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세계화의 경계에 선 중국》
최근의 중국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책
경제 위기로 세계 정치와 경제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더욱 줄어들고 이에 비례하듯이 중국의 위상이 상승하고 있다. G20 회담을 두고 G2(미국과 중국)니 G1(중국)이니 하는 과장 섞인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변화를 의식한 것이다.
중국의 견실한 경제 성장이 세계경제를 위기에서 벗어나게 할 주요 동력이 될 것이라는 믿음은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하는 전 세계 지배자들에게 그나마 위안거리다. 2008년 후반에 절정에 이른 경제 위기는 그럭저럭 최악의 상황을 모면했지만 여진이 남아 있다. 게다가 동유럽 투자 자금의 부실, 미국 신용카드 연체로 인한 부실과 상업용 부동산 부실 등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들이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다. 이런 위기가 급성 질환이라면 경제 위기가 낳은 소득 감소와 소비 지출 축소는 만성 질환이다. 따라서 이번 위기를 요행히 잘 넘기더라도 경기 활황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회복 같지 않은 회복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루비니 뉴욕대학교 교수도 “경제 회복 징후인 ‘푸른 싹green shoots’이 보이지만 그 중에는 ‘누런 잡초yellow weeds’도 섞여 있다”고 말했다.
이번 두바이발發 모래 폭풍은 세계경제에 미치는 파급력보다도 이 같은 일이 언제든 터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두바이월드 부도가 터지자 그 다음은 어디냐는 물음이 제기됐는데, 《세계경제의 몰락: 달러의 위기》의 저자인 리처드 던컨과 모건스탠리 아태지역 수석이코노미스트였던 앤디 시에는 중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다. 중국이 “대출과 정부 지출로 경기를 부양해 거품을 키웠다”는 것이 그 이유다.
최근 중국에 대한 관심이 증대된 또 다른 계기는 조반니 아리기가 쓴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길)다. 조반니 아리기는 중국이 미국 헤게모니를 대체할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기대한다. 아리기는 “중국의 부상은 230년 전에 애덤 스미스가 예상하고 주장한 유럽인과 비유럽인들의 상호 존중과 거대한 평등이 이뤄지는 전조로 간주할 수 있다”(Arrighi, p.379)고 지적했다. 아리기는 영국 산업혁명은 영국 경제가 소규모였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지만 중국처럼 거대한 국가에서는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하고는, 그럼에도 오늘날 중국이 경제적 성공을 거둔 것은 에너지 소비적인 서구의 길을 대체할 가능성을 보여 준다고 암시한다. 그는 중국이 어떤 길을 갈 것인지에 세계의 운명이 걸려 있다고 말한다. “자기중심적이고 시장에 기반을 두고 발전하고, 강탈 없는 축적을 이루고, 비인간적 자원이 아닌 인적 자원을 동원하고, 정책 결정에 대중이 참여하는 정부라는 전통을 부활시키고 확립하는 방향을 재정립할 수 있다면, 중국은 문화적 차이를 존중하는 문명 공화국이 등장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다.]”(Arrighi, p.389)
현재 중국 정부가 티베트와 신장 자치구의 소수민족을 탄압하고 민주적 권리를 억압한다는 보도를 보면 아리기가 기대한 “강탈 없는 축적과 정책 결정에서 대중 참여”는 요원해 보인다. 다른 한편, 아리기가 기대하는 시장에 기반한 비자본주의적 발전 — 아리기는 중국이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이것도 논쟁점 중 하나다 — 이 세계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아리기가 암시한 바처럼 미국의 헤게모니가 쇠퇴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그 지위를 이어받아 다섯째(제노바 시기, 네덜란드 시기, 영국 시기, 미국 시기에 이은) 헤게모니 국가가 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어쨌든 세계경제나 세계 거버넌스 문제에서 중국이 토론과 논쟁의 핵심 주제로 부상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중국의 세계경제 편입과 위기의 노동자
이런 와중에 백승욱 교수(이하 존칭 생략)가 여러 해 전부터 발표한 글들을 모아 엮은 책 《세계화의 경계에 선 중국》이 출간돼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최근의 중국 상황에 대해서는 변변한 책 하나 없고 중국 관련 개설서조차 낡은 것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이 책은 나름의 유용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1 가 몰락했으며 노동자의 지위가 하락했다. 그래서 실업자 문제가 중요한 사회 문제로 대두하지만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이와 같이 노동 관계가 불안정해지자 노동계약법이 도입되기도 했는데, 이 책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노동계약법을 둘러싼 지배층의 논의를 노동자 대중의 불만과 연결해 보여준다는 점이다. 저자가 예상하는 바대로, 중국 지배자들은 불만에 찬 노동자들을 포섭하려고 ‘조화 사회’를 내세우지만 “노동 문제를 ‘조화롭게’ 관리하려는 중국 정부의 목표”가 달성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노동 쟁점으로 시작하는데, 1장의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위기의 중국 노동자”를 다룬다. 백승욱은 시장 개혁 때문에 사회 양극화가 심해졌고 도시와 농촌 간 격차가 벌어졌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시장 개혁 과정에서 국유기업이 구조조정됐고, 이 때문에 ‘단위 체제’중국이 세계경제에 편입되는 과정을 다루는 장에서도 의미 있는 주장들이 나온다. 백승욱은 중국의 WTO 가입에는 국유기업 구조조정을 가속할 거점을 마련한다는 1차 목표와 함께, 외국 자본 유입을 계속 늘릴 제도적 조건을 마련한다는 2차 목표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렇지만 그도 지적하듯이, 중국의 WTO 가입은 새로운 문제를 드러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증폭되는 사회적 불평등과 생활기반이 불안정한 사람들의 증가, 초국적기업에 대한 의존 심화 등은 새로운 모순을 낳을 것이다.”(백승욱, 178쪽. 이하 쪽수만 표시.)
백승욱은 중국이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세계 금융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과정도 설명한다. 중국은 2조 달러에 이르는 많은 외환보유액을 기반으로 후이진공사나 중국투자유한책임공사CIC 같은 국부펀드를 설립하고 금융세계화의 주요 행위자로 등장한다. 물론 중국이 금융시장 개방을 가속하고 있음에도 세계적 기준과 비교하면 개방도가 높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위험 요소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많은 논자들은 외환보유액을 근거로 중국 금융의 힘이 커지고 있다고 평가하지만, 백승욱은 외환보유액의 증대가 대미 수출 시장 의존도가 높아지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므로 미국 경제와의 연관 속에서 봐야 하고, 따라서 외환보유액 자체가 중국 경제의 취약성을 보여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들
2 로 이해하는 왕후이 등의 주장을 상세하게 소개한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현재 중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비판적인 지식인들의 궤적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백승욱은 1980년대 신계몽주의와 그 사상적 계승자인 신자유주의, 이를 비판하며 등장한 다양한 논지들(종속이론, 세계체계론, 시민사회론, 제3의 길, 전면적 민주론 등)을 소개한다. 특히 그는 세계체계론을 바탕으로 중국 근대 문제를 역사적 자본주의백승욱은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들에 대해 두 가지를 지적하는데, 첫째는 정치적 기획의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점이고, 둘째는 발전주의(발전의 민족주의) 환상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백승욱도 지적하듯이, 특히 후자는 “반신자유주의가 현실적으로 중화주의적 민족주의에 포섭되어 버릴 가능성”(346쪽)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시장경제를 위해 국가를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하는 후안강胡鞍鋼은 시장을 개혁하려면 강력한 국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또 다른 신좌파인 추이즈위안崔之元은 세금을 개혁하고 부패를 척결해서 중앙 권력을 강화하고 일당 국가를 강화하는 “제도를 재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내에 번역·출판된 《13억의 충돌》의 저자 한더치앙韓德强은 대한족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중국 정부가 대만을 공격해서 최대한 빨리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화라는 외적 위협에 맞서, 세계 시장에서 경쟁자를 격퇴할 방안으로서 일당 국가를 강화하자는 것이 그의 요지다.
이것을 보면, 중국 ‘신좌파’는 1968 반란 앞뒤로 등장한 서구의 신좌파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다수 중국 신좌파들의 공통점은 “일당 국가의 역할과 집산주의 가치와 다인종인 중국 통합의 중요성과 더 자립적인 경제 발전 경로와 준거로서 마오주의 전통 옹호를 강조”하는 것이다(Au Loong Yu). 그러나 모든 신좌파가 이런 내용을 공유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왕후이汪暉는 세계화를 비판하면서도 민족주의에 전혀 물들지 않았고, 사회 변화에서 노동자 운동의 적극적 구실을 옹호한다. 신좌파 일부는 후안강, 추이즈위안, 한더치앙 같은 인물을 신좌파가 아니라 강국좌파强國左派 또는 민족주의 좌파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특별한 민족주의?
이 책은 미흡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유용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어 최근의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 읽어볼 가치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미흡한 점을 지적하면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백승욱은 20세기 중국 역사를 궤도 이탈과 재진입으로 이해한다. 1949년의 중화인민공화국 탄생은 세계경제와 자본주의적 길에서 이탈한 것이고(376쪽) 시장 주도형 경제 개혁의 길로 나아간 1980년대부터 궤도 재진입기라고 한다.
백승욱은 최근의 궤도 진입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한다. 중국 내 불균등 발전 문제를 심화하고 노동자들을 분할 지배하는 등 부작용을 더 많이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또, 개혁개방기에 형성된 신민족주의(한더치앙) 견해에도 비판적이다. 민족주의는 궤도 이탈 당시에는 사회주의와 동맹 관계였지만 궤도 재진입 과정에서는 동맹 관계가 사라지고 오로지 발전주의적 지향만 남았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궤도 진입이 19세기 말의 제국주의-식민지 관계와는 다른 결과를 낳았다는 것을 반영한다. 최근 궤도 진입 과정에서 초국적자본의 구실이 확대되고는 있으나 그렇다고 중국을 식민지라고 할 수 없다. 중국은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영향을 받으며 궤도 진입을 하고 있지만 오히려 금융세계화의 주요 행위자로 변신하고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중국의 ‘예외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중국이 궤도 이탈기에 확립한 ‘사회주의’ 전통(국유화와 단위체제)을 이어받아야 하고, 문화대혁명에서 제기된 쟁점들(당과 대중의 문제, 민주관리로 표현되는 생산 통제의 문제, 대중의 권리와 국가의 민주화 문제)에 천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1949년 이후 중국이 걸어온 길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였을 뿐이다.
민족주의에 대한 저자의 태도는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그는 중국이 궤도 이탈기에 이뤘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유의미한 결합을 강조한다(369쪽). 저자가 민족주의에 특별한 관심을 두는 것은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지배 하에서 진행되는 세계경제의 공간적 분할”(386쪽) 과정에서 ‘특별한’ 민족주의가 인류 발전의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민족주의를 “민족 문제 없는 민족주의”나 “포스트 민족주의적 보편주의”라고 부른다.
그러나 저자도 인정하듯이, 최근에 중국에서 나타난 민족주의는 경제 발전을 위한 지배계급의 논리이자 대한족 국수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특정한 조건에서 민족주의에 진보적인 성격이 있었을 수 있지만 이미 제국주의로 바뀐 중국에서 그런 조건을 찾는 것은 공상적이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할 노동자 계급이 형성됐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백승욱이 지적하듯이, 시장 개혁과 신자유주의에 맞선 노동자 대중의 저항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백승욱은 노동자 내부 분화와 발전주의 신화를 이유로 노동자 투쟁의 미래를 그리 밝게 보지 않는다. 이런 어두운 전망 때문에 그가 ‘특별한’ 민족주의가 가능한 조건을 모색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MARX21
주
참고 문헌
Arrighi, Giovanni, Adam Smith in Beijing, (Verso, 2007) [국역: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 길, 2009].
Au Loong Yu, “The New Chinese Nationalism”, Against the Current no. 136, 2008. http://www.solidarity-us.org/node/1886에서 검색.
백승욱, 《세계화의 경계에 선 중국》, 창비,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