좌관이 됐다. 두 사람 다 이란과 북한 문제에 있어 강경파인데 이들 쟁점은 트럼프가 외교정책에서 직면한 가장 큰 잠재적 고비다. 볼턴은, 미국의 군사력을 사용해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확산시키길 원하는 네오콘은 아니지만, 미국이 자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불량 국가”에 맞서 군사적 행동을 취할 권리가 있다는 부시 독트린은 분명하게 옹호한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에드워드 루스가 “트럼프에 집행력을 제공할 인물”이라고 말한 폼페이오는, 처음에는 트럼프의 대통령 출마를 반대하다 나중에는 트럼프 아첨꾼이 된 우익 공화당원이다. 루스는 “제임스 매티스만 제외하면 … 도널드 트럼프는 이제 자신한테 저항하는 인물들을 전부 쫓아냈다”고 결론내린다.7 인물 교체 타이밍은, 트럼프가 대선 캠페인 때 러시아의 지원을 받았을 수 있다는 혐의에 대한 특별검사 로버트 뮐러의 수사 때문에 트럼프 정부가 갈수록 큰 압력을 받고 있다는 것과 관련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선 캠페인에서 봤듯 보호무역주의는 트럼프의 원칙에 가깝다. 더욱이, 관세 부과는 트럼프 지지층인 “못마땅한 자들”(당초 힐러리 클린턴이 경멸조로 썼으나 배넌이 명예로운 훈장으로 바꿔버린 표현)에게 보내는 신호이기도 하다. 마이클 울프는 트럼프의 정치 감각을 과소평가했다.
따라서 이는 단순한 인사이동 이상의 문제다. 이들은 트럼프가 보호무역주의 경제 정책을 추진할 수 있게 해 준다. 보호무역주의는, 말이 앞뒤가 안 맞는 트럼프가 지난 수십 년간 나름 일관되게 견지한 생각이다. 한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7월 말 존 켈리가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직후 열린 대통령 보좌관 회의에서 트럼프는 보좌관들이 요지부동하는 것에 격노하며 켈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니까 존, 당신이 내 생각은 이거라는 걸 알았으면 하는데, 나는 관세를 원해. 그리고 나한테 관세를 갖다 줄 사람을 원해.” 그 보도에 따르면, “게리 콘은 … 어깨를 축 늘어뜨렸고 이 상황에 아연실색한 것이 틀림없었다.” 회의는 트럼프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으로 끝났다. “존, 왜 저것들이 나한테 단 하나의 관세도 갖다 주지 않는 건지 말해 주지. 이 방에 몇몇은 지금 기분이 상해 있다는 걸 알아. 지금 이 방에 세계화주의자들이 몇몇 있다는 것도 알아. 그리고 그들은 그걸 원하지 않지, 존, 그들은 관세를 원하지 않아. 하지만, 내가 분명하게 당신한테 말하건대, 난 관세를 원해.”9 세계 자본주의의 세 중심지인 북아메리카, 유로존, 동아시아에서 갈등이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제 트럼프는 자신이 원한 것을 얻었다. 수입 철강에 25퍼센트, 알루미늄에 10퍼센트 관세는 시작일 뿐이다. 유럽연합이 보복하겠다고 위협했을 때, 트럼프는 미국에 수출하는 유럽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늘리겠다고 응수했다. 덧붙여 4월 3일에는 중국산 1333개 제조업 품목에 대해 25퍼센트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니까 트럼프는 오늘날 세계경제의 생산·수출에서 두 거인인 중국과 독일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가 보기에 이 두 나라가 국제수지 흑자를 크게 쌓아 올리고 있는 것은 그만큼 미국이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파이낸셜 타임스〉 칼럼니스트 볼프강 뮌차우는 다음과 같이 썼다.
무역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트럼프 말처럼 쉬울지는 … 많은 부분 상대가 누군지에 달려 있다. 만약 독일(경상수지 흑자가 GDP의 8퍼센트를 기록하고 있는 국가)을 겨냥한다면, 무역 전쟁은 물론 이기기 쉬울 것이다. … 유로존은 2017년, GDP의 3.5퍼센트에 달하는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는데, 이는 [거대한] 경제 규모를 감안하면 무척 높은 수준이다.
유로존은 2012년 이래 근시안적 위기 대응 전략을 보였다. 경상수지가 높은 흑자를 기록하도록 밀어붙이면서 나머지 세계가 그것을 감당해 주길 기대한 것이다. 이는 ‘네 이웃을 궁핍하게 하라’ 전략이었는데, 소국이면 몰라도 세계 2위 규모 경제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 전략이 지속가능하지 않은 이유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보호무역주의적 조치에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 독일은 미국에 철강을 많이 수출하지만, 철강은 부차적인 문제다. 진정한 문제는 트럼프가 수입 자동차에 관세를 매기겠다고 수차례 협박한 것을 실제로 밀어붙일지 여부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싱크 탱크인 브뤼헐경제연구소는 35퍼센트 관세가 매겨졌다고 가정했을 때 유럽 자동차 산업에 끼칠 영향을 계산했는데, 연간 약 170억 유로[22조 원]의 수익 감소가 있을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네트워크 효과 때문에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은 더 클 것이다. 유럽연합은 단지 수출뿐 아니라, 수출용 자동차를 생산하는 데서도 바깥 세계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11 10 중국을 향한 관세도 중국 경제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노린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중국을 겨냥해 부과될 예정인 관세는 지난해 기준 500억 달러어치[53조 원]에 달하는 수입품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를 미·중간 전체 재화·서비스 무역량 추산치 6465억 달러(2016년 기준, 한편 미국의 적자는 3850억 달러다)와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규모다.당연히 이 모든 것들은 종래의 신자유주의적 상식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상식에 따르면 자유무역이 경제성장의 원동력이며, 1930년 미국 관세를 38퍼센트에서 45퍼센트로 높인 스무트-홀리법이 대공황을 일으킨 주요 원인이다. 둘째 주장[대공황의 원인]은 온전한 진실이 아니다. 1929년 대공황은 (2008~2009년 대침체와 다르지 않게) 수익성 문제를 일시적으로 벌충하던 금융 버블에서 비롯됐고, 버블이 꺼지자 금융 시스템은 완전히 파탄 났다. 금본위제가 공황의 주요 전달자 구실을 했는데 각국 정부가 금 유출을 역전시키려고 지출을 대폭 줄인 것이다.이 관세의 이면에는 전문가들이 “중국제조2025”라 부르는 중국의 상급 전략을 방해하려는 백악관의 더 큰 목적이 있다. 중국제조2025는 로봇 공학, 반도체, 항공, 정보 산업 같은 부문에서 여러 중국 기업들이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중국의 발전 계획에서 핵심 요소는 중국 기업들이 각자의 산업에서 세계적 지배력을 갖출 수 있게 도와줄 외국 기업과 협력하거나 그런 기업을 사 버리는 것이었다. 미국이 조치를 취하려 하는 건 바로 이런 기업들이다. … 미국 통상대표부는 관세가 매겨질 산업으로 “항공 우주, 정보 통신, 기계공업”을 거명하고 있다.
진실은, 세계경제가 무역 블록들의 경쟁 구도로 쪼개지는 전체 과정에서 스무트-홀리법은 그 일부였다는 것이다. 결정적 순간은 1931~32년에 찾아왔는데, 전통적으로 세계 무역·금융의 중심지인 영국이 금본위제를 이탈한 데 이어 영연방 내 특혜 관세 제도를 도입해 영국 제국과 그 위성국들을 보호무역주의 블록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결국 미국의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달러를 평가절하해야만 했고, 이외에도 프랑스 주도의 “금 블록”, 독일·일본의 자급자족적 경제 제국 등의 경향을 부추겼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1929년 대공황이 갓 시작될 당시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핵심을 간파했다.
모든 주요국에서 정치적 패권을 경제적 기반으로 뒷받침하려는 경향이 생길 수 있다. 광역 정치 협정은 광역 경제 협정이 될 수도 있는데 그러면 수출입 수준을 더는 두 국가 간이 아니라 두 무리의 국가들 사이에서 “합의”함으로써 매우 명백하며 결코 작지 않은 단점들을 제거할 수 있다. … 이러한 경향의 결과로써 세계시장은 더 이상 개별 국가 시장들의 합이 아니라 국제적(국가간) 시장들[오늘날 ‘블록 경제’라 부르는 것들-편집팀]의 총합이 되고, 각각의 국제적 시장은 내부적으로는[즉, 그 회원국에게는] 필수적인 경제활동들이 일정한 안정성을 갖도록 조직하고 동일한 체제에 기반해 상호적 관계를 갖도록 해 준다.[그러나] 이들 “국가간 … 시장”들끼리의 “상호 관계”는 갈수록 적대적이 된다는 게 입증됐다. 경제 침체를 배경으로 독일과 일본이라는 역동적인 “아웃사이더” 제국주의가 평화로운 확장의 한계에 부닥치자 제2차세계대전을 야기한 것이다. 오늘날 세계경제는 구조적으로 매우 다르다. 경제 대국들은 이제는 식민지와 반半식민지로 이뤄진 자신만의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다른 경제 대국들과 서로 긴밀히 엮여 있다. 앞에서 언급한 무역 수치가 보여 주듯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특히 그렇지만, 독일도 중국과 아주 많은 양을 교역하고 투자도 하는 데다, 중국은 전 세계로 수출하고 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로부터 원자재를 뽑아내며 이제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에 따라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교통 인프라에 엄청나게 투자하고 있다. 이렇게 관계를 맺고 있다 해서 경제적 경쟁이 지정학적 갈등이나 나아가 전쟁으로 발전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제1차세계대전이 일어난] 1914년 8월 이전의 세계경제도 고도로 통합돼 있었으며 독일은 영국의 최대 수출 시장이자 런던 금융가의 주요 고객이었다.
16 을 근거로 제시한 점은, 의회 동의 절차(아마 부결됐을 것이다)를 법률적으로 우회할 계책만은 아니었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을 “전략적 경쟁국”으로 지정했다. 이는 정확한 판단이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종신 집권을 가능하도록 임기 제한을 철폐하며 향후 훨씬 더 공세적인 외교 정책을 펼칠 것이라 발표했다. “우리는 반드시 신시대의 호탕한 동풍을 타고, 기름을 가득 채우고 전력을 다하며 굳게 방향타를 잡아서, 13억 중국 인민의 위대한 꿈을 실은 중화 대형선이 파도를 헤치고 승리로 나아가 희망 충만한 내일을 맞이할 것이다!” 17 3월말 중국은 항공모함 랴오닝함을 포함한 군함 40척을 동원해 분쟁 중인 남중국해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해상 훈련을 실시했다.
트럼프가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매기며 1962년 제정된 무역확장법 232조의 국가 안보 조항18 크고 수익성 좋은 중국 시장에서 영업하는 미국 기업들이 특히 취약하다. 중국은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관세에 대한 반응으로 128개 미국산 식료품에 보복 관세를 매기겠다고 발표했고, 미국이 중국산 1333개 품목에 매기겠다고 한 관세에서는 항공기, 대두, 우육, 돈육 같은 미국의 주요 수출품에 대한 표적 관세를 내놓았다. 관세는 협상을 통한 해결책으로 가기 위한 안일 뿐이라며 안심시키는 참모들을 반박하듯, 트럼프는 중국의 움직임에 또다시 1000억 달러어치에 달하는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하며 맞받아쳤다. 세계 양대 경제국 사이의 심각한 무역 전쟁이 눈 앞에서 아른거린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대형선” 사이에서 점증하는 제국주의간 경쟁은 적어도 지금 당장은 경제적 수단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통상적으로 무역 전쟁에서 무역 적자국은 이점이 있는데, 흑자국이 자국 시장에 수출하는 것을 막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다른 주요 무역국들과 동맹을 맺어서 그 효과를 제한하려 할 수 있는데, 유럽연합과의 동맹이 바로 그런 한 수가 될 것이다. 중국은 이미 일대일로 사업을 활용해 중·동부 유럽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쌓아올리고 있고, 이는 이제 “16+1” 협력으로 공식화됐다. 더군다나 마이클 로버츠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트럼프는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무역이 아니라는 것, 상품 무역 대신 서비스 무역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잊고 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자본 이동이다. 그런데 전면적 무역 전쟁은 어떤 것이든 중국이 해외 투자를 늘리고 있는 바로 그때 미국의 해외 투자를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다.”하지만 주요 자본주의 국가간의 경제적 갈등과 지정학적 갈등은 서로 완벽하게 오버랩되지는 않는다. 러시아는 국경 주변과 시리아 같이 자신의 세력권으로 여기는 곳에서 힘을 과시해 서방의 국가 안보 기구들을 격분하게 만들었지만, 경제적으로는 영향력이 작다. 러시아와 서방 사이 긴장이 고조되자 이는 양측에게 자국 내의 실패가 외부의 적 탓이라고 돌리는 데 완벽한 핑곗거리가 됐다. 영국 솔즈베리에서 [러시아 이중스파이에 대한] 신경가스 공격이 벌어지자 영국 총리 테리사 메이는 (영국이 브렉시트의 결과로 그다지 명예롭지 못하게 고립된 처지임에도) 러시아에 맞선 보복 조치를 앞세워 주요 서방 열강을 자기 편으로 한데 모을 반가운 기회를 얻었다.
더 위험한 분쟁 가능성은 미국이 자신보다 체급이 한두 단계 더 낮은 이란이나 북한과 맞붙는 것이다. 중동에서 현지 행위자들이 주되게 벌이고 있는 다차원 체스 게임 탓에, 미국이 중동에서 또 다른 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낮다. (물론,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벌어진 재앙 덕분에 영향력을 크게 확대한 이란을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가 공격하는 것을 트럼프가 눈감아 줄 가능성은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에 합의함으로써 핵미사일 계획을 둘러싼 북한과의 대치 국면을 깨뜨리려 한다. 늘 그랬듯 북한이 미국보다 훨씬 더 영리하게 행동했다. 동계올림픽을 이용해 남한과 분위기를 조성한 후, 트럼프의 허영심을 이용해 미국이 통상적으로 요구하던 선제 핵 포기 약속 없이 정상회담에 합의하도록 했다. 김정은은 여기에 더해 3월 말 무장열차를 타고 베이징으로 가서 시진핑을 직접 만났다.
19 이제 김정은이 되밀고 있다. 에번 오스노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김정은의 중국 대처법 때문에 중국이 북한과 계속 불화를 겪길 원했을 트럼프는 전보다 곤란한 입장이 됐다. 김정은과 시진핑은 외견상의 상호 의리와 의심이라는 카드패를 새롭게 섞었는데 이는 북한과 미국이 만날 때 잠재적으로 그 결과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협상 테이블에서든 전장에서든 말이다.” 20
중국은 갈수록 내켜하지 않지만 북한을 후원하고 있고, 더 광범한 경제적 긴장과 지정학적 긴장이 융합하는 지점에 바로 중국이 있다. 트럼프는 중국이 북한에 경제 제재를 가하도록 밀어붙였고, 다소간 성공을 거뒀다. 외견상 중국은 2017년 말과 2018년 초에 북한으로 석유, 석탄, 철강, 자동차 수출을 사실상 중단했다. 트럼프는 경제 정책에서는 많든 적든 그나마 일관성을 보이지만(또는 점차 보이고 있지만), 외교 정책에서는 훨씬 더 변덕스럽다. 트럼프는, 매우 수상쩍은 선거로 재선출된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축하한다고 해 놓고는, 신경가스 공격에 대한 서방의 공동 대응의 일환으로 러시아 외교관 60명을 추방했고 뒤이어 러시아 주요 올리가르히[재벌]들의 자산을 동결하는 제재를 가했다. 트럼프가 미국 국가 안보 세력의 주류에게서 독립적이라는 점은 그가 선제 조건 없이 북미 정상회담을 받아들인 이유를 설명하는 데 의심할 바 없이 도움이 된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트럼프는 정상회담이 성공적이지 못할 경우 파멸적인 전쟁으로 나아가는 방식으로 나올 수도 있다. 이런 주류 국가 안보 세력의 중심 인물인 리처드 하스는 트위터에서 다음과 같이 한탄했다. “트럼프는 지금 3개의 전선에서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로버트 뮐러와의 정치적 전쟁, 중국 및 다른 국가들과의 무역을 둘러싼 경제적 전쟁, 이란 그리고/또는 북한과의 실제 전쟁. 지금은 현대 미국사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그리고 이건 대체로 어떤 [외부]사건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초래한 것이다.”22 트럼프는 이런 정당성의 위기의 화신이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이 [정치적 정당성의] 위기가 트럼프의 행동에 의해 주요 자본주의 경제 간 관계에 반작용을 가하고, 그에 따라 이미 상당한 불안정성을 더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제의 원인은 “어떤 [외부]사건”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버전의 자본주의는 여전히 정치적·경제적으로 아주 견고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곪아들며 점점 더 해롭고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그러나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 갈등이 점증하고 있는 것은 미국 자본주의의 상대적 쇠퇴와, (조셉 추나라가 이번 호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에서 보여 주듯) 10년 전 금융 붕괴로 시작됐고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장기 불황(마이클 로버츠의 표현)이 끼치는 악영향의 산물이다. 다만 경제·금융 위기와 그 여파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정치적 정당성의 위기’(리오 패니치의 표현)로 발전했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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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lex Callinicos, ‘Trump gets serious’, International Socialism, 158 (spring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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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태생의 다다이즘 예술가이며 독일 공산당 당원이었다. 《지배계급의 얼굴》 같은 그림 모음집에서 의도적으로 조잡하게 그린 풍자 그림으로 독일 부르주아지를 신랄하게 비난했다 ─ 옮긴이. ↩
- Anderson 2017, p58. 트럼프가 국가와 자본 둘 다와 맺는 관계의 복잡성을 분석한 대안적 평가를 보려면 Callinicos 2017a를 보시오. 이 글의 초고를 보고 논평해 준 커밀라 로일과 조셉 추나라에게 감사를 전한다. ↩
- Wolff 2018, Kindle location 2483. 자레드 쿠시너와 이방카 트럼프가 게리 콘을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으로] 추천하는 것에 관한 내용인 10장은 웃기지만 동시에 으스스한 이 책에서 가장 재밌는 부분이다. ↩
- Gamm 2018을 보시오. 하지만 같은 인터뷰에서 배넌은, 지난 3월 트럼프가 서명한 1조 3000억 달러 예산으로 인해 더 늘어날 정부 적자와 이번 관세가 결합하면 미국이 중국의 보복에 취약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중국이 미국 국채 보유분을 이용해[처분해] 금융 위기를 촉발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중국은 경쟁력 유지를 위해 환율을 싸게 유지하려면 달러 자산을 축적해야만[사들여야만] 한다. 중국의 흑자와 미국의 적자가 무역 전쟁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요인들을 반영한다는 사실의 실례인 것이다. Harrison 2018을 보시오. ↩
- Gowan 1999, Callinicos, 2009의 4장과 5장, Panitch and Gindin 2012를 보시오. ↩
- Luce 2018. 폼페오와 트럼프 사이의 관계 변화에 관해서는 Phillips 2018을 보시오. ↩
- Laderman and Simms 2017. ↩
- Swan 2017. ↩
- 중국과 독일의 대규모 수출 지향에 대한 비평으로는 Pettis 2013을 보시오. ↩
- Münchau 2018. ↩
- https://ustr.gov/countries-regions/china-mongolia-taiwan/peoples-republic-china를 보시오. ↩
- Weinland and Bland 2018. ↩
- 간략한 역사적 비교를 살펴보려면 Bown and Irwin 2008을 보시오. Callinicos 2010, chapter 1과 Eichengreen 1992도 보시오. ↩
- Gramsci 1995, pp232, 233; Gramsci 1975, II, p267. ↩
- Kennedy 1980, chapter 15. ↩
- 대통령이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수입품에 직접 관세를 매길 수 있게 한 조항이다 ─ 옮긴이. ↩
- Financial Times, 2018. ↩
- Roberts 2018, Sandbu 2018과 Wildau 2018에서 다루는 (주류 경제학 관점에서의) 유용한 논의도 보시오. ↩
- Kynge 2018. ↩
- Osnos 2018. 북한의 위기에 대한 배경 설명으로는 Callinicos 2017b를 보시오. ↩
- https://twitter.com/RichardHaass/status/977129154788364288을 보시오. ↩
- Leo Panitch, “Trumping the American Empire”, Seminar in Contemporary Marxist Theory, King’s College London, 8 November 2017. ↩
참고 문헌
Anderson, Perry 2017, “Passing the Baton”, New Left Review, II/103, https://newleftreview.org/II/103/perry-anderson-passing-the-baton
Bown, Chad, and Douglas A Irwin 2018, “Does Trump Want a Trade War? What You Need to Know about Smoot-Hawley Tariffs and the 1930s”, Washington Post (21 March), https://tinyurl.com/ydejuz7u
Callinicos, Alex 2009, Imperialism and Global Political Economy (Po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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