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현재의 이슈들
사회 재생산 이론: (어느) 마르크스로 돌아가기? *
1 1970년대 말 노동자 운동이 패배한 뒤에 계급에 기초한 분석은 잊혀졌고, 리스 보걸이 “우리 대부분이 느낀 상대적 고립”이라고 언급한 상황이 등장했다. 2 특권 이론은 백인 비장애 남성과 대비해 흑인 장애 여성이 차별받으며 생기는 불리한 점들을 강조했다. 특권 이론은 백인 비장애 남성들이 지닌 이런 상대적인 이점들을 “특권”이나 “혜택”이라고 주장했는데 왜냐하면 그런 이점들 덕분에 삶이 더 편안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교차성 이론은 개인들이 다수의 차별에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방식에 주목하며, 계급은 그저 또 하나의 차별로 거론된다. 3 그 어느 접근법도 차별을 끝내기 위한 투쟁이 노동자의 자력해방과 긴밀히 연결된다거나 노동자들이 자신들 사이의 매우 실질적인 차이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연대의 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결론내리지 않는다. 4
대학의 학계와 급진 좌파 내에서 특권 이론과 교차성 이론이 오랫동안 차별에 관한 논의의 주류를 이뤄 왔다.5 하지만 강조하건대 이것이 성차별, 인종차별, 동성애 혐오, 트랜스젠더 혐오 등과 상관없이 “하나의 투쟁, 즉 계급투쟁”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21세기 초부터 카를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이 부활했다. 이는 반자본주의 운동에서 시작해 2007~2008년 금융 위기로 인해 강화됐다. 마르크스와 《자본론》은 사회 재생산 이론이라는 형태로 다시 한번 차별 분석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여러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여성 차별에 관해 오랫동안 “사회 재생산”을 언급해 왔다. 하지만 이제 사회 재생산 이론은 마르크스를 진지하게 고려하는 새로운 집단을 획득하고 있다. 차별의 작동을 자본주의 체제 안에 재배치하려는 모든 노력은 반가운 일이다. 왜냐하면 여러 차별 체계들에 일일이 맞서 싸우기보다는 자본주의 사회에 맞서 싸우는 방향으로 논의를 이동시키기 때문이다.중요한 일보 전진
6 그리고 나서는 보걸의 돋보이는 기여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보걸의 책 《마르크스주의와 여성 차별》Marxism and the Oppression of Women은 여기서 논의할 사회 재생산 이론의 발전에서 기본 텍스트로 사용되고 있다. 7 여기서 나는 여성의 생물학적 재생산 능력의 구실에 관한 보걸의 정식화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 구실이 모든 계급 사회의 여성 차별을 설명하는 것으로 일반화할 수 있을지에 관해 물음을 던진다. 그 뒤 최근 사회 재생산 이론의 발전을 다루는데, 미국의 지도적인 마르크스주의 활동가인 티티 바타차리아가 기여한 점, 바타차리아가 마이클 리보위츠의 《자본론》에 대한 작업 일부를 채택하고 리보위츠의 접근법을 인종차별 분석으로 확장한 점을 다룬다. 8 나는 바타차리아가 착취와 차별의 관계를 흐리고 생산 지점에서 벌어지는 투쟁의 중요성을 사회 운동과는 대조적으로 깎아내리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바타차리아는 또한 마르크스주의에서 파생돼 나온 엄청나게 풍부한 다른 접근법들을 무시한 채 사회 재생산의 프리즘을 통해 인종차별을 분석하려 한다. 사회 재생산 이론의 많은 부분은 여성 차별을 이해하는 데서 이미 진가를 발휘해 왔지만, 몇몇 분석은 노동계급의 성격에 대한 모호함과 유럽의 많은 지역과 미국에서 낮은 계급투쟁 수준과 타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듯하다. 9
그러므로 이 글의 목표는 사회 재생산 이론의 발전을 개략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 글은 1960년대 여성해방운동으로 촉발된 여성 차별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의 출현에 대한 짧은 검토에서 시작한다.10 2017년 런던에서 열린 역사유물론Historical Materialism 학술행사에서는 바타차리아가 편집한 글 모음집인 《사회 재생산 이론: 계급을 재배치하기, 차별을 다시 중심에 두기》Social Reproduction Theory: Remapping Class, Recentering Oppression가 선보였다. 11 2018년 1월 존 벨러미 포스터와 브렛 클라크는 “산업혁명기의 여성, 자연, 자본”Women, Nature, and Capital in the Industrial Revolution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최근 몇 해간 마르크스주의와 혁명적 페미니즘 전통 내에서 ‘사회 재생산 이론’의 주목할 만한 부상으로 인해 … 19세기 영국의 여성과 노동에 대한 마르크스의 (그리고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논의를 바라보는 방식이 상당히 바뀌었다.” 12
사회 재생산 이론은 학계에서는 꽤 널리 받아들여져 왔다. 2017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벤 파인은 “사회 재생산을 향한 접근법에 관한 노트”에서 그의 견해를 밝혔다.‘사회 재생산’이란 무엇인가?
13 이런 실천적인 정치적 접근법은 마르크스주의자와 마르크스주의에 영향을 받은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자본주의 내 여성 차별의 근원을 분석하는 중요한 이론적 작업으로 이어졌다.
1960년대에 영국과 독일의 여성해방운동에서는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과 차별에 맞선 투쟁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여겨졌다(미국의 여성해방운동에서는 이런 생각이 적었다).마르크스 자신은 사회 재생산이라는 용어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전체의 재생산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했는데, 이런 이유로 ‘사적’ 영역에서의 유통과 재생산뿐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의 모든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을 포괄하는 용어였다. 몇몇 사회 재생산 이론가들은 이 용어를 사용할 때 그 차이에 주목한다. 조해너 브레너와 바버라 레슬릿은 ‘사회의 재생산’societal reproduction과 ‘사회 재생산’social reproduction 사이에 유용한 구분을 제안하는데, 전자는 마르크스가 썼던 본래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후자는 다음을 나타낸다.
일상 생활과 세대 간의 삶 유지에 필요한 활동과 태도, 품행과 감정, 책임이 있다. 그것[사회 재생산-번역자]에는 인구를 유지·재생산하기 위해 생물학적으로뿐 아니라 역사적·사회적으로 규정된 수단을 제공하려는 다양한 종류의 사회적 필요노동(정신적·육체적·감정적)이 포함된다. 무엇보다 사회 재생산에는 식량, 의복, 주거가 어떻게 바로 소비될 수 있게 되는지, 아이의 양육과 사회화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노인·병자 돌봄이 어떻게 제공되는지, 섹슈얼리티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구성되는지가 포함된다. 14‘사회 재생산’은 상이한 형태의 가족, 주거의 국가적·사적 공급, 교육, 의료, 노인 돌봄을 망라하는 넓은 정의이며, 벤 파인이 경제적 재생산과 사회 재생산을 구분한 것과 비슷하다. 파인은 다음과 같이 쓴다. “사회 재생산은 논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경제적 재생산과 관련해 다양하게 형성된 가족·가정, 시민 사회, 국가의 세계에 존재한다.”
가사노동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논의
16 “이중 체계” 이론가들로 알려진 후자의 저자들은 두 가지 분석 체계를 발전시켰는데, 하나는 마르크스에 기초해 노동계급의 착취를 설명하고 다른 하나는 가부장제 개념에 기초해 여성 차별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과 여성 차별에 맞선 투쟁에 기반한 실천을 별개로 발전시켰다. 두 개의 체계라서 두 투쟁이 별개라는 것이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연이어 여성 차별의 원인을 여성이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가사노동을 한다는 데서 찾았다. 마르크스는 상품의 두 측면을 구분했다. 누군가에게 유용한 상품은 ‘사용 가치’가 있지만, 시장에서 교환될 수 있도록 하는 ‘가치’도 있다. 일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가사노동 또는 가정 내 노동이 사용 가치를 생산하지만, 이윤이나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마르크스의 의미에서 “생산적”이지는 않다고 주장했다. 이는 그런 노동이 유용하지 않다거나 사회적으로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노동자가 받는 임금과 노동자가 생산하는 가치 사이의 차이에서 이윤의 원천을 찾는 마르크스의 분석에 통합될 수 없다는 의미다. 노동력 재생산에서 여성 차별이 차지하는 위치를 두고 브레너, 보걸, 마리아 라마스, 크리스 하먼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들과 하이디 하트먼, 줄리엣 미첼과 같은 저술가들이 구분된다.17 그들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역사적 발전 속에서 노동계급 가족의 출현과 변형에 대한 역동적인 이해에 바탕을 둔 분석으로 배럿을 반박한다.
1984년 브레너와 라마스는 《뉴 레프트 리뷰》에 글을 써서 미셸 배럿이 《오늘날의 여성 차별》에서 여성 차별은 이데올로기를 물질적 힘으로 이해하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핵심적으로 주장한 것에 답변했다. 브레너와 라마스는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작업 현장(생산)과 재생산 현장(가정)이 분리됐다고 주장하며 시작한다. 그래서 여성이 임신, 출산, 양육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쉽게 결합시킬 수 없게 됐다고 주장했다. 더군다나 19세기에 노동계급 가족의 출현은 불가피하지 않았지만, 국가가 공급하는 보육, 청소, 세탁, 값싼 식당 등과 같은 대안을 위한 투쟁이 실패하면서 생물학적 재생산이라는 긴급성 때문에 분업에 기반한 가족이 생겨나기 쉬웠다고 지적했다. 남성이 주되게 임금을 벌고 여성은 주로 가정에서 재생산을 담당할 것이라는 기대가 생겨났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의 필자들도 자본주의 하에서 가족을 여성 차별의 장소로 보는 이론으로서 “개별 가족에 맡겨진 노동력 재생산”을 주장했다. “가족은 자본가 계급에게 필요한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존재하는데, 노동력 재생산이 개별 가족에 맡겨져 있을지라도 자본가 계급은 가족에 커다란 이해관계가 있다”는 것이다.20세기에 관해 브레너와 라마스는 다음과 같이 계속 말한다.
자본주의 하에서 빠른 생산력 발전은 여성이 생물학적 재생산의 제약을 뛰어넘을 기초를 놓았지만, 동시에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는 평등을 향한 발전을 계속 제약하고 있다. 이는 배럿의 주장처럼 성별 분업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묻어 들어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실은 자본주의 내에는 이런 분업을 위협하고 약화시키며 노동력을 재구성하는 실질적인 경향이 존재한다. 그보다는 자본주의가 주기적 위기로 나아가고 그래서 노동계급의 생활수준을 저하시키는 것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가족-가정 체계의 붕괴를 막고 여성의 종속을 강화한다. 20
21 당연하게도 식량, 의복, 주거의 생산 없이는 노동계급의 재생산은 가능하지 않다. 보걸은 브레너와 라마스, 아이린 브뤼겔과 비슷한 주장을 펴는데, 22 노동계급 가족은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가장 흔한 단위일 테지만, 이민, 집단 기숙사 등을 포함해 다른 가능성들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23
보걸은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했던 분석을 출발점으로 삼아 여성 차별의 근거를 은퇴한 이들을 부양하는 것과 더불어 현재와 미래의 노동력 재생산하는 데 들어가지만 가치를 생산하지는 않는 노동에 둔다. 게다가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노동력의 재생산은 생산의 조건인데,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을 되돌려 놓거나 재배치하기 때문이다.”24 빈곤, 주거, 고용 기회, 임금,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 경기 순환, 이 모든 것들이 여성 차별을 형성한다. 25 기메네즈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데, 생산양식과 재생산양식의 관계를
위에서 언급된 모든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언급되지 않은 많은 이들)은 가사노동이 자본의 관점에서 필요하며, 가정에서 노동계급의 재생산은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 노동”에 기반하고, 직접적인 노동-자본 관계 바깥에서 벌어진다는 것에 동의한다. 여기서 두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가족은 축적의 추진력뿐 아니라 여성과 남성 그 자신들의 반응에서도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마르타 기메네즈는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게 ‘재생산양식’을 언급하지만)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이 분석의 기초가 되는 근본적인 원칙은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생산양식인 사회 구성체에서는 생산양식의 기능이 사회적 조직(가변성의 역사적 한계를 정한다)과 인간 재생산 혹은 재생산양식의 경제적 토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경제주의”나 “계급 환원주의”의 한 형태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여성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거시적 수준의 복잡한 네트워크로 그리고 사람들의 필요 충족이라는 목적보다는 자본 축적에 의해 추동되는 생산양식으로 인식해야 한다. 달리 말해, 생산 조직과 재생산 조직 사이의 “상호 작용”을 상정하거나 인과관계상 재생산 조직을 우위에 두는 것은 자본주의에서 재생산이 생산에 종속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압도적인 증거들에 담긴 이론적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이다. 26
27 비슷한 맥락에서 브레너와 라마스는 다음과 같이 쓴다.
브레너와 라마스, 하먼은 노동계급 재생산의 역사에서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 구체적 예들을 든다. 하먼에 따르면 “19세기 중엽 평균적인 노동계급 부인이 여덟에서 열 명을 임신했으며(1850년 런던에서는 거의 60퍼센트의 영유아들이 5세 이전에 죽었다) 그래서 사실상 결혼 후 그의 삶을 임신이나 어린 아이 양육에 송두리채 바쳐야만 노동력 재생산이 가능했다.”공장 일이 낳은 결과는 여성에게 해로웠고, 일하는 어머니들이 제대로 양육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재앙적이었다. 젖병 물리기는 19세기 동안 받아들일 만한 대체 수단이 아니었다. 소독 기술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젖병을 물린 이후 영아 사망률이 눈에 띄게 늘었다. 다른 유일한 대안이었던 유모를 두는 것 또한 노동계급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영아들은 멀리 떨어진 가난한 여성의 집에 맡겨졌는데, 이 여성은 너무나 많은 아기를 돌보고 있어서 모든 아이를 적절히 먹일 수 없었다. 여기서도 영아 사망률이 꽤 높았다. 28
29 장기적으로 볼 때 여성이 노동자가 되는 비율은 높아졌다. 전쟁이 끝난 후 식단과 위생의 향상으로 인해 유아 사망률이 감소했고, 더 믿을 만한 새 피임법이 도입된 데다가 합법적으로 낙태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여성들이 더 쉽게 아이의 수와 낳을 시기를 조절할 수 있게 됐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가사노동의 부담을 덜어 주는 가전제품들이 집안에 들어 왔다. 새로운 직물과 소재로 집안 청소가 더 쉬워졌으며 중앙 난방으로 석탄 난로의 먼지가 사라졌다. 브레너와 라마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성들이 공장 생산에 점점 더 빨려들어간 1930년대 이래로, 제2차세계대전과 그 이후 중간중간 부침은 있었지만,새로운 시장을 찾는 자본이 재생산을 상품화한 것과 다수의 재화와 서비스를 생활수준이 괜찮은 사람들이 이용 가능하고 필요하도록 확장한 것이 서로 연관돼 있었다. 30 가정 내 생산에 사용되는 상품의 가격을 낮추고 출산을 줄임으로써 자본주의는 재생산에 필요한 가사노동 시간을 줄였다. 그 결과 여성은 두 가지 일을 같이할 수 있게 됐다. 31
32 보걸은 이와 같은 과정을 추가적 잉여가치를 창출할 잠재력이라고 자리매김했다.
하먼은 옳게 결론 내린다. “자본 축적의 관점에서 볼 때, 예전의 관례적인 가족은 매우 낭비적이었다. … [여성이—맥그리거] 온종일 일한다는 사실은 자본주의 체제에 위안이 되지 않는다. 여성의 노동은 더 효율적으로 이용될 수 있고 임금 노예가 될 수 있다.”자본주의 사회의 가사노동이 사적 가정에서 일어나는 한, 자본주의 축적의 압력은 각 가정에서 수행되는 [가사노동의-번역자] 양을 줄이는 경 향을 낳는다. 즉, 필요노동에서 가정이 제공하는 부분[가사노동—맥그리거]은 극도로 줄어든다. 동시에 더 많은 가족 구성원이 노동력 인구로 들어갈 수 있는데, 이는 한 가정이 수행하는 임금 노동의 총량을 증가시키게 된다. 노동자 한 명의 노동이 증대되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다. 요컨대 가사노동의 축소는 잠재적으로 상대적 잉여가치와 절대적 잉여가치 둘 모두를 창출한다. 33
34 이런 사회적인 공급은 예컨대 더 많이 교육받고 고도로 숙련된 노동 인구에 대한 자본의 필요, 여성이 임금 노동으로 편입된 영향과 더불어 의료, 연금, 복지 혜택 등을 위한 사회적 투쟁이 결합한 결과이다. 킴 무디는 《새로운 지형 위에서》On New Terrain에서 1950년 이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더 많은 여성이 임금 노동에 들어갔을 뿐 아니라 그들이 일하는 시간도 극적으로 늘어났다. … 그 결과 여성이 가정에서 무급으로 하는 재생산 노동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지자, 가족 바깥의 시장에서 재생산 노동이 상품화되는 길이 열렸다.” 35 사회 재생산에 대한 분석은 자본 축적과 자본주의 국가의 성격에 대한 분석에 포함돼야 한다. 그 분석은 가족을 둘러싼 입법 행위(결혼, 성적 관습 등에 관한 법률과 같은)와 사회 재생산의 여러 측면에 대한 공급을 통해, 국가가 노동계급의 재생산 과정에 개입하는 방식을 포함해야 한다. 이런 것들은 자본주의 위기에서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계급투쟁과 사회 운동의 압력도 받는다.
노동계급의 재생산 노동 중 많은 부분이 가족 내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이런 일들의 상당 부분을 제공하는 일은, 재정 지원이 이뤄지긴 하지만, 학교, 대학, 병원, 진료소, 요양원, 사무실과 같은 작업장의 노동자들에 의존한다.36 보걸은 자신의 설명이 모든 계급 사회에서 “직접 생산자 계급”에 적용된다고 주장한다. 37
보걸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계급 사회에서 여성의 출산은 잉여 노동을 전유할 지배계급의 필요라는 관점에서 볼 때 모순적 효과를 낸다. 피착취 계급 여성에 대한 차별은 이런 모순을 해결하려는 계급투쟁의 과정에서 발전한다.”계급 사회에서 출산은 잉여가치의 전유와 맺는 관계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출산은 종속적 계급의 여성이 직접 생산자이자 필요노동의 참가자로서 만들어낼 수 있는 기여를 줄인다. 임신과 수유는 적어도 몇 달간 노동 능력을 저하시킨다. 여성이 잉여 생산에 계속 참여할 때조차도, 출산은 잉여 노동의 즉각적인 전유를 어느 정도까지 방해한다. 38
보걸의 분석 토대는 성적 재생산에서의 생물학적 차이가 필연적으로 여성을 경제 활동에서 부차화시켜 남성에게 의존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처음에 보면, 이는 문제가 안 되는 것처럼 보인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신·출산·양육의 경험은 직장에 나가는 것과 양립할 수 없는데, 부분적으로는 직장과 가정의 분리 때문이고 부분적으로는 오늘날 임신과 출산의 성격 때문이다. 하지만 기록이 잘 말해 주듯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때때로 직장에서 아이를 낳고 직장에 아기를 데려 왔을 것이다. 문제는 임신과 출산에 관한 보걸의 분석이 모든 계급 사회에 적용되느냐 아니면 단지 자본주의에만 적용되느냐다.
39 사실 얄궂게도 보걸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사회적 행동의 여러 측면들을 “자연화시키는” 경향에 대해 논하면서 “‘자연적인 것’이라는 꽤 해로운 유령이 그들의 작업에 출몰한다”고 말한다. 40 그러나 보걸은 이를 출산이라는 자신의 범주에는 적용하지 않는다. 앞으로 살펴볼 것처럼, 보걸이 생물학에 의존하는 것은 계급 사회의 가족을 이해할 때 엥겔스의 기여를 무시하는 것에서 유래한다.
퍼거슨은 “생물학이 문제다”라는 자신의 주장이 “생물학은 운명이다”라는 생각에 맞서 싸우는 여성들에게 문제라고 여겨질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는 인간 본성의 사회적 측면을 지적한다.엥겔스가 아니면 어떻게?
41 여기에는 엥겔스가 두 가지 양식(생산양식과 재생산양식)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결함이 있”고 엥겔스가 남녀 간 노동 분업을 “생물학적” 개념에 의존한다고 주장한다. 유감스럽게도 보걸이 계급 사회 이전에 여성 차별이 있었는지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엥겔스를 무시한 셈이었다. 42 보걸은 여성 차별의 기원에 대해서도 설명하지 않는다. 엥겔스는 생산 방식의 변화로 인해 잉여 생산과 계급 분화가 출현했을 뿐 아니라 남성이 잉여를 생산했기 때문에 일부 남성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것으로 이어졌다는 점이 여성 차별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주장했다. 43
보걸은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이하 《기원》)에 반대하는 주장들을 연이어 제시한다.44 보걸은 엥겔스를 무시하면서 상이한 생산양식을 규정할 때 생산력에 주목하는 것에 반감을 드러내며, 45 왜 엥겔스가 가족의 등장을 사유재산과 국가의 등장과 결부시켰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보걸은 차별의 존재에 대한 대안적 설명을 위해 급진적 경제학자 패디 퀵을 살펴 본다.우선 《기원》이 다루는 주제는, 그 제목이 가리키듯, 가족만이 아니라 사유재산과 국가의 발전이기도 하다. 이 점은 중요한데, 여성의 종속이라는 쟁점으로 책의 목표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기원》은 여성, 가족, 노동계급의 재생산에 대한 포괄적인 분석을 제시하기보다는, 그저 문제의 특정 측면들을 역사적이고 이론적인 맥락 속에 단단히 위치시키려 한다. 46
47 이 방식은 다른 종류의 계급 사회를 가로지르는 여성 차별을 분석할 때 부정확하고 몰역사적인 접근법 48 을 부추기며, 여성의 지위가 생산양식, 여성이 생산과 맺는 관계, 변화하는 가족 형태, 국가의 구실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도구를 앗아간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이 몇 문장은 보걸(과 퀵)과 다른 마르크스주의 저자들 사이에 있는 중대한 방법의 차이를 요약해 준다. 《기원》에서 자명한 엥겔스의 관심사는 인류가 어떻게 생계를 꾸려나갔는가, 인류가 사용한 도구와 재료 또 이것이 낳은 사회적 관계, (인류의 도구와 기술이 바뀌었을 때) [생산-번역자] 관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라는 문제다. 보걸과 퀵 둘 다 여성 차별을 설명하기 위해 《자본론》과 현대 자본주의에서의 노동계급 여성의 차별에서 출발해, 출산과 양육에서의 여성 노동, 남성에 대한 여성의 의존이라는 추상적 범주를 도출하고, 그런 다음 이를 거꾸로 [이전 사회에–번역자] 투영하는 듯하다.우리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만드는가
49 마르크스는 자연이 사회적 자연이며, 우리는 사회를 통해 스스로를 만들어내고 바꾼다고 주장했다. 50 《자본론》 1권에서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쓴다.
엥겔스는 선구적 저작인 “유인원이 인간으로 진화하는 데서 노동이 한 구실”에서 인류가 어떻게 진화 과정에서 생계와 물질적·정신적·사회적 능력을 발전시키는지를 살펴본다.노동은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를 스스로의 행위를 통해 매개하고 규제하며 통제한다. 인간은 하나의 자연력으로서 자연의 소재(재료)를 상대한다. 인간은 자연의 소재를 자기 자신의 생활에 적합한 형태로 만들기 위해 자기 신체에 속하는 자연력인 팔과 다리, 머리와 손을 운동시킨다. 인간은 이 운동을 통해 외부의 자연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을 변화시키며, 그렇게 함으로써 동시에 자기 자신의 자연을 변화시킨다. 51
52 며 이를 넌지시 내비친다. 그러나 그 중요성을 모든 계급 사회에서의 여성 차별을 설명하는 것과 관련해 이해하는 것 같지는 않다.
우리가 오늘날 존재하는 방식은 외부의 자연을 바꾸는 과정에서 우리 자신의 자연을 물리적·정서적·정신적으로 끊임없이 바꿔 온 수만 년의 진화의 결과다. 보걸은 “성별 차이는 특정 사회체제 내의 그 존재와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다”53 1965년 콜린 턴불은 (콩고 지역의) 음부티 수렵·채집 사회 여성들의 임신·출산·양육을 비슷하게 기록했다. 54 이들 중 어느 과정에서도 여성은 신체적 한계로 인해 사회 집단 내에서 했던 구실을 하기 힘들게 된 일이 없었고, 남성에게 식량을 의존해야 할 필요도 없었다. 55
선사 시대의 경험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생산과 재생산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고 임신과 출산이 [계급 사회와는-번역자] 꽤 달랐던 평등주의적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이 살았다는 사실을 안다. 산부인과 전문의이자 세인트루이스 의학대학원 교수였던 조지 J 엥겔만은 다양한 수렵·채집 사회와 부족 사회에서 끌어낸 여러 출산 관행에 관한 대단히 흥미로운 연구를 해 1883년에 출판했다. 그는 수렵·채집 사회와 부족 사회의 삶의 방식은 신체가 건강하게 발달하는 데 알맞았고, 따라서 출산은 어머니가 이동하고 신체적 건강을 유지하는 데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로 짧고 비교적 쉬웠다고 결론 내렸다.종의 생물학적 재생산에 관한 여성의 독특한 능력은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본질적으로 차별적이지 않았다. 이것이 여성 차별과 어떻게 연결되는가는 가볍게 다룰 수 없는 역사적이고 분석적인 물음이다. 여성 차별에 대한 설명을 변하지 않는 생물학 탓으로 돌리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여성의 생물학, 착취와 차별 보걸은 계급 사회 전반에서 출산과 양육의 성격에 관해 추정한다. 하지만 보걸의 분석이 계급 사회 전체에서 여성 차별의 변화하는 형태들을 설명할 수 있을까? 보걸은 재생산 구실 때문에 여성이 생산에 완전히 참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계급 사회에서 여성 종속의 물질적 기초는 남성이 양육기에 여성에게 생활 수단을 공급하는 데 있지, 성별 분업 그 자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57 플랜테이션에서 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은 벌목꾼으로 일했으며, 도랑과 수로를 팠고, 철로를 깔았고, 루이지애나에서는 제방을 쌓았으며, 운송업에 이용됐다. 왜냐하면 여성 노예는 최상급 남성보다 활용하고 유지하는 데 돈이 적게 들었”기 때문이다. 58
북아메리카에서 플랜테이션의 노예제는 이 분석과 일치하지 않는다. 앤절라 데이비스는 《여성, 인종, 계급》에서 다음과 같이 쓴다. “노예제는 흑인을 소지품으로 규정했다. 여성은 남성과 마찬가지로 수익성 있는 노동 단위로 간주됐기에, 노예 소유주는 흑인이 성별이 없는 양 여겼다.” 데이비스는 계속해서 쓴다. “노동에 관한 한, 채찍의 위협 아래에서 견디는 힘과 생산성이 성별에 대한 고려보다 더 중요했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은 남성과 동일하게 억압받았다.” 하지만 여성은 또 성적 학대를 당했는데, “노예 소유주의 경제적 지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감독자가 흑인 여성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강간이 사용됐다.60 임신한 여성이나 젖먹이가 있는 여성이라고 해서 농장일이 면제되지 않았다. 임신한 여성은 임신하지 않은 여성이나 남성과 똑같이 채찍질 당했다. 61 아기가 있는 여성은 기껏해야 아기를 업거나 아기를 밭이랑 끝에 놔두거나 아니면 다른 어린아이들이나 더 나이든 노예들에게 맡기는 것이 고작이었다.
노예의 평균 산출량 계산에 사용되는 생산성 체계에서 남성과 여성은 동등하게 취급됐고 어린이는 [어른의-번역자] 4분의 1로 취급됐다.이 체제에 관해 데이비스는 다음과 같이 결론내린다.
[노예] 여성들에게 가해진 특별한 학대는 무자비한 경제적 착취를 용이하게 했다. 이 착취를 위해 노예 소유주는 억압이 필요 없는 곳에서는 전통적인 성차별적 태도를 버렸다. … 게다가 노동자인 흑인 여성이 ‘더 취약한 성별’이나 ‘주부’로 취급될 수 없었기에 흑인 남성은 ‘가장’의 후보자가 될 수 없었고 확실히 ‘가족 부양자’는 아니었다. 결국 남성, 여성, 어린이는 똑같이 모두 노예 소유 계급을 위한 ‘부양자’였다. 62
63 그 억압의 존재가 노예 소유주와 감독자들이 노예 여성을 대하는 방식을 결정했다. 64
노예 여성은 착취받고 억압당했다. 하지만 그 억압은 보걸의 틀을 이용해서는 설명할 수 없다. 더 나은 접근법은 노예 사회의 나머지 부분에 존재했던 가족 제도에서 여성 억압이 내재된 방식을 살펴보는 것이다.65 이는 생산양식, 사회 내 여성의 경제적 구실, 지배적인 관습, 법과 다른 요인들에 대한 훨씬 더 미묘한 분석을 필요로 한다.
중세 사회의 여성도 의심할 바 없이 차별받았다. 그러나 피착취 계급 여성에게 차별이 작동한 방식이 양육을 위해 남성에 의존해야 하고, 경제 활동이 지속적으로 방해받아서라고 추정할 수는 없다.북서유럽에서는 결혼 연령이 늦었고(여성은 24세, 남성은 26세 가량), 여성이 특징적인 경제적 구실을 하는 독특한 결혼과 가족 형태가 있었다. 사춘기가 시작될 때 여성이 아버지의 가정을 떠나 결혼을 통해 남편의 가정으로 이동하는 대신, 독신 여성과 남성이 가정 내에서 일하거나 다른 가정에 고용돼 일했다. 결혼 후에 여성은 남편과 경제적 동반자로서, 대개 그의 일을 돕는 식으로 일했다.
66 여성 양조자는 대개 결혼했지만 맥주 양조는 흑사병 창궐 이전에 독신 여성과 홀아비도 이 일로 돈을 벌었다. “13세기 말과 14세기 초에 에일 맥주 사업은 비정기적으로 양조하는 사람이나 산업적으로 양조하는 사람의 가정 모두에 소득을 보완하는 중대한 원천이었다.” 67 베넷은 다음과 같이 쓴다.
주디스 베넷은 여성과 에일 맥주 제조에 관한 1996년 연구에서 이 점을 보여 줬다. 에일 맥주 제조는 중세 가정 경제의 일부였는데 시골 지역의 여성이 대부분 수행했다.많은 아내들에게 판매용 맥주 제조는 “임시변통의 경제”에서 많은 요소 중 하나였다. 중세 가정에서 주된 일은 대개 남편에게 할당됐고 보완적 일은 아내에게 할당됐다. 아내는 부수적 책임을 많이 떠맡았다. 아내는 남편이 필요할 때 일을 도왔고(밭, 작업대, 상점에서 돕기), 재생산 노동을 위한 주된 책임을 맡았다(생물학적·사회적 재생산 둘 모두). 아내는 소득을 얻는 여러 작은 활동을 해 나갔다. 68베넷은 여성이 에일 맥주 제조에 참여하도록 만든 여러 요소를 지적한다. 남편이 금속업에 종사하거나 상인이었다면 아내는 아마도 양조를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의류, 직물, 가죽, 식량 공급업에서와는 달리 남편의 작업에 도움을 줄 필요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베넷에 따르면 “임신, 수유, 양육은 중요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남편의 일은 때때로 대단히 중요했다. … 다시 말해, 아내들은 출산과 양육에서 자유로웠을 때가 아니라 자기 가정의 다른 경제적 조건 때문에 맥주 양조 일을 할 시간이 있었을 때 그 일을 했다.”
70 부르주아 사회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를 가리는 사회의 형식적 평등에 관한 이데올로기를 홍보한다. 사회의 부문들(이름을 몇 개 대면 인종적 소수자, 민족적 소수자, 여성)은 심지어 신분의 형식적 평등을 위해서도 계속해서 싸워야만 했고, 보걸은 그러한 투쟁들이 “진지한 혁명적 중요성”이 있다고 옳게 주장한다. 71 그는 또한 마르크스를 따라 미래 사회에서 진정한 평등은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모든 결정을 민주적으로 내리고 아이를 갖는 여성의 “불공평한” 처지를 평등화시켜 “불평등”이 사라지게 하는 데 자원이 쓰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72
보걸은 자신의 책 말미에서 초점을 노동계급에서의 여성 차별에서 유통 영역에서의 “개인들의 평등”이라는 문제로 옮긴다.73 그 대신 그는 여성에게 평등한 권리가 없다는 것과 여성의 평등을 위한 투쟁에서 다계급 운동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 74 보걸은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 “여성 차별의 원인이 가사노동과 평등권에 관한 이중적 지위에 있다는 주장은 임금 노동에서 여성의 지위를 이해하는 것과 함께 어떻게 광범한 여성해방운동이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필수적인 요소를 대표할 수 있는가를 분석하기 위한 틀을 제공한다.” 75
하지만 불행히도 보걸은 노동계급의 일부로서 여성 노동자에게 잠재력이 있고 그들이 혁명적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는다.76 “계급 분화를 뛰어넘은 진보적인 여성들의 조직” 77 을 건설하는 것에 관한 보걸의 정식화는 노동계급 여성의 필수적인 독립을 강조하지 않음으로써 노동계급 여성의 필요를 중간계급 여성에게 종속시키고, 계급 불평등에 도전하지 않고 부르주아적 권리를 얻는다는 관점이 팽배해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는 노동자들의 독립적 구실을 강조하면서 완전한 민주적 권리를 위해 싸우는 접근법과 극명히 대조를 이룬다. 노동자들의 독립적 구실을 강조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그런 투쟁에 사회적 영향력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고, 차별받는 사람들 사이에 계급적 이해관계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1983년에 글을 쓰면서 보걸은 아마 북아메리카와 유럽의 일부에서 후기 자본주의가 계급 불평등을 증대시키면서도 여성에게 완전한 부르주아적 평등을 양보하고 성소수자 차별적 법률을 없앨 것이라 예측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는 서로 다른 계급의 여성 간 차이를 줄인 게 아니라 더욱 넓혀 왔고, 노동계급 여성의 사회적 차별을 강화했다. 그래서 중간계급 여성은 양육비를 쉽게 부담할 수 있지만 노동계급 여성은 훨씬 더 많은 수고를 들여야 한다.보걸에서 리보위츠까지 티티 바타차리아는 사회 재생산 이론의 가장 중요한 지지자 중 한 명이 됐다. 그는 마이클 리보위츠의 책 《자본론을 넘어서》에 큰 도움을 받아 보걸의 여성 차별에 대한 설명을 인종차별을 분석하는 데로 확장해 왔다.
79 리보위츠는 그가 《자본론》에 빠졌다고 말하는 주관적 요소를 다시 끼워 넣어서 이를 바로잡으려 하는데, 바로 노동자의 관점에서 본 임금이나 “생산의 순환”에 관한 분석이다. 그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의 1859년 “서문”에서 가져온 역사 유물론에 대한 전형적인 진술이 보수적 해석으로 이어지거나 적어도 이를 허용하기 때문에, 다시 써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80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리보위츠는 마르크스를 유의미하지 않다고 주장하거나 마르크스의 철학을 카를 카우츠키와 제2인터내셔널에 어울리는 기계적 마르크스주의의 형태로 환원하는 이들에게서 마르크스를 방어하려 한다. 리보위츠는 《자본론》 자체가 기계적 해석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가 있으며 이것이 왜 노동계급이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지 않았는지를 어느 정도 설명해 준다고 주장한다.사회의 물적 생산력은 어떤 발전단계에 이르면 기존의 생산관계와 모순에 빠진다. … 이들 관계는 생산력의 발전 형태들로부터 질곡으로 전환된다. 그러면 사회적 혁명기가 도래한다. … 한 사회구성체는 그 내부에서 발전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생산력이 발전하기 전에는 멸망하지 않으며, 더 우월한 새로운 생산관계는 그 물적 존재조건들이 낡은 사회 자체의 품에서 부화되기 전에는 결코 옛것을 대체하지 않는다. 81
리보위츠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그러므로 대안적 명제를 생각해 보자. 그 명제는 역사적 변화 과정을 결정하는 데서 중심적인 것은 사회적으로 형성된 인간들(즉, 특정 사회 내에서 형성된 사람들)의 필요라는 명제가 될 것이다. 요컨대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생산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은 구체적 인간들이며, 그들은 이를 통해 자신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려 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역사 이론을 이렇게 대안적인 틀(필요의 우선성)로 정식화하면, 기존 사회 구조가 그 사회 내에서 형성된 사람들의 필요를 더는 충족시키지 못할 때 사회가 바뀌기 시작한다. 구체적인 인간들의 특정 필요에 조응하는 방식으로 생산력이 발전하지 못하도록 생산관계가 가로막을 때 사회가 변화한다. 자본주의 내에서 자본을 넘어설 것을 추동하는 당위는 ‘발전을 위한 노동자들 스스로의 필요’다. 82
83 그러나 리보위츠는 “발전을 위한 노동자들 스스로의 필요”와 나란히 “당위”를 도입해서 마르크스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도덕적”이고 의지주의적인 경향을 만들어내고 있다. 마르크스는 《브뤼메르 18일》에서 다음과 같이 쓴다.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가지만, 그들이 바라는 꼭 그대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환경 속에서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주어졌으며 물려받은 환경 속에서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84 “역사의 철칙” 접근법을 피하면서 다른 방향으로 기울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자본과 노동의 이해관계가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것(마르크스의 요점)은 계급투쟁의 기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공공연한 계급투쟁이 필연적으로 뒤따른다는 뜻은 아니고, 또 뒤따르는 투쟁의 결과를 말해 주지도 않는다. 85
마르크스는 사실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 자신에 의해 성취돼야만 한다”고 믿었다.86 더욱이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특성상 새로운 제품이 개발됨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필요가 만들어지고 따라서 새로운 시장이 창조돼야 한다. 자본가 자신이 사치품 소비를 늘리려는 노력은 열망을 자극해 노동자 사이에서 새로운 필요를 낳는다.
리보위츠는 노동자들 자신의 재생산 필요가 노동자들이 노동력을 팔아서 받는 임금의 기초를 이룬다는 논의를 통해 비평을 발전시킨다. 그는 마르크스를 따라 필요가 사회적으로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 달려 있으며, 그래서 임금의 기초는 마르크스가 “역사적·도덕적 요소”라고 부른 것을 포함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필요는 물질적일 뿐 아니라 상상의 산물일 수 있으며, 인간 개성의 발전을 포함한다.87 셋째 수준의 필요는 그가 “사회적 필요”라고 일컫는 것이다. “어떤 주어진 시점에서 사회적으로 발전된 인간 존재로서 노동자가 갖는 필요의 수준이다. 이것은 상품 형태로서의 사용 가치에 대한 필요의 상한선을 구성한다.” 88 리보위츠는 그리고서 이렇게 결론내린다. “충족되지 못한 사회적 필요의 존재가 더 많은 화폐에 대한 노동자의 요구, 즉 임금 인상을 원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89
리보위츠는 세 가지 수준의 필요를 구별한다. 첫째, “생리적 필요”는 노동자를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물질적 최소치다. 둘째, “필수적 필요”는 “관습과 관례에 의해 필요한 것으로 주어진 필요의 수준이다. 이것은 ‘관습적으로 요구되는’ 사용 가치를 포함하며, 통상 노동자들의 소비와 관계가 있다. 《자본론》에서의 노동력 가치 개념은 여기에 기반하고 있다.”90 그는 계속해서 쓴다.
이는 이상한 주장인데, 그가 “필수적” 필요와 “사회적” 필요 사이에 기계적 구분을 도입해, 노동자들이 “필수적 필요”라고 일컫는 것, 즉 집세나 주택 융자금을 내고 먹고 살 충분한 음식과 옷 등을 위해 임금 인상 투쟁을 벌일 필요를 배제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노동자의 생산”(그가 《자본론》에서 빠졌다고 주장하는 것)의 순환에 대한 리보위츠의 주장에 기초를 제공한다. 또 리보위츠가 “자본이 목적인 자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임금 노동이 목적인 임금 노동 또한 존재한다”라고 주장하는 것의 중심에 있는 임금을 둘러싼 투쟁에 상응하는 이론의 근거를 제공한다.간단히 말해, 자본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필요 증가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자본가와 “반대 방향”의 투쟁이 필요하다. 하지만 《자본론》에는 임금 인상 투쟁에 관한 논의가 없고, 있을 수도 없는데, 왜냐하면 《자본론》은 기존 필수품의 기준, 즉 “특정 국가에서 특정 시기에 노동자에게 필요한 생활 수단의 평균적인 양은 알려진 자료이다”라는 것을 상정하기 때문이다. 91
92 더 나아가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본론》에] 임금 인상 투쟁 논의가 없다는 이 주장은 정직하지 않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의 임금 투쟁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기 위해 1865년 6월 20일과 27일에 제1인터내셔널 총회에서 두 차례를 할애했고, 이후 이는 《가치, 가격, 이윤》으로 나왔다. 마르크스는 저명한 노동자 대표였으며 투쟁이 노동자들에게 해를 입힌다고 주장했던 존 웨스턴에 답했다. 마르크스는 만약 노동자가 “자본가의 의지와 자본가의 명령을 영구적인 경제 법칙으로 순순히 받아들인다면, 그는 노예가 받는 생존 보장조차 받지 못하면서도 노예의 모든 불행은 함께 나누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노동자가—맥그리거] 노동일을 예전의 합리적인 수준으로 줄이려 한다면, 또는 표준 노동일의 법제화를 강행할 수 없는 경우에 수탈된 잉여 시간만큼 임금을 올리거나 그 이상 올려서 과도한 노동을 막으려 한다면, 노동자는 단지 자기 자신과 그 후대에 대한 의무를 다할 뿐이다. 이들은 오직 자본의 전횡적 침탈을 제한할 뿐이다. 시간은 인간 발전의 공간이다. 쓸 수 있는 자유 시간이 없는 사람, 수면·식사 등 순전히 신체적인 필요 때문에 중단되는 시간을 빼고는 평생을 자본가를 위한 노동에 써 버리는 사람은 가축보다 못한 신세다. 그는 몸이 망가지고 정신이 황폐해진, 다른 사람의 부를 생산하는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93노동 시간을 둘러싼 투쟁은 임금에 관한 투쟁이기도 하며, 더 중요하게는 “인간 발전”에 관한 투쟁이다. 《자본론》 1권의 5, 6, 7장은 하루 10시간 노동을 위한 투쟁을 다룬다. 《가치, 가격, 이윤》에서 마르크스는 투쟁은 자본에 의한 피해를 제한할 뿐이며, 궁극적으로 임금 체제가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고 말하며 끝을 맺는다.
리보위츠의 주장으로 돌아오면, 그는 “노동자의 생산”이라는 《자본론》에서 “빠진” 순환을 제시하며 노동자에게서 출발하는데, 이에 따라 암묵적으로 자본주의에서 계급 세력 관계를 뒤집는다.
그러므로 임금 노동을 고려할 때 나오는 것은 임금 노동자 측의 계급 투쟁이다. 자본이 목적인 자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임금 노동이 목적인 임금 노동 또한 존재한다. 《자본론》에 나온 그림과는 반대로, 가치 실현에 대한 자본의 필요만이 아닌 “노동자의 자기 계발에 대한 필요다”라는 두 개의 “당위”가 있다. 각각이 서로를 종속시키려 하는 이 양 측면에 걸친 투쟁은 자본-임금 노동 관계의 모든 측면에서 나타난다. 95
노동자와 자본가는 겉보기에 시장에서 자주적이고 평등한 존재로서 만나며, 자본은 스스로를 재생산하기 위해 노동력을 구매하는 데 의존한다. 하지만 이는 평등한 교환이 아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자본은 잉여가치를 차지할 수 없을 것이다. 노동자가 노동력을 구매할 필요가 있는 자본에 의존하는 것이 자본이 노동에 의존하는 것보다 더 크다. 임금 없이 노동자는 살 수가 없고, 노동자가 집단적으로 이를 멈추기 위해 힘을 행사하지 않는 한 자본은 노동을 확보할 무수히 많은 방법이 있다.
96 제시된 “노동자의 생산” 순환은 실제로는 노동력의 사회적 재생산이며 리보위츠가 암시하는 것과 같이 생산 영역과 동등한 것이 아니라 생산 영역에 종속된다.
더 중요하게는 리보위츠가 제시한 (그리고 바타차리아가 채택한) “노동자의 생산” 순환은 잉여가치의 생산, 자본의 팽창에 관한 마르크스의 생산 순환과 어울리는 것으로 볼 수 없다. 차이를 살피는 한 가지 방식은 마르크스가 노동자의 “생산적 소비”와 “개인적 소비” 사이의 차이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있다. “생산적 소비”는 노동자가 자본가가 제공한 도구와 원재료를 사용해서 자본가가 잉여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해 파는 상품을 생산할 때다. “개인적 소비”는 노동자가 살기 위해 원하는 것을 구입하는 데 임금을 사용할 때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노동으로 돌아와 “생산적 소비”와 자본의 확장이라는 과정을 계속해야 한다.리보위츠가 《자본론》의 약점이라고 제시한 테제로는 국제 노동계급이 자본주의를 전복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그는 마르크스와 《자본론》에 대한 기계적 해석을 비판하는 데서는 옳다. 하지만 국제 자본주의가 왜 여전히 건재한지(노쇠하고, 위기에 시달리며 인류와 지구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면서도)에 관한 분석을 하려면 이 점에 이르게 한 복잡한 역사적 과정을 조사해야만 한다. 혁명적 투쟁이 부재한 것은 자신의 글에 생략된 것 때문이라는 관념론적 주장을 마르크스가 받아들일 수 있었을지는 의심스럽다. 게다가 리보위츠 자신의 “《자본론》에 덧쓰기”는 일면적인 의지주의적 요소를 마르크스에게 집어넣는다.
리보위츠를 기반으로 한 바타차리아
97 그러므로 사회 재생산 이론은 다른 범주들이 모두 어떻게 서로 맞물리는지를 봐야 한다.
바타차리아가 최근에 편집한 《사회 재생산 이론: 계급을 재배치하기, 차별을 다시 중심에 두기》는 경제 위기에서 섹슈얼리티에 이르기까지 인상적인 범위의 주제들을 다룬 글들을 한데 모은 책이다. 모든 글들에 관심이 많이 간다. 보걸은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요점을 말한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두 가지 가정을 버려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다양한 차원의 차이(예컨대 인종, 계급, 성별)가 비교 가능하다는 가정이다. 둘째, 다양한 범주들이 인과 관계의 중요성에서 동등하다는 암시다.”98 퍼거슨의 ‘어린이, 유년기, 자본주의: 사회 재생산 관점’이 특히 흥미롭다. 99 이 모음집에 약점이 있다면 2017년 여성 파업에 관한 친치아 아루차의 마지막 글 외에는 현실의 투쟁과 거의 연결점이 없는 듯하다는 점이다. 이 글에서의 초점은 2017년 9월 런던 킹스 칼리지 대학에서 열린 《자본론》 150주년 학술대회와 ‘Marx is Muss 2018&rsqu 100 에서 바타차리아가 발표한 것과 더불어 모음집의 다른 글들에 이론적 틀을 제공하는 바타차리아의 도입 글과 ‘계급을 건너뛰지 않기: 노동의 사회적 재생산과 세계 노동계급’ 101 이 될 것이다.
미국 노동계급 가족의 구성을 역사적으로 설명한 살라 모한데시와 엠마 테이틀맨의 ‘비축분 없이’와102 그는 노동계급이 잠재적인 혁명적 주체라는 것을 부정하려는 이들을 반박하고 왜 노동계급이 여전히 중요한지에 대한 논거를 제공하고자 한다. 103 주요 주장은 다음과 같다. “[노동계급의 구실에 관한—맥그리거] 비난 중 다수는 노동계급이 정말 무엇인가에 대한 오해를 공유한다.” 104 바타차리아는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노동계급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킬 수 있는 열쇠는 … 사회 재생산의 틀”이고 이는 “노동자가 작업장을 넘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서 필수적이다.” 이는 결국 다음을 뜻한다. “이론적 도전은 [노동자의] 존재와 자본가의 직접적 지배 하에서 생산하는 삶을 사는 존재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있다.” “이런 영역들 사이의 관계는 결국 우리가 계급 투쟁을 위한 전략적 방향을 고려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105
바타차리아의 출발점은 다음과 같다. “바로 그 형성 때부터, 특히 20세기 말부터 세계 노동계급은 엄청난 도전에 직면해 왔다. 그 도전은 바로 어떻게 모든 분열을 극복해 일사불란하고 완전히 전투적인 형태로 나타나 자본주의를 전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106 여기서 “통합”이 무엇을 뜻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두 영역이 동등한 비중을 갖는가 아니면 하나가 다른 하나를 지배하는가? 앞에서 주장했듯이, 두 순환은 상응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이런 정식화는 착취와 차별을 서로 혼동할 수 있다.
바타차리아는 리보위츠를 따라 노동력의 재생산을 자본의 두 번째 순환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력—맥그리거] 재생산 영역과 생산 영역이 “별개”라고 봐서는 안 되며 “통합”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제안한다.107 그는 리보위츠를 이어받는다. 노동자가 “사전에 생각한 생산의 목표”는 “마르크스가 ‘노동자들의 자기 개발 필요’라고 설명한 것”이다. 108
바타차리아는 리보위츠의 도식을 따라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새로운 필요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그러므로 노동력의 가치는 탄력적이고 노동자와 자본가 간의 투쟁 속에서만 결정될 수 있다는 주장을 발전시킨다. “따라서 노동자는 그 과정의 바로 그 성격 때문에 항상 필요가 결핍된 채로 재생산되며, 이런 이유로 더 높은 임금을 위한 투쟁, 즉 계급 투쟁은 임금 노동의 구조에 붙박혀 있다.”바타차리아는 작업장을 넘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오늘날 생산 지점에서의 노동자 투쟁이 약하는 데서 찾는다.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 노동계급은 생산 지점에서 임금 인상 투쟁을 하거나 하지 않을 수도 있다. … 그런 전투들은 생산 지점에서 떨어져서 부상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계급의 필요와 책무를 반영할 것이다. 다시 말해 임금 인상 투쟁이 가능하지 않은 곳에서 사회 재생산의 순환을 둘러싼 다른 종류의 투쟁들 또한 분출할 수 있다. 109
그는 코차밤바와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물을 둘러싼 투쟁, 인도에서 일어난 토지 퇴거에 맞선 투쟁, 영국에서의 주택 투쟁을 예로 든다. 투쟁이 작업장에서 비롯했든 거리에서 비롯했든, 작업장 문제이든 주택, 수도, 낙태, 병원 폐쇄 중단 등에 관련된 것이든 상관없이 가능한 곳에서는 투쟁에 착수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시작한 투쟁에 관여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마르크스 자신은 주류 판매법에 맞선 1855년의 대중 시위가 영국 혁명의 시작을 알렸을 것이라 생각했다.
111 하지만 영국에서 2003년 100만~200만 명이 모였던 ‘전쟁 저지’ 운동은 당시 총리 토니 블레어가 이라크에서 전쟁을 시작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하지만 바타차리아(와 리보위츠)의 설명에도 말하지 않은 게 많다. 바타차리아는 다른 사회 운동들의 강점과 약점에 대해 논의하지 않는다. 때때로 거리 운동은 목표 달성에 성공할 수 있는데, 예컨대 197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초 영국에서 반나치동맹ANL과 반파시즘연합UAF이 이끈 파시즘에 맞선 운동들이나 1990년에 일어난 인두세에 맞선 운동이 그랬다.112 리보위츠나 바타차리아 둘 다 룩셈부르크가 《대중파업론》에서 1905년 혁명의 동학을 분석한대로 작업장에서의 운동이 더 광범한 정치 투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을 보지 않는다. 113 리보위츠가 노동조합 관료에 의해 억눌려 있는 자주적 활동을 사회적 투쟁을 통해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보고, 사회 운동이 전체 자본의 힘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작업장 운동보다-번역자]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14 바타차리아에게 사회 운동의 목표와 사회 운동이 노동자 권력을 위한 투쟁으로 통합될 필요가 있는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노동조합 관료의 구실과 그 영향력에 어떻게 맞서 싸울 것인가에 대해서도, 개혁주의 조직이 노동계급 의식과 투쟁의 발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진지한 논의가 없다. 사회 운동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혁명적 운동의 목표를 생산수단을 직접 통제하고 낡은 국가 기구를 파괴하고 대안적 노동자 국가를 발전시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에서 멀어지는 신호일 수 있다.
자본에 도전하는 운동에 관한 한, 만약 노동계급이 자본가 계급에 맞서 집단적 힘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지배계급은 거리의 대중을 이겨낼 수 있다. 노동자들이 참여했거나 노동자 투쟁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둘 다 처음에 혁명적 과정으로 기울었던 튀니지나 이집트에서의 아랍의 봄과, 이와 같은 노동계급의 집단적 참여가 없었던 시리아 사이의 차이를 대조해 보라. 그러므로 작업장에 중심을 놓는 것은 특정 유형의 노동자에게 집착하는 게 아니라 사회의 힘이 있는 곳에 집착하는 것이다. 임금 투쟁은 자본 자체에 맞선 투쟁으로 일반화하지 않는 한 불충분하다는 점에서 바타차리아는 당연히 옳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리보위츠가 노동조합에 대한 룩셈부르크의 비판을 언급할지라도,115 1968년 프랑스의 총파업은 경찰의 만행에 맞선 학생들의 연대로 촉발됐다. 마찬가지로 계급투쟁의 상태와 상관없이 물, 토지, 주택, 대기 오염을 둘러싼 사회 운동들이 있다. 이런 운동들의 특성에서 차이를 만드는 것은 노동자들이 그런 목표를 위해 파업이라는 무기를 사용할 정도로 충분히 강력하다고 느끼는가이다. 시리자 집권 이후 그리스에서 트로이카와 EU에 맞선 운동이 그렇게 위협적일 수 있었던 것은 연이은 파업이 그 운동에 동력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바타차리아는 여러 쟁점들을 뒤섞는데, 노동자들이 무엇을 놓고 싸우느냐, 어떻게 싸우느냐, 계급 투쟁의 상태는 어떠하냐 등을 섞어버린다. 미국과 영국의 노동계급 조직이 크게 약화돼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무엇을 놓고 싸우느냐는 그저 노동계급 조직의 강점이나 약점의 결과가 아니며, 생산 지점에서의 투쟁이 임금 문제로 환원돼야 하는 것도 아니다. 후자부터 먼저 말해보자. 1971년 어퍼클라이드 조선소에서 벌어진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점거는 영국에서 투쟁의 상승기를 알렸다. 이런 특징은 임금·일자리·노사관계법·항만 노동 지도자 수감 문제를 둘러싼 투쟁들뿐 아니라 인종차별에 맞선 투쟁에서도 다양하게 나타났다. 여성과 이주 노동자들은 상승하는 투쟁의 일부였다. 유리 프라사드가 이 저널[《인터내셔널 소셜리즘》-번역자]에서 보여 줬듯이 아시아 노동자들이 핵심적 구실을 했다.116 할 것을 제안할 때, 반대할 것은 거의 없어 보인다.
혁명가들은 바타차리아가 제기하는 쟁점이나 운동들의 중요성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며, 이런 것들을 둘러싼 투쟁이 넓게 말해 계급 투쟁이라는 것에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a) 노동계급을 혁명적 주체로서 이론적으로 재천명하고, (b) 특정 시점에 임금 노동자로 고용된 사람들 이상으로 노동계급을 광범하게 이해하며, (c) 계급 투쟁을 임금과 노동조건을 둘러싼 투쟁 그 이상을 뜻하는 것으로 재고”하지만 바타차리아가 “노동계급을 광범하게 이해”하자고 말할 때 정확히 누구를 지칭하고 있는지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에게 노동계급은 평생 사회 재생산의 전체에 참여하는 생산하는 계급의 모든 이들로 여겨야만 한다. 노동이 자본에 의해 지불되느냐 지불되지 않은 채로 있느냐에 상관없이 말이다. 계급에 대한 이런 통합적인 관점은 로스앤젤레스의 라틴계 임시직 호텔 노동자, 높은 양육비 때문에 집에 있어야 하는 인디애나의 유연근무 노동자인 워킹맘, 시카고의 아프리카계 흑인 풀타임 학교 교사, 디트로이트의 백인 남성이자 이전에는 전미자동차노조 조합원이었던 실업자를 한데 모은다. 117
당연히 바타차리아가 언급한 사람들은 모두 노동계급의 일부다. 하지만 노동계급 내 임시직화 정도에 대해 과장하는 추세가 있는데, 바타차리아는 이런 추세를 약화시키기보다는 강화시킨다. 또한 집단적 투쟁의 전망을 과소평가하고 미국 자본의 구조조정이 만들어낸 가능성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무디는 다음과 같이 쓴다.
린 생산 방식 118 이 야기한 축적 과정과 노동력의 유연성 증가와, 서비스와 재화 생산에서 공급망 확장의 결과 중 하나는 불안정·비정규직 노동의 증가였다. 여기에는 임시파견직, 단기 계약, 일용직, 독립 계약자(즉, 가짜 자영업), 비자발적 파트타임 노동(주로 풀타임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경제적 이유 때문에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것) 등이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불안정 노동자의 비율은 거의 오르지 않아 노동통계국의 최근 집계[에 따르면—맥그리거] 1995년 15.2퍼센트에서 2005년 15.5퍼센트가 됐을 뿐이다. 119무디는 노동자의 85퍼센트가 여전히 “전통적” 고용 방식에 속해 있으며 캐나다와 유럽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고 추정한다. 아마 생계를 꾸리기 위해 여러 일자리에서 일해야 할 “기가리아트”(“기그[임시직-번역자]” 경제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일컫는 무디의 용어)는 먹고 살기 위해 항상 한 개 이상의 일자리를 가져야 하는 노동자의 비율을 바꿔놓지 않았다.
121 이런 흑인·라틴계 남녀 노동자들은 막대한 경제적 힘을 행사할 잠재력이 있다. 무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은 즉각적 잠재력이 가장 큰 지점이자, 가장 거대한 인종·성별 통합이며 또한 직접 민주주의의 가능성이 가장 큰 장소다.” 122
더군다나 미국에서 자본의 구조조정은 축적의 새로운 중심으로 이어져 “린” 생산 과정의 중심이 되는 재편된 공급망에 노동자들을 거대하게 집중시켰다. (대개 10만 명에 달하는) 생산적 노동자들의 이런 집중은 “형편없는 돈을 받고 없어도 되는 것처럼 취급”받는데, 왜냐하면 시카고와 로스앤젤레스 같은 장소의 물류 허브는 실업이나 불완전 취업 상태인 수많은 가난한 흑인과 라틴계 노동자들(값싼 노동의 끊임없는 원천을 제공하는)과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123 줄리 셰리는 다음과 같이 쓴다. “약 1900만 명에 달하는 미국 전역의 저임금 노동자들이 ‘15달러를 위해 싸우자’ 운동이 [2012년에—맥그리거] 시작된 이래 615억 달러의 임금 인상을 쟁취했다. 오늘날 시간당 [최저임금-번역자] 15달러는 캘리포니아와 뉴욕 주에 법으로 정해져 있다. 시애틀과 펜실베이니아의 법은 양로원과 병원 노동자들에게, 다른 많은 도시들에서는 지방자치단체에 고용된 사람들에게 시간당 15달러를 준다.” ‘15달러를 위해 싸우자’ 운동은 정치적이고 반反인종차별적인 성격이 있었다. “시작부터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파업을 공민권 운동을 잇는 것으로 여겼고, 운동의 언어 중 많은 것이 공민권 운동의 용어로 이뤄졌다.” 124
저임금 이주 여성 노동자가 일하는 부문들에서는 최근에 몇몇 인상적인 투쟁들이 일어났다. 2015년 뉴욕의 호텔 노동자 중 80퍼센트가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2018년 봄 영국 대학 노동자들의 연금 투쟁은 단기 계약을 하는 “불안정” 노동자의 비중이 높은 노동자들이 어떻게 파업이라는 무기를 효과적으로 사용했는지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예다. 파업은 신자유주의적 의제에 도전했고, 새로운 노동자 수천 명을 정치화하고 급진화시켰다. 파업은 교육 쟁점들을 대학 노동자들의 조건과 결합시켰고, 파업 승리에 열중한 평조합원과 합의 성사에 열중한 노동조합 지도자 사이의 관점 차이 같은 “오래된” 쟁점도 파업 중에 떠올랐다.126 조직자들은 여성들에게 하루 일을 쉬라고 고무했는데, 이것이 “바깥” 일이든 가사노동이든 상관 없이 여성이 매일 하는 일을 두드러지게 보이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루차는 노동조합 조직과 작업장 파업이 낮은 수준이라는 맥락 속에서 여성 파업의 유용성을 본다.
《사회 재생산 이론》에 실린 아루차의 글 ‘사회 재생산 페미니즘에서 여성 파업까지’는 노동계급의 힘이 어디에 있는지에 관한 쟁점을 흐리고 있는데, 바타차리아나 다른 저자의 반박을 받지는 않았다. 아루차가 설명하길, 2017년 세계 여성의 날에 열린 여성 파업은 “여성 없는 하루”라고 불렸다. “파업이라는 단어를 채택한 것은 여성이 작업장 안에서뿐 아니라 밖에서, 즉 사회 재생산의 영역에서 수행하는 노동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127 하지만 비록 결근이 전술로써 성공적으로 사용될 수 있지만, 어느 단계에서는 노동조합에 속하지 않은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으로 조직돼야 하고 여성 노동자들은 혼자 결근을 하는 게 아니라 남녀 전체 노동자들에게 임금이든 성차별이든 쟁점들을 놓고 파업을 하자고 주장할 수 있어야만 한다. 전체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성별에 기반한 부분적인 작업 중단보다 자본에 더 강력한 타격을 가할 수 있다. 파업은 노동자들에게 세상을 바꿀 자신들의 잠재력을 교육시키며 노동자들이 역사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되는 과정을 준비할 수 있다. 노동자들은 사회 운동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본의 바로 그 심장부에서 파업할 수 있다. 이것이 혁명가들이 노동자들에게 자신만의 사회 운동을 만들고 “차별받는 사람들의 호민관”이 되라고 촉구해야 할 이유다. 128
국제적으로 그 날은 큰 성공을 거두며 미국, 폴란드, 아일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터키, 레바논, 태국, 필리핀과 인도뿐 아니라 나이로비와 도쿄 등 세계적으로 여성들을 집결시켰다.인종차별 이해하기
129 그는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이 분열의 근원이라는 조해나 브레너와 로버트 브레너의 생각을 거부하며, 130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이 설명의 대략적인 윤곽에 동의하면서도, 나는 사회 재생산 이론이 차별의 문제를 더 멀리 밀고 나가서 차별을 단지 노동력의 가격을 표현하는 노동 시장 수준만이 아니라 노동력의 가치를 생산하는 수준에 맞추도록 촉구한다고 생각한다.” 131 바타차리아에게 “노동계급의 차별은 체제의 세포 수준에서 생산되고 존속된다.” 132
사회 재생산 이론은 자본주의 하에서 지속되는 여성 차별을 설명하기 위해 나왔지만, 이제는 인종차별과 노동자들 사이의 다른 분열의 원천들을 이해하는 틀로 확장되고 있다. 킹스 칼리지에서 열린 학술대회 발표에서 바타차리아는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노동력은 자신만의 지속적인 제도적 형태를 창출하는, 분명하고도 믿을 만한 성별화되고 인종화된 사회적 관계의 체계를 통해서만 자본에게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사회 재생산 이론은 보여 준다.”133 바타차리아의 둘째 주장은 이렇다. “한 부문의 노동자들에게 가치의 하락은 언제나 모든 부문에 충격을 주는데, 일부 노동자들의 저임금 덕분에 자본은 합리화할 수 있고 또 모든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을 받는 노동자들의 비하된 사회 재생산은 모두에게 저하된 임금 체제를 구축하는 것을 돕는다.” 이는 모든 노동자들의 “필수적 필요”를 하락시킬 수 있으며 따라서 모든 노동자들의 노동력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 134 다른 곳에서 바타차리아는 계급 투쟁의 수준이 노동력 가치의 주요 결정 요인이라고 말한다.
바타차리아는 아일랜드와 영국의 노동자에 관한 마르크스의 글에서 특정 측면에 크게 의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첫째, 어떤 노동자들에게 “필수적 욕구”는 민족적 차이에 기반해 다른 민족 노동자들의 그것과 다를 수 있다. “영국 노동자와 직접 대비되는 아일랜드 노동자는 마르크스에 따르면 서로 다른 생산을 구현한다. 아일랜드 노동자는 자본과의 교환에서 ‘최소한의 동물적인 욕구와 생활 수단’을 받아들인 ‘임금 노동의 수준’에 있기 때문이다.”분명 마르크스는 아일랜드 노동자의 노동력 가치가 민족 때문에 영국 노동자들이 받는 것보다 낮게 유지된다고 믿지는 않았다. 그보다 그것은 계급 투쟁의 결과이거나 계급 투쟁이 부재한 결과였고, 자본 전체에 맞서 아일랜드 노동자와 노동계급 이익의 공통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던 것은 영국 노동자들이었다. 135
136 , 노동력 가치의 형성에서 민족적 차이가 미치는 구실에 대한 많은 복잡한 쟁점들을 제기한다. 이 설명에서는 인종차별적 이데올로기 형성에서 지배계급의 구실과 인종차별로 분열시키는 데서 국가의 구실과 같은 다른 요인들은 빠져 있다.
이 설명은 노동력 가치의 형성, 노동력 가치에 미치는 파업의 영향마르크스는 지크프리트 마이어와 아우구스트 포크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영국과 아일랜드 노동자 사이의 적대감이 어떻게 생기는지를 설명한다.
적대감은 언론, 설교단, 만화지, 요컨대 지배계급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통해 인위적으로 유지되고 강화된다. 이 적대감은 영국 노동계급이 조직을 갖고 있음에도 무기력한 비밀이다. 이것이 자본가 계급이 권력을 유지하는 비밀이다. 그리고 자본가 계급은 이를 꽤 잘 알고 있다. 137
138 인종차별을 촉진하는 지배계급의 구실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인종차별을 노동계급의 책임으로 보는 견해에 문을 열어 준다. 139
이는 마르크스의 시대 이전에도 진실이었고, 북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에서 플랜테이션 노예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인종차별 이데올로기가 발전한 이후에도 줄곧 진실이었다. 오늘날은 설교단은 아니지만 대중 매체가 지배계급이 촉진하는 이데올로기적 논쟁의 일부로서 인종차별 사상을 적극 확산시키는 데 필수적인 구실을 한다. 예컨대 이슬람과 무슬림, 이주 노동자, 난민과 난민 신청자, 다시 말해 사회에서 가장 최근에 희생양이 된 어떤 집단이든 악마화한다.바타차리아가 설명에서 빠뜨린 두 번째 측면은 국가의 구실이다. 자본주의 국가는 국경 바깥에서 노동자들을 활발히 모집하면서도 이민법, 이민 쿼터제, 시민권 취득 조건을 통해 이주 노동자의 이동을 통제할 수 있다. 필 마플리트는 미국 자본이 이주 노동에 대해 취하는 모순적 접근법을 지적한다.
미등록 이주민들은 미국 자본주의에 필수적이다. 그들은 또한 [이주민-번역자] 추방 활동을 떠받치는 데 이데올로기적으로 동원되며, 보수적 민족주의와 오늘날 ‘대안 우파’와 비밀스러운 파시스트 조류의 레퍼토리가 돼 왔다. 이는 근대적 국민국가가 출현한 이래 분명한 모순을 반영한다. 노동계급의 착취 양상을 형성하는 것은 이윤(“시장”) 추구다. 동시에 국민국가에는 포섭과 배제의 개념에 근거해 소속을 나타낼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 140하지만 바타차리아가 주장한, 한 민족의 노동자들이 다른 민족의 노동자들보다 더 낮은 “필수적 욕구”를 갖게 되는 것을 설명하려면 인종차별 사상뿐 아니라 국가의 구실을 중요하게 봐야 한다. 짐 크로 법은 19세기 말 미국 남부 주들에서 인종차별적 분리를 제도화했고, 이는 남부의 흑인 노동자가 백인 노동자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게 했지만 둘 모두 북부의 흑인과 백인 노동자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게 했다. 비슷하게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인종-번역자] 분리가 발전한 한 가지 동력은 흑인 남아공인이 농부나 노동자로서 경쟁할 능력을 제한할 필요성 때문이었다. 그 결과 사회적으로 인정된 흑인과 백인 노동자의 필요에 막대한 격차가 생겼지만, 이는 경제·정치·이데올로기 과정들의 총체적 효과였다.
142 뒤따른 생활 수준 하락의 주요 원인은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노동자들에게 노동당의 소득 정책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했고, 결정적 순간에 파업이 파괴되도록 조장했기 때문이었다. 143 [영국의 극우 정당-번역자] 국민전선의 부흥이 추동한 인종차별의 증가가 사회에 영향을 끼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는 생활 수준을 낮추는 주요 메커니즘은 아니었다.
다른 상황에서 이주 노동은 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영국의 전후 호황 때 이주 노동자들이 엄청나게 유입됐다. 그러나 임금이나 생활 수준이 전반적 하락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1974~1979년 노동당 정부가 집권할 때까지 계속 상승했다.144 EU의 노동에 관한 최근 조사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영국에서 일하는 EU 시민권자들 약 360만~380만 명의 압도 다수는 숙련직에서 일한다. 학위나 이에 상당하는 자격이 있어야 하는 ‘고숙련직’에서 일하는 이들도 53만 7000명이다.” 145 산업의 특정 부문들은 저임금 노동자의 유입에 의존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저임금 이주 노동자들에 관한 주장은 저임금을 주고, 열악한 노동 조건을 만들어내며, 부실한 주택을 공급하는 등에 책임이 있는 자들, 즉 먼저 이주 노동자들을 활발히 모집하는 자본가 계급에게 초점을 맞추지 못하게 하는 구실을 한다.
영국에서 교육과 의료 서비스에 종사하기 위해 모집된 교사와 의사 같은 숙련 노동은, 비록 그들의 초기 재생산 비용이 [영국이 아닌-번역자] 다른 곳에서 지불됐고 영국보다 낮았을 테지만, 임금의 하락을 초래하지는 않았다.‘Marx is Muss 2018’에서 바타차리아는 마르크스에게 (민족 차별을 제외하고) 차별 이론은 없으며 차별과 착취 둘 모두 분열을 초래한다고 자신의 주장을 요약했다. 차별은 남성과 여성을, 비성소수자와 성소수자를 분열시킨다. 여성이라는 존재가 무슬림과 저절로 연대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며, 무슬림과 흑인, 게이와 트랜스젠더 사이의 연대도 마찬가지다.
146 다시 말해, 착취는 모든 형태의 차별의 주춧돌이다.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계급 사회에서 가족의 종속적 성격에 대해 꽤 명쾌하게 지적했다. “처음에는 유일한 사회적 관계였던 가족은 나중에 증가된 욕구가 새로운 사회관계를 낳고, 증가된 인구가 새로운 욕구를 낳으면서 종속적인 것으로 전락했다.” 147
하지만 마르크스에게는 차별과 착취 사이의 관계에 관한 입장이 있었다. 국제노동자협회를 위해 쓴 “1864년 10월 규약”에서 마르크스는 “노동하는 인간이 노동 수단(즉, 삶의 원천)의 독점자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되는 것이 모든 형태의 노예 상태, 모든 사회적 비참, 정신적 비하, 정치적 종속성의 기초를 이룬다” 하고 쓴다.148 이는 좌파가 모든 형태의 차별을 무시한다는 뜻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권력 장악과 모든 착취의 종식을 위한 혁명적 투쟁의 일부로서 노동자 운동이 차별의 모든 현상에 맞서 싸워야만 한다는 것이다. 1907년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제2인터내셔널 대회는 이주 노동자에 관한 의제를 검토했고 주요 요구를 채택했는데, 이것들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유의미할 수 있다. 국경을 개방하고, 나라 안에 머무를 권리와 [내국인과-번역자] 동등한 경제·사회·정치적 권리를 바탕으로 민족에 기초한 모든 제약을 끝내라는 것이다. 149 또는 지도적인 독일 혁명가였던 카를 리프크네히트가 다음과 같이 말했듯이. “강제 추방이라는 다모클레스의 검 150 을 끝내버리자!” 151
같은 “규약”에서 마르크스는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정치적 투쟁은 생산수단에 대한 통제에 도전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주장한다. “그러므로 노동계급의 경제적 해방은 모든 정치적 운동이 그 수단으로써 종속돼야 할 위대한 목적이다.”결론
사회 재생산 이론은 교차성 이론에서 일보 전진해 여성 차별을 이해하기 위해 마르크스와 《자본론》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보걸은 여성의 노동과 관련해 자본의 모순적 지위에 대한 분석을 제공하지만, 모든 계급 사회에서의 임신과 출산의 성격에 대한 가정과 엥겔스를 무시하는 것에는 약점이 존재한다. 동등한 권리와 다계급 여성운동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노동계급 여성의 이익을 사회의 다른 계급 세력에 종속시키는 것으로 이어진다.
바타차리아 식의 사회 재생산 이론은 결국 노동력 재생산을 생산과 같은 수준에 놓게 되고, 자본-노동 관계에서 진정한 세력 균형을 모호하게 만들며 차별이 착취에 종속돼 있는 관계라는 점을 흐린다. 동시에, 그는 생산 지점에서 조직된 노동자들의 힘을 작업장 바깥의 사회 운동과 비교해 그 의미를 약화시킨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사회 운동을 진지하게 대할 필요가 있다는 그의 주장(그리고 다른 이들이 하는 비슷한 주장)은 사회의 어디에 권력이 있냐는 진정한 논쟁을 가린다. 인종차별에 대한 분석은 취약할 뿐 아니라 다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폭넓은 저작에 거의 기여하지 않는다.
152 사회 재생산 이론에 이끌리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론》을 넘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다른 저작들을 볼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계급 투쟁과 착취와 차별 사이의 관계를 이해할 때 모호함, 즉 마르크스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던 모호함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된다.
사회 재생산 이론은 오랫동안 마르크스주의 도구함에 있었던 또 다른 도구였고,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우리에게 이미 물려 준 다른 도구들을 약화시키거나 대신하는 데 사용되지 않는 한 계속 도구로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엥겔스의 다음과 같은 주장에 기반할 필요가 있다. “여성해방의 첫째 조건은 여성 전체가 사회적 노동에 복귀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 또한 일부일처제 가족이 사회의 경제적 단위가 되지 않아야 한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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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Sheila McGregor, ‘Social reproduction theory: back to (which) Marx?’, International Socialism 160
↩
- 이 글은 광범한 토론의 산물이다. 특히 수 콜드웰, 알렉스 캘리니코스, 조셉 추나라, 케빈 코어, 개러스 젱킨스, 폴크하르트 모슬러, 로지 뤼닝, 커밀라 로일에게 대단히 감사하다. ↩
- Vogel, 2017, px. ↩
- 수전 퍼거슨은 교차성 페미니스트들을 두 집단으로 나눈다. 총체성 내에서 차별들이 구성됐다고 보는 이들과 차별이 서로 맞물린다고 보지만 총체성 내에 내재돼 있다고 보지 않는 이들이다—Ferguson, 2016. 내가 보기에, 첫째 집단에게도 자본주의 체제를 이해하는 데서 차별의 핵심 동인에 관한 모호함이 여전히 존재한다. ↩
- 특권 이론과 교차성 이론에 관한 완전한 분석으로는 Choonara and Prasad, 2014를 보시오. ↩
- 데이비드 맥낼리는 사회 재생산 이론의 발전을 “자본주의 사회 내의 여러 차별들에 관한 역사 유물론적 이론에 관심 있는 이들을 위한 가장 유망한 관점”이라고 본다—McNally, 2017, p94. ↩
- 페미니즘의 “물결”을 언급하는 것이 관행이다. 내가 보기에 이는 여러 운동들 사이의 진정한 차이를 뭉개는 것으로 이어진다. 여성해방운동 혹은 “제2물결 페미니즘”이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의 일부로 간주됐던 것과는 달리 주류 여성참정권 운동 혹은 “제1물결 페미니즘”은 자본주의를 타도하려는 운동이 아니었다. “물결”이라는 용어는 계급의 중심성과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을 사라지게 만드는 구실만 하며, 여성운동이 마치 등장했다가 해안에 부딪혀 사라질 파도와 같다는 인상을 준다. ↩
- Vogel, 2014. 원래 1983년에 출판된 이 책은 수전 퍼거슨과 데이비드 맥낼리의 서문과 함께 재출판됐다. ↩
- Lebowitz, 2003; Bhattacharya, 2017a, b and c. ↩
- 바타차리아는 베를린에서 열린 ‘Marx is Muss 2018’에서 현재 투쟁들의 성격에서 제기되는 사회 재생산 이론에 대한 광범한 관심을 설명했다. 강연 영상은 [‘Marx is Muss 2018’ 개최 단체인-번역자] 마르크스21 웹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www.marx21.de/das-war-marx-is-muss-2018-videos/를 보시오. ↩
- Fine, 2017 ↩
- Bhattacharya, 2017b. 플루토 출판사는 바타차리아와 퍼거슨이 편집한 새 책 《사회 재생산 이론의 지도를 그리기》가 출간될 것이라 발표했다. ↩
- Foster and Clark, 2018 ↩
- Barrett, 1980, pp258-259; Cliff, 1984, chapters 10 and 11; Mitchell, 1971, chapter 10; Rowbotham, 1977, postscript를 보시오. ↩
- . Bhattacharya, 2017b, p6. ↩
- Fine, 2017. ↩
- Harmann, 1979; Mitchell, 1971. ↩
- Brenner and Ramas, 1984 (reprinted in Brenner, 2000); Barrett, 1980. 이는 배럿의 생각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지만, 이 글의 목적상 브레너와 라마스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
- Brenner and Ramas, in Brenner, 2000, pp27-32. ↩
- German, 1989, p40. Cliff, 1984, Harman, 1984, McGregor, 2013과 Orr, 2015도 보시오. 가족과 여성 차별에 대한 이해가 독일 혁명가 클라라 체트킨의 글, 볼셰비키당의 실천, 1917년 이후 러시아의 초기 혁명 정부의 활동을 뒷받침했다. ↩
- Brenner and Ramas, 1984, reprinted in Brenner, 2000, p27. 생산력의 변화가 가족에 끼치는 영향에 관해 브레너와 라마스가 언급한 것은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다. 마찬가지로 1984년에 쓴 크리스 하먼의 분석을 보시오. ↩
- Vogel, 2014, p144. ↩
- Bruegel, 1978. 노동계급 가족이 노동계급의 재생산을 조직하는 유일한 방식이 아니라고 비슷하게 주장한 저먼과 하먼이 참조한 기준이 바로 브뤼겔의 분석이었다. ↩
- Vogel, 2014, p145. ↩
- Gimenez, 2005, p19. 기메네즈는 무엇보다도 엥겔스를 인용해서 “양식”이라는 용어 사용을 정당화하며 엥겔스와 비슷한 방식으로 그 용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과거의 다른 이들은 여성 차별을 분석하는 “이중체계”를 정당화하기 위해 엥겔스가 언급한 재생산양식을 사용해 왔다. 하트먼이 이렇게 사용한 것에 대한 비판으로는 Harman, 1984를 보시오. ↩
- Gimenez, 2005, p20. ↩
- Gimenez, 2005, p20. 이는 바타차리아와 리보위츠의 견해와 반대되는 것이다. 이후의 논의를 보시오. ↩
- Harman, 1984, p9. ↩
- Brenner and Ramas, 1984, reprinted in Brenner 2000, p29. ↩
- 이 과정에 대한 더 상세한 분석으로는 German, 1989, part two를 보시오. ↩
- 브뤼겔도 같은 지적을 한다—Bruegel, 1978. ↩
- Brenner and Ramas, 1984, in Brenner, 2000, p29. ↩
- Harman, 1984, p10. 모든 가족 구성원들을 노동 인구로 흡수하여 가능해진 잉여가치 증가에 관한 마르크스의 논평도 보시오—Marx, 1976, chapter 15, section three, p518. ↩
- Vogel, 2014, pp161-162. 축적과 사회 재생산의 영향에 대한 더 많은 논의로 Vogel, 2014, pp159-161도 보시오. ↩
- 간병인, 간호사 등이 대개 임금 노동자로서 사람들의 집에서 일하기 때문에, 이는 복잡한 영역이다. ↩
- Moody, 2017, p20. 무디의 책에 있는 이 구절에 주목할 수 있게 해준 개러스 젱킨스에게 감사한다. ↩
- Vogel, 2014, p21. 그릇되게, 보걸은 단지 자본주의만이 아니라 모든 계급 사회를 언급한다. ↩
- Vogel, 2014, p15. 어떤 때에는 보걸이 144쪽에서처럼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하고, 다른 때에는 모든 계급 사회를 언급하는 듯하다. ↩
- Vogel, 2014, p152. ↩
- Ferguson, 2008, p50. ↩
- Vogel, 2014, p65. ↩
- Engels, 1884. 보걸이 엥겔스를 다루는 것에 관한 논의는 Ginsburgh, 2014를, 엥겔스에 관한 Brown, 2013에 관한 논의는 McGregor, 2015를 보시오. ↩
- 패디 퀵은 계급 사회 이전과 계급 사회를 구분하지만 보걸은 자신의 견해를 밝히지 않는다—Vogel, 2014, p150, footnote 18. ↩
- 엥겔스의 자료 중 많은 것이 구식인데, 여성과 남성 사이의 “자연스런” 분업에 대한 이해도 그렇다. 하지만 초기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의 관계는 평등주의적이었으며 잉여 생산에 대한 통제가 여성의 종속으로 이어졌다고 본 것은 옳다. 하먼은 인류학자 엘리너 버크 리콕과 고고학자 고든 차일드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작업 등의 풍부한 자료에 기초해 여성 차별의 기원을 설명한다. 하먼의 분석은 여성 차별의 출현과 엥겔스가 제시한 설명의 강점을 이해하는 데 좋은 출발점이다 — Harman, 1994. 이와 반대로, 여성 차별의 원인을 생물학적 재생산 능력에서 찾으면 여성 차별에 도전하는 것은 생산 영역을 무시한 채 사회에서 여성의 재생산적 구실에 도전하는 것이라는 견해로 이어질 수 있다. ↩
- Vogel, 2014, p150. 훌륭한 활동가였을 듯한 패디 퀵은 분석에서는 분명하게 마오쩌둥주의자였다. Quick, 1977을 보시오. ↩
- Vogel, 2014, p93. ↩
- Vogel, 2014, p79, 강조는 나의 것. ↩
- 이는 퀵과 보걸 둘 모두의 많은 구절에서 자본주의를 언급하는 건지 아니면 계급 사회 일반을 언급하는 건지 명확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 준다. ↩
- 이는 린다 J 니컬슨이 《위민즈 리뷰 오브 북스》The Women’s Review of Books에 쓴 보걸의 책에 대한 서평에서 제기한 의견이다—Nicholson, 1984. 브레너의 서평도 보라—Brenner, 1984. 보걸의 접근법은, 그 자신이 “가사노동에 관한 재고”(Vogel, 2014, p187의 부록)에서 설명하듯, 루이 알튀세르의 마르크스 이해에 기초해 형성됐다. ↩
- Engels, 1876. ↩
- 헤더 브라운은 이를 상세히 논의한다. Brown, 2013, pp17-27을 보시오. ↩
- Marx, 1976, p283. ↩
- Vogel, 2014, p147. ↩
- 엥겔만은 이렇게도 언급한다. “사고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한 내과 의사가 내게 말해 주길 캐나다 인디언과 함께 8년을 거주하는 동안 그는 분만 중 어떤 사고도 알지 못했고 누가 죽었다는 것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3년간 오리건 인디언과 살았던 또 다른 의사는 그 시기에 어떤 이상 사례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고, 점막 파열보다 더한 심각한 수술을 해달라고 요청받아본 적이 없었다.”—Engelmann, 1883, p8. ↩
- 보걸은 그 자신이 오직 계급 사회만 언급하고 있다고 반박할 수 있겠지만, 6장 “엥겔스: 결함 있는 정식화”에서 엥겔스의 설명을 파기해 독자에게 계급 사회 이전에 대한 설명은 없는 채로 남겨 놓는다—Vogel, 2014. ↩
- “의학적 예방은 최소한으로 이뤄졌다. 어머니가 출산할 때에는 사냥을 하지 않거나 이동 중일 가능성이 높았다. 임신 중에도 활동은 줄어들지 않는다. 출산은 쉽게 이뤄졌고, 합병증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 이동 중에 출산이 이뤄진다 할지라도, 그는 이동을 계속할 것이다.”—Turnbull, 1965, p129. ↩
- Vogel, 2014, p153. ↩
- Davis, 1981, p9. ↩
- Davis, 1981, p12. 카리브해 지역에서의 경험은 달랐는데 거기서는 성별 분업이 꽤 광범하게 있었다. 이 점을 알려준 조셉 추나라에게 감사하다. ↩
- Davis, 1981, p10. ↩
- Davis, 1981, p10. ↩
- 임신한 노예들을 때리는 것을 쉽게 하기 위해 구멍을 파고 노예들을 그 위에 눕도록 했다. Davis, 1981, p11. ↩
- Davis, 1981, p10. ↩
- 노예 소유주의 아내들은 가족을 통해 차별받았으며 노예 체제를 통해 이득도 봤다. ↩
- 크리스 하먼은 독신 여성과 그 자녀들이 자라더라도 이 사회 전반에 만연한 차별의 효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Harman, 1984를 보시오. ↩
- 브레너와 라마스는 이렇게 주장한다. Brenner, 2000, p28을 보시오. ↩
- Bennett, 1996 ↩
- Bennett, 1996, p26. ↩
- Bennett, 1996, p34. ↩
- Bennett, 1996, p149. ↩
- Vogel, 2014, pp169-170. ↩
- Vogel, 2014, p172. ↩
- Vogel, 2014, p181. 불행히도 보걸이 알바니아, 옛 소련, 중국, 쿠바처럼 자본과 노동, 남성과 여성 사이의 불평등이 있었고 소수민족의 민주적 권리가 없었던 곳이 사회주의 사회였다고 생각한 사실 때문에 책 가운데 이 부분이 다소 망쳐졌다. ↩
- 클라라 체트킨, 로자 룩셈부르크, 블라디미르 레닌, 레온 트로츠키 등이 그랬듯 말이다. 그런데 퀵도 사회적 생산에의 참여가 노동계급 여성에게 노동계급의 일부로서 해방을 위해 싸울 수 있는 사회적 영향력을 제공한다고 보지 않는다. Quick, 1977, p48. ↩
- Vogel, 2014, pp174-175. ↩
- Vogel, 2014, p176. ↩
- 보걸은 평등권 수준에서 불평등이 줄어드는 것이 어떻게 계급 불평등을 강화시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여성 차별을 강화시키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Vogel, 2014, p172. ↩
- Vogel, 2014, p176. ↩
- Lebowitz, 2003 [《자본론을 넘어서》, 1999, 백의. 이하 꺽쇠 괄호 안 숫자는 한글 번역본 페이지]. ↩
- 리보위츠는 마이클 부라보이를 인용한다. “두 가지 변칙이 마르크스주의를 반박하며 정면으로 맞선다. 자본주의의 내구성과 노동계급의 수동성이다.”. Lebowitz, 2003, p17[26]. 비달이 “무덤을 파는 자 테제”라고 부른 것에 관한 논의는 Vidal, 2018을 보시오. 리보위츠나 바타차리아 둘 모두 미국에서 계급투쟁의 하락에 관한 역사적인 분석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
- Lebowitz, 2003, p61 [228]. ↩
- Lebowitz, 2003, p161. ↩
- Lebowitz, 2003, p63 [231]. 강조는 원문. 왜 지구상의 큰 굶주림이 혁명적 변화로 아직 이어지지 않았는가를 물음으로써 이 대안적 정식화에 답하고자 한다. ↩
- Marx, 1864. ↩
- Marx, 1852. 흔히 있는 일이지만 독일어 원본의 “Menschen”은 [영어 원문에서-번역자] “men”으로 번역되는데, “people”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
- Vidal, 2018. ↩
- Lebowitz, 2003, pp24-44. ↩
- Lebowitz, 2003, p40 [64]. Marx, 1976, p655를 언급. ↩
- Lebowitz, 2003, p40 [64]. ↩
- Lebowitz, 2003, p44 [71]. ↩
- Lebowitz, 2003, p73 [112]. ↩
- Lebowitz, 2003, p43. 사회적으로 필수적인 필요를 어느 순간에 알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변함없이 유지된다는 뜻은 아니다. 이는 마르크스가 “역사적” 필요를 언급할 때의 분명한 요점이다. ↩
- Marx, 1865, p26. ↩
- Marx, 1865, p25. ↩
- Marx, 1865, p30. ↩
- Lebowitz, 2003, p75 [112]. ↩
- 보걸은 가사노동의 성격을 논할 때 이 구분을 언급한다—Vogel, 2014, p66. ↩
- Vogel, 2017, pxi. ↩
- Mohandesi and Teitelman, 2017, pp37-67. ↩
- Ferguson, 2017, pp112-130. 하지만 나는 퍼거슨이 소비 사회의 영향과 시장이 학교에서의 가르침과 학습에 미치는 영향으로 인해 어린이들이 점점 울타리 안에 가둬진다는 점을 소홀히 다룬다고 생각한다. ↩
- [역자 주] 유럽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극우 운동 중 하나다. 이 조직은 7년 전 프랑스에서 만들어졌고, 지금은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독일, 영국 등 많은 유럽 국가들에 지부를 두고 있다. 이들은 기독교도인 백인 유럽인들의 정체성과 문화가 이민과 이슬람화로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
- Bhattacharya, 2017c. ↩
- Bhattacharya, 2017c, p68. 여기서 바타차리아는 노예제 이래로 미국의 노동계급 운동을 괴롭혀 온 극심한 인종차별적 분열을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마찬가지로 인종차별에 시달려 온 영국에서도 노동조합 안에서 여성과 흑인, 아시아계 노동자들에 대한 태도와 그들의 대표성이 1950년대 이래로 변화해 왔다. Prasad, 2017을 보시오. ↩
- Bhattacharya, 2017c, p68와 p86. ↩
- Bhattacharya, 2017c, p68. ↩
- Bhattacharya, 2017c, p69. ↩
- Bhattacharya, 2017c, p69. ↩
- Bhattacharya, 2017c, p69. ↩
- Bhattacharya, 2017c, p82에서 인용. ↩
- Bhattacharya, 2017c, p86. ↩
- Marx, 1855. 이 점을 알려준 알렉스 캘리니코스에게 감사한다. ↩
- 이는 총리로서 마거릿 대처의 종말이 시작되는 또 다른 장점이 있었다. ↩
- Lebowitz, 2003, p188. ↩
- Luxemburg, 1906. ↩
- Lebowitz, 2003, pp189-196. 이 때문에 리보위츠는 노동자 국가에 이르는 혁명적 과정에 대한 논의를 포함하지 않은 채 노동자 국가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지를 논의했다. ↩
- Prasad, 2017. ↩
- Bhattacharya, 2017c, p86. ↩
- Bhattacharya, 2017c, p89. ↩
- [역자 주] 페기다는 서양의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이라는 의미로, 2014년 10월에 독일의 한 시위에서 시작된 이슬람의 폭력적 활동을 억제하는 것을 내건 극우 정치 단체와 그 활동을 의미한다. ↩
- Moody, 2017, p24. ↩
- Moody, 2017, pp25와 27. ↩
- Moody, 2017, p60. ↩
- Moody, 2017, p164와 5장. ↩
- 뉴욕 같은 곳에 호텔이 집중돼 있는 것은 노동자들에게 객관적으로 상당한 경제적 영향력을 제공한다. ↩
- Sherry, 2017, p75. ↩
- 지도적인 파업 참가자들이 쓴 파업에 관한 전반적인 분석으로는 Høgsbjerg, Hearn, Morelli and Royle, 2018을 보시오. ↩
- Arruzza, 2017, p194. ↩
- 〈가디언〉의 보도를 보시오—Topping, 2017. ↩
- Lenin, 1901. ↩
- Bhattacharya, 2017a. 이것은 저자가 영상 기록에서 녹취한 발표 내용이다. ↩
- Bhattacharya, 2017a. ↩
- Bhattacharya, 2017a. ↩
- Bhattacharya, 2017a. ↩
- Bhattacharya, 2017a. 아일랜드인과 “최소한의 동물적인 욕구”에 대한 마르크스의 문구는 Marx, 1973, p285에서 가져온 것이다. ↩
- Bhattacharya, 2017a. ↩
- Bhattacharya, 2017c, p87. ↩
- 이것은 내가 다루지 않은 쟁점이다. 이 쟁점에 관한 논의로는 Callinicos, 2014, pp197-198을 보시오. ↩
- Marx, 1870. ↩
- 바타차리아는 신자유주의의 영향에 대해 쓰면서 이런 점들 중 일부를 간접적으로 밝힌다—Bhattacharya, 2017c, p91. ↩
- 이는 바타차리아에게서 인용한 구절에 함축돼 있다. ↩
- Marfleet, 2018, p10. ↩
- 이 마지막 요점에 대해 알렉스 캘리니코스에게 감사하다. ↩
- 이는 독일에서도 진실인데, 폴크하르트 모슬러가 지적한 것이다. ↩
- Cliff, 1983. ↩
- 21세기 초에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인도에서 충원된 교사들은 임금과 노동조건에서 영국의 기존 교사들과 같았고 노동조합에도 가입했다. 이는 흑인 교사들이 일터에서 인종차별, 예컨대 승진 차별을 겪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
- O’Carroll, 2018. ↩
- Marx, 1864. 이 출처를 알려준 폴크하르트 모슬러에게 감사한다. ↩
- Marx and Engels, 1976, p48. ↩
- Marx, 1864. ↩
- Mosler, 2018, p12에서 인용. 번역은 나의 것. ↩
- [역자 주]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끈 이탈리아 파시스트 무장 부대. 제복으로 검은 셔츠를 입었고, 사회주의 단체를 파괴하기 위해 조직됐다. ↩
- Liebknecht, 1907. ↩
- Engels, 1884의 “The monogamous fami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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