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트랜스젠더 차별의 현실과 쟁점:
트랜스 여성의 숙명여대 입학 포기 사건을 돌아보며
올해 초 성전환 수술을 한 변희수 하사의 강제 전역과 트랜스 여성의 숙명여대 합격과 입학 포기 소식이 논란이 되며 한국 사회에 트랜스젠더 이슈가 뜨거웠다. 이 사건은 트랜스젠더가 내 동료나 학우로서 일상 ‘어디에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려 주는 한편, 한국에서 트랜스젠더가 처한 차별의 현실과 관련 쟁점들도 수면 위로 떠올렸다.
2001년 하리수 씨가 연예계에 데뷔하면서 한국 사회에 트랜스젠더의 존재가 처음으로 널리 알려졌다. 오늘날 여러 분야에서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트랜스젠더들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또, 1990년대만 하더라도 트랜스젠더들은 자신이 누구이고(종종 동성애자라고 오해했다고 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관련 정보를 얻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당사자 커뮤니티와 단체들이 여럿 있고 비교적 쉽게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성소수자 일반과 마찬가지로 트랜스젠더에 포용적인 태도도 늘고 있다. 1월 갤럽이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성전환 수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질문에 ‘개인 사정이므로 할 수 있다’라는 답변이 2001년 51퍼센트에서 2020년 60퍼센트로 늘었다. 20~40대는 80퍼센트였다. ‘트랜스 여성(MTF)은 여성이다’는 데에도 응답자 절반이 동의했고, 20~30대는 약 70퍼센트가 동의했다.
하지만 이런 인식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트랜스젠더들은 끔찍한 차별의 현실에서 살아 가고 있다.
트랜스젠더가 마주하는 차별의 현실
1 이 판결의 당사자는 57세 트랜스 남성(FTM)이었다. 그는 남성으로 살았고 육체 노동을 하며 간신히 돈을 모아 마흔이 넘어서 성전환 수술을 하고 결혼도 했다. 2 하지만 57세가 돼서야 주민번호 앞자리가 1로 바뀌었다.
한국에서는 2006년에 와서야 비로소 대법원에서 처음 성별 변경을 허가하고 관련 예규를 제정했다.그때까지 그는 57년간 신분증을 요구받을 때마다(핸드폰을 개통하거나, 병원에 가거나, 통장을 만들거나 투표장에 가거나 구직하거나 등) 가슴을 졸였을 것이다. (동성혼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15년을 함께 산 아내와 혼인 신고도 할 수 없었다. 한국은 모든 국민에게 부여되는 주민등록번호에 성별 정보가 명시되기 때문에, 성별 정보가 외형과 다른 트랜스젠더들은 일상 생활에 큰 불편과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데 이로부터 1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이렇게 살고 있다. 성별 정정에 대한 대법원의 예규가 지나치게 엄격하고 법원이 보수적이어서 법적 성별을 변경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3 가장 문제가 되는 생식 능력 제거, 외부 성기를 포함한 성전환 수술 등은 여전히 명시돼 있다. 개별 법원에서 간혹 완화된 판결을 내린 사례도 있지만 4 대법원의 가이드라인이 있는 한 이런 사례는 예외적일 수밖에 없다.
대법원 예규는 법원의 내부적 지침일 뿐이지만, 지난 14년간 사실상 성별 정정의 ‘허가 요건’처럼 작용해 왔다. 여러 비판 속에서 이 ‘요건’(현재는 ‘참고사항’)들은 부분적으로 완화돼 왔지만그러나 트랜스젠더가 모두 성전환 수술을 원하는 것이 아니거니와 원한다고 하더라도 높은 비용 때문에 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많은 트랜스젠더가 적절한 의료적 조처를 통해 신체적인 전환을 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노동계급과 서민층의 트랜스젠더는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고액의 수술 비용을 마련하기가 힘들다.
5 정신과 진단, 호르몬 치료, 기타 외과적 수술, 그리고 수술 이후 상당 기간 일을 할 수 없다는 걸 감안하면 이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실제로 국내 최대 규모의 성소수자 설문조사인 〈한국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보고서〉(2014)에서도 트랜스젠더 173명 중 105명(60.7%)이 바로 경제적 이유 때문에 성전환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2017년 조사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성기 제거 수술은 300만~400만 원, 가슴 수술은 370만~530만 원, 성기 재건 수술은 1500만~2000만 원이 든다.주민번호 성별 정보와 외양이 일치하지 않은 트랜스젠더들은 구직 면접에서도 거부당하기 일쑤다. 그래서 4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열악한 직장을 전전하기도 한다. 고려대 김승섭 교수 연구팀이 트랜스젠더 200여 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절반 가까이가 연평균 가구소득이 1000만 원 미만(27.4퍼센트) 혹은 1000만 원 이상 2000만 원 미만(21퍼센트)이었다. 실업 또는 무직이 46.6퍼센트, 비정규직이 30.8퍼센트였다. 일자리를 구하더라도 취약한 처지에 있기 때문에 부당한 요구도 받아들이기 쉽다. 경제 위기와 코로나19가 트랜스젠더의 삶을 더욱 악화시켰을 것이 뻔하다.
트랜스젠더 청소년은 더 취약한 처지에 있다. 많은 트랜스젠더 청소년이 성별 이분법적인 복장과 두발 규제, 학교 폭력 등으로 학교를 포기한다. 성전환수술을 위해서 알바 전선에 뛰어드는 경우도 많다. 하루라도 일찍 신체적 전환을 하고 법적 성별을 변경하는 게 그나마 나은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에 공부, 진학, 꿈이 모두 그 다음으로 유예되곤 한다. 한 트랜스젠더 청소년의 인터뷰가 그 심정을 잘 보여 준다.
트랜스젠더들의 출발선이 다른 이들에 비해 매우 다르다고 느껴져요. 기회가 있어도, 능력이 있어도 단순히 정체성 하나 때문에 여러 기회비용들을 돈 버는 데에만 써야 하는 게 참 불합리하다고 느껴져요. 트랜스젠더가 아니라서 알바를 안 했다면 공부만 했을 거예요. … 돈. 정말 돈이 문제예요. 6
이런 현실은 트랜스젠더 차별 역시 계급적 문제라는 걸 보여 준다. 차별로 인해 가장 고통받는 트랜스젠더는 노동계급과 서민층이다. 모든 트랜스젠더들이 고통받지만, 돈이 많으면 이를 완화할 여러 수단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노동계급과 서민층의 트랜스젠더들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의료적 조처를 포기하기 쉽다. 그래서 까다로운 법적 성별 정정 기준을 통과할 수 없고, 이 때문에 다시 열악한 일자리를 강요받는 악순환을 겪는다. 경제 위기로 임금과 노동조건이 악화되면 트랜스젠더처럼 천대받는 집단은 더욱 고통받는다.
개인의 성별 정체성은 허가의 대상이 아니다. 개인의 의사만으로도 법적 성별 정정이 가능해야 한다. 이미 스페인, 포르투갈,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네덜란드,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등 많은 나라에서 성별 정정 요건으로 성전환 수술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 이를 명백하게 위헌이라고 판단한 나라도 많다. 아일랜드는 자신의 의사만으로 성별을 바꿀 수 있다. 성별 정정을 원하면 세 장 정도의 문서를 작성하면 된다.
그러나 법적 성별 정정이 쉬워져도 이것으로는 불충분하다. 트랜스젠더의 ‘생존’과 연결된 의료적 조처에 대한 국가의 지원(의료보험 급여화), 청소년 트랜스젠더를 위한 무료 상담소, 안전하고 깨끗한 성중립 화장실(1인용 화장실) 설치 등의 조처가 없다면 트랜스젠더의 삶이 크게 개선되기 힘들 것이다. 결국 돈이 드는 문제이고, 이 체제에서 재정 사용의 우선순위 문제가 제기된다.
우파의 혐오 선동과 문재인 정부의 한결같은 외면
우파들은 편견을 부추기며 트랜스젠더의 처지를 더 악화시킨다. 특히, 한국에서는 보수 개신교계가 2000년대 중반부터 ‘반反 동성애 운동’을 주도해 왔다.
성적 지향(누구에게 끌리는가)과 성별 정체성은 개념적으로 다르지만, 사회적 인식과 반응이라는 측면에서는 뚜렷이 구분되지 않을 수 있다. 예컨대 일부 트랜스젠더는 동성애자일 수 있고, 어떤 트랜스젠더가 성적 지향을 유지하며 성별을 전환하면 타인은 그 사람의 성적 지향이 달라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동성애 혐오와 트랜스젠더 혐오는 결합되기도 한다.
보수 개신교 역시 동성애를 비난하는 것과 거의 똑같은 논리로 트랜스젠더를 비난한다. 요컨대 ‘트랜스젠더는 창조질서에 반하는 비정상이고, 트랜스젠더의 권리 인정은 동성혼을 허용하는 것이며(남성이 여성으로 성별을 바꿔 여성과 결혼할 수 있기 때문), 가정을 해체해 사회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이들은 올해 3월에 대법원이 성별 정정 예규를 일부 완화하는 것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며 법적 성별 정정이 엄격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우파 정치인 일부도 보수 개신교계와 끈끈히 연결돼 있다. 그들 자신이 그 일부로서 성소수자를 혐오할 뿐 아니라, 보수 개신교계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종종 성소수자를 공격한다. 지난해 11월 안상수 의원(당시 자유한국당)이 개인의 성별을 “선택할 수 없고 변경하기 어려운 … 신체적 특징”으로 규정하는 조항을 국가인권위법에 삽입하려고 시도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한편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임기 내내 성소수자의 요구를 외면하고 차별을 존속해 왔다. 변희수 하사의 강제 전역이 “일할 권리와 성 정체성에 기반한 차별을 금지하는 국제인권법 위반”이라는 유엔 인권이사회의 지적에 대해서도 정부는 적법한 절차였다면서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에 대해서 또다시 “사회적 합의”를 운운했다.
법원이 트랜스젠더의 법적 성별 정정 요건을 일부 완화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핵심 제약을 지우지 않고 있고, 국방부는 변희수 하사의 강제 전역을 고수하고 있다. 성기 수술하지 않은 트랜스젠더 여성을 병역기피자로 몰아 고발하는 작태는 드물어졌지만, 트랜스젠더는 군대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다수인 국회에서 차별금지법 하나 발의하려고 해도 발의 요건(국회의원 10명)을 채우기가 쉽지 않다. 지난 총선 당시 민주당 사무총장 윤호중은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 “선거에서 이슈가 되는 게 좋지 않을 것”이라며 성소수자 차별 문제를 무시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집권당의 전형적 태도를 보여 준 것이다. 이런 무시 속에서 국제성소수자협회(ILGA) ‘무지개지수’ 한국지표는 문재인 정부 들어 꾸준히 하락세다. 2017년 11.85퍼센트, 2018년 11.7퍼센트, 2019년 8.08퍼센트.
트랜스젠더를 반대하는 일부 급진 페미니즘
올해 초 트랜스 여성 A씨가 숙명여자대학교 입학을 포기한 데는 트랜스젠더를 반대하는 급진 페미니스트들의 활동이 있었다. 이들은 A씨의 합격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온라인을 중심으로 입학 반대 서명을 받고 입학처와 동문회를 압박했다. 몇몇 여자대학교의 동아리들이 아예 법적 성별 변경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까지 발표했다.
8 2019년에는 일부 여자대학들에서 급진 페미니즘 동아리들을 결성해 활동을 확장했다. 이들은 서구에서 트랜스젠더 배척으로 악명 높은 페미니스트인 실라 제프리스 등의 주장에 의존한다. ‘열다북스’가 관련 서적들을 번역 출간했고, 지난해 실라 제프리스를 초청해 강연회도 열었다.
한국에서 트랜스젠더를 반대하는 페미니즘은 웹사이트 ‘워마드’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해서 2017년 이후 온라인을 중심으로 활동했다.그러나 이들이 여성 일반은 물론, 페미니즘 전체나 급진 페미니즘 전체도 대변하지 않는다. 서구에서 글로리아 스타이넘이나 캐서린 매키넌 같은 유명한 급진 페미니스트들이 트랜스젠더를 지지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주류 여성단체, 페미니스트 학자, 활동가들이 A씨의 입학을 지지했다.
트랜스젠더 배척 활동 때문에 A씨가 안타깝게 입학을 포기했지만, 이런 배척이 대중 정서의 반영은 아니었다. 어렵게 성전환수술과 법적 성별 정정까지 마치고 대학에 합격해 공부하겠다는 학생을 단지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내치려고 하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혀를 내둘렀다. 주류 언론들도 대체로 A씨에게 온정적으로 보도했다. 이 사건은 오히려 트랜스젠더 배척에 나선 일부 급진 페미니스트들의 극성스러운 편협함만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트랜스젠더에 관한 이들의 핵심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성별 정체성은 허구이며 따라서 트랜스 여성(MTF)는 남성이다. 둘째, 트랜스 여성은 잠재적 범죄자이며 여성 공간을 침해한다. 셋째, 트랜스젠더는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해 여성 차별에 기여한다.
그러나 첫째, 성별 정체성은 단순한 느낌이나 허위의식이 아니다. 많은 트랜스젠더들은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대해 아주 오래, 깊이 고민한다. 2차 성징을 거치는 시기에 성별 정체성과 생물학적 성 사이의 불화가 특히 심해지며 더욱 뚜렷해지기도 한다. 성별 정체성은 자신의 생물학적 성에 대한 내면적 인식과 사회의 성별 규범이 상호작용하면서 생겨나는 실재적인 것이다. 성별 정체성은 개인의 핵심 자아 중 하나로 그 자체로 존중 받아야 한다. 따라서 트랜스 여성은 여성이고, 트랜스 남성은 남성이다.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생물학적 본질주의에 따른 편협함과 자기중심주의를 드러내는 것이다.
둘째, 트랜스 여성이 위험하다는 것 역시 근거 없는 편견일 뿐이다. 트랜스젠더를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들은 불법촬영, 강간 등 성범죄 사건들을 근거로 사용하며 두려움을 부추긴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트랜스젠더와 아무 상관 없는 범죄들로 해외 반트랜스젠더 사이트의 내용들을 검증 없이 번역한 가짜 뉴스다. 설사 어떤 트랜스젠더 개인이 범죄를 저지른 것이 사실일지라도, 그것을 트랜스젠더 전체의 문제로 비약해서는 안 된다.
여자대학교는 이미 여성들만의 공간이 아닐 뿐더러, 트랜스 여성이 여성 화장실을 쓴다고 범죄가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출생 성별에 따라 화장실에 가도록 강제할 경우 폭력의 대상이 되는 것은 트랜스 여성이다. 트랜스 여성이 위험하다는 주장의 밑바탕에는 모든 남성이 잠재적 범죄자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 역시 잘못이다.
셋째, 성별 고정관념은 트랜스젠더가 아니라 이 체제가 체계적으로 부추기는 것이다. 트랜스젠더는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성별 고정관념에 반하기 때문에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 또한 트랜스젠더는 사회적으로 ‘반대의 성’으로 보여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그것은 법적 성별 정정의 한 요건이기도 하다. 게다가 어떤 여성이든(트랜스 여성이든 아니든) ‘탈코르셋’ 하지 않고 때로 ‘주류적 여성상’에 부합하려고 애쓴다고 하더라도 개인을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 ‘여성의 몸은 여성 자신의 것’이다.
‘남 대 여’ 급진 페미니즘의 난점
앞서 지적했듯이 급진 페미니스트들 중에서도 트랜스젠더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1960~1970년대 미국 여성운동에서 부상한 급진 페미니즘이 오늘날 한국에서 득세하고 있다. 우리 나라 진보적 여성운동은 거의 급진 페미니즘 사상의 영향 아래 있다고 볼 수 있다.
9 즉, 이 사회를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체제’인 ‘가부장제’나 ‘여성 혐오 사회’로 본다. 따라서 이들에게 남성은 지배자이자 가해자다. 트랜스젠더를 반대하는 급진 페미니즘이나 트랜스젠더를 옹호하는 급진 페미니즘이나 이 점을 근본에서 공유한다. 그래서 성별 이분법적인 급진 페미니즘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반감으로 미끄러지는 길을 열어 준다. 트랜스 여성도 어차피 남성이니 위험하다는 인식을 받아들이기 쉬워진다.
하지만 급진 페미니즘은 사회를 근본적으로 생산과 노동과 착취라는 면에서 규정하지 않고, 남성과 여성 사이의 위계로 조직돼 있다고 본다.10 트랜스젠더를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들은 A씨 입학 반대 운동에서도 그 논리로 ‘남성의 여성 공간 침해’와 ‘여성 안전’을 가장 부각했고 이것이 일부 젊은 여성들이 가진 안전에 대한 공포감과 맞물려 A씨 입학의 반대 여론을 이룬 것이다.
예컨대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한국의 거의 모든 페미니스트는 이를 “여성 혐오 살인”으로 규정했다. 또, 단지 이례적 사건이 아니라 남성에 의해 여성이 맞고 죽는 “일상”의 연장으로 과장했다. 여성 폭력 현실에 대한 이런 과장은 여성들에게 불필요한 위축감과 무력감을 주고, 여성 차별의 원인을 계급 체제가 아니라 엉뚱한 데서 찾게 되기 십상이다.11 . 정체성 정치는 계급을 가로질러 특정 차별을 겪는 사람만이 그 차별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그에 맞설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급진 페미니즘은 종종 ‘여성들의 연대’를 호소한다. 남성들과의 연대는 제한적이거나 형식적일 뿐이다. 이것을 더 일관되게 극단으로 밀어붙이면 ‘불편한 용기’ 시위에서처럼 아예 모든 남성을 배척하게 된다(분리주의). 그러다 보면 누가 ‘진짜 여성’인지 가려내는 게 중요해질 수 있다. 12
한편, 급진 페미니즘이 수용해 온 정체성 정치도 분열을 낳기 쉽다요컨대, 급진 페미니즘 사이에서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성소수자 연대를 둘러싸고 논쟁이 일고 있음에도, 주류 여성 단체들이 채택한 ‘남 대 여’ 식의 급진 페미니즘은 새 세대 여성들 일부에서 트랜스젠더 반대 주장이 수용되는 데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트랜스젠더를 반대하는 페미니즘을 “지배적 남성 권력에 대한 분노가 길을 잃고 사회적 소수자에게 향한 것”(권김현영)으로, 즉 단순한 경로 이탈 쯤으로 보는 것은 급진 페미니즘의 난점을 직시하기를 회피하는 것이다.
트랜스젠더를 옹호하는 입장들의 강점과 약점
13 대체로 이들은 여성 내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트랜스 여성과의 연대를 추구한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교차성 개념을 사용한다.
A씨를 지지하며 많은 여성·성소수자 단체와 동아리, 학자, 활동가들이 성명·논평을 발표했다.① 교차성
교차성 개념은 한 개인에게서도 성별, 섹슈얼리티, 민족, 계급, 장애 등 여러 차별이 교차한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단일한 정체성과 분리주의를 반대하고 차별받는 사람들 간의 연대를 강조하는 장점이 있다. ‘복합 차별’을 다룰 수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 있다.
하지만 교차성 주장은 차별의 양상을 묘사하는 데에서 나아가 차별의 원인은 무엇인지, 어떻게 저항할 것인지, 해방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등 결정적인 물음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한다. 또한 상호 관련된 여러 차별들을 동등하게 보면서 계급 문제를 여러 차별 중 하나로 국한시키는 문제가 있다.
차별은 계급 사회에서 소수의 지배계급이 다수인 피지배 계급을 분열시켜 지배하는 방법이다. 따라서 차별의 양상은 다양해도 차별은 계급 사회에 근원을 두고 있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특정 차별에 맞서 싸우는 것을 흠뻑 지지하면서도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는 사람들’인 노동계급의 투쟁의 결정적 중요성을 인식한다.
② 특권 이론
한 개인에게 “여러 정체성”이 있다고 인정하면서 종종 “우리는 약자인 동시에 특권을 가진 존재다”라며 특권 이론을 수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트랜스젠더가 아닌 사람들(‘시스’젠더)이 자신에게 부여된 권력을 자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에 따르면 A씨를 반대한 사람들은 “시스젠더 권력”을 행사한 것이다.
이런 주장은 단순히 ‘시스’젠더(혹은 이성애자, 백인)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트랜스젠더(또는 동성애자, 흑인)의 차별을 알고 이해하자는 좋은 취지를 넘어서는 것으로, 오히려 연대 강화에 해가 되기 쉽다. 주요 초점을 차별을 양산하는 사회가 아니라 개인들 간 불평등에 맞추기 때문이다. 그러면 집단적 저항을 고무하기보다 오히려 개인 간 분열과 반목을 야기하게 된다.
특권 이론에 따르면 ‘시스’젠더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자신의 권력에 반해 단지 지지자로 행동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차별에 맞서 싸우는 것이 그 차별을 겪는 사람뿐 아니라 모든 노동계급에게 이득이 된다고 주장한다.
특정 차별을 겪지 않는다고 해서 ‘특권’ 집단으로 취급한다면 도덕주의를 강화하며 자본주의 사회의 진정한 권력자들이 누구인지 가리는 효과를 낸다. 하지만 화장실을 편하게 갈 수 있다고 해서 특권을 가진 것도, 이득을 얻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관점은 트랜스젠더를 포함해 누구나 맘 편히 안전하게 화장실에 갈 수 있는 권리 등을 보장하도록 진정한 권력자들(국가와 기업주, 대학당국 등)에게 요구해야 하는 것이어야 한다.
③ 차별금지법 제정
〈한겨레〉, 〈경향신문〉 같은 중도진보계 언론과 많은 엔지오 활동가들은 A씨 입학 포기를 보며 그 대안으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다시금 강조했다. 가령 인권운동 사랑방 미류 상임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사태에서 무엇이 차별인지, 어떤 조치가 취해져야 하는지 규정·권고하는 정부 기능이 공백 상태였다 … 차별금지법 제정 등으로 왜곡된 논쟁 구도를 의미 있는 사회적 논의로 바꿔나가야 한다” 14
차별금지법 제정은 필요하다. 차별받을 때 최소한의 법적 구제 수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정당하다. 그러나 트랜스젠더를 둘러싼 운동 내 논쟁이라는 정치적 문제는 법의 부재 문제로 치환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트랜스젠더를 배척하는 주장들을 잘 반박하며 아래로부터 운동을 건설해 대중의 자신감과 의식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중도진보계 언론과 엔지오 활동가들은 아래로부터 투쟁을 건설하는 것보다 개혁 입법 활동에 주력하면서 차별금지법의 효과에 대해 환상을 부추긴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해외 나라들에서도 여전히 많은 차별들이 광범하게 일어난다. 근본적으로 차별은 자본주의 체제의 수혜자들이 체계적으로 부추기기 때문에 개혁 입법만으로는 차별을 없앨 수 없다. 한국에도 이미 개별적 차별금지법인 장애인차별금지법, 연령차별금지법, 비정규직차별금지법, 남녀고용평등법이 있지만, 두루 알다시피 차별이 없어지고 평등이 실현되지는 않았다.
④ 진보 정당들의 입장
보수 야당의 성소수자 혐오와 여당의 외면 속에서 정의당은 공식 정치에서 성소수자들을 대변하는 일정 구실을 해 왔다. 이번 국회에서 차별금지법 발의를 주도하기도 했다. 정의당은 트랜스젠더(변희수 하사와 숙명여대에 합격한 A씨)에 대해서도 지지 입장을 표명했다. 이후 총선에서 비례대표 후보로 트랜스젠더 당사자 임푸른 씨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정의당은 트랜스젠더 방어 문제에서 약점도 보여 줬다. A씨의 입학 포기 이후 나온 정의당 브리핑은 A씨의 입학 포기를 안타까워하면서도, A씨의 입학에 반대해 학교 당국에 압력을 넣었던 페미니스트들을 비판하지 않고 그 책임을 엉뚱하게 “정부와 교육 당국”으로 돌렸다. 당 안팎에서 논란이 생길 수 있는 페미니즘 논쟁을 회피한 것이다.
진보당도 성소수자와 트랜스젠더를 지지하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스탈린주의가 성소수자에 대해서 나쁜 입장을 취해 온 과거에 비해 진보한 것이다. 이번에도 ‘민중당(전 진보당) 인권위원회’ 수준에서 변희수 하사의 강제 전역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A씨와 관련해서는 입장을 내지 않았다. 이 역시 페미니즘 내 뜨거운 문제에 대해서는 회피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트랜스젠더 해방을 위한 정치
앞으로도 대학, 직장, 미디어 등 여러 영역에서 트랜스젠더 권리를 둘러싼 싸움은 늘어날 수 있다. 당장 변희수 하사의 강제 전역 취소를 위한 법정 투쟁도 진행 중이다.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트랜스젠더 혐오에 맞서고, 이들의 권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싸움에 참가해 효과적 지지를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차별에 맞서 효과적으로 싸우고 나아가 해방을 위해서는 차별의 근원을 이해해야 한다.
차별은 인간 본성이 아니라 특수한 역사적 산물이다. 트랜스젠더 차별은 계급 사회가 등장하면서부터 여성 차별과 함께 생겨났다. 농경이 발전하면서 무거운 쟁기의 사용, 장거리 무역, 빈번해진 전쟁 등으로 아이를 낳고 젖을 물리던 여성들은 점차 생산의 영역에서 밀려났다. 일부 남성들이 잉여생산물을 통제하는 지배계급이 되면서, 자신의 재산을 합법적으로 상속할 수 있는 적자가 중요해졌고, 남성이 우위를 점하는 배타적인 가족이 발전했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자유는 옥죄어졌다. 더 엄격한 성 역할과 성별 행동 규제가 생겼고, 크로스드레싱과 같은 다양한 성적 표현·행위도 억압받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에서 가족제도는 노동인력을 재생산하는 핵심 제도로서 동성애·트랜스젠더 혐오와 차별을 양산한다. 또한 차별은 소수가 다수를 지배해야 하는 계급 사회에서 지배자들의 분열 지배 전략과도 관련 있다. 즉, 자본주의에서 지배계급이 착취를 위해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고자 여러 차별을 체계적으로 부추긴다.
그러므로 트랜스젠더 차별은 여성 차별과 긴밀한 관련이 있고, 둘 모두 자본주의의 구조와 작동 방식에서 비롯한다. 여성과 성소수자 해방을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가 폐지돼야 한다. 자본주의가 굴러가는 핵심 원동력은 임금 노동에 대한 착취에서 나온다. 그래서 계급 관계는 그저 여러 사회관계의 하나가 아니라 핵심적인 사회관계다. 계급은 차별의 원천일 뿐 아니라 권력의 원천이고 다양한 배경과 중첩되는 여러 차별을 겪는 사람들이 단결할 수 있는 잠재적 토대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이 거대한 투쟁에 나설 때 자신의 힘을 느끼고 지배계급에 맞서 모두 같은 이해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과정에서 기존에 갖고 있던 낡은 편견과 후진적 생각들도 버린다.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 잠재력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역사적으로도 계급투쟁이 성장했을 때 차별 반대 운동도 성장했다. 예컨대 러시아 혁명으로 많은 여성 개혁 입법이 이뤄졌고 가사의 사회화가 추진됐다. 동성애가 합법화됐고 여러 피억압 민족이 자결권을 인정받았다. 비록 내전과 혁명의 고립 속에서 부상한 스탈린주의 관료에 의해 혁명의 성과가 후퇴하고 사라졌지만 말이다.
모두가 자유로운 젠더 표현과 섹슈얼리티를 누릴 수 있는 사회는 자본주의에서 가능하지 않다. 이뿐만이 아니다. 오늘날 끊임없이 반복되는 경제 위기, 빈곤, 기후 위기, 전염병 확산, 전쟁 등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이 체제를 끝장내지 않으면 안 된다.
주
- 이전에도 하급심에서 성별 변경이 이뤄진 사례는 있다. 2000년 1월부터 2003년 8월 31일까지 성별 변경을 신청한 건수는 61건이고 이를 허가한 건수는 30건, 간성을 제외하면20건이다(간성은 출생 시 성별 기재에 오류가 있다고 인정된다). 전체 신청 건수의 절반 정도는 허가받지 못했고, 이 중에서도 불과 3분의 1만이 트랜스젠더에 해당하는 경우였다. 2006년 대법원 판결로 인해서 성별 변경에 대한 기본적인 법적 기준이 마련된 것이다. ↩
- 대법원 2004스42. ↩
- 올해 3월에 여덟 번째로 개정이 됐다. 핵심은 필수 서류를 ‘참고 서면’으로 바꾸고, 그동안 허가 요건처럼 작용한 ‘조사 사항’의 명칭을 ‘참고 사항’으로 바꿨다. 법원이 구체적 사건을 판단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사항 정도로 규정한 것이다. 이는 그동안의 변화 중 가장 크게 개선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너무 엄격하다. ↩
- 2013년 서울서부지방법원이 처음으로 외부 성기 성형 없이 FTM의 성별 정정을 허가했고, 2017년 청주지방법원이 외부 성기 성형 없이 MTF의 성별 정정을 허가했다. ↩
- ‘트랜스젠더는 정부의 케어를 받을 수 있을까?’, 《한겨레21》 2017년 12월 11일. ↩
- 청소년 트랜스젠더 인권모임 튤립연대 2018. ↩
-
‘무지개지수’는 성적지향·성별정체성 관련 법·정책의 유무를 표로 정리하고 지수를 계산한 것이다. 총 6개 영역별로(①평등과 차별금지 ②가족 ③혐오범죄와 혐오표현 ④트랜스젠더의 법적 성별변경과 신체 온전성 ⑤ 시민사회공간 ⑥난민) 세부적인 법·정책이 명시적으로 존재하고 있는지를 검토한다. 한국에서는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가 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매년 5월 17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을 기념해 보고서로 발간한다.
한편,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에 따르면, 2019년에 그 전해와 비교해서 무지개지수가 크게 감소한 것은, 성 특징을 이유로 한 차별 금지, 헌혈, 트랜스젠더 부모 신문 인정 등이 평가 항목에 추가돼 기존 항목의 지수가 조정됐는데 한국은 추가된 항목에 해당하는 사항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 - 2017년 온라인 상에서는 “여성 우선” 페미니즘 vs 상호교차성 페미니즘, ‘렏팸’ vs ‘스까페미’ 구도의 논쟁이 형성됐다. 이는 급진 페미니즘 내에서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소수자와의 연대 문제가 중요한 쟁점이 됐음을 보여 준다. ↩
- 최일붕 2018. ↩
- 이현주 2017. ↩
- 정체성 정치가 한국 여성·성소수자 운동에 어떻게 작용했고 그 강점과 약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분석한 다음 기사를 참고하시오. 정진희, ‘정체성 정치 ― 차별에 맞서는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 있을까?’, <노동자 연대> 322호. ↩
- 양효영 2020. ↩
- 이들 중 일부 성명과 논평을 엮어 책이 나왔다. 《우리는 자격 없는 여성들과 세상을 바꾼다》(와온). ↩
- ‘[가장 보통의 사람]불안이란 이름의 ‘혐오’… 트랜스젠더 배제한 ‘터프’ 해부하다’, <경향신문> 2020년 2월 21일. ↩
- 정진희 2020. ↩
참고 문헌
권김현영, A 외 23개 단체 2020, 《우리는 자격 없는 여성들과 세상을 바꾼다 ― 트랜스젠더 A를 향한 환대와 지지의 기록》, 와온
성전환자인권연대지렁이 2006, <성전환자인권실태조사보고서>
양효영 2020, ‘트랜스젠더와 일부 급진 페미니즘’, <노동자 연대> 314호.
이현주 2017, ‘강남역 살인, 흉악범죄, 페미니즘’, 《마르크스21》 20호.
이효민 2019, ‘페미니즘 정치학의 급진적 재구성: 한국 ‘TERF’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중심으로’, 《미디어, 젠더&문화》 34권 3호.
정진희 2020, ‘정체성 정치 ― 차별에 맞서는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 있을까?’, <노동자 연대> 322호.
청소년 트랜스젠더 인권모임 튤립연대 인터뷰 2018, blog.naver.com/youthtranskor/221388445378.
최일붕 2018, ‘급진적 페미니즘과 분리적 페미니즘, 어떻게 볼 것인가?’, <노동자 연대> 26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