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현재의 이슈들
왜 페미니즘은 여성들을 실망시켜 왔는가? *
이 글은 미리엄 슈네어M Schneir가 편집 출판한 The Vintage Book of Feminism (London, 1994)의 서평이다.
1 하지만 이번 세기[20세기]가 거의 끝나 가는 오늘날 여성의 처지는 정말 암울하다. 영국 국민보험 가입 기준보다 소득이 적은 310만 명 중 74퍼센트가 여성이다. 이 여성들은 국민연금이나 실업급여를 신청할 권리조차 없다. [영국의 여성단체인] ‘포싯 소사이어티의’ 조사에 따르면, 영국 여성의 임금은 유럽에서 두 번째로 낮다. 2 ‘여성이 할 일’과 ‘남성이 할 일’이 따로 있다는 생각이 여전히 퍼져 있고, 여성은 대부분 호텔과 외식업, 청소, 돌봄 노동과 섬유 산업에서 일한다. 3 지난해 기회평등위원회는 반숙련 여성의 경우, 여성이 다수인 사업장에 종사하면 남성이 많은 사업장에서 일할 경우보다 소득이 30퍼센트 낮은 경향이 있음을 발견했다. 4
2000년이 되면 신규 일자리 열에 아홉은 여성의 몫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최근까지도 있었다.5 여성은 여전히 하원의원의 9퍼센트, 상원의원의 6퍼센트, 사법부 고위직의 7퍼센트, 대사의 3퍼센트, 고위 공무원의 9퍼센트, 기업 임원의 3퍼센트, 교수의 5퍼센트, 경찰서장의 0퍼센트를 차지할 뿐이다. 6
여성은 여전히 직장에서 성적 괴롭힘을 당한다. 예를 들어 셰필드대학교의 한 연구소가 법조인에 관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젊은 여성 변호사 4명 중 3명이 성적 괴롭힘을 문제라고 보고, 그중 40퍼센트는 성적 괴롭힘을 직접 당했다.7 영국의 영양 상태에 관한 최근 조사 결과는 많은 한부모 여성이 자녀가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자신은 굶는다고 밝혔다. 8 ‘노숙인 쉼터’는 보수당이 십대 한부모 여성을 ‘가정’으로 돌려보내고 노숙인 법을 폐지하려 하는데, 이 때문에 여성 노숙인 수가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9
‘아동 빈곤 행동 그룹’에 따르면, 1979년 이래로 빈곤층 인구 비율이 3배로 늘었는데, 그중 다수가 한부모 여성이었다.10 1989년 ‘일반 가구조사’GHS 결과에 따르면, 피부양 자녀가 있는 여성의 취업률이 증가해 왔다. 1979년에는 피부양 자녀가 있는 여성의 52퍼센트가 직장을 다녔는데, 1989년에는 그 수치가 59퍼센트로 올랐다. 5세 이하 자녀를 둔 어머니들의 취업률도 1983년 24퍼센트에서 1989년 41퍼센트로 증가했다. 11 오늘날 남성들은 부모 세대에 견줘 양육과 가사를 더 많이 분담한다. 그러나 여전히도 육아는 평등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1989년 ‘키즈클럽 네트워크’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방과후 프로그램과 휴일 프로그램은 각각 5~9세 아동의 0.2퍼센트와 0.3퍼센트만을 포괄하고 있다! 12 독립 싱크탱크인 데모스가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설문조사에 응한 여성의 다수가 가정과 일을 양립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원했다. 13
그러나 여성의 삶은 크게 바뀌기도 했다. ‘영국 가족 형성’이 실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더 많은 여성들이 출산을 미루기로 결심하고, 그중 일부는 아이를 아예 갖지 않겠다고 했다. 1947년생 여성 중에는 오직 20퍼센트만이 30세가 될 때까지 아이를 낳지 않은 반면, 1967년생 여성 중에는 33퍼센트가 30세가 될 때까지 아이를 낳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30세 이하 여성의 20퍼센트는 아이가 없다.문제는 다음과 같다. 여성차별을 끝장내려면 어떤 운동이 필요한가? 여성해방 운동, 특히 미국 여성 운동의 흥망성쇠를 알고자 한다면 《페미니즘의 최상급 책》The Vintage Book of Feminism이 유용하다.
‘이름 없는 문제들‘
이 책은 1950년대 여성차별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여성의 삶은 제2차세계대전의 여파로 바뀌어 왔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여성은 공장과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스스로 소득을 벌 수 있었고, 그러면서 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얻었다. 전쟁이 끝나면서 많은 여성은 이 모두를 포기하고 가정으로 돌아가 아이를 돌보게 되리라는 기대를 받았다.
14 프리단은 ‘이름 없는 문제들’을 말했다.
일부 여성, 특히 전문직과 중간계급 여성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종속적인 것에 불편함과 불만을 느꼈다. 미국 중간계급 여성들은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1950년대 중반 그 여성의 60퍼센트가 결혼을 위해 대학교를 중퇴했다. 《여성성의 신비》를 쓸 당시 베티 프리단은 남편, 아이, 가정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던 중간계급 배경의 삶에 염증을 느끼는 가정주부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이름 없는 문제는 오랫동안 미국 여성의 마음속에 묻혀 있으면서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문제이다. 그것은 20세기 중반 미국 여성들이 시달린 이상한 심란함, 불만, 갈망 같은 것이었다. 평범한 아내들이 홀로 이 문제들과 씨름했다. 침대를 정리하고, 장을 보고, 소파에 덮개를 씌우고, 아이들과 땅콩버터 샌드위치를 먹고, 아이들을 보이스카우트나 걸스카우트에 데려다 주고, 밤이 되면 남편 옆자리에 누울 때, 그녀는 ‘이게 전부야?’ 하고 마음속으로 묻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미국 여성 운동의 시작
1960년대의 여성해방 운동은 급진적이고 혁명적이었다. 당시의 투쟁 정신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기 때문이다. 시민평등권 운동은 20세기의 가장 훌륭한 흑인 지도자 마틴 루서 킹과 말콤 엑스를 배출했다. 여성 운동, 성소수자 해방 운동,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은 모두 “미국 자본주의가 뿌리부터 썩었다”는 한 가지 사실을 지목했다. 린지 저먼은 다음과 같이 썼다.
그러므로 미국 여성 운동은 진공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었다. 이 운동의 정치와 실천은 정말 확실히 미국 좌파의 산물이었다. 이 운동은 학생 정치에 적극 참여해 많은 사상을 습득한 여성들이 건설한 좌파적이고 급진적인 운동으로 시작했다.
1960년대 중반 가장 규모가 크고 영향력 있었던 신좌파 조직은 민주사회학생연합SDS이었다. 많은 여성이 민주사회학생연합 안에서 남성들의 조롱과 조소를 겪었다. 그 뒤에 ‘여성 문제’에 관한 성명이 1967년 협의회에서 채택됐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요구들이 포함됐다.
1. 남성과 여성 직원들로 구성되고 아이들과 직원들이 운영하는 공동 보육 시설 설립. 2. 여성의 자립을 위한 투쟁을 돕기 위해 우리는 여성이 언제 아이를 가질지 선택할 권리를 요구한다. 그러려면 (a) 나이나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여성에게 피임 정보와 피임 도구를 보급해야 하고 (b) 원하는 여성은 모두 합법으로 낙태 시술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성명은 다음과 같은 선언도 했다.
… 여성과 남성은 식민지 관계이므로 여성은 자신의 독립을 위해 싸워야 한다. 17
자본주의 사회, 특히 미국에서 여성의 지위를 분석한 결과, 우리는 여성과 남성의 관계는 식민지 관계임을 알았고, 우리 자신이 제3세계의 일부임을 깨달았다.
여성차별을 식민 지배에 비유하는 것은 극도로 혼란스러운 진술이지만, 이는 적어도 그들이 여성차별 문제에 관한 하나의 입장을 세웠음을 보여 준다.
그들의 생각이 왜 혼란스러웠는지를 이해려면 당시 신좌파의 정치를 조금 알아야 한다. 첫째, 당시 해방 운동들은 노동계급이나 노동계급 조직과 어떤 실질적 연계도 맺지 않았다. 둘째, 스탈린주의가 사회주의 사상에 파괴적인 영향을 끼쳤다. 셋째, 마오쩌둥주의의 슬로건인 ‘인민이 스스로 결정하게 하라’와 ‘인민에 봉사하라’는 당시의 많은 좌파에게 호소력이 있었다. 섀런 스미스는 신좌파의 정치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베트남에서 미국 제국주의가 한 구실, 낮은 수준의 계급투쟁, 학생 운동에서 중간계급이 지배적 다수를 차지한 것 모두 1960년대에 성장한 신좌파의 정치 의식이 형성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대다수 급진적 학생들은 노동계급이 [체제에] ‘매수’됐다고 보고 잠재적 동맹 세력으로조차 보지 않았다. 그 대신에 그들은 사회 변화를 위한 계급투쟁이 아닌 대안을 찾았다. 실제로 그들 다수는 미국으로부터 눈길을 돌려 반제국주의 운동들에서 사회 변화를 위한 희망을 찾았다.1967~68년 미국의 몇몇 도시에서 신좌파 여성들이 성차별을 토론하고자 모였다. 미리엄 슈네어는 급진적 여성들이 ‘근본적 페미니즘’ 진영과 ‘정치꾼’ 진영으로 분열하면서, 단결된 여성운동이라는 희망이 어떻게 금세 산산조각 났는지를 묘사했다.
분리주의 페미니즘
1960년대 후반 일부 여성들이 남성은 여성차별에 맞설 해결책의 일원일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근본적 페미니스트라고도 알려진 이 분리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해방이라는 목표에만 헌신하는 분리된 운동을 요구했다. 그들의 몇몇 실천은 현재까지도 악명이 높다. 예를 들어, 1968년 대략 200명이 애틀랜틱 시에서 열린 미스 아메리카 미인 대회에 항의해 벌인 시위가 있다. 그들 정치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것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는 말인데, 이는 항의 시위 동안 그들이 ‘자유의 쓰레기통’을 설치하고는 미인 대회 참가자들에게 ‘여성 고문 도구’인 헤어롤, 거들, 브라, 하이힐 등을 버리도록 권유한 것에서 잘 드러났다. 여성해방 운동가들에게는 이내 곧 ‘브라를 태우는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슈네어의 책에도 수록된 ‘레드스타킹 선언문’은 근본적 페미니즘 사상의 기본 원리를 잘 요약하고 있다. 다음과 같다.
우리는 여성차별의 행위자와 남성을 동의어로 본다. 남성 우월주의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기본적인 지배 형태다. 온갖 형태의 착취와 차별(인종차별, 자본주의, 제국주의 등)은 남성 우월주의가 확장된 것이다.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 소수 남성이 나머지 모두를 지배한다. 역사 내내 모든 권력 구조는 남성 지배적이었고 남성 중심적이었다. 남성은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제도 일체를 통제해 왔으며, 이 통제를 물리력으로 뒷받침해 왔다. 남성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여성이 열등한 지위에 머물도록 했다. 남성은 모두 남성 우월주의로부터 경제적·성적·심리적 득을 본다. 남성은 모두 여성을 차별해 왔다.
개인의 감정을 이론 수준으로 격상시킨 그들의 반지성적 사고방식과 ‘의식 고취’라는 이름의 여성해방 해결책은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진술됐다.
… 의식 고취는 … 해방을 위한 계획이 우리 삶의 구체적 현실에 기반을 두게 할 유일한 방법이다. 21
우리는 개인의 경험과 그 경험에 대한 감정을 우리의 공통된 상황에 대한 분석의 기초로 삼는다. … 현재 우리의 주된 임무는 경험을 공유해 여성 계급의 의식을 고취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는 근본적 문제가 있었다. 평균 9개월간 지속되는 의식 고취 모임 탓에 여성들을 정치 활동에서 멀어졌고, 여성 단체들은 내향적 개인주의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슬로건은 여성들이 세계가 아니라 자기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도록 했다. 또 모든 남성을 여성 차별의 원인으로 비난하는 이론은 진정한 해방을 위해 함께 싸우고자 하는 남성으로부터 여성들을 고립시켰다.
분리주의 정치가 근본적 페미니즘 조직들을 분열로 이끈 것은 필연이었다. 결국 흑인 여성이 백인 여성을 억압자라고 고발하고, 동성애자 여성이 이성애자 여성을 ‘적’과 동침한다는 이유로 고발하게 됐다. 가장 큰 골은 동성애자 여성과 이성애자 여성 사이에서 벌어졌다. 일부 동성애자 여성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슬로건과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을 차별한다는 이론을 동성애자 라이프스타일을 정치적으로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았다. 1972년 ‘근본적 레즈비언’이라는 그룹은 ‘여성으로 인식되는 여성’이라는 문서를 썼다.
… 여성과 관계를 맺은 여성의 우위, 서로서로 새 의식을 창조하는 여성의 우위가 여성해방의 핵심이다. 22
이 의식은 모든 사람들이 따라야 할 혁명적 힘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의식이 유기적 혁명이기 때문이다.
레즈비언 되기가 혁명적인 정치 활동이라는 관념은 극도로 배제적이다. 남성을 좋아하거나 남자 아이가 있는 여성들이 모두 남성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부 여성은 남성과 완전히 분리된 대안적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할 수 있을지 몰라도, 대다수 여성들에게 그것은 몹시 비관적이고 반동적인 태도이고, 많은 여성을 여성 운동으로부터 소외시키는 태도이다.
1970년대 중반과 1980년대의 성 정치와 사회주의 페미니즘 1970년 중반까지 여성 운동에서 득세한 페미니스트들은 가장 좁은 의미의 성 정치에 몰두해 있었다. 이는 다음 세 가지가 낳은 결과였다. 첫째, 개인적 정치와 의식 고취에 몰두하는 것은 사회 변화의 필요성보다는 개인적 영역을 더 강조했다. 둘째, 많은 여성들에게 혁명적 방식의 사회 변화를 추구하도록 영감을 줬던 1960년대의 투쟁적 운동들이 모두 대체로 쇠퇴했다. 셋째, 남성 일체를 문제로 보는 가부장제 이론이 확립됐다. 남성 일체를 문제의 원인으로 보는 이론은 어떻게 남성이 모든 여성에 대한 권력을 계속 행사할 수 있는지 설명해야 했다. 수전 브라운밀러에 따르면, 폭력과 포르노와 강간이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수단이었다. 브라운밀러는 그의 책 《우리 의지에 반하여: 남성, 여성, 강간》에서 강간을 저지르는 자들은 “인류가 목격한 가장 거대하고 가장 오래된 전투에서 사실상 최전선에 선 남성 특공대이자 테러리스트 게릴라로 복무해 왔다”고 말하고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강간은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을 계속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의식적 위협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24 브라운밀러 이론의 반동적 성격은 이 이론을 받아들인 안드레아 드워킨과 캐서린 맥키넌이 우익과 협력해 포르노를 검열하려 했을 때 드러났다. 25 사회주의자들은 포르노에 반대하지만 검열은 포르노를 없애는 올바른 전략이 아니다. 왜냐하면 검열은 성을 다루는, 특히 페미니즘, 레즈비언, 게이를 다루는 모든 것을 없애 버리고 싶은 편견으로 가득 찬 자들의 손에 있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26
이 이론에 실망한 영국의 페미니스트 린 시걸은 이 이론의 결함을 한 문장으로 밝혔다. “페니스보다 더 강력한 무기가 없단 말인가?”1970년대 초반에 시작된 여성 운동 두 번째 물결의 주요 경향은 사회주의 페미니즘이었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두 가지 투쟁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나는 자본주의를 제거하기 위한 경제적 투쟁이고 다른 하나는 성차별적 사상을 제거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투쟁이다.
1969년 《빵과 장미》를 쓴 캐시 맥어피와 머나 우드는 의식 고취를 통한 개인적 해방의 불충분함을 깨달았고, 근본적 분리주의가 남성과 여성이 지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다르다는 생각을 강화하는 생물학적 결정론의 한 형태라고 옳게 비판했다. 맥어피와 우드는 경제적 차별에 맞서는 투쟁(빵)과 성차별의 심리적 효과에 맞서 싸우는 투쟁(장미)을 동시에 펼치기를 원했다.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차별이 작동하는 방식을 잘 묘사했다. 슈네어의 책에도 그들의 글이 실렸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가정에서 남성의 구실은 자본주의의 영속화를 위해 꼭 필요한 가치들인 공격적 개인주의, 권위주의, 사회 관계에 대한 위계적 견해를 강화한다. 이 체계에서 우리는 우리보다 약한 자들에게 잔인하게 굴면서 우리의 두려움과 좌절감을 해소하도록 배운다. 작업복을 입은 남성은 돼지로 변한다. 공장의 감독자는 라인에 있는 노동자를 위협한다. 남편은 자기 아내, 자녀, 강아지를 때린다.어쩌면 당연하게도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영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영국의 여성해방 운동은 시작부터 노동계급 투쟁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영국에서는 높은 수준의 계급투쟁이 일어났는데, 1968년 포드 공장 여성 노동자의 투쟁, 1970년 리즈 의류 노동자의 투쟁 등 여성의 투쟁이 그 일부였다. 여성들은 노동계급 투쟁이 자신들의 해방을 위한 수단이라고 여겼다. 당시 여성 운동의 네 가지 요구는 노동계급 지향성을 반영했다. 그 요구는 다음과 같았다.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무료 낙태와 피임을 제공할 것, 교육·고용 기회의 평등을 보장할 것, 24시간 운영하는 무료 보육 시설을 제공할 것,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제공할 것.
29 가부장제 이론은 여성이 역사 내내 남성에 의해 차별받아 온 것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이고, 마르크스주의는 계급 착취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이라는 것이다. 사회주의 페미니스즘은 별개의 투쟁 두 개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사람들의 의식 변화에 주안점을 두고 여성차별을 끝내고자 하는 여성 운동이다. 다른 하나는 경제적 변화에 주안점을 두고 계급 체제를 끝내고자 하는 노동계급 운동이다.
슈네어의 책은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좋은 사례들을 잘 보여 준다. 줄리엣 미첼은 영국에서 출간되는 잡지 《뉴레프트 리뷰》에서 사회주의 페미니즘 사상을 자세히 설명했다. 미첼은 여성차별을 경제와 사회에서 시작해 설명할 수 있다는 마르크스주의 사상에 반대했다. 그 대신 여성차별은 경제적 생산수단이나 생산관계와는 별도로 검토해야 하는 특수한 구조물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경제 양식과 가부장제라는 이데올로기 양식 두 가지 자율적 영역을 다루고 있다.”사상 변화를 위한 투쟁과 경제 변화를 위한 투쟁을 별개의 투쟁들로 보면, 노동계급 남성과 여성이 나란히 함께 싸우면서 자신들의 오래된 태도와 행동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고, 낡은 사상들을 떨쳐 버리기 시작한다는 점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런 투쟁들 속에서 남성은 여성의 권리를 지지하도록 설득될 수 있다. 낙태권 공격에 맞서 일어난 가장 거대한 시위 중 하나는 1979년 영국노총TUC이 [낙태권을 제약하려 한] 코리 법안에 반대해 조직한 시위였다. 이런 종류의 가장 최근 사례를 언급하면, 몇 년 전 옥스퍼드 지역 우편물 분류소의 우편 노동자들이 관리자에게 성적 괴롭힘을 당하는 아시아계 여성 청소 노동자들을 방어하며 벌인 파업이 있다.
두 투쟁을 별개의 것으로 볼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사상을 실재로 바꾸려면 사회의 부를 통제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혀 가능성이 없는데도 남성과 여성에게 무상 보육을 요구하자고 가르치는 것은 불충분하다. 거대한 부를 필요한 곳에 제대로 사용하도록 사회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 현대의 페미니즘 운동이 일어나기 훨씬 전이었던 1917년에 러시아 혁명이 바로 그런 일을 했다. 러시아의 노동자 국가는 무상 탁아소, 필요할 때 언제든지 제공되는 낙태, 일방의 선언으로 이뤄지는 이혼, 공공 세탁소와 공공 식당을 도입했다.
가부장제 이론은 여성차별의 뿌리가 계급 사회에 있다는 사회주의적 설명을 거부하는 이론이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자신의 책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계급 사회가 등장하면서 여성차별이 가족과 함께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현대의 노동계급 가족은 미래 세대 노동자를 길러 내는 저렴한 방법을 제공하기 위해, 또 현재 노동력의 일상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생겨났다.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자본가들은 이런 ‘사사화私事化된 재생산’에 의존하고, 제2차세계대전 ― 제2차세계대전 때는 소수 군수공장이 사내 탁아소를 갖췄다. 물론 소수 여성만이 이용할 수 있었고 전쟁이 끝나면서 재빨리 사라졌다 ― 같은 아주 긴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자본가들이 그 비용을 사회화할 가능성은 극도로 낮다.
지배계급은 가족을 유지하려고 일련의 사상을 계속 유지시킨다.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는 여성의 주된 사회적 역할은 어머니가 되는 것이고, 남성의 주된 사회적 역할은 가족의 부양자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부모 가족, 혼외 관계, 동성애 등은 모두 부르주아 가족 이데올로기를 위반하는 일이다. 사사화된 재생산에서 가족이 하는 구실과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이데올로기는 직접적 관계가 있다. 줄리엣 미첼처럼 경제 영역과 이데올로기 영역을 별개로 보면, 여성차별에 맞선 투쟁과 체제에 맞선 다른 투쟁도 별개의 것으로 보게 된다. 사회주의자는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은 여성차별을 영속화하는 계급 사회를 제거하는 투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투쟁이라고 본다.
1990년대 중간계급의 의제
미리암 슈네어는 ‘전 세계적 여성 가족’이 존재한다고 보는데, 이는 현실에서 입증되지 못할 것이다. 중간계급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됐을지는 모르겠지만, 노동계급 여성은 여전히도 적절한 보육, 안전한 낙태, 아이들을 위한 음식, 자신들의 경제적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계급의 차이 탓에 모든 여성들의 단결된 운동은 항상 불가능했다. 예를 들어, 1975년 유엔이 개최한 첫 여성 총회는 참석한 여성들 사이의 계급적 차이가 매우 크다는 것을 뚜렷이 보여 줬다. 볼리비아 주석 광원의 아내인 도미틸라 충가라와 같은 제3세계 출신 여성은 총회 참석자들 사이의 계급적 차이를 들춰 냈다.
매일 아침 당신은 다른 옷을 입고 나타나지만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매일 당신은 고급 미용실에서 쓸 시간과 돈이 있는 사람들처럼 화장하고 곱게 머리를 하고 나타나지만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매일 오후 문 앞에서 당신들을 기다리다 집에 데려다 주는 기사들을 보지만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 부인들, 이제 말해 보세요. 당신들의 처지가 내 처지와 조금이라도 비슷합니까? 내 처지가 당신의 처지와 조금이라도 비슷합니까? 그렇다면 우리 둘 사이에 어떤 평등을 말할 수 있을까요? 당신과 내가 같지 않다면, 당신과 내가 이렇게 다르다면요?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가 같은 여성이라 할지라도 전혀 평등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오늘날 미국에서 멕시코계 미국 여성은 백인 중간계급 여성의 가사도우미로 고용된다.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옷 한 벌 사는 데 쓰는 돈은 복지 급여를 받는 한부모 여성의 1년치 생활비이다.
31 여성에게 동등한 고용 기회를 보장하는 것을 국가 정책으로 삼도록 한 1964년 제정 시민평등권법 ― 그러나 1972년이 돼서야 시행됐다 ― 같은 법의 제정이 여성해방으로 나아가는 데서 기념비적 사건이긴 했지만, 저임금과 성차별을 끝내지는 못했다. 영국에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명시한 법률이 20년이나 존재했는데도 여전히 전일제 여성의 주간 임금은 남성의 72.2퍼센트에 그친다. 시간제 여성 노동자의 시급은 평균적으로 전일제 남성 노동자 시급의 59퍼센트이다. 보수당 정부의 임금위원회 폐지로 타격을 입은 사람 네 명 중 세 명이 여성이었다.
여성 운동에는 초기부터 중간계급 진영이 있었다. 미국에서는 전미여성협회NOW가 중간계급 여성을 대변했다. 경영인과 전문직 여성이 전미여성협회에 가입했다. 전미여성협회는 고용, 법 제도, 교육, 주류 정치에서의 평등에 주력했다. 이 여성들은 여성이 경제에서 사활적으로 중요한 구실을 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지배계급 중 좀더 장기적 안목을 가진 자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 지배계급의 일부는 노동계급 여성이 ‘이중의 굴레’로 고통받는 것에 상당히 만족했다. 여성은 직장에서 일하면서도 자녀도 돌봐야 했다. 오늘날 미국 여성 운동에서 유력한 쟁점은 대법원과 의회에서 자리를 차지하는 데 초점을 둔 명백히 중간계급적인 의제들이다.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이 개혁입법을 위한 로비 활동과 주류 정치 구조로의 진입을 위한 활동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대통령 빌 클린턴은 1993년에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미국 연방 대법원의 두 번째 여성 대법관]를 대법관에 임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서굿 마셜[미국 대법원의 첫 번째 흑인 법학자]의 대법관 임명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권리를 위한 행보였듯이, 긴즈버그의 대법관 임명은 여성 운동을 위한 것이다.”33 1960년대의 염원과 포부를 내버린 페미니스트는 쇼트만이 아니다. 애너 쿠트는 이제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가족을 포용한다.
영국에서 중간계급 의제는 예를 들어 노동당 소속 의원인 클레어 쇼트의 행보로 대변됐다. 쇼트는 내각과 의회에서 여성 비율을 늘리는 것에 중점을 둔다. 그러나 노동계급 여성에게는 최저임금을 4.15파운드로 인상하고 무상 보육 시설을 확충하는 것이 훨씬 큰 이득인데도, 노동당은 그 어느 것도 약속하지 않는다. 클레어 쇼트는 그런 종류의 운동에는 등을 돌렸다. “과거에 여성들의 의제는 칭얼거리는 의제였다.”쇼트는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 진짜 필요한 것은 “정부에 … 강력한 도덕적 리더십을 제공할 수 있는 종류의 친가족적 의제이다.”… 그런데 아이들도 아버지가 필요하다. 생활비와 정서적 지탱을 위해서 말이다. … 가족이 더 강화돼야 한다면, 우리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과 책임을 재정의해야 한다.
여성은 사정이 나빠질 때 누군가에게 의존할 수도 강인해서 자립적일 수도 있는 기회, 누군가와 서로 돌보고 지탱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35 이런 페미니스트들이 보육 시설 확충이나 임금·일자리 개선 등의 요구와 담을 쌓으리라는 것은 꽤나 분명해 보인다.
다른 페미니스트들은 정치적 변화를 위해 요구하고 투쟁하는 것을 그만두고 학자가 됨으로써 노동계급 여성이 겪는 어마어마한 불평등을 잊어 갔다. 다이애나 쿨은 페미니스트 저술가들이 쓴 최신작 10권을 서평하면서, 그들이 “사회구성주의자, 실재론자, 해체주의자, 푸코주의자, 정신분석주의자(라캉주의나 대상관계 이론) 등”임을 알게 됐다고 했다.1960년대 후반에 시작된 여성해방 운동은 혁명적 투쟁 강령을 제시했지만 안쓰러운 상태로 끝이 났다. 미리암 슈네어의 책은 여성해방 운동의 흥망성쇠를 추적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여성해방을 성취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여성차별을 끝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해방을 얻고자 한다면 사회주의 조직을 고려해 봐야 한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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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Gill Hubbard, ‘Why has feminism failed women?’, International Socialism, No. 71(June 1996)
↩
- The Guardian, 23 March 1995. ↩
- The Guardian, 24 April 1995. ↩
- The Guardian, 20 June 1995. ↩
- 같은 글. ↩
- The Guardian, 10 April 1995. ↩
- The Guardian, 15 February 1995. ↩
- The Guardian, 24 April 1995. ↩
- The Observer, 21 January 1995. ↩
- The Guardian, 24 April 1995. ↩
- The Guardian, 12 April 1995. ↩
- The Guardian, 31 October 1990. ↩
- J. Lavenduski and V. Randall, Contemporary Feminist Politics. Women and Power in Britain (Oxford 1993)에서 인용. ↩
- The Guardian, 6 March 1995. ↩
- B. Friedan, The Feminine Mystique, in M. Schneir (ed.), The Vintage Book of Feminism (London 1994), p53. ↩
- 같은 책, p50에서 인용. ↩
- L. German, The Rise and Fall of the Women’s Movement, International Socialism 37 (1988). ↩
- An SDS Statement on the Liberation of Women, in M Schneir, 위의 책, pp105–106. ↩
- S. Smith, Mistaken Identity – or Can Identity Politics Liberate the Oppressed?, International Socialism 62 (1994). ↩
- Toward a Female Liberation Movement, M. Schneir, 위의 책, p109. ↩
- Redstockings Manifesto, in M. Schneir, 위의 책, p127. ↩
- 같은 글, p128. ↩
- Radicalesbians, The Woman-Identified Woman, in M. Schneir, 위의 책, p165. ↩
- S. Brownmiller, Against Our Will: Men, Women, and Rape, in M. Schneir, 위의 책, p252, p272. ↩
- L. Segal, Is the Future Female? (London 1987), p101. ↩
- A. Dworkin Pornography: Men Possessing Women, in M. Schneir, 위의 책, p421. ↩
- 포르노와 강간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대응에 대해서는 S. McGregor, Rape, Pornography and Capitalism, International Socialism 45 (1989)를 보라. [국역: ‘성폭력, 포르노, 자본주의’,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과 성차별, 성폭력》, 2017, 책갈피] ↩
- K. McAttee and M. Wood, Bread and Roses, in M. Schneir, 위의 책, pp134–135. ↩
- 영국 여성운동의 부상과 몰락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L German, 위의 책을 보라. ↩
- J. Mitchell, Psychoanalysis and Feminism (London 1975). ↩
- D. Barrios de Chungala with M. Viezzer, Let Me Speak, Monthly Review Press (New York & London 1978). ↩
- The Report of the President’s Commission on the Status of Women, in M. Schneir, 위의 책, p40. ↩
- R.B. Ginsburg, On Being Nominated to the Supreme Court, in M. Schneir, 위의 책, p481. ↩
- The Guardian, 24 April 1995. ↩
- L. German, No Place Like Home?, Socialist Review, December 1995에서 인용. ↩
- D. Coole, Whither Feminisms?, Political Studies, XLII (1994), pp128–1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