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고전 읽기
《공산당 선언》
마르크스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출발점
이번 호부터 혁명적 사회주의 전통의 주요 사상가들이 쓴 가장 중요한 책들을 소개한다. 《공산당 선언》은 마르크스주의를 처음 대중적으로 표현한 책이자 마르크스·엥겔스의 사상에 대한 가장 훌륭한 입문서다. 다음 호에는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쓴 《공상에서 과학으로 ― 사회주의의 발전》을 소개한다.
《공산당 선언》은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 소책자다. 이 선언은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소규모 혁명 조직인 ‘공산주의자동맹’의 강령을 설명한 것이다.
이 소책자는 1848년 유럽 혁명 전야에 출판됐다. 이 혁명은 프랑스에서 시작해 곧 독일로 번졌고 유럽 전역으로 확산됐다. 당시 많은 노동자들은 과거 부르주아 혁명에서처럼 자본가들이 봉건제에 맞서 투쟁을 이끌 것이라 생각했지만, 자본가들은 봉건 왕정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계급을 더 두려워했다. 그래서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은 주로 노동계급이었다. 당시 혁명은 패배했지만 이 사회가 화해할 수 없는 적대적인 양대 계급 —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 으로 나뉘어져 있음을 보여 줬다.
《공산당 선언》은 역사유물론적으로 인류의 역사와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비판한다.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국제 노동계급의 투쟁을 강조한다. 이 소책자는 사회의 혁명적 변화를 위한 길잡이로서 많은 영감을 줄 것이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공산당 선언》은 네 장으로 이뤄져 있다. 1장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는 자본주의 체제를 기막히게 분석하고 계급과 계급투쟁을 다룬다. 2장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에서는 둘의 관계와 공산주의자의 임무를 설명하고, 3장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문헌’에서는 당대 유행한 다양한 사회주의 경향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공산당 선언》에 등장하는 ‘사회주의’라는 용어는 당시 맥락에서는 사회 개혁 운동을 일컫고, ‘공산주의자’는 오늘날로 치면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을 칭하니 이를 잘 구분해 읽어야 한다. 마지막 장은 ‘여러 반대당들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입장’을 다룬다.
《공산당 선언》은 발간된 지 170년이 넘은 고전이지만 핵심 내용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자본주의의 동역학과 노동계급의 투쟁 잠재력, 계급투쟁의 중요성을 다룬 부분이 특히 그렇다.
이 책은 자본주의 체제가 갓 태어났을 때 쓰였지만, 체제의 동역학을 꿰뚫고 있는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지 알게 한다.
이 책은 먼저 자본주의의 출현부터 자본주의의 노쇠한 미래까지 다루는데, 자본주의가 봉건제 사회 내부에서 어떻게 발생했고 혁명적 위기가 어떻게 초래됐는지를 서술하는 부분이 꽤 인상적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가 이전 사회와는 비할 데 없이 거대한 생산력을 발전시켰지만, 자본가들을 위해 더 많은 부를 창출하는 체제의 동역학이 고질적인 병폐와 불합리성을 낳는다고 설명한다. 그 결과 자본주의는 거듭 불황에 처한다. 이 위기는 두 사람이 “사회적 전염병”이라 부른 과잉 생산을 낳는다.
이 책의 백미는 노동계급을 다룬 부분이다. 오늘날 사회 개혁을 바라며 자본주의(의 폐해)를 비판하는 사람은 많지만 노동계급의 역사적 구실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거의 드물다. 오히려 마르크스의 계급 개념을 부정하는 주장들이 넘쳐난다. ‘불안정 노동이 증가해서 노동계급은 힘이 약화되고 단결하기 어렵다’, ‘일부 노동계급은 특권층이다’, ‘계급 말고도 성, 인종 등 다양한 정체성이 중요하다’ 등.
이런 주장들의 핵심에는 노동계급이 변했다는 가정이 깔려 있다. 물론 이 책이 쓰인 1840년대와 비교하면 노동계급의 형태와 내적 구성은 변했다. 하지만 노동계급이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아니고,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공공연하게 끊임없이” 계급투쟁도 벌어지고 있다.
“부르주아지는 무엇보다 자신의 무덤을 파는 사람들[노동계급]을 스스로 만들어 냈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노동계급의 규모가 커진다. 그들은 도시들에 대규모로 집중돼 있고 집단적인 힘을 창출한다.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이전 사회의 피착취 계급과 확연히 다르다. 노동계급은 역사상 가장 똑똑한 피지배 계급이다. “지배적인 사상은 항상 지배계급의 사상”이고 지배자들은 자신이 소유한 이데올로기 생산수단을 이용해 노동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지만, 자본주의가 생산성을 높이려고 노동계급을 교육시킨 덕분에 노동계급은 세계를 이해하는 능력을 발전시키게 됐다.
무엇보다, 노동계급은 혁명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강력한 계급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오직 프롤레타리아 계급만이 진정으로 혁명적”이고 “다수의 이해관계를 위한 엄청난 다수의 자립적인 운동”이라고 썼다.
국가
당시 지배자들과 운동 내 경쟁 세력들은 공산주의자들이 소유, 조국과 국적, 가족 등을 폐지시키려 한다고 비난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소유 폐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공산주의를 특징짓는 것은 소유 일반의 폐지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 폐지이다.”
국가에 대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통찰을 살펴보자. 두 사람은 자본가가 “인구를 밀집시키고, 생산수단을 한 곳으로 모으고, 소유를 소수의 손에 집중시켜” “정치적 중앙집중화”인 “하나의 국가, 하나의 정부, 하나의 법”을 만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대의 국가 권력은 전체 부르주아지의 공동 사업을 관장하는 위원회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국가를 활용해 자본주의를 개혁하려는 전략과는 정면에서 충돌하는 주장이다.
전 세계 주요 정부들이 노동계급의 일자리와 복지 확대보다 기업 지원과 군사비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는 것이나, 최근 미국 경찰이 인종 차별 반대 운동에 보인 무자비한 폭력은 자본주의 국가의 본질을 잘 보여 준다. 마르크스는 노동계급의 생활수준이 올라가고, 일부 문제들이 국가 개입으로 개선되더라도 자본주의 국가의 근본적인 계급적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가가 계급 중립적인 기구가 아니라, 근본에서 자본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주장은 완전히 옳다. 물론 사회적 위기가 매우 심각하면 국가가 자본의 이해관계와 일시 긴장을 빚을 수 있고, 국가가 독자적인 이해관계를 추구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혁명에서 노동계급이 취할 조처를 이렇게 말했다. “프롤레타리아는 자신의 정치적 지배력을 이용해서 점차 부르주아지의 자본을 모두 빼앗고, 모든 생산수단을 국가(이때의 국가는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를 뜻한다)의 수중으로 집중시키고, 전체 생산력을 최대한 급속하게 증대시킬 것이다.”
《공산당 선언》은 프롤레타리아의 권력 장악을 혁명적 행위로 간주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실천을 통해 자본주의가 국가가 파괴돼야 함을 배웠다. 1872년 독일어판 서문은 1871년 파리 코뮌의 교훈을 언급했다. “코뮌은 ‘노동계급은 완벽한 국가기구를 단순히 소유하여 자신의 목적에 맞게 작동시킬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국유화와 사회주의를 결코 동의어로 보지 않았다. 엥겔스는 《공상에서 과학으로》에서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국가 소유로 바뀌어도 근본적 생산관계나 자본주의적 축적의 동역학은 바뀌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오늘날 코로나19와 경제 위기 시기에 자본주의 국가가 개입을 늘리고 일부 기업들을 국유화하는 것을 두고 사회주의 조처라고 보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와 아무 관계가 없다. 자본주의 국가가 이런 조처들을 취하는 것은 체제를 위기에서 구출하고 안정화시키기 위한 것일 뿐이다. 물론 사회주의자들이 기업이 파산했을 때 노동자들의 일자리 보장을 위한 (영구) 국유화를 전술적으로 요구할 수 있다. 또, 국가에 복지를 확대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두고 결코 사회주의라고 부르지 않는다.
혁명적 사회주의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지배자들에게 일련의 개혁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그들을 설득함으로써 노동계급의 비참함을 해결하려고 했던 공상적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예리하게 구별했다. 《공산당 선언》은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 노동계급을 고통받는 존재로만 부각시키고 계급 적대를 초월하려는 반면, 공산주의자들은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을 주장한다고 둘의 핵심적 차이점을 지적했다.
《공산당 선언》은 마르크스주의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필독서다. 물론 이 소책자의 모든 것 — 예컨대, 2장의 1840년대 공산주의자들의 당면 행동을 위한 10가지 요구들 — 을 오늘날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스스로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변함없는 진실이다. 노동계급은 결코 주변적인 사회 집단이 아니다. 당장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는 데서도 돌봄, 보건의료, 택배 등 노동계급의 구실이 결정적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또한 《공산당 선언》은 국제 노동계급의 투쟁과 저항을 위한 선언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공산주의는 단지 한 다발의 좋은 사상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이익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의 이론적 명제들은 ... 존재하는 계급투쟁을 … 일반적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공산당 선언》의 유명한 마지막 문구는 자본주의를 전복하기 위한 오늘날의 투쟁에서도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경구이다. “우리가 잃을 것은 쇠사슬이요, 우리에겐 쟁취할 세계가 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MARX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