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미·중 무역 전쟁과 제국주의
세계화는 끝나는가? *
필자인 마틴 업처치는 영국 런던의 미들섹스대학교 국제고용관계학 교수이다.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하면서, 금융 엘리트 집단 사이에서는 세계경제가 보호주의라는 새로운 시대로 선회하기 시작했다는 공포심이 확고해졌다. 대선 캠페인 동안 트럼프는 다른 선진국의 우익 포퓰리즘 정당들을 그대로 흉내 낸 미사여구를 늘어놓았다. 보호주의는 가장 고약한 형태로 나타났는데, “국경 남쪽”의 멕시코인 등 라틴아메리카인들을 겨냥한 반反이민 담론과 결합한 것이다. 이런 메시지는 불만에 찬 노동자들의 마음을 끌기 위해 고안됐으며, 신자유주의 엘리트들의 자유무역 정책 때문에 사용자들이 더 값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나가서 일자리가 줄었다는 주장이 팽배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엘리트들과도 거리를 두기 위한 것이었다. 민주당은 이 모든 잘못의 원흉이라는 주장을 딱히 반박할 처지가 못 됐고, 그래서 이 메시지는 트럼프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1 2017년 5월 마틴 울프는 〈파이낸셜 타임스〉에서 트럼프가 “다자 간 협정을 양국 간 협정으로, 자유주의를 보호주의로, 예측 가능성을 예측 불가능성으로 대체하는 데 여념이 없는 듯하다”고 썼다. 2
트럼프는 취임 이래 보호주의를 향해 나아가면서 워싱턴 정계에서 심각한 의견 대립을 초래했다. 트럼프는 (중국과의 경쟁을 겨냥해 만들어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했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을 추진하고, 미국과 유럽연합EU 간의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 논의를 중단할 계획이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무역 정책을 둘러싼 백악관 내” 의견 대립은 “내전”에 견줄 만한데, “도널드 트럼프와 사이가 가까운 경제 국수주의자들이 [자유] 무역을 옹호하는 월스트리트 출신 온건파들과 맞붙어 정부 내에서 (한 고위 공무원이 붙인 말에 따르면) ‘화염 같은 회의’가 벌어졌다.”3 트럼프는 2017년 6월 2일에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한 것도 파리가 아니라 [러스트벨트에 속하는] “피츠버그”를 방어하기 위한 것인 양 치장했는데, 이는 경제적 국수주의 이면에 있는 공화당 내의 오랜 “고립주의” 흐름을 그가 심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4 트럼프는 이런 행동들을 하면서도 EU와 새로운 무역 협정을 (TTIP와는 별도로) 맺을 가능성을 시사했고 중국과도 그랬다. 트럼프 정책의 이런 모순과 모호함은 그가 기존 질서를 순전히 파괴하고 보호주의로 후퇴하기보다는 무역 협정을 재편하는 중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전략을 둘러싼 이런 분열은 금방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한 행동은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지식갤러리, 2012)이라는 책을 쓴 피터 나바로를 백악관 신설 국가무역회의 위원장으로 앉힌 것인데 미국-중국 무역 정책을 겨냥한 것이다. 새 정책의 핵심은 (특히 중국과 연관된) 국제 공급망을 “본국으로 되돌리는” 것과 이를 대신할 미국 “국내” 공급망을 건설하는 것이다.5 이렇듯, “세계화의 종말”이라는 명제는 태평성대(“역사의 종말”)를 약속한 후쿠야마 추종자들을 밀어내면서 등장했다.
보호주의의 새 유행은 트럼프의 정책에 그림자처럼 깔려 있을 뿐 아니라, 프랑스의 국민전선 같은 유럽의 파시스트와 우익 포퓰리스트의 정책에도 반영돼 있다. 이런 보호주의적 사고방식과 나란히 제기되는 진술이 있다. 기존 형태의 세계화는 끝나고 새 시대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사실, 세계화가 종말을 맞았다는 주장은 10년도 더 지난 것이다. [2001년] 9·11 이후로 몇몇 평론가들은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1989년에 쓴 “역사의 종말?”에서 약속된 [냉전 후의] 새로운 자유주의 세계 질서가 수명을 다했다고 주장해 왔다.6 퍼거슨은 과거 “세계화”가 전쟁과 경제적 국수주의로 무너져 내린 때인 20세기 초와 오늘날의 정치적 사태 전개를 동일시한다. 존 랠스톤 소울은 (그가 세계화의 “절정”으로 보는) 1995년 이후에 국수주의와 민족·종교 근본주의가 자유주의 세계 질서라는 꿈을 대부분 짓밟아 버려, 정치적·경제적 영역에서 분열이 두드러지게 됐다고 주장하면서, 퍼거슨의 접근법을 거든다. 7
보수주의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이 논쟁에서 두각을 보인 인물이다.8 이 책은 해외직접투자FDI의 압도 다수가 북반구와 남반구 국가 사이가 아니라 부유한 국가들 사이에서 이뤄졌으며, 대개는 다국적기업 내에서 이뤄졌다고 지적함으로써 국민국가의 종말을 예견하는 “초세계화” 명제에 분명하게 의문을 나타냈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세계화의 효과에 대해 의심과 이의를 제기하는 새로운 시기를 목도하고 있고, 이전 수십 년의 추세가 뒤집히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경제 데이터는 그 흐름을 자극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보수적인 이런 정치적 평가 말고도 더 신중한 경제적 비판이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폴 허스트와 그래햄 톰슨이 1999년에 쓴 《세계화를 의심하다》이다.9 또 다른 좌파 인사 볼프강 슈트렉은 “트럼프주의”의 등장과 이에 상응하는 유럽 민족주의/포퓰리즘의 발흥이 “중도 좌파”와 그들이 시장에 기반해 추진한 전 지구적 국제주의 프로젝트가 붕괴한 결과라며 탄식하는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당연히 세계화에 대한 의심을 표현하는 좌파도 있다. 예컨대 제임스 미드웨이(영국 노동당의 예비 재무장관 존 맥도넬의 경제 고문이기도 하다)가 있다. 미드웨이는 세계화의 종말에 대비해 국가 주도의 사회 기반 시설 투자 프로그램을 시행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1990년대 중도 좌파는 경제성장을 회복하고 자유화된 세계시장에 대한 공적 금융을 강화하는 데 희망을 걸었다. 산업과 사회의 구조조정을 위한 노력이 전 지구적으로 이어졌다. 국제적 경쟁은 국민경제가 더 효율적으로 되도록 압력을 가했다. … 쓴 약이었지만 듣질 않았고 중도 좌파는 정치적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선진 자본주의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낙오자가 늘어나자 정치 모험가들은 기회를 감지하고 공적 무대에 뛰어들었다.
그러면 세계화 추세의 대차대조표는 어떻게 되는가? 이 물음에 답하려면 먼저 몇몇 통계적 추세를 살펴본 후 과거와 오늘날 세계화의 정치경제학을 따라가 봐야 한다.
세계화의 추세 (문화나 정치보다는) 순전히 구조적·경제적 용어로서, 세계무역 성장률이 세계 재화·서비스 생산 성장률보다 클 때 세계경제가 “세계화” 국면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비율[무역 성장률/재화·서비스 생산 성장률]이 1보다 큰 것은 세계경제가 점점 더 통합되고 있음을 가리킬 텐데, 해외무역·해외직접투자가 내수 시장용 재화·서비스 생산을 점점 더 많이 대체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 반대라면[무역 성장률이 생산 성장률보다 작다면], 이는 대체로 보호주의와 수입대체 생산이 주름잡는 시기가 왔다는 것을 가리킨다. 제1차세계대전과 제2차세계대전 사이 기간이 그랬다. 강대국들 사이의 지정학적 긴장이 빠르게 증가함에 따라 1914년에 시작된 경제적 국수주의 시기에는, 관세가 높아지고 외환 통제가 도입됐다. 1913년과 1950년 사이 세계 무역 증가 속도는 세계 재화·서비스 생산량 증가 속도의 반밖에 되지 못했다. 대공황과 제2차세계대전을 부추긴 무역 쇠퇴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12 제2차세계대전 직후부터 추세가 뒤바뀐 것은 분명 소련 블록 바깥에서 자본주의 질서를 재건하고자 한 미국의 정치적·경제적 전략 덕분이었다. 전쟁과 뒤이은 냉전이라는 정치적 동력 덕분에 브레튼우즈 협정이 등장해서 무역 개방과 투자에 친화적인 세계 금융 시스템이 창출됐고, 그 다음에는 (서)유럽을 재건하기 위한 마셜 계획이 나왔다. 그 이후 “정점에 이른” 세계화의 변화와 전개는 조금 뒤에서 다루겠지만, 일반적으로 말해서 세계경제의 팽창은 재화·서비스 생산·교역의 세계화와 나란히 진행됐다.
하지만 1945년 이후 세계경제는 더 통합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1949년부터 2008년 금융 붕괴가 일어나기 전까지 세계무역은 연평균 10퍼센트씩 성장했는데, 이는 세계 생산 성장률의 갑절이다.이 논의에서 점점 중요해지는 한 가지 특징은 여러 극동지역 경제의 소득과 부가 “서양”의 그것과 점점 비슷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수렴 현상은 일본이 떠오른 1980년대에 시작됐고, 이후 한국·대만·싱가포르의 성장이 뒤이었으며 이제는 중국 차례다. 마틴 울프는 다음과 같이 썼다.
최근 수십 년간 가장 중요한 변화는 고소득 국가가 세계경제 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어 왔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고소득 경제가 부와 권력 면에서 세계의 나머지를 뛰어넘었던 19세기와 20세기 초의 “거대한 격차” 추세가 몹시 빠르게 뒤집히고 있다. 과거에 격차가 있었다면, 지금은 “거대한 수렴”이 있다. 그렇지만 제한된 수렴이기도 하다. 변화는 대부분 아시아가 부상한 것과 관련돼 있으며, 가장 중요하게는 중국이 부상한 것이다.
이런 “동양으로부터의 위협”이 오늘날 세계화의 성격에 대한 관점을 바꿨을 뿐 아니라, 미국 엘리트 집단 일부가 보호주의적 입장으로 뒷걸음질치도록 자극한 듯하다.
14 선진국에서는 2퍼센트 미만으로 고착화됐다. 15 더 중요하게는, 데이터를 보면 2008년 이래 세계무역과 (주요국 경제의) 해외 금융 자산이 세계 총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저공비행을 하다가 이따금 추락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6 이런 후퇴는, 투자자들의 위험 회피 성향을 자극한 2008년 금융 붕괴뿐 아니라 동아시아, 그중에서도 특히 중국의 경제성장이 둔화된 것 때문에 촉발된 듯하다. 중국은 더 넓은 세계경제의 수입과 수출 모두에서 엔진 구실을 해 왔다.
그런데 2008년 이후, 이런 확장 과정은 뒤집힌 듯하다. 2010년 세계경제가 회복하기 시작함에 따라 세계 무역에서 호전이 있었지만, 그 뒤 무역 성장은 다시금 크게 둔화해 연간 2.5퍼센트 정도로 고착화됐다. GDP로 측정된 세계 생산량도 금융 붕괴 이래 성장이 둔화됐으며 2015년의 성장률도 3퍼센트 미만,실제로 금융 붕괴는 신자유주의적 세계 사업 모델의 주요 약점을 드러냈다. 투자 대비 이윤율의 하락 때문에 세계경제가 성장하지 못하고 있고, 그 결과 돈이 금융 투기로 이동하게 되어 결국 거품이 터지게 됐다. 금융 붕괴 이래 새로운 데이터를 보면 세계화가 거스를 수 없는 현상인지 의심하게 된다. 자유무역, 매우 낮거나 존재하지 않는 관세, 자유 시장 규칙은 전부 우리가 현대적 세계화로 알고 있는 것에 속한다. 만일 경제성장의 흐름이 뒤집힐 수 있다면, 40년 이상 존재한 “세계화”도 점차 사라질 거라 예측할 수 있다. 실제로 이는 2017년 3월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자유무역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라는 제목의 매우 영향력 있는 기사를 쓴 저자가 취한 관점이다. 그 기사는 시류를 좇아 10년간의 경기 후퇴를 포퓰리즘의 발흥과 연결시킨다. 저자는 2008년 금융 붕괴 이후 세계 무역량과 해외직접투자FDI 둘 다 둔화됐다는 것을 지적한다. 더불어, 2009년 이래 세계경제 안에서 7000개 이상의 보호주의적 조처가 도입됐으며, “그중 절반은 중국을 겨냥”한다고 말했다. 국경을 넘는 자본에 대한 통제 또한 점점 심해졌다.
경제학자 맨지 친과 히로 이토가 추적한 바에 따르면, 2008년과 2014년 사이 108개국 중 31개국이 자본의 국제적 이동에 덜 개방적으로 됐으며, 13개국만이 더 개방적이 됐다. 경제 위기 이전 5년에 견줘 상황이 급격하게 뒤바뀐 것인데, 당시에는 40개국이 자본의 국제적 이동에 더 개방적이 됐으며 12개국이 덜 개방적이 됐다.
비슷한 패턴이 국경을 가로지르는 금융자본의 이동에서도 관측된다. “금융 세계화”의 성장률은 최근 수십 년간 무역 성장률보다 확실히 더 컸지만, 국제연합 무역개발회의UNCTAD는 2012년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2007년과 2008년 중반까지 전례 없는 수준으로 올랐던 개발도상국으로의 민간 자본 이동이 체제가 심장마비를 일으킴에 따라 갑작스레 중단되거나 심지어 방향을 바꾸게 됐는데, 민간 자본들이 위기의 진앙지였던 세계 금융의 핵심 국가들로 돌아온 것이다.
2009년의 짧은 기간 동안 자본의 이동이 눈에 띄게 회복했지만, 유럽연합의 채무 위기 속에서 유로화의 변동성과 보장성에 대한 우려가 확산됨에 따라 그 회복은 다시금 중단됐다.
19 이는 연구·개발R&D과 생산 시설이 지리적으로 훨씬 더 가까워지면 소비자 시장의 동향을 더 빠르고 쉽게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 조처이다. 이런 사업 방식으로 전환하는 기업들은 오늘날 생산을 국내로 재배치하고 있는데(리쇼어링), 종종 그와 함께 노동 방식도 변화시키고 있고 새로운 수준의 자동화도 추진하고 있다.
다른 지표들을 살펴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제2차세계대전 이후 “정점에 이른” 세계화의 시기는 북반구의 기업들이 더 값싼 노동력을 찾아 남반구로 향함에 따라 생산 네트워크와 공급망이 함께 팽창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몇십 년간 세계적 공급망을 확장하고 세계적 네트워크에 생산을 아웃소싱하려고 했던 움직임도 느려지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역전되고 있다는 증거가 드러나고 있다. 미국 의류 기업 아메리칸어패럴, 스페인 의류 소매업체 자라 같은 일부 대기업들은 세계적 공급망보다는 현지 생산 거점 구축에 주력하고 있으며, 이제 이 모델은 컴퓨터 기업 IBM과 농기계 기업 캐터필러 같은 다른 기업들도 채택하고 있다. 후자의 기업들은 한때 생산망을 세계 곳곳으로 펼쳤지만, 이제는 “수직적 통합”에 기초한 생산 체계로 되돌아가고 있다.20 “정점에 이른” 세계화 시기 비중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이런 감소의 일부는 분명 금융 붕괴 이후 투자자들이 경제적으로 신중해진 탓이겠지만, 국민국가들이 안보 우려를 이유로 해외직접투자 유출입 둘 다를 더 많이 규제하고 있다는 증거도 있다고 OECD는 지적한다. OECD가 2017년 3월에 발표한 ‘배경 정보’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리쇼어링 추세는, 비록 그 비중이 크지 않더라도 세계적 해외직접투자의 감소와 연결돼 있다. 최신 OECD 보도를 보면, 해외직접투자는 2016년 7퍼센트 감소해 세계 GDP의 2.2퍼센트까지 떨어졌다.각국 정부는 [외국의] 국유기업·국부펀드의 투자가 비상업적 목적을 가질까 봐, 투자국들이 자국 내 기업 경영권 시장에서 외국 기업들에 대등한 조건을 보장하지 않을까 봐 갈수록 염려한다. 다국적기업들은 모국에서 국외 투자에 대한 규제의 부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정서는 부분적으로는 이제 해외직접투자의 순수출국이 된 중국과의 경쟁에 대한 광범한 지정학적 우려로 촉발된 것인데, 경제적 국수주의라는 새로운 시기에 트럼프 등의 갈망과 맞아 떨어지는 듯하다.
이 모든 변화는 세계화의 전성기가 지났을 수도 있음을 가리킨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세계화가 후퇴하는 추세는 얼마나 확고한 것인가? 그리고 이런 변화를 추동한 정치경제학적 근본 요인과 변화는 무엇인가? 세계화와 그 미래를 통계학이라는 렌즈만으로 보는 것은 오류일 것이다. 통계가 보여 주는 표면적 변화 밑에는 더 깊은 정치적·경제적 힘이 작동하고 있고, 우리의 이해를 발전시키려면 이런 심층의 힘을 살펴봐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공업” 세계화의 역사를 살펴보고 그 행동 패턴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과거의 세계화
식민지 제도 덕에 무역과 항해가 마치 온실에서 키운 것처럼 무르익었다. “독점체라 불리는 기업들”(루서)은 자본의 집중을 위한 강력한 지렛대였다. 식민지는 신생 제조업을 위한 시장을 제공했고, 식민 모국이 시장을 독점한 덕에 막대한 축적 증가를 보장받았다. 유럽 바깥에서 공공연한 약탈, 노예화, 살인을 통해 획득된 부는 식민 모국으로 되돌아왔고 그곳에서 자본으로 전환됐다.
23 마르크스가 글을 쓰던 시절에 영국은 자신이 “소유”한 식민지를 약탈하고 노예화한 것에 기반을 둔 자본의 시초 축적으로부터 제국을 건설했다. 영국 등 유럽 강대국들이 (1870~1880년 대불황 이후 미국도) 누리던 경쟁 우위는 기업과 국가의 재원을 마련하는 데 최대한 활용됐다. 전보와 증기선의 도입 같은 기술 발전이 그 과정을 도왔다. 식민지 강탈 체제를 뒷받침한 것은 무역에서 거두는 이득이었는데, 그 옹호자들은 “자유”라고 소개하지만 실은 육지의 군홧발과 바다의 해군에 의해 뒷받침되는 경제적 힘의 표현이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당시의 상황을 관찰해 다음과 같이 썼다. “정치경제학은 무역 팽창의 자연스러운 결과로서 탄생했다. 정치경제학의 등장으로 초보적이고 비과학적인 강매 행위를 대신해 제도화된 선진 사기 시스템이자 축재蓄財에 관한 과학 일체가 등장했다.” 24 아닌 게 아니라, 존 뉴싱어가 그의 책 《마르지 않는 피》에서 설명한 것처럼, 아편 전쟁 당시 중국에서 “대영 제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마약 밀매꾼이었다.” 25
이 인용문에서 카를 마르크스는, 더 큰 팽창을 위해 자금을 모아야 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필요와 제국·무역의 원동력 사이 관계가 긴밀해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무역은 공업 “세계화” 초기 시기의 원동력이었지만, 식민지에서 공업 경제를 촉진하는 기초로서 구실은 하지 않았다. 세계 공업 노동계급은 확고하게 선진국에 있었다. 노예제가 시초 축적을 위해 이용됐고, 식민지들은 나라별로 특정 상품(차, 면화, 사탕수수 등)과 원자재(예컨대 천연고무)를 착취당했지, 현대의 “정점에 이른 세계화” 시기와는 달리 공업 노동력이 착취당하지는 않았다. 공급이 한정돼 있으므로 원자재와 상품을 얻으려는 시도는 인플레이션 유발 위험이 있었고, 약탈, 강탈, 도둑질이 더 부유한 식민 모국들의 일반적 행동이었고 강탈당하는 사람들[식민지 주민]의 생활 조건은 낮게 유지됐다. 식민 통치를 통해 추출된 금융 잉여는 자본 축적을 돕고 부추겼는데, 식민 모국에 있는 신규·기존 공장의 임금노동자들에게서 더더욱 많은 잉여가치를 추출하는 방식을 통해서였다. 그러므로 강대국들의 제국주의적 프로젝트는 자본주의적 팽창과 영토 획득의 융합이었다. 이 과정에서 식민지[의 발전]는 방치되거나 때때로 퇴보를 강요받았다. 실제로 인도를 예로 들자면, 마이크 데이비스가 말했듯, “1757년부터 1947년까지 인도의 1인당 소득은 전혀 늘지 않았다.”27 이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자유주의 역사학자와 퍼거슨 같은 보수주의 역사학자들은 당시의 제국이 온화하고 자애로웠다고 고집을 피우지만 데이비스가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홀로코스트》에서 묘사했듯이, 영국·일본·미국 제국은 “문명을 앞세운 대량 학살”에 가까운 지독한 기근과 가난이라는 유산을 남겼다. 그 시기 폭력은 제국의 주요 특징이며, 저항과 반란으로부터 제국을 방어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행해졌다. 물론 영국 혼자만 제국주의적 잔학 행위를 저지르고 영토를 확장했던 것은 아니었다. 에릭 홉스봄이 썼듯이, “제국의 시대는 … 본질적으로 국가 간 경쟁의 시대였다.” 28 이 경쟁에서 약탈은 절대적이었다. 1880년에서 1910년 사이 30년간의 아프리카 쟁탈전에서 아프리카인 1억 1000만 명이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포르투갈이라는 다섯 개의 유럽 제국들과 벨기에 왕실의 지배 하에 놓였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접어들면서 영국의 우세가 점차 약해졌고, 1913년이 되자 세계 최고의 경제국 네 곳은 미국(건설업을 포함한 전체 광공업에서 46퍼센트 차지), 독일(23.5퍼센트), 영국(19.5퍼센트), 프랑스(11퍼센트)가 됐다. 29 홉스봄은 이처럼 힘이 다각화한 변화를 세계경제에서 “다자주의가 성장”한 시기라고 부르고, 세기의 전환기에 그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고 말한다. 아프리카·아시아·라틴아메리카의 전체 수출량에서 영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860년 50퍼센트에서 1900년 25퍼센트로 떨어졌고, 세계는 더는 “단극적”이지 않게 됐다. 30 그러나 영국은 오늘날에도 그렇듯이, 런던 금융가의 발전으로 세계경제에서 은행가·보험중개인이라는 새 기능을 찾았기에,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으로 말마암은 고통을 그나마 덜 수 있었다. 영국이 이전에 누리던 지배적 위치는 상당한 양의 해외 자산으로 남아 있었고, 1914년 영국은 여전히 전 세계 해외투자의 44퍼센트를 보유하고 있었다. 31 그러나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에 대한 쟁탈전으로 지정학적 긴장은 마치 압력솥 안의 증기처럼 변했다. 강대국들 사이의 다툼은 결국 보호주의로 후퇴하는 것으로 치달았고, 그 뒤로 제1차세계대전과 이후 20년간의 경제적 혼란이 찾아왔다.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 시기에 서유럽과 미국 같은 선진 세계는 1인당 GDP나 생산량의 측면에서 크게 도약한 반면 식민지 세계는 뒤처져 있었다. 1750년 남반구와 동양은 세계 제조업 생산의 73퍼센트를 차지했지만, 이 수치는 1830년에는 50퍼센트로 떨어졌고, 세계화의 첫 번째 물결이 끝날 때인 1913년에는 단지 7.5퍼센트였다.이렇게 살펴본 것을 바탕으로 우리는 과거에 세계화가 형성될 때 나타난 세 가지 특징을 식별할 수 있고, 그로부터 세계화가 현재 겪는 딜레마와 세계화의 미래에 관해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팍스 브리태니카’는 산업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한 여파 속에서 확고해졌다. 그 후 영국은 18세기와 19세기 내내 유일 패권국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이 패권은 국가 간 경쟁과 다극화 경향이 부상함에 따라 경기장에 새로 들어온 국가들에 의해 위협받기 시작했다. 국가 간 정치적 경쟁, 즉 [시장이 아닌] 다른 수단에 의한 경제력 추구는 결국에는 세계 체제의 붕괴, 전쟁, 경기 침체로 이어졌다. 둘째, 세계화 과정이 합의·온화함·자애로움과는 거리가 멀었고, 폭력적이었고 기근·살인·고문을 수반했으며, 저항과 반란을 막기 위한 국가의 군사력 사용이 있었음을 유념해야 한다. 셋째, “세계화”의 첫 번째 물결에 관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글에서 무역 확장과 식민지화 과정이 당시 자본주의의 구조적 발전에 필수적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수 있다. 그들의 “정치경제학” 서술은 왜 자본이 축적을 위해 산업 중심지 바깥에서 약탈을 할 필요가 있었는지에 관한 분석에서 도출된 것이었다.
이제 우리의 임무는 초기 세계화 시기의 이 세 가지 주요 특징이 신자유주의 질서와 신자유주의 특유의 세계화 프로젝트의 안정성이나 취약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가 수익성 위기와 금융 붕괴의 여파로 계속해서 불안정해지고 있는 지금, ‘팍스 아메리카나’가 저물고 새로운 다극적 질서로 대체될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세계화는 정점에 이른 것인가, 아니면 단지 다른 형태로 변하고 있는 것일 뿐인가?
재탄생한 세계화
32 하지만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이 잡지[《인터내셔널 소셜리즘》]에서 보여 주었듯이, 이런 견해는 전후 시기 경제적·군사적 힘을 이끈 미국의 능력과 의지의 중요성을 여러 측면에서 과장하는 것이다. 33 실제로 전후 시기 세계화의 발전은 훨씬 더 복잡한 사건이었다. 여러 국면을 거쳤는데 각각 특징이 달랐고, 압도적으로 미국 패권에 의해 결정됐다기보다는 [여러 강대국이] 전략적 지위를 놓고 벌인 일련의 게임들이 관련돼 있었고, 그 게임에서 미국이 주도적 구실을 했지만 혼자서 모든 걸 다 한 것은 아니었다.
팍스 아메리카나로의 전환은 미국이 경제적 초강대국과 “세계 경찰”이라는 두 가지 구실을 다 하면서 세계 문제에 대해 패권적 지배력을 행사한다는 것을 뜻했다. 그래서 전후 “정점에 이른” 세계화 시기를 다룬 여러 문헌에서 세계화가 주로는 단극화된 국가 권력의 산물이자 목표라는 시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마르크스주의 저술가인 레오 파니치와 샘 긴딘은 “정점에 이른 세계화”를 미국의 패권, 미국이 다른 국민국가에서 현지 자본을 “탈구”시킬 능력 정도로 환원하는 듯하다. 그 결과 국민국가는 “더는 일관되고 독립적인 민족 부르주아로 대표되지 않”게 됐다고 본다.34 가져왔다. 속도가 줄어든 [경제]성장은 석유 파동(과 그와 관련된 전쟁)과 소련 블록의 붕괴로 간간이 중단되곤 했다. 1995년에 세계화는 “정점”에 도달한 듯했다. 셋째 국면의 특징은 [세계화의] 상대적 후퇴인데, 이는 2008년 금융 위기로 드러났다. “세계화의 종말”을 둘러싼 논쟁은 이 맥락에서 봐야 한다.
첫째 국면은 1970년대 경제 위기 이전까지 서구 자본주의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시기로 볼 수 있다. 이 시기는 국가 개입이 특징인 전후 재건기였다. 국가 개입은 서유럽에서는 사회민주주의와 케인즈주의로, 미국에서는 뉴딜로, 동구권과 개발도상국 일부에서는 국가자본주의로 나타났다. 1970년대 경제 위기는 [둘째 국면인] “납빛 시기”를35 2005년 기예르모 데 라 데헤사는 다음과 같이 썼다.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수출되는 제품의 60퍼센트는 제조업 제품이며,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수출되는 제품의 60퍼센트도 제조업제품이다(강조는 원문). 일반적으로 북반구가 수출하는 제조업 제품은 자본·기술 집약적인 반면, 남반구가 수출하는 제조업 제품은 노동 집약적이다.” 36 산업의 [지리적] 팽창으로 다극화가 발전해서, 세계 국가 체제를 “관리”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우리가 이미 살펴봤듯이, 전후 세계화의 일반적이고 의미 있는 특징은 세계의 새 지역으로 산업화가 확장됐다는 것이다. 이는 “식민지”의 세계화라는 과거의 세계화와는 다른 모습이다. 남반구 등지의 노동비용이 저렴한 것이 산업화의 확장을 고무했고, 그 저렴한 노동력은 제조업 생산을 위해 이용됐다. 이 과정은 불균등하다. 중국이나 (멕시코·미국 국경선의 마킬라도라 같은) “기업 유치 지구”에서는 발전이 있지만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장기간에 걸쳐 산업이 부분적으로 쇠락했다. 미국 패권의 한계에 대한 우리의 평가를 보강하려면, 전후 세계화가 전개된 국면들도 좀더 자세히 분석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개입의 역사와 함께 지배 행위자로서 국제 금융 기구들IFI의 역사를 살피는 것이 유용하다. 세계경제의 구조를 재편하는 과정은 제2차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연합국이 승리를 감지하면서 시작됐다. 브레튼우즈 협정이 1944년에 체결됐다. 뉴햄프셔 호텔에서 열린 3주간의 회의에는 소련과 신생국 유고슬라비아를 포함해 연합국의 대표자들 44명이 참석했다. 세계 금융 시스템을 안정시키고자 본질적으로 환율을 달러에 고정시키기로(달러는 다시 금에 고정시켰다) 결정한 이 회의의 결과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같은 초국가 기구들이 탄생했다. [그 결과로,] 환율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세계 무역을 촉진하기 위해, 이 기구들을 통해서 잉여 자금이 있는 국가들(채권국)로부터 적자 상태인 국가들(채무국)로 돈이 이동할 것이었다. 대출금의 이자율은 IMF나 세계은행이 결정할 것이었다. 미국의 주도력이 분명히 표현됐다. 두 기구는 전 세계 금의 3분의 2를 보유한 미국에 본부를 두고, 채권국들이 관리·의사결정 기구를 지배할 것이었다. 소련은 이 두 기구를 “월 스트리트의 지점들”이라고 부르면서 그 회의의 최종 합의안을 비준하지 않았다. 브레튼우즈 협정의 정치적 효과는 서방 강대국들을 금융·경제 재건이라는 공동의 경제 프로젝트에 묶어 두는 것이었다. 비록 미국의 지도력 하에 있지만 말이다. 미국은 영토 확장이라는 더 잔혹한 방법보다는 경제적 압박을 통해 자신의 힘과 영향력을 강화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초기 제국주의 시기의 영국 등과는 두드러진 차이가 있었다. 이 새로운 전략은, 경제 국수주의로의 후퇴, 이후의 공황, 전쟁의 재발발을 보이며 실패한 전간기의 전략과는 대조적이었다. [브레튼우즈 협정의] 또 다른 결과로 1947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이 생겨났다. 이는 관세 인하에 관한 다자간 협정을 완성하고 관세를 규제하며 세계 무역을 촉진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GATT는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로 바뀌었으며, 자유화 과정의 마지막 협상은 2001년 도하 라운드에서 타결됐다. 도하 라운드는 제조업 이외의 농업·서비스업 부문에 초점을 뒀다는 점에서 WTO의 목표의 주목할 만한 변화를 보였다.39 소련과 그 위성국들에 마셜 계획에 따른 원조의 제공이 제안됐었지만, 스탈린은 그 제안을 거부하고 대신에 소련의 영향권 안에서 “몰로토프 계획”을 수립했다. 미국은 ‘트루먼 독트린’을 이행하는 동아시아 국가들을 위해서는 1947년에 마셜 계획과 비슷한 프로그램들을 마련했다. 트루먼 독트린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 물리적 장벽을 세우는 미국의 임무를 밝힌 선언이다. 영국은 동구와 서구 사이 경계 지역인 그리스에서 전후에 공산주의자들을 탄압하는 데 필요한 돈을 댔는데 더는 그러기 힘들다고 하자, 미국은 트루먼 독트린을 강화하기 위해 금융 지원을 할 필요성이 생겨났다. 미국이 주도한 이 정치적·경제적 구상은 북대서양(NATO를 창설한 워싱턴조약이 1949년에 체결됐다)과 태평양 모두에서 군사력의 새로운 시대가 수립되는 효과를 냈다.
지정학적 측면에서 볼 때, 한국 전쟁은 냉전의 공고화를 예고했다. 높은 군사비 지출을 정당화하고 미국으로 하여금 서유럽에서 군대를 주둔케 함으로써 말이다. 1948년 미국은 마셜 원조를 통해 총 170억 달러에 달하는 보조금을 유럽 동맹국들에게 지원했다. 유럽 국가들은 그 돈으로 식품, 비료, 기계류, 연료와 같은 미국 상품을 구입했다. 마셜 계획은 이데올로기적 목적도 있었다. 노동계 대표자들을 인정하는 제도를 옹호함으로써, 사회민주당들이 서유럽에서 여전히 거대했던 공산당들을 대체하도록 승격시키는 것이었다.40 실질 소득 상승과 소비재의 대량 생산·소비와 함께 경제가 팽창함에 따라, 이 새로운 체제는 전쟁이 끝난 직후부터 없어서는 안 될 정치적 안정성을 제공했으며 서구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가져왔다. 하지만 황금기의 뒷면에는 황금보다 더 어두운 색조의 원료들이 있었는데, 바로 석탄과 석유가 그것이다. 화석 연료는 세계경제를 완전히 뒤바꿨고, 그 결과 자동차의 대량 생산으로 도시를 교외로 더 확장시켰다. 이안 앵거스는 이를 탄소 배출의 “거대한 가속화”라고 불렀다. 41 그러자 미국 제국주의와 그보다는 작은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이 석유를 좇아 산유국들을 자신들의 의지 하에 종속시키는 형태의 정치경제학이 만들어졌다.
이렇듯, 새롭게 세계화된 세계의 경계는 냉전 시대의 논리에 따라 그려졌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그 경계가 비교적 고정돼 있었지만 극동 지역에서는 (베트남 전쟁이 끝날 때까지) 덜 명확했고 아프리카와 중남미에서는 더 유동적이었다. 발전하는 세계경제 속에서, 더 작은 국민국가들은 미국의 “지도력”을 받아들임으로써 적을지언정 일정한 지분을 보장받을 수 있었는데, 조반니 아리기는 이를 특정한 패권 국가(즉, 미국)와 연관된 독특한 “세계적 규모의 축적 체제”라고 불렀다.새로운 “세계적 규모의 축적 체제”는 (적어도 미국 지배계급의 관점에서 볼 때) 여러 목표를 달성했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미국의 “패권”뿐 아니라 소련의 “패권”도 저발전된 세계의 국민국가들에게 자동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은 아니다. 유고슬라비아의 티토 정권뿐 아니라, 인도·파키스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등지의 국가들 같은 신생 독립국들NIS도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주요 강대국들과 거리를 두고 싶어 했다. 국가 간 수준에서는 미국과 소련 둘 모두로부터 독립적이고 싶어 하는 열망이 1955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반둥 회의 이후 비동맹 운동이 등장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반둥 회의의 주역은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인도, 미얀마(버마), 실론(스리랑카)이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마오쩌둥의 1949년 혁명 이후 겨우 6년 만에) 이 회의에 참석해서, 공산주의의 영향력이 소련 이외의 국가에서도 나올 수 있다는 두려움을 미국이 느끼게 했다.
미국의 전후 외교정책은 제3세계에서 반反식민지 세력의 환심을 사려는 것이었지만, 이는 식민 지배 악행의 장본인이었던 바로 그 국가들(프랑스, 영국, 스페인 등)과 가까워지려고 하는 미국의 또 다른 목표와 충돌했다. 이는 미국의 패권적 목적이 딜레마에 처해 있었음을 보여 줬는데, 반둥 회의의 “인권적” 접근이 미국 남부의 인종차별주의적 짐크로우 법에 위배될 때도 그러했다. 이 딜레마는 유럽의 식민주의 세력의 다수가 식민지 정책을 바꿈으로써 부분적으로 해결됐다. 아래로부터의 반란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탄압, 발포, 강제수용소와 맨 먼저 맞닥뜨렸다. 하지만 계속된 저항에 직면해 이 전략은 새로운 전략에 자리를 내주게 됐는데, 바로 현지 엘리트들이 직접 국가를 통치하도록 하되 이전 식민 모국 지배자들의 이해관계 하에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크리스 하먼은 영국에 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영국이 “원주민들”에게 양보하지 않고 버티려 했던 곳(케냐에서는 마을들을 폭격하고 강제수용소로 몰아넣어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했고, 키프로스에서는 군대가 고문을 자행했다)에서도 결국 과거 자신이 투옥시켰거나 망명하도록 만들었던 정치적 지도자들([케냐의] 조모 케냐타와 [키프로스] 마카리오스 대주교)에게 권력을 “평화적”으로 이양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43 [미소 간] 분쟁이 갑자기 표면화되는 일 은 불가피했는데, 특히 1948~1949년 베를린 봉쇄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그랬다. 하지만 냉전은 열전으로 비화하지 않고 유지됐다. 서구 자본주의는 방해를 받지 않은 채, 지구 곳곳으로 확장할 수 있었다. 정치적·경제적·영토적 기둥들을 하나로 묶으려 한, 성장하는 미국 제국주의의 보호를 받으면서 말이다.
정치적 측면에서 볼 때, 비록 미국은 신생 독립국들의 엘리트들과의 합의를 모색해야 했지만, 미국의 패권은 식민지들이 해체되는 긴장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소련의 대응은 서구의 대응과 아주 유사했다. 무역 블록(코메콘)을 만들고, 서구와 연관맺지 않은 국가 지도자들의 환심을 사는 것이었다.하지만 신생 독립국들의 “독립성”은, 자신들의 영향력 하에 세계 자본주의를 확장하려는 미국 지배자들의 의도에 또 다른 문제를 야기했다. 여러 신생 독립국들이 수입대체산업화ISI 프로그램을 통해 자국 경제를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는데, 이는 수세기 간의 식민 정책 하에서 누적된 국내 산업의 결함을 국가가 주도한 국산 제조업으로 메우려는 것이었다. 수입대체 프로그램으로 국가가 외부 세계에 덜 의존적이게 함으로써 “국가 건설”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이 구상은 수입 관세를 인하가 아니라 인상하고, 브레튼우즈/워싱턴의 교리가 요구하는 바를 거스르고, 미국 달러 통용 지역 밖에서 엄격한 외환 통제를 시행할 때만 달성될 수 있었다. 수입대체산업화 접근법은 특히 중남미에서 인기가 있었는데, 멕시코, 브라질, 1950년대 페론 정권 하의 아르헨티나에서 특히 그랬다. 그 국가들은 수출을 장려하고 수입을 더 비싸게 만들기 위해 달러와 파운드화 대비 자국 화폐 가치를 낮게 유지했으며, 제조업은 국가를 통해 보조금을 받거나 국유화됐다. 이런 “국가자본주의” 접근법은 “젊은 급진파”가 옛 질서에 맞서 권력을 잡은 이집트·리비아·쿠바 같은 제3세계 정권에 의해 채택됐다.
자국의 자동차 산업 육성은 수입대체산업화 프로그램의 주요 특징이었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석유의 시대에 차량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었고, 또 부분적으로는 신생 국민국가가 (국유 항공사, 국유 철도와 함께) 고유한 자동차 브랜드를 가져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예컨대 인도에서는 이전에 영국이 만든 자동차 모델인 모리스옥스퍼드가 1957년에 모리스앰배서더라는 이름으로 재발매됐다. 이후 30년간 이것이 “인도” 자동차로 여겨졌다. 수입대체산업화 정책은 일부 성과를 거뒀다고 할 수 있고, 수입대체산업화를 추구한 국가들의 성장률을 그 근거로 제시할 수도 있다. 한 연구는 다음을 강조했다.
1960년대 초반까지 멕시코 소비재의 95퍼센트와 브라질 소비재의 98퍼센트를 자국 내 산업이 공급했다. 1950년과 1980년 사이 라틴아메리카의 산업 생산은 여섯 배나 증가했는데, 인구 증가율보다 훨씬 앞선 것이었다. 유아 사망률은 1960년 출산 1000명당 107명에서 1980년 1000명당 69명으로 감소했으며, 기대 수명은 52세에서 64세로 증가했다. 1950년대 중반 라틴아메리카 경제는 서구 선진국보다 더 빠르게 성장했다.
45 수입대체산업화는 경제가 갓 발전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더 잘 작동한다고들 하는데, 수요의 소득탄력성이 식품 같은 기본재보다 제조업 상품에서 더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소득이 늘면, (아무도 굶주리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식품에 대한 수요는 대체로 그대로 유지되지만 소비재 제조업 제품에 대한 수요는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한다는 뜻이다. 만약 이런 제조업 상품이 국민국가 내에서 생산된다면, 성장의 선순환이 뒤따를 것이라는 얘기다. 수입대체산업화를 하지 않으면, 더 부유한 국가와 더 가난한 국가, 즉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에 구조적 불평등이 형성될 것이라고들 했다. 이런 견해는 세계체계론을 내놓은 이매뉴얼 월러스틴 같은 네오마르크스주의자들과 종속이론가들이 제기한 것이었다. 46 이 모델은 한때 일부 성공을 거둔 듯했지만, 자체 모순에 의해 제약도 계속 받았다. 이는 뒤에서 논의할 것이다.
수입대체산업화는 비판적 무역 이론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이는 탈식민 세계와 관련된 “종속성”을 둘러싼 논쟁으로부터 힌트를 얻은 이론이었다. 1949년 아르헨티나 경제학자 라울 프레비쉬와 한스 싱거(UN 경제학자)가 만든 프레비쉬-싱거 가설은 영국 같은 국가들도 자국 경제 개발 초기에 수입대체산업화 단계를 거쳤다고 주장했다.47 “황금기”에서 “납빛 시기”로 경제가 반전되기 시작한 근본 원인은 이 잡지의 주요 필자들이 수십 년간 반복해서 얘기한 바 있다. 48 1960년대 후반부터 서구 기업 투자에서 나오는 이윤율이 감소했다는 증거가 있고, 당시 서독과 일본의 급격한 경제성장이 둔화하고 미국의 군사비 지출이 점점 부담스러워짐에 따라 “상시 군비 경제”가 비틀거리기 시작한 것도 맞물렸다. 49 경제성장이 둔화하자, 서구 국가들의 지배계급은 수익성을 회복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으며 그 결과 시장의 힘을 활용해야 한다는 사실에 눈을 돌렸다.
1970년대가 되면 하버드 경영대학원 동문과 워싱턴/재무부를 중심으로 한 세계의 새로운 지배자들이 흔히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시장 자유화를 세계적으로 밀어붙이며 수입대체산업화에 맞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교리를 낳은 것은 수입대체산업화가 제기하는 도전만이 아니었다. 1970년대 초반 선진국들의 경제가 첫 위기를 맞으면서 경제성장률이 하락하고 채무가 누적되며 인플레이션이 치솟은 것이 더 중요했다. 1973년 이전까지만 해도 체제의 팽창은 거의 전례가 없는 수준이었다. 마이클 키드런은 1970년에 “높은 고용률, 빠른 경제성장과 안정성은 이제 서구 자본주의에서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된다”고 봤다. 전체적으로 볼 때 체제는 “1913년과 1950년 사이보다 1950년과 1964년 사이에 두 배나 빠른 속도로” 작동했다.시장에서의 용쟁호투
50 과 저기술 생산에 대한 단위 노동 비용을 줄임으로써 수익성을 회복할 수 있었다. 기술 수준이 낮은 조립 기반의 생산은 남반구의 거대한 신규 노동 예비군이 투입됨으로써 촉진될 수 있었는데, 그 노동 예비군은 흔히 농민이나 도시 빈민이었고, 아동도 있었다. 이 노동 예비군의 기술 수준과 임금 수준은 서구 시장으로의 운송비와 기타 기반시설 비용이 증가한 것을 상쇄할 만큼 낮았다.
경제 세계화의 새 물결은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서구에 기반을 둔 금융·산업 엘리트들에 의해 추동됐다. 그들은 포화 상태의 시장과 감소하는 투자 이윤 때문에 숨 막혀 하고 있었고, 새로운 생산 영역을 창출하기를 바랐다. 그 과정은 특정 유형의 배치batch생산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이 방식은, 자본으로서는 이전까지 선진 공업국에서 생산되던 많은 제조업 상품의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서구 다국적 기업들이 만드는 제품을 소비할 새로운 시장이 빠르게 도시화하는 남반구에서 만들어지는 파생 효과도 있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실리콘 칩이 낳은 정보 기술 역량의 확장으로 물류 역량의 도약이 가능해졌는데, 모듈식 컨테이너 수송에 적합한 선박의 건조도 물류 역량을 키웠다.(최초의 컨테이너 전용선이 1956년 뉴저지 주 뉴어크를 출발했다.)
그 결과 1970년 이후 30년간 해외직접투자 수준이 상승했고,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재화와 서비스의 세계 무역량이 세계 생산량을 뛰어넘어 팽창했으며, 이후 그 추세가 가속화됐다. 해외직접투자의 증가는 특히 1990년대 후반에 강했다. 여기에는 새로운 현금이 “이행기”를 겪고 있던 동구권 국가들로 유입된 것이 한몫했다. 하지만 2008년 금융 붕괴 이후에는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금융 붕괴 이전까지 [해외직접투자] 증가분은 대부분 1차 산업(농업과 광업)과 서비스 산업에서 생겨나, WTO가 장려한 과정을 강화했다. 51
하지만 겉보기로는 웅대한 이 힘은 남반구의 신생 독립국들이 서구 자본에 필요한 시장을 개방하도록 괴롭히고 강압하는 과정을 동반했다. “시장”이 모든 것을 누르고서 지배하려면, 수입대체산업화 전략을 포기하도록 해야 하고, 수입 관세는 낮추거나 폐지해야 하고, 외환 통제를 없애고 국내 산업에 대한 정부 보조를 끝장내야 했다. 이것이 신자유주의 단계의 새로운 자본 축적 전략이 됐다. 이 전략의 일환으로 브레튼우즈·세계은행·IMF의 기구들은 세계화 강요 과정에서 현지 교섭자들과 협력하기 시작했는데, 신생 독립국들의 정치 엘리트들에게 매수하거나 회유해서 그들이 새롭게 세계화된 경제에서 단물을 맛보는 대신에 신자유주의라는 유일 사상을 받아들이게 했다. 나이어 우즈는 저서 《세계화주의자들》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IMF와 세계은행의 [새로운 — 업처치] 사명은 단지 경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 각 기구는 채무국 정부와의 협상에서, 재원의 대출 이행이나 유보, 대출금의 지급이나 보류, 다양한 형태의 조건 부과 등 기술적 자문과 강압적 힘을 혼합해서 이용한다. 하지만 이 기구들은 자신들이 선호하는 정책들을 받아들일 수 있고 기꺼이 받아들이려 하는 호의적 교섭자를 찾아내서 협력할 때만 이 힘을 성공적으로 관철시킬 수 있다.
53 1991년 소련과 코메콘이 붕괴하자, 세계시장의 지배력이 다시 한 번 강화됐다. 국가자본주의 모델이 고유한 모순에 점점 더 빠져든 결과였다. 이전까지는 정부 보조금으로 국내 산업은 서구 자본과의 혹독한 경쟁에서 벗어나 있었다. 1980년대 동안 소련 블록과 서구 사이에 무역이 증가하자 격차만 드러내는 결과를 낳았고, 1980년대 말에는 일부 부문의 노멘클라투라들이 특히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기회 삼아 국가자본주의에서 완전한 시장 모델로 탈출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이는 때로는 폭력적인 과정이었고, 앞선 세계화 시기와 유사했다. 제1·2차 인도차이나 전쟁은 프랑스와 미국 제국주의에게 패배를 안겨 줬고, 인도네시아는 서구 제국주의가 방어적 대응에 나설 수 있는 주요 국가로 남게 됐다. 이후 수하르토 장군 치하의 인도네시아는 세계은행의 “모범생”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 정권이 서구 자본에 대해 완전한 접근을 보장하겠다는 의지를 관철시키는 과정에서 공산당을 숙청했고 그 때문에 100만 명이 사망했다. 급진적 언론인 존 필저는 저서 《세계의 새로운 지배자들》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대학살이 일어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인도네시아 경제는 미국식으로 효과적으로 재편됐고, 서구는 막대한 광물자원, 시장과 값싼 노동력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이것이 바로 대통령 닉슨이 아시아 최고의 선물이라고 부른 것이다.”54 정치·금융 엘리트들이 자본 축적의 대리인으로서 “국가”를 버렸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지적하듯이, “레이건의 세금 감면과 군비 지출 확대는 정부 차입을 극도로 증가시켰으며, 로버트 브레너에 따르면 이는 ‘세계 역사상 가장 거대한 케인즈주의적 실험’이었다.” 55 오히려 국가는 새로운 자본 축적 제도를 위해 체제를 재조정하는 행위자였다.
뒤이어 “정점에 이른” 세계화 시기는 이처럼 동구권 국가자본주의에 대한 시장 자본주의의 승리가 예상되는 상황을 배경으로 삼았다. 이 모든 것은 미국 로널드 레이권 정권 하에서 일어났는데, 레이건은 마거릿 대처와 함께 국가 지시라는 교리보다 자본 축적이라는 교리가 우월하다며 불변의 인장을 찍었고,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측면을 강화시켰다. 시장이 규제받지 않는 영역에 진입하면서 기존의 사회적 합의가 재조정됐다. 특히 노동자 보호 조처와 노인·실업자를 위한 국가 보조 영역이 그러했으며, 사회안전망은 자유 무역과 자유 경쟁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앙상하게 뼈만 남게 되었다.그런데 이런 새 경향들은 권력의 단극화를 뜻하는가, 아니면 다극적 배분을 나타내는가? 세계화의 새 시대는 그 나름의 복잡성과 함께 왔다. 국경을 초월한 기업 인수·합병이 대거 증가한 것을 포함해 서구 자본이 국경을 넘어 확산한 것이 원동력이었지만, 국가 지원의 필요성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크리스 하먼은 1991년 이 잡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자본주의에는 국가가 필요하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즉, 일부 자본이 마피아처럼 다른 자본에 직접 폭력을 휘두르지 못하게 막도록 해당 지역에서 무력을 안정적으로 독점해야 하고, 일부 자본가가 다른 자본가를 속여서 돈을 빼앗지 못하도록 규제해야 하고, 노동시장을 조직해야 하고, 경기 후퇴가 경제 붕괴로 악화하지 않게 막아야 한다. 위기가 더 위험할수록 국가도 더 필요해진다. 그러나 자본의 활동은 국제적 규모로 이뤄지기 때문에 끊임없이 국가 통제의 가능성에서 벗어난다.
국경을 넘나들며 안전을 담보하는 한 가지 방법은 유럽경제공동체EEC/유럽연합EU, 미국의 지도력 하에 있는 NAFTA, ASEAN처럼 지정학적 기반을 둔 경제 블록의 창설이다. 틀림없이 미국은 주도자였고 여전히 주도자 구실을 하고 있지만, 1970년대 대서양 너머 EEC/EU가 통합하고 이후 1980년대에 일본이 부상하면서 권력의 새로운 축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최초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실제로 일본이 새로운 제조 방법을 통해 산업 강국이자 태평양에서 새로운 권력의 중심지로서 부상하면서, 미국 국가는 서구 기업들이 일본의 작업 조직을 연구하고 “린 생산” 모델을 도입하도록 나섰다.
57 는 미국뿐 아니라 서구 전반에서 경영 대학원 교육의 새로운 교리가 됐는데, 이 책은 전통적인 테일러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며 팀워크, 끊임없는 개선, 린 생산 등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다. 58 일본이 제조업 생산분야에서 새롭게 명성을 얻자, 세계적 공급망에서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났다. 여러 나라에서의 “적시” 생산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려는 세계적 경제 무역 네트워크와 린 생산 모델이 결합한 것이다. 예컨대 자동차 제조 공급망은 여러 나라로 퍼져 나갔고, 십여 개국 이상의 공장들에서 공급된 자동차 부품들이 최종으로 “나사만 조이는” 공장으로 와서 자동차 뼈대에 부착된다.
그 결과 제임스 워맥과 그 동료들이 1990년에 쓴 책 《세상을 바꾼 기계》59 흥미롭게도 EU의 주요 수출국의 총 점유율은 20퍼센트를 훨씬 넘었고, 이는 EU가 연합으로서는 세계 무역에서 주요 주자임을 뜻한다. 2001년 WTO에 가입할 당시 중국은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의 5분의 1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의 성장은 괄목할 만한 것이었고, 자연히 중국이 태평양에서 군사적 야심을 키우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수반됐다. 2000년 이래로 세계경제에서 중국이 성장한 것은 미국의 비중 축소와 나란히 일어난 일이다. 이 기간 동안 미국의 수입 비중은 세계 총합의 17퍼센트에서 12퍼센트로 떨어졌고, 수출 비중은 12퍼센트에서 8퍼센트로 떨어졌다. 60
그러나 더 최근에는 중국의 부상이 미국의 전략가들의 근심을 자아내고 있고, 다극화에 대한 더 큰 가능성도 만들어 내고 있다. 중국 경제가 수년간 팽창하자, 2012년 중국은 세계 상품 교역량에서 선두였던 미국을 제쳤다. WTO에 따르면, 2014년 세계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2.4퍼센트였고, 미국이 8.6퍼센트, 독일이 8퍼센트로 그 뒤를 이었다. 영국은 2.4퍼센트로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큰 무역국이었다. 미국 무역 패권의 상대적 붕괴(주되게는 중국 때문이지만, 정도는 덜해도 독일이라는 강국 하의 EU 때문이기도 하다)는 중국의 해외투자 급증과 병행하고 있다. 중국의 해외투자에는 저발전 국가들에 대해 보조금과 차관이 포함되는데, 중국은 IMF나 세계은행처럼 엄격한 신자유주의적 조처의 이행 같은 조건은 요구하지 않는다. 중국의 해외직접투자의 다수는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천연 자원 채굴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중국의 “세계화”走出去, Going Global 전략의 일환으로 제조업 부문에서 중국 경제를 세계 시장의 상위권으로 끌어올리려 하는데, 그에 따라 첨단 기술 산업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고 있다. 예컨대 중국 투자의 주요 수혜국인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중국의 해외직접투자는 과거에는 광업에 초점을 맞췄지만, 최근에는 의료 산업과 농업으로 중심이 옮겨 가고 있다.62 트럼프가 국제기후협약에 대해 “파리가 아니라 피츠버그”라고 호소한 것은 이 시대의 진정한 특징을 보여 주는 징후인 것이다.
미국 엘리트들에게는, 중국의 내수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보다 중국이 원자재를 독점할지도 모른다는 위협이 더 큰 관심사일 것이다. 화석연료가 기후변화와 관련한 잠재적 규제에 의해 도전받고, 중국이 희토류를 쓸어가면서 값싼 석유와 석탄에 기반한 미국의 비즈니스 모델이 위협받고 있다. 정점에 이른 세계화 시기는 ‘피크 오일’ 시기와 일치했는데, 제임스 하워드 쿤슬러가 《장기 비상시대》에서 썼듯이, ‘피크 오일’ 시기가 저물고 있는데도 자동차 중심 도시들이 많고 주州 사이 장거리 운송을 하는 미국처럼 값싼 석유에 크게 의존하는 국가들은 “몽유병 상태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중국의 다국적기업들은 민영화된 공공 서비스를 독식하는 데서도 미국을 누르고 더 큰 구실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 시대의 두 번째 징후는 미국의 다국적기업들이 영국의 [국가 주도] 보건 서비스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는 조처를 포함할 공산이 큰, 브렉시트 이후를 대비하려던 영·미 간 무역 협상(포스트 브렉시트 협상)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64 이런 불확실성을 헤쳐 나갈 방법을 협상할 때, 영국과 EU의 금융·정치 엘리트 사이에서뿐 아니라 광범한 잠재적 무역 상대국 사이에서도 긴장이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가디언〉 저널리스트 래리 엘리엇이 상기시켜 주듯이, 좌파에게는 브렉시트를 계기로 자유 시장이라는 교리로부터 탈출하자는 주장을 할 기회가 생길 것이다. 엘리엇은 브렉시트가 “공공 소유권을 부여하고, 저소득층에게 유리하도록 부가가치세를 인하하며, 신흥 산업을 국가가 보조하고, 개발도상국과 공정한 무역 협정을 체결할 수 있게 한다”고 주장한다. 65
실로 영국은 기존·신흥 세력 블록 사이에서 기존 관세 제도의 미래가 점점 더 불확실해지는 시대에 브렉시트 협상에 돌입하고 있다. 영국은 [기존의] 무역 협정들과 새로운 양국 간 협정이 뒤섞인 세계에서 빼도 박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다.그 다음은 무엇일까?
미국의 헤게모니가 도전받고 세계가 점점 더 다극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계속 확산되고, 세계경제 내에서 힘의 중심이 재편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게 목격된다. 경제적 보호주의와 이민 제한을 강조하는 민족주의 형태의 포퓰리즘으로 대략 정의할 수 있는 “트럼프주의”는 세계화된 경제가 가져다줄 것이라던 혜택에서 소외돼 불만을 품은 [미국] 노동자들에게 호소하기 위해 겉모습을 꾸민 우익의 반응으로 등장했다. 클린턴-오바마-클린턴으로 이어지는 민주당과 이에 대응하는 “사회민주주의” 유럽의 블레어주의자들은 그동안 대서양 양쪽의 노동자들에게 세계화로 인한 혜택이 경제적 불확실성을 해결할 것이라고 떠들었다. 그들의 “사회적 자유주의”는 시장의 힘을 풀어놓음에 따라 실질 임금을 낮추고, 불평등을 증가시키며, 공공 서비스에 대해 야만적인 공격을 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세계화의 종말이 아니라 세계화의 재편이고, 기존 무역 관계가 파편화되는 동시에 자본 축적의 새로운 세계적 체제 안에서 새로운 무역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새로운 무역 거래를 위한 영국의 브렉시트와 포스트 브렉시트 협상은 이 과정의 일부이며, 미국뿐 아니라 중국, 인도, EU의 나머지 국가들과도 새로운 협상이 제안되고 있다. 하지만 경제 국수주의와 보호주의 분위기는 여전히 감돌고 있고, “세계화에 대해서는 손쓸 방법이 없다”는 노조 지도자 등의 변명과 수입 금지 조처에 화를 가라앉힌 노동계급의 관심을 끌려는 선거적 야망이 그 분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66 아담 투즈가 말하듯이, 그 이후 트럼프는 공화당의 많은 부문에게 그의 관점을 성공적으로 설득해 경제 국수주의와 보호주의를 당면 쟁점으로 만들었다. 67 이렇게 미국 “비즈니스 모델”을 재정의하는 것은 세계 정치경제학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 아니다. 사실 세계가 실질적으로 더 보호주의적으로 변화한다면, 미국 경제는 경쟁자들보다 해를 덜 입을 것이다. 2014년 미국 경제에서 무역(수입과 수출)은 전체 GDP의 약 30퍼센트를 차지했다. 이는 영국이 59퍼센트, 중국이 42퍼센트, 독일이 85퍼센트, 벨기에 같은 더 작은 규모의 공업국이 최대 167퍼센트인 것과 비교된다. 68 이 덕분에 어떤 식의 보호주의적 전환이 일어나더라도 미국은 경쟁자들보다 피해를 덜 입을 것이고, 무역 거래를 위한 협상에서 비대칭적인 협상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이런 경제적 힘을 계속 사용할 것이고 십중팔구 생산의 더 많은 부분을 국내 기반 제조업으로 이동시킴으로써 세계적 공급망을 제한할 것이다. 하지만 이 전략은 큰 도박인데, 특히 중국이 미국의 새로운 경제 고립주의가 남기는 잔재들을 주워 담을 준비를 한 채 기다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그런 경제적 국수주의는 새로운 사상이 결코 아니며, 사실 공화당과 트럼프 자신에게 길고 깊은 역사가 있다. 미국의 무역 정책에 대한 트럼프의 비판은 19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일본이 자동차와 소비재 제조에서 새로운 선두 주자로서 “위협”을 가하는 데 대한 대응이었다.트럼프가 계속해서 이 전략을 추구한다면 필연적으로 국가 간 관계도 재정의해야 할 것이다. 특히 중국과 그렇고, 정도는 덜하지만 걸프해 연안의 야심 있는 신흥국들과도 그래야 할 것이다. 트럼프 정부 내의 분쟁, 특히 트럼프가 의존하는 내각 내 군부 출신자들에 대한 쟁투는 앞으로 긴장이 뒤따르고야 말 것임을 보여 주는 증거다. 독일이라는 원동력 아래에 있는 EU 또한 세계 무역에서 주요 주자로 남아 있고, 그 결과 EU의 정치 엘리트들은 고립주의와 보호주의를 향한 압력에 저항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세계화의 미래는 가변적이고, 세계적 규모의 긴장과 미국 정치·금융 엘리트 사이의 긴장 둘 다가 어떤 결과로 이어지느냐에 달려 있다. 40년간 더욱 세계화된 경제 속에서, 부의 분배가 20세기 초반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불평등해졌다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금융 붕괴 이후 10년간의 긴축과 결합되면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핵심 산업국 노동계급에게 꾸준히 누적된 불만을 안겨 주고 있다. 이는 상당히 폭발력 있는 혼합물이고 미래는 예정돼 있지 않다.
주
-
출처: Martin Upchurch, 'Is globalisation finished?', International Socialism 157(Winter 2018)
↩
- Donnan and Sevastopulo, 2017. ↩
- Wolf, 2017a. ↩
- Donnan, 2017. ↩
- 비록 피츠버그 시장은 트럼프에 매우 비판적이지만 말이다. Watkins, 2017. ↩
- Fukuyama, 1989. ↩
- Ferguson, 2005. ↩
- Saul, 2005. ↩
- Hirst and Thompson, 1999. ↩
- Meadway, 2015. ↩
- Streeck, 2017. ↩
- 데이터는 Maddison, 1991을 보시오. ↩
- 1950년 이후 세계 생산량은 데이터 수집에서의 변동 때문에 신뢰하기 어렵지만, 제도경제연구소Institute of Institutional Economics가 수집한 1950년 이후 구매력평가PPP로 계산한 대리 성장률 추정치는 1950년부터 1980년까지 세계 성장률이 대략 매년 2.5퍼센트였고 1980년부터 2000년까지는 2.65퍼센트였다는 것을 보여 준다. https://piie.com/publications/chapters_preview/348/2iie3489.pdf를 보시오. ↩
- Wolf, 2017b. ↩
- www.wto.org/english/res_e/statis_e/its2015_e/its15_charts_e.htm을 보시오. ↩
- www.imf.org/en/publications/weo을 보시오. ↩
- Wolf, 2017b의 figure 6을 보시오. ↩
- Davis and Hilsenrath, 2017. ↩
- UNCTAD, 2012, p15. ↩
- Foroohar, 2016. 얄궂게도 아메리칸어패럴은 파산을 선언했으며 이후 캐나다 회사에 인수됐다. ↩
- OECD, 2017a. ↩
- OECD, 2017b. ↩
- Marx, 1867, p918. ↩
-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사이의 관계에 관한 논쟁에 대한 비평은 Cox, 2004를 보시오. ↩
- Engels, 1844, p1. ↩
- Newsinger, 2006, p48. ↩
- Davis, 2001, p311. ↩
- Bairoch, 1982, pp269-325. ↩
- Hobsbawm, 1995, p51. ↩
- Hobsbawm, 1995, p51. ↩
- Hobsbawm, 1995, p51. ↩
- Pollard, 1985, p492. ↩
- Panitch and Gindin, 2003, p47. ↩
- Callinicos, 2005, p117. ↩
- 납빛 시기란 황금기와 대조해 경제의 저성장기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 옮긴이. ↩
- 노동자를 100만 명 이상 고용하는 공장(마킬라도라) 대략 3000곳이 멕시코 내 국경을 따라 위치해 있는데, 주로 NAFTA 구조 내에서 미국 시장을 위해 생산한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산업 공동화”의 증거에 관한 검토는 Grabowski, 2015, p51을 보시오. ↩
- De la Dehesa, 2006, p31. ↩
- Mason and Asher, 1973, p29. ↩
- www.wto.org/english/tratop_e/dda_e/update_e.htm을 보시오. ↩
- Carew, 1987을 보시오. ↩
- Arrighi, 1994, p9. ↩
- Angus, 2016. ↩
- Harman, 1999, p557. ↩
- 코메콘의 원래 구성원은 소련·불가리아·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폴란드·루마니아였다. 알바니아는 1949년부터 1961년까지 회원국이었다. 독일민주공화국은 1950년에 가입했고 몽골인민공화국은 1962년 6월에 가입했다. 1964년에 유고슬라비아는 준회원국이 됐다. 쿠바는 1972년에 9번째 정회원이 됐고 베트남은 1978년에 10번째 정회원이 됐다. ↩
- Hoogvelt, 1997. ↩
- 프레비쉬-싱거 가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Toye and Toye, 2003, pp437-467을 보시오. ↩
- Wallerstein, 1974. ↩
- Kidron, 1970, p11. ↩
- 예컨대, Harman, 2009를 보시오. ↩
- 상시 군비 경제 논쟁에 관한 검토를 살펴보려면, 이 잡지에 실린 Pozo, 2010을 보시오. 전후 기간 이윤율 저하를 나타내는 데이터에 대한 계속 진행 중인 평가를 보려면 Roberts, 2016을 보시오. ↩
- 배치생산이란 생산 공정을 여러 묶음으로 나눠 생산하는 방식이다 ― 옮긴이. ↩
- UNCTAD, 2010, p6. ↩
- Woods, 2006, p10. ↩
- Pilger, 2002. http://johnpilger.com/videos/the-new-rulers-of-the-world에서 영상도 보시오. ↩
- Upchurch, 2009. ↩
- Callinicos, 2017. 중간 인용은 Brenner, 1998, p182. ↩
- Harman, 1991, p45. ↩
- 국내에서는 《린 생산》(한국린경영연구원, 2007)으로 번역 출판됐다 ― 옮긴이. ↩
- Womack and others, 1990. ↩
- www.wto.org/english/news_e/pres15_e/pr739_e.htm을 보시오. ↩
- Romei, 2014. ↩
- KPMG and The University of Sydney, 2016. ↩
- Kunstler, 2005, p1. ↩
- Watts, 2017을 보시오. ↩
- 최신의 평가를 보려면 Trommer, 2017을 보시오. ↩
- Elliot, 2017. ↩
- Clark, 2015. ↩
- 투즈의 블로그를 보시오. Tooze, 2017. ↩
- Ortiz-Ospina and Roser, 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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