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Ⅱ: 오늘날 중동 위기와 제국주의
오늘날 중동 위기 이해하기
수년 째 중동에서는 시리아와 예멘에서 각각 전쟁이 진행 중이고 두 곳 모두 최악의 인도주의적 위기를 겪고 있다.
유엔은 2011~2014년 시리아에서 4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고 그 이상 집계하는 것은 사실상 포기했다. 2014년 이후 미국, 러시아의 공식 참전(각각 2014년 9월과 2015년 9월)으로 폭력의 강도가 더 높아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체 인명 피해는 더 클 것이다.
예멘에서도 2014년 이후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사회 기반이 파괴되면서 깨끗한 물을 마시는 것이 어려워 콜레라로 석달 만에 수천 명이 숨지기도 했다. 당시 세계보건기구 등은 “세계 최대 인도주의 위기 가운데 발병한 세계 최악의 콜레라”라고 선언했다.
끔찍하게도, 이 와중에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시리아를 무대로 이스라엘–이란 전쟁 발발 가능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의 각종 중동 정책은 이 둘 사이의 군사적 충돌을 더 부추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이끄는 미국 정부는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부활시키며 핵 협정을 일방 파기했다. 이로 인해 평범한 이란인들을 더 큰 고통에 빠뜨릴 뿐 아니라, 이란 지배자들이 군사적으로 더 거세게 나올 공산이 크다.
또한 미국은 (오랫동안 미뤄 왔던)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을 단행했고 기념 행사를 성대하게 치렀다. 이는 이스라엘을 한껏 고무하는 동시에 중동에서 더 고립시켜, 이스라엘이 군사력을 과시하도록 부추길 것이다.
왜 중동은 이런 생지옥이 됐고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제국주의 체제, 특히 미국 제국주의가 중동 패권 강화를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고 그것이 미국의 통제 밖에 있는 요인들과 맞물리고 있기 때문이다.
1 미국과 러시아 등 제국주의 열강의 책임을 가리는 구실도 한다.
그러나 주류 언론의 분석을 보면 중동 내부에서 원인을 찾는 경우가 흔하다. 예컨대 ‘중동에서는 1000년 넘도록 종단 갈등(이슬람 vs. 기독교·유대교) 또는 종파 갈등(이슬람교의 수니파 vs. 시아파)이 원래 계속돼 왔다’는 식의 설명이 그렇다. 이런 설명은 실제 중동 역사와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이 글은 중동 위기의 진정한 원인은 세계 전체를 놓고 최강대국들이 벌이는 경쟁, 즉 제국주의 경쟁에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라크: ‘국제사회’가 평화를 주지 않는다는 (새삼스런) 증거
오늘날 중동의 위기는, 짧게 잡아도 냉전 종식 이후 미국 지배자들이 미국의 세계 패권을 천명할 전략의 일환으로 중동에 개입을 강화한 것에서 그 뿌리를 찾아야 한다.
그 배경은 이렇다. 냉전 시기에는 영국, 프랑스, 서독, 일본 같은 세계 자본주의의 주요 국가들이 소련의 군사적 위협 앞에 미국에게 군사적으로 기대며 미국 주도 세계 질서를 따랐다. 그런데 미국 지배자들은 소련의 위협이 사라진 뒤에도 계속 그러길 바랐다. 중국처럼 새로 경제적으로 부상한 국가에게 ‘세계의 주인은 여전히 미국’이라는 것을 각인시키는 것도 필요했다. 특히 미국의 경제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아는 경쟁 국가들이 ‘딴 생각’을 품지 못하게 하려면 강력한 메시지가 필요했다.
중동은 많은 국가들이 석유 공급을 위해 기대는 지역이자(정작 미국 자신은 중동 석유 의존도가 낮지만), 세계 자본주의의 세 중심지 중 두 곳인 동아시아와 서유럽을 연결하는 핵심 길목이다.(나머지 한 곳은 미국이 속한 북아메리카다.)
미국 지배자들은 이런 중동에서 군사력을 휘둘러 질서를 재편함으로써 세계 어디든 개입할 수 있다고 과시하고, 중동 석유의 안정적 공급은 미국에 달려 있음을 보이려 했다. 그래서 미국 지배자들은 2003년에 이라크를 재침공하고 점령하면서 그것이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라고 대놓고 말했다.
이라크 침공 50여 일 만에 당시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임무 완수”를 선언하며 이라크에 민주적이고 경제적으로 발달한 국가를 세울 것이라고 천명했다. 당시 그는 세계 언론에 대고 남한을 성공적 선례로 들먹였다.
미국은 기존 이라크 국가, 즉 군대와 정부 기구를 해체하고 직접 정부를 새로 꾸리려 했다. 이를 위해 대규모 병력을 파병했다. 당시 한국 대통령 노무현 등 한국 지배자들도 수년 동안 미국, 영국 다음으로 큰 규모로 파병하며 미국을 거들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라크인들의 삶을 개선하기는커녕 되레 악화시켰다. 이라크에서는 의료와 교육 서비스, 전력 공급처럼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또 “신자유주의 실험장”이라 불릴 정도로 갖가지 시장주의 조처가 도입되면서 평범한 이라크인들의 고통을 키웠다.
자연스럽게 점령 반대 운동이 빠르게 부상했다. 이라크 상황이 통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자 미국은 점령 반대 운동을 수니파와 시아파로 분열시키는 데 주력했다. 제국주의자들의 오랜 수법 즉, 분열을 조장해 서로 싸우도록 만들면서 지배하려 한 것이다.
구체적 행태는 이랬다. 미국은 자신이 애초 낙점했던 인사들로 확실한 친미 정부를 구성하려던 계획을 포기하는 대신, 한편으로는 시아파 인사들로 정부를 구성하도록 허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니파 저항 세력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2004년 말 수니파 저항 세력의 거점 도시였던 팔루자에서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대대적으로 학살을 자행하고, 수니파가 보이콧하는 상황에서 전쟁 후 첫 선거를 실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후에도 종파별로 예산을 차등 배분하는 등 이라크의 끔찍한 현실에 대한 분노가 상대 이슬람 종파를 향하도록 점령 정책을 교묘하게 펼쳤다.
안타깝게도, 당시 점령 반대 운동의 지도부가 대체로 중간계급 종교 지도자들이라는 약점이 작용하면서 이런 분열 책동은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결국 점령 기간 동안 이라크에서 종파 갈등은 전과 비교가 안 되는 수준으로 치솟았고, 이라크는 치안이 세계에서 가장 불안정한 나라가 됐다.
이라크인 무려 200만 명이 사회적 혼란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이 “민주주의 전도사”이기는커녕 비무장 민간인을 헬기로 벌레 죽이듯 살해하고, 감옥 수감자들을 고문, 강간, 살해하고 심지어 장난 삼아 학대했다는 것이 폭로됐다. “여성 인권을 위한 전쟁”이라고 치장했지만, 정작 아랍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했던 이라크의 여성 취학률은 미국의 점령으로 추락했다.
상황이 어찌나 끔찍했는지, 옛 독재자 사담 후세인 치하에서도 이라크인들에게 거부당했던 알카에다가 이라크에서 처음으로 성장할 기회를 갖게 됐다.
그러나 미국에게는 이 모든 것보다도 점령 반대 운동을 물리치고 자신에 의존하는 이라크 정부를 구성했다는 점이 더 중요했다. 이라크 점령은 미국이 패권만 생각하고 평범한 이라크인들의 생명이나 안녕에는 완전히 무관심하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라크 철군과 “아시아 재균형”
미국은 점령 반대 운동을 분열·약화시킨다는 ‘전투’에서는 이겼을지언정, ‘전쟁’에서는 지고 있었다. 안정적인 친미 국가를 세워 ‘미국은 세계 어디서든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다’는 것을 전 세계적으로 과시한다는 계획은 완전히 물 건너간 것이다. 그 대신 전 세계는 이라크를 안정시키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미국의 무능을 봤다.
제국주의 경쟁국들은 미국이 이라크에 발목이 잡혀 있는 기회를 십분 활용했다. 중국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동남아시아 각국에 접근해 미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고 자신을 지지할 동맹 세력을 하나 둘 세웠다. 러시아는 옛 소련에 속했지만 서방에 점차 가까워지던 조지아(2008년)를 침공하며 동유럽에서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한다.(이후 2014년에는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까지 침공·병합했다.)
냉전 이후 미국이 막고자 했던 다극화 경향이 오히려 속도를 내는 상황에서도 미국은 이라크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이라크인들의 고통에는 조금도 관심 없는 미국 지배자들도 이라크가 “지정학적 재앙”이 됐다고 불만을 성토하기 시작했다. 경제적·군사적 경쟁자로 빠르게 부상하는 중국에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배자들 안에서 커졌다. 2008년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가 조지 W 부시를 크게 누르고 당선했는데, 오바마의 중동 정책은 미국 지배자들이 오바마에 힘을 실어 준 주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2011년 말 미군은 이라크에서 공식적으로 철군했다. 중동으로 치우쳤던 미국의 외교적·군사적 역량의 일부를 동아시아·동남아시아로 재배치한다는 오바마의 전략(“아시아 재균형”)의 일환이었다. 오바마는 이라크에서 미군을 철군시키면서, 그동안의 점령으로 말미암은 이라크인들의 피해에 사과하기는커녕 “우리는 안정적이고 민주적인 이라크를 남기고 떠난다”는 위선을 떨었다.
미군은 떠났지만 미국 지배자들에게 중동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요충지다. 세계 최대 석유 매장지인 중동에서 미국이 ‘질서 유지자’를 자임하는 것은 세계 패권 유지에 여전히 중요하다. 그래서 미국 지배자들은 직접 군대를 주둔시키는 대신 중동의 현지 지배자들 간 알력과 균형을 이용해 패권과 ‘질서’를 유지하려 한다.
제국주의는 체제다①: 중동 지배자들의 아류 제국주의 제국주의는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이 세계를 지배하려고 서로 경쟁하는 체제이고, 자본주의에서 국가와 자본이 서로 융합되는 경향에서 비롯한다.
이 체제 안에서, 전 세계적 수준에서는 아니지만 지역 수준에서는 ‘골목대장’ 노릇을 하려 애쓰는 국가들이 생긴다. 이를 아류 제국주의라고 한다.
물론 이런 국가들은 가급적 열강의 의사를 거스르지 않고, 주요 정책에서 적어도 어느 한 쪽의 승인을 구하려 든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열강의 ‘꼭두각시’인 것은 아니다. 열강이 세운 ‘질서’ 속에서 자국의 이익과 영향력을 증대시키려 한다. 어떤 때에는 열강의 지도를 고분고분 따르지 않을 수 있다.
최근에 미국은 중동에 직접 개입하는 일을 줄이면서도 패권 지위를 유지하고자, 동맹국들이 더 많은 구실을 하기를 촉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오늘날 중동에서는 대략 터키, 이스라엘, 이집트, 이란이 서로 승부를 겨룰 만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갖고 있다. 최근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도 “싸우는 군대”를 갖겠다며 열을 올리고 있다. 그중 이란을 제외하고는 모두 미국의 동맹국이다. 그러나 ‘이란 vs. 나머지 국가들’ 구도인 것은 아니다.
전통적으로 터키는 오스만 제국의 후계을 자처하며 과거 제국의 일부였던 중동에서 영향력을 키우려는 야심이 있다. 1950년대에 식민지 독립을 이끌었고 아랍 민족주의 운동의 선두주자였던 이집트는 ‘아랍 문명의 심장’을 자처한다. 이스라엘은 모든 중동 지배자들을 불신하고, 자신의 유용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면 주변국들과 기꺼이 충돌할 태세가 돼 있는 ‘깡패국가’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 종주국을 자처하고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자신이 중동의 맏형이 돼야 한다고 믿는다. 이 국가들은 서로 전쟁을 벌였거나 군사적으로 충돌한 역사가 있다.
한편, 이란은 미국의 이라크 점령 기간 동안 영향력이 커졌고 이를 계속 확대하려 한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점령 반대 운동을 진정시키려고 시아파 종주국 이란의 손을 은밀하게 빌려야 했던 것이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처럼 중동에는 열강 간 경쟁뿐 아니라, 엇비슷한 군사력을 가진 다수의 현지 국가들이 경쟁하는 구도도 있다. 미국의 중동 지배력이 확고할 때는 이들 간 갈등의 영향은 대체로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지배력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이런 갈등은 큰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2010년 말부터 아랍 곳곳에서 혁명이 터져 나오자 그 불안정은 더 커졌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수십 년 된 친미 독재 정권들이 단 며칠 만에 무너졌고 예멘, 리비아, 시리아, 바레인 등지로 번졌다. 미국 지배자들이 중동에서 역량을 줄이려 한 바로 그 때 터져 나온 아랍 혁명은 미국 지배자들에게 큰 곤란함을 안겨 줬다.
그래서 미국은 혁명을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대신, 아랍 혁명에 대한 이런저런 찬사를 늘어놓으며 뒤로는 온갖 압력을 동원해 혁명이 온건 개혁 수준으로 머물도록 개입하는 방식을 택했다. 리비아처럼 군사적으로 개입한 경우도 있었지만, 이때조차 미국은 프랑스가 더 주도적 구실을 맡게 하고 독재자 카다피를 살해한 뒤 서둘러 빠져 나왔다.
이런 미국의 태도에 중동 지배자들은 동요했다. 30년 동안 미국의 중동 질서에서 핵심적 구실을 한 이집트 정부가 무너졌는데도 미국이 그 혁명을 추켜세우는 것을 특히 불길하게 봤다. 자국으로 혁명이 번질 때 미국이 얼마든지 외면할 수 있다고 여길 법했다.
결국 이 지배자들은 저마다 잔인한 수단을 동원해 자신의 권력을 지키려 나선다. 단지 자국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혁명에 개입하는 공세적 작전도 펼쳤다.
이는 때때로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과 어긋났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이를 적극 규제한 것도 아니다. 미국 지배자들이 관대해서가 아니다. 혁명의 확산을 막는다는 큰 구상에서 서로 일치하고 미국의 지배력 강화에 일조하는 현지 지배자들과의 동맹 관계가 훨씬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집트에서 2013년 반혁명 쿠데타를 후원한 것, 예멘의 시아파 반군을 물리친다는 구실로 2015년부터 대대적으로 폭격하고 있는 것이 그런 사례다.
또 다른 사례는 거의 모든 중동 국가들이 시리아에서 이런저런 세력을 지원하며 시리아를 생지옥으로 만든 것이다.
시리아 혁명의 비극
지난 수십 년 동안 시리아 독재 정권은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들이 이스라엘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단속하는 구실을 해 왔다. 그렇게 함으로써 중동 정치에서 자신의 몸값을 높일 수 있음을 알고 이용한 것이다.
“내가 제거된다면 이슬람주의 세력들이 득세해 이 지역 질서는 엉망이 될 것”이라던 옛 리비아 독재자의 말은, 시리아 지배자들이 오랫동안 미국에 보낸 메시지이기도 했다. 실제로 시리아 독재자의 영향력이 약화되자 이스라엘 언론은 이스라엘-시리아 국경의 군사적 요충지인 “골란 고원이 수십 년 만에 다시 불안정해졌다”고 투덜댔다.
3 또 다른 독재자가 쫓겨나 혁명이 계속 번지기보다는 혁명이 사그라지기를 더 바랐다.
실제로, 2011년 3월 아랍 혁명이 시리아로 번졌을 때만 해도 미국은 시리아 정권 전복을 지지하지 않았다.그러나 중동의 친미 지배자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왕정들은 고유한 이해관계를 갖고서 경쟁자인 시리아 정권을 전복하고자 했다. 그래서 시리아에서 혁명이 주춤하고 정권이 잔악한 탄압을 자행하는 상황을 이용해 반정부 세력 가운데 자신들과 비슷하게 종파적인 세력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시리아 정권도 핵심 지지 세력의 이탈을 막고 동맹국 이란의 참여를 고무하려고 종파 갈등을 부추겼다. 이렇듯 혁명을 종파 갈등으로 비틀려는 압력이 혁명 세력과 반혁명 세력 양쪽에서 모두 가해졌다.
이런 압력의 결과로 종파적 이슬람주의 세력이 시리아 정부군과의 전투를 주도하게 됐다. 많은 시리아인들은 이슬람에 대한 종파적 해석에 동의하지 않지만 생존을 위해, 또는 시리아 정권 타도를 위해 전투 능력이 우월한 이슬람주의 세력에 가담했다. 이슬람주의 무장 세력이 반정부 세력 내에서 부상했다. 이라크에서 미국 점령에 맞서 싸우며 성장한 ‘이라크 알카에다’도 국경을 넘어 시리아에서 활동하면서 ‘이라크·시리아 이슬람 국가’(ISIS, 이하 아이시스)로 진화했다.
시리아는 갈수록 생지옥이 됐지만, 앞서 부시 정부가 이라크에서 그랬듯 오바마 정부도 수십 만 명이 죽는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2014년 6월 아이시스가 이라크 제2의 도시 모술을 탈환하고 파죽지세로 수도 바그다드를 향해 진격하자 미국은 군사적 개입에 나섰다. 미국은 아이시스에 의해 위협받는 소수민족 보호를 명분으로 댔다. 그러나 진정한 이유는 권력 공백으로 인한 혼돈의 가중과 그에 따른 자국 위신의 추락을 더는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10년 가까이 점령하며 이라크에 세운 국가가 무너지거나 적어도 일부 영토를 빼앗기는 것은 보아 넘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뒤로 4년 가까이 지났지만 미국의 참전은 인도주의적 위기를 전혀 해결하지 못했다. 오히려 민병대를 대신해 외국의 군대와 최첨단 전투기가 더 빈번하게 동원되면서 폭력 규모만 커졌다. 무엇보다 평범한 시리아인들이 자국의 운명을 결정할 가능성은 더 작아졌다.
동시에 미국 지배자들은 중동만 보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아시아 재균형”이라는 세계 전략에 비춰 군사적 역량이 중동에 과하게 쏠리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했다. 그래서 트럼프는 2017년 3월과 2018년 4월에 시리아 정권의 화학무기 사용 정황을 이유로 시리아를 대대적으로 폭격하면서도 러시아 병력은 건드리지 않도록 했다. 시리아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도 미국에게 우선적 과제는 아니다.
제국주의는 체제다②: 러시아 제국주의도 반대해야 한다
수년 동안 시리아 정권에 무기와 병력을 제공하는 러시아도 또 다른 제국주의 국가다.
미국만을 제국주의로 보고 그와 갈등을 빚는 국가들을 모종의 반反제국주의 국가로 보는 일면적 시각이 있지만 옳지 않다. 자국민 수십만 명을 살해한 시리아의 세습 독재자를 옹호하고, 평범한 시리아인들이 저항을 포기하도록 도시 전체에 식량·물·의약품 반입을 가로막고 봉쇄하는 것이 어찌 반제국주의 투쟁이고 민중의 해방을 위한 투쟁일 수 있는가?
러시아가 2015년 공식적으로 참전을 선포한 것은 중동에서 지도력의 위기에 빠진 미국의 처지를 이용해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는 것을 노린 행위였다. 또, 자신의 동맹국인 시리아의 독재 정권이 미국의 힘으로 무너지는 것을 막으려 한 행위였다.
지금 러시아는 시리아를 사실상 미국과 양분하고서 중동 지배자들에게 ‘앞으로 이 지역에서 외교를 할 때 미국뿐 아니라 러시아도 고려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터키가 쿠르드 자치 지역 문제에서만큼은 미국이 아니라 러시아, 이란과 더 공조하도록 만든 것도 러시아에게는 성과다.
물론 중동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은 미국보다는 훨씬 작다. 그러나 러시아에게도 평범한 시리아인과 쿠르드인은 물론 시리아 독재자, 이란 병력의 운명까지 그저 게임에서 쓸 하나의 카드일 뿐이다.
새로운 중동 전쟁 가능성
이 글을 쓰는 지금 이스라엘-이란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란 병력이 자국 국경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며 거듭 시리아에 주둔 중인 이란 병력을 폭격하고 있다. 2월에는 이스라엘 F-16 전투기가 시리아에서 이란 무인기를 쫓다 격추됐다. 이스라엘 전투기가 격추되기는 1973년 4차 중동전쟁 이래 처음이다. 이란도 시리아로 무기를 공수하기 위한 항공기 운항 횟수가 늘었다고 한다.
요컨대 이란 군대와 이스라엘 군대의 준비 상태만 보면 영락없이 전쟁 전야다. 이와 함께, 중동이라는 지정학적 요충지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미국, 러시아, 유럽 같은 열강의 중요 관심사이므로 그들의 셈법과 행동을 간과해선 안 된다.
미국
앞서 말했듯 미국 지배자들은 세계 지배 전략에서 중국과의 경쟁을 가장 중요하게 보고 거기에 외교적·경제적·군사적 역량을 집중하고자 한다. 세계적으로 중동보다 무기를 더 많이 수입하는 유일한 지역이 동남아시아인 이유도, 대만 등 남중국해에서 긴장이 고조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2015년 이란 핵 협정은 중동과 동아시아에서 모두 전쟁을 벌이기는 버겁다는 미국 지배자들의 계산에서 나온 것이었다.
트럼프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중국에 적대적이고, 시리아에서 철군하고 싶다는 의사도 여러 번 내비쳤다. 다만 트럼프와 공화당은 이란 핵 협정이 이란의 경제 성장을 돕고 장기적으로 핵무기 개발도 막지 못해 중동에서 미국의 패권을 장기적으로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트럼프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을 상대하고 미국의 개입은 최소화하는 방안이 가능한지 저울질하는 듯하다. 물론 이런 ‘손 안 대고 코 푸는’ 방안이 과연 현실성 있는 것인지를 두고 미국 지배자들 상당수는 부정적이다.
4 . 사우디아라비아는 예멘에서 훨씬 무장력이 약한 반군을 상대로 인도주의적 재앙을 낳으면서도 몇 년째 고전 중이다.
오랫동안 이스라엘은 군사력이 한참 약한 헤즈볼라나 하마스와 같은 세력만을 상대로 싸웠고 그조차 매번 이긴 것이 아니었다. 2006년에는 헤즈볼라를, 2012년에는 하마스를 상대로 체면을 구긴 바 있다더욱이 만약 시리아에서 새로운 전쟁이 벌어진다면 러시아가 얼마나 개입할지도 중요한 변수다. 미국이 러시아만큼 개입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등이 이란에 패배하기라도 하면 미국 지배자들의 금과옥조인 미국의 중동 패권은 또 한번 큰 타격을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
유럽 지배자들은 이미 생지옥인 중동에서 전쟁이 추가로 벌어지는 것을 원치 않고, 이란 핵 협정도 최대한 유지하고자 했다. 그들이 미국보다 약속을 더 중시하거나 평화를 사랑해서가 아니다.(이는 중동의 역사를 조금만 보면 알 수 있다.)
그보다는 중동 석유에 더 의존하는 처지에서 갈등이 격화하는 것이 달갑지 않은 것이다.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이 더 많아지는 것도 싫고, 이란 석유를 개발할 기회 등 경제적 이득을 놓치는 것도 아깝다.
한편 4월 미국이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응징을 명분으로 시리아를 공습했을 때 영국·프랑스는 미국과 함께했지만 독일은 불참한 데서 보듯 유럽 지배자들은 내부적 이견도 있는 듯하다.
러시아
아랍 혁명 이후 러시아는 중동 지배자들에게 ‘믿지 못할 미국이 아니라 러시아라는 대안이 있다’는 메시지를 심으려 애써 왔다. 러시아가 지원한 시리아 정권이 여태 생존하는 것은 톡톡한 광고 효과를 냈다. 즉, ‘미국에 줄을 댄 이집트의 무바라크는 쫓겨났지만, 러시아에 줄을 댄 시리아의 아사드는 남아 있다.’
러시아가 이란, 터키, 이집트에서 핵발전소 건설을 돕고, 중동 전역에서 거침없이 무기를 판매하는 것도 이와 떼어 놓고 볼 수 없다.
만약 이란이 이스라엘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시리아 안에서 지속적 거점을 마련한다면 중동 지배자들은 러시아의 영향력에 한 번 더 주목할 것이다. 러시아가 이란이라는 ‘바구니’에 모든 ‘달걀’을 담은 것도 아니다. 러시아는 자신이 이란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음을 과시하며 친미 국가들이 전보다 자신을 더 인정하도록 만드는 길을 택할 수 있다. 얼마 전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건국 이래 처음으로 러시아를 방문한 것은 그런 성격이었다.
그러나 러시아도 중동에서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과 전쟁을 벌일 생각은 없다. 지금 러시아는 세계경제 위기의 타격을 미국, 독일보다 훨씬 더 크게 느끼는 처지이고, 2014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말미암은 경제 제재만으로도 타격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러시아는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또는 중동의 다른 친미 지배자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미국과 유럽이 어떻게 나서는지를 가늠하며 대응 수위를 결정할 듯하다.
이렇듯 오늘날 중동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복마전이다.
결론을 대신해
이처럼 중동의 위기는 제국주의 체제의 산물이고, 미국이 그 정점에 있음을 명확히 해야 한다.
따라서 미국이나 “국제 사회”의 중재나 개입을 촉구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제국주의적 개입이 재앙을 낳는다는 것은 미국 점령 하 이라크에서 죽은 200만 명이 증언하고 있다.
설령 개입 앞에 “평화적”, “민간인을 죽이지 않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더라도 바뀌는 것은 없다. 비군사적 개입도 한 발짝만 나가면 폭력적 개입으로 발전하기 십상이다. 예컨대 비행금지 구역 선포가 구속력을 가지려면 그 일대의 대공망을 무력화시킬 공군력이 수반돼야 한다.
또한 이란이나 이스라엘(또는 미국)이나 똑같이 나쁘다는 식의 대칭적 양비론도 틀렸다. 이란이나 러시아를 지지할 수는 없지만, 제국주의의 핵심 국가인 미국과 그에 협조하는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비판, 미국이 중동에서 손 떼야 한다는 주장이 우선일 것이다. 미국(과 그 동맹국 이스라엘)의 승리는 중동을 더 위험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그렇게 자신감을 얻으면 한반도 정세도 더 위험해질 것이다.
덧붙여, 한국은 동명부대(레바논-이스라엘 접경 지역), 아크 부대(아랍에미리트), 청해부대(예멘 앞바다)를 수년째 파병 중이다. 이 파병군들은 조속히 철군해야 한다. 한국이 아랍에미리트에 이어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핵발전소를 수출하는 것도 반대해야 한다. 파병과 핵발전소 수출 모두 이 지역 평화에 기여하기는커녕 긴장을 키우고 핵군비 경쟁을 부채질할 뿐이다.
MARX21
주
- 〈노동자 연대〉 129호 ‘중동의 종파 간 갈등은 수천 년 된 악습인가’, 234호 ‘유대인 사회주의자가 말한다 ― 시온주의에 반대해야 하는 10가지 이유’를 보시오 ↩
- 더 자세한 설명은 〈노동자 연대〉 164호 기사 ‘제국주의란 무엇인가’ 등을 보시오. ↩
- 당시 미국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은 시리아 독재자 바샤르 알 아사드를 “개혁가”라고 부르며 옹호하기도 했다. ‘Hillary Clinton’s uncredible statement on Syria’, Washington Post, April 4, 2011. ↩
- 각각 〈맞불〉 8호, ‘미국 제국을 충격에 빠뜨린 이스라엘의 패배’, 〈노동자 연대〉 133호 , ‘학살자 이스라엘, 또다시 패배하다’를 보시오. 많은 평화주의 단체들은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의 인명 피해가 더 컸다는 점만 보고 이스라엘의 정치적 패배와 그 중요성을 간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