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탄생 200년
마르크스의 ‘노동계급은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는 자’ 진술은 틀렸는가? *
1 또한 역사는 이 진술이 틀렸음을 입증했고 따라서 마르크스의 역사 이론도 틀렸다고 널리 여겨진다.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무덤을 파는 자 테제라고 알려진 진술을 개략적으로 썼다. 이 진술은 자본주의의 객관적 조건이 자본주의를 전복할 혁명적 노동계급을 필연적으로 만들어 낼 것이라는 뜻이라고 널리 여겨진다.2 하지만 묘하게도, 마르크스가 분명하게 밝힌 무덤을 파는 자 테제는 틀렸을 뿐 아니라 마르크스의 역사 이론과 자본주의 이론의 핵심 요소이기도 했다는 견해가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은 학자들과 심지어 몇몇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도 제기된다. 이런 입장은 특히 노동과정 이론 내에서 영향력이 크다.
핼 드레이퍼가 말했듯이, “마르크스만큼 적대적 비평가들에 의해 말 하나하나가 그토록 세세하게 검토된 저술가나 사상가는 역사상 거의 없을 것이다.”3 브레이버만이 둑을 터뜨리자, 형성 중이던 노동과정 이론의 전통 내에서 광범한 이론적 논의가 일어났다. 그중 몇몇 학자들은 브레이버만과 마르크스를 대비시켰다. 브레이버만은 탈숙련화를 보편적이며 멈출 수 없는 과정으로 본 반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발전을 모순된 과정으로 강조했고 그 모순 중에는 탈숙련화와 노동의 생산력을 이용하고 발전시킬 필요 사이의 긴장이 있다는 것이다. 4
해리 브레이버만의 선구적 저작 《노동과 독점자본》은 노동의 탈숙련화를 둘러싼 노동사회학의 지향을 재정립했는데, 주류의 조직 이론이 떠오르고 사회학이 산업 쟁의에 관해 더는 관심을 두지 않게 될 때쯤의 일이었다.5 에드워즈는 자신의 “유물론적” 노동과정 이론이 “어떠한 참된 마르크스주의에도 반대된다”고 크게 뒤틀린 주장을 내세웠는데, 자신의 이론이 무덤을 파는 자 테제를 거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비록 생산양식, 생산력과 생산관계, 자본주의적 착취, 자본의 순환, 사용가치, 교환가치, 잉여가치, 가치 법칙, 이윤율 저하, 과잉생산, 모순 같은 여러 마르크스주의 개념을 차용했지만 말이다!
이 논의에서 몇몇 영향력 있는 학자들은 “정설 마르크스주의”라는 골칫거리로부터 노동과정 이론을 떼어 놓으려 했다. 그래서 폴 에드워즈는 자신의 책 《일터에서의 분쟁》에서 어떤 이론이 마르크스주의적이려면 무엇을 포함“해야만” 하는지를 독자에게 알려 줄 부록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적 이론은] “노동계급이 특수한 계급적 이익(특히 자본주의 전복)에 일체감을 느끼고 그 이익을 위해 투쟁할 생래적 경향이 있다는 주장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6 톰슨은 “핵심 이론이 마르크스주의적 범주에 크게 의존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핵심 이론은 내가 보기에 마르크스주의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톰슨의 이론은 노동과정 이론을 “프롤레타리아는 생산 체계 내 객관적 위치 덕분에 계급 사회에 도전하고 계급 사회를 탈바꿈시키게 될 수밖에 없다”는 진술과 단절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톰슨은 이 말을 14년 후에도 여전히 반복했다. 7
마찬가지로 폴 톰슨은 그가 노동과정의 “핵심 이론”이라 부른 것이 다음 네 명제로 구성돼 있다고 분명하게 설명했다. (1) 자본-노동 관계가 분석에서 우선적 관심사다. (2) 자본-노동 관계는 본질적으로 적대적이다. 비록 노동과정이 더 넓은 계급 관계에 대해 상대적으로 자율적이며,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것일지 몰라도 말이다. (3) 경쟁은 노동과정에서 변화를 강제한다. 따라서 (4) 경영자들은 필수적인 통제력을 갖는데, 다양한 통제 전략이 있을지라도, 필수적 통제력은 탈숙련화를 포함하지만 이에 국한되지는 않는다.8 더 나아가 “마르크스의 이론에는 동의의 구조, 노동력이 노동으로 전환되는 과정에 협력할 필요나 의향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고 한다. 이런 주장들은 《자본론》 제1권 제1장이 마르크스의 상품 물신성 이론을 제시한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제기됐다.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는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사물들 사이의 관계처럼 보여 줌으로써 이윤의 진정한 원천을 신비화한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이 이윤의 원천이라고 여기는 대신 상품이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여긴다. (교환 관계이자 그 관계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둘 다로서) 시장은 자본에 의한 노동 착취를 뿌옇게 가린다. 이런 이론은 자본주의가 어떻게 동의를 창출하는가에 관한 명쾌한 논의를 이룬다.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속해 연구하는 또 다른 이들은 마르크스가 노동계급 분석에서 근본적 실수를 저질렀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마이클 부라보이는 “마르크스의 노동과정 분석은 대체로 노력의 투입이 강압에 의해 결정된다는 가정[에 의존한다 — 비달]”이라고 (부정확하게) 주장했다.9 이 언급은 마르크스의 인간 본성 이론과 접맥돼 이해될 필요가 있는데, 인간은 본질적으로 창조적이며 노동을 통해 자신의 모든 잠재력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세분화된 노동 분업 하에서 소외되지만, 여전히 질 높은 노동을 하려는 창조적 욕구가 있다.
게다가 “협업”이라는 제목이 붙은 제13장에서 마르크스는 어떻게 “대부분의 생산적 노동에서는 단순한 사회적 접촉만으로도 개별 노동자들의 작업 능률을 증대시키는 경쟁심이나 혈기라는 자극이 생기는지”에 관해 썼다.10 부라보이는 마르크스가 그런 내재적 경향을 말했다고 하면서도 원문을 (단 하나의 인용구조차도) 전혀 밝히지 않았다. 그 대신 그저 “역사는 마르크스의 예측이 불충분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결론 내릴 뿐이다. “분석 마르크스주의자” 욘 엘스터가 이후에 예술의 수준으로 갈고 닦은 속임수를 발전시키면서, 부라보이는 마르크스의 오류를 지적하는 데서 시작해 자신의 분석을 뒷받침했는데, 그 자신의 혼란스러운 사고에서 자신을 구하는 일에 용감히 올라타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무덤을 파는 자 테제가 실제로 표현하는 것은 무엇이며, 어째서 “참된 마르크스주의”의 중심이 되는가?
무덤을 파는 자 테제와 가장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주장으로, 부라보이는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에게 외양 뒤의 운동을 드러내 줄 자본주의의 내재적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고 역설했는데, 그 경향이란 다시 말해 증대하는 상호의존성, 노동의 동질화, 계급 투쟁이라고 했다.무덤을 파는 자 테제는 초판이 불과 23쪽짜리였던 정치 소책자 《공산당 선언》에 실렸다. 그 테제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라는 장에서 분명하게 표현되는데, 그 장은 고대 로마부터 시작해서 19세기까지를 단 10쪽 만에 살펴보며 역사 유물론의 개요를 보여 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이 압축적인 개요에서 자본주의의 역사적 진보성을 칭찬하는 데 상당한 부분을 할애했다는 것은 흔히 간과된다.
현대 공업은 세계 시장을 창출했다. … 세계 시장 덕분에 상업, 해운, 육상 통신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발전했다. … 부르주아지는 세계 시장을 개척함으로써 모든 나라의 생산과 소비에 범세계적 성격을 부여했다. … 민족적 일면성과 편협성은 점점 더 불가능하게 된다. … 부르주아지는 모든 생산 도구의 급속한 개선과 한없이 편리해진 통신 수단을 통해 가장 미개한 민족까지 포함해 모든 민족을 문명으로 편입시킨다. … 거대한 도시들을 만들고 … 인구의 상당 부분을 농촌 생활의 우매함에서 건져 냈다.
당연히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적 노동 착취, 자본주의 경영의 전제적 성격, 세분화된 노동 분업의 모멸적 본질을 강력히 규탄했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노동과정, 생산관계가 생산력에 족쇄로 작용하는 것, 곧 닥칠 “불가피한” 자본주의 혁명에 관한 전체 논의는 단지 6쪽에 걸쳐 설명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주장했는가?
기술(“생산력”)의 발전은 자본주의적 계급 관계(“생산관계”)를 위협하는데, 과잉생산 공황이 체제의 불합리성을 드러내고 그럼으로써 체제의 정당성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되풀이되는 자본주의 공황 속에서 “생산물의 상당 부분뿐 아니라 이전에 창출돼 있던 생산력도 주기적으로 파괴된다. 이런 공황 속에서 이전 모든 시대의 관점에서 볼 때 불합리한 일로 보였을 법한 전염병, 즉 과잉생산이라는 전염병이 발생한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적 계급 관계는 생산력이 더한층 발전하는 것을 가로막는데, 점점 더 심각해지는 과잉생산 공황 — 생산 능력에 대한 과잉투자와 수요 이상의 상품 생산을 뜻하며, 시장 경쟁의 무정부성 때문에 벌어진다 — 이 부와 물리적 자본의 파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관찰한 결과, “부르주아 사회의 조건들은 자기가 생산한 부를 수용할 수 없게 됐다.” 자본주의는 자신이 창출한 생산 능력을 완전히 활용하지 못한다.
한편 세분화된 노동 분업과 기계화 하에서 일어나는 탈숙련화는 자본주의적 경영의 전제적 본성에 덧붙어서 노동자를 폄하하고 그의 자율성을 박탈한다. “광범한 기계 활용과 분업으로 말미암아 프롤레타리아의 노동은 개성을 모두 상실했고, 그 결과 노동할 매력도 모두 사라졌다. … 산업 군대의 사병인 노동자들은 장교와 부사관들로 구성된 완벽한 위계질서의 명령 아래 놓인다.” 세분화된 노동 분업은 생산수단이 소수인 자본가들의 수중에 집중된 것과 합쳐져서, 노동 조건의 동질화를 낳는다.
그렇지만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프롤레타리아는 수적으로만 증가하는 것이 아니다. 프롤레타리아는 더욱더 거대한 대중으로 한데 집중되고, 힘이 커지며, 점차 자신의 힘을 자각하게 된다. 기계가 서로 다른 노동의 차이를 없애 버리고, 거의 모든 곳에서 임금을 똑같이 낮은 수준으로 떨어뜨리면서, 프롤레타리아 대오 내부의 갖가지 이해관계와 생활 조건은 그만큼 더 같아진다.
《공산당 선언》에 따르면, 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조직하기 시작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을 쓸 당시 (최초의 완전한 자본주의적 노동시장인) 영국의 노동시장에서 탈숙련화와 기계화를 통한 노동 조건의 동질화는 지배적 경향이었다. 영국노총Trades Union Congress이 《공산당 선언》 출판 20년 후인 1868년에 설립됐고, 1870년대에는 대중적 노동운동이 발전했고, 자본과 노동 간 산업 쟁의가 격렬해졌다. 《공산당 선언》이 발표된 지 80년 정도가 지나자, 영국 오스틴 사社의 롱브리지 공장은 노동자 2만 명 이상을, 미국 포드 사社의 리버루지 공단은 노동자 10만 명을 고용하고 있었다. 《공산당 선언》이 출판된 지 170년이 지난 오늘날, 독일 폭스바겐 사社의 볼프스부르크 공장은 7만 3000명 이상을, 중국 선전 룽화에 위치하고 넓이가 3.6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폭스콘 사社의 공단(애플 제품을 만든다)은 40만 명을 고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서비스 부문의 초대형 기업들은 노동 조건이 똑같은 노동자를 수십만 명(맥도날드, 아마존, 테스코), 때로는 100만 명 이상(월마트) 고용하고 있다.
노동계급이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는 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진술의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면은 자본주의의 모순적 발전이 노동을 폄하거나 지루하게 만드는 한편으로 노동계급의 교육 수준을 올린다는 것이다. “부르주아지는 … 자신들이 습득한 정치적·일반적 교양의 요소들을 스스로 프롤레타리아에게 제공한다.”
그 장의 마지막 세 페이지에 철쳐 마르크스는 계급투쟁, 계급 내 갈등, 혁명적 상황의 전개에 관해 설명했다.
부르주아지는 끊임없이 투쟁한다. 처음에는 귀족 계급과, 나중에는 산업의 진보에 대립하는 이해관계를 가지게 되는 다른 집단의 부르주아지와, 그리고 외국 부르주아지와 항상 [투쟁한다.] … 산업의 진보로 말미암아 지배계급의 대다수 구성원들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추락한다. … 이들 역시 프롤레타리아에게 계몽과 진보의 신선한 요소를 제공한다.
결국 “다소 은밀한 형태의 내전이 … 공공연한 혁명으로 분출하고 … 부르주아지를 폭력적으로 타도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지배의 토대를 놓는다.” 이 장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부르주아지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무덤을 파는 자들을 만들어 낸 셈이다. 부르주아지의 몰락과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는 둘 다 똑같이 불가피하다.”
후유! 정신없이 빠르게 수 세기 역사를 살펴봤다. 정말이지 생동감 넘치는 언어이고 절절한 촉구이다. 노동계급 독자는 부르주아지에 맞서 무기를 들 태세가 됐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아까 우리의 승리가 불가피하다고 했는데, 그럼 우리가 뭔가를 꼭 해야 할까? 《공산당 선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공산주의자에 관해,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이 “프롤레타리아를 하나의 계급으로 만든다”는 공통의 목표를 향해 다른 노동계급 정당들과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지에 대해 읽는다. 다시 말해, 조직화를 달성해야 하는 것이다! 계급 의식은 노동 조건의 동질화로부터 자동으로 기계적으로 생겨나지 않는다. 우리는 노동계급이 운동에 참여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무척 꼼꼼하게 서술된 공산주의자의 강령에 대해 읽는다. 마침내 《공산당 선언》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문구로 강력한 촉구를 하며 마무리된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정치와 과학
《공산당 선언》이 무덤을 파는 자 테제에 관해 “불가피하다”는 낱말을 사용했지만, 노동계급을 교육하고 조직할 목적의 정치 소책자임을 반드시 유념해야만 한다. 이 소책자의 존재 자체가 혁명적 계급 의식의 발전이 필연적이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만약 필연적이라면 그런 정치 선언문은 필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공산당 선언》은 자본주의 경제 관계가 계급 투쟁을 창출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단결한 노동계급의 “토대를 놓”고, 자본주의의 사회주의로의 혁명적 재편을 가능케 할 목적으로 역사를 간략히 설명한다.
12 하지만 《브뤼메르 18일》과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같은 신문체 저술에서 마르크스는 계급들의 파편화와 구조적 기초를 형성하는 계급들이 계급 의식적 사회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필요한 일련의 복잡한 정치적·이데올로기적 과정들에 철저히 초점을 맞춘다. 13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 둘 다에서 “양대 계급”을 강조하는 한편, 《자본론》의 원숙한 분석에서는 단결하고 계급 의식적인 프롤레타리아의 형성을 가로막는 걸림돌을 강조한다.(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룬다.) 그런 걸림돌로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계급 관계 신비화, [노동자들의] 임금에 대한 물질적 의존, 생활수준의 상승이 있다. 14
무덤을 파는 자 테제는 아주 정교한 이론적 분석에 기반한 과학적 예측은 결코 아니었다. 세르주 말레가 말했듯이,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에서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가 역사의 보편적 행위자이라는 철학적 개념을 정교하게 고안해 냈다.” 무덤을 파는 자 테제는 마르크스의 원숙한 과학적 저술에서는 거의 완벽히 자취를 감춘다. 2000쪽 이상으로 구성된 《자본론》 세 권 중에서,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는 6쪽 이상에 걸쳐 전개한 내용을 제1권의 겨우 3쪽짜리 장에서 요약적으로 다룰 뿐이다.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는 무덤을 파는 자 테제에 관해 6쪽을 할애한 것과 대조적으로, 《자본론》에서는 다음과 같은 주제 각각에 말 그대로 수백 쪽을 할애했다. 상품과 가치, 화폐, 노동과정과 잉여가치의 생산, 노동 분업, 기계화, 임금, 자본주의적 축적, 자본의 순환, 자본의 회전, 축적과 재생산, 이윤의 생산, 이윤율의 균등화, 이윤율의 저하 경향, 자본의 형태들, 지대와 수익.
계급 구조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혁명적 계급 의식을 갖춘 노동계급을 자동으로 만들어 낼 것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하거나 체계적으로 이론화하지 않았다고 나는 주장해 왔다. “프롤레타리아의 승리”가 “불가피하다”는 마르크스의 말은 노동계급의 투지를 북돋으려고 의도한 수사학적 과장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계급 분석에서 더 근본적인 것은, 그가 단단히 붙잡고 있는 정치적·철학적 입장과 적어도 두 개의 반증 가능성이 있는 과학적 주장이다. 앞서 짧게 언급한 것처럼 마르크스의 노동계급 분석을 뒷받침하는 정치적·철학적 입장은 역사상 노동계급만이 유일하게 자신의 이익으로 보편적 이익을 대변하는 계급이라는 것이다. 드레이퍼가 설명했듯, 초기의 사회주의자들은 노동계급을 고통받지만 스스로 조직할 수 없으며 박애주의적 도움이 필요한 이들로 보며 가엾게 여겼다. 젊은 시절의 마르크스도 프롤레타리아를 피해자로 여겼지만, 이내 프롤레타리아는 자기 자신을 도울 수 있다는 입장을 제시하며 그런 주장을 거부하게 됐다. 게다가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드레이퍼의 용어를 빌리면 노동계급을 “인류 이익의 화신”으로 봤다.
17 드레이퍼의 관찰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를 혁명적 계급으로,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는 자로 호명하는 것은 “현재의 사건들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를 “혁명을 일으킬 역사적 잠재력이 있는 계급”으로 지목하는 것이다. 18
부르주아 혁명이 권력을 소수인 계급의 손에 집중시켰다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그 권력을 다수를 대변하는 계급에게로 옮길 것이다. 게다가 과거의 혁명은 모두 사적 소유를 이런 형태에서 저런 형태로 바꿨을 뿐인 반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생각하기에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을 수 있다면 그런 계급사회는 폐지될 것이었다. 마르크스의 말로는 “노동자의 해방 안에 보편적 인간 해방이 담겨 있고, 이는 생산에 대한 노동자의 관계 속에 인간의 예속 상태 전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둘째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객관적으로 결정된 계급 구조에 기반을 두고 있고, 그 계급 구조는 소규모의 자본가계급과 인구의 압도 다수를 아우르는 거대한 노동계급으로 이뤄져 있다고 했다. 마르크스는 탈숙련화라는 보편적 과정이 동질적인 미숙련 노동계급을 낳을 거라 보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미숙련 노동자와 숙련 노동자의 복잡한 노동 분업과 숙련 및 미숙련 노동자 모두를 조정하는 경영자들의 위계가 필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19 세분화된 노동 분업의 자본주의적 시행은 숙련 노동의 복잡한 기능을 단순화하겠지만 숙련 노동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세분화된 노동 분업은 복잡한 경영 계층화를 필요로 할 것이다. “실제의 군대가 장교와 하사관을 필요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본가의 지휘 아래에 있는 노동자 산업 군대도 노동 과정 중에 자본의 이름으로 명령을 내릴 장교(경영진)와 부사관(작업반장과 감독관)을 필요로 한다.” 20
세분화된 노동 분업 하에서조차 “임금 수준에 조응하는 노동력의 위계제”가 계속 존재할 것이며, “위계제의 등급들과 나란히 숙련공과 미숙련공이라는 단순한 구분이 나타난다.”21 임금wage 또는 봉급salary 고용 관계에 있는 사람들 내부의 차이를 측정하기 위해 라이트는 숙련도(전문가, 숙련가, 비숙련가)와 지휘권(경영자, 감독자, 지휘권 없음)을 기초로 아홉 가지로 구분되는 계급 구조 모형을 개발했는데, 이는 표1에 나타나 있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 여섯 군데(미국, 캐나다, 영국, 스웨덴, 노르웨이, 일본)의 계급 구조에 대한 최신 연구에서 에릭 올린 라이트는 여섯 나라 모두에서 “10명 이상을 고용하는 자가고용인으로 규정되는 자본가계급은 노동인구의 2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전문 경영자 항목에는 투자은행가, 법인 자문 변호사, 헤지펀드·사모펀드 매니저, 기업 임원 등 상위 1퍼센트가 속한다. 더욱 넓게 보아, 전문가(석사 이상 학위가 있어야 하는 직업) 항목과 경영자 항목 전체는 ‘봉급 수령자’이다. 이들은 고소득자이며, 엄밀한 의미의 자본가계급(생산수단의 소유자)과 유기적으로 긴밀하게 묶여 있는데, 봉급을 받는다. 이들은 임금노동자에 대한 지휘권이 있다. 그리고(또는) 조직의 정책 결정에 관여할 수 있으며 자본주의 체제[의 유지]에 깊은 재정적 이해관계가 있다. 이처럼 전문가와 경영자라는 봉급 수령자는 노동계급과 구별돼야 한다.
나머지 항목은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사람들로 이뤄져 있다: 비숙련 노동자, 지휘권이 없는 숙련 노동자, 비숙련 감독자, 숙련 감독자. 비숙련·숙련 감독자는 비숙련·숙련 노동자였다가 승진했을 가능성이 있음을 고려하면, 이 네 지위는 유기적 노동시장 관계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네 지위를 노동계급으로 규정한다.
이 규정에 따르면 (자본가, 소고용주, 자가고용인을 포함하는) 전체 노동인구에서 노동계급이 차지하는 비율은 스웨덴이 76퍼센트, 영국이 71퍼센트, 미국이 67퍼센트, 캐나다와 노르웨이가 66퍼센트다. 일본은 이례적인데, 노동인구의 무려 23퍼센트가 자가고용 상태이며, 자본가계급은 1.6퍼센트, 노동계급은 53퍼센트다.
22 전체 가구의 23퍼센트만이 기업 주식, 금융 증권, 뮤추얼 펀드 등의 형태로 증권을 소유하고 있다. 이 23퍼센트는 라이트의 모형에서 대략 25~35퍼센트를 차지하는 봉급 수령자들이다. 미국 가구의 단지 52퍼센트만이 연금을 소유하고 있다. 모든 증권 — 증권을 직접 소유하든, 뮤추얼 펀드나 퇴직금 적립 계좌를 통해 간접으로 소유하든 — 을 고려할 때, 단지 40퍼센트의 가구만이 5000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다시 말해, 미국 가구의 무려 60퍼센트는 어떤 형태로든 증권 시장에 투자한 돈이 5000달러 이하이고, 그중 대다수는 직접적 소유 지분이 전혀 없다. 이 60퍼센트의 사람들은 라이트의 모형에서 전체 노동인구의 65~75퍼센트를 차지하는 노동계급이다. 인구의 다수는 자본주의 경제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소유 지분이 없는 임금노동자다.
증권 소유 측면에서 보면, 충격적이게도 미국 가구의 상위 10퍼센트가 각종 연금 제도, 401(k) 퇴직금 적립 제도, 뮤추얼 펀드를 포함해 전체 증권의 84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인구의 다수를 이루며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 지분이 없고 팽창하는 노동계급을 창출하리라는 마르크스의 예측은 사실로 증명돼 왔다. 하지만 노동계급은 여전히 내부적으로 다양하고, 이는 계급 분석과 계급 정치에서 중심적인 쟁점이다. 감독자, 숙련 노동자, 비숙련 노동자 사이의 유기적 노동시장 관계는 주관적인 계급적 동질감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있는 반면, 이 집단과 봉급 수령자 집단 사이에는 주관적인 계급적 거리감이 상당할 가능성이 있다. 계급을 가로지르는 동맹이라는 문제가 여기서 핵심 쟁점인데,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서로에게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계급] 분화와 동맹 문제에 깊이 관심을 뒀음을 드레이퍼는 보여 줬다.마지막으로,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상세하게 설명한, 자본주의의 중심적 발전 동역학은 자본의 집중과 중앙집권화라는 것을 보자. 구체적으로 말해, 마르크스는 자본이 점점 더 소수인 자본가와 기업의 수중으로 집중될 것이며 매우 큰 기업의 형태로 중앙집권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늘날 두 예측 다 진실인 듯하다.
24 이 사실을 라이트의 계급 구조 분석과 결합시켜 보면, 그 상위 1퍼센트가 자본가와 전문 경영자임을 알 수 있다. 소유 자산 기준으로 그다음 20퍼센트 인구는 나머지 자본가와 봉급 수령자의 상위 3분의 2로 구성돼 있다. 소유 자산 기준 하위 80퍼센트는 봉급 수령자의 하위 3분의 1과 노동계급 전체(임금노동자와 감독자)로 구성돼 있다. 하위 80퍼센트의 소유 자산이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이토록 변변찮다는 사실은 임금이 정체돼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미국에서 고등학교 교육을 받은 25~44세 남성과 대학 교육을 받은 25~34세 남성의 실질임금은 1969~2008년에 하락했다. 25
부의 집중을 보자. 2016년 기준으로 미국 인구의 상위 1퍼센트는 전체 순자산의 40퍼센트를 소유하고 있으며 하위 80퍼센트는 단지 10퍼센트만을 소유하고 있다.26 이 38퍼센트는 라이트의 모형에서 대략 25~35퍼센트를 차지하는 봉급 수령자들이다.
자본의 중앙집권화를 보자. 앞에서 오늘날의 경제는 초대형 기업들이 지배하고 있고, 그 기업들은 각각 동일한 노동 조건에서 일하는 노동자 수십만 명을 고용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미국에서는 피고용인이 가장 많은 기업 상위 25곳이 평균 16만 6000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고, 상위 9곳은 평균 30만 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다. 고숙련 일자리가 상당이 성장하고 다양화하고 있지만, 미국 노동인구의 35퍼센트는 기계공, 사무원, 간호조무사, 요리사처럼 자율성이 낮은 일자리에서 일하고, 27퍼센트는 영업사원, 판매 매니저, 비서, 초등학교 교사처럼 반쯤만 자율적인 일자리에서 일한다. 단지 38퍼센트만이 고숙련에 자율성이 높은 일자리에서 일한다.요컨대, 역사의 흐름은 자본주의의 계급 구조에 관한 마르크스의 분석이 여전히 놀랄 만큼 정확하다는 것을 보여 왔다. 《자본론》 제1권이 출판된 지 100년이 넘었지만, 계급 구조와 자본의 편재에 관한 분석은 여전히 유효하다. 소유권과 부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집중돼 있다. 경제는 초대형 기업들이 지배하고 있다. 인구의 압도 다수는 임금노동자로, 대부분 기업 주식 지분이 전혀 없으며 일터에서 제한된 기술과 자율성만을 가진다. 그렇다면 마르크스는 이런 객관적 조건과 계급 의식 발전의 관계를 어떻게 봤는가?
계급 의식
27 다시 말해, 투쟁 자체 속에서만 혁명적 계급 의식의 대중적 확산이 가능하다.
마르크스가 계급에 관해 쓴 말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지만, 노동계급 의식이 활발한 투쟁을 통해서만 확산될 수 있다는 주장은 일관됐다.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이런 공산주의 의식을 대규모로 창출하기 위해, 또 그 대의 자체를 성취하기 위해, 인간의 대폭적 개조가 필요하다. 그 개조는 오로지 실천적 운동 속에서만, 즉 혁명 속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이와 비슷하게, 마르크스는 《철학의 빈곤》에서 공통의 이해관계만으로는 계급 의식이 충분히 발달할 수 없다고 했다.
경제적 조건은 우선 농촌의 인민 대중을 노동자로 전환시켰다. 자본의 지배는 이 대중이 공통된 조건, 공통된 이해관계를 갖도록 했다. 그러므로 이 대중은 이미 자본에 대항하는 계급이지만 아직 대자적 계급은 아니다. 우리가 살펴보았던 소수의 몇몇 투쟁 속에서만 이 대중은 단결해서 스스로 대자적 계급으로 변모했다.또,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도 마르크스는 “연계”와 “이해관계의 동질성”만으로는 대자적 계급으로의 발전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썼다. “이들 소농小農들은, 그저 한 지역에 거주한다는 연계만 있는 한, 그리고 그들의 이해관계의 일체성이 공동체 의식, 전국적 유대, 정치적 조직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한, 계급을 형성하지 못한다.”
이런 말들을 보면, 마르크스가 계급 의식의 발전을 조건부인 것으로, 공통의 물질적 조건과 더불어 정치적 선동과 조직화가 필요한 것으로 봤음을 알 수 있다. 마르크스를 균형 있게 읽으면, 그의 분석은 기계적인 것이 결코 아니었음을, 즉 자본주의의 모순이 심화하면 혁명적 노동계급이 성장하고야 만다고 본 것이 아니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앞에서 살펴봤듯이 계급 의식에 대한 마르크스의 짧은 언급들을 보면, 그가 계급투쟁의 결과를 일면적으로 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자본주의에 관한 마르크스의 광범한 논의들은 혁명적 노동계급 의식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들을 강조했다.
《자본론》 제1권에서 마르크스는 지배적 이데올로기(자본주의 생산 바깥에서 재생산된다)와 임금에 대한 물질적 의존이 결합해서 노동계급 의식의 실현을 가로막는 방해물로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진보함에 따라, 교육·전통·습관에 의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요구들을 자명한 자연법칙으로 인정하는 노동계급이 발전한다. … 보통의 사정에서 노동자는 ‘생산의 자연법칙’을 인정하는 채로, 즉 생산조건들 자체에서 생겨나며 그것들에 의해 영구히 보장되고 있는 자본에 대한 종속 상태에 머무를 수 있다.
마르크스의 상품 물신성 이론은 자본주의적 제도들이 시장경제의 작동과 이윤의 진정한 원천(노동자의 노동)을 신비화시킨다고 여겼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인구 다수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킨다고도 주장했다.(불평등을 증가시키고, 간헐적이고 불안정한 일자리를 가진 극빈자·노동자 계급을 대거 창출하지만 말이다.) 마르크스의 상대적 잉여가치 이론은 소비재 부문에서 생산성 향상이 노동력 가치의 하락으로 이어지는 방식을 상세히 설명하는데, 생계 수단의 값을 낮춰서 필요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잉여노동시간을 증가시킴으로써 이뤄진다. 따라서 임금이 정체돼 있더라도 소비재가 계속 싸지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노동자들이 더 많은 상품을 살 형편이 된다.
더군다나 마르크스는 최저 생활수준으로 여겨지는 사회적 기준이 시간이 지나면서 높아진다는 점에 주목했다. “노동력의 가치를 정하는 데는 역사적·도덕적 요소가 포함된다.” 임금은 “[노동자가 — 비달] 노동하는 개인으로서 정상 상태를 유지할 만큼은 돼야” 하는데, “그 자체가 역사적 산물이며, 따라서 대체로 한 나라의 문화수준에 따라 결정”되는 “이른바 필수적인 욕구”가 포함된다.
32 헤게모니를 차지한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의 이익을 사회의 보편적 이익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그람시의 분석이 갖는 힘은 다음과 같은 그의 주장에서 나온다. 그람시의 주장인즉, 실제로 헤게모니를 차지한 이데올로기는 계급 타협의 물질적 형태, 예컨대 상대적 고임금, 정치 지도자에 대한 민주적 선출, 여러 가지 체제 통합 형태 같은 것에 뿌리내리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의식에 대한 마르크스의 통찰, 그리고 의식과 물질적 사회관계의 관계에 대한 마르크스의 통찰은 20세기 가장 주목할 만한 이데올로기 이론들의 기초를 제공했는데, 그 이론들에는 안토니오 그람시와 루이 알튀세르의 엄청난 영향력이 있는 이론이 포함된다. 그람시는 헤게모니를 자본가계급이 노동계급을 사회로 통합시키는 정치적·도덕적 지도력으로 봤다.33 구성함으로써 더 구체적인 의미 속에서 주체를 형성하기도 한다. 34 예란 테르보른이 자세히 설명했듯이, 주체는 능력과 욕구, 수단과 목적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체계를 통해 형성되고, 그리하여 특정한 유형의 주체가 될 자질을 갖추게 된다. 개인들을 주체화시키면서 지배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를 방어하는 많은 층을 만들어 낸다. 자본주의적 착취가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기, 빗장을 걸고, 자본주의는 공정하다고 제시하기, 빗장을 걸고, 자본주의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체제라고 주장하기. 35
알튀세르가 보기로 이데올로기는 두 가지 의미로 주관성을 형성한다. 일반적 의미에서 이데올로기는 문화로서 기능하는데, 행동할 능력을 지닌 생각하는 주체로서 개인들을 구성하는 의미 체계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데올로기는 개인들을 특정한 사회 질서 속의 주체(예컨대 “왕의 신민”)로서결론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그들의 일생에 혁명이 시작되리라 예상했을까? 그들은 분명 그 목표를 향해 조직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어쨌든 동질적 노동계급이나 대중적 혁명 운동이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부재한 것은 마르크스가 역사와 자본주의에 관해 분명하게 표현한 핵심 진술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증거가 되지 않는다. 전체 노동인구에서 전문직 봉급 수령자가 25~35퍼센트로 성장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 변화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혁명에 관해 살펴보자. 나는 마르크스가 일관되게 다음과 같이 주장했음을 밝혔다: 사회의 제도들이 자본주의를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것으로 보이게 하고, 노동자들은 살려면 임금에 의존해야 하고, 자본주의 하에서 생활수준이 향상되는데 심지어 노동계급의 생활수준도 향상된다.(하지만 생산력의 성장과 자본의 축적보다는 훨씬 느린 속도로 오른다.) 마르크스는 활발한 계급투쟁(활발한 노동운동과 당 조직화)만이 노동자 의식을 바꿀 수 있다고도 줄기차게 주장했다. 활발한 계급투쟁이 없으면 노동계급적 일자리를 가졌다는 구조적 공통점은 혁명적 노동계급 의식의 발전을 보장하지 못할 것이다.
36 마르크스는 단결하고 혁명적인 노동계급의 발전을 가로막는 심각한 걸림돌이 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드레이퍼는 마르크스가 1860년대에 쓴 여러 편지에서 “부르주아적 감염”, 즉 노동계급 내 분열과 경쟁에 크게 관심을 나타냈음을 보여 줬다. 사실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는 “사회 전체가 점점 더 두 개의 커다란 적대 진영으로 분열되고 있다”고 했지만, 1870년에 쓴 편지에서는 “영국에는 이제 두 개의 적대 진영으로 분열된 노동계급, 즉 잉글랜드 프롤레타리아와 아일랜드 프롤레타리아가 있다”고 썼다.직업에 따른 계층화에 관해 보자.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동질적인 미숙련 노동계급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체계적이고 일관되게 주장하지 않았다. 비록 마르크스가 젊은 시절에 쓴 글이나 정치 소책자에서는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그의 최고작인 《자본론》에서는 훨씬 더 세심하게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초기 단계의 자본주의 내에서 탈숙련화로 향하는 강력한 경향이 있음을 분명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봤지만, 숙련 노동이 완전히 제거될 수 없으며 노동의 복잡한 분할로 여러 계층의 경영 위계제가 필요해질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더 넓게 보아,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발전을 여러 단계를 거치는 모순된 과정으로 봤다. 기술 변화는 노동의 숙련도 향상 압력을 만들어 낼 것인데, 이는 분명 자본의 노동 분할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근대적 공업은 생산 과정의 현재 형태를 최종적인 것으로 보지도 그렇게 취급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근대적 공업의 기술적 기초는 혁명적이다. … 대공업은 노동의 변형(따라서 노동자가 다양한 종류의 노동에 최대로 적합하게 되는 것, 또는 노동자의 다양한 능력을 가능한 최대 한도로 발전시키는 것)을 기본적 생산법칙으로 인정하라고 자기의 파국[공황]을 통해 강요하고 있다.”
그러면 무덤을 파는 자 테제는 어떻게 되는가? 나는 마르크스가 이 테제를 정치 소책자의 한두 문장 이상으로 자세하게 표현한 적이 없었으며, 그것은 마르크스의 역사 이론이나 자본주의 이론의 핵심적인 부분도 아니었다고 주장해 왔다. 사실 그런 기계론적 진술은 마르크스 역사 분석의 더 광범한 취지나 그의 성숙하고 깊이 있는 자본주의 분석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공산당 선언》의 두 문장, 즉 부르주아지가 자신의 무덤을 파는 자를 만들어 낸다와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는 불가피하다는 것은 노동계급을 향한 격정적 요청으로 볼 때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이 요청은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물질적 조건 때문에 노동계급은 다수의 이익을 대변하는 혁명적 계급이 될 잠재력이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특별하다는 확고한 믿음에 기반한 것이다.
마르크스가 더 체계적으로 주장한 것은 자본의 집중과 중앙집권화가 증대할 것이고, 거대 독과점 기업들을 통한 중앙집권화는 수많은 노동자를 비슷한 노동조건에 놓이게 할 것이며, 계급투쟁과 주기적 위기가 계속되리라는 것이다. 이런 예측은 역사에 의해 입증돼 왔다. 마르크스는 생산력이 점점 더 생산관계에 의해 구속받을 것이고 이 때문에 계급투쟁이 심화할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확실히 계급투쟁은 1970년대 포드주의의 위기와 2008년 금융 위기 이래 심화해 왔고, 정계와 재계의 주류는 이제는 지난 40년간 꾸준히 증가해 온 불평등을 변명의 여지가 없는 사실로 보며 이대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는 노동계급만으로는 더는 안 되고 자본에 맞서서 봉급 수령자들과 동맹을 구축하기 시작해야 할 지점에 이르렀는가? 이 질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사회주의자들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을 갖고 했던 일에서 시작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노동계급과 그 동맹을 적극적으로 교육하고 조직하는 일 말이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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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Matt Vidal, ‘Was Marx wrong about the working class? Reconsidering the gravedigger thesis.’, International Socialism No.158
↩
- Marx and Engels 1978. 이 논문에 관해 논평을 써 준 사이먼 조이스와 몇몇 주요 참고 문헌을 추천해 준 알렉스 캘리니코스에게 감사하다. 이 둘과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관해 지속적으로 논의를 나눌 수 있어 감사하다. ↩
- Draper 1977, p2. ↩
- Braverman 1974. 브레이버만의 책의 전후 맥락에 관한 통찰은 Burawoy, 1979에서 나온 것이다. ↩
- Elger 1979, Cressey and Maclnnes 1980. ↩
- Edwards 1986, pp58, 94. ↩
- Thompson 1990, pp102, 115. ↩
- Thompson and Newsome 2004. ↩
- Burawoy 1982, pp27, 29. ↩
- Marx 1990, p443. ↩
- Burawoy 1982, p29. ↩
- 이 절의 모든 인용문은 전부 Marx and Engles 1978, pp475-484에서 가져온 것이다. ↩
- Mallet 1975, p15. ↩
- Marx 1994, Marx 1997. ↩
- Marx and Engels 1978, p474. ↩
- 《자본론》에서 그 3쪽을 보려면, Marx 1990, pp927-930을 보시오. ↩
- Draper 1977, p24. ↩
- Marx 1978, p80. ↩
- Draper 1977, p51. ↩
- Marx 1993, pp469-470. [Marx 1990의 오기인 듯하다.] ↩
- Marx 1981, p450. [Marx 1990의 오기인 듯하다.] ↩
- Wright 1997, pp46-47. ↩
- Cohen 2018, Wolff 2017. ↩
- Draper 1977. ↩
- Wolff 2017. ↩
- Madrick and Papanikolaou 2010. ↩
- Vidal 2013a. ↩
- Marx and Engels 1996, p193, 강조는 원문. ↩
- Marx 1975, p173, 강조는 필자. ↩
- Marx 1994, p124. ↩
- Marx 1990, p899. ↩
- Marx 1990, pp274-275, 12장. ↩
- Gramsci 1999. ↩
- 프랑스어 sujet(영어 subject)에는 주체와 신민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함께 있으며, 알튀세르는 이 중의성에 착안한 이데올로기론을 내놓았다 — 옮긴이. ↩
- Althusser 2001. ↩
- Therborn 1999. ↩
- Marx and Engels 1978. Letter from Marx to Sigfrid Meyer and August Vogt, Draper 1977, p66에서 인용. ↩
- Marx 1990, p617. ↩
- 포드주의의 위기에 관해서는 Glyn and others 2007과 Vidal 2013b를 보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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