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39호를 내며
이번 호에 모두 아홉 편의 글을 실었다.
이정구의 ‘중국과 제국주의’는 마르크스주의적 제국주의 이론에 따라 신중국의 탄생부터 최근 국면까지 살펴보고 향후 전개될 상황을 예측해 본다. 이정구는 1949년에 수립된 중화인민공화국이 처음부터 제국주의 국가였다는 점을 역사적 실례를 들어 증명한다. 그리고 신중국 정부의 최대 과제가 계급 없는 사회주의 사회의 실현이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서 벌어지는 경제적∙군사적 경쟁에서 살아남아 부국강병을 이루는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최근에는 중국 지배자들이 미∙중 무역 갈등에 대처하기 위해 국가의 경제 개입을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 좌파들이 여전히 중국 사회의 성격을 놓고 혼란을 겪는 상황에서 — 중국이 사회주의 사회라거나, 사회주의 사회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제국주의 국가로 볼 수 없고, 미국 패권을 견제하는 진보적인 국가라는 주장을 종종 접할 수 있다 — 이 글은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예리한 논쟁의 무기를 제공한다.
성지현의 ‘오늘날 한국 페미니즘의 상황’은 김유미 사회진보연대 페미니즘팀장이 쓴 ‘페미니즘은 어디서 길을 잃었나’를 비평한 글이다. 김유미는 트랜스젠더 쟁점을 두고 갈라진 페미니즘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데, 그 비판 대상은 포스트구조주의 페미니즘과 분리주의 페미니즘이다. 성지현은 김유미의 글이 일부 옳은 비판을 담고 있지만, 한국 여성운동의 주류인 엔지오 여성단체들의 페미니즘을 전혀 다루지 않는 문제점이 있고, 포스트구조주의 페미니즘과 분리주의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에도 모호함이 존재하며, 이런 모호함은 김유미가 여성 차별을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와 작동방식과 연결해 설명하지 않는 데서 비롯한다고 지적한다.
김인식의 ‘1991년 5월 투쟁 30주년 — 단지 패배한 투쟁이었는가?’는 6공(노태우 정부) 최대 규모이자 1987년 6월 항쟁 이래 가장 큰 규모의 거리 시위였던 5월 투쟁을 돌아본다. 이 투쟁이 당시 많은 투쟁 참가자들이 기대한 ‘제2의 6월항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패배로 끝나자, 5월 투쟁은 패배한 투쟁, 별다른 성과를 남기지 못한 투쟁이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다. 김인식은 5월 투쟁이 단순히 패배의 트라우마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그 투쟁이 비록 최종 패배했지만 노태우 정권의 권위주의적 반동, 즉 1987년 6월항쟁 이전으로 회귀하려는 시도를 저지했다는 정치적 의의도 균형 있게 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승주의 ‘음모론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은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다시 유행하는 음모론을 해부한다. 음모론이 현실과 동떨어진 공상인데도, 그것이 기존 사회 질서에 의문과 불만을 갖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아주 단순한 설명을 제공해 주고, 무엇보다 지배자들이 음모와 조작과 거짓말을 일삼기 때문에 생명력이 질기다고 김승주는 지적한다. 그러나 음모론의 확증편향적 접근법과 비관주의 세계관은 사회의 진정한 동역학을 이해할 수 없고 따라서 사회를 바꾸는 운동을 발전시킬 수도 없다. 김승주는 마르크스주의적 역사유물론이 세계를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사회주의자를 위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 개혁주의 비판’은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존 해리슨(2007년 작고)이 1975년에 옥스퍼드대학교 근처의 한 퍼브(술집)에서 경제학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이 책의 장점은 마르크스가 경제학 연구를 하게 된 정치적 목적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해리슨은 마르크스가 당시 노동운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던 프루동주의와의 논쟁을 중시했고 이 점이 마르크스의 경제학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한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 즉 마르크스 당대의 개혁주의인 프루동주의와 현대적 개혁주의인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정치경제학 비판으로 구성돼 있다. 오늘날 한국에도 프루동주의와 흡사한 주장을 하는 좌파가 있다. 이 책은 미래의 사회혁명을 준비하는 활동가들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이해하고 개혁주의와 논쟁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다. 이 책은 7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매호 한 장씩 번역해 연재할 예정이다.
차승일의 ‘마르크스∙엥겔스의 유물변증법은 어떻게 형성됐는가’는 엥겔스가 쓴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을 서평한 것이다. 혁명적 사회주의 전통의 주요 사상가들이 쓴 가장 중요한 책들을 소개하는 시리즈의 다섯 번째 편이다. 이 책은 헤겔에서 시작해 포이어바흐를 거쳐 마르크스∙엥겔스가 계승∙발전∙종합한 유물변증법의 탄생 역사를 간략하게 설명한다. 차승일은 이 책의 내용을 요약적으로 소개하는 한편, 엥겔스에 대한 지독한 오해 — 엥겔스는 마르크스와 달리 유물변증법을 자연으로까지 확장해 기계적 유물론으로 만들어 버렸고, 그것이 소련 스탈린 체제의 공식 이데올로기로 계승됐다는 — 를 걷어 낸다. 또, 책의 부록으로 수록돼 있는 마르크스가 쓴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도 간단하게 소개한다.
레안드로스 볼라리스의 ‘두 개의 전쟁?’은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도니 글럭스틴이 쓴 책 《2차 세계대전의 민중사 — 민중의 전쟁 VS 제국의 전쟁》 (오월의봄, 원제: A People's History of the Second World War: Resistance Versus Empire)을 매우 논쟁적으로 서평한 것이다. 글럭스틴은 이 책에서 제2차세계대전을 두 개의 전쟁, 즉 제국주의 전쟁과 인민 전쟁이 나란히 진행된 “평행 전쟁”이었다고 주장하는데, 볼라리스는 이런 논리가 제2차세계대전이 파시즘에 맞선 전쟁이었다는 시각을 수용하기 쉽게 한다는 문제가 있다고 반박한다.
김영익의 ‘국가자본주의론으로 보는 ‘러시아 문제’’는 영국의 사회주의자 마이크 헤인스가 쓴 책 《다시 보는 러시아 현대사: 혁명부터 스탈린 체제를 거쳐 푸틴까지》(책갈피, 원제: Russia: Class and Power 1917-2000)를 서평한 것이다. 김영익은 이 책의 중요한 장점으로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노동자들이 권력을 잡았지만 이후 반혁명이 일어났음을 풍부한 근거를 통해 보여 주고, 소련이 자본주의의 한 변형태인 관료적 국가자본주의였음을 여러 역사적 사실과 분석으로 입증하며, 최근 20년 동안 푸틴 체제 아래서 일어난 주요 변화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을 꼽는다.
정원석의 ‘자본주의에서 능력주의를 극복할 수 있을까?’는 《능력주의와 불평등》(교육공동체 벗)을 논쟁적으로 서평한 것이다. 이 책은 문재인 정부 하에서 ‘공정성’ 논란의 소재가 된 주요 사회 문제들, 가령 입시 경쟁 교육, 학력∙학벌주의, 비정규직 차별 등의 근간에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있다고 보고, 능력주의와 불평등의 관계를 다룬다. 여러 필자들이 공저한 책이기 때문에, 정원석은 주요 필자들의 입장을 각각 구별해서 다룬다. 그러면서도 저자들이 모두 불평등의 근본 원인인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며 마르크스주의적 평등론을 정리한다.
2021년 4월 22일
김인식(편집팀을 대표해)
MARX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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