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이광일의 《좌파는 어떻게 좌파가 됐나: 한국 급진노동운동의 형성과 궤적》
잘못된 개념 규정과 정치적 비관주의
1 의 저자 이광일은 현재 성공회대 연구교수이며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준비모임(사노준)과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로, 최근 《진보평론》, 《문화과학》, 〈참세상〉, 〈레디앙〉 등에 활발히 글을 발표하고 있다. 그가 이런저런 글에서 대체로 강조하는 공통된 주장은 민주주의를 대의제 민주주의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는 루소의 견해를 따라 민주주의를 “인민의 자기지배 실현”, 즉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의 동일성”으로 규정하고, 2 이런 정의를 바탕으로 “수탈·착취·배제·억압·차별에 대해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급진민주주의” 정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3 그리고 “먼 미래의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진행되고 있는 급진민주주의 실천 그 자체”가 바로 자신이 지향하는 “코뮌주의”라고 설명한다. 4
이 책5 을 수상하면서 발표한 수상소감문에서는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 민주주의가 자유주의자들의 언어가 아니라 바로 ‘좌파의 언어’였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하며 자신의 급진민주주의와 코뮌주의가 어떤 계보를 잇고 있는지를 드러냈다.
이 책은 저자가 ‘좌파’로 여기는 세력들(197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의 계보를 살펴보는 책이다. 얼마 전 일곡유인호학술상‘좌파’의 계보
저자의 견해를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전에 먼저 저자가 노동운동의 성격을 규정하려고 사용한 개념의 난점을 살펴보자.
저자는 노동운동을 ‘자유주의 노동운동’과 ‘급진노동운동’으로 구분한다. 그런데 이 개념들은 이데올로기와 실천과 사회적 구성(계급)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개념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위주로 정의한 개념이다. 먼저, ‘자유주의 노동운동’ 개념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6 노동조건 개선 문제를 “인권의 차원”으로 여기는 경향으로 정의한다. 7 저자가 보기에 ‘기독교 노동운동’과 유신체제 등장 전의 한국노총이 ‘자유주의 노동운동’에 속한다. 물론 이 시기에는 청계피복노조·동일방직노조·원풍모방노조·YH무역노조 같은 민주노조들도 있었지만, 저자는 이런 조직들이 “자유주의의 대행자인 기독교 노동운동의 헤게모니에 포섭되고 그 반경 속에서 실천”했을 따름이라고 주장한다. 8 그래서 저자는 심지어 이런 민주노조들도 “자유주의적 민주노조”로 정의할 수 있다고 본다. 9
저자는 1970년대의 ‘자유주의 노동운동’을 “‘정치와 경제의 분리’라는 발상에 입각해 … 노조를 좁은 의미의 경제적 이익대표조직으로 한정”하고물론 저자가 ‘자유주의 노동운동’의 특징이라고 여긴 것들이 당시 노동운동 조직들에서 흔히 나타났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엄혹한 군사독재 치하의 열악한 조건에서 노동자들이 처음 투쟁에 나서면서 겪는 자연스런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두고 ‘자유주의’라는 딱지를 붙여 애써 한계를 부각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또, 저자가 말한 특징들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예컨대, 저자는 당시 민주노조들이 ‘자유주의 노동운동’에 “포섭”돼 정치적 투쟁을 벌이지 못한 것처럼 말하는데, 박정희 정부의 몰락을 앞당긴 YH무역노조 여성 노동자들의 신민당사 점거 농성 투쟁만 보더라도 그런 주장이 맞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노동자들이 정치 투쟁을 벌인다는 생각으로 행동에 나선 것은 아니지만, 일단 투쟁이 시작되자 여러 요인들이 작용해 투쟁은 정치적 성격을 띠게 됐다. 그런 요인들 가운데, 특히 국가가 산업 전반에 깊숙이 관여해 노동계급을 면밀하게 통제하고 있었다는 점이 중요했다. 이 때문에 당시 노동자들은 약간의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 투쟁에 나서도 국가와 직접 충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0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정립하고 실천한 목적의식적인 조직적 운동”을 ‘급진노동운동’이라고 정의한다. 11 그는 1985년에 등장한 서울노동조합연합(서노련)과 1986년 등장한 인천지역노동자연맹(인노련)을 본격적인 ‘급진노동운동’ 세력으로 여기는데, 12 그 이유는 이 조직들이 “경제적 조합주의를 극복하는 데 기여”했고 “정치적 노동운동”을 펼쳤기 때문이라고 한다. 13 그 후에 서노련·인노련의 ‘대중정치조직’ 노선을 비판하며 제헌의회그룹CA과 주체주의자들이 등장했는데, 저자는 주로 CA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CA는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헤게모니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추진”했다. 14 저자는 이런 식의 정의에 따라 스탈린주의 정치를 받아들인 각종 정치 조직들, 예컨대 CA(제헌의회그룹), PD(민중민주주의그룹), 인천지역민주주의노동자연맹(인민노련), 민족통일민주주의노동자동맹(신新삼민동맹),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등을 ‘급진노동운동’으로 한데 묶는다.
‘급진노동운동’ 개념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저자는 “‘맑스주의’를 자신의 이념·실천의 준거로 삼고” 있으며그런데 저자는 암암리에 NL(민족해방그룹)을 ‘급진노동운동’이나 ‘좌파’의 범주에서 제외한다. 저자가 ‘좌파’에 포함시킨 그룹들이 소련판 스탈린주의를 수용했다면 NL은 북한판 스탈린주의를 수용한 차이가 있을 뿐인데도 말이다. 게다가 제국주의 문제에 대한 실천적 태도라는 측면에서 보면 앞서 거론한 ‘좌파’들보다 NL이 더 좌파적이기도 했다.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의 유물론적 분석은 말보다는 행동, 이론보다는 실천을 더 중시하므로 저자의 이런 약점을 하찮은 문제로 간과할 수는 없다.
‘87년 체제’의 “구조적 한계”?
15 저자는 6·29선언이 신군부의 후퇴라는 점을 지나가듯 언급하고는 전반적으로는 이 선언의 한계를 힘주어 강조한다. 16 그래서 6월 항쟁이(일부 성과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전체적으로 보면 사실상 패배였다고 평가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저자는 이른바 ‘87년 체제’가 어떻게 형성됐으며, 이 ‘체제’의 가장 큰 한계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본다. 저자가 무엇보다 주목하는 것은, 6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 요구를 쟁취했으나 ‘6·29선언’ 발표로 항쟁의 동력이 상실됐다는 점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이 이 목록[6·29선언의 내용]을 수용하며 투쟁 전선에서 재차 이탈하기 시작하자 이들의 영향력 아래 있던 … 일반 대중들이 군부독재 타도라는 슬로건으로부터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항쟁의 성과는 “최소민주주의의 목록 가운데 하나인 직선제 개헌이라는 절차적 민주주의 수준으로 축소”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87년 체제’가 신군부와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타협”으로 형성된 ‘체제’고, 이 ‘체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급진노동운동’을 배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17 저자는 이런 점들을 간과한 채 단지 “6·29협약의 한계”를 거듭거듭 강조한다. 18
물론 저자의 주장처럼 6·29선언과 직선제 개헌만을 항쟁의 성과로 보는 것은 협소한 관점이다. 그렇지만 저자가 더 넓은 관점으로 항쟁의 성과가 진정으로 무엇이었는지를 설명하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6월 항쟁에서 민중이 아래로부터의 투쟁으로 신군부를 굴복시켜 요구를 쟁취했다는 사실의 의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다. 당시 항쟁 참가자 다수는 6·29선언을 신군부의 굴복 선언으로 여겼다. 그래서 6·29선언 후 대중의 낙관과 기대와 자신감이 충만했던 것이다. 또, 항쟁에 참가한 노동자들이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7~9월 노동자 대투쟁에 돌입했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대중파업론》에서 지적했듯이, “정치 행동의 물결이 고양된 뒤에는 언제나 수많은 경제투쟁의 싹을 틔우는 기름진 퇴적물”이 남았던 것이다.移行’의 진정한 동력이었다. 물론 국가보안법의 존속이 보여 주듯이 이런 전환은 불균등하고 모순적인 방식으로 이뤄졌지만, 19 분명히 지난 20여 년 동안 언론·출판·결사의 자유가 대체로 확대됐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특히, 이런 변화는 지배자들이 노동조합이나 노동자 정당을 어쩔 수 없이 허용해야 할 만큼 조직 노동자들의 힘과 정치 의식이 성장해 왔음을 보여 준다.
저자는 자유주의 야당 세력이 이 항쟁의 동력을 약화시켰다고 비난한다. 물론 이들이 본래 운동의 구호인 ‘호헌 철폐, 독재 타도’, ‘독재 타도, 민주 쟁취’를 은근슬쩍 직선제 요구로 방향을 틀어 버렸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들을 너무 크게 보거나 해석해서 저자처럼 6월 항쟁의 진정한 역사적 의의를 애써 폄하해서는 안 된다. 저자의 견해와는 달리 6월 항쟁은 1945년 이후 남한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 즉 권위주의 정치 체제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치 제제로 전환하는 분기점이었다. 무엇보다, 이 항쟁의 여파로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치조직 들이 성장한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이런 조직들이야 말로 ‘민주화 이행 이런 변화의 동력과 과정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탓에 저자는 비관론에 빠져 버리는 듯하다. 1987년 이후 “‘국가’와 ‘시민사회’가 자신들[‘급진노동운동’]에 대응하여 ‘하나의 전선’을 형성”한 “통합국가”로 전환되자 ‘급진노동운동’은 이런 “통합국가의 포위를 극복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주장에서 엿볼 수 있듯이 말이다.민주노총의 출범 — “하향평준화”?
저자는 전노협에서 민주노총에 이르는 과정을 되돌아보면서 ‘급진노동운동’이 쇠퇴했다고 평가한다.
1987년 7~9월 노동자 대투쟁의 성과로 민주노조들이 대거 탄생했고, 이런 흐름의 결과로 지역노조협의회(지노협)와 지역·업종별전국회의(전국회의)가 차례로 결성됐다. 그리고 1989년에는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가 등장한다. 비제조업 노동조합들과 대기업 노동조합들이 가입을 보류해 전노협은 애초의 기대보다 작은 조직으로 출범했다. “전노협은 중소제조업부문 노동조합 노동자들을, [대기업] 연대회의는 대기업 노동조합 노동자들을, 업종회의는 전문사무직 노동조합의 노동자들을 주력”으로 삼았다. 그리고 결국, 전노협·업종회의·대기업 연대회의가 통합돼 1995년 민주노총이 출범한다.
21 저자가 말하는 “정체성”이란 전노협의 “전투적 조합주의”를 가리킨다. 22 그런데 저자의 견해에는 민주노총이 결성된 뒤에 전투성이 약해졌다는 가정이 담겨 있다. 이 때문에 저자는 민주노총의 출범을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그런데 저자는 민주노총 출범이 “대기업노조와 업종[노조들]이 노동조합운동을 주도하고 전노협의 ‘전투적 노동조합주의’가 해소·하향평준화되는 것을 의미”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전노협이 “‘연대’라는 명목 하에 한편으로 스스로의 정체성과 위상을 … 훼손당하는 과정”을 감수했다고 지적한다.그러나 민주노총의 출범은 조직 노동자들을 더 광범하게 단결시켰다는 점에서 환영해야 마땅한 일이었다. 특히, 당시 통합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방어하려면 더 광범하게 단결해야 한다는 것을 자각한 결과였으므로 더더욱 지지했어야 마땅하다. 또한, 저자의 비관적 전망·평가와는 달리 1996년 말~1997년 초에 벌어진 민주노총의 이른바 “노동법 파업”은 민주노총 조직 노동자들의 전투성이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님을 보여 줬다.
23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제3세계 노동운동의 특징을 살펴보면서 주장했듯이, 오직 노동자들의 경제적 불만과 국가 권력 문제를 서로 연관시켜 노동자들의 힘을 최대한 이끌어 내는 변혁적 대중 정당만이 이런 동요를 끝낼 수 있다.
저자는 ‘민주적 노동조합주의’나 ‘사회발전적 노동운동’에 반대해 ‘전투적 노동조합주의’를 지지하는데, 이는 완전히 옳다. 다만 이와 함께 전투적 노동조합주의의 한계도 볼 필요가 있다. 전투적 노동조합주의자들은 생산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발휘할 수 있는 힘을 이해했지만, 안타깝게도 첨예한 정치 문제를 회피하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포퓰리스트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기는 경향이 있었다. 게다가 이 나라의 노동계급은 민족 분단, 미국의 지배적 영향력, 군사독재 경험, 정치적 억압 지속 등의 요인들 때문에 포퓰리즘(국민주의, 민중주의) 정치를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노동조합주의자들이 이런 문제들에 대해 분명한 견해와 대안을 내놓지 못해 주도권을 쉽게 빼앗겼다. 물론 포퓰리스트들이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못하면 노동조합주의자들에게 다시 주도권이 넘어갔다. 그러나 다시 주도권을 쥐더라도 노동조합주의자들은 이처럼 포퓰리즘과 노동조합주의를 왔다갔다 하는 진자 운동을 끝낼 능력이 없었다.최근 벌어진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이 남긴 중요한 교훈도,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결합시키고 진정한 정치적 대안을 제공할 수 있는 정치적 노동조합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민주당과는 어떠한 타협도 할 수 없다며 ‘MB악법 반대 6·10범국민대회’에 참여하지 않으려 한 일부 전투적 조합주의 경향 조직들(저자가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는 사노준도 그중 하나였다)은 종파주의라는 정치적 무능력과 약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또, 이들은 공기업화(국유화) 요구라는 대안을 분명하게 제시하지도 못했다.
진정으로 필요한 “발상”
24 그래서 저자는 다른 논문에서도 “급진민주주의자들과 함께 ‘신자유주의 반대 동맹’을 구성하는 것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런 연대체에 참여할 수 있는 ‘급진민주주의자들’의 자격 조건을 논하는 부분에서 문제점이 드러난다. 저자는, “‘급진’이 권력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기에 중도에 위치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신자유주의를 추진하는 집단들과의 타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25 따라서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저자는 개혁주의 정당이나 NGO들을 연대 대상으로 보지 않는 듯하다.
저자는 1988년에 결성된 상설 연대체인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전노운협)의 경험을 거론하면서 정당뿐 아니라 연대체 건설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準변혁적 좌파들이 맺는 이른바 좌파 재결집체일 것이다. 물론 좌파 재결집체도 때때로 운동이 전진하는 데 유용하고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좌파 재결집체가 공동전선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공동전선은 합의되는 사안들을 둘러싸고 다양한 세력들이 광범한 연대를 구축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매우 효과적인 운동 건설 수단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동전선이야말로 변혁적 좌파가 개혁주의자들보다 투쟁을 더 효과적으로 이끌 수 있음을 대중에게 실천으로 입증할 수 있는 ‘무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운동과 정당을 모두 건설해야 한다는 “발상”을 진정으로 실현하려면 단지 좌파 재결집체의 필요성을만 역설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아마도 저자가 말하는 연대체는, 사회변혁가들과 개혁주의자들이 맺는 공동전선이 아니라 변혁적 좌파나 준26 책 전반을 통해 저자는 ‘급진노동운동’ 세력들에게 헤게모니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의 견해와 달리 최장집 등의 여러 논자들은 ‘급진노동운동’이 노동조합 운동에 헤게모니를 행사했을 뿐 아니라 이 때문에 민주주의 발전이 더뎠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급진노동운동이 최대강령주의와 비타협적인 전투성을 대중운동에 강제했기 때문에 대중의 이탈이 초래”돼 1987년 6월 항쟁 이후 “‘더 많은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데 장애”가 됐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27 이런 주장을 부당하게 생각하는 저자는 자신이 ‘급진노동운동’이라고 부른 세력들을 이런 왜곡에서 구출하려고 이 책을 저술한 듯하다.
저자는 이 책의 맨 앞에서, 1980년대에 “혁명을 말한 급진적인 노동정치세력들은 ‘혁명의 시대’에 걸맞은 헤게모니를 지니고 있었을까” 하고 물었다. 그리고 바로 이 물음이 “글을 쓰게 된 핵심적인 이유”라고 밝혔다.예리한 독자라면 저자가 ‘급진노동운동’의 성격을 말하는 구절들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저자가 과연 최장집 등이 문제 삼는 ‘제도권’ 밖 ‘거리의 운동’ 진영을 모두 구출하려 한 것일까? 진실은, 앞서 ‘급진노동운동’이 어떤 세력들인지를 살펴보는 데서 드러나듯이 최장집이 공격하는 대상보다 훨씬 더 작은 소규모 ‘좌파’들만을 구출하려 했다는 것이다. 즉, PD계열 세력들을 구출하는 것이 저자의 진정한 목표로 보인다.
그런데 저자처럼 ‘좌파’의 범위를 협소하게 규정하는 관점은 운동과 정당을 건설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데, 그리고 훨씬 더 나은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데 공동전선이 필수적인 지금 같은 시기에는 더더욱 그렇다. 지금 사회변혁가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노동계급의 정치적·조직적 독자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운동을 효과적으로 건설할 수 있다고 보는 “발상”이다. 물론 이 과제를 현실에서 추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치적 독자성’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자유주의 정치세력’에 ‘선을 긋지’ 못한 단체들을 모조리 제쳐버리는 태도로는 대중 운동을 효과적으로 건설할 수 없다.
주
- 이 책은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1999년)을 거의 수정하지 않은 채 출간한 것이다. ↩
- 이광일,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위한 몇 가지 테제들과 ‘보-녹-적 연대’’, 《진보평론》 41호(2009년 가을), 234~236쪽. ↩
- 이광일, ‘진보정당의 분화와 새로운 진보·좌파정치의 모색: 이념의 재구성과 숙고해야 할 몇 가지 문제들’, 《진보평론》 40호(2009년 여름), 151쪽. ↩
- 같은 글, 152쪽. ↩
- ‘민중경제학자’라 불리는 유인호 전 중앙대 교수(1929~92)를 기리는 ‘일곡기념사업회’와 ‘맑스코뮤날레’가 공동으로 주관해 주는 상이다. ↩
- 이광일, 《좌파는 어떻게 좌파가 됐나: 한국 급진노동운동의 형성과 궤적》, 메이데이(2008), 218쪽. ↩
- 같은 책, 127쪽. ↩
- 같은 책, 128쪽. ↩
- 같은 책, 117쪽, 128쪽. ↩
- 같은 책, 40쪽. ↩
- 같은 책, 388~389쪽, ↩
- 저자는 서노련과 인노련보다 먼저 등장한 전국민주노동자연맹(전민노련)이 ‘급진노동운동’의 성격을 띤 조직이었다고 말하지만, 얼마 못 가 탄압으로 와해된 이 조직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
- 같은 책, 211쪽. ↩
- 같은 책, 213~214쪽. ↩
- 같은 책, 248쪽. ↩
- 같은 책, 245쪽. ↩
- 로자 룩셈부르크, 《대중파업론》, 풀무질(1995), 57쪽. ↩
- 이광일, 《좌파는 어떻게 좌파가 됐나: 한국 급진노동운동의 형성과 궤적》, 249쪽. ↩
-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친북 좌파와 혁명적 좌파를 겨누고 있고 평범한 사람들이 정치적·시민적 권리를 자주 제약 받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국 사회는 완성된 형태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아니라 준準부르주아 민주주의 정치제제라고 규정할 수 있다. ↩
- 같은 책, 372~383쪽. ↩
- 같은 책, 327쪽. ↩
- 같은 책, 335쪽. ↩
- 흔히 신흥 공업국에서 나타나는 이런 패턴 때문에 경제와 정치의 분리를 전제로 하는 개혁주의 정당들의 발전이 촉진된다. 다시 말해, 경제는 노동조합 상층 간부들이 담당하고 정치는 개혁주의 정치인들이 담당하는 분업 구조가 나타나는 것이다. ↩
- 이광일, ‘87년 체제, 신자유주의 지구화 그리고 민주주의의 위기’, 《진보평론》 32호(2007년 여름), 12쪽. ↩
- 같은 글, 36쪽. ↩
- 이광일, 《좌파는 어떻게 좌파가 됐나: 한국 급진노동운동의 형성과 궤적》, 8쪽. ↩
- 같은 책, 50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