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37호를 내며
이번 호에 모두 다섯 편의 글을 실었다. 먼저, ‘현실 사회주의’라고 불리는 두 국가자본주의 체제 — 쿠바와 북한 — 의 모순을 다룬 글을 두 개 실었다. 2021년은 옛 소련이 붕괴한 지 30년이 되는 해이고, 그것은 과거지사가 아니라 여전히 좌파의 머리를 짓누르는 근본 문제로 남아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 잡지에서 관련 주제들을 몇 차례 더 실을 계획이다.
크리스 하먼의 ‘신화에 가려진 쿠바’는 라틴아메리카의 투쟁이 분출한 영향으로 쿠바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지던 2006년에 발표한 것이다. 옛 소련권이 몰락하고 스탈린주의가 심대하게 타격을 받았는데도 ‘쿠바식 사회주의’는 여전히 만만찮은 지지를 받고 있고, 피델 카스트로는 살아 생전에 쿠바 바깥의 많은 사람들에게 미국 제국주의에 오랫동안 맞선 인물로 존경받았다. 크리스 하먼은 쿠바 혁명의 기원, 전개 과정, 카스트로 정부의 통치 방식, 쿠바 경제의 세계경제 의존성이 낳은 경제적 취약성, 해결되지 않은 불평등 등을 설명하며, 미국 제국주의(의 협박과 금수령 등)에 맞서 쿠바를 방어하면서도 혁명적 운동에 보탤 것이 전혀 없는 ‘쿠바식 사회주의’를 지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김영익의 ‘핵·미사일과 경제난: 북한 국가자본주의의 근본 모순을 보여 주다’는 군비 증강과 주민 다수의 궁핍이 병존하는 북한의 현실은 미국을 비롯한 유엔의 대북 제재 탓도 있지만, 근본에서 북한 정부의 우선순위가 대중의 삶과 유리돼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북한 관료들은 미국이 후원하는 남한과의 군사적·경제적 경쟁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 주도 공업화를 추진하고 이를 위해 대중의 소비와 생활수준을 희생시켰는데, 이것은 사회주의적 조처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착취와 관계있다고 김영익은 주장한다.
커밀라 로일의 ‘마르크스주의와 인류세’는 인류세 개념의 유용성, 인류세의 기원, 기후 위기 해결책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들을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으로 다룬다. 일부 독자들에게 인류세가 낯선 용어일 수 있는데, 2000년대 이래로 이 용어는 소규모 과학자 집단을 넘어 꽤 광범하게 사용되고 있다. 커밀라 로일은 인류세라는 용어 자체를 거부하기보다 인류세의 원인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고,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정초하고 후대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발전시킨 방법론이 이런 이해를 위한 정교한 기초를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인류세 논의를 인간과 나머지 자연의 관계, 과학자들이 진보적 정치에서 할 수 있는 구실,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 환경 개념의 중요성 등에 관해 재고하고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자고 제안한다.
전주현의 ‘여성차별의 뿌리가 계급 사회에 있음을 밝히다’는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쓴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을 서평한 것이다. 혁명적 사회주의 전통의 주요 사상가들이 쓴 가장 중요한 책들을 소개하는 시리즈의 세 번째 편이다. 대다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차별이 인류 역사에서 언제나 존재해 왔다고 보기 때문에 차별을 끝장낼 수 있는 방법도 제시하지 못하는 반면, 엥겔스는 여성 차별의 기원이 계급 사회에 있음을 밝혀내고 따라서 계급 지배를 폐지하고 생산 방식을 혁명적으로 바꾸면 여성해방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훨씬 희망적이라고 전주현은 평가한다.
양효영의 ‘혐오 표현, 국가 규제 그리고 표현의 자유’는 세계적으로 우익이 표현의 자유를 앞세워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 표현을 정당화하는 것을 비판하며, 표현의 자유를 추상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고 누구의, 무엇을 위한 표현의 자유인가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우익의 혐오(표현)에 맞서 제출되는 여러 해결책들(국가 규제 등)의 한계에 대해 논평하며, 결국 대중 운동을 통해 대중에게 권능을 부여하는 것이 이 문제의 진정한 해결책임을 역설한다.
2020년 12월 29일
김인식(편집팀을 대표해)
MARX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