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고전 읽기
《공상에서 과학으로 — 사회주의의 발전》
마르크스주의의 정수를 담은 최상의 입문서
자본주의가 더는 지속돼서는 안 되는 이유를 극명히 보여 주는 요즘이다. 10년 넘도록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제 위기, 끝이 보이지 않는 감염병 대유행, 기후 위기, 미·중 갈등을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적 경쟁 심화, 미국에서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정치 위기와 혼란, 그 틈에 곳곳에서 다시 고개를 쳐드는 극우와 파시즘 등.
그만큼 강박적 이윤 축적 경쟁이 아니라 호혜·평등·자유를 기본 원리로 운영되는 사회주의적 대안이 절실하다. 그런데 사회주의는 무엇이고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쓴《공상에서 과학으로 — 사회주의의 발전》(이하 《공상에서 과학으로》)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공상에서 과학으로》는 지금은 완전히 잊혀진 어느 학자와의 논쟁에서 시작된 책으로 1880년에 처음 출간됐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도 매우 유용하다. 오늘날의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에도 공상적 사회주의의 요소들과 약점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공상에서 과학으로》를 “과학적 사회주의의 입문”이라고 불렀고,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이 책을 거듭거듭 인용했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의 강점과 약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9세기 초에 활동한 사회주의자 생시몽, 샤를 푸리에, 로버트 오언의 사상을 ‘공상적’ 사회주의라고 불렀다.
3인의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그에 앞서 등장한 계몽주의의 후예였고, 산업혁명과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영향을 받았다. 자유·평등·우애라는 부르주아 혁명의 기치와 혁명 후 나타난 자본주의적 현실은 큰 격차가 있었다. 이 격차에 대한 분노가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의 출발점이었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당시 사회를 “사회적 지옥”이라고 맹비난하며 해방된 미래 사회를 꿈꿨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에 나타나는 일부 터무니없는 상상을 쉽게 비웃는 사람도 있겠지만,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에게서 “환상이라는 껍데기를 뚫고 나오는 엄청나게 원대한 사상과 사상의 맹아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우리 독일 사회주의자들은 생시몽·푸리에·오언의 … 후예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강렬한 거부감을 드러내며 사회주의의 해방적 측면을 강조했다. 그들은 계급사회가 사람들의 욕망과 능력을 억누르는 다양한 제약과 차별에 반대했다. 예를 들어 푸리에는 부르주아 가족을 아주 매섭게 비판했고 여성 해방을 옹호했고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고 “어느 사회든 여성 해방의 정도가 곧 일반적 해방의 자연적 척도라고 언명했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계몽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인간 본성을 사회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았고, 인간 본성이 변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차이도 있었다. 계몽주의자들은 이기심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이라고 본 반면,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이기심뿐 아니라 협동심과 인정 등도 인간 본성에 포함된다고 봤다. 푸리에는 그 범위를 12가지로 넓혀서, 인간은 물질적 만족뿐 아니라 사랑과 우정도 갈망하고,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도 원하지만 아주 다양한 일이나 취미도 즐기고 싶어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자본주의가 인간의 필요와 욕망 가운데 일부를 부정하기 때문에 부자연스러운 사회 형태라는 것을 함축한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봉건 질서뿐 아니라 사적 소유와 경쟁을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 질서도 억압의 원천이라고 봤다. 그리고 인간은 생산수단을 집단으로 소유하고 지배하는 사회에서만 자아를 실현할 수 있다고 봤다.
문제는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에게 해방된 미래 사회를 실현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비판이었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주의 사상의 점진적 확산을 통해 세계가 변할 것이라고 봤다. 그들은 이런저런 모델을 제시했지만 그 모델을 실현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어떤 세력의 힘이 필요한지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공상적”이었던 것이다.
공상적 사회주의자 3인의 약점은 어느 정도 그 시대의 한계였다. 그들이 활동하던 19세기 초에는 노동계급과 노동계급의 투쟁이 시작 단계에 있던 때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1844년 독일 슐레지엔 노동자 투쟁과 1838~1848년 영국 차티스트 운동을 겪으며 노동계급이 사회 변화의 가장 중요한 세력이라는 점을 배웠다.
그럼에도 사상 투쟁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관점은 대중에 대한 계몽을 중시할 수밖에 없고, 대중을 계몽할 선각자는 이미 잘못된 사상에서 벗어나 있는 존재로 설정되기 때문에, 거의 필연적으로 엘리트주의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런 종류의 사회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모든 계급 적대를 훨씬 초월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공산당 선언》)
계급을 초월해 모두가 동의할 만한 사회상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계속해서 더 그럴싸한 계획과 정책을 내놓는 것에 골몰하게 된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노동계급의 결정적 중요성을 보지 못하고 “프롤레타리아트는 가장 고통받는 계급이라는 관점에서만 존재한다.” 그러니 자신들의 계획을 실현해 줄 세력으로 지배계급을 쳐다보게 된다. “그들은 계급을 구분하지 않고 사회 전반에, 아니 그중에서도 특히 지배계급에 호소하는 것이 습관이다.”(《공산당 선언》)
이런 공상적 사회주의의 약점을 요약해서 말하면, 사회 변화 방법의 공상성, 온정주의, 엘리트주의, 계획 만능주의, 혁명 반대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그들은 모든 정치적 행동, 특히 모든 혁명적 행동을 거부한다. 그들은 평화적인 수단으로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를,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작은 실험을 통해 그리고 본보기의 힘을 통해 새로운 사회 복음의 길을 닦기를 소망한다.”
후세대 공상적 사회주의자들로 가면 이 약점이 더욱 두드러진다. “공상적 사회주의·공산주의의 의의는 역사적 발전과 반비례한다. 현대의 계급투쟁이 발전해서 분명한 형태를 띠게 되는 만큼, … 이 공상적 공격은 모든 실천적 가치와 이론적 정당성을 잃는다. 따라서 이 체계의 창시자들은 많은 점에서 혁명적이었지만, 그 제자들은 모든 경우에 반동적 분파를 형성했다.” (《공산당 선언》) 오늘날의 공상적 개혁가들은 사회주의 지향은 물론이고 반자본주의까지도 내던졌다.
국유화와 사회주의
2장에서 엥겔스는 중세부터 당대까지 철학사를 짧게 개괄한 다음, 유물론과 변증법을 종합한 관점을 제시한다. 3장에서는 2장에서 개진한 관점을 적용해 자본주의의 역사를 간략히 설명하며 자본주의의 모순을 지목한다. 생산수단과 노동자들이 대규모 공장과 사무실로 집중되면서 이제 생산은 정말로 사회적으로 이뤄지는데, 그 생산물은 여전히 개인들이 소유하고 지배한다는 것이다. 이 사회화된 생산과 사유화된 소유·지배라는 모순 속에서 경제 위기, 실업, 빈곤, 불평등 등이 생겨난다고 엥겔스는 설명한다.
3장 전체가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데, 오늘날 상황을 고려하면 그중에서도 자본의 집중 경향, 국가 개입의 확대, 국유화를 다루는 부분이 특히 눈에 들어온다.
오늘날 사회주의 지향은 물론 반자본주의까지도 내던진 많은 사람들이 대는 근거는 옛 소련 등 ‘현실 사회주의’ 실험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옛 소련과 현재의 중국과 북한을 사회주의로 보는 까닭은 그 나라 국가가 나라 경제의 대부분이나 핵심 부문을 직접 통제했다는 사실이다.
여러 위기가 낳은 고통이 노동계급과 서민에게 몰리는 지금 상황에서 국가가 개입해 일자리와 소득을 보전하라고 요구하고 투쟁하는 것은 정당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국유화를 사회주의의 동의어로 여기는 것은 심히 부적절하다. 국유화는 사회주의의 필수 요건도 되지 못한다. 엥겔스는 국유화와 사회주의를 같은 것으로 혼동하는 당시 좌파들을 다음과 같이 꼬집었다.
최근에 비스마르크가 산업 시설을 국유화한 이래로, 얼치기 사회주의가 나타나서는 국유화 일체를, 심지어 비스마르크의 국유화까지도 별 거리낌없이 사회주의적인 것으로 선언해 버리는 타락한 모습을 보인다. 때로는 아첨꾼 기질도 보인다. 담배 산업의 국유화가 사회주의적인 것이라면, … 육군의 피복창조차 사회주의 시설일 게다. 심지어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치하에 어느 교활한 자가 성매매 업소를 국유화하자고 진지하게 제안했는데, 이 제안이 실현됐다면 그 시설도 사회주의 시설일 게다.
자본의 집적과 집중 법칙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기업은 점점 커지고 소수의 손에 집중된다. 그럴수록 국가가 개입할 필요가 커지고 국가가 직접 지배하는 기업이나 부문도 나타난다. 그러나 그 역시 자본주의의 생산양식 안에서 기능하는 것이므로 자본주의적 성격은 그대로 남는다.
경제 위기가 이제 부르주아지에게는 현대의 생산력을 계속 관리해 나갈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면, 대규모 생산 시설이나 교통 기관이 주식회사나 트러스트나 국가의 소유물로 바뀌는 것은 … 부르주아지 자체가 필요 없어졌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제 자본가가 하는 사회적 기능이라고는 배당금을 챙기고, 이자 놀이를 하고, 자본가들끼리 서로 자본을 빼앗고 빼앗기는 주식시장에서 도박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
그러나 주식회사나 트러스트나 국가의 소유물로 바뀌더라도 그 생산력의 자본주의적 성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주식회사나 트러스트의 경우는 명백하다. 그리고 현대 국가 역시도, 노동자는 물론이고 개별 자본가들이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외적 조건을 해치는 것을 막고자 부르주아 사회가 채택한 조직일 뿐이다. 현대 국가는 그 형태가 어떻든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적 기구로, 자본가들의 국가이고 일국 총자본의 관념적 인격화다. 국가는 생산력을 계속해서 인수할수록 더 실질적인 총자본이 되고 국민을 더욱 착취하게 된다. 노동자는 여전히 임금노동자, 즉 프롤레타리아다. 자본주의적 관계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극에 이른다.
“가능성은 바로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인구의 압도 다수를 프롤레타리아로 바꿈으로써, 이 혁명을 성취하도록 내몰리는,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파멸하는 세력을 만들어 낸다.” 그 세력은 노동계급이다. 노동자 혁명은 자본가 계급을 타도해 사회화된 생산에서 자본주의적 굴레를 벗기고, 결국에는 계급 자체를 사라지게 할 출발점이 될 것이다.
계급 분화는 … 생산의 불충분함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 사회 계급의 폐지는 이런저런 특정 지배계급의 존재뿐 아니라 지배계급 일반의 존재, 따라서 계급 차별 자체의 존재가 시대착오적인 것이 될 만큼 역사적으로 진화한 사회를 전제로 한다. … 우리는 지금 그 지점에 도달해 있다. … 사회화된 생산을 가지고서,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물질적으로 풍족하고 나날이 더 풍족해지는 생활을, 그뿐 아니라 모두가 자유롭게 자신의 신체적·정신적 능력을 발전시키며 발휘할 수 있는 생활을 보장할 가능성, 그 가능성이 사상 최초로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엥겔스가 책의 마지막에 남겼듯이, 사회주의자는 노동계급이 그 가능성을 실현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것이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이론적 표현인 과학적 사회주의의 임무다.”
MARX21
주
- 이 글에 등장하는 인용문은 별도 표시가 없으면 모두 《공상에서 과학으로 – 사회주의의 발전》(범우사, 2006)에서 가져온 것이다. ‘마르크시스트 아카이브’에 있는 영어판을 참고해 번역을 다소 수정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