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고전 읽기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마르크스·엥겔스의 유물변증법은 어떻게 형성됐는가
철학을 포함한 역사학 영역에서 이론을 향한 두려움 없는 열정은 고전철학과 함께 완전히 사라졌다. 어리석은 절충주의, 발을 동동 구르며 경력과 소득을 걱정하기, 한 자리 차지해 보려는 아주 저속한 태도로의 타락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런 학문들의 공식 대표자들은 자신들이 부르주아와 현존 국가를 이데올로기적으로 떠받치고 있음을 이제 감추지도 않는 지경이 됐다. 그것도 부르주아와 현존 국가가 노동계급을 공공연히 적대하고 있는 때에 말이다. 1
엥겔스는 1888년에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을 출간하며 집필 배경을 위와 같이 밝혔다. 그런 세태 속에서 엥겔스는 “우리[마르크스와 엥겔스]와 헤겔 철학의 관계를, 즉 우리가 어떻게 헤겔 철학으로부터 시작해 나왔고 어떻게 헤겔 철학과 결별했는지를 짧고 정연하게 설명할 필요가 점점 커진다고 느꼈다”. 그리고 엥겔스는 헤겔과 마르크스·엥겔스 사이를 잇는 다리이자 마르크스·엥겔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선배 철학자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의 기여를 밝히는 것이 “도의적 채무”라고 봤다.
이 짧은 책은 헤겔에서 시작해 포이어바흐를 거쳐 마르크스·엥겔스가 계승·발전·종합한 유물변증법의 탄생 역사를 간략하게 설명한다.
이 책은 네 개의 장(章)과 부록으로 구성돼 있다. 1장은 헤겔 철학의 혁명성과 모순, 헤겔 학파의 해체를 다룬다. 헤겔은 “철저하게 혁명적인 사유 방법”인 변증법을 발전시켰다. 변증법은 “인류 역사에서 현실적이었던 모든 것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비이성적인 것이 된다”고 본다. 그리고 자연과 사회와 인간 정신의 운동과 변화를 역사적으로 이해하려 한다. 즉, 그 부단한 변화를 구체적으로 추적한다. 이런 변증법의 관점으로 사회를 보면, 사회 편제 방식도 영원한 것은 없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도 인간 역사의 한 국면일 뿐이다. 엥겔스는 18살 때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어, 헤겔을 공부하며 받은 느낌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헤겔의 역사철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이건 정말 굉장한 저작이다. 나는 매일 밤 의무 삼아 그것을 읽고 있다. 거대한 사상이 무서우리만큼 나를 감동시킨다.”
3 이 모순으로 말미암아 헤겔 철학의 지지자들은 분열했다. 헤겔 자신을 포함해 헤겔 철학의 체계를 중시한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보수적이었고, 변증법을 중시한 사람들은 급진적이었다. 후자는 청년 헤겔주의자들이라고 불렸다. 엥겔스와 마르크스도 처음에는 청년 헤겔주의자였다.
그러나 헤겔의 변증법은 그의 관념론 때문에, 즉 현실의 운동과 변화는 “절대 이념”의 운동과 변화가 외화(外化, 겉으로 드러남)한 것이라고 봤기 때문에 물구나무서 있었다. 그리고 헤겔 철학은 “어떠한 자기 완결도 허용하지 않는 다이나믹한 드라마의 이론으로서의 변증법적 세계관”을 발전시켰지만 “자기 완결적 성격의 체계”를 제시하려 하면서 모순을 담고 있었다.2장은 유물론을 다룬다. “존재와 사유의 관계, 즉 자연과 정신의 관계”라는 “철학 전체의 최고 문제”에 대해, 유물론은 정신보다 자연이 선차적 지위에 있다고 본다. 그 정점에 있는 인물이 포이어바흐였다. 엥겔스가 요약한 포이어바흐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거스를 수 없는 힘에 의해 포이어바흐는 마침내 다음과 같은 깨달음으로 향했다. 즉, 세계 창조 이전에 “절대 이념”이 존재했다거나 세계가 존재하기 전에 “논리적 범주가 미리 존재했다”는 헤겔식 생각은, 피안에 창조자가 있다는 믿음이 환상의 상태로 살아남은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속해 있으며 감각으로 인지할 수 있는 물질의 세계만이 현실이다. 우리의 의식과 사유는 그것이 아무리 초감각적으로 보이더라도 물질이자 신체 기관인 뇌의 산물이다. 물질이 정신의 산물인 것이 아니라, 정신 자체가 단지 물질의 최고 산물일 뿐이다. 물론 이것은 순수한 유물론이다. 그런데 포이어바흐는 여기서 돌연 멈춰 버린다.
포이어바흐는 《기독교의 본질》이라는 책을 써서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이상적 형태를 신으로 창조한 것이었다고 주장해 전율을 일으켰다. 헤겔 철학의 “체계”를 폭파시키고 “유물론을 단도직입적으로 다시 왕좌에 올려 놓음으로써”, 청년 헤겔주의자들이 겪던 모순, 즉 한편으로는 헤겔의 관념론적 체계를 받아들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물론을 받아들여 겪은 모순을 “단 일격에 해소해 버렸다”. 그 영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엥겔스의 다음 말에서 알 수 있다. “이 책의 해방적 효과는 체험한 사람이 아니고는 도저히 알 수 없다. 모두 열광했다. 우리는 모두 한번에 포이어바흐주의자가 됐다.”
그러나 18세기의 유물론은 “피상적이고 속된 형태”의 유물론이었다. 18세기의 유물론은 “대체로 기계론적”이었고, “우주가 과정이자 부단히 역사적 발전을 겪는 물질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능에 머물러 있었다”. 과학이 아직 낮은 수준에 있던 시대의 한계였다.
포이어바흐는 이런 한계를 지닌 18세기의 유물론과 선을 그으려 하다가 “돌연 멈춰 버린다”.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증오한 추상의 왕국에서 탈출해 살아 있는 현실로 나아가지 못”했다.
3장은 포이어바흐의 약점을 다룬다. 포이어바흐는 인간과 사회를 추상적으로 이해했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자연과 인간에 매달린다. 그러나 자연이나 인간이나 그에게는 별 뜻 없는 말에 불과하다. … 추상적 인간에서 벗어나 현실의 살아 있는 인간에 다다르려면 이 인간들을 역사의 참여자로 여겨야 한다. 그러나 포이어바흐는 이 점을 집요하게 반대했다.”
포이어바흐는 인간이 신을 만들어 놓고는 그 신을 추앙하는 것이 소외의 산물임을 지적했지만, 그렇다면 인간이 왜 신을 만들게 됐는지, 즉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인간이 종교라는 형태로 자신을 소외시키게 됐는지는 파고들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종교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완성하려고” 했다. 그래서 종교적 감정을 인간의 불변적 본질로 봤다. 다만 종교적 감정의 대상을 신에서 추상적 인간으로 바꿨다. 이렇게 그는 특히 종교 철학과 윤리학에서 “사실상 관념론”으로 미끌어졌다. 그런데 그는 마치 거꾸로 세운 건물 같은 헤겔의 관념론 체계를 무너뜨리는 데서 멈춤으로써 변증법까지 내다 버렸기 때문에, 인간과 사회와 역사의 구체적 모습을 다루는 데서는 헤겔보다도 한참 뒤떨어지게 됐다.
4장은 엥겔스와 마르크스가 포이어바흐와 달리 헤겔이 발전시켜 놓은 변증법을 유물론의 토대 위에 세우려 했음을 설명한다.
우리는 다시 유물론적 관점을 채택해, 현실의 사물을 이러저러한 단계에 이른 절대 개념의 모사(模寫)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머릿속 생각을 현실 사물의 모사로 여겼다. 이렇게 변증법은 외부 세계와 인간 사유라는 두 영역의 일반적 운동 법칙을 다루는 학문으로 환원됐다. … 그럼으로써 개념의 변증법은 단지 현실 세계의 변증법적 운동이 의식에 반영된 것에 지나지 않게 됐다. 이렇게 헤겔의 변증법은 뒤집어졌다. 아니, 물구나무서 있던 것이 바로 서게 됐다.
엥겔스는 19세기에 세포의 발견, 에너지 보존 법칙, 다윈의 진화론 등 “자연과학에서 일어난 놀라운 진보 덕분에 … 자연에서의 상호 연관을 상당히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 시대에 흡족할 만한 ‘자연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연과학의 관찰 결과를 변증법적으로, 즉 그것들 자체의 상호 연관이라는 면을 이해하기만 하면 된다”고 지적하고, 이 방법을 “사회 역사의 모든 영역과 인간(과 신)에 관계된 것들을 다루는 과학 일체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고는 역사, 법, 이데올로기, 종교를 다룬다.
그러나 엥겔스는 자연과 인간 사회의 차이점도 지적한다. 바로 행위 주체의 문제다.
어느 지점에 이르러 사회 발전의 역사는 자연 발전의 역사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드러난다. 인간이 자연에 반작용하는 것을 무시하면, 자연에는 서로 작용을 가하는 맹목적이고 무의식적인 행위자들이 있을 뿐이고, 그들의 상호작용으로 일반 법칙이 작동한다. 그 어떤 사건도 … 의식적으로 추구된 목표로서 발생하지 않는다. 이와 달리, 사회의 역사에서 행위자들은 모두 천부적으로 의식이 있고 신중하거나 격정적인 태도로 뚜렷한 목표를 향해 행동하는 인간이다. 의식적 목적 없이 의도된 목표 없이 발생하는 사건은 없다.이 대목에서 엥겔스에 대한 지독한 오해를 짚지 않을 수 없다. 엥겔스는 마르크스와 달리 유물변증법을 자연으로까지 확장해 기계적 유물론으로 만들어 버렸고, 그것이 소련 스탈린 체제의 공식 이데올로기로 계승됐다는 오해 말이다.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은 《자연변증법》과 함께 엥겔스가 마르크스에게서 벗어나 기계적 유물론으로 향했음을 보이는 증거로 지목되는 책이다. 그러나 위 인용문만 보더라도 그런 주장들이 엥겔스에 대한 곡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존 벨라미 포스터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연 세계와 인간 사회의 관계에 대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견해에는 자본주의가 낳은 생태 위기를 이해할 열쇠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엥겔스와 마르크스 둘 다 자연 세계와 인간 세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인식했고, 그래서 인간 사회의 역사에서는 계급투쟁이 변화의 동력이라고 주장했다. “이제까지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였다.” 그리고 계급투쟁의 결과는 예정돼 있지 않아서, “사회의 혁명적 재편이나 서로 싸우는 계급들의 공멸”로 귀결된다고 봤다.
부록으로는 마르크스가 쓴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가 수록됐다. 여기에는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해 왔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라고 하는 아주 유명한 말이 담겨 있다. 엥겔스는 “새로운 세계관의 아주 빼어난 싹이 담긴 첫 문서로 매우 귀중하다”고 평가한다.
4쪽 남짓 분량에 인간 사회의 변화에서 행위 주체의 중요성, 인간 본성 등의 내용을 담은 ‘테제’는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
마지막으로 엥겔스가 책의 결론으로 쓴 부분을 인용하며 마치겠다. 오늘날 사회주의자들이 곱씹어 볼 필요가 있는 메시지다.
오로지 노동계급 사이에서만 독일의 이론적 자질이 손상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여기서는 그것이 뿌리 뽑힐 수 없다. 여기서는 경력, 이윤 창출, 윗사람의 자애로운 보호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학문이 더욱 철두철미하고 힘차게 누구 눈치 보지 않고 나아갈수록, 노동자의 이익과 염원에 더 조화를 이루게 된다. 사회의 역사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가 노동 발전의 역사에 놓여 있음을 인식한 새로운 조류는 처음부터 노동계급에 우선순위를 뒀고 그들에게서 호응을 얻었는데, 그 호응은 공식 학문에게서는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MARX21
주
- 이 글의 인용문은 별도의 표시가 없으면 모두 엥겔스 2015에서 가져온 것이다. 다만, ‘마르크시스트 아카이브’(https://www.marxists.org)에 있는 영문판을 참고해 번역을 수정했다. ↩
- 高田 求 1986, 124쪽. ↩
- 같은 책, 123쪽. ↩
- 엥겔스에 대한 곡해를 설득력 있게 반박하는 주장으로는 이원웅 2020과 Paul Blackledge, Friedrich Engels and Modern Social and Political Theory, SUNY Press, 2019를 참고하시오. ↩
참고 문헌
엥겔스, 프리드리히 2015,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돌베개.
이원웅 2020, ‘변혁당 이재유 씨의 엥겔스 곡해에 대한 반박1’, 〈노동자 연대〉 341호, 10월 28일.
高田 求 1986, 《세계관의 역사: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 두레.
Blackledge, Paul 2019, Friedrich Engels and Modern Social and Political Theory, SUN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