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현재의 이슈들
예멘 난민 사태로 본
무슬림 혐오,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 *
이슬람 혐오는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편협한 사상 체계를 가진 획일적 종교로 보면서, 이슬람과 그 신도인 무슬림을 공포와 배척의 대상으로 보는 편견을 말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제주에 입국한 예멘 난민을 배척하자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수십만 명이 동참하면서 이슬람 혐오가 이슈가 됐다. 난민 배척 논리의 바탕에 이슬람에 대한 지독한 편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난민 배척론자들은 5차례 집회를 열기도 했다. 최근에는 제주에서 난민이 폭행을 당하는 일도 일어났다.
그래도 아직 한국에서는 이슬람 혐오가 서구보다는 광범하지 않다. 한국은 서구와 달리 중동을 지배하는 국가가 아니다. 이슬람 신도인 무슬림이 많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과도 가까운 사이이다.
이란은 미국에게는 철천지원수이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서울 강남에는 이란의 수도 이름을 딴 테헤란로가 있고, 이란에는 서울로가 있다. 한국 지배자들은 의료 산업을 육성하는 방편의 하나로,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지역 부자들의 의료 관광을 유치하고자 한다. 병원들은 무슬림이 먹을 수 있도록 허용된 할랄푸드와 기도실을 제공한다.
한국에는 훨씬 더 중요한 쟁점들이 있다. 한반도 평화 문제와 북한 문제가 대표적이다. 한 민족 안에 두 개의 국가가 있고, 그중 하나는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 이 문제가 단연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이슬람 혐오 문제는 앞으로는 우리 나라에서도 중요도가 상승할 수 있다. 장기화하는 세계경제 침체, 지정학적 경쟁의 심화, 국수주의적 민족주의 강화 가능성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슬람 혐오를 잘 알고 대처해야 한다. 우리 나라에 거주하는 무슬림은 15만~20만 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소수자이고 취약한 계층이어서 마녀사냥의 표적이 되기 쉬운 처지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모든 차별받는 사람들을 방어한다. 휴머니즘적 측은지심이 출발점이겠지만, 더 중요하게는 노동계급 단결의 관점에서 그렇다.
이 글은 이슬람 혐오가 널리 확산된 서구의 경험을 중심으로 살펴보며, 크게 4가지를 말하고자 한다. ① 유럽 무슬림들의 처지 ② 이슬람 혐오의 역사 ③ 이슬람에 대한 편견들 ④ 이슬람을 대하는 좌파의 태도.
유럽 무슬림들의 처지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유럽 전역의 무슬림 인구는 유럽 전체 인구의 4.9퍼센트인 2570만 명이다. 여기에는 최근에 유입되고 있는 난민 신청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4000만 명 이상이라는 통계도 있다.
영국의 프로축구 리그인 프리미어리그에 맨체스터시티라는 구단이 있는데, 그 소유주가 아랍에미리트의 왕자 만수르이다. 유럽에는 만수르처럼 부자인 무슬림도 있다. 그러나 유럽에 거주하는 무슬림의 대다수는 노동계급이고, 사회의 하층에 속해 있다.
유럽의 무슬림들은 극심한 차별을 겪는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 무슬림은 전체 인구의 8퍼센트를 차지하는데, 감옥에 갇힌 수감자 중에는 무슬림이 50~70퍼센트나 된다. 실업률과 빈곤률은 국민 평균의 3배이고, 연간 소득은 국민 평균보다 30퍼센트 적고, 교육 기회와 수준이 낮고, 시설 등이 열악한 대도시 변두리에 밀집해서 산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무슬림 여성들은 옷도 마음대로 못 입는다. 법이 그렇게 돼 있다. 무슬림 여성들의 복장은 히잡, 차도르, 니캅, 부르카로 여러 종류가 있는데, 2017년 1월 현재 유럽의 11개 나라가 공공장소에서 히잡이나 부르카의 착용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최근에 유럽사법재판소는 직장 내에서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것도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2016년에는 프랑스 몇몇 지방정부가 해변에서 부르키니라는 옷을 입는 것을 금지해 논란이 있었다. 부르키니는 부르카와 비키니를 합성한 말로, 무슬림 여성들을 위한 수영복이다. 래시가드와 별반 차이가 없는 옷이다. 이 부르키니가 대단한 위협이라도 되는 양 착용이 금지돼, 무슬림 여성들은 남성 경찰관들이 보는 앞에서 부르키니를 벗어야 하는 치욕을 당했다.
유럽에서는 유력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이슬람 혐오를 부추긴다. 예를 들어 얼마 전까지 영국에서 장관을 했고 우파 정당인 보수당 소속 정치인인 보리스 존슨은 이런 말을 했다. “부르카 입은 무슬림들은 우체통 같다.” 이렇게 유력 정치인들이 무슬림을 대놓고 멸시하고 천대하니 더 극단적인 세력이 활개를 칠 공간이 열린다. 유럽 곳곳에서 극우와 파시즘이 성장하는 요인의 하나다.
그밖에도 무슬림들은 각종 혐오 범죄의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2017년 영국에서는 이슬람 혐오적 범죄가 1200건이나 일어났다. 바로 1년 전인 2016년보다 26퍼센트나 증가한 수치다. 그 1200건 중 839건은 오프라인에서 일어난 것이다. 전체 이슬람 혐오적 범죄의 피해자 중 60퍼센트가 여성이다. 그런 범죄 중에는 황산을 얼굴에 끼얹는 지독한 범죄도 있다. 독일에서도 이슬람 혐오적 범죄가 1년에 1000건 이상 벌어진다.
그런 범죄의 피해자가 모두 실제로 무슬림인 것은 아니다. 무신론자이든 크리스천이든, 백인이든 흑인이든, 턱수염을 길렀다는 이유로 무슬림으로 오인받아 공격을 당한다. 피부색이 짙어도 무슬림으로 오인받는다. 그래서 인도인이나 브라질인들도 이슬람 혐오적 범죄의 피해자가 된다.
이슬람 혐오는 전통적 인종차별과 달리 종교와 문화와 관련된 것이어서 인종차별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보면, 그 차이가 별로 중요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자본주의 초기 노예무역에서 시작된 인종차별은 처음부터 기준이 자의적이었다. 인종이 존재한다는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피부색 등 외양을 기준으로 하는 차별만이 인종차별인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의 실제 효과이다.
이슬람 혐오의 역사
이슬람 혐오는 아주 최근의 현상이다.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무슬림이라고 해서 이토록 체계적으로 차별받지는 않았다.
사실 1950~1960년대 장기 호황 때 유럽 국가들은 부족한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서 이민을 장려했다.
사정이 바뀐 것은 1970년대 초 세계적 경제 위기가 일어나면서이다. 경제 위기가 닥치자 지배자들은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해고, 임금 삭감, 복지 감축 등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기 위한 속죄양을 찾았다. 그중 하나가 1950~1960년대에 대거 이주한 이민자들이었고, 그중 상당수가 무슬림이어서 무슬림이 공격의 표적이 됐다.
이 공격에 서구 노동운동은 안타깝게 패배했고, 사기가 저하됐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을 필두로 전 세계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이 펼쳐졌다. 이 때문에 개인주의가 더 강화됐다. 현실의 여러 문제에 대해 사람들은 노동자 파업 같은 집단적 해법이 아니라 개인적 해법을 더 중시하게 됐다. 이렇게 개인주의가 강화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를 사회 전체의 문제와 연결시켜 보기보다는 내 옆에서 내 일자리와 복지를 빼앗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더 큰 문제로 보기 쉽다.
또 다른 계기는 1979년 이란 혁명이다. 그 전까지 이란은 미국의 충실한 동맹국이었다. 혁명이 일어나서 친미 왕조가 타도돼, 미국 지배자들은 중동 개입에 필요한 중요한 동맹을 잃었다. 미국 지배자들은 분노했다. 그런데 그 혁명으로 들어선 정권이 이슬람 정권이었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의 소련·동구권 붕괴와 냉전 해체도 한 계기였다. 그전까지는 ‘공산주의 빨갱이’라는 외부의 적을 지목하는 게 여러모로 유용했는데, 냉전 해체로 이제 다른 적이 필요하게 됐다. “깡패국가”들이 지목됐는데, 동아시아에서는 북한이었고, 중동 지역에서는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이었다. 이란 등 무슬림이 많이 거주하는 국가들을 깡패국가로 지목하는 과정에서 그 주민 다수의 종교인 이슬람을 공포와 배척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이슬람 혐오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가장 결정적 계기는 2001년 9·11 공격과 이를 명분으로 한 미국의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이다.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테러 조직 알카에다가 항공기를 납치해 미국 뉴욕의 월드트레이드센터 등을 파괴한 사건이다. 3000명이 희생당한 이 사건은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미국 지배자들은 이를 명분으로 삼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고 점령했다. ‘이슬람 극단주의’라는 말이 유행했고, 각종 매체에서 이슬람은 테러리즘과 동의어처럼 쓰이기 시작했다. 이제 사람들은 이슬람 하면 테러를 떠올리게 됐다.(그러나 1980년대에만 해도, 미국이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를 후원했다는 위선도 봐야 한다.)
미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들이 9·11 공격을 이용해 테러방지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테러 용의자 색출 등을 쉽게 한다는 이유로 한국의 국정원 같은 정보기관에 자의적 수사 권한을 대폭 부여했다. 영장 없이도 사람을 체포해 구금할 수 있었고, 전화와 이메일 도청도 쉬워졌다. 테러방지법의 실제 기능은 국내에서 민주적 권리를 제약하는 것이다. 최근 영국에서는 미등록 이주민의 강제추방을 반대한 활동가들이 테러방지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러니까, 중동에 군사적 개입을 하기 위한 명분으로서, 국내 저항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 이슬람 혐오이다. 앞에서도 잠깐 말했지만, 이슬람 혐오는 전통적 인종차별과 하는 기능이 똑같다.
인종차별은 자본주의 초기 노예무역에서 시작됐다. 당시 부상하던 신흥 자본가들은 자유·평등·우애를 주장하고 인간은 모두 천부적 권리가 있다고 설파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프리카에서 말 그대로 흑인들을 사냥해 아메리카로 데려가 노예노동을 시키는 것을 정당화할 필요가 있었다. 흑인은 열등하고 사실은 인간이 아니라는 주장이 탄생했다.
노예무역이 사라진 뒤로도 인종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유용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다양해졌다. 식민지 쟁탈전 속에서 강대국 지배자들은 각자 다른 나라를 지배하는 것을 정당화할 논리가 필요해진 것이다. ‘저들은 열등해서 스스로 근대화와 민주주의를 이룩할 수 없으니 우리가 가서 개화해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같은 백인이어도 아일랜드인은 영국인보다 열등하다는 얘기가 나온 것이다. 이렇게 노동자들이 서로 적대하는 것은 지배계급에게 유리하다.
즉, 전통적 인종차별은 강대국들의 제국주의적 행태를 정당화하기 위해, 노동계급을 분열시켜 저항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특정 집단을 천대하고 차별하는 지배 방식이었다. 현재의 이슬람 혐오도 마찬가지 기능을 하고 있다.
이슬람에 대한 편견들
이슬람에 대한 편견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슬람은 교리적으로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종교라는 것이다. 둘째는 이슬람은 여성 차별적인 종교라는 것이다.
첫째부터 살펴보자. 서구에서 이슬람은 테러리즘과 거의 동의어로 쓰인다. 그러나 우선, 전 세계 무슬림은 16억 명 정도인데, 그들이 다 테러리스트라면 지구는 남아 나지 못했을 것이다.
또, 극단주의로는 유럽이 더 심각하다. 20세기 유럽에서는 나치가 집권한 경우도 있었고, 서구 강대국들은 제1차세계대전과 제2차세계대전을 벌였다. 이 두 전쟁에서 65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은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지만, 그곳을 혼돈 상태로 빠뜨릴 힘은 있었다. 그 혼돈 속에서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가 생겨났는데, 그것을 명분으로 미국과 유럽 강대국들은 시리아를 폭격해 수백만 명의 난민을 발생시켰다.(러시아도 큰 책임이 있다.) 그래 놓고는 난민들이 유럽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고 지중해 등에서 국경수비를 강화한다. 그래서 아름다운 휴양지로 유명한 지중해에서는 보름에 한 번꼴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다.
좀더 직결된 연구 결과를 보자. 유럽연합의 공동 경찰기구인 유로폴은 해마다 유럽에서 일어나는 테러 사건을 조사해 보고서를 발표한다. 그중에서 이슬람과 관련된 테러를 ‘지하드주의 공격’이라고 분류한다.
올해 발표된 보고서를 보면, 2017년 유럽 전역에서 시도되거나 성공한 테러 공격은 모두 205건이다. 그중 ‘지하드주의 공격’은 33건으로 전체의 16퍼센트밖에 안 된다. 이것만 보더라도 이슬람을 테러리즘과 동일시하는 공식을 틀렸다.
또, 그 보고서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지하드주의 공격은 주로 토착 테러리스트가 저지른다. 그들은 해외 테러 단체에 가입하기 위한 출국 경험이 없이 자국 내에서 급진화했다. 토착 테러리스트들의 조직은 매우 다양하고, 유럽연합 내에서 태어났거나 생애 대부분을 유럽연합 내에서 지낸 개인들로 구성돼 있다. … 이슬람국가IS 등 지하드주의 조직들과 직접적 연계가 없는 경우가 흔하다.”
‘지하드주의’ 테러 공격의 범인들은 최근에 유입된 이민자나 난민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럽에서 나고 자란 이민자 2세 3세들이 범인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올바른 질문은 왜 그들이 자신이 나고 자란 사회에 폭탄을 던지느냐가 돼야 한다. 즉, 유럽 사회가 그들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중요하다. 앞에서 말했듯이, 유럽 내 무슬림들이 겪는 온갖 천대와 차별이 그들 중 일부를, 그것도 극히 일부를 테러리즘으로 이끄는 것이다.
둘째, 이슬람은 여성 차별적인가? 이 문제에서도 서방은 이슬람을 비난할 처지가 못 된다. 그곳 여성들도 삶의 각종 영역에서 차별을 당한다.
그래도 어쨌든 이슬람 교리에 여성차별적으로 해석될 구절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반면, 여성에게 관대한 것으로 해석될 구절도 있다. 7세기경 등장한 이슬람이 초기부터 여성에게도 상속권을 인정했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이슬람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점들에 착목해 이슬람 교리를 여성차별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히잡과 부르카의 착용도 여성의 굴종을 상징하는 게 아니다. 여성들이 히잡을 착용하는 이유는 매우 다양하다. 그중에는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의 의미도 있다. 서구 사회의 성상품화에 대한 반감으로 착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슬람주의 조직인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은 수십 년 동안 비합법 조직이었는데도 한 때 회원이 50만 명에 이르렀고 그중에는 여성도 많았다. 그 여성들은 히잡이나 부르카를 착용했다고 해서 정치적으로 수동적이거나 보수적이지 않았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초 이집트 카이로에서 국제 반전운동 회의가 열렸고, 당시 노동자연대의 전신 다함께의 회원들도 많이 참석했다. 그 회의에 참석한 무슬림 여성들은 히잡을 착용하고도 토론회 연사로서 참여해 적극적으로 주장을 펼쳤다. 외국에서 온 다함께 회원들에게도 스스럼 없이 다가와 대화했다.
같은 이슬람 정권 하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여성의 처지는 많이 다르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은 바로 얼마 전까지는 운전을 할 수 없었고, 선거권도 없었다. 그러나 이란에서는 1950년대부터 여성에게 투표권이 보장됐다. 요즘에는 대학생의 65퍼센트가 여성이다. 의사의 3분의 1, 공무원의 60퍼센트, 교사의 80퍼센트가 여성이다.
결국에는 이슬람에 대한 여러 오해는 이슬람을 획일체처럼 보는 것에서 비롯하는데, 그것은 편견일 뿐이다. 이슬람도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교리도 모순돼 있고, 교리 해석도 다양하다.
이슬람주의도 매우 다양하다. 이란처럼 정권을 잡은 세력도 있고,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처럼 서구 기준으로 보면 개혁주의라고 부를 만한 조직도 있고,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처럼 매우 반동적인 집단도 있다.
이슬람을 대하는 좌파의 태도
그렇다면 좌파는 이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마르크스의 종교관에서 출발하는 게 좋겠다.
마르크스가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고 말했다는 것이 유명하다. 마르크스주의적 좌파 중에도 이 말만 기억하며 마르크스의 종교관을 일면적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런 오해는 이슬람에 대한 세간의 편견을 공유하는 데로 나아가기 쉽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종교관은 종교 자체에 대한 비판을 중시한 계몽주의자들이나 자유주의자들과 달랐다.
사실 당시에 아편은 효과적인 진통제로 쓰였다. 오늘날이라면 마르크스는 종교는 “인민의 타이레놀”이라고 했을 것이다. 또, 마르크스는 종교는 “현실의 고통을 표현하는 것이자 현실의 고통에 대한 항의이기도 하다”고 했다. “종교는 천대받는 사람들의 탄식이요, 몰인정한 세계의 인정이요, 영혼 없는 상황의 영혼이다. 종교는 대중의 아편이다. 행복에 대한 환상을 대중에게 주는 종교를 폐지한다는 것은, 대중의 현실 행복을 요구하는 것이다.”
즉, 마르크스는 종교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의 문제를 보려 했고, 그 현실을 바꾸는 데 주안점을 뒀다.
종교가 “현실의 고통을 표현하는 것이자 현실의 고통에 대한 항의이기도 하다”는 마르크스의 말을 곰곰이 숙고하며, 이슬람이라고 해서 특별히 근본주의적이 될 이유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다른 종교와 꼭 마찬가지로 이슬람도 교리 자체도 모순되고 교리에 대한 해석도 갈린다.
마르크스의 종교관을 실천에 잘 접목시킨 것은 러시아 혁명가 레닌과 그의 조직 볼셰비키이다. 당시 러시아에서 이슬람은 소수 종교였고 차별받았다. 1917년 10월 혁명 이후 레닌과 볼셰비키는 이슬람에 대해 완전한 신앙의 자유를 보장했다. 무슬림들에게 종교를 버리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 소비에트 정부를 지지할 자격 조건으로 무신론자이어야 함을 강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앙은 완전한 개인의 선택 문제로 해야 소수 종교인들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의지로 소비에트 정부를 지지할 수 있다고 봤다.
이와 달리 서구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이슬람 문제에서 입장이 모호하다. 예를 들어 현재 영국 노동당 소속의 런던시장은 무슬림이다. 그런데 노동당은 2000년대 초에는 미국의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확고히 지지하며 이슬람 혐오에 편승했다.
마르크스주의적 좌파들도 이슬람 문제에서 혼란을 겪는다. 프랑스 좌파가 두드러진다. 프랑스 좌파들은 ‘세속주의’를 오해해 차별받는 무슬림을 적극 방어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2004년 트로츠키주의 조직 노동자투쟁LO은 히잡이 “여성의 굴종”을 상징한다며 히잡 금지 법안을 지지했고, 또 다른 트로츠키주의 조직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 반자본주의신당 NPA의 전신은 이 문제로 내부 입장이 갈려서, 반대 운동을 조직하는 데 사실상 실패했다. 이런 태도로는 무슬림들에게 제대로 된 대안으로 보이기 힘들 것이다.
한국의 좌파 중에도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좌파가 있다. 기관지에서는 이슬람 혐오를 반대한다고 주장해 놓고, 난민 방어를 위한 연대체의 회의에 와서는 ‘이슬람 혐오 반대’를 요구로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난민 배척 논리의 핵심에 이슬람 혐오가 있는데 말이다.
사실 이슬람주의는 20세기 초에, 그리고 1970년대 이래로 아랍에서 크게 성장했다. 그 배경에는 세속 민족주의자들(과 그것의 좌파를 이룬 스탈린주의 공산당들)이 거듭 배신하며 제국주의와 자국 지배계급에 맞선 대안이 되지 못한 상황이 있었다.
좌파는 천대받고 차별받는 대다수 무슬림을 확고히 방어하고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 맞선 진정한 대안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무슬림들이 마음속 응어리를 테러나 아이시스 같은 반동적 방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반자본주의적 방식으로 풀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슬람, 무슬림, 이슬람주의
이슬람: 7세기 사우디아라비아 지역에서 무함마드에 의해 창시된 종교를 뜻한다. 이슬람은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요나, 예수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이자 예언자로 인정한다. 다만, 그 뒤에 탄생한 무함마드를 마지막 예언자로 보고, 예수를 신격화하지 않으며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다.
무슬림: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신자를 뜻한다. 전 세계 무슬림 인구는 약 16억 명이다. 전체 인구의 22퍼센트를 차지한다.
이슬람주의: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정치 신조로 삼는 운동을 말한다. 정치적 이슬람이라고도 부른다. 이슬람주의가 초기의 이슬람 정치·종교 공동체를 지향한다고 해서 이슬람 근본주의, 이슬람 원리주의라고도 서구에서는 불리기도 한다. 과거로의 회귀를 뜻한다고 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이슬람주의가 7세기 이후에 발전한 과학이나 제도들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사회에서 초기 이슬람의 이상을 실현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근본주의나 원리주의보다는 부흥주의라고 부르는 게 바람직하다.
이슬람주의는 아랍 세계에 대한 서구의 제국주의적 개입의 충격 때문에 생겨났다. 제국주의의 관여 때문에 자기 나라가 망가지고 자신의 출세 전망이 어두워져 분노한 토착 중간계급들이 이슬람주의 운동의 핵심이다. 1920년대 이집트에서 탄생한 무슬림형제단이 유명하다. 이슬람주의에 대해서는 크리스 하먼의 《이슬람주의, 계급, 혁명》(책갈피, 2011)이 유용하다.
MARX21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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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필자가 노동자연대 모임들에서 발제한 내용을 다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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