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이론 심층 탐구
자본주의 국가의 다양한 형태
이 글은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1997년 3월 방한해 비공개 강연한 것을 녹취한 것이다. 캘리니코스가 이 강연을 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부르주아 민주주의, 파시즘, 국가와 자본의 관계 등을 매우 간결하고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어, 최근 국내 진보진영에서 진행되는 파시즘이나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논의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먼저, 형태가 다양하긴 해도 자본주의 국가는 근본적으로 자본가 계급의 도구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형태가 다양해도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가 계급이 필요하고,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위해 작용한다. 더구나 군부와 경찰 등 국가의 억압 기구는 자본가 계급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 노릇을 한다.
그럼에도, 이보다 부차적이긴 하지만 자본주의 국가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 예컨대 부르주아 민주주의, 파시즘, 군사독재, 국가자본주의 등의 체제가 있는데, 이 중 부르주아 민주주의, 즉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것들을 권위주의라 한다.
자본주의 국가의 다양한 형태를 살펴볼 때 두 가지 잘못을 경계해야 한다. 하나는 상이한 형태들이 본질의 차이를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자본가 지배의 한 형태가 아니라고 본다. 우파 사회민주주의의 시조인 베른슈타인은 자유민주주의가 계급 정부의 폐지를 뜻한다고 주장했다. 달리 말해, 의회 민주주의에서는 더는 자본가 계급이 사회를 지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잘못된 견해다. 레닌이 지적했듯이, 부르주아 민주주의도 다른 모든 자본주의 국가 형태와 꼭 마찬가지로 부르주아 독재의 한 형태다.
또 다른 잘못은 이 다양한 형태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없다고 보는 것이다. 고전적 사례를 들면, 1920년대 말과 1930년대 초에 스탈린주의가 파시즘에 관해 주장한 바이다. 당시 스탈린주의자들은 파시스트 체제와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들은 1933년 히틀러의 집권을 적극적으로 저지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올바른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은 다양한 자본주의 국가 형태의 차이를 구분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파시즘이 하등 다를 바 없다고 봐서는 안 된다.
이것은 단순히 정치 구조의 겉모습 차이 문제가 아니다. 즉, 부르주아 민주주의에는 선거가 있다든가, 국가자본주의는 일당 국가라든가 하는 등등의 사실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형식적인 정치적 차이는 다양한 자본주의 국가 형태에 존재하는 사회적 내용의 차이를 반영한다. 자본주의 국가 형태는 각각 국가와 자본가 계급의 다양한 관계나 국가와 노동계급의 다양한 관계를 구현하고 또 그러한 관계를 조직하는 데 이바지한다.
이것은 자본가 계급이 단지 강제력, 즉 폭력으로만 지배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중요한 사실과 관계 있다. 때때로 트로츠키는 “총검을 가지고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지만 그 위에 앉는 것만큼은 할 수 없다”는 나폴레옹의 말을 인용했다. 달리 말해, 단지 탄압만으로 지배하는 순전한 군사독재는 겉으로는 강력해 보이지만, 탄압에만 기대므로 실제로는 매우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안정된 자본주의 국가는 지배를 위해 대중 또는 적어도 대중 일부의 동의와 지지를 조직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자본주의 국가 형태가 다양하다는 점의 중요성은 바로 국가가 적어도 노동계급 일부의 동의를 구하는 상이한 방식과 관계가 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이 점을 부르주아 민주주의 사례에서 뚜렷이 볼 수 있다. 트로츠키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사회적 내용이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라고 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부르주아 민주주의 구조 안에서 성장해 존속할 수 있도록 자본가 계급이 허용한 노동계급 대중 조직들이 바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사회적 내용이라는 것이다. 즉,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지배계급이 조직 노동계급의 세력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들을 국가의 정치 구조 안에 통합하는 자본주의 국가 형태이다.
여기에는 특정 조건들이 포함된다. 첫째는 정치와 경제의 분리다. 즉, 한편에는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투쟁 등 경제적 쟁점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의회 선거나 대통령 선거 등과 관계된 정치적 쟁점들이 있는 것이다. 일반으로 이것은 노동계급 운동 안에서 일종의 분업을 조장하는데, 경제투쟁은 노동조합이 책임지고 선거에서 경합하는 것은 개혁주의 정당이 책임지는 식이다.
둘째는 노동조합 관료의 존재다. 노동조합 관료는 조직 노동계급에 기반을 두고 노동자를 체제에 묶어두는 노사간 타협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사회계층이다. 그래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 노동계급의 통합은 노조 관료의 중재 구실에 아슬아슬하게 의존한다.
그러므로 파시스트나 군부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파괴하려 한다면 이에 무관심해선 절대 안 된다. 왜냐하면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파괴되면 자주적 노동계급 조직들도 파괴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트로츠키는 1920년대 말~1930년대 초 독일 관련 저작들에서 반反파시즘 공동전선을 주창했던 것이다. 파시스트들이 집권하면 혁명가든 개혁주의자든 노조 관료든 모두 박살날 것이므로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올바로 파악하려면 부르주아 민주주의 국가가 점차 부지불식간에 파시즘으로 변한다는 스탈린주의의 ‘파시즘화’론을 배격해야 한다. 남한 좌파가 부르주아 민주주의 구조 안에서 움직이는 매우 우익적인 체제와 파시스트 체제의 차이를 흐리는 것도 이와 관계 있다. 파시즘은 옛 정치 구조가 와해되고 노동계급에 대한 체계적인 공포정치와 공격이 있다는 점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예리하게 분리되고 둘 사이엔 단절이 있다.
파시즘
그렇다면, 이제 파시즘의 고유한 특징을 살펴보면서 파시즘과 그 밖의 부르주아 국가 형태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쁘띠부르주아 대중 운동이 집권한 것이 바로 파시스트 체제다. 단지 쁘띠부르주아 대중이 지지한다는 뜻에서뿐 아니라, 파시스트 운동에 동기를 부여하고 운동을 결속시키는 이데올로기가 쁘띠부르주아지의 분노와 반란을 일종의 ‘반동적 유토피아’(자본과 노동의 차이가 마치 마술처럼 사라져버린 유토피아)로 돌리는 사이비 혁명 이데올로기라는 뜻에서도 그렇다. 나치 독일에서 나치는 여러 계급을 하나로 결속시키는 이러한 유토피아를 “민족공동체(국가공동체)”라고 불렀다.
파시스트 체제의 주된 특징은 두 가지다. 첫째는 노동계급 조직들을 총체적으로 파괴해서 노동계급을 원자화한다는 것이다. 파시스트들은 이 일을 군부보다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군부는 기껏해야 사람들에게 발포하고 사람들을 감옥이나 수용소에 처넣을 수 있을 뿐이지만, 파시스트들은 대중 조직을 가지고 있으므로 모든 지역사회, 모든 노동계급 거주지역, 심지어 모든 공장에 앞잡이와 지지자들이 있어 이들을 이용해 감시하고 통제해서 노동계급 조직들이 복구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파시스트 국가의 둘째 특징은 집권한 파시스트 체제가 지배계급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파시즘을 “독점자본의 반동적 독재(나 금융자본의 테러 독재)”로 정의하는 스탈린주의는 틀렸다. 이런 규정을 따른다면 파시즘이 한낱 지배계급의 꼭두각시에 불과한 것이 되는데, 이는 그릇된 것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파시즘도 계급들 사이의 특정 관계를, 그리고 국가와 계급들 사이의 특정 관계를 구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치 체제에서는 노동계급 조직들이 파괴당했을 뿐 아니라 나치 체제와 대자본들 사이에도 어느 정도 갈등과 충돌이 있었다. 예를 들어, 히틀러 체제는 점점 더 국가자본주의적인 정책들을 추구해 헤르만 괴링 공장을 건설했고, 특히 유럽 점령지에서는 더 많은 신규 산업체들을 건설했다. 바꿔 말해, 나치는 독일 사적 자본과 경쟁하면서 국가자본주의를 건설했던 것이다. 이러한 갈등은 핵심적 국가 관료인 나치 SS[친위대]가 나치 체제 말기인 1944년 7월 22일에 일어난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을 명목으로 지도적 지배계급 인물들을 대거 학살한 사건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이러한 갈등은 물론 상대적인 것이다. 핵심 쟁점들에서 나치와 지배계급은 이해관계가 같았다. 특히 그들은 모두 조직 노동계급을 파괴하길 원했고, 또 독일 자본의 핵심 부분과 히틀러는 함께 제국주의적 확장(특히 동유럽으로) 정책을 추구했다.
그러나 많은 좌파들처럼 파시즘이라는 개념을 느슨하게 사용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파시즘은 특정한 사회적 기반이 있으므로 단순히 억압적인 우익 정부를 파시즘이라고 규정해서는 안 된다.
국가와 자본
이와 관련해 마르크스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발전시킨 보나파르티즘 개념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 1848년 혁명 패배 이후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을 타도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지는 못하고 국가와 부르주아지도 노동계급을 분쇄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지는 못한,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세력 평형 상태가 형성된 덕분에 루이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독재를 창출할 수 있었다. 계급들 사이에 그러한 균형이 형성돼 정치적 공백이 만들어지면서 루이 나폴레옹 같은 순전한 모험가가 그 공백을 메울 수 있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루이 나폴레옹 국가가 그럼에도 자본주의 국가라고 강조했다. 그는 루이 나폴레옹이 1848년 혁명 후 상황을 안정시키려 했고 프랑스 산업화를 촉진하는 정책들을 추구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보나파르티즘 개념을 일반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예컨대 트로츠키는 파시즘과 스탈린주의 국가가 보나파르티즘 국가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자마다 보나파르티즘 개념이 서로 다르다.
마르크스의 나폴레옹 국가 분석을 이처럼 확장하려는 시도가 그리 유용하지 못하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예컨대, 1920년대 중엽 트로츠키가 발전시킨 분석을 보면, 볼셰비키 당 안에서 스탈린은 쁘띠부르주아지의 이익을 반영하는 우파 부하린과 노동계급의 이익을 반영하는 좌파 트로츠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중도파를 대표한다. 그러나 스탈린이 중간에서 평형을 잡는 자가 아니었으므로 이것은 틀린 분석이다. 스탈린은 실제로는 러시아의 새로운 자본주의적 지배계급으로서 일정한 형체를 갖춰 나아가던 관료의 이익을 반영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치 독일에서 히틀러는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지 않았다. 히틀러는 공포 통치로 노동계급을 체계적으로 분쇄한 체제를 지도했다.
그럼에도 마르크스의 보나파르티즘 분석을 확장하려 한 시도들에서 유용한 게 있다면, 그것은 자본주의 국가 일반이 자본가 계급과 어느 정도 독립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공산당 선언》에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국가가 부르주아지의 공동 업무를 처리하는 위원회라고 했다. 이것은 부르주아지가 둘러앉아 무슨 일을 하라고 국가에 지시하면 대리인인 국가는 그대로 집행하기만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분석이다.
국가가 부르주아지의 대리인이 아닌 이유는 부분적으로 국가가 대중의 동의를 얻는 구실을 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즉,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국가는 자본가 계급과 별개인 것처럼 보일 필요가 있다. 국가는 계급 이익을 넘어선 국민의 이익(국익)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국가 관료는 이따금 자본가들이 지지하지 않는 정책도 추진할 수 있는 독자적인 물질적 이해관계가 있는 집단이다. 예컨대 국가 관료는 다른 국가에 맞서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국가를 원한다. 이 때문에 때때로 군비 지출을 위한 조세 부담이 증가해 사적 자본가들의 희망과 일치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크리스 하먼은 “오늘날의 국가와 자본주의”라는 논문에서 국가와 자본의 관계를 구조적 상호의존 관계라고 불렀다. 요컨대 국가는 자본가 계급에 의존하고 자본가 계급은 국가에 의존하는 상호의존 관계이지만 둘의 이해관계가 같은 것은 아니며 때로 둘 사이에 갈등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국가가 자본과 조화를 이루는 이유는, 국가가 자본의 이익에 어긋나는 정책들을 추구하면 경제가 위기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 이것은 자금 해외 유출, 즉 자본 도피 형식으로 일어나는데, 그리 되면 국제 시장에서 그 나라의 통화 가치가 떨어지고 그 결과 경제가 위기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국가 관료에게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강력한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물자와 재원을 확보하자면 자본축적률이 높은 강력한 경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국가는 자본에 의존하고 흔히 자본가 계급의 필요에 부응하는 쪽으로 뒷걸음질친다.
국가자본주의
그럼에도 국가와 자본의 구조적 상호의존이라는 틀 안에서 국가 관료가 자신의 이익을 반영하는 나름의 이니셔티브를 발휘할 수 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더구나 국가자본주의를 이해하려면 이것을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국가자본주의의 발전은 자본으로부터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이 국가의 자본화라는 대립물로 전환하는 변증법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즉, 국가 관료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본 축적 과정을 직접 촉진하고 통제하기 시작한다. 이 때문에 흔히 군사 경쟁이 일어난다. 경쟁자에 맞서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더구나 그 경쟁자가 자신보다 선진적인 제국주의 국가일 때 국가는 경제를 직접 통제하며 산업을 건설해 군사력을 증강하는 경제적 토대를 세우고자 한다.
엥겔스는 1892년 9월에 다니엘손에게 보낸 편지에서 국가 독립(민족 자립)에는 경제 발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쟁이 대규모 산업에 의존하는 것이라면 어떤 국가든 군사적 경쟁을 계속하려면 대규모 산업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1890년대의 제정 러시아에서조차 공업화를 장려한 것은 국가였다.
국가자본주의의 발전, 심지어 부분적인 발전만으로도 크리스 하먼이 “정치적 자본가”라고 부른 집단이 등장해서 자본가 계급의 구조가 바뀌게 된다. 그들은 노동자를 착취하고 자본 축적을 지도하는 자본가이지만 공공부문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들은 국영 기업의 사장이지 민간 부문의 소유주가 아니다. 강력한 사적 자본가 계급이 발전해 있는데 정치적 자본가가 떠오르면, 정치적 자본가는 사적 자본가와 적어도 어느 정도는 경쟁하거나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예컨대 나치 체제에서 헤르만 괴링 공장은 정치적 자본가가 기존 사적 자본가들에게 도전한 사례다.
국가가 이니셔티브를 발휘해 강력한 대규모 사적 자본가들이 생겨나고 그들이 국가에 의존하는 또 다른 역사적 상황에서는 정치적 자본가와 사적 자본가가 서로 경쟁하거나 갈등하기보다는 오히려 특혜와 상납, 보호와 후원 등 각종 부패한 유착 관계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유럽에서는 전후 이탈리아가 두드러진 예이고 남한도 그렇다.
국가자본주의 발전 과정이 극한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는 완전한 국가자본주의에서는 사적 자본가가 없기 때문에 정치적 자본가가 지배계급이다. 클리프가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라고 부른 이 완전한 국가자본주의는 독특한 역사적 조건에서 스탈린주의 국가들에서만 실현됐는데 이 국가 형태 역시 독특하다.
그러한 국가 형태의 첫째 특징은 경제와 정치 사이에 외형상 구별이 없다는 점이다. 경제적 지배계급이 경제를 지배하는 이유는 그들이 국가를 통제하기 때문이다.
둘째 특징은 노동계급 조직들이 탄압당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내가 앞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설명하며 지적했듯이 노동자들이 순전히 경제 쟁점들에만 주의를 집중하고 정치 쟁점에서는 경제적 힘을 직접 사용하지 않을 때 노동계급 조직들이 자본주의 국가에 통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특징은 심지어 자유민주주의조차 없고 대체로 일당 국가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경제 권력이 정치 권력에 달려 있으므로 지배계급이 [다른 계급과 — 옮긴이] 정치 권력을 공유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국가는 당 관료이다. 이들은 옛 소련에서는 ‘노멘클라투라’라고 불렸다. 지배계급 내부의 갈등은 바로 여기, 즉 당 관료 내에서 일어난다. 지배계급 내부 갈등은 공개적이지 않다. 내분은 매스 미디어나 당내 경쟁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노멘클라투라 구조 안에서 암투로 나타난다.
이 국가 형태는 스탈린주의에서만 순수한 형태로 존재했다.
혼성형 국가자본주의
그러나 우리는 중간적 형태를 볼 수 있다. 이는 경제적으로는 사적 자본주의의 요소 일부와 국가자본주의의 요소 일부를 결합한 것이고, 정치적으로는 방금 내가 묘사한 국가자본주의 체제의 요소 일부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요소 일부와 군사독재의 요소 일부를 결합한 국가 형태다. 특히 신흥공업국에서 가장 흔한 형태이다.
여기에서 두 가지 중요한 점이 도출된다. 첫째는 내가 앞에서 주로 자본주의 국가의 순수한 형태에 관해 논의했지만 현실에서는 흔히 이러한 순수 형태가 다양하게 결합한다는 점이다. 둘째는 이러한 결합이 구체적 조건에서는 지배계급 내에 엄청난 긴장과 갈등을 자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두드러진 사례는 1920년대 초에 이른바 ‘혁명’이 일어난 뒤 국가자본주의와 군사독재가 결합된 체제가 된 터키 국가다. 이것은 터키의 자본 축적 초기 국면이 국가자본주의에 바탕을 두고 전개됐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그러나 이제 터키는 꽤 강력한 사적 자본가 계급이 존재하는 비교적 발전한 산업 경제다.
이런 상황에서 터키가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왜냐하면 첫째, 기업인 계급과 군부 사이에서 벌어지는 온갖 긴장이 터키 국가를 불안정에 빠뜨리는 데 일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그러면서도 터키 부르주아지는 노동계급의 강력한 도전과 쿠르드족과 종교적 소수집단들의 저항을 겁내고 있으므로 언제든 군부의 품으로 뛰어들 준비가 돼 있기 때문이다. 셋째, 앞의 두 가지 조건으로 말미암아 지배계급은 내분해 있고 일관성이 없고, 이 때문에 아래로부터의 도전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국가 형태를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사례가 바로 터키다. 그리고 나는 남한도 터키와 비슷한 사례로 여기에 포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국가 형태 관련 논의는 노동계급 운동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우리는 자본주의 국가 일반에 관해 근본적으로 이해해야 할 뿐 아니라 우리의 목표가 가장 민주적 형태의 자본주의 국가조차 없애고 대신에 진정한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세우는 것이라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MARX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