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김유미 사회진보연대 페미니즘팀장의 ‘페미니즘은 어디서 길을 잃었나’를 읽고

오늘날 한국 페미니즘의 상황

MARX21

참고 문헌

김유미 2020, ‘페미니즘은 어디서 길을 잃었나’, 《계간사회진보연대》 겨울호.

김유미 2019, ‘페미니즘 열풍, 어떻게 볼 것인가’ 《계간사회진보연대》 여름호.

미미 마리누치 2018, 《페미니즘을 퀴어링!》, 봄알람.

성지현 2017, ‘서평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정희진 엮음, 교양인, 2017 ─ 담론이 아니라 여성 억압의 물질적 조건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마르크스21》 20호.

손희정 2018, ‘페미니즘, 사회적인 것의 재구성’, 《황해문화》 통권 제99호.

쉴라 제프리스 2019, 《젠더는 해롭다》, 열다북스.

정진희 2018, ‘올해를 달군 불법촬영 항의운동을 돌아본다’, 〈노동자 연대〉 271호.

주디스 오어 2016, 《마르크스주의와 여성해방》, 책갈피

최미진 2015, ‘서평 《지금 여기 페미니즘》 ― 여성 차별의 사회구조적 원인과 여성 노동자에 주목한 개론서’, 〈노동자 연대〉 149호

최미진 2019, ‘서평 《우먼스플레인》, 《그 페미니즘이 당신을 불행하게 하는 이유》 ─ 급진 페미니즘의 과도함에 대한 예리한 지적’, 《마르크스21》 31호.

최일붕 2018, ‘급진적 페미니즘과 분리적 페미니즘, 어떻게 볼 것인가?’, 〈노동자 연대〉 269호.

한우리, 김보명, 나영, 황주영 2018, 《교차성X페미니즘》, 여이연.

황주영 2016, ‘뤼스 이리가레 — 성차의 존재론과 수평적 초월’, 《현대 페미니즘의 테제들》.

  1. 이런 페미니즘을 ‘포스트페미니즘’이라고 부르는 것은 오해를 낳을 수 있다. 김유미는 “[다양한] 3세대(제3물결) 페미니즘을 모두 포괄하는 말”로 ‘포스트페미니즘’이라는 용어를 택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포스트페미니즘’은 1980년대 이후 서구에서 유행한 담론으로, 여성은 이미 평등을 성취했고 성차별은 과거지사가 됐다고 주장했다. 김유미가 이 글에서 다룬 책의 저자들이나, 교차성 페미니즘과 퀴어 페미니즘을 이런 류의 주장과 동일시하기는 어렵다. 포스트페미니즘과 달리, 제3물결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은 좋은 것이고 여전히 필요하다는 시각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김유미가 ‘포스트페미니즘’이라고 명명한 것은 ‘포스트구조주의 페미니즘’으로 고쳐 읽어야 오해를 피할 수 있다.
  2. ‘문화적 페미니즘’은 원래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이 급진 페미니즘을 비판적으로 부를 때 사용한 용어였다. 즉, 페미니즘을 사회구조의 변혁을 추구하는 정치적 운동이 아니라 모종의 문화적 라이프스타일로 전락시킨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3. 사회진보연대의 페미니즘에 대한 더 일반적 비평은 이유미 사회진보연대 사무처장이 쓴 《지금 여기 페미니즘》을 서평한 최미진 2015를 참고하라.
  4. 이 부분의 논지는 최일붕 2018을 참고했다.
  5. 손희정 2018
  6. 대표적으로 1970년대 대표적 급진 페미니스트인 파이어스톤이 여성 차별의 원인을 생물학에서 찾았다. 물론, “생물학에 기초하여 여성에 대한 착취가 일어난다”는 것이 곧 여성 차별의 원인이 생물학이라는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리고 김유미는 파이어스톤의 대안(인공 자궁을 통한 재생산 기술이 자연적 임신과 출산을 대체)에는 분명히 비판적이다.
  7. 최일붕 2018.
  8. 김유미 2019.
  9. 사회진보연대도 이 운동이 다 끝난 뒤인 2019년 3월이 돼서야 관련 글이 처음 나왔는데, 그 의의를 제대로 사주진 않는다. 김유미 2019, ‘생물학적 여성의 생존을 넘어 여성의 삶을 바꾸는 힘으로’, 《오늘보다》.
  10. 이에 대한 포스트구조주의 페미니즘의 견해는 성지현 2017에서 비판했다.
  11.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오어, 주디스 2016의 3장 ‘여성 억압의 기원’을 참고하라.
질문/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