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에서 본 영국 노동당의 역사》 개정 증보판
창당부터 코빈의 실패까지: 개혁주의 120년사
《마르크스주의에서 본 영국 노동당의 역사》는 20세기 초 영국 노동당의 탄생부터 최근 코빈의 부상과 좌절까지 120년 역사를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번에 나온 개정판은 초판에서 두 장을 추가해 제러미 코빈의 실패라는 가장 최근의 역사까지 다뤘다는 점이 특히 뜻깊다.
개혁주의 정당을 마르크스주의로 분석하기
영국 노동당을 마르크스주의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영국 노동당은 개혁주의 정당의 전형적 사례다. 따라서 노동당의 역사를 살펴보며 얻을 수 있는 정치적 통찰과 교훈은 어느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영국 노동당이 평범한 노동 대중의 변화 열망에 힘입어 집권하고는 거듭 배신하는 것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그리스 시리자나 브라질 노동자당PT 등의 최근 집권 경험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만약 한국에서 개혁주의 정당이 집권하면 자본주의 국가 운영을 책임지면서 직면할 근본적 한계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개혁주의 정당은 집권하면 자신을 지지해 준 노동 대중의 염원보다 자본주의 체제의 논리를 따르게 된다. 자본주의 국가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자본가 및 다른 국가 관료들과 “수천 가닥의 끈”으로 연결되고, 이 과정에서 부패하기도 한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위기의 민주주의: 룰라에서 탄핵까지>를 보면, 브라질 노동자당 전 사무총장이자 대통령실장을 지낸 호베르투 카르발류는 노동자당이 부패에 연루되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노동자당은] 의회 활동에 익숙하면서 쉽게 거물들과 친구가 되었고 기업에서 선거 자금을 받게 되었다.”
사회 변화를 염원하는 많은 사람들은 사회운동의 지지를 받는 청렴하고 신념이 굳은 좌파 정치인이 개혁주의 정당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사회 변화를 이뤄낼 수 있다고 믿는다. 불과 몇 년 전 제러미 코빈이 영국 노동당 대표에 선출됐을 때도 그런 기대가 커졌다. 주요 선진 자본주의 나라에서 몇 세대 만에 신자유주의에 도전할 급진적 변화의 가능성이 생겼다는 기대 말이다. 안타깝게도 노동당 역사에서 가장 좌파적인 지도자였던 코빈의 도전은 실패했다.
코빈은 자본주의가 정해 놓은 틀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거센 압력을 영국 지배계급과 노동당 내 우파한테 받았고, 결국 이런 압력에 굴복했다. 나토 탈퇴 문제, 핵무기를 신형으로 교체하는 문제, 무엇보다 브렉시트 문제 등에서 거듭 후퇴하면서 말이다. 코빈이 양보할수록 우파들은 더 기세등등해졌다.
하지만 코빈의 실패는 단지 압력 때문만은 아니다. 자본주의 국가를 활용해 체제 내에서 변화를 추구한다는 개혁주의 전략이 근본적 한계를 드러냈다고 봐야 한다. 영국 노동당 좌파들은 의회 밖 투쟁의 필요성을 얘기할 때조차 투쟁을 선거 정치에 종속시킨다. 코빈이 부상할수록 노동당 집권에 대한 기대감과 환상이 커졌고, 실제 변화의 동력인 아래로부터의 투쟁은 약화됐다.
2019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해서 코빈이 총리로 선출됐다고 가정해 보자. 과연 코빈 정부가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 맞서 진지한 개혁을 추진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자본주의에서 진정한 권력은 군 장성, 자본가들, 고위 공무원들, 언론사 사장 등 선출되지 않는 세력에 있다. 이들에게는 선출된 좌파 정부의 개혁 시도를 좌절시킬 다양한 수단이 있다.
1970년대 초반에 노동당이 상위 25개 기업의 국유화, 민주적 산업 통제 등을 골자로 한 대안경제전략을 제시했을 때, 자본가들은 온갖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영국판 전경련의 회장 캠벨 애덤슨은 당시 “투자 파업, 즉 재계가 투자를 보류할 가능성, 세금 납부를 거부했을 경우의 문제들 그리고 합법적이지 않은 방안들도 논의했다”고 밝혔다. 코빈이 영국의 핵무기를 없앨 수 있다고 밝히자 영국 군 장성들은 좌시하지 않겠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이럴진대, 영국 노동당과 같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집권으로 이런 압력을 모두 물리칠 수 있으리라고, 또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이런 압력에 굴하지 않는 정당으로 근본적으로 바뀌어 진정한 사회 변화를 이룰 수 있으리라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책의 실천적 결론은 혁명적 대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선거에 초점을 맞추는 개혁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투쟁을 이끌고, 노동계급의 집단적 행동을 강조하는 독립적인 사회주의 정당이 필요하다고 일관되게 강조한다. 물론 그런 사회주의 정당은 노동당 좌파를 지지하는 대중과 연관 맺기 위해 전술적으로 유연하기도 해야 한다.
노동당의 역사를 더 큰 맥락에서 보기
이 책은 영국 노동당의 역사를 당내 지도자들이나 분파들의 역사, 혹은 노동당 정부의 색조 등만으로 협소하게 접근하지 않는다. 외려 역사의 진정한 동력, 즉 경제 상태와 노동계급의 힘에 주목한다.
1918년에 노동당이 ‘생산수단의 공동 소유’라는 당헌 4조를 채택하고, 1920년대에 자유당을 능가하는 진정한 대중 정당이 된 것은, 제1차세계대전으로 인한 급진화와 러시아 혁명 등의 영향으로 노동계급의 자신감이 부활하고, 그에 따라 영국 내부의 계급투쟁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1945년에 집권한 노동당 정부(애틀리 정부)가 자본주의 국가에 충성하면서도 노동자들에게 어느 정도 개혁을 제공해 준 것은 호황 덕분이었다. 반면, 1964년에 집권한 노동당 정부(윌슨 정부)가 노동자들의 임금을 억제하고 노동조합의 파업권을 공격한 것, 1974년에 집권한 노동당 정부가 (훗날 총리가 될 마거릿 대처보다 먼저) 신자유주의 공격을 하면서 노동자 투쟁의 성과를 후퇴시키고 노동계급의 사기를 떨어뜨린 것은, 경제 위기로 자본주의 국가가 노동자들의 희생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대처가 강행한 복지 삭감조차 1977년 노동당 정부가 감행한 맹공에 비하면 약과였다.
1997년에 집권한 노동당 정부(블레어 정부)는 집권 전부터 배신했고, 노동조합과 노골적으로 거리를 두면서 노동자들을 악랄하게 공격했다. 토니 블레어와 신新노동당의 경험은 노동당 역사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냉전 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대적 배경과 연관이 있다.
2015년 예상을 뒤집고 코빈이 당대표 선거에서 압승한 것도 더 큰 맥락, 즉 긴축에 맞선 저항이라는 세계 정치 상황이 반영된 것이기도 했다.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끊임없는 긴축과 무책임한 소수 특권층에 대한 격렬한 분노가 그리스의 시리자, 스페인의 포데모스, 아일랜드의 ‘이윤보다인간을’, 미국의 버니 샌더스와 미국민주사회당DSA, 남아공의 경제해방투사당 등의 부상으로 표현됐고, 영국에서는 코빈 선출로 표현됐다.
당시 영국에서 노동당 내 우파들은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줄이고 좌파의 도전을 차단하기 위해 당 대표 선출 방식을 변경했었다. 그런데 우파들의 예상과 달리 소액의 돈을 내고 당 지도부 경선 투표권을 얻은 ‘보통 사람들’은 좌경화하고 있었고, 코빈에 열광했던 것이다.
영국 노동당은 자본주의적 노동자 정당
영국 노동당은 지난 120년간 많은 변화를 거쳤다. 그러나 그 근본적 성격은 변함이 없다.
영국 노동당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의 사회적 기반을 제대로 분석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당의 성격과 전략은 사회적 기반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영국 노동당을 자본주의적 노동자 정당으로 규정한다.(이는 100여 년 전 러시아 혁명가 레닌이 내린 성격 규정과도 일치한다.) 모순적으로 보이는 이런 규정은, 영국 노동당의 모순적 구실을 반영한다. 이 당은 노동자 투쟁에서 생겨나지만 본질적으로 노동자 투쟁을 자본주의 체제 안에 묶어 두려 애쓰는 정당이다.
노동당의 권력 구조에서 구심 역할을 하는 것은 노동조합 상근 간부층 관료들이다. 이들이 노동조합에 대한 영향력을 기반으로 노동당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노동조합 관료들의 구실은 자신들이 대표하는 노동자들의 착취 조건을 놓고 자본과 협상하는 것이다. 노동조합 관료들은 때로 파업이나 투쟁을 이끌기도 하지만, 이러한 투쟁을 자본과의 협상을 위한 압력 수단으로 활용한다. 노동조합 관료들은 자본주의의 결과에 맞서 싸우지만 본인들이 협상 전문가 구실을 담당하는 체제 그 자체를 유지하는 데에 이해관계가 있기도 하다. 그래서 노동조합 상근 관료층은 노동당을 포함한 노동운동 내에서 근본적으로 보수적인 세력이다. 영국 노동당과 같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관료들의 정치적 표현체다.
이런 사회적 기반 때문에, 영국 노동당은 진정한 반자본주의 정당이었던 적이 없고 그럴 수도 없다. 또, 당내 좌파들이 당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도 없다.
트로츠키는 이렇게 썼다. “노동당은 노조 관료들의 정치적 위치 전환일 뿐이다. 노동당과 노조 관료들은 서로 원칙이 다른 것이 아니라 기술적 분업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함께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밑에서 떠받치고 있다.”
이런 분업은, 노동당이 ‘정치’를 담당하고, 노조 관료들이 ‘경제’를 담당하는 식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의 행동을 보조해 주기도 하고, 서로에 알리바이를 제공하기도 한다. 예컨대 노조 관료들은 ‘내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집권하니까 그때까지 기다리자’면서 투쟁을 자제시키고, 노동당은 집권 후 노동자들을 공격하면서 노동자 투쟁을 무마하기 위해 노조 관료의 협조를 필요로 하는 식이다.
물론 노동당 간부들과 노동조합 간부들이 받는 압력이 똑같지는 않다. 노동당 지도자들은 자본주의의 적대적 양대 계급인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을 중재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노동당이 집권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노동당 정부는 투표를 매개로 평범한 노동자들과 연결된다. 그런 점에서 생산 현장에서 만들어진 집단적 조직인 노동조합에 기반한 노동조합 관료와 다르다. 그리고 일단 집권하면, 노동당 총리와 장관들은 유권자들로부터 간접적 압력만 받는 채로 자본주의 국가를 책임지게 된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 자본주의 지배 구조에서 형식적 우두머리는 내각이지만, 실제 권한은 고위 공무원들, 군 장성들, 자본가들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국가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경쟁 압력을 받고, 자본 축적에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노동당이 아무리 노동계급과 자본주의 국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려 해도 결국 국가에 굴복하게 되는 근본 이유다.
개혁주의의 황금기, 애틀리 정부에 대한 신화
영국 노동당의 황금기라는 애틀리 정부(1945~1951년 재임)를 보자. 이 시기에 영국에서는 국유화와 사회보장제도가 확대됐다.
그러나 애틀리 정부의 국유화는 급진적 조처가 전혀 아니었고, 전쟁의 폐허 속에서 꼭 필요하지만 수익성은 별로 없는 산업들을 재건하기 위해 필요한 조처였다. 예컨대, 석탄 산업은 노후해서 정부가 손을 쓰지 않으면 경제 전체에 걸림돌이 될 지경이었다.
애틀리 정부의 국유화는 거액의 투자가 필요하지만 모든 산업의 가동에 필수적인 기반 시설들을 건설해 민간 부문의 부담을 덜어주는 구실을 했다. 애틀리의 국유화로 민간 부문이 오히려 강화했다. 그래서 자본가들도 이를 우려하지 않고 오히려 협력했다. 애틀리 전후로 총리를 지낸 보수당의 윈스턴 처질은 애틀리의 영국은행 국유화 조처에 전혀 반대하지 않았다.
애틀리 정부는 국유화된 산업의 경영 구조가 자본주의의 일반적 필요에만 도움이 되고 노동자 통제의 요소는 전혀 반영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새 경영진은 옛 경영진에서 충원됐고, 사기업의 위계적인 노사 관계를 그대로 모방했다.
애틀리 정부가 도입한 사회보장제도의 핵심은 국가보건서비스NHS였다. 이 서비스의 도입으로 저소득층이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이 역시 영국 자본주의의 필요에 부응하는 조처이기도 했다. 전후 호황기에 접어든 영국 자본주의에는 효율적인 교통과 에너지 공급이 필수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생산적이고 건강하고 교육받은 노동자들이 필수적이었다. 국가보건서비스는 최저 비용으로 노동자들의 건강과 능력을 유지하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국가보건서비스 도입을 주도한 아뉴린 베번은 반발하는 전문의들에 보수를 보장하고 사설 병상도 보유할 수 있게 양보했다. 1946년 11월에 의학 저널 《랜싯》은 국가보건서비스가 “1년 전의 예상과 달리 결코 사회주의적이지 않다”고 평가했다.
영국 노동당을 우호적으로 평가하는 개혁주의자들은 전후戰後 사회복지 확대를 노동당의 업적으로 여긴다. 그러나 1951~1964년 13년간 보수당이 집권했을 때도 사회복지 지출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이 지출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집권하지 못한 유럽 각국과 비교해 두드러지게 많은 것도 아니었다.
이 시기에 노동당 정부가 노동계급 지지자들을 소외시키지 않으면서도 지배계급을 만족시키는 마법을 부릴 수 있었던 것은, 영국 자본주의가 예외적인 장기 호황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애틀리 정부에 뒤이은 보수당 정부 시기에도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은 25퍼센트 이상 상승했고, 완전 고용이 유지됐으며, 사회복지도 유지됐던 것이다.
그렇다면 ‘황금기’의 노동당 정부는 노동자들을 얼마나 대변했을까? 애틀리 정부는 집권 동안 18차례나 군대를 동원해 파업을 파괴했다. 1947년에 집권한 노동당 정부는 금융 위기가 오자 육류·식용유·설탕 등 식료품 배급량을 감축하면서 긴축 정책을 시행했다. 노동자 세금 부담을 늘리는 취득세를 신설했고 임금을 억제했다.
냉전기에 노동당 정부는 영국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에 충실했다. 영국 역사상 최초로 평화 시기에 징병제를 실시했던 것도, 한국전쟁에 파병했던 것도,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의 민중 항쟁을 분쇄하는 데 도움을 준 것도 노동당 정부였다. 애틀리 정부는 몰래 핵무기 프로그램을 도입해서 핵폭탄을 제조하기도 했다.
영국 노동당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태도
사회주의자들이 직면하는 어려움은, 노동당이 집권 후 배신해 노동자들을 공격한다고 해서 노동계급의 개혁주의 의식이 자동으로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노동자들이 더 나은 세계를 원하면서도 스스로 그런 사회를 건설할 자신감이 없는 한, 영국 노동당 같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영향력은 유지된다. 노동조합 관료층이라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사회적 기반이, 그 당의 영향력 보존의 안전판 구실을 하기도 한다.
노동자들의 개혁주의 의식은 개혁주의 정당의 본질을 폭로한다고 해서(물론 폭로해야 한다), 또는 노동자들에게 환상을 버리라고 호소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노동계급 자신의 투쟁 경험을 통해 자신감이 높아지고, 개혁주의에 도전하는 혁명가들의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 실천에서 입증될 때 개혁주의 영향력에 진지하게 도전할 수 있다. 이런 투쟁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공동전선이다.
트로츠키의 표현을 빌면, 공동전선을 통한 투쟁 과정에서 “광범한 대중은 틀림없이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싸운다는 것,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분명히 사태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 우리가 더 대담하고 단호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될 것이다”.
더구나 오늘날 곳곳에서 좌파적 개혁주의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 스페인의 포데모스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사회당과 연립정부를 운영하면서 재앙적 코로나바이러스 대응책을 펼치고 있다. 그리스의 시리자는 유럽연합 지배자들에 무릎 꿇고 긴축을 수용했으며, 결국 우파 집권의 길을 닦았다. 좌파적 개혁주의는 버니 샌더스는 결국 신자유주의 후보 조 바이든의 응원 부대 구실을 했다. 코빈은 영국 노동당의 우파적 권력 구조를 바꾸기는커녕 오히려 당 우파들에 의해 당원 자격 정지 징계를 받고 축출 직전까지 갔다.
노동당의 모든 역사와 오늘날의 국제적 경험을 보면,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옳다는 것을 더 확신하게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투쟁을 우선시하고 선거보다 거리와 작업장을 중시하는 정당이다. 즉, 독자적인 혁명적 정당 건설이 필요하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처럼 “미래는 노동당 밖에 있다.”
MARX21
키워드:
영국노동당의역사,
개혁주의의역사,
사회민주주의정당의성격,
제레미코빈의실패,
마르크스주의의개혁주의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