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1989년 동유럽 혁명과 국가자본주의 체제 붕괴》
근본적 사회 변혁을 위해 장착해야 할 무기,국가자본주의 이론
전 세계를 강타한 경제 위기 속에서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전 세계에서 《자본론》 판매량이 급증했고, 한국에서도 《자본론》 해설서 두 권이 출판돼 적잖이 판매됐다. 1930년대 대불황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으며 사람들은 시장만능주의가 과연 옳은지 의심하게 되고 왜 경제 위기가 반복되는지 알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동안 ‘구닥다리’로 여겼던 마르크스를 다시 꺼내드는 것이다.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은 대안을 갈구하는 심정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어도 자본주의를 대체할 대안이 사회주의라고 여기는 사람은 드물다. 사회주의가 대안이라고 주장했다가는 오히려 철없는 이상론자나 별종 취급을 받기 쉽다. 사회주의는 이상은 좋으나 현실에서는 실패했으므로 공상적인 것 아니냐, 사회주의 이상을 일부 차용해서 자본주의를 “인간적으로” 수정하는 게 낫지 않냐, 혁명은 피를 부를 뿐이니 문제를 조금씩 개선해 나가는 것이 어떠냐는 질문들이 많다.
옛 소련이 무너진 뒤 좌파 활동가 대다수는 이런 의문들에 답할 수 없었다. 옛 소련 체제를 대안으로 여기며 “사회주의 혁명”을 주장하던 좌파 활동가 상당수가 대안을 잃고 혼란스러워하다가 하루 아침에 운동을 그만두거나 개혁주의로 방향을 바꿨고, 포스트모더니즘에 빠져들었다. 일부는 우파로 전향하기도 했다. 그 결과 사회주의나 마르크스주의가 더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견해가 지금까지 ‘상식’으로 통한다.
《1989년 동유럽 혁명과 국가자본주의 체제 붕괴》는 이런 통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책이다. 저자 크리스 하먼은 옛 소련이 무너지기도 전인 1989년 말에 이 글을 썼다. 한국에서는 1995년에 《소련 해체와 그 이후의 동유럽》(갈무리)의 일부로 처음 소개됐는데, 최근 책갈피 출판사가 동유럽 혁명 20년을 기념해 일부 오역을 바로잡고 문장도 읽기 좋게 꼼꼼히 손봐서 단행본으로 다시 출판했다. 이 글에서 하먼은 옛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를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하고 1980년대 후반 동유럽에서 벌어진 일들을 분석하고 옛 소련의 몰락을 점쳤다.
20년이나 지난 일을 들춰서 뭐 하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옛 사람들이 캄캄한 밤에 북극성을 보고 길을 찾았듯이,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는 이론이 있다면 위기의 시기에 현실에서 부딪히는 어려움을 헤쳐나갈 희망과 해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한반도 이북에 ‘사회주의’라고 (얼토당토 않게) 불리는 북한이 존재하고 이를 둘러싼 여러 사건들이 한국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옛 소련과 동유럽 사회의 성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한국의 진보 진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가 자본주의 체제로 이행했는가
하먼은 이 책에서 동유럽 체제의 몰락을 사회주의 체제가 자본주의 체제로 이행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옛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이 사회주의 지향의 노동자 국가였다면, 노동자들은 당연히 그 체제를 지키고자 나섰을 것이다. 비록 관료적이더라도 노동자 국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주의보다는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아무리 우파적인 노동조합이라도 기업주나 정부가 그것을 파괴하려 한다면 노동자들이 이에 맞서 저항하리라고 예상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옛 소련과 동유럽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동유럽의 변화는 1988년 봄 폴란드에서 일어난 파업과 시위 물결에서 시작했다. 규모와 영향력은 달랐지만, 폴란드를 시작으로 헝가리, 동독, 체코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루마니아에서 파업과 거리 시위가 잇따랐다. 그 결과로 자유 선거가 시행되고 공산당 정권들이 몰락했다. 특히 루마니아에서는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대중의 힘에 밀려 권력을 내놓고 헬리콥터를 타고 외국으로 도망치다 붙잡혀 처형됐다. 노동자들이 ‘노동자 국가’를 방어하기는커녕 그것을 거부하고 전복하려 했다고 할 만한 상황이었다.
체제의 운영 방식이 완전히 바뀐다는 것은 혁명적 사회 변화가 수반됨을 뜻한다. 기존 권력자들은 새로운 인물로 교체되고, 사회도 새로운 운영 방식에 맞게 재편된다. 자본주의가 태동할 때 신흥 자본가 계급이 귀족들의 권력을 빼앗고, 농민들을 강제로 땅에서 내쫓아 임금 노동자를 창출했듯이 말이다. 그러나 1989년 이후 동유럽 국가들에서는 그런 변화가 없었다. 정권은 무너졌지만 “기업에 대한 통제권은 똑같은 사람들의 손에 남아 있었고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은 … 옛 집권당에서 지도적 구실을 했던 사람들이 내리고 있었다.”
요컨대, 동유럽에서 사회주의 체제가 자본주의 체제로 변했다고 부를 만한 변화는 없었다. 따라서 하먼의 말처럼, 동유럽에서 일어난 일을 이해하려면 “동유럽 사회들이 ‘현존 사회주의’를 자처하다가 갑자기 서방 자본주의 방식을 공공연히 모방하는 것이 어떻게 그토록 쉬울 수 있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필요하다.” 좌파들의 기존 관점으로는 이를 설명하지 못했다.
옛 소련과 동유럽을 바라보는 여러 시각들
좌파들의 기존 견해들을 분류하면, 첫째, 옛 소련과 동유럽이 사회주의나 탈자본주의였다는 이론, 둘째, 관료적으로 퇴보한 노동자 국가였다는 이론, 셋째, 관료적 집산제였다는 이론으로 나뉜다.
사회주의·탈자본주의 이론은 스탈린주의 공산당과 유러코뮤니즘 경향이 받아들였고, 우파를 포함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널리 받아들인 견해다. 이 이론의 근거는 생산수단을 국가가 소유했다는 것이다. 좌파는 옛 소련과 동유럽 국가의 경제 체제가 서방보다 우월하다고, 우파는 서방보다 후진적이라고 주장했다. 좌파의 견해가 이 국가들이 1980년대 말에 급격한 위기를 겪은 사실을 설명하지 못한다면, 우파의 견해는 이 국가들이 초기에는 서방보다 더 빨리 성장했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관료적으로 퇴보한 노동자 국가 이론은 트로츠키가 주창하고 ‘정설’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받아들인 견해다. 이 이론은 동유럽 국가들의 경제 체제는 사회주의 지향적 체제이지만, 반혁명 세력인 스탈린주의 관료들이 정치를 장악하고 있어 정치 체제가 “퇴보”했으므로, 정치 혁명으로 관료들을 타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트로츠키는 경제구조와 지배 관료 집단의 모순으로 말미암아 몇년 안에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이론의 근거도 국유화된 소유관계다. 이 견해는 스탈린 관료 체제와 서방 자본주의를 동시에 반대한다는 장점은 있었으나, 여전히 소련의 경제 체제를 서방보다 진보적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옛 소련을 방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어떻게 옛 소련 경제가 한동안 계속 성장할 수 있었고, 이를 본뜬 체제들이 확산될 수 있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는 약점이 있다.
관료적 집산제 이론은 관료들을 ‘새로운 계급’이라고 봤다. 즉, 옛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은 이 ‘새로운 계급’이 대중을 착취하는 체제라는 것이다. 1930년대에 맥스 샤트만이 이 이론을 주창했다. 샤트만이 스탈린 체제를 착취 체제로 본 것은 옳았으나, 그는 이 체제의 동학을 설명하지는 못했다. 이 때문에 나중에 그는 옛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의 경제가 서방보다 비합리적이라는 결론에 이르러 서방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크게 잘못된 태도를 취하게 됐다.(그는 미국의 쿠바 침공을 지지했다.)
이처럼 위 이론들은 모두 현실의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다. 올바른 이론이라면 옛 소련과 동유럽 노동자들이 그 체제를 방어하지 않은 이유와 함께 그곳의 경제가 수십 년 동안 역동적으로 성장하다가 1980년대 후반에 갑자기 큰 위기를 겪게 된 원인을 동시에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자본주의 이론
1 그렇다고 이 나라들을 3분의 1쯤은 사회주의 체제라고 규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는 마르크스가 《철학의 빈곤》에서 자본주의와 사적 소유를 동일시한 프랑스 사회주의자 프루동을 비판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위의 견해들은 모두 국유화를 사회주의와 같은 것으로 보는 함정에 빠져 옛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을 잘못 분석했다. 생산수단을 국가가 소유했는지 개별 자본가들이 소유했는지 여부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나눌 수는 없다. 오늘날 서방 경제에서 적어도 3분의 1이 공공 부문인데,중요한 것은 법률적 소유 형식이 아니라 생산 관계의 실체였다. 즉, 국유화된 생산수단을 실제 누가 통제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만들지를 누가 결정하는지가 중요했다. 옛 소련과 동유럽은 관료들이 생산수단을 장악하고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생산할지 결정했다. 대다수 주민들은 생산수단과 과정을 통제하지 못했을 뿐더러 사소한 비판조차 하기 힘들었다. 옛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에 KGB(옛 소련의 보안경찰) 같은 악명 높은 억압 기구들이 오랜 기간 필요했다는 것은 이 나라들이 착취적인 계급 사회였다는 방증이다.
국가자본주의 이론은 더 나아가, 자본주의 체제의 운동 방식이 그대로 적용된다는 점에서 옛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은 ‘자본주의’ 체제이며, 다만 생산과 부를 민간 자본가들이 아니라 국가가 통제한다는 점에서 ‘국가’자본주의 체제라고 설명한다. 국가자본주의 이론은 1947년에 팔레스타인 출신의 영국 사회주의자 토니 클리프가 주창했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자본주의를 묘사한 것을 보면, 자본주의 체제는 인간의 필요가 아니라 이윤을 위해 상품을 생산하는 체제다. 개별 자본가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자들보다 이윤을 더 많이 획득해야 한다. 자본가들은 끊임없이 생산수단을 혁신해야 하고, 그러려면 그 전 생산에서 창출한 이윤을 최대한 많이 축적해 생산에 다시 투입해야 한다. 즉, 자본가들은 축적을 강요받는다. 더 많은 이윤을 축적하려면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을 가능한 한 줄여야 한다.
옛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에서 이런 특징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많은 사람들은 옛 소련과 동유럽 국가 내부에 시장 경쟁이 없었으므로 이 국가들을 자본주의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내부 경쟁은 없었지만 옛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이 세계의 나머지 국가들과 단절된 적은 없었다. 이 나라들의 국민소득이 서방과의 대외무역에 의존하는 비율은 계속 높아졌다. 그 결과 1965년 통계를 보면 헝가리, 동독, 불가리아, 체코슬로바키아의 1인당 대외무역 수준은 이탈리아보다 높았고 프랑스보다 약간 낮았다. 교류가 있다는 것은 서로 비교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이 국가들의 개별 기업은 다른 기업과 경쟁하지는 않았지만 국민경제 수준에서는 다른 나라와 경쟁했던 것이다.
그러나 냉전이라는 당시 상황에서는 시장 경쟁보다 동서방 사이의 군사적 경쟁이 더 중요했다. 무기는 순수한 의미의 상품은 아니지만, 서로 경쟁하는 관계에서는 가격을 낮추고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점에서 일반적 상품과 공통점이 있다. 무기든 일반적 상품이든 경쟁에서 이기려면 임금을 낮추고 생산성을 최대한 높이고 설비를 혁신해야 한다. 동유럽 국가들, 특히 이들을 대표한 옛 소련은 가능한 모든 재원을 쥐어짜내서 무기 개발에 투입해야 했다.
그래서 옛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은 국민생산 가운데 40퍼센트 정도를 계속 축적했는데, 이 비율은 서방 국가들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이와 비슷한 축적 수준을 유지한 ‘서방’ 자본주의 국가는 남한과 타이완 정도였다. 즉, 동유럽 국가들은 “군사적 경쟁 때문에 … 자신들의 경제에 시장 경쟁이 강요하는 자본주의 축적의 동학과 동일한 동학을 강요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실, 국가자본주의는 옛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만의 특징은 아니었다. 1920년대 이후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도 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을 강화했고, 특히 자본주의가 뒤늦게 발전한 나라에서는 기존 자본주의 강대국들과 경쟁하고자 국가의 강제력을 사용해 자원을 집중했다. 한국을 비롯해 경제 성장에 성공한 ‘제3세계’ 나라들은 모두 국가 개입이 강력한 곳이었다. 즉, 국가자본주의는 당시 자본주의적 생산 조직 방식의 대세였다고 말할 수 있고, 얼마 동안은 그 효율성이 입증된 방식이었다.
자본주의적 축적의 모순
엄청난 축적 수준 덕분에 옛 소련과 동유럽 경제는 초기에는 서방보다 더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그러나 그런 성장은 무한정 지속될 수 없었다. 자본가 계급은 경쟁 압력에 밀려 축적을 강화할수록 자기 지배의 기반을 침식하는 결과를 낳게 마련이다. 하먼은 동유럽 국가들도 축적이 낳는 다음의 네 가지 모순적 결과를 피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첫째, 자본 축적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는 자들”이라고 부른 노동계급을 창출한다. 제2차세계대전 전의 동유럽 국가들에서 노동자는 전체 노동인구의 14퍼센트밖에 되지 않았지만 1980년에는 60퍼센트가 임금 소득자였다. 동유럽에서 노동계급은 잠재적으로 관료적 지배에 도전할 강력한 사회 세력으로 등장했다.
둘째, 착취가 진행될수록 낡은 착취 방법은 더 비효율적이 된다. 산업화 초기 국면에서는 농민들을 토지에서 내쫓아 임금노동을 하도록 강요하는 것으로 산업 발전이 가능했다. 새로운 노동자가 계속 창출되므로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노동 예비군’은 줄어든다. 따라서 그 이상의 발전을 하려면 노동자들이 노동에 더 헌신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노동자들에게 더 나은 조건을 제공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국민소득의 상당 부분을 축적으로 돌려 서방과 경쟁해야 하는 방식과 배치된다.
셋째,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상승한다. 즉, 축적 과정에서 노동력보다 투자가 더 빨리 증가하는데, 이는 투자 대비 이윤이 하락하는 경향을 낳는다. 이는 자본주의가 위기로 빠지는 기본 동학이다.
넷째,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생산을 조직하는 방식이 변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방 기업들은 판매뿐 아니라 생산도 국제적으로 조직하기 시작했다. 하먼은 이 단계를 “다국적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이 단계에서는 한 나라에서 국가자본주의가 번영할 수 있었던 조건들이 파괴된다. 즉, 한 나라가 끌어모을 수 있는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는 기존 산업 강국들이 장악한 분야에서 경쟁하기 힘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
이런 모순들의 결과로 옛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은 1970년대 중반부터 여러 차례 경제 위기를 겪었고 이에 대응해 노동자들이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위기에 처한 지배자들은 나름으로 타개책을 내놓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시장 지향적 경제개혁)와 글라스노스트(정치적 유화)였다. 이 정책의 핵심은 내부 시장을 개방하는 등 서방식 자본주의를 따라가는 것이었다. 하먼은 1980년대 후반에 동유럽에서 일어난 일들은 “국가자본주의”가 “다국적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동유럽 국가들이 시장 자본주의 체제로 바뀌면서 혁명적 변화도 없었고 노동자들이 구체제를 방어하려고 나서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토니 클리프는 “1989~91년의 변화는 일보 전진도 아니고 일보 후퇴도 아닌 옆걸음질이었을 뿐이다. … 옛 스탈린주의 체제와 현재 러시아와 동유럽의 체제 사이에는 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평가했다.
한 형태의 자본주의가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로 바뀌는 것일 뿐이므로 ‘개혁’의 진보성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이는 현재 동유럽 국가들이 처한 위기, 특히 평범한 사람들의 팍팍한 삶을 보면 분명하다. 그러나 ‘개혁’을 둘러싸고 지배계급 내 개혁파와 보수파 사이에 균열이 생겼고 ‘개혁’의 결과로 제한적이지만 언론의 자유 보장이나 자유 선거 등 민주적 권리가 보장됐다. 더 중요하게는 노동자들의 파업과 평범한 사람들의 투쟁이 터져나왔다. 이런 상황은 사회주의자들에게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래서 하먼은 동유럽 사회주의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하며 글을 맺는다.
그들[사회주의자들]은 국가자본주의에서 다국적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일보 전진도 일보 후퇴도 아니며 단지 옆걸음일 뿐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
사회주의자들의 과제는 축적의 … 한 국면에서 다른 국면으로의 전환 시도가 불러일으키는 정치적·사회적 불안정을 이용해 우리 자신의 혁명적 요구를 관철시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낡은 국가자본주의 질서에 대항하는 노동자, 지식인, 학생, 피억압 민족의 투쟁을 모두 지지하면서도 이와 동시에 국가자본주의에 다국적 자본주의를 이식시키려는 사람들에게 이 투쟁들을 탈취당하지 않도록 저항하는 것을 의미한다. …
이행의 정치적 위기를 이용하려면 … 민주적 요구를 그 극한까지 밀어붙여야 한다. … 그것은 국가자본주의에 대한 민주적 투쟁을 다국적 자본주의에 대한 민주적 투쟁으로 전환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의 긴급한 과제는 구식 자본주의와 신식 자본주의를 모두 반대하는 혁명적 태도를 견지하면서 독자적 정당을 건설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당시에 동유럽에서 이런 조언에 귀를 기울인 좌파는 거의 없었다. 동유럽의 좌파들은 지배계급 내 개혁파들에게 사태 변화의 주도권을 빼앗겼고, 그 결과 깊은 실의와 환멸에 빠졌다. 전 세계적으로도 좌파의 대다수는 진실을 회피하다가 결국에는 사회주의가 실패했다는 비관적 결론에 빠졌다. 하먼이 죽기 전에 남긴 최근 글에서 썼듯이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국가자본주의 이론을 받아들였다면 [옛 소련과 동유럽이 붕괴했을 때] 좌파 전체가 더 강력했으리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진정한 사회주의
국가자본주의 이론의 유용성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하먼이 이 책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국가자본주의 이론은 스탈린주의가 심각하게 뒤틀어놓은 ‘마르크스주의’를 본래 모습으로 되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당시 스탈린주의 체제를 옹호하던 활동가들은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사상을 잊고 있었다. 노동자들이 일으킨 아래로부터의 혁명 없이도 생산력이 발전하면 자동으로 사회주의가 가능하다거나 소련의 탱크를 통해 사회주의가 이식될 수 있다는 기괴한 논리가 횡행했다. 이렇게 잘못된 개념 탓에 많은 활동가들이 옛 소련의 헝가리 침공이나 중국의 톈안먼 항쟁 진압을 지지하는 오류를 저질렀다.
활동가들이 놓친 마르크스의 핵심 사상은 “노동계급의 자기해방” 사상이었다. 마르크스는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옛 소련이 붕괴할 때 국가자본주의 이론을 받아들이고 있던 사람들은 자신감을 잃지 않았고, 오히려 사회주의 전망에 대한 더 큰 확신을 갖게 됐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국가자본주의 이론은 이론적으로, 또 실천적으로 매우 유용한 이론이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동유럽 국가들의 위기가 세계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벌어지는 축적 경쟁에서 비롯한 것이라면, 여전히 축적 경쟁을 벌이고 있는 오늘날의 자본주의도 위기를 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심장부인 미국에서 시작한 최근의 세계경제 위기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또한, 이 글의 서두에서 썼듯이, 국가자본주의 이론은 북한 사회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는 관점을 제공해 준다. 따라서 이 책은 미쳐 돌아가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을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가자본주의 이론을 더 탐구하고자 하는 독자에게는 《소련 국가자본주의》(토니 클리프, 책갈피, 1993)를, 스탈린주의 체제에 맞선 동유럽 노동자들의 투쟁 사례를 알고 싶은 독자에게는 《동유럽에서의 계급투쟁》(크리스 하먼, 갈무리, 1994)을, 국가자본주의 이론을 바탕으로 북한을 분석한 책을 읽고 싶은 독자에게는 《국제주의 시각에서 본 한반도》(김하영, 책벌레, 2002)를 추천한다.
MARX21
주
- 하먼은 다른 글에서 “오늘날 서방 경제의 최소 3분의 1이 국가 부문”이고 국가자본주의 이론을 여기에 적용할 수 있으므로 오늘날에도 국가자본주의 이론이 유용하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