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위기의 학교 - 영국의 교육은 왜 실패했는가》
MB교육의 끔찍한 미래를 보여 주다
“각 학교는 아이들에게 전국학력평가시험을 치르게 했고, 시험 결과에 따른 학교 순위를 공개하여 학부모들의 학교 선택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많은 학생을 끌어들인 학교는 보상으로 추가 예산을 받았다. 이제 각 학교에 책정되는 엄청난 예산은 단지 그 학교에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등록되어 있는가에 따라 결정되었다.”
이 문장들만 읽으면 우리 나라 얘기인가 싶을 수 있다. 일제고사, 고교별 수능성적 공개, 고교선택제. 이런 단어들이 머리에 떠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의 인용은 영국 교육에 대한 닉 데이비스의 서술이다. 데이비스의 《위기의 학교》를 읽다 보면, ‘우리 나라와 똑같다’거나 ‘한국 교육도 이렇게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수십 번도 더 하게 된다.
이 책의 원제는 “The School Report”다. 말 그대로 학교 현장 조사 보고서다. 저자인 닉 데이비스는 빈곤과 인종차별 등을 탐사 보도한 유명한 저널리스트다. 그는 무려 18개월 동안 영국의 학교 현장과 정부 관련 부처를 날카롭고 성실하게 심층 취재했다. 그리고 1979년 보수당 마거릿 대처 정부부터 노동당 토니 블레어 정부까지 지속되는 교육 시장화 정책이 공교육을 어떻게 파괴했는지를 1999년부터 2000년까지 〈가디언〉에 실었다. 이 책은 그 심층 취재 기사를 보완한 것이다.
저자는 학교 현장의 실태뿐 아니라 정부의 교육정책이 노동계급 자녀들에게 끼친 충격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는 셰필드 시 애비데일 그레인지 학교를 소개한다. 이 학교는 종합중등학교로 우리 나라로 치면 중학교다. 1960년대 말 영국 정부는 대학입시 준비 과정이 있는 ‘일류’ 학교와 그렇지 못한 ‘이류’ 학교로 나뉜 공교육 불평등 상황을 개선하려 했다. 이런 시도의 일환으로 출신 배경이나 계급, 능력에 상관 없이 모든 학생들에게 동등한 입학 자격을 주는 새로운 중등학교를 전국에 세웠고, 이를 종합중등학교라고 했다.
이 같은 공교육 강화 조처 덕분에 이 학교는 한때 높은 학업 성적과 엄격한 규율을 전통으로 여길 정도였지만, 지금은 ‘실패한 학교’의 전형에 불과하다. 2천여 명에 이르던 학생 수가 이제 5백 명 남짓으로 줄었고 학교 예산은 적자의 늪에 빠져 있다.
학교 순위 공개가 낳는 문제들
이 학교의 풍경은 살벌하기 그지없다. 학생들이 동료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폭행을 일삼고 욕설을 퍼붓고 자살 소동을 벌이는 일이 흔하다. 교실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삐삐’ 호출을 받고 교실로 재빨리 달려가는 교사, 일명 ‘삐삐 선생’이 따로 있는데, 그는 하루 40~50회, 8시간 근무라고 치면 거의 10분에 한 번씩 호출을 받으며 학교를 분주하게 뛰어다닌다.
‘삐삐 선생’이 순찰하면서 붙잡는 학생들은 할리우드 영화보다 훨씬 더 많은 사연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가난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바로 이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영국 아이들의 3분의 1이 빈곤 상태로 지내고 있고 이 학교가 있는 셰필드 시의 아이들 가운데 4분의 1은 가계 수입이 전혀 없는 가정에서 살고 있는데, 이런 사실을 무시한 채 수립하는 수많은 교육 정책들은 그저 하나의 알리바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배가 침몰할 때 가장 약한 곳을 뚫고 물이 들어오는 것처럼, 빈곤은 그렇게 학교에 침투해 들어온다.” 수많은 아이들이 아침을 거른다. 집에 컴퓨터는 고사하고 책 한 권도 없는 아이들이 수두룩하다. 숙제를 할 수 있는 조용한 공간도, 수학여행비도, 통학에 필요한 버스비도 없다. 가난은 부모들을 지치게 만든다. 부모들은 팍팍한 삶과 싸우느라 엄청난 상처를 안고 살아가기에 아이들에게 관심을 쏟을 여력이 없다. 그래서 저자는 “빈곤이 핵심”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는 가난이 학교에 미치는 파괴력을 도외시한 채 학교 실패는 전적으로 무능한 교사와 학교 행정가들 때문이라며 전국적인 학업 성취도 평가를 시행했고, 그 시험 결과를 기초로 학교 순위를 공개했다. 그럴수록 어떤 학교들은 번창하고 어떤 학교들은 몰락해 갔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산층 학부모들이 ‘괜찮은’ 학교로 학생들을 보냈기 때문이다. 지역 교육청은 각 학교에 학생을 배정하던 권한을 박탈당했고, 학부모들은 스스로 학교를 선택하게 됐다.
이제 학교들은 ‘학습 부진아’를 학교 밖으로 내몰기 시작했다. 학교 간 성적 순위표에서 두각을 나타내려고, 시험 성적이 나쁠 것 같은 아이들에게는 입학을 허가하지 않기도 하고 자퇴를 유도하거나 심지어 퇴학시키기도 한다.
학업 성적이 좋거나 학생을 많이 끌어들여 번창하는 학교는 보상으로 추가 예산까지 받았다. 이제 각 학교에 책정되는 예산은 단지 그 학교에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등록했는지를 기준으로 결정됐다. 정부는 정원 미달인 학교들을 폐교시켰다. 지역 내 학교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는 늘 더 큰 부담이 뒤따랐다. 결국 ‘학군’이 양극화했다.
선택과 자율? – 빈곤층 아이들의 교육 포기로 이어져
대처는 집권 시절에 학부모에게 학교 선택권을 주고, 학교의 자율성을 강화한다는 미명하에 ‘단위 학교 책임 경영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단위 학교 책임 경영제’는 교사 수천 명이 단위 학교의 경영자와 개별적으로 임금이나 노동조건 같은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서 교원노조를 분열시키고 단체 협상 기회를 박탈했다. 당시 해고된 공립학교 교사가 5만 명이 넘는다. 대처 정부의 교육부 장관 케니스 베이커는 당시를 회고하며 “나는 교원노조가 지닌 모든 단체 협약권을 없앴다”며 즐거워했다.
그는 “학부모들의 학교 선택권을 전면 허용해서 학업 성취도가 낮은 학교들이 말 그대로 문 닫기를 바랬다”고 했다. 이 때문에 사립학교들은 날로 번창해 갔다. 사립학교는 대처 집권 전부터 수많은 면세 혜택을 누리며 보조금도 받았는데, 대처는 ‘사립학교 대상 공적 자금 지원 정책’을 추가로 시행했다. 이런 방식으로 공적 자금은 빈곤층이 아니라 부유층 교육 현장으로 점점 더 흘러 들어갔다. 정부가 공립학교 예산을 삭감해 공립학교는 학업 수행에 큰 피해를 입었지만, 사립학교는 등록금 수입과 국가 보조금에 힘입어 여전히 앞서 나갈 수 있었다.
이는 블레어 정부가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더 심각해졌다. 공립학교와 사립학교 지원은 놀라울 만큼 심각하게 불균형이다. 재정이 너무나 열악한 학교들은 학부모는 물론이고, 심지어 교사들에게까지 ‘기부’를 받는다.
자율과 선택이라는 미명하에 사립학교들은 공립학교와 달리 교육부나 지역 교육청, 교육기준청의 감독 체계에서 벗어나 있다. 사립학교들에게는 학교에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을 부유층 출신의 성적 좋은 학생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할 뿐이다. 결국 양극화한 학교 체제는 중산층 아이들이 성공한 학교를 채우도록 도와주는 한편, 빈곤층 아이들이 교육을 포기해 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1999년 영국 국립통계청은 영국 어린이 가운데 10퍼센트가 불안, 우울증, 강박관념과 행동장애, 과잉행동 같은 정신장애에 시달리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수치는 정신장애가 빈곤층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을 감추고 있다. 부모가 모두 실업자인 가정의 아이들 가운데 20퍼센트가 정신장애를 앓고, 이런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무단 결석을 하는 비율이 4배나 높았다.
그런데 정부가 하는 일이라고는 무단 결석생의 학부모에게 무거운 벌금을 부과하는 것뿐이다. 게다가 학업 성취도가 향상될 때만 지급하는 교사 성과급 제도를 시행해 성적이 나쁘거나 수업을 방해할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을 교실에서 내쫓게 만들었다. 끔찍하게도, 어떤 교장들은 이런 학생들을 내모는 행위를 ‘청소’라고 부른다.
양극화의 현실
《위기의 학교》를 읽다 보면 영국 현실이 계속 우리 현실과 겹쳐 보인다. 가난이 학생들에게 끼치는 영향이나 이명박 정부의 자율형 사립고, 국제중학교, 학교정보공시제도, 고교선택제, 대입자율화 같은 정책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닉 데이비스는 빈곤이 학업 성취도에 영향을 끼치는 핵심 요인이라고 지적하는데, 이 점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림1〉에서 보듯이, 아버지의 학력, 부모의 직업적 지위, 가족의 재산은 학생들이 지향하는 계급(직업 열망)과 학생들의 학업 성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 결과, 자본가 계급의 자녀가 상위대학에 더 많이 진학한다.(〈표1〉 참고. 단, 이 표는 상당수가 노동계급일 하위사무직을 중간계급으로 분류하고 있다.)
1 부모의 학력, 경제수준, 직업 등이 사회경제적 지위를 구성하는데, 이는 자녀의 학력과 소득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다(〈그림2〉 참고).
한국 사회에서 학력은 빈곤 대물림과 직접적 연관이 있다. 임시직·일용직에 종사하는 저학력 맞벌이 부모나 한부모 가정은 차상위층이나 극빈층에 속할 확률이 높고,‘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옛 말이 된 지는 정말 오래다. 잘 사는 집 아이들이 공부도 잘 한다는 얘기를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요즘 한 광고에는 엄마가 ‘공부가 인생의 전부냐. 기죽지 마라, 우리 딸!’ 하는데도 정작 초등학생 딸이 ‘그건 옛날 얘기지’ 하며 고개를 푹 숙이는 장면이 나온다. 그야말로 입시와 경쟁에 찌들어 살 수밖에 없는 학생들의 한숨과, 자신의 가난과 설움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부모들의 심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한국 사회는 ‘학벌사회’라고 할 정도로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가 꼬리표처럼 평생 따라 붙는 게 현실이다.
이 책을 보면 영국에서 이미 실패한 정책을 그대로 밀어붙이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의 미래가 왜 잿빛일 수밖에 없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선택이 효율성을 보장한다’는 생각에 전면적으로 도전한다. 그리고 투자와 지원의 우선 순위가 무엇인지 보여 준다.
MARX21
주
- 김미숙·배화옥, “한국 아동빈곤율 수준과 아동빈곤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연구”, 《보건사회연구》 27집 1호, 2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