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자녀 입시 문제로 본 자본주의와 교육
조국 사태는 딸의 입시 특혜 의혹으로 시작됐고,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불거진 것도 정유라의 입시 부정이 발단이 됐다. 많은 사회 부정과 비리들 중에서도 대중은 특히 교육에 민감하다. 흔히들 “교육 문제는 국민들의 역린”이라고 말한다. 아마 교육은 평등하고 공정한 것이어야 하고, 계층 이동의 유일한 사다리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청년층의 분노가 컸다. 요즘 청년층의 분노에는 사회경제적 맥락이 있다. 이들은 이전세대와 비교해 월등히 높은 학력을 소지하고 있다. 지금 20~30대는 10명 중 7~8명이 대졸자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진학과 취업을 위해 ‘노오력’을 많이 한 세대다.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2000년대 중반부터 특목고 입시가 격화돼 초·중학교 때부터 입시경쟁에 시달렸다. 내신이 상대평가로 전환되면서 학교 내 내신경쟁이 치열해졌다. 죽음의 트라이앵글(내신, 수능, 대학별고사)로 학교생활이 더욱 팍팍해졌다.
그러나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청년실업률은 계속 높아지고, 취업문은 더 좁아졌다. 열심히 달려온 그들을 기다리는 건 비정규직 저임금 일자리뿐이다. 2019년 3월 고용동향에 의하면, ‘잠재적 경제활동인구’까지 포함한 청년 ‘확장실업률’이 무려 25.1퍼센트다. 그들이 조국 자녀 입시 특혜 사건에 분노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조국의 딸은 부유한 가정배경 덕택에 특목고-명문대-의학전문대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중학교 때 조기 유학을 떠나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2년을 다녔다. 이를 토대로 외고 유학반에 입학할 수 있었다. 논문 저자, 인턴 경력 등 서민층 자녀들은 꿈도 꾸지 못할 초호화 스펙은 ‘부모 찬스’ 덕분이었다. 조국 자신은 전혀 신경도 안 썼다고 하지만 말이다. “할아버지의 재력, 아버지의 무관심, 어머니의 정보력이 명문대 입학의 조건”이라는 세간의 말을 실감나게 한다.
문재인은 교육 불평등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정시확대’, ‘외고·자사고 일반고 전환’ 등의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입시제도 개선을 통해 교육 불평등이 해소될 수는 없다. 문재인은 경쟁을 공정한 것처럼 보이게 해서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데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1 지배자들은 대중으로 하여금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받으면 더 좋은 상급학교로 진학할 수 있고, 또 상위권 대학을 나오면 더 많은 소득과 더 높은 지위를 얻는다는 상식을 퍼트린다. 이를 통해 자신들이 누리는 부와 특권은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른 정당한 대가이며, 천대받는 사람들의 가난과 차별은 자신이 게으르고 무능한 탓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이도록 애쓴다. 교육 경쟁에서의 실패와 그에 따른 결과를 정당화할 수 있으려면, 누구나 교육을 통해 계층 이동의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진다는 믿음을 심어 줘야 한다. 만약 대중이 교육 시스템을 불공정하게 여기면, 사회 시스템의 정당성이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가 계급은 전前자본주의 사회의 지배계급과 달리 신분제도나 종교적 신념과 같은 것들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정당화하기 어렵다. 자본주의 사회는 능력주의(또는 업적주의)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사회경제적 지위가 차등 분배’되는 것을 정당화한다. 여기에서 교육이 핵심적인 구실을 한다. 그러나 능력주의나 교육의 기회균등은 불평등을 은폐하는 기만적인 이데올로기다. 아동이 받는 교육의 질은 부모의 부와 소득 수준에 따라 천지차이다. 태어나는 순간 육아의 질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영아(0~2살) 단계에서부터 양육비는 큰 격차를 보인다. 2012년 기준 지출 하위 10퍼센트는 12만 원, 상위 10퍼센트는 78만 원. 고교생의 월평균 1인당 양육비 경우, 지출 하위 10퍼센트는 26만 원인데, 상위 10퍼센트는 187만 원으로 학령이 올라갈수록 그 격차는 커진다. 영아에서 고교까지 18년 동안 자녀 1인당 총 양육비를 추산한 결과, 지출 하위 10퍼센트는 4180만 원인데 반해 상위 10퍼센트는 2억 9341만 원으로 격차가 2억 5000여만 원에 달한다. 대학 교육비까지 포함하면 그 격차는 훨씬 더 벌어질 것이다.그들만의 리그 부유층 자녀들은 서민층 자녀와는 다른 특별한 교육을 받으며 자란다. 그들이 교육에 투자하는 대표적인 세 가지 전략은 사교육, 사립학교(일명 특권·귀족학교), 유학이다. 우스갯소리로 강남에서는 기저귀 차면서부터 학원을 다닌다고 한다. 사설 영재교육원, 영어유치원 등. 고급 영어유치원 학비는 월 200만 원에 달한다. 과학고 입시 준비를 위해 초등학생때부터 대치동 학원에서 고등학교 교과목을 배운다. 여름 방학이면 해외 어학연수를 다닌다. 입시 컨설팅비로 매달 수백만 원씩 들여 학생부를 종합적으로 관리 받고 수천만 원짜리 족집게 고액 과외도 받는다.
5 사립초등학교는 정·재계 인사 자녀들의 특수학맥의 원천이기도 하다. 경기초등학교는 삼성가家 자녀들과 대통령 자녀들이 다닌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6
부잣집 자녀들의 전형적인 코스는 사립초-(국제중)-특목고·자사고-국내외 명문대다. 사립초등학교는 진정한 귀족학교다. 서울 사립초등학교 1년 수업료가 평균 약 652만 원으로 4년제 대학 등록금과 맞먹는다. 그 중 13곳은 연간 학부모 부담금이 1000만 원 이상이다. 교육과정과 시설이 공립초등학교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영어 원어민 수업과 다양한 예체능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15명 이하의 작은 규모의 학급으로 편성해 소집단과 개별화 수업이 가능하다.국제중학교 4곳 모두 연간 학비가 1000만 원이 넘는다. 영재고, 과학고, 외고의 평균 학비는 일반학교의 3배가 넘는다. 웬만한 전국단위 자사고의 학비도 연간 1000만 원을 훨씬 상회한다. 민족사관고는 무려 2500만 원이다. 이런 특권학교는 공부만 잘한다고 들어갈 수 있는 학교가 아니다. 결국 돈 문제다.
특권학교는 명문대 진학의 유력한 경로다. 영재·과학고, 외고·국제고, 자사고가 전체 고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7퍼센트지만, 2018년 SKY 대학 입학생 중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36.2퍼센트나 된다.
요즘 해외 진학의 인기가 좀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재벌 등 진짜 부자들은 해외 진학을 선호한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재벌 3, 4세 10명 중 7명은 해외 대학으로 진학한다. 재벌 자녀들이 해외유학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도 국제적 인맥 쌓기다. 외고, 국제고, 자사고에서도 매년 수십 명씩 미국 아이비리그 등 세계의 유수 대학으로 진학한다. 이런 학교에는 국제반이나 유학반이 따로 편성돼 있다. 외국인학교를 이용하는 부자들도 많다. 본래는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을 위한 학교지만, 부모나 자녀의 해외체류경력을 통해 내국인도 입학이 가능하다. 실제로 많은 외국인학교 재학생의 절반은 내국인이다. 평균 연간학비는 1600만 원이다. 해외 대학진학에 용이한 과정들을 운영해 부자들이 해외 진학을 위한 코스로 활용한다. 2012년 입학비리 사건이 터졌을 때 정·재계 인사들이 다수 연루되기도 했다.
8 인천 송도에 있는 채드윅 국제학교는 1500억 원을 들여 만들었다. 국어를 제외한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한다.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5명 미만인데, 한 학급 인원은 11~13명이다. 수영장, 농구경기장, 대형극장 등 최고급 첨단시설을 갖췄다. 일부 재벌의 4세대가 사립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국내 국제학교로 진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졸업생을 배출한 성적을 보면, 다수가 아이비리그나 옥스브리지 등 영미권 명문대학에 입학했다. 9
국제학교는 이명박 정부 때부터 설립되기 시작했다. 현재 운영 중인 5곳의 연간 학비는 고교 교육과정 기준으로 무려 4000~5000만 원에 달한다.계급 재생산
10 부자(또는 고소득층)의 자녀들은 명문대(SKY)에 진학할 확률이 높다. ‘2018년 1학기 서울대·고려대·연세대(소위 스카이) 재학생 소득분위 산출 현황’ 따르면 국가장학금을 신청한 스카이 재학생(43퍼센트) 중 소득 10분위(월 소득 1200만 원 이상) 비율이 30퍼센트로 스카이를 제외한 전국 대학의 13퍼센트에 비해 두 배 이상 많았다. 이들 대학의 저소득층(기초·차상위 계층) 비중(6퍼센트) 보다는 5배나 많았다. 또한 스카이 대학은 국가장학금 미신청자 비율이 50퍼센트 이상으로 다른 대학보다 20~30퍼센트 포인트 높았다. 미신청자 중에는 외부장학금 수혜자 또는 B학점 미만인 경우도 있을 테지만, 상당수는 장학금이 필요 없는 부유층 자녀들로 추정된다. 11 스카이 출신들이 기업 CEO, 법관, 언론사 간부, 고위공무원 등 한국 사회 엘리트의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 12
교육은 부자들이 특권을 대물림 하는 수단 중 하나다.주로 일반고를 다니는 서민층 자녀들은 운이 좋은 소수를 제외하면 다수는 서울 밖 4년제 대학이나 전문대로 진학한다. 대학에 가서도 알바는 필수다. 취업 준비에 집중하는 것도 그들에게는 버거운 일이다. 취업도 어렵고, 취업해서도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허덕댄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은 학력은 물론 취업에서도 불평등을 초래한다. 고소득층(중위 가구소득의 3분의 4이상) 가구 자녀의 1~10위권 대학 진학 비율(7.4퍼센트)은 저소득층(중위소득의 3분의 2이하) 가구 자녀(0.9퍼센트)에 견줘 8.6배나 높았다. 이러한 부모의 소득격차에 따른 교육 격차는 취업 격차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임금소득 격차를 낳으며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1~10위 대학 출신 임금근로자의 월 평균 중위임금(290만 원)은 21위 이하 4년제 대학 출신(수도권 200만 원·지방 180만 원)보다 90~110만 원 많았다.
14 2015년 서울지역 고1 학생의 학교 유형별 가구소득 분포에 따르면, 특성화고 재학생 중 부모의 소득이 500만 원 초과하는 비율은 4.5퍼센트에 불과한 반면 57퍼센트가 200만 원 이하에 해당한다. (특목고는 50.4퍼센트가 500만 원을 초과한다.) 특성화고 학생들은 현장실습제도를 통해 위험한 저임금 일자리로 내몰린다. 고졸 취업자는 대졸 취업자에 비해 정규직 비율이 낮고 임금도 3분의 2밖에 안 된다. 가난은 그렇게 대물림된다.
가난한 집 자녀는 특성화고에 진학해서 대학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취업하는 경우가 많다.15 이 보고서가 보여주는 바는, 개인의 소득을 근본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교육적 성취가 아니라 부모의 경제력이라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교육이 주된 매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결국 교육적 성취도 개인의 가정환경에 달려 있다. 교육에서의 성공과 실패가 부나 가난의 주된 원인이 아니다. 그 반대로 부와 가난이 교육의 성공과 실패를 낳는 주된 원인이다.
백승주의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의 소득이 높을수록 자녀의 첫 임금이 높았다. 부모의 월 소득이 1000만 원 이상인 대학 졸업생의 첫 일자리 임금은 월평균 226만 120원, 부모의 월 소득이 500만~700만 원 사이인 대졸자는 첫 월급이 191만 5800원, 부모의 월 소득이 300만~400만 원인 대졸자는 첫 월급이 182만 3000원, 부모의 월 소득이 100만~200만 원 사이인 대졸자의 첫 월급은 169만 8600원이었다. 부모의 소득이 높을수록 내신이나 수능 성적이 높고, 상위권 대학에 갈 확률도 높다. 반면에 소득이 낮을수록 기초학력 미달이 많고 대학에 진학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부모의 소득이 상위 20퍼센트일 경우, 4년제 진학률이 81.4퍼센트, 비진학이 4.6퍼센트인데 반해, 하위 20퍼센트의 경우, 4년제는 37.4퍼센트, 비진학은 25.3퍼센트에 달한다. 똑같이 공부 잘해도 부잣집 아이의 대학진학률이 더 높다. 고등학교 성적 상위권 학생 중 고소득층의 4년제 대학 진학률은 90.8퍼센트에 이르지만, 비슷한 성적의 저소득층 학생은 75.6퍼센트로 15.2퍼센트의 격차를 보였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에게는 높은 학비 부담이 여전히 넘기 힘든 장벽인 것이다.17 부모의 계급(계층)이 자녀의 학력과 계층을 결정하는 구조에서 교육은 결코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아니다. 오히려 사회경제적 지위를 대물림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이 점이 시사하는 바는 교육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 교육제도를 이래저래 바꾸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고 근본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교육적 성취는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상식과는 달리 교육격차는 근본에서 계급 간 격차에서 비롯한다. 애초부터 자라는 환경과 교육에 동원되는 물질적 자원이 다르기 때문이다.공정한 입시제도는 가능한가?
지난해 정부는 정시를 40퍼센트 이상 확대하고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비교과영역을 축소하는 골자의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대입 제도에 관한 대책을 연이어 내놓는 이유는 그만큼 대입 제도에 대한 대중의 불신과 불만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대중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고 손상된 ‘공정성’ 이데올로기를 수습하려 할 뿐 진정한 문제 해결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공정성을 빌미로 진정한 문제를 가리고 경쟁을 강화하며 차별을 정당화하려 한다.
정부는 정시 확대 추진의 근거로 “수능이 가장 공정한 전형”이라는 국민 인식을 내세웠다. 지난 11월 MBC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학 입학전형에서 가장 많이 반영돼야 하는 부분이 뭐냐 하는 질문에서 수능성적(45.5퍼센트)이 1위를 차지했다. 비슷한 시기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6명이 정시 비중 확대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연 수능은 공정한 것일까?
수능이 공정하다고 느끼는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작용하는 듯하다.
첫째, 누구나 응시할 수 있다는 기회의 균등(개방성). 둘째, 응시자들에게 같은 기준(점수)을 적용한다는 평등(객관성). 셋째, 표준화된 시험에서는 부정과 비리, 반칙이 작동할 수 없다는 믿음(투명성).
여기에 부정부패가 만연한 사회에 대한 불신이 겹쳐 시험의 공정성 신화를 더욱 강화하는 듯하다. 특히, 조국 사태로 인해 확대된 학종에 대한 불신이 ‘차라리 수능이 공정하다’는 편견을 키웠다. 그러나 부자와 서민이 차별 받지 않고 똑같은 시험지와 똑같은 채점기준으로 평가 받는 것이 곧 공정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수능은 겉보기와는 달리 개인의 노력과 실력이 아니라 가정 배경에 훨씬 더 좌우된다.
2017년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전국 주요 대학(54개)의 입학생의 소득에 따른 국가장학금 수혜 비율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수능 전형에서 합격한 학생들의 63.4퍼센트가 (국가장학금 수혜 대상에서 제외되는) 소득 9분위 이상이었다. 반면, 기초수급자와 1~4분위(저소득층)는 22.9퍼센트에 불과했다. 학종(53퍼센트 대 31.3퍼센트)과 비교해 보아도 더 큰 격차를 보인다.
수능으로 소위 ‘금수저’들이 더 많이 합격한다는 얘기다. 주된 이유는 표준화된 시험일수록 유형이 정해져 있어 사교육의 영향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표준화 시험은 그 사회의 주류 문화(보편적 지식)를 반영하기 때문에 중·상류층의 자녀에게 유리하다. 시험은 오로지 실력으로만 사람을 측정한다는 논리는 허구일 뿐, 학생이 자라는 집안 환경과 그가 받는 사교육의 양·질이 시험 성적을 결정한다. (공교육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특권학교를 보라.) 표준화 시험은 소위 객관성, 개방성, 투명성 등으로 인해 겉으로는 공정해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거대한 불공정을 감추고 있다. 시험이 공정하다는 상식은 경쟁을 합리화하고 합격과 불합격에 따른 차별, 점수에 따른 서열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강화한다.
학종 개선 대책을 보자. 교육부는 “학생 개인의 능력이나 성취가 아닌 부모배경, 사교육 등 외부요인이 대입에 미치는 영향이 차단되도록” 하기 위해 학종에 반영되는 비교과영역을 축소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방과 후 학교 활동, 자율동아리, 개인봉사활동 등 정규교육과정 외 비교과활동을 전형요소에서 제외하고 자기소개서와 고교 프로파일을 폐지하기로 했다. 대신 교과세부능력및특기사항(교과세특) 기록을 의무화하고 기재표준안을 마련해 정규교육과정에 대한 전형요소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규교육과정이라고 가정 배경의 영향력이 차단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부모의 소득이 높을수록 사교육비 지출이 많고 이는 학업성취(내신 성적)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가정 배경은 학생의 기초학력은 물론 학업에 대한 동기와 의지, 학교생활에 대한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학교 유형에 따라, 거주 지역에 따라 학생들이 경험하는 학교 교육과정의 질이 다르다. 그런데 학교 유형과 거주 지역도 주로 부모의 소득에 따라 좌우된다. 서열화된 고교 체제는 공교육에 의해 제도적으로 차별을 강화한다. 정규교육과정에서의 성취는 오로지 학생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달려 있다는 말은 완전히 거짓이다.
진보적 교육운동 일각에서는 수능 전형에 대한 대안으로 학생부 중심 전형을 지지하는 경향 이 있다. 학종의 일부 불공정 요소를 제거한다면, 학생의 학교생활에서의 경험과 성취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학생부 중심의 선발 방식이 미래형 인재를 기르는 데 낫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능 점수로 한 줄 세우기를 하든, 교과·비교과 등으로 여러 줄 세우기를 하든 ‘경쟁을 통한 선발’ 기제는 동일하게 작동한다.
18 18년 유니세프가 선진국 41개 국의 교육불평등을 조사해서 발표한 ‘불평등한 출발점’Unfair Start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모든 나라들이 교육 불평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불평등의 핵심 원인은 부모의 직업과 소득, 이주배경 등 가정환경이었다. 19
교육 불평등은 입시제도의 유형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계급불평등과 경쟁교육 시스템에 기인한다. 그래서 교육 불평등은 한국뿐 아니라 (입시 제도가 상대적으로 낫다고 하는) 선진국에서도 보편적인 현상이다. 2010년 OECD 국가의 세대 간 계층 이동 조사에 따르면, 각국의 부모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자녀의 OECD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PISA 성적이 높았다. 부모가 자녀의 노동시장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직접적인 요인으로 학교선택, 사교육, 고등교육 제공 등이 지적됐다.학교교육이 대학 서열화와 입시 경쟁에 종속되는 한 공정한 입시제도는 불가능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경쟁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정한 교육을 위해서는 경쟁의 룰을 바꿀게 아니라 경쟁 자체를 없애야 한다. 진보진영은 ‘공정한 입시제도’ 프레임에 갇히지 말고 입시제도 폐지와 대학평준화를 일관되게 요구해야 한다.
오늘날의 학교교육
오늘날의 학교 풍경은 여전히 암울하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학교 가는 것을 싫어하고 주말이나 방학을 손꼽아 기다린다. 억압과 복종, 기계적 암기식 학습, 지루함과 따분함이 학교를 지배한다. 노동자들이 임금을 받기 위해 참고 일하듯, 학생들도 지식과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적과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졸업장이나 학위를 따려고 공부한다. 노동자들이 생산과정을 통제하지 못해 소외를 겪듯이, 마찬가지로 학생들도 무엇을 어떻게 배울지에 대해 거의 통제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친구들과의 경쟁 때문에 인간성이 왜곡되고, 소외에서 벗어나려고 게임 중독이나 학교폭력과 같은 왜곡된 방식에 의존하기도 한다. 교육은 청소년들에게 희망이 아니라 좌절을 안겨 주고, 행복이 아니라 고통을 가한다.
20 고교생 57퍼센트가 하루 6시간도 못 잔다. 청소년 권장 수면시간인 8시간 이상 자는 고등학생은 4퍼센트도 안 된다. 21 다수의 학생들이 일상에 지쳐 있다.
많은 학생들이 치열한 입시경쟁 속에서 공부기계로 살아간다. 한국 청소년(13~24세)의 주당 평균 학습시간은 50시간, (우리나라 과로사 인정기준인) 60시간 이상인 학생 비율이 23.2퍼센트나 된다. 고2의 경우 평균 70~80시간에 달한다. 2017년 OECD가 발표한 ‘삶의 만족도 조사’를 보면, 한국 학생의 75퍼센트가 성적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한국의 청소년(9~24세) 사망 원인 1위는 11년째 ‘자살’이다. 지난해 기준 10만 명당 7.7명(매일 1~2명) 자살한다. 자살 시도자는 이보다 50~150배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초·중·고 학생의 자살은 2015년 93명에서 2016년 108명, 2017년 114명, 지난해 144명으로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23 한국 중고생 넷 중 한 명(25.1퍼센트)이 우울감을 경험했다. 고3에선 이 비율이 36.6퍼센트에 달한다. 청소년(13~24세) 중 45퍼센트가 전반적인 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답했는데, 이 중 51.8퍼센트가 학교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24
통계에 따르면 전체 여학생 중 14.9퍼센트, 남학생 중 9.5퍼센트가 자살 생각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죽고 싶은 이유 압도적 1위는 학교성적(40.7퍼센트)이다.25 학생들을 상대로 전수 조사하는 피해설문에 따르면 같은 기간 학생 6만여 명이 피해를 경험했다.
하루 학생 108명이 학교폭력에 시달린다(2018년 학교폭력위원회 심의 건수 기준으로 피해 학생은 총 3만 9478명). 피해자는 최근 5년새 52퍼센트가 증가했으며 특히 초등학생 피해자가 늘었다. 우리나라의 초중고 진학률은 매우 높다. 그러나 여전히 학교 밖 청소년이 40만 명에 달한다. 매년 학생 5만 명이 학교를 그만둔다. 이중의 절반은 ‘학업 부적응’ 때문이다.정부의 수많은 대책도, 심지어 진보교육감이나 혁신학교조차도 이러한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은 특정 교육정책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에서 교육이 하는 근본적인 구실 때문에 발생한다.
자본주의 교육의 구실
자본주의에서 교육은 경제적·이데올로기적 구실을 한다.
첫째, 교육은 자본 축적에 필요한 노동력을 양산한다. 다시 말해, 생산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한 교육받은 노동자를 공급하는 것이다. 인적자원이나 인재양성은 이런 기능을 표현하는 용어들이다. 산업 발전과 기술 혁신에 따라 교육도 끊임없이 변화와 혁신을 요구받는다. 자본 간,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교육은 국가경쟁력에서 점점 더 중요한 구실을 하게 된다. 둘째, 지배자들에게는 노동자들로 하여금 착취에 순응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학교교육에서는 성격과 태도, 가치관 형성이 매우 중요하다. 자본가들에게는 열심히 일하고 말 잘 듣는 노동자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학교는 인성교육, 기본생활습관 형성을 강조한다. 학교생활기록부에는 교과 성적뿐 아니라 인성이나 행동특성을 중요하게 다룬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위계질서와 권력 구조를 익히고, 경쟁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인다. 시험제도가 경쟁과 차별을 정당화 해 준다.
셋째, 공교육은 국민을 형성하고 국민의 의식을 통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교과서는 자유민주주의(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기업가 정신, 민족주의, 애국심을 찬양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주입해 자본주의 체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애쓴다. 교육은 지배계급의 대표적인 정신적 생산수단 중 하나다.
교육은 생산력과 생산관계를 재생산하고, 자본가들의 지배를 정당화하고 자본주의적 질서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따라서 자본주의 국가들은 교육에 투자하는 한편, 교육을 철저히 국가 통제 하에 두고 싶어 한다. 국가는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는지를 국가수준 교육과정과 검인정 교과서 등을 통해서 통제한다. 그리고 국가수준 평가(예로 수능)를 통해서 가치 있는 지식, 보편적인 지식을 규정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학생들과 교사들이 저항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학교는 교장을 정점으로 하는 위계적인 관료조직으로 구성돼 있다. 학생인권과 학생자치는 아직도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고, 대표적인 교원노조인 전교조는 역대 정부로부터 줄곧 탄압받고 있다.
지배계급은 교육을 자유와 평등, 행복과 자아실현의 수단인 것처럼 보이게 애를 쓰지만 현실의 교육은 전혀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 교육에서 경쟁과 차별, 억압과 소외, 불평등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데, 이는 자본주의 교육의 계급적 성격 때문이다. 교육이 약속하는 것과 현실과의 간극은 교육에서 긴장과 갈등, 저항과 투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본주의와 학교교육
자본주의 교육은 이전 시대와 다른 특징들이 있다.
첫째, 교육의 보편화(대중화). 전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교육은 소수 엘리트의 전유물이었다. (물론 이전 사회에서도 가정과 교회에서 폭넓은 의미에서의 비공식 교육이 존재했지만)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대중의 다수가 교육을 받는다. 자본주의는 역사상 가장 똑똑한 피억압 대중을 만들어냈다.
둘째, 학교제도의 발달. 이전 사회의 교육기관과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교육기관으로서의 학교제도가 출현했다. 셋째, 국가에 의한 교육 관리·통제. 이른바 공교육의 출현이다. 의무무상교육, 교육 기회의 균등, 외견상 교육의 정치중립성 등은 국가 주도 교육의 주요한 특징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적인 학교교육이 등장한 것은 생산력 발전에 걸맞은 노동계급을 창출하기 위한 체제의 필요 때문이었다. 학교교육은 노동계급의 의식을 통제하고 저항을 누그러뜨리는 효과도 냈다. 한편, 안정과 복지, 계층상승을 바라는 노동계급의 요구도 있었다. 계급을 아우르는 지지 덕분에 교육이 확대됐지만, 지배계급의 의도가 더 분명했고 그들의 의도와 노동계급의 바람은 달랐으며, 교육확대의 수혜는 주로 자본가들의 몫이었다.
자본주의사회 내에서 교육제도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재생산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따라서 주되게는 자본가들의 이해관계에 부응해) 역사적으로 변해 왔다. 물론 그 변화는 순조로운 것이 아니라 갈등과 투쟁, 그리고 타협의 과정이었다. 교육 제도는 평등주의적 이데올로기를 표방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계급관계를 재생산하는 데 복무해야 하기 때문에, 교육의 이념과 현실은 괴리가 크다. 자본가 계급은 생산성 증대와 노동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대중 교육을 사용해 왔고, 노동계급은 교육받을 권리 확대를 위해 투쟁해 왔다. 서로 모순된 지향이 대중교육에서 결합될 수 있었던 것은 지배계급이 교육 기회를 확대해 온 동시에, 능력주의를 통해 계급차별 및 노동계급 내부의 분할을 정당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중교육은 착취와 억압이라는 계급적 쟁점을 개인적 문제로 환원한다. 다시 말해, 대중교육을 통해 노동계급 일부의 계층상승을 가능케 한다는 믿음은, 노동자들에게 계급투쟁보다는 교육경쟁을 위한 개인적 투자에 관심을 쏟게 한다. 그러나 경제가 침체되면서 계층상승의 가능성이 축소됨에 따라 경쟁은 더욱 격화되고, 대중의 불만도 커진다. 경제 위기는 교육 위기를 수반하고 교육 위기는 흔히 교육을 둘러싼 계급 투쟁으로 이어진다.
자본주의 교육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대중교육의 역사적 기원과 발전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하다. 가장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의 교육 역사를 중심으로 대중교육의 출현과 확대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미리 요약하자면, 교육제도의 변화는 기업 내 분업의 변화, 자본과 노동의 갈등, 직업 구조의 변화 등이 경제적 구조의 변화를 배경으로 진행됐다.
1) 초등교육의 보편화
31 학교교육이 등장한 직접적인 배경은 공장제도의 출현이다. 공장의 출현에 따라 기계를 다룰 줄 아는 노동자들이 필요했다. 새로운 기술은 더 이상 가정에서 배울 수 없었고, 기존의 도제 방식으로는 대량의 노동자들을 양산할 수 없었다.
대체로 초기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초등학교(의무교육)이 등장한 것은 19세기 중후반이다.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주로 가정이나 도제제도에서 교육이 이뤄졌고, 교육은 생산노동과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는 생산현장과 분리된 재생산 구조로서 학교제도를 필요로 했다. 남북전쟁 이후 산업화가 본격화하고 노동계급이 증가하면서 1870년대에 공업도시를 중심으로 초등 공립학교가 대거 설립됐다.
당시 자본가들은 학교에서 훈련시키는 것이 아동들을 공장노동자로 준비시키는 데 효과적이라는 점을 발견했다. 그들은 교육받고 도덕적으로 훈련 받은 노동자들이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한다는 것을 알았다. 초기 교육관계자들은 교육의 내용(인지적 성취)보다는 학교의 도덕적 영향력에 더 큰 관심이 있었다. 19세기의 직업은 대다수 노동자들에게 높은 지적 수준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주의력, 질서의식, 시간엄수(규칙성과 시간절약), 근면성실, 공손함, 예의바름 등 고용주의 지시와 통제에 복종하는 태도가 더 중요했다. 학교에서는 재봉질과 같은 기술을 가르쳤는데, 그것은 실용적인 목적(직업적 가치)보다는 재봉질이 형성시켜 주는 근면한 습관 즉 도덕적 효과를 위한 것이었다. 특히, 교사가 학생에게 요구하는 지시와 통제에 순종하는 행동습관이 고용주에게는 매우 유용한 것이었다. 당시 일반적인 형태는 아니었지만, 이른바 ‘랭커스터 방식’이 교육자들에게 높이 평가됐다. 이 방식은 빈민의 자녀들이 주요 대상이었고, 공장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학생 수백 명이 한 교실에서 교육을 받았고, 교사 한 명과 우수한 학생들(지도생)이 교육과 훈련을 수행했다. 여기서는 경쟁의식과 군대식 규율이 강조됐다. 그러나 부자들의 자녀는 보다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지적인 자극을 받으며 교육받았다. 한편 초기 대중교육은 국민국가를 형성하고 사회불안, 반란과 폭동을 예방하고 사회의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는 제도로서 필요했다. 학교는 노동자를 순한 양으로 길들임으로서 계급의식을 무디게 하는 효과를 냈다. 초창기 《미국교육연감》은 이 점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학교교육제도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회의 선택 받은 사람들을 시기하지 않게 하며 또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신도 그러한 사람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또 바로 이러한 까닭으로 그들을 존경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할 수 있다”
2) 중등교육의 대중화 1890~1930년까지 공립 중등학교가 대중교육기관으로 자리를 굳혔다. 공립중등학교에 입학한 14세에서 17세 사이의 청소년 비율은 1890년 4퍼센트에서 1930년 47퍼센트로 급격히 증가했다. 산업이 발달하고 자본이 팽창하면서, 노동계급의 규모가 급성장했다. 1890년 무렵, 경제활동인구의 거의 2/3가 피고용자였다. 노동조합원들의 수가 1897년에서 1904년 사이에 4배로 증가했다. 이런 상황은 자본가계급에게 노동을 통제해야 한다는 문제를 안겨 줬다. 노동조직과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은 기업이윤을 점점 더 위태롭게 했다.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공장장, 사무직 고용인, 기타 비생산 노동자들이 대거 필요해졌다. 고용주 개인이 직접 감독하는 것으로는 생산 노동자는 물론 심지어 관리 인사들에 대한 통제업무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됐다. 이러한 현실에서 자본가들은 복잡하고 수직적인 노동력의 분절구조 즉 위계화된 분업구조를 추진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를 위해 중등교육이 확대돼 서기, 판촉사원, 부기, 하급 관리노동자 등 중간관리자 집단이 대거 창출됐다. 이러한 새로운 기술과 자질을 갖춘 노동력을 양성하려면 초등교육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때문에, 중등교육이 대폭 확대됐다. 그러나 위계화된 분업 구조에 대응하려면 동시에 교육의 계층화(분화)가 필요했다. 1890년대 직업교육 확대는 중등교육의 계열화·분화를 촉진했다. 미국의 노동계급은 실업계와 인문계를 분리시키는 복선제 학교를 막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학교 내의 교육과정은 계열화됐다. 종합고등학교에서 노동계급 자녀들을 위한 직업 교육과정이 운영됐다. IQ검사, SAT 등 표준화 검사가 교육의 계열화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됐다. 중등교육이 확대되면서 선발과 배치를 위한 평가(표준화된 시험)체제도 발달했다. 중등학교는 숙련노동자와 사무관리 노동자 양성이라는 경제적 필요와 함께 지배 엘리트의 기득권과 위계적 구조를 유지해야 하는 필요에도 부응해야 했다. 그래서 지배계급은 교육을 계열화(분화)시켰다. 복선형 학제나 인문계와 실업계 분리는 교육 확대 기조 속에서도 계급 차별을 유지하고 노동계급을 분할하기 위한 교육적 대응이었다. 직업교육은 숙련노동자들의 힘을 분쇄하기 위한 고용주의 전략으로도 활용됐다. 자본가들은 직업교육을 기술훈련에 대한 노동자들의 통제를 분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직업교육은 성장하는 중간관리자 계층을 다른 생산노동자들과 분리시켜, 또한 그들 위에 군림하도록 훈련시키고 차별적인 인식을 심어 주는 (고용주들에게) 유용한 방법을 제공했다. 당시 노동조합은 직업학교를 “노동조합 비가입자를 육성하는 학교”라고 비판했다.
3) 고등교육의 확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기업과 국가 부문이 팽창해 기술직, 사무직, 기타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에 대한 요구가 크게 확대됐다. 고등교육 기회를 확대하라는 노동계급의 요구도 맞물렸다. 대학이 자본 축적에 필수적인 제도로 정착하면서 국가는 대학에 지원을 강화했다. 대학 진학률이 1940년대 후반 20퍼센트에서 1973년 50퍼센트로 크게 증가했다.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팽창은 화이트칼라 기술의 분절화를 가져왔고 이는 대학의 분절화와 직업화로 연결됐다. 고등교육 계층화·직업화의 대표적인 결과로 2년제 대학의 대거 설립됐다. 1972년에 2년제 대학 학생 수는 1947년보다 8배, 1962년보다 3배나 늘었다. 2년제 대학 학생 수가 대학생 중 가장 급속히 성장했다.
대학은 전통적인 엘리트 양성기관에서 중간 수준의 사무직, 기술직 노동자들을 훈련시키는 새로운 임무를 맡게 됐다. 이를 위해 기업과 정부는 고등교육을 확대하는 동시에 계층화하고 직업훈련기능을 강화했다. 이로 인해 대학의 학문과 연구가 분화하고 기업에의 종속이 심화됐다.
42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같은 학교(급)에서 같은 방식으로 훈련되는 것은 지배자들에게는 피하고 싶은 일이다. “엘리트를 훈련시키는 데 가장 적절한 교육과정은 피착취자들간에 침묵을 유지시키는 데는 성공적이지 못하다.” 43
고등교육은 명문 사립대학교, 명문 주립대, 비명문 주립대, 주립 단과대, 지방 전문대local college로 계층화됐다. 이런 서열화된 체제는 학생들이 속한 가정의 사회적 지위와 각 학생이 졸업 후 이동하게 될 노동관계의 위계질서를 반영하고 있다. 특히, 지방전문대는 기술 훈련을 강조하며 명백히 직업 지향적이다. 기업과 지방전문대는 교육과정의 연계가 보다 밀접하고, 훈육과 학생관리가 엘리트 대학보다는 중등교육과 훨씬 더 비슷하다. 이는 기업 생산의 위계적 분업 구조가 교육의 계층화에 반영된 결과다. 대학은 전통적인 엘리트 훈련기관이었지만 입학정원이 급격히 증가하며 새로운 기능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모순이 발생했다. 대학생들의 기대(높은 지위와 직업, 보수)와 실제 노동시장에서의 전망은 불일치했다. 학생 대부분은 고등교육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충분히 얻지 못했다. 대학의 팽창은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의 프롤레타리아화를 의미하기도 했다. 노동과정에서 점점 줄어드는 통제력, 즉 소외된 노동 등 사무직(정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점점 생산직(육체) 노동자들의 조건과 비슷해졌다. 실업이 확산되고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의 직업 안정성이 떨어지면서 대졸자의 임금 프리미엄도 낮아졌다. 1960년대 후반 대학생들의 급진화는 이러한 사회경제적 배경 속에서 벌어졌다.4) 신자유주의 교육개혁
46 국가수준 교육과정, 학교·교사 경쟁과 평가(교원성과급과 교원평가), 기초학력평가 등이 도입·확대됐다. 학교의 자율과 책무성, 교육 소비자(학생·학부모)의 선택권 보장 등 기업과 시장 논리가 학교에 도입됐다. 학교 선택권과 바우처 제도는 학교 간 경쟁을 촉진하려는 맥락에서 도입됐다. 차터스쿨과 마그넷스쿨(각각 우리나라의 자사고, 특목고와 유사)의 도입은 이러한 과정을 더욱 심화시켰다.
미국과 영국 등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1970년대 이윤율 위기를 겪으면서 80년대부터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을 추진했다. 당대에 유명했던 ‘위기에 처한 국가’ 보고서는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교육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혁의 주된 기조는 국가통제 강화와 경쟁(시장 논리) 강화였다.자본축적의 위기가 시작되면서 경제는 고등교육을 통해 배출된 노동력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노동자들이 실제 직업에 이용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교육을 받는 상황 즉 이른바 ‘과잉교육’ 문제가 발생했다. 이에 대해 국가는 대학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차등 배분하고, 대학을 구조조정 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기업의 이윤율 위기, 정부의 재정 위기가 심화하면서 일부 국가에서는 교육 긴축(또는 교육의 질에 대한 공격)이 벌어지고 이에 대한 세계 곳곳에서 저항이 벌어지고 있다.(그리스와 스페인, 남미 등) 영국과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도 교사들의 파업이 크게 벌어졌다.
한국의 대중 교육
한국 대중교육의 역사적 특징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교육기회 확대(초중등교육의 보편화와 고등교육의 대중화)와 교육의 계층화(특히, 고교서열화와 대학서열화), 신자유주의 교육개혁 등.
해방 후 한국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초등의무교육은 미군정기에 도입됐으나 한국전쟁 이후에 보편화했다. 정부는 1954년부터 ‘초등의무교육완성 6개년 계획’을 추진해 59년에는 95퍼센트 이상의 취학률을 달성했다. 초등교육 확대는 전쟁 이후 국민통합, 반공 이데올로기를 활용한 사회 통제, 교육을 통한 산업 인력 양성 등에 기여했다. 양적 팽창 전략에서 교육의 질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역에 따라 학급당 학생 수는 100명을 초과하기도 했다. 1960~1970년대 급격한 산업화와 함께 중등교육도 급격히 확대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국가 주도 경제성장을 추진하면서 공업 생산에 필요한 저임금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중등교육을 대폭 확장했다. 1969년 중학교 무시험 전형(평준화 정책), 1974년에는 고등학교 입시 폐지(평준화)는 중등교육의 기회를 확대하는 정책들이었다. 그 결과 중학교 진학률이 1970년 36.6퍼센트에서 1980년 73.3퍼센트로, 같은 기간 고등학교 진학률은 20.3퍼센트에서 48.8퍼센트로 급격히 증가했다. 특히, 산업 인력 양성을 위해 실업계 교육을 강조했다. 그 결과 인문계와 실업계 고등학교의 비율은 1962년 5.4:4.6에서 1972년 4.2:5.8로 역전됐다. 한편 고등교육은 이공계 중심으로 투자하되 나머지 부문은 억제했다. 대입 예비고사 실시(1968), 대학학생정원령 제정(1969) 등은 고등교육 확대를 막는 역할을 했다. 대신 기술인력을 육성하기 위해 실업전문고등학교(이후 전문대학)를 신설했다. 실업교육 중심의 중등교육은 확대하고 인문계 중심의 고등교육은 억제하는 것은 저임금 기술 노동자를 양성하기 위한 국가적 전략의 반영이었다. 한국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국제적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점점 더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가진 노동자들이 필요해졌다. 이미 1970년대부터 대기업은 입사조건으로 4년제 대학 졸업(예정)자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1980년 ‘7.30 교육개혁’은 당시 산업의 필요를 반영한 것이었다. 중등교육을 인문계 중심으로 재편하고 고등교육을 확대했다. 공업계 고등학교의 신설을 억제하고 인문계 고등학교를 늘였다. 그 결과 고등학교 학생 중 실업계가 차지하는 비율이 1970년대 후반 45퍼센트에서 1989년 35.9퍼센트로 하락했다. 본고사와 예비고사 제도가 폐지되고, 대학정원의 30퍼센트를 추가로 모집할 수 있는 졸업정원제가 실시됐다. 이에 따라 대학진학률은 1970년대 10퍼센트대에서 1980년대 초반 30퍼센트대로 크게 늘었다.
고등교육 확대는 1990년대에도 지속됐다. 기업들은 국제적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전문적인 노동력을 필요로 했다. 1995년 대학설립자율화와 정원자율화는 고등교육 팽창을 가속화시켰다. 1990년대 중반부터 특별전형을 통해 실업계 학생의 대학진학을 유도하는 정책이 실시됐다. 이에 따라 실업계 학생의 대학진학률이 1995년 19.1퍼센트에서 2001년 44.9퍼센트로 급증했다. 전체 대학진학률은 1990년 33.2퍼센트에서 2008년 83.8퍼센트까지 증가했다. 산업이 발달하고 생산이 복잡해지면서 국가관료, 기업의 중간관리자, 전문직 등 신중간계급이 대거 등장했다. 노동계급이나 농민의 자녀 중 학교에서 성공한 이들의 대부분은 바로 신중간계급으로 진출했다. 한국사회의 한때 활발해 보였던 계층 이동의 대부분은 1970∼1980년대 이런 과정의 산물이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그 짧았던 계층 이동 사다리마저 무너지고 계급이 고착화하는 현상이 더 두드러졌다. 2000년대 이후에는 소득불평등이 심화되면서 교육불평등도 심화됐다.
50 대졸자의 실업이 증가하고 평균임금이 하락하면서 대학 졸업장만으로는 안정된 미래를 보장할 수 없게 됐다. 이는 대학 서열화 강화, 대학원진학이나 해외유학 등 학력 경쟁을 더욱 치열해지는 것으로 이어졌다. 51
대졸자의 증가는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지위·조건 하락과 동시에 진행됐다. 대졸 임금 프리미엄이 줄었다. 1970년대 대졸자의 평균임금은 고졸자의 2.3배에 달했으나, 1990년대는 1.5배로 감소한다.1980년대 말부터 한국 자본주의의 고도 성장세가 꺾이고 위기감이 높아지면서 교육에서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1987년 교육개혁심의회의 교육개혁안에 ‘수월성’ 담론이 처음 등장했다. 수월성 교육은 엘리트 교육의 다른 표현이다. 교육정책 기조는 노동력의 양적 확대에서 질적 제고로 전환했고, 교육의 질 제고를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가 강조됐다. 1995년 ‘5.31 교육개혁안’은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됨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교육 전반에 경쟁과 통제를 강화해 효율성과 수월성을 증대하려는 신호가 강화됐다. 이는 수요자 중심 교육, 교육의 다양화·특성화, 학교의 자율성과 책무성 강화 등으로 표장됐다.
중등교육에서는 특목고, 자사고, 특성화고 등 고교 다양화·특성화가 확대했다. 지배계급은 영재교육(국제 경쟁을 위한 핵심 인재 양성)을 명분으로 특목고(과학고, 외고)를 늘렸다. 지배자들은 획일적인 교육, 교육의 질 저하 운운하며 평준화를 비난했다. 교원성과급과 교원평가가 도입됐다. 교사와 학교를 경쟁시키고 통제를 강화하려는 일련의 정책들은 전교조 등 교사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혔다.
돌이켜 보면 고교평준화제도를 도입하면서 동시에 평준화의 보완책으로 특목고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고교평준화 정책은 지배계급과 중간계급에서 크게 반발하면서 확산 속도가 더뎠다. 노태우 정부는 평준화 폐지를 원했으나 87년 투쟁의 여파로 밀어붙이지 못했다. 그러나 그때 과학고와 외고가 설립되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는 자사고를 시범 실시했고, 노무현 정부는 특목고를 대거 늘렸다. 이명박 정부의 고교 다양화 정책은 수직적인 고교 서열 체제를 완성했다. 현재 특권학교(특목고와 자사고)의 비중은 5퍼센트가 넘는데, 이는 평준화 이전 명문고(경기고, 경복고 등) 선발인원을 넘어선다. 중등교육이 확대되던 시기에 실시된 평준화 효과가 사라지고 중등교육의 계층화가 되레 심화됐다.
고등교육에서는 대학평가와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그동안 양적으로 팽창해 온 ‘과잉교육’ 문제를 해결하고, 산업 변화에 맞춰 대학·학과를 재조직하려는 것이었다. 대학특성화가 강조되고, 대학평가를 통해 재정을 차등 지원해 소위 경쟁력 있는 대학에 집중 투자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2004년부터 정원 감축을 유도하면서, 모든 대학에 지원하는 일반지원 방식을 폐지하고, 선택과 집중에 의한 선별지원 방식으로 전환했다. BK21에서부터 최근의 산업연계교육활성화선도대학 사업(프라임 사업)까지 모두 고등교육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며 정부가 추진한 사업이었다. 한편, 대학 정원감축과 고졸 취업 활성화 정책, 그리고 경제 위기 여파 등으로 2008년 83.8퍼센트의 대학진학률은 2017년 69.9퍼센트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직업계고의 고졸취업률은 19퍼센트에서 50.6퍼센트로 증가했다. 사실상 고등교육의 축소가 진행돼 온 것이다.
자본주의가 구조적 위기를 겪으면서 지배계급은 대중교육의 팽창기처럼 학교교육 확대에 투자할 동기와 능력이 줄어들었다. 침체에 빠진 경제는 대중교육이 (특히 고등교육이) 배출하는 노동력을 충분히 흡수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은 교육받을 기회를 축소하고 교육의 계층화를 심화시킨다. 교육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고 교육 경쟁을 강화해 차별을 더욱 확대한다. 2000년대 이후 심화된 입시경쟁교육, 고교 서열화와 대학서열화, 그리고 교육 불평등은 그것의 결과이다.
최근 경제 위기, 산업의 변화(이른바 4차 산업혁명), 학령인구 감소(생산가능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교육적 변화가 한창 진행 중이다. 진로·직업교육 강화, 고졸취업활성화(선취업 후학습, 일학습 병행제), 고교학점제 등. 우려스럽게도 교육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킬 정책들이다.
새로운 교육은 어떻게 가능한가?
대중교육의 역사는 자본주의에서 학교교육이 자본 축적 방식의 변화에 조응해 변화해 왔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물론 자본과 국가가 원하는 대로 관철되지는 못했다. 노동계급의 저항에 부딪혀 타협하기도 하고 노동계급 투쟁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기도 했다.
이 글에서는 전혀 다루지 못했지만, 자본주의 교육이 시작되면서 그것을 바꾸고자 하는 노력도 함께 시작됐다. 자본주의 교육의 역사는 새로운 교육을 실현하려는 투쟁과 실천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본주의 교육의 계급적 구실이 바뀌지 않는 한 근본적인 변화에는 한계가 있다.
52 대학 간 서열도 존재한다. 헬싱키대학이 대표적인 명문대다.
자본주의 하에서도 “질 높은 평등교육”이 가능한 사례로 흔히 핀란드를 꼽는다. 실제로 핀란드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높은 수준의 교육복지와 평등지향 교육을 자랑한다. 그러나 핀란드는 결코 에듀토피아가 아니다. 경쟁이 없다는 것도 순전한 오해다. 핀란드에는 엄연히 입시경쟁이 존재한다. 법대, 의대, 사범대 등 인기학과는 경쟁률이 10대 1이 넘는다. 학생들은 입시준비를 위해 사설학원을 다니거나 개인과외를 받기도 한다. 핀란드 교육시스템이 한국보다 백 번 낫다고 해서, 자본주의 체제에서 학교교육의 구실, 교육의 계급적 성격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핀란드에도 교육 불평등이 주요한 사회적 문제 중 하나이다. 특히,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학생들은 기초학력 미달자가 많다.54 그러나 핀란드에서는 1990년대부터 경기 침체를 겪으면서 신자유주의 교육 개혁이 추진됐고,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그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학교선택제가 도입된 후 고등학교 간 경쟁과 격차가 커졌다. 대학 법인화, 민영화, 대학 구조조정, 산학협력 강화 등으로 대학은 시장논리에 더욱 종속됐다. 55 정부의 교육 이전금 삭감으로 교육복지가 후퇴하고 교사들이 일시적으로 해고되는 일들이 벌어졌다. 자본주의 국가는 경제 위기에 직면하면 교육 재정을 감축하고 착취율을 높이기 위해 교육에 경쟁과 통제를 강화한다. 교육개혁이 전진뿐 아니라 후퇴를 하는 이유다.
계급투쟁의 결과 일시적으로 평등교육이나 교육복지를 쟁취했다 하더라도 영원히 유지되거나 일관되게 확대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핀란드의 ‘평등교육’은 1970~1980년대 사민주의 정당, 경제 호황, 강력한 노동운동 등 특정한 역사적 조건들의 산물이었다. 1968반란의 영향도 컸다.물론 자본주의의 교육 모순을 완화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들이 필요하고 투쟁을 통해 어느 정도 일시적 성과를 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을 자유롭고 전면적으로 발달시키는 교육은 경쟁과 착취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와 결코 양립할 수 없다.
위대한 마르크스주의 심리학자인 비고츠키는 인간의식 발달의 원천을 사회적 관계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발달의 동력을 협력과 자유의지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사회적 관계를 착취와 억압으로 왜곡시킨다. 협력과 자유의지가 아니라 경쟁과 소외가 만연해 있다. 자본주의 교육은 인간발달을 체계적으로 제약하고 억압한다.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생산력 발전에 질곡이 되듯, 자본주의적 학교교육은 인간의 잠재력을 발달시키는 데 걸림돌이 된다. 교육의 근본적 변화를 위해서는 교육을 바꾸는 투쟁이 세상을 바꾸는 투쟁과 연결돼야 한다.
주
- 김종엽 2003, p58. ↩
- “심각한 ‘양육 양극화’ ... 사교육비가 주범”, 〈한겨례신문〉 2017년 1월 16일자. ↩
- “부자들의 학맥 루트 재벌 명문대 진학 비결은?”, 〈여성조선〉 2018년 10월 31일자. ↩
- EBS 다큐프라임 교육대기획 〈대학입시의 진실〉. ↩
- “재벌가 자제들은 어떤 학교를 다닐까?”, 〈일요서울〉 2014년 8월 11일자. ↩
- “재벌3세, 그들만의 특별한 진학코스”, 〈중앙일보〉(TONG), 2016년 10월 16일자. ↩
- “재벌 딸·며느리, 외국인학교 열광하는 이유는?”, 〈머니투데이〉 2012년 9월 14일자. ↩
- “국제학교 연간 학비 5700만 원 ... 대학의 8.5배”, 〈베리타스알파〉 2013년 7월 2일자. ↩
- “국제학교 성적표를 들춰보다”, 〈중앙일보〉 2017년 1월 25일자. ↩
- 2019년 10월 사교육걱정-리얼미터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10명 가운데 9명이 “한국 교육제도는 부모 특권을 대물림시키는 정도가 심각하다”고 봤다. ↩
- “있는 집 애들 만 서울대...”, 〈오마이뉴스〉 2019년 6월 19일자. ↩
- 대학교육연구소 2014. ↩
- ‘흙수저’는 ‘노오력’해도 ‘흙수저’?, 〈한겨례신문〉 2015년 10월 16일자. ↩
- 신동준 외 2015. ↩
- 백승주 2017. ↩
- 구인회 2016. ↩
- 유명한 콜먼 보고서(1966)는 학생 60만 명, 교사 6만 명, 4000개 학교를 대상으로 방대한 연구작업을 진행한 후,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학생의 가정환경’과 ‘친한 급우의 가정환경’ 두 요소뿐이라는 점을 밝혀냈다. ↩
- 주OECD대한민국대표부 2010. ↩
- Unicef 2018. ↩
- “주당 학습시간 80시간...”, 〈오마이뉴스〉 2017년 11월 21일자. ↩
- “고교생 57퍼센트가 하루 6시간도 못 자...”, 〈중앙일보〉 2017년 9월 19일자. ↩
- “극단적 선택 아동•청소년 1.5배 급증”, 〈경향신문〉 2019년 10월 6일자. ↩
- 보건복지부 중앙자살예방센터 2018. ↩
- 통계청 2019. ↩
- “학교폭력 피해자 하루에 108명...”, 〈에듀인뉴스〉 2019년 9월 29일자. ↩
- 교육부 2017. ↩
- 교육부 2017. ↩
- 이윤미 2001, pp15-16. ↩
- 윤종희 외 2005, p1. ↩
-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보울스·진티스(1986)의 제6장에서 제9장까지를 보라. ↩
- 이윤미 2001, pp16-26. ↩
- 보울스·진티스 1986, p201. ↩
- 보울스·진티스 1986, p201. ↩
- 보울스·진티스 1986, p200. ↩
- 보울스·진티스 1986, pp216-219. ↩
- 보울스·진티스 1986, pp220-221. ↩
- 보울스·진티스 1986, pp232-237. ↩
- 이건만 1994, pp77-78. ↩
- 보울스·진티스 1986, p230. ↩
- 보울스·진티스 1986, p239. ↩
- 보울스·진티스 1986, p239. ↩
- 보울스·진티스 1986, p248. ↩
- 보울스·진티스 1986, p245. ↩
- 보울스·진티스 1986, p251. ↩
- 보울스·진티스 1986, pp253-260. ↩
- Bale & Knopp 2012, p23. ↩
- 윤종희 외 2005, p45. ↩
- 윤종희 외 2005, p46. ↩
- 송경원 2001, p40; 여유진 외 2007, pp23-24. ↩
- 송경원 2001, pp39-40. ↩
- 송경원 2001, pp47-48; 여유진 외 2007, p19. ↩
- “‘평등교육’ 핀란드에도 ‘쪽집게 과외’ 있어요”, 〈오마이뉴스〉 2010년 12월 17일자. ↩
- “핀란드의 초·중학교에서의 지역 간 교육격차 현황 및 해소 방안”, 《한국교육개발원 해외교육동향》 2017년 2월 22일. ↩
- 정진희 2010, p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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