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현재의 이슈들
인종차별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
프랑스 좌파의 오류에서 배우는 교훈
1 사실, 종교와 교회는 프랑스의 공적 영역에서 지대한 구실을 한다. 2012~2013년 동성결혼 반대 운동의 중추가 가톨릭 교회였고, 알자스-로렌 지역의 교회는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는다. 그러나 프랑스 무슬림들에게 이런 상황은 딴 나라 얘기로 들릴 것이다. 잇따라 일어나는 괴상하고도 강렬한 도덕적 공황은 라이시테 — 매우 고약하게 뒤틀린 버전의 세속주의 — 가 “프랑스 공화국의 건국 이념”이라는 환상으로 정당화된다. [영국 자유주의 언론] 〈가디언〉의 기사 중 특히나 역사에 무지한 한 기사는 지난해 해변에서 무장 경찰관들이 무슬림 여성들에게 옷[‘부르키니’라는 이름의 수영복]을 벗으라고 강요한 일을 보도하며 라이시테라는 말을 썼다. 2 《이슬람 혐오 공화국》의 저자 짐 울프리스는 프랑스의 현실이 어떤지를 강력하고 체계적으로 들춰낸다. “프랑스의 문제는 라이시테가 아니라 인종차별이다.” 3
올해 4월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은 “정치 영역”에 “다시 관여”해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복구”해 달라고 가톨릭 주교들에게 촉구했다. 마크롱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회와 그리스도교에 관심이 없는 프랑스 대통령은 자기 책무를 저버리는 대통령이다.”정치인과 공공기관들은 초중등 학생들이 [학교 급식에서 무슬림에게 금지된] 돼지고기 섭취를 거부하지 못하게 하고, 수영장들이 여성 전용 강좌를 개설하지 못하게 하게 하고, 상점들이 주류 판매를 거부하지 못하게 한다. 언론은 소리를 빽빽 지르는 인종차별 전사들이 음모론 — 무슬림이 침공해 백인의 유럽이 “크게 변한다”는 음모론 — 을 설파할 영구적 연단을 제공한다. 그리고 고위 언론인·정치인·“지식인”들은 로만 폴란스키와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의 성범죄는 이래저래 못 본 척하면서 무슬림 남성이 온갖 성차별의 유일한 원천인 양 주장한다. 반면, 무슬림 여성들의 복장은 엄격하게 단속된다.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것으로도 만족이 안 되는 모양이다. 학교들은 반다나나 “음란한” 롱스커트도 금지하는 데로 나아가고 있다.
4 그의 정당의 나머지 후보자들은 더 노골적이었다. 그들은 2015년 11월 일어난 바타클랑 극장 학살을 “공산사회주의에 직면해 우리가 겁쟁이의 모습을 보여 치른 무거운 대가”라고 불렀다. 5
2015년 파리에서 테러 공격이 일어난 뒤로 분위기는 최악에 이르렀다. 초중등 학생들은 당시 유행했던 “내가 샤를리다” 정서와 어긋나는 농담을 했다는 이유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단지 “불안해 하는” 이웃의 근거 없는 신고만으로 집을 수색당하거나 가택연금에 처했다. 한편, 무슬림 사원인 모스크와 무슬림 소유 사업체들은 공격을 당했다. 정치인들은 “단지 급진적 인물이라는 의심”만으로 1만 1000명을 구금하자고 하거나 자녀에게 프랑스 공화국의 “가치”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가정에는 복지 혜택을 삭감하자고 주장했다. 무슬림 전부를 테러리즘과 동일시하며 공공연하게 비난하는 것은 자제하던 사람들조차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전 총리 알랭 쥐페 — 그는 2016년 대선에서 우파 정당의 경선에 출마했는데, 그중 인종차별이 가장 약하다는 상대적 관용 때문에 “알리 쥐페”라고 불렸다 — 는 무슬림들이 “광신적이고 야만적인 행위와 아무 관계가 없고 공화국의 가치를 충실히 따른다고 분명히 말”할 때에만 종교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했다. 울프리스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이런 이슬람 혐오의 유행은 “‘세속주의 전통’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의]일관된 민족적 특성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극좌부터 극우까지 온갖 정치 세력들이 협소하게 왜곡된 형태이든 좀더 진보적인 자유주의적 형태이든 세속주의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국가 권위 방어로 집결했기 때문이다.”이슬람 혐오는 유럽과 북미 곳곳에서 ‘테러와의 전쟁’의 결과물로 탄생했다. 울프리스는 영국과 미국에서는 이슬람 혐오가 냉전 시기 편집증이 남긴 유산의 변종인 경우가 흔하지만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제국이 남긴 유산, 특히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로 대표되는 북아프리카 문화를 조직적으로 경멸하던 것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히잡 논쟁의 전조격인 공개적 “베일 벗기” 행사는 “문명화 사명”, 프랑스식 “백인의 짐”의 일부였다. 방리유 — 대도시 교외의 가난한 지역으로, 도시로부터 어느 정도 게토화하고 고립된 경우가 흔하다 — 들을 둘러싼 정책 논의에서는 식민지 시대의 언어와 비유가 재활용된다. 이처럼 프랑스 무슬림이 마주하고 있는 인종차별은 식민지 시대에 뿌리를 두고는 있지만 최근의 것이다. 지금은 히잡을 쓴 여학생들을 학교에서 쫓아내는 것을 지지하는 많은 단체들이 1989년에만 해도 그런 조처를 인종차별 반대와 인권의 견지에서 격렬하게 반대했었다. 그 뒤로 무슬림을 둘러싸고 새로운 인종차별이 구축됐고, 일련의 도덕적 공황 사태를 거치면서 이슬람은 무슬림 문화의 몇몇 요소를 중심으로 인종화됐다. 울프리스는 그 과정이 어땠는지를 묘사한 아룬 쿤드나니의 연구를 인용한다. “히잡 착용 같은 문화적 요소들은 21세기 들어 인종 구분의 표지로 쓰이기 시작했고, W E B 두보이스가 ‘피부색, 머리카락, 뼈’라고 지적한 더 익숙한 인종 구분 표지들과 비슷한 것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8 그러나 르펜 혼자서 그 모든 일을 해낸 것은 아니다. 주류 정치인들은 계속해서 르펜의 정책을 베껴 썼다. 그에게 빼앗긴 표를 되찾고 그가 자신들을 덜 인종차별적이라고 공격하는 것을 차단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실제 효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르펜의 위상을 높이고, 그의 주장을 정당화하고, 그가 말을 현실화 할 능력이 있음을 전시해 줄 뿐이었다. 예를 들어, 2011년 이슬람 사원이 적어서 무슬림들이 야외에서 기도한 일이 있었다. 무슬림들이 야외에서 기도한 곳은 프랑스 전역에서 10~20군데에 불과했다. 그런데 르펜은 그 일을 두고 프랑스 사회가 점령당해 있다는 듯이 주장했다. 1년도 채 안 돼 정부는 그런 기도 행위를 법으로 금지했다. 이렇게 주류가 르펜이 제기한 쟁점에 반응한 것은 그의 유언비어 퍼뜨리기를 약화시키기는커녕 무슬림의 기도 관행에 대한 대중의 편견을 크게 부풀리기만 했다.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들은 무슬림들이 약 200곳에서 야외 기도를 했다고 여겼다.
이런 도덕적 공황을 선동하는 인물은 흔히 마린 르펜이다. 르펜은 파시스트 선거 정당인 국민전선의 지도자이다.(국민전선은 최근 국민연합으로 이름을 바꿨다.)9 이 덕분에 국민전선이 더 전진할 공간이 열린다. 울프리스는 다음과 같이 쓴다. “문제는, 주류 정치인들이 쓴맛을 보면서도, 이런 식의 정치가 끝없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 한번 발동이 걸리면, 자체의 추동력만으로 그런 쟁점들로 … 도덕적 공황을 일으키거나 구축시킬 수 있어서 제어하기 어려워지고, 그런 쟁점들은 오로지 권위주의적 외부자만이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강화한다.” 10
어떤 범죄들, 특히 범인이 외국인이거나 이중 국적자인 범죄에 대해서는 가혹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국민전선의 차별적 사상은 결국에는 주류 정치권으로 흡수됐다. 처음에는 우파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가 그랬고 마침내는 사회당 소속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가 그랬다. 르펜은 흡족해 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화국의 대통령이 국민전전의 정책을 채택하는 것을 보면, 깜짝 놀랄 면이 있음을, 즉 국민전선에 대한 경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치인들이 이슬람 혐오를 수용하는 것은 그저 근시안적인 기회주의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장기적 약점에 대한 대응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서 이슬람 혐오가 성장한 것은 노동계급(과 심지어는 중간계급)의 일자리 안정성, 생활수준, 미래 전망이 붕괴한 것과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훨씬 더 충격적인 사실도 있다. 바로, 이슬람 혐오의 성장이 노동계급과 좌파적 정치를 중심으로 일련의 막강한 반란이 일어나고 그와 연계돼 급진좌파가 선거에서 큰 성공을 거둔 것과 나란히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은 울프리스가 “신자유주의 블록”이라고 부른 것, 즉 대기업들이 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실행을 위해 필요한 결의와 지지 기반을 갖춘 정부를 세우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만들어 낸다.울프리스는 이 정치적 긴박성과 프랑스 사회 유력 이데올로기가 쌍방향으로 상호작용하고, 그 상호작용을 통해 이슬람 혐오가 계급투쟁의 이데올로기 전선에서 중심적이게 된 과정을 능수능란하게 보여 준다. 예를 들어, 바로 이 과정에서 세속주의가 종교의 자유를 옹호하는 사상에서 종교를 박해하는 수단으로 변모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것은 프랑스 혁명의 유산인 공화주의 사상이다. 공화국은 특정 집단의 구체적 이해관계를 기각하며 “나눌 수 없는 하나”의 집단적 정체성으로 여겨진다. 공화주의는 여러 세대의 좌파를 결집시킨 민주적이고 반反엘리트주의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귀족과 교회의 권력에 반대하고 인권을 옹호하는 것이 그렇다. 그러나 공화주의는 전체주의적 훈령도 담고 있다. 하나의 전체로서 공화국의 문화와 동떨어진 문화를 가진 것으로 여겨지는 소수자에 대해 그렇다.
역사적으로 공화주의는 [프랑스] 좌파에게 가장 중요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 그랬다. 당시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는 샌드백 같던 중도좌파 경쟁자들의 진부한 공화주의보다는 미국과 영국의 신자유주의와 그 장신구인 다양성 표방을 모방하는 데 더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매우 철저하게 변신해서 2012년에는 자기 정당의 이름을 [대중운동연합에서] 공화당으로 바꿨다. 공화주의는 좌파를 우파의 의제 뒤로 줄세우고, 국가와 지배계급의 의제를 지지하는 광범한 정치 블록을 형성하고, 야당을 마비시키는 데서 견줄 데 없이 유용한 수단이 됐다.
12 울프리스는 1871년 프랑스 공화국이 파리 코뮌을 학살한 이후인 “1914년에도 코뮤나르드[파리 코뮌 참가자들]가 ‘위기에 빠진 공화국’을 방어한다며 ‘신성연합’the sacred union으로 몰려들었다며 애통해 한다. 13 혁명적 좌파가 프랑스 지배자에 맞선 진정한 도전을 제기하고자 한다면, 공화국을 수호한다는 생각을 멈추고 마르크스주의적 대안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울프리스는 주장한다.
그것을 잘 보여 주는 일이 최근에 있었다. 올해 7월 장뤽 멜랑숑의 정당 ‘불굴의 프랑스’에서 가장 좌파적인 국회의원인 다니엘 오보노는 사회당과 심지어 중도우파 정당인 공화당에게 [현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에 반대해 “공화주의자” 동맹에 동참하라고 호소했다.공화국은 나눌 수 없는 하나라는 사상은 프랑스가 다문화적이라는 현실을 체계적으로 부인하고, 따라서 프랑스 사회 안의 인종차별적 불평등을 모두 부인한다. 공식 통계는 민족성이나 인종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지만, 이는 오히려 고용·교육·주거·경찰폭력 등의 문제에서 광범하게 퍼진 차별의 현실을 가린다. 올해 프랑스 헌법에서는 인종과 관계없이 동등한 권리를 보장한다는 조항이 삭제됐다. 표면상으로는, 인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반反인종차별적 공화주의에 근거해서 그랬다. 불평등이 숨기지 못할 만큼 심각하다면 — 특히 2005년 소요 사태 같은 사건으로 폭발적으로 드러났듯이 — 그 요인은 [인종차별이 아니라] 다른 데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프랑스 사회가 그 안의 흑인과 북아프리카계 시민들을 어떻게 차별하느냐를 묻는 것이 아니라, 흑인과 북아프리카계 사람들의 문화가 어떻게 그들이 프랑스 사회에 “통합”되지 못하도록 가로막느냐를 묻게 된다. 어느 정치인은 “일탈된 정체성들”을 찾아 내려 하면서 심지어는 실업이 [무슬림들의] 일부다처제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문화적 차이를 갖고 있으며 유력한 문화로 “통합”되기를 거부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그런 식으로 이슬람 혐오의 피해자들을 인종차별 반대의 이름으로 비난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좌파의 공화주의는 좌파가 스스로를 손상시키는 일에 공모하게 하는 결과를 낳는 경우가 너무나 흔했다. 사회당 정부는 전임 우파 정부들과 꼭 마찬가지로 무슬림을 악랄하게 대했다. 사회당 정부는 선거에서 폭삭 망하며 무너져 내렸다. 멜랑숑의 ‘불굴의 프랑스’는 프랑스 국기를 흔들고 국가를 부르며 자신의 개혁주의를 눈살이 찌푸려지게 드러낸다. 비록 인종차별 반대 입장을 취했지만, 그 입장은 교조적 세속주의와 민족주의 탓에 치명적으로 손상된다. 예를 들어, 올해 5월 ‘불굴의 프랑스’가 전국 집중 집회를 건설하느라 분주할 때 소르본대학 총학생회장 마흐얌 푸스투의 TV 인터뷰가 방송됐다. 푸스투는 마크롱이 추진하던 [경쟁 강화] 대입 제도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항의 행동에 대해 말했다. 푸스투가 히잡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 뒤 2주 동안 언론들은 이를 광분이라고 할 만큼 보도했다. ‘불굴의 프랑스’가 조직한 시위는 푸스투가 대표한 바로 그 학생들을 동원한 덕분에 성공적일 수 있었다. 그런데도, 멜랑숑의 오른팔 격인 알렉시스 코비에르는 TV에 출연해 푸스투의 히잡 착용에 대해 정부 장관들에 동조하며 히잡에 대해 훈계를 늘어놓았다.
14 반자본주의신당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자당의 후보로 공천된 일함 무사드가 부르카를 착용했다는 이유로 마녀사냥을 당할 때 그녀와 그 지지자들을 치욕스럽게도 내쳤는데, 만약 그러지 않았더라면 지금 반자본주의신당의 처지는 어땠을까? 울프리스는 다른 문제도 지적한다. 2017년 4월 대선에서 반자본주의신당의 후보 필립 푸투는TV 토론에 나와 다른 쟁점들에서는 역동적이고 효과적인 주장을 펼쳤지만, 이슬람 혐오 문제만 나오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그 장점이 곧 반감됐다고 말이다.
반자본주의신당NPA 등 극좌파 일부는 푸스투를 방어했다. 극좌파들이 무슬림에게 “적대감을 보이지는 않아도 무슬림을 외면한” 절망적 이력을 볼 때 이는 정말로 진보였다.15 일부 좌파와 페미니스트가 이슬람을 성차별주의와 동일시하는 것은 좌파적 버전의 “문명화 사명”도 낳는다. 울프리스는 그 뿌리를 1894~1906년 드레퓌스 사건, 즉 유대인 차별적 음모론 탓에 유대인인 육군 대위 드레퓌스가 반역 행위를 했다고 잘못된 혐의를 받은 사건 16 때 나타난 변화로 거슬러 올라가 찾는다. 옳고도 용감하게 드레퓌스를 방어한 사람들이 유감스럽게도 프랑스 공화국을 인종차별 반대의 수단으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일부 좌파가 이슬람 혐오에 투항한 것은 카를 마르크스가 종교에 관해 “인민의 아편”이라고 한 말을 심각하게 오해한 것에 기초를 두고 있다. 울프리스는 마르크스가 실제로 한 말과 그 뒤에 러시아 볼셰비키가 종교 박해에 맞섰던 것을 언급하며 프랑스 좌파의 태도와 대조시킨다.울프리스는 흑인과 북아프리카계 활동가 여러 명을 인터뷰하며, 2005년 소요 사태 이후 “정치적 인종차별 반대”를 통해 “제도적 인종차별 반대”에 문제 제기를 하는 새로운 운동이 탄생하기 시작했음을 보여 준다. 새 운동은 국가를 방어하기보다는 공격 표적으로 삼고, 차별받는 사람들을 질책하기보다는 동원하려 한다. 이와 함께, 좌파 내에서 세대적 문화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데, 젊은 활동가들은 세속주의에 관한 비현실적 주장에 빠져들기보다는 국가에 반대하여 무슬림을 편들 가능성이 훨씬 높다. 푸스투가 투쟁적 학생회의 학생회장으로 선출된 사례가 그 변화를 잘 보여 준다. 그럼에도, 울프리스와 인터뷰한 활동가들은 좌파가 대체로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무슬림들과 관계 맺거나 그들의 일에 관여하려 하지 않는다고 강력하게 경고한다. 파리에서 활동하는 반자본주의신당의 무슬림 당원 메리암이 지적하듯이,
좌파가 이슬람 혐오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갖지 않는 한, 좌파는 속 빈 강정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은 혁명을 꿈꾼다. 그러나 우리 계급 내에서 가장 차별받는 부분이 동력이 되지 않는 한, 다른 종류의 사회를 창조하기 위한 무언가를 건설하는 데서 핵심이 되지 않는 한, 혁명은 오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이슬람 혐오가 득세하면, 노동자 계급은 보이지 않게 된다. 노동자 계급의 투쟁이 회복되더라도 말이다. 주요 문제에 관해 싱크탱크나 여론조사가 부추기는 것 같은, 현실과 거리가 멀지만 영향력은 있는 담론에서 “이민자 가족 출신” 노동자들은 노동자 계급의 일부가 아니다. 그 결과 노동자 계급은 “프랑스 민족”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백인, 이민의 위협을 받으며 파편화된 백인으로 규정된다. 투쟁적이고 좌파에 기운 노동자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두려움에 빠져 있고 우파에 기운 “쁘띠 블랑”(작은 백인)이 차지한다. 울프리스는 노동자 계급의 단결이 약화하면 노동자 계급의 힘과 자주성도 약해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울프리스가 책에서 몇 가지를 더 다뤘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슬람 혐오와 유대인 차별(프랑스에서 과거에 득세했던 인종차별)의 관계는 다뤄지지 않는다. 유대인 차별에 반대한다는 일부 위선적이고 흔히는 거짓된 주장은 무슬림과 좌파를 공격하는 데 자주 쓰인다. 한편, 어떤 경향은 무슬림들이 느끼는 두려움을 이용해 유대인을 의심하도록 부추긴다. 그러나 유대인 차별과 이슬람 혐오는 서로를 성장시킨다. 할랄 음식과 히잡에 대한 규제는 코셰르 음식과 키파도 겨냥한다. 국민전선은 유대인 차별을 통해 중심 당원을 건설하고 이슬람 혐오를 통해 대중적 청중을 확보하면서 새 세대의 홀로코스트 부인론자들을 기르고 있다. 무슬림을 하나의 인종으로 만드는 비유들은 유대인 차별적 각본에 직접 등장하는 것들이다. 실제로 울프리스 책에서 프랑스 이슬람 혐오를 분석한 부분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가 프랑스 사회 유대인 차별을 분석한 것과 매우 비슷하다.
19 공화주의의 부활은 프랑스 정치의 우선회를 낳는 촉매제였다. 그리고 스스로 소멸하는 기초를 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공화주의에 대한 주목을 정당화하는 것이 현재 우파의 일부가 공화주의를 넘어서 급진화할 만반의 태세가 된 사실을 놓치는 것으로 이어지면 안 된다. 그 현상은 2016년 우파 정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특히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당선한 프랑수아 피용은 공화국 이전 프랑스의 사상을 끄집어냈다. 그것의 정체성은 민족성에 기초를 뒀고 가톨릭에 뿌리를 뒀다. 피용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프랑스의 역사가 1789년에 시작했다는 주장은 유럽의 뿌리가 가톨릭임을 부인하는 주장만큼이나 이상하다.”Ö은 정부에 입각했다. 그리고 프랑스 공화주의에는 그만의 여러 독특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적용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본보기를 제공하고 있으며, 전 세계 좌파를 위험에 빠뜨릴 함정을 놓고 있다. 전문적 지식, 정치적 식견, 위선에 대한 통렬한 풍자를 통해, 울프리스는 인종차별에 진지하게 맞서려는 활동가 모두에게 유용한 명확한 분석을 제공한다
그러나 울프리스가 결론 짓듯이, 프랑스는 여러 면에서 더 넓은 현상의 가장 앞선 사례일 뿐이다. 프랑스에서 이끌어 낸 교훈을 다른 곳에 적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독일과 영국에서 일어나는 이슬람 혐오적 시위들을 보면, 프랑스 국민전선과 그 유관 조직들의 시위는 왜소해 보일 지경이다. 프랑스 정치인들은 영국의 [테러] ‘예방 전략PREVENT’을 부러움의 눈으로 쳐다보고, 프랑스 국민전선의 사촌 격인 오스트리아 자유당FP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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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Dave Sewell, ‘How not to resist racism: a lesson from France’, International Socialism 160(Autumn 2018). 이 글은 Jim Wolfreys, Republic of Islamophobia: The Rise of Respectable Racism in France (Hurst, 2018)에 대한 서평이다.
↩
- Samuel 2018 등 언론 보도를 보시오. ↩
- Wolfreys 2018에서 인용. ↩
- Wolfreys 2018. ↩
- Wolfreys 2018에서 인용. ↩
- Wolfreys 2018에서 인용. ↩
- Wolfreys 2018. ↩
- Kundnani 2014, Wolfreys 2018에서 인용. ↩
- 국민전선이 이제는 파시스트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중화”됐다는 주장도 있는데, 울프리스는 다른 글에서 이런 주장을 반박했다. Wolfreys 2017. ↩
- Wolfreys 2018에서 인용. ↩
- Wolfreys 2018. ↩
- 중도좌파와 중도우파도 자기 지지자들을 신자유주의로 설득하지 못했다. 이와 함께 우파가 신자유주의 지지파와 드골주의 지지파로 갈렸다. 그 결과로 신자유주의 지지자들이 소수파가 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프랑스 정치에서 신자유주의 지지자들은 적어도 2017년까지는 서로 적대하는 양 진영으로 나뉘었다. 2017년 정계 재편에 관해서는 Giudicelli 2017을 보시오. ↩
- 눈에 확 띌 만큼 경악스런 오보노의 호소에 기회주의적으로 응답한 것은 르펜이었다. ↩
- Wolfreys 2018. ↩
- Wolfreys 2018. ↩
- 프랑스 저술가이자 활동가인 피에르 테바니안은 프랑스 좌파의 주장을 상세히 밝히고 해체한다. Tevanian 2013. 이 책은 무사드에 대한 마녀사냥이 벌어질 때 반자본주의신당에 “마르크스를 다시 읽으라”고 촉구하는 말로 시작한다. 이 잡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에 실려 왔던 많은 논문들도 유용한 분석을 제공한다: Molyneux 2008은 마르크스 주장의 진정한 의미를 설명한다. Boer 2009는 마르크스의 주장이 당시의 철학 논쟁의 맥락에서 제기된 것임을 보여 준다. Davison 2016은 현재 독일 좌파와 관련한 비슷한 논쟁을 살펴본다. ↩
- 읽기 쉬운 최근의 분석은 마이클 로센의 《에밀 졸라의 사라짐》에서 볼 수 있다. Rosen 2017. ↩
- Wolfreys 2018에서 인용. ↩
- 사르트르는 특히 “유대인”을 하나의 인종으로 만드는 특징들은 유대인 차별에 의해 구축됐고, 유대인 차별은 계급으로 나뉜 사회의 산물이자 [국민적] 일체감을 일으키려면 외부인을 지목해야 하는 그 사회의 잘못된 정치의 산물이고, 그 과정은 노동자 계급을 적대하고, 부르주아적 공화주의 민주주의는 잘해야 인종차별 반대를 인종차별 자체로 쉽게 미끄러지도록 순응시킬 뿐이라고 주장했다. “유대인임을 자각하고 유대인임을 자랑스러워하는 유대인이 보기에 … 유대인 차별론자와 자유주의자는 별로 다르지 않다. 유대인 차별론자는 사람으로서 그를 파괴해 그를 유대인으로만 남겨 두기를 바라고, 자유주의자는 유대인으로서 그를 파괴해 그를 사람이자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대상으로서만 남겨 두기를 바란다.” — Sartre 1954. ↩
- Meeus 2016. ↩
참고 문헌
Boer, Roland, 2009, “The Full Story: On Marxism and Religion”, International Socialism 123(summer), http://isj.org.uk/the-full-story-on-marxism-and-religion/
Davison, Kate, 2016, “Atheism, Secularism and Religious Freedom: Debates Within the German Left”, International Socialism 150 (spring), http://isj.org.uk/atheism-secularism-and-religious-freedom/
Giudicelli, Vanina, 2017, “Interview: The Meaning of Macron”, International Socialism 155(summer), http://isj.org.uk/interview-the-meaning-of-macron/
Kundnani, Arun, 2014, The Muslims Are Coming! Islamophobia, Extremism, and the Domestic War on Terror (Verso).
Meeus, Carl, 2016, “François Fillon: ‘Mon projet est le seul qui permette le redressement du pays’”, Le Figaro (20 May), https://tinyurl.com/ju67axr
Molyneux, John, 2008, “More than Opium: Marxism and Religion”, International Socialism 119(summer), http://isj.org.uk/more-than-opium-marxism-and-religion/
Rosen, Michael, 2017, The Disappearance of Émile Zola: Love, Literature and the Dreyfus Case(Faber and Faber).
Samuel, Henry, 2018, “Macron Accused of Undermining French Secularism over Call to ‘Repair’ Relations between Church and State”, Telegraph (10 April), https://tinyurl.com/y9yysy2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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