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그린 뉴딜, 기후와 경제 위기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최근 전 세계적으로 ‘그린 뉴딜’Green New Deal 정책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미국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버니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 등 상원의원이 그린 뉴딜을 지지할 뿐 아니라 같은 민주당 하원의원이자 민주사회주의당DSA 당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가 그린 뉴딜 정책을 제시하면서 세간의 큰 관심을 받았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그린 뉴딜 정책을 통해 미국 정부가 교육·보건에서 적절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지구 온난화와 환경 파괴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영국 노동당도 2030년대까지 탄소배출 제로, 재생에너지에 대한 대규모 투자 등이 포함된 그린 뉴딜 정책을 발표했다.
그린 뉴딜에 대한 세계적 관심과 지지가 확산되는 가운데 한국의 정의당도 그린 뉴딜 지지 대열에 동참했다. 11월 8일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저탄소,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한다는 그린 뉴딜 정책을 정의당의 경제 정책으로 제시했다. 녹색당은 정의당보다 좀더 급진적인 대안을 밝혔다. 녹색당은 기후위기 시대를 돌파하는 새로운 기준으로 “GDP와 경제성장률, 1인당 국민총소득의 공허한 지표와 결별”하고 “온실가스 감축과 불평등 타파를 국가운영의 최우선 지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녹색당이 제시하는 구체적 대안으로 2030년까지 핵발전소 가동 중지 및 신속한 탈 석탄 시나리오 구축, OECD 수준의 복지 지출과 최저생계비 현실화, 2030년까지 보편적 기본소득 도입, 기후위기 시대에 대응하는 산업 전환 시나리오 구축, 생산자가 참여하는 순환경제 플랫폼 등이 있다.
그린 뉴딜 정책이 대중적 관심과 지지를 얻은 것은 기후 위기와 불평등의 심화라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2018년 10월에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특별보고서(이른바 “지구온난화 1.5°C 특별보고서”)가 경각심을 일으키는 촉매제가 됐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시대 이전의 평균 온도보다 기온이 1.5도 이상 상승하면 재앙에 가까운 변화가 찾아온다. 재앙을 막으려면 탄소 배출을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45퍼센트(2050년까지는 탄소배출 제로)를 줄여야 한다.
미국에서는 2017년에 결성된 젊은 세대가 주축이 된 단체 ‘썬 라이즈 운동’Sun Rise Movement이 기후변화를 경고하는 보고서를 제출했었다. 그런데도 별 반응이 없자 2018년 중간선거가 끝난 직후 썬 라이즈 운동은 미국 민주당 낸시 펠로시 의원 집무실을 점거했다. 또 영국에서는 ‘멸종 반란’ 운동이 일어나 올해 4월에 트라팔가 광장 등 런던 시내에서 거대한 시위를 조직한 바 있다. 이런 시위와 항의 행동들이 벌어진 이유는 국제적인 기후협약들이 실제로 기후 변화를 막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국제 기후협약들이 추진한 계획은 매우 온건했을 뿐 아니라 그조차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다. 사실 기후 변화를 초래한 주범은 이윤 추구를 위한 자본주의 체제이다. 그런데 국제 기후협약들은 탄소배출권을 사고 파는 시장적 방법을 통해 기후 변화를 억제한다는 계획을 세웠고, 이런 친 자본주의적 계획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불평등의 심화와 이에 대한 근본적 변화 열망도 그린 뉴딜이 인기를 얻은 이유다.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부자는 더 부자가 된 반면, 사회 저소득층의 일자리와 임금은 더 형편없는 수준으로 추락했다. 2018년 세계불평등 보고서를 보면, 1980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의 상위 1퍼센트의 수입은 전체 소득의 10퍼센트에서 20퍼센트로 증가했지만, 하위 50퍼센트는 같은 기간에 20퍼센트에서 13퍼센트로 감소했다.
그린 뉴딜 정책 대부분은 충분히 공감하고 지지할 만하다. 예를 들어 버니 샌더스는 일자리 2000만 개 창출과 재생에너지 전환, 2050년까지 탄소 배출 제로 등을 제시했다. 영국 노동당은 노동조합 설립을 보장하는 고임금 녹색 일자리로의 정의로운 전환과 단기간 내 화석연료의 사용 금지 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린 뉴딜 지지자들은 대체로 신재생 에너지와 친환경 산업에 대한 투자, ‘탄소 제로 경제’로의 전환, 대규모 정부 투자로 양질의 일자리 창출, 저소득층의 소득 증진, 사회정의 실현 등을 추구한다. 그린 뉴딜 정책에는 일자리, 노동조합 활동 권리, 보편적 주거와 보건의료 확대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처럼 그린 뉴딜 정책은 기성체제에 도전하는 급진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자나 트럼프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 민주당 주류 세력들조차 그린 뉴딜 정책에 반기를 들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1930년대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이래 처음으로 공식 정치에서 사회경제적 의제를 노동계급에게 유리하게 재설정하자는 시도가 벌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환영할 만하다.
재원 마련
하지만 그린 뉴딜 정책에는 몇 가지 약점이 있다.
3 그런데 현대화폐이론에는 두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
그린 뉴딜 정책이 내놓는 친환경 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하거나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 그린 뉴딜 지지자들은 정부가 많은 돈을 찍어 내면 이것이 마중물이 돼 경기를 활성화시킬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재원 조달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현대화폐이론’에 기초를 둔 것이다.4 정부의 화폐 발행만으로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첫째, 정부가 많은 화폐를 발행해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는 것은 가능할지라도 그 다음 번에 경기순환이 잘 이뤄져 산업 투자가 순조롭게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윤율이 하락한다면 자본가들은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은 결국 자본가들의 투자에 달려 있고, 자본가들의 투자는 이윤율의 등락에 의해 결정된다. 둘째, 앞의 것과 관련된 것으로, 정부의 초기 투자가 자본가들의 투자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한다면 정부가 발행한 막대한 화폐는 실물 경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물론 그린 뉴딜 지지자들은 누진세 강화나 부유세 등으로도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카시오는 최고소득세율을 70퍼센트 높이자고 주장하고, 엘리자베스 워런은 부유세를 메기자고 제안한다. 이런 정책으로 연간 2700억 달러 정도(약 322조 원)를 마련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세 불평등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가브리엘 주크만에 따르면, 워런이 내놓은 부유세 신설로 부자들의 자산 대비 조세 부담률이 3.2퍼센트에서 4.3퍼센트 증가하는 것은 맞지만 대다수 평범한 미국인들의 자산 대비 조세 부담률 7.2퍼센트보다 여전히 낮다. 또한 미국 그린 뉴딜 지지자들은 연간 7000억 달러(약 835조 원, 미국 GDP의 3.5퍼센트)에 달하는 국방비를 줄이자는 제안을 하지 않는다. 1930년대에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가 뉴딜 정책을 추진했지만 미국 경제는 공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1937~1938년에 미국 경제는 또 다시 심각한 위기에 접어들었다. 산업생산은 1929년 대공황 직후의 수준으로 하락했다. 이는 뉴딜 정책으로 자본가들의 투자 의욕을 높이지 못했음을 나타낸다. 미국 경제가 산업생산과 고용률 등에서 대공황으로부터 완전히 회복한 건 1941년, 즉 제2차세계대전에 뛰어들면서였다. 루스벨트의 뉴딜정책과 같은 경기부양책으로는 민간 자본가들의 수익률 수준을 회복시켜 주지 못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처럼 국가가 대부분의 경제를 장악하고 생산과 투자 등을 국가가 조직한 다음에야 대공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일찍이 국가가 민간자본을 대신해 생산과 투자를 대규모로 조직했던 독일과 일본은 1929년의 세계대공황에서 비교적 빨리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린 뉴딜 지지자들이 주장하듯 신재생 에너지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대규모로 만들려면 민간 투자 증가율이 지금 수준의 3배 이상은 돼야 한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이윤이 낮기 때문에 투자를 늘리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린 뉴딜 정책이 진정으로 효과를 내려면 투자와 생산 등에서 우선순위의 변화와 사회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가 동반돼야 한다.
이런 근본적인 변화를 이뤄내려면 기성체제의 유지에 긴밀한 이해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산업, 금융, 국방, 기성 정치권 등의 기득권 세력들에게 도전해야 하고, 이 사회의 생산과 분배의 우선순위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 이를 통해 환경 파괴와 기후 위기를 초래하는 생산방식을 변경해야 한다.
탈성장이냐 그린 뉴딜이냐?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대안이 그린 뉴딜이냐 아니면 탈성장Degrowth이냐 하는 쟁점이 존재한다.
7 따라서 이들은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만으로는 기후 변화를 막을 수 없고 생산과 소비 등 모든 영역에서의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만이 문제가 아니라 끊임없는 이윤 추구, 자원 개발이나 채굴 그 자체도 문제이며, 따라서 자본주의가 진정한 문제라고 주장한다.
탈성장론자들은 경제 발전 그 자체가 환경 재앙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경제 성장이 자본주의에서 핵심적 가치이기 때문에 이들은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그린 뉴딜 지지자들은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보다는 특정 형태의 자본주의, 즉 이윤 추구를 위해 환경을 도외시하는 자본주의가 문제이며, 환경을 보호하고 기후 재앙을 막을 수 있는 자본주의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그린 뉴딜을 주장하는 로버트 폴린은 환경을 파괴하고 기후 변화를 초래하는 것은 수익 추구를 극대화하는 금융화된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 본다. 따라서 그린 뉴딜 정책을 추구하면 자본주의에서도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한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과 함께 경제 성장도 이룩할 수 있다고 본다. 전 세계 GDP의 1.5-2퍼센트를 에너지 효율 향상과 재생에너지 확대에 투자하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투자는 전 세계 대중의 생활 수준을 높일 뿐 아니라 일자리도 창출하는 효과적인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폴린은 에너지 효율이 높은 산업과 재생 에너지 확대를 위해서는 산업 정책을 전환하면 되지 자본주의 체제의 전환이 필요하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폴린은 탈성장 주장이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기후 변화 반대 정책들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탈성장론자들은 향후 20년 동안 GDP를 10퍼센트 감소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2007~2009년의 경제 위기가 해마다 반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처방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매우 큰 충격을 미칠 것이다.
또한 폴린은 탈성장론자들이 이산화탄소 배출을 크게 줄이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단순 계산으로 보면 2015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32억 톤이었는데, GDP 10퍼센트 감축으로 기껏해야 3억 톤 정도만 줄일 수 있을 뿐이다. GDP를 10퍼센트 줄이기보다는 재생에너지 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늘리고, 화석연료 사용을 대폭 줄여야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45퍼센트 줄이고 2050년에는 탄소배출을 0퍼센트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탈성장론자인 마크 버튼과 피터 소머빌은 폴린이 기후 변화만 강조하고, 생물 다양성, 깨끗한 공기, 물, 살만한 도시, 사회적·국제적 평등을 부차적으로 본다고 지적한다. 즉 현재 인간의 자원 소모가 생태적 수용 능력의 한계를 벗어나고 있는 점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버튼과 소머빌은 폴린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화석연료 사용 감축과 재생 에너지 사용 확대와 경제 성장은 결코 양립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경제가 발전하면 탄소 배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선진국의 탄소 배출을 감축시켜도 풍선 효과처럼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에서 탄소 배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이들은 경제 성장 자체를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버튼과 소머빌은 역사적으로 재생에너지 확대가 화석연료 감소로 이어진 사례가 없다는 점도 지적한다. 재생에너지 사용이 늘면서 화석연료 사용도 늘었고, 현재와 같은 소비 수준으로 재생에너지를 충당하려면 재생에너지 활용이 18배나 증가해야 하는데, 현 상황은 이런 수준에는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재생에너지는 현재 화석연료에 대한 대체물이 아니라 보완물 기능을 할 뿐인 것이다. 그런데도 폴린의 정의로운 전환 프로젝트는 화석연료 산업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꼬집는다. 덴마크나 독일처럼 재생에너지를 개발하는 국가도 에너지 수요가 증가하면 화석연료(석탄 포함)를 증대시키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다. 현재의 재생에너지로는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평가와 전망
폴린은 금융화된 신자유주의 만이 아닌 자본주의 자체가 문제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고, 환경 친화적이고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 체제가 가능할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폴린의 대안은 기껏해야 사회민주주의적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폴린은 화석연료를 줄이기만 하면 경제성장은 좋은 효과를 낼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경제가 성장하면 희소자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이고, 그 수요에 대한 비용도 증가할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의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이윤에 압박을 가할 수밖에 없다. 결국 환경을 파괴하는 생산방법이 이윤추구에 유리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에서 친 환경적 생산 방식을 도입하는 것은 계속해서 걸려 넘어지게 된다. 폴린은 이런 점을 놓치고 있다.
현재와 같은 생산 방식에서 세계경제는 지구의 생물학적·물리적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글로벌생태발자국네트워크는 현재 우리는 지구의 생태계 재생 속도보다 1.7배 빠른 속도로 자연을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탈성장론자들은 세계경제의 수축이 필요하고, 빈민들이 큰 고통을 받지 않는 방식으로 이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세계경제의 수축을 민주적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탈성장론자들이 제시하는 대안은 지금보다 더 적은 생산과 소비다. 탈성장론자들은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개인적인 소비 패턴을 바꾸고 탄소 배출을 줄이는 생활을 영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전에는 프레온 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머리에 바르는 무스의 사용을 자제하라고 했다면 이제는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제품을 줄이고 자연 세제를 많이 사용하라는 것으로 바뀌었다. 탈성장론자들이 제시하는 대안은 자본주의 체제를 바꾸자는 것과 함께 결국 평범한 사람들이 현 수준의 소비조차 억제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문제도 동반한다.
이것은 두 가지 쟁점을 제기한다. 첫째, 개개인들이 일상 생활에서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고 이를 통해 환경단체에 일정 금액을 기부하는 행위는 물론 좋은 의도에 따른 것이겠지만, 이로 인해 자본주의 체제가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공상이다. 환경을 파괴하고 기후 변화를 촉진하는 주범은 이윤 추구를 우선적 목표로 삼고 있는 자본가들과 자본주의 체제이다. 그런데 개인들의 친환경 행위는 그 주범들에게 어떤 제약도 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이 사회가 이룩한 생산과 소비를 축소하는 것이 대안인가 하는 문제다. 이런 관점은 생산성의 증대나 경제 발전 그 자체가 문제라는 시각이다. 하지만 기술 발전과 생산성 증대로 인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인류가 지금까지 이룩한 발전을 통해 굶주림, 질병, 추위와 더위 등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높아졌다. 이런 지속가능한 발전을 통해 인류가 가진 잠재력을 더 개발해야 한다. 심지어 과학기술과 산업의 발전은 기후변화를 해결할 수단도 제공한다. 재생 가능 에너지와 효율적인 수송 수단을 발전시킨 것이 그런 사례들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 때문에 이런 발전과 잠재력이 온전히 발휘되지 못한다. 자본주의에서는 경제가 발전했지만 빈부격차도 함께 커졌고 과학기술이 발전했지만 인류가 모두 그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따라서 발전과 성장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발전과 성장이 문제다.
9 기본소득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경제성장을 계속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10 물론 기본소득의 취지는 공감하고, 지지를 보낼 만하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가 바뀌고 임금노동 체제가 폐지되는 상황이라면 굳이 기본소득이 필요할까? 그런 사회에서는 자본주의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필요를 위한 생산이 이뤄질 것이기 때문에 상품 구매를 위해 소득을 보장해 줘야 한다는 전제가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탈성장론자 중에는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 생산과 소비의 속도를 줄이게 되면 임금노동 체제도 변화를 겪을 것이고 이 때 임금노동 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다른 한편 그린 뉴딜이나 탈성장론 모두에게 공백으로 남아 있는 것은 오늘날의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기후 위기에 대한 대안을 누가 추진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는 환경을 파괴하고 기후 위기를 초래하는 것이 자본주의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분쇄하고 환경 친화적이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할 노동자 계급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에 반해 그린 뉴딜 지지자들은 정책 입안자들이 제대로 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탈성장론자들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책임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탈계급적 대안을 추구한다.
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에 대한 강조가 자칫 종말론적·파국론적 미래를 묘사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노동자 계급이 이윤 추구를 우선시하는 자본주의를 분쇄하고 인간의 필요를 중시하는 대안 사회를 건설한다면 지금의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생산을 위한 새로운 기술들이 많이 개발될 것이고, 이것이 기후 위기를 초래하는 탄소 배출을 크게 줄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발전된 문명을 수백 년 전으로 되돌리자는 것은 아니다. 이윤 때문에 사용되지 않았던 새 기술이나 기계류 등이 활용되면서 지구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는 방식의 생산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린 뉴딜 주장이나 탈성장론 모두 현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고발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지적에는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다. 그린 뉴딜론자들이나 탈성장론자들이 제시하는 주장들에는 충분히 공감하고 지지할 만한 요소들이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 그리고 그 대안을 이루기 위해 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토론과 논쟁이 필요하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최근 전 지구적으로 나타나는 기상 이변이 사회주의가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를 보탠다고 생각한다.
주
- 영국노동당은 2019년 11월 21일 ‘희망을 위한 선언’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GMB 노조(영국의 산별 노동조합으로 조합원이 60만 명이고, 여러 산업에 분포하고 있지만 특히 육체노동 분야 및 지방정부, 의료 서비스 부문에 많다)의 반대로 ‘203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라는 공약에서 후퇴해 “2030년까지 탄소배출을 실질적으로 대부분 줄이고, 2030년대까지 영국을 탄소배출 제로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
- 녹색당 2019. ↩
- 현대화폐이론에 대해서는 이정구(2019)를 참고하시오. ↩
- 정부가 화폐 발행을 늘리면 대체로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만 이것이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화폐의 유통속도가 하락하거나 화폐 축장이 벌어지면 오히려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수도 있다. 최근 양적 완화로 시중에 화폐량이 증가했음에도 실물 생산과 판매가 둔화하면서 오히려 디플레이션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
- 하먼 2009을 참고하시오. ↩
- 그린 뉴딜론자와 탈성장론자 사이의 차이와 특히 폴린과 버튼·솜버밀의 논쟁에 대해서는 Pollin 2018; Pollin 2019a; Pollin 2019b; Burton & Somerville 2019; Seaton 2019를 참고했다. ↩
- 이런 입장에 대한 비판적 평가는 바스케터 2019를 참고하시오. ↩
- 정의당이 그린 뉴딜 정책의 구체적 내용을 밝히지 않아 아직 분명하지는 않지만 “저탄소,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그린 뉴딜 정책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반면 녹색당은 “GDP와의 결별”을 주장하고 있어 탈성장론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
- 김형수 2019. ↩
- 김종철 2013. ↩
참고 문헌
김종철 2013, “좌담: 모두에게 존엄과 자유를 – 기본소득, 왜 필요한가”, 《녹색평론》 통권 제131호.
김형수 2019, “[칼럼] 그린뉴딜과 탈성장, 한 길인가 분기점인가?”, 녹색전환연구소.
녹색당 2019, “기후위기 돌파할 녹색당의 그린뉴딜 선언”, 2019년 11월 9일 녹색당 정책대회 자료.
바스케터, 사이먼 2019, “’착한 성장’은 불가능할까?”, 〈노동자 연대〉 2019년 11월 8일자.
이정구 2019, 현대화폐이론 비판 – 정부는 정말 화수분인가?, 《마르크스21》 30호, 2019년 5-6월호, 책갈피.
하먼, 크리스 2009, 1930년대 대공황과 오늘날의 위기, 《21세기 대공황과 마르크스주의》, 정성진 엮음, 책갈피.
Burton, Mark & Somerville, Peter 2019, “Degrowth: A defence”, New Left Review 115.
Pollin, Robert 2019a, “Advancing a viable global climate stabiliztion profect: Degrowth versus the Green New Deal”, Review of radical political economics 2019 vol 51(2).
Pollin, Robert 2019b, “Degrowth versus Green New Deal: Response to Julet Schor and Andrew Jorgenson”, Review of radical political economics 2019 vol 51(2).
Pollin, Robert 2018, “De-growth vs a green new deal”, New Left Review 115.
Seaton, Lola 2019, “Green Questions”, New Left Review 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