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현재의 이슈들
심리학과 마르크스주의
이 글은 맑시즘2018에서 로라 마일스가 같은 제목으로 강연한 내용을 녹취한 것이다. 내용 설명을 위해 편집팀이 각주를 달았고, 녹취는 장미순이 도움을 줬다.
화창한 오늘 또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에어컨이라는 것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 땀 범벅이 되었을 테니까요.
제가 요청 받은 마르크스주의와 심리학은 따지고 보면 엄청나게 큰 분야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부분으로 나눠서 진행하겠습니다. 첫 부분에서는 심리학 분야의 이데올로기 성격을 말씀드리고, 두 번째는 자본주의에서의 정신적 고통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심리학은 사회학이나 경제학 같은 분야와는 다르게 단 한번도 마르크스주의 심리학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심리학 분야에서 급진적 조류들이 나타나긴 했습니다. 그리고 심리학자들 사이에서 주류적 관점과 급진적 관점들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오고 가기도 했습니다.
심리학회를 주관하는 영국·미국 심리학회는 매우 보수적이었습니다. 최근에는 미국 심리학회에서 일부 회원들이 고문을 정당화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됐습니다. 이라크 전쟁에서 고문이 자행되면서 심리학자들이 이를 편들었던 것이죠. 이와 비슷한 논쟁들이 임상심리학에서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단 심리학계 내에 세 가지 이데올로기 조류가 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조류는 보수적이고 친자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속한 심리학자들은 체제 내에 순응적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프로이트에 기반을 둔 정신역동심리학이 포함됩니다. 또 스키너와 파블로프, 왓슨에 기반을 둔 행동주의 심리학이 포함되고, 인지심리학·실험심리학도 포함되며, 진화심리학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진화심리학은 오늘날 우리 마음 상태가 인류진화의 자연스런 결과라고 주장하는 학파죠. 이 조류에 속하는 친자본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심리학자들은 그들이 하는 행동뿐 아니라 그들이 “누구를 위해서 봉사하는가?”라는 점 때문에도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심리학자들이 국가를 위해, 특히 국방부를 위해 일해 온 오랜 역사가 있습니다. 또한 기업과 산업·재계를 위해 일해 오기도 했죠. 그들은 노동자들을 더 효율적으로, 더 열심히 일하도록 만들려는 명시적인 의도를 가지고 재계에 복무해 왔습니다. 예컨대 산업심리학을 보면 “노동자들을 어떻게 하면 생산성을 더 높일 것인가? 어떻게 하면 더 잘 착취할 것인가?”가 주된 논의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인성검사라는 것도 있는데 적합한 직무에 적합한 사람을 할당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죠. 인성검사의 오랜 전통에는 “아이큐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논란도 계속 있었습니다. 당초 파리 사람이었던 알프레드 비네가 아이큐 실험을 처음 고안했을 때 그 목적은 뒤처지는 사람이 따라잡게 도와 주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큐 테스트가 얼마 안 가서 실제인지 아닌지 모르는 지능을 근거로 사람들을 선별하는 도구로 변질됐습니다. 일부 심리학자들에게는 아주 인종차별적 동기가 있었는데요 아이큐 테스트 그 자체가 편향적인 테스트인데, 인종차별적 심리학자들은 아이큐 테스트를 근거로 인종 간에 아이큐의 차이가 있다는 사상을 퍼트렸습니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파시스트와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이런 심리학계의 발견들을 근거로 온갖 인종차별적 사상을 과학적으로 합리화했습니다.
1 다수의 심리학자들은 상당히 반동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심리학의 유명인사들을 보면 예컨대 존 헌츠먼, 한스 아이젱크, 찰스 스피어만, 헨리 머레이, 리처드 헌스타인 같은 사람들은 인종차별을 부추기는 편향된 관점을 나름의 자기 방식으로 되풀이해 왔습니다. 1994년에 《벨 커브》The Bell Curve라는 유명한 책이 나왔는데, 이 책에서도 흑인과 백인 사이에는 선천적으로 지능의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이것과 약간 대조되는 또 다른 전통은 자유주의 전통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것이 있습니다. 이 조류를 대표하는 문화는 1930년대 킴볼 영이라는 사람이 쓴 《사회심리학 핸드북》이라는 책입니다. 여기에 속한 심리학자들은 심리학을 자유주의적 학문으로 바라봅니다.
이 조류는 특히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1960년대까지 번영기를 맞았습니다. 이 경향에 속한 많은 심리학자들은 제2차세계대전 중에 파시즘이 어떻게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을 줬는지를 이해하고 싶어했습니다. 또 다시는 파시즘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는 데 관심이 있었죠. 그 한 예가 아도르노라는 심리학자인데, 이른바 권위주의적 성격과 인성을 연구했습니다. 아도르노 접근법의 명백한 문제는 파시즘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을 개인 인성의 문제로 본다는 점입니다. 즉 마르크스주의자들처럼 파시즘의 부상을 시대적 맥락에서 물질적 조건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죠. 어쨌든 자유주의 심리학자들은 심리학의 오남용을 막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이를 통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려 했습니다.
1940년대와 1950년대 말까지 활동했던 미국의 심리학자 커트 루인은 심리학자들이 대학이라는 상아탑에서 떠나서 사람들의 실질적 필요에 부응하는 활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루인이라는 심리학자는 에이브러햄 매슬로, 칼 로저스라는 사람들과 힘을 합쳐서 이른바 인본주의 심리학이라는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새로운 경향의 목표는 심리학의 중심에 인간을 다시 자리매김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사람을 인격적 총체로 이해한다는 것이고, 단지 인성검사로만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관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접근법조차도 문제의 근원이 개인에게 있다는 것을 고수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즉, 그 사람의 인격을 바꾸는 것에 초점이 맞추지 그 사람이 처한 물질적 조건을 바꾸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개인을 바꾼다는 접근법은 1970년대 이르러서 너무나 개인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게 됩니다.
1960년대 거대한 반란과 1970년대 초까지 이어지는 반란을 겪으면서 일부 심리학자들이 명시적으로 마르크스주의 접근법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필 브라운이라는 심리학자는 《마르크스주의적 심리학을 향하여》라는 책을 썼고, 영국의 심리학자 닉 헤더는 《급진적 심리학》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사람들은 심리학자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뿐 아니라 그들이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를 비판적으로 썼습니다.
닉 헤더의 책에서 한 문구를 인용하자면 ‘심리학은 “계급적 약탈”이다, 왜냐면 심리치료를 받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하고, 심리치료 혜택을 보는 사람들은 대체로 부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마르크스주의 사상과 프로이트 사상을 결합시키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런 시도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는데, 이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 활동한 급진적 심리학자들은 정신의학 반대 운동Anti-psychiatry과도 연계가 있었습니다. 로널드 레잉이나 데이비드 쿠퍼, 피터 세드윅 같은 사람이 대표적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기에 과학을 이용해서 인간을 비인격화하는 모든 종류의 심리학과 정신의학에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이런 관점들 속에는 마르크스의 소외 이론의 흔적이 녹아 있습니다. 더 최근에는 비판적 사회심리학과 같은 또 다른 비판적 경향이 나타났는데요. 페미니스트 심리학도 나타났습니다. 페미니스트 심리학자들은 심리학에서 여성들이 드러나지 않는 것에 문제제기를 합니다. 또한 여성 문제가 간과되는 것을 문제제기하구요. 즉 심리학에는 강고한 남성 중심적, 이성애 중심적 편향이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심리학은 흔히 사람들의 행동과 심리 근저에는 사회적 요인이 아니라 생물학적이고 내인성 요인이 도사리고 있다고 전제합니다. 이처럼 모든 것이 개인에게서 비롯한다는 관점은 심리적인 성차가 필연적이라는 관념도 강화시킵니다. 예컨대 약물 남용 같은 사회적 문제를 바라볼 때조차 남성들이 약물 남용을 하면 그 문제의 원인을 그들의 양육방식, 즉 내인성이 아니라 외인성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여성의 경우에는 여성적 심리 또는 호르몬 문제로 환원합니다. 이런 식으로 남녀 사이에 문제의 원인을 다르게 취급하는 문제를 페미니스트 심리학은 교정하려 해 왔죠.
또한 심리학의 근저에는 이성애가 정상이고 동성애는 비정상이라는 전제도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심리학이 성적 지향의 문제, 섹슈얼리티 문제를 다루는 방식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영국 심리학회는 1998년에 가서야 학회 내에 동성애 부문을 설립하는 것을 허락했는데, 이것은 동성애를 지지하는 심리학회 회원들이 4차례나 요구하고 4차례나 거절당한 뒤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아주 간략하게 심리학계의 역사와 현황을 개괄해 봤는데, 저는 이런 강연을 할 때마다 빼놓을 수 없는 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마르크스주의 심리학자인 레프 비고츠키입니다.
비고츠키는 러시아의 마르크스주의 심리학자인데 안타깝게도 1934년 38세의 나이에 결핵으로 인해 숨졌습니다. 그리고 사후에 그의 저작이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돼 소개되기까지 몇 십 년이 걸렸는데, 영국 같은 경우 1960년대 말이 돼서야 번역됐습니다. 그의 영향력은 특히나 영국 같은 경우는 교사들 사이에서 큽니다. 왜냐면 어린아이들이 집단으로 활동하고 또 서로 가르칠 때 학습을 잘 할 수 있다는 비고츠키의 이론은 교사들과 교육 과정에 아주 큰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리고 비고츠키의 인지발달 과정에 관한 이론은 사람들의 언어 습득 이론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는 비고츠키를 살짝 건드리기만 했는데, 이 주제로 강의 몇 개를 별도로 잡을 만합니다.
자본주의 하에서 정신적 고통과 마르크스주의
다음으로 저는 자본주의 하에서 정신적 고통과 마르크스주의라는 주제로 넘어갈 텐데, 다음의 책을 많이 참고했습니다. 이언 퍼거슨의 《마음의 정치학; 마르크스주의와 정신적 고통》이라는 제목입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당원이기도 합니다. 퍼거슨은 그 동안 있어 왔던 정신질환에 관한 이론들을 검토합니다. 정신질환에 관한 초창기 이론들은 종교적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이후에 가서는 의료적 이론들로 대체됩니다. 초창기 이론들은 사람들이 정신질환을 겪는 것은 신이 인간에게 빙의 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신이라고 하면 이상하고 뭔가 초자연적 존재들, 예를 들면 악마에 씌었다는 설명을 볼 수 있습니다. 책에서 짧게 한 구절 인용하면, “성경에 따르면 이스라엘 초대 왕이었던 사울뿐 아니라 바빌로니아 왕이었던 네브카드네자르도 신을 모독한 벌로 둘 다 미쳐버렸다”라고 돼 있습니다.
퍼거슨은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이론을 다른 것과 대조를 하고 있습니다. 이언 퍼거슨은 정신적고통mental distress이라는 용어를 쓰고 정신질환mental illness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데요. 이 점을 주목할 만합니다. 이런 사회적 설명은 의료적 설명과 대비되는데, 의료적 이론들에 따르면 정신질환은 온갖 종류의 생리적 요인에서 비롯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유전자가 됐든, 호르몬이 됐든, 다른 생체화학적 작용에 따르든 말이죠.
퍼거슨은 긴축정책이 심화되고 불평등이 강화됨에 따라서 정신적 고통의 발생률이 높아진 것에 주목합니다. 여전히 의료적 이론들이 주류인 것은 사실입니다. 즉, 정신적 고통은 개인의 문제이기 때문에 약물치료, 전기치료, 상담치료로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역사적으로 극단적인 경우에는 정신적 고통에 대처하기 위해 사람들을 몰살시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나치들이 정신적 고통을 앓고 있는 사람을 제거했던 경우를 떠올려 보십시오.
2 DSM은 ‘미국 정신과학회의 정신 장애 진단 및 통계 매뉴얼’이라 번역되는데 사실 그렇게 분류하는 과학적 기준은 없습니다. 서로 합의해서 만드는 건데 몇 년 전에 제 5판이 새로 나왔습니다. 여기에 추가된 새로운 질병들이 흥미롭습니다. 트랜스젠더인 사람들은 성별 위화감이라는 이름의 질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규정되고요 저 같은 사람들은 아직도 약간은 정신 이상이 있다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정신적 고통을 진단하고 분류하는 정신의학회의 표준 교범인 DSM이 가장 최신판으로 개정돼 나왔습니다.그뿐 아니라 범불안장애는 특별한 원인 없이 세상 모든 일을 불안해 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경도 인지 장애 정도가 약한 신경인지 장애, 저도 이 병을 앓고 있는데요. 왜냐면 약간 건망증이 있는 것을 지칭합니다. 또 분노조절장애라는 병도 있습니다. 화가 나면 이 병을 앓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친한 사람이 죽어서 실의에 빠지면 이 또한 우울증의 한 증상이라고 합니다. 이제 이런 장애 숫자만도 몇 백 개가 됩니다. 이런 온갖 종류의 병명들이 있다 보니 많은 경우 사람들이 필요하지도 않고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는 온갖 종류의 의료조치와 약물처방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약을 공급하는 쪽은 누굴까요? 비싸게 약을 파는 거대 제약회사들이죠.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한 대책으로 나오고 있는 것들이 쉽고 빠르게 통하는 요법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했습니다.
저는 몇 년 동안 칼 로저스의 상담치료 요법을 다루는 과목을 가르쳐 왔는데요, 그런데 이 과목을 듣는 학생들이 영국 의료서비스시스템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왜냐면 지금 영국의 대세는 짧은 기간에 마칠 수 있은 인지행동 치료가 대세이기 때문입니다. 또 긍정심리학이 뜨는 것을 여러분이 아실지 모르겠는데, 이 또한 시간이 걸리는 상담치료의 대안으로서 사람들의 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생활환경을 바꾸는 대안으로서 행복의 심리학, 긍정심리학이 부상한 것입니다. 그래서 퍼거슨은 DSM이 생체화학적 요인들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반대로 가난, 외로움, 실업 같은 사회 경제적 요인들을 무시하는 관점이 반영돼 있다고 지적합니다.
퍼거슨은 21세기 초에 정신적 고통을 이해하는 방식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주목합니다. 급진적인 정신과 의사들, 심리학자들, 사회복지사들, 심리치료이용자들이 연합하여 이런 변화를 주도했습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광기와 심리질환이란 것이 사람들의 삶의 경험에서 비롯한다는 것입니다. 가난, 인종차별, 성차별, 외로움, 불평등 등 차별에서 비롯한다는 것이죠. 이것은 커다란 일보진전임이 틀림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자본주의 하에서 소외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마르크스 이론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퍼거슨의 이런 주장에 대해서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사회적 요인들을 너무 강조한 쪽으로 나아갔고, 정신적 고통의 생리적 요인들을 너무 간과한 것 아닌가 하고 주장합니다. 예컨대 최신호 《국제사회주의》International Socialism에서도 퍼거슨 책 서평이 실렸는데요. 이 서평의 논지도 퍼거슨이 너무 막대기를 사회적 요인 쪽으로 구부려서 생체화학적 요인을 간과한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밖에도 사회적 모델에 대해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정신적 고통의 근본 원인이 사회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의 정치적 해결책이 반드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적 접근법 모델의 약점 중 하나는 사회적 요인에 주목한다고 하더라도 정신적 고통에 대한 정치적 이해가 가능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둘째로는 사회적 모델에서는 유년기의 애착관계 형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년기의 정신적 고통을 예방하기 위해서 유년기의 애착형성을 중요시하다 보면 그걸 근거로 국가가 나서서 유년기 아동들에 개입하고 사회복지사들이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돌리는 것을 합리화할 수 있는데 그것이 꼭 아동들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애착이론을 근거로 아동을 가정에서 떼어내는 정책을 추진할 수도 있는데 이것이 아동들에게 꼭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죠.
주류 정신의학에 반대하는 또 다른 경로는 정신의료 서비스 이용자들이 최근 들어서 자신들의 권리를 더 많이 주장하고 나서는 것입니다. 퍼거슨이 결국 주장하는 것은 정신적 고통의 원인에 맞서 싸우는 광범한 사회적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운동은 긴축 때문에 공격받고 있는 기존의 서비스들을 방어해야 합니다. 기존의 서비스를 지키는 것뿐 아니라 대안적 정신건강 보건서비스의 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 중심에는 정신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필요와 그들을 직접 치료하는 사람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퍼거슨이 주장한 핵심 하나는 계급투쟁의 수위가 사람들의 정신적 건강과 정신적 고통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계급투쟁의 수위가 높아지면 정신적 고통 수준이 낮아집니다. 제가 본 어떤 연구에 따르면 1980~1981년 폴란드에서 반란이 일어났을 때 그 당신 폴란드 의료당국에 보고된 정신적 고통 발생 건수가 급격하게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자기를 둘러싼 조건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봤기 때문이죠. 사람들이 희망을 느낄 때는 자기 바깥의 세계에 집중하게 됩니다. 우리 자신의 정신건강을 증진시키고자 할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나은 정신보건서비스를 요구하며 싸우는 것뿐 아니라 그런 서비스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세상을 위해 싸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이 혁명가들의 비회원 가입 전략이기도 합니다. 정신건강을 증진시키고자 한다면 사회주의 조직에 가입하세요.
정리 발언
정말 훌륭한 토론이었고 많은 분들이 중요한 문제들을 제기해 주셨습니다. 제가 다 답할 수는 없을 것 같고, 특히 여섯 개 질문을 해 주신 분에 대해서는 다 답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핵심 주제 하나는 정신적 고통을 사회적 요인으로만 설명할 수 있느냐 아니면 생물학적 요인도 존재하느냐 하는 것인데 저는 퍼거슨이 생물학적 요인을 부정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그의 강조점은 사회적 요인에 가 있죠. 우리의 정신에는 자본주의가 뿌려놓은 온갖 오물, 마르크스가 세계의 오물이라고 불렀던 것이 있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약물치료가 언제나 불필요한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죠. 많은 분들이 지적해 주셨듯이, 저도 심각한 증상을 일시적으로라도 완화시켜 주는 것이 약물의 효과라고 생각합니다.
한 동지는 정신이라는 것이 물질 작용에서 세계를 수동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가 볼 때도 그것이 올바른 관점입니다. 사람의 정신은 물질적 조건과 끊임없이 변증접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죠. 진화심리학을 부정적으로 기각하는 것에 대해 어떤 한 동지는 그렇게 사줄 것이 없느냐 하는 문제제기를 했는데요 제 반론의 요지는 우리의 존재를 진화의 불가피한 결과, 진화 과정의 노예인 것처럼 여기는 접근법을 기각한 것입니다. 실제로 진화심리학자들의 말을 들어보더라도 우리의 행위가 과거의 진화 과정의 필연적 결과라는 논조가 대부분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태생적으로 폭력적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전쟁이나 심지어 가정 폭력도 필연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진화에 대해서 마르크스주의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있습니다. 진화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관점으로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저작을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리처드 르원틴 같은 사람도 있고요. 제가 볼 때는 이들이 진화심리학자의 많은 주장을 효과적으로 반박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폭력이 인간본성의 일부라는 주장을 효과적으로 반박합니다.
마지막에 발언하신 동지가 상담사로서 본인의 경험을 얘기했는데 저는 매우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특히 심리치료라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르핀 같은 기능을 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꽤나 까다로운 질문을 해 주셨습니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상담치료가 필요할까? 그 질문에 대해서는 답을 모르겠습니다. 일단 저는 지금보다 치료가 훨씬 덜 필요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오늘날 약물치료나 상담치료가 필요한 거의 대부분의 이유는 자본주의 하에서 착취와 억압에 [병의] 뿌리가 있기 때문이죠. 또한 우리가 삶에서 느끼는 무기력감과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사회주의 사회에 산다면 우리 얘기를 들어 줄 사람이 주변에 많다고 느낄 것입니다. 우리가 민주적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면, 그럼으로써 사회적으로 어떤 것을 생산하고 누구에게 분배하는지를 집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면, 사람이 노동력이 아니라 인격체로 존중 받게 된다면 정신적 고통이 지금보다 훨씬 덜할 것이고 치료의 필요성이 많이 줄어들 것이란 점을 다들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신적 고통의 생물학적 요인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지금과 같은 심리치료나 약물치료는 아니더라도 모종의 생물학적 요인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필요할 수는 있을 겁니다. 질문 몇 가지는 빠트린 것 같은데 그것에 대해서는 죄송합니다. 이 정도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MARX21
주
- 심리학자 리처드 헌스타인과 사회학자 찰스 머레이의 저작으로, 인종 간에는 아이큐의 평균치가서로 다를 뿐 아니라 낮은 아이큐를 지닌 흑인과 라틴계가 복지 혜택을 받아 출산을 많이 함으로써 미국의 평균 아이큐가 낮아지기 때문에 보편적 복지가 문제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
- DSM은 ‘미국 정신과학회의 정신 장애 진단 및 통계 매뉴얼’의 약자로 흔히 ‘정신의학의 성서’로 불린다. 1952년에 초반이 출판됐고, 2013년에 5판이 나왔다. ↩
- 계간 잡지 《국제사회주의》International Socialism 159호(2018)에는 셜리 프랭클린이 쓴 ‘Capitalism and mental health treatment’이 실렸고, 같은 잡지 160호에는 이언 퍼거슨의 답변 글 ‘Marxism and mental distress: a reply to Shirley Franklin’이 실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