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홍콩 항쟁을 둘러싼 한국 진보·좌파 내 논점들
1 그 때문에 시진핑은 홍콩 항쟁이 중국 남부 지역, 특히 제조업 중심지인 광저우와 선전의 노동자들에게로 번지지 않을까 겁을 먹었을 것이다.
2019년 6월 송환법 개정 거부 운동에서 시작된 홍콩 항쟁이 송환법을 철회시키고 구의회 선거에서 대승을 거두며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있다. 지금의 홍콩 상황에 대해 어느 누구도 끝났다고 여기지 않는다. 홍콩 저항 세력들은 다섯 가지 요구를 모두 쟁취할 때까지 항쟁을 끝내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시진핑과 캐리 람도 저항 세력들을 꺾을 기회를 엿보며 시간을 벌고 있다. 지난 11월 28일 중국 광둥성 마오밍 시에서 벌어진 시위에서 참가자들은 홍콩의 인기 있는 구호를 본따 “마오밍 광복, 시대혁명”을 외쳤다.2 아마도 변혁당의 회원들 또는 지지자들의 관심사 때문에 이때라도 다루지 않을 수 없었던 듯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중국 사회의 성격에 대한 문제에서는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범자주파도 홍콩 항쟁에 관심이 높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2019년 12월 15일 ‘소통과혁신연구소’가 주최한 ‘중국특색사회주의와 조선 “우리식 사회주의”’에 참가한 청중들도 북한보다는 중국의 사회 성격과 홍콩 상황에 관심을 크게 나타냈다.
홍콩 항쟁은 한국의 진보·좌파들에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큰 영향을 미쳤다. 단적인 사례로 변혁당은 홍콩 항쟁이 벌어지는 6개월 동안 학생회원의 입장 말고는 단체의 공식 입장이 나오지 않다가, 다행스럽게도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파가 압승을 거둔 뒤에 홍콩 항쟁을 지지하는 글을 〈변혁정치〉에 실었다.그런데 만사가 그렇듯이 뒤늦은 대응보다 잘못된 입장이 문제를 더 키울 뿐 아니라 사태를 더 꼬이게 만드는 법이다. 그러면 홍콩 항쟁에 대한 한국의 진보·좌파들의 잘못된 입장을 살펴보자.
홍콩 항쟁이 친서방 운동이라는 주장
3 고 적고 있다. 김정호가 바라보는 ‘홍콩 사태’를 요약하면, 슈퍼 강대국인 “미국이 단일 패권을 유지하는 데서 최대 걸림돌이 바로 중국”인데, 미국은 홍콩을 통해 중국을 약화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홍콩의 시위대 편에 서면 이것이 미국의 책동을 앞장서서 지지하는 셈이기 때문에 “홍콩 사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면서 친시위대 입장에서 중국 정부에 가장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노동자 연대〉를 비판하고 있다. 4
대체로 중국이 모종의 사회주의(소위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고 여기는 단체들 대부분은 홍콩 항쟁이 친서방 운동이고 심지어 항쟁 세력들은 미국의 사주를 받고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민플러스〉에 실린 김정호 씨(이하 존칭 생략)의 글이다. 김정호는 “미국의 개입과 책동이야말로 금번 홍콩 사태를 야기한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그 때문에 ‘미국’이라는 요인은 홍콩 사태의 본질을 규정한다”5 김정호는 이런 사실은 언급조차 하지 않으면서 홍콩 시위대 편을 드는 것은 미국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것은 전형적인 진영 논리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두 제국주의 초강대국들의 갈등이다. 따라서 어느 편도 지지하지 않고 제3의 대안, 예를 들면 미국과 중국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을 추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김정호의 머릿속에는 이런 가능성이 스며들 여지가 없는 듯하다.
우선 사실관계부터 따져 보자. 세계 패권을 둘러싸고 중국과 미국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중국을 비판하면 미국 편을 드는 것인가? 이런 논리는 전형적인 흑백 논리다. 〈노동자 연대〉는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서명한 ‘홍콩인권민주법’이 홍콩 항쟁과 무관할 뿐 아니라 “중국과의 제국주의적 경쟁에서 유리하게 이용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홍콩의 시위대들이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사주를 받고 있는가 하는 것도 논점이다. 김정호는 “홍콩에서 여러 해 동안 경영해 온 CIA는 이미 홍콩 사법부, 교과서, 금융 그리고 독점과두세력에 침투해 있”으면서 시위대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시위 주모자들이 미국 영사관 인물과 만난 것을 예로 들었다. 물론 미국은 홍콩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비밀 스파이 활동을 벌여 왔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비밀 스파이 활동을 하는 자가 시위대 내부에 있다고 해서 시위대 전체가 미국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데모시스토당의 조슈아 웡은 미국 하원의장을 만나 미국이 홍콩에 개입해 줄 것을 호소했고 시위에 참가한 일부 인사는 미국의 민주주의를위한국가원조기금NED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았다. 그런데 그렇다 할지라도 시위대 전체가 친서방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시위대 속에 극소수가 성조기나 유니언잭 깃발을 들고 나왔다고 해서 그 시위 자체가 친미 또는 친영 입장이라고 할 수는 없다. 또 시위를 조직한 민간인권전선의 어떤 간부가 친서방 입장이라고 해서 그 시위대를 모두 친서방 입장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설사 시위대의 대다수가 서방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에 환상이 있다 하더라도 이 때문에 운동을 재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운동을 분석할 때는 이데올로기 만이 아니라 그 운동의 사회·경제적 기반을 중요하게 봐야 한다. 홍콩 민중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반감을 표했고 정치적·시민적 권리 방어를 위해 투쟁했다. 따라서 설사 그 운동의 이데올로기에 한계가 있더라도 투쟁에 대해서는 분명한 지지를 보내야 한다. 또한 운동 세력이나 정치 단체에서 그 지도부와 지지자들 사이에는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존재한다는 점을 봐야 한다. 정의당 당원들을 모두 심상정과 같다고 여길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정치적 견해가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정치단체조차 이럴진데, 특정한 쟁점을 중심으로 모인 시위대는 그 의식의 불균등성이 더할 것이다.
6 그런데 노사과연은 중국을 “고도로 발전한 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 7 라고 보기 때문에 중국을 사회주의로 보는 김정호와는 이견이 있다. 하지만 노사과연은 중국이 사회주의 사회는 아니지만 홍콩 시민을 포함한 모두가 중국을 사회주의 사회라고 알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노사과연은 홍콩 대중의 시위가 사회주의라고 알고 있는 중국에 반대하는 투쟁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회주의 반대와 미국 제국주의 지지 행위라고 주장한다. 기묘하게도 노사과연은 김정호와 마찬가지로 투쟁이나 운동의 실질적 내용을 보지 않고 그 이데올로기로만 판단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노동사회과학연구소[이하 노사과연]도 홍콩 항쟁 세력들이 미국을 포함한 서방의 사주를 받았기 때문에 지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8 그러나 옛 소련이나 동유럽 또는 중국이나 북한 같은 사회는 사회주의가 아니다. 사회주의는 노동자들이 권력을 가진 사회이다. 그러나 소위 사회주의라고 일컬어진 나라들에서 조국 방어라는 명분을 내걸고 내부의 이견자들을 탄압한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중국에서도 국가안전법国家安全法 9 등을 통해 반대세력들을 탄압하거나 제거하고 있다. 중국은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는 1989년 톈안먼 항쟁에 대한 폭력 진압에서부터 작게는 우칸촌 농민들의 저항에 대한 탄압 그리고 최근 자스커지 노동자들의 투쟁과 이에 연대하는 학생들에 대한 탄압 등 수없이 많은 사례들이 존재한다. 소위 사회주의라 불리며 노동자 국가 또는 인민민주독재라고 표방하는 국가들은 정작 노동자나 인민들의 근본적 이익은 도외시하는 일을 벌여 왔다.
또 하나의 주장은 홍콩 시위가 설사 친미적이지는 않더라도 중국 체제를 위태롭게 하기 때문에 ‘사회주의’를 지키기 위해 노동자 또는 민중들의 시위를 진압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입장도 존재한다.사실 중국은 모종의 사회주의 또는 중국특색의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한 변종인 국가자본주의 체제다. 자본주의 체제이기 때문에 제국주의적 세계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다른 국가와 생존을 위한 경쟁을 벌여야 했고, 이 때문에 국내적으로 노동자와 농민들을 착취해야 했고, 그 잉여는 대중의 필요가 아니라 자본축적을 위해 사용해야 했다. 중국을 모종의 사회주의로 보는 한국의 대다수 좌파들은 중국 내에서 벌어져 왔던 노동자와 농민에 대한 착취와 자본들의 경쟁을 보지 못하고 있다.
금융 중심지로서의 홍콩? 김정호는 미국이 세계적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홍콩 흔들기에 나섰다고 주장한다. 김정호는 “홍콩 을 공격할 경우 홍콩의 국제금융허브 지위를 흔들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중국 경제 전체를 혼란에 빠트릴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1997년 홍콩이 영국에서 반환될 당시 홍콩의 경제 규모는 중국 경제 규모의 18퍼센트 정도였지만 지금은 3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또한 1990년대에 개혁과 대외 개방을 강조하면서 외국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던 덩샤오핑의 시대에 홍콩은 화교 자본이 중국에 투자하는 통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금 중국 경제가 자금 조달을 홍콩에 의존하기 때문에 홍콩이 국제금융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면 중국 경제가 흔들릴 것이라는 주장은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이야기다.
11 이종태 기자에 따르면, 2018년 중국 기업들이 기업공개IPO를 통해 조달한 자금 642억 달러 중 350억 달러가 홍콩 증시를 통해 이루어졌다. 또 홍콩에 상장된 중국 기업들의 시장가치가 1조 540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중국 기업들은 해외 차관 중 60퍼센트 정도를 홍콩에서 조달한다고 한다. 해외직접투자 부문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외국인들이 중국 본토에 투자하는 자금 가운데 60~65퍼센트와 중국 기업들이 해외에 투자하는 자금 중 60퍼센트 정도가 홍콩을 경유한다.
국제 금융센터로서 홍콩의 지위를 크게 보면 홍콩 항쟁의 의미나 전망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 진보진영 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홍콩이 국제금융센터이기에 시진핑이 인민해방군을 쉽게 투입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하곤 했다. 예를 들어 〈시사인〉의 이종태 기자도 “중국 경제엔 홍콩이 너무나 필요”하기 때문에 “홍콩 시민들이 아무리 미워도 글로벌 금융센터의 지위까지 무너뜨리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12 그리고 홍콩의 수출에서 중국 비중은 54퍼센트(2017년 기준), 수입에서 중국 비중은 47퍼센트(2017년 기준)에 이를 정도로 중국과 홍콩 사이의 관련성이 높다. 홍콩 무역발전국에 따르면 홍콩의 전체 수출 중 재수출의 비중이 99퍼센트이고 자체 수출은 1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홍콩 자체의 생산이 중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2013년부터 홍콩에서 중국으로 유입되는 투자에서 포트폴리오 투자(증권 투자)와 은행자금의 합계가 직접투자보다 더 많아졌다. 그럼에도 이종태 기자가 지적한 바처럼, 홍콩발 중국향 자본과 중국발 홍콩향 자본이 중국의 국제수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꽤 높은 편이다.
무엇보다 홍콩은 무역 중계항으로서 경제 발전을 이룩했다. 중국 국가통계국NBS의 데이터에 따르면, 홍콩의 수출입 규모는 홍콩 GDP(2017년 기준)의 3배에 이른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홍콩 반란에 맞서 인민해방군을 동원해 대대적으로 탄압하는 과정에서 혹여라도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과실송금 등을 제한돼 홍콩이 국제금융 중심지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바로 중국 경제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홍콩 대신 상하이나 선전이 그 역할을 대체할 것이다. 최근 브렉시트로 인한 런던시티가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브렉시트로 런던시티가 국제금융 중심지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될 것에 대비해 각국 자본들이 본부나 지점을 옮기는 등의 대비를 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브렉시트 추진으로 인한 경제적 파장이 크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NH투자증권 홍콩 법인장 이정수는 “홍콩에 상장된 회사의 60퍼센트 이상이 중국 본토 기업이고 나머지는 글로벌 기업”이기 때문에 “정작 홍콩 증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홍콩 상황보다는] 중국경제”라고 지적했다.게다가 중국 정부는 홍콩 항쟁은 철저하게 진압하더라도 자본의 이윤 추구 활동은 충분히 보장해 줄 것이다. 이럴 경우 홍콩은 금융 중심지로서도 별로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있다. 1989년 톈안먼 항쟁을 유혈낭자하게 진압한 덩샤오핑도 해외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적극적이었다. 그리고 국제 자본도 수익을 위해 학살자들의 피 묻은 손을 흔쾌히 잡았다. 사실 중국 정부는 홍콩 반환 이전부터 해외 자본에 애정은 보냈다. 존스홉킨스대학 교수 훙호펑은 이렇게 지적했다. 중국공산당은 “1980년대에 홍콩에서 들어오는 해외직접투자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이 홍콩에서 보통선거제의 도입이 높은 세금과 재분배 조치가 취해질까 봐 걱정하는 기업주들의 이해관계를 민감하게 고려했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홍콩 기본법 초안을 만들 때 논란이 될 만한 모든 쟁점에 대해 기업 엘리트의 편을 들었고, 사회적 권리나 철저한 정치 개혁에 관한 홍콩 민주파들의 제안을 모두 무시했다.”
15 그리고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홍콩과 같은 일국양제의 국가인 대만에 대해서도 중국의 지위가 위협받을 수 있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홍콩 항쟁이 사그라들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인민해방군을 동원해 시위대를 위협하고 또 캐리 람에게 강경 대응을 할 것을 압박했다.
레닌은 경제의 집중된 형태가 정치라고 표현했다. 중국 지도자는 홍콩 항쟁에 대응하며 경제적 이해득실도 고려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 홍콩 항쟁이 초래할 정치적 영향을 생각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 정부가 홍콩 항쟁 세력에게 밀린다면 중국 내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이나 신장 위구르나 티베트 같은 소수민족,홍콩 정체성 대 중국 정체성
16 여기서 홍콩인이 55퍼센트로 가장 많이 나왔고, 중국의 홍콩인이 22퍼센트, 홍콩의 중국인은 10퍼센트, 중국인이라고 답변한 사람은 11퍼센트였다. 홍콩인이라고 답변한 비중이 77퍼센트가 나왔는데, 이 신문은 이는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최대치라고 지적했다. 이 설문조사를 보면 홍콩인의 압도 다수가 스스로를 중국인이 아닌 홍콩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런 사실에 기초해 일부 사람들은 홍콩인 정체성을 갖고 이번 투쟁을 재단한다.
12월 17일자 〈입장신문〉은 홍콩민의연구소香港民意研究所가 1010명을 방문해 “당신은 자신을 뭐라고 할 것인가?”라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17 그는 중국-홍콩 체제의 특징이 바로 정체성의 충돌이라고 규정했다.
백석대학교 중국어학과 류영하 교수가 이런 정체성 개념으로 홍콩 항쟁을 바라보는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중국은 150여 년간 만들어진 홍콩의 영국적 정체성을 10~20년 안에 없애려 했는데, 결국 실패했다. 이러한 모습이 계속되면 이번과 같은 시위 사태는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하고 지적했다.류영하 교수는 홍콩 정체성을 ‘홍콩다움’이라고도 표현했다. 이런 홍콩다움이란 무엇이고 또 언제부터 생겨났지에 대해서는 논자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2014년 우산운동을 계기로 홍콩 정치의 전면에 등장한 ‘홍콩 본토주의’localism 세력들은 중국 내륙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주의적 반감을 드러내며 중국과의 분리주의 경향을 드러냈다. 2010년 이전까지만 해도 홍콩의 대다수는 자신이 중국 국적을 지녔거나 중국인이라는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홍콩의 진보 및 좌파 세력들은 1989년 톈안먼 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한 중국 정부에 분개하고 중국 내륙을 민주화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었다. 또한 1999년 나토군이 유고 주재 중국대사관을 폭격했을 때 홍콩에서도 반미 시위가 일어났다. 또 2003년 홍콩 대중은 중국 유인우주선 선저우 5호의 성공을 보며 기뻐했고, 우주인 양리웨이가 홍콩을 방문했을 때 열렬히 환영했다.
몇 가지 사례로 볼 때 대략 2010년 이전까지만 해도 다수 홍콩인들은 중국과 구별되는 홍콩 정체성 같은 것을 갖고 있지는 않았고, 홍콩 본토주의 경향은 미미한 존재였다. 2012년 중국 정부는 국민윤리교육을 홍콩의 교과과정에 포함시키려다 저항에 부딪혔고, 2014년에는 행정원장 직선제 약속을 어기면서 우산운동을 촉발했다. 이 운동 내에서 분리주의 경향을 띠는 홍콩 본토주의 세력들이 급속하게 성장했다.
19 홍콩 정체성 또는 홍콩 본토주의는 홍콩과 중국 그리고 홍콩 내에서 친중 입장의 노동자들과 민주파 노동자들을 분열시킬 뿐이다.
정체성이란 고정된 관념은 아니다. 또 홍콩 정체성이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도 아니다. 홍콩의 정체성을 1970년대에 홍콩이 경제적으로 발전한 때부터 또는 1969년 마오쩌둥주의자들이 주도한 홍콩 반란 등에서 찾는 것은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홍콩 본토주의 경향을 정당화하기 위한 ‘역사 만들기’에 지나지 않는다. 홍콩에는 본토박이도 있지만 중국 내륙에서 온 이주민들도 많이 살고 있다. 그런데 이주민이 중국 정체성을 갖고 있으면서 캐리 람과 시진핑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고 홍콩 본토박이들이 모두 범민주파인 것도 아니다. 리카싱 같은 홍콩의 부자들은 친중 입장이고 항쟁에 참가한 젊은이들은 중국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투쟁에 연대해 주기를 호소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정체성에 기반한 정치로는 홍콩과 중국의 노동자 계급을 단결시키지 못한다.대안
20 무장 경찰이 비무장한 시위대에게 총격을 가하고 백주 대낮에 경찰의 사주를 받은 흑사회가 시위대를 폭행하는 사회를 두고 민주주의가 고도로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또 홍콩 대중의 민의가 번번이 무시되고 행정장관과 입법회 의원들을 직접 선출하지 못하는 사회를 두고 민주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김정호는 홍콩이 민주주의가 고도로 실현된 사회라고 생각한다.21 청년들이 겪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2014년 우산운동과 이번 송환법 개정 반대 투쟁의 원동력이다.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홍콩 대중이 자신들의 정치적·시민적 권리가 제약당하는 것을 몸소 경험했다. 하지만 홍콩 시민들, 특히 청년들을 더 화나게 만드는 일은 홍콩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금융중심지 홍콩의 마천루 밑에서 인구의 5분의 1이 빈곤층으로 살아가고 있다. 빈부격차를 나타내는 홍콩의 지니계수는 0.539로 세계 최고를 기록했다. 홍콩의 ‘슈퍼 리치들’은 한 칸에 11억 원이나 하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지만 청년들은 당방劏房에서 생활한다.이번 홍콩 항쟁은 민주주의 투쟁이기도 하지만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형성해 놓은 계급적 갈등에서 터져 나온 투쟁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투쟁이 한 발 더 전진하려면 계급적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노동자 계급이 전면에 나서야 하고 그들만이 갖고 있는 계급적 힘을 사용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거리의 투쟁뿐 아니라 생산 현장에서 파업을 확대하는 투쟁도 조직돼야 한다. 그러려면 친중파와 민주파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이 서로 연대하여 공동의 적에 맞서 투쟁을 벌여야 한다. 그리고 광저우나 선전 같은 중국 내륙의 노동자들과 연대를 구축하는 작업도 함께 진행해야 한다.
많은 진보·좌파들이 홍콩 항쟁을 다루긴 했지만 계급투쟁적 관점에서 다루지는 않았다. 물론 계급투쟁적 관점이 현실에서 구현되려면 홍콩 노동자 계급이 더욱 나서야 하고, 홍콩과 중국 노동자들의 연대 등이 구축돼야 할 것이다. 이는 만만치 않은 과제일 것이다. 그럼에도 거리 시위만으로 홍콩의 민주주의를 전진시키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강력한 중국과 그들이 보유한 인민해방군에 대적하려면 홍콩 노동계급과 민중의 투쟁과 함께 중국 노동계급의 연대를 발전시키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길일 것이기 때문이다.
주
- 한수진 2019. 이 때 광복光復restoration은 중국으로부터 독립獨立한다는 의미의 해방liberation은 아니다. 하지만 광복의 의미가 모호하기 때문에 그 구호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 의미를 제각각으로 이해하고 사용한다. ↩
- 이주용 2019. ↩
- 김정호 2019a. ↩
- 김정호 2019b. ↩
- 이원웅 2019. ↩
- 김해인 2019. ↩
- 노사과연은 마오쩌둥 시대의 중국은 사회주의라고 본다. 덩샤오핑이 집권하면서 시장 개방을 통해 “양적으로, 질적으로 이미 그 한계를 넘어선 것으로 보”기 때문에 더 이상 사회주의 사회라고 보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에서 1978년부터 개혁개방이 시작된 뒤로 사회구조와 특히 계급 관계의 변화가 없었다. 따라서 당시에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로 이행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중국은 1978년 이전부터 다시 말하면 1949년 마오쩌둥이 권력을 장악한 신중국 수립 때부터 사회주의가 아닌 국가자본주의였다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자세한 내용은 찰리 호어의 《천안문으로 가는 길》(책갈피 펴냄)을 보라. ↩
- 2019년 12월 15일 소통과 혁신 연구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정성희 소장이 이런 입장을 밝혔는데, 대다수 자민통 활동가들도 이와 비슷한 견해일 것이다. ↩
- 국가안전법은 국가의 안전뿐 아니라 인민민주독재,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제도, 인민의 근본 이익,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등을 위배하거나 반대하면 처벌할 수 있는 매우 포괄적이고 자의적인 법률이다. ↩
- 김정호 2019a. ↩
- 이종태 2019. ↩
- 대외의존도가 높다고 하는 한국도 수출입 규모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기준으로 80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
- 〈중앙일보〉 2019년 11월 19일자. “홍콩 상장기업 대부분 중국계 자본 … 증시 폭락 가능성 낮아.” ↩
- Hung Ho-Fung 2010. 훙호펑은 세계체제론자인 조반니 아리기 등과 함께 《중국, 자본주의를 바꾸다》(미지북스 펴냄)를 펴냈다. ↩
- 홍콩이 소수민족으로서 민족적 억압까지 받는 티베트나 신장위구르와는 다르다는 점에 대해서는 김영익(2019)을 참고하라. 그런데 노사과연은 홍콩을 티베트와 같은 처지라고 보는 듯하다. 친미 세력이 시위를 주도하는 홍콩이나 제국주의 후원을 받는 봉건 시대의 국왕이 지도하는 티베트를 지지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티베트의 독립은 중국의 진짜 마오주의자들과 함께할 때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이는 티베트를 중국에 복속시키고 민족적 억압을 시작했던 인물이 바로 마오쩌둥이라는 사실을 무시하는 태도다. ↩
- 民研 2019. ↩
- 류영하 2019. ↩
- 장정아 2006, pp286-287. ↩
- 2019년 11월 24일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파가 압승을 했지만, 득표수를 보면 전체 투표자 294만 명 중 범민주파는 167만 표(389석)를 얻었고, 친중파인 건제파는 123만 표(62석)를 얻었다. 친중 입장을 지닌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존재한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또 노동조합 지형으로 보더라도 친중파 노조인 홍콩공회연합회工聯會와 범민주파인 홍콩직공회연맹工盟으로 나뉘어져 있고, 홍콩공회연합회 조합원이 홍콩직공회연맹보다 더 많다. ↩
- 김정호 2019a. ↩
- 당방劏房은 아파트의 방 한 칸을 몇 개로 쪼개 원룸으로 만든 방을 말한다. ↩
참고 문헌
김영익 2019, “홍콩 항쟁은 분리독립 운동인가?”, 〈노동자 연대〉 305호 2019년 11월 20일자.
김정호 2019a, “미국의 패권 전략과 홍콩 사태(1)”, 〈민플러스〉 2019년 12월 11일.
김정호 2019b, “미국의 패권 전략과 홍콩 사태(2)”, 〈민플러스〉 2019년 12월 13일.
김해인 2019, “[편집자의 글] 홍콩 시위 단상”, 《정세와 노동》 154호.
류영하 2019, “홍콩시위는 中·英 정체성 충돌 때문… 中 무력개입 희박”, 〈서울신문〉 2019년 8월 29일자.
이원웅 2019, “미국의 ‘홍콩인권민주법’은 홍콩 항쟁에 해악적이다”, 〈노동자 연대〉 306호 2019년 11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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