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파열: 세계적 재앙과 오늘날 극우 *
3 그러나 난입 현장을 찍은 영상들이 하나둘 공개되자 그 행동에 수반되거나 수반될 수도 있었던 폭력이 무엇인지가 분명해졌다.
이 “반란”에는 상당한 소극笑劇의 요소들이 있다. 자유주의 역사가 티머시 스나이더는 이렇게 평했다. “이 행동이 어떤 효과를 내고 거기에서 무엇을 성취할 수 있었는지 분명하게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엄청나게 중요한 건물을 접수하고도 그렇게 서성거리기만 하다니, 이에 비견할 반란의 순간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4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체포된 한 여성은 자기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영상을 보냈다. “낸시를 찾아서 대갈통을 쏴 버리려고 했는데 못 찾았어.” 5 서툴렀을지는 몰라도 분명 매우 고약한 자들이었다.
“펜스의 목을 매달아라” 하고 외친 자들이 하원의장인 민주당 낸시 펠로시를 마주쳤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졌으리라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일진대, 하물며 좌파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나 일한 오마르를 마주쳤다면 어땠겠는가. 오카시오-코르테스는 생명의 위협을 느껴 사무실 화장실에 숨었다고 했다.6 그날 프랑스에서는, 혼란에 빠진 프랑스 제3공화정의 의회주의 정부를 권위주의 정권으로 갈아치우라는 언론들의 선동 속에서 극우 동맹이 시위를 조직했다. 주로 재향군인들로 이뤄진 시위대는 (프랑스 하원이 있는) 부르봉궁과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엘리제궁을 습격하려 했다. 이들은 사기꾼 사업가 알렉상드르 스타비스키의 죽음이 자살로 처리되면서 불거진 정치·금융 스캔들을 비난하고, 중도좌파인 ‘좌파연합’ 정부(자유주의 부르주아 정당인 급진당이 주도하고 사회당이 지원하는 연정)가 출범하고 총리 에두아르 달라디에가 우익 경찰서장을 해임한 것에 항의했다. 극우 시위대는 경찰과 전투를 벌이다 경찰의 발포로 14명이 사망했으며 결국 목적지까지 가지 못했다.
영국의 좌파 저술가 폴 메이슨이 이 사건을 1934년 2월 6일 파리에서 일어난 일과 비교한 것은 유익하다. 그러나 달라디에는 하원에서 두 차례나 표결에서 이겼는데도 다음 날 사임했다. 전직 대통령 가스통 두메르그가 총리직을 넘겨받았다. 두메르그는 중도우파 정부를 구성해 좌파연합이 승리한 1932년 선거 결과를 사실상 뒤집었다. 두메르그는 행정부로 권력을 집중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우파 정치인들 중 한 명이었다. 트로츠키는 이렇게 예측했다. “두메르그 정부는 의회 체제에서 보나파르티즘으로 가는 첫 단계가 될 것이다.”이처럼 1934년 2월 6일 프랑스 극우는 목적지까지 가지 못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승리했다. 반면 2021년 1월 6일 미국에서는 극우가 국회의사당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실패했다.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그랬다. 워싱턴 DC의 차고 넘치는 보안 병력이 어떤 공모·음모·무능의 조화로 국회의사당을 내줬는지는 몰라도 침입자들은 비교적 신속하게 쫓겨났다. 미국의 거대한 안보 기구가 극우 시위대의 대의에 조금이라도 공감을 표했다는 증거는 없다. 부통령 마이크 펜스나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 등 공화당 지도부 내 핵심 트럼프 조력자들은 1월 6일 난입에 대한 정치적 반발 속에서 트럼프에 대한 충성을 버렸다. 의회는 다시 모여서 바이든의 당선을 승인했고, 1월 20일 트럼프가 샐쭉한 표정으로 비행기를 타고 플로리다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바이든은 예정대로 취임식을 열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의 심각한 의의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자본주의 국가다. 1789년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에 당선한 이래 미국의 정권은 후임 대통령에게 평화롭게 인계돼 왔다. 그런데 이번 미국 대통령직 인수자는 무장한 주州방위군 2만 5000명이 지키는 가운데 취임식을 치렀다. 1861년 3월 에이브러햄 링컨의 취임식이 암살 위협, 남부 노예주의 분리 독립, 내전의 개전 속에서 치러진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국회의사당 난입 이전에 이미 미국의 중요한 마르크스주의자 마이크 데이비스는 2020년 선거 결과를 분석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트럼프 임기 동안 과거 속에 깊숙이 파묻어 버린 줄 알았던 구조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으며, 그 구조들이 미래에 가하는 위협이 용인돼 왔다. 미국에서 내전이 또다시 벌어지려는 것인가? 어느 정도의 유비는 불가피하고 가볍게 기각해서도 안 된다.” 게다가 정치 양극화는 단지 미국에 한정된 국지적 현상이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관찰되는 현상이다. 유럽에서도 극우가 성장했을 뿐 아니라 제국주의의 핵심부 바깥에서도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등이 부상했다. 이러한 변화는 위기·혁명·반혁명의 상호작용이라는 적절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 고전적 파시즘 시기를 규정한 이 세 요소와 이들의 상호작용은 오늘날 변형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 극우의 부상을 이해하려는 다른 많은 좌파들과 달리 나는 이를 국제적 현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고전적 파시즘과 재앙의 시대
10 좌경 자유주의 역사가 아르노 메이어는 이 시기를 “일반적 위기와 20세기의 30년 전쟁”으로 일컬었다. 11 이 시기를 규정짓는 세 가지 특징은 다음과 같다.
이탈리아 파시즘의 집권(1922년), 독일 나치의 집권(1933년),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승리한 스페인 내전(1936~1939년)은 현대 극우의 승리를 대표하는 사건들이다. 이 사건들은 마르크스주의자 에릭 홉스봄이 “재앙의 시대”라고 일컬은 1914년과 1945년 사이에 일어났다.제국주의 간 전쟁의 시대: 영국이 개척한 자본주의적 제국주의가 일반화한 결과다. 열강 간 경제적·지정학적 경쟁이 파열점에 도달해 무시무시하고 파괴적인 세계 대전이 1914~1918년과 1939~1945년 두 차례 벌어졌다. 이 속에서 기존 경제·정치·사회 구조들이 불안정해지고 그 정당성이 훼손돼, 정치가 극좌(공산주의 인터내셔널)와 극우(권위주의적 수구 세력과 파시스트 세력)로 양극화됐다. 제1차세계대전은 근저에 있는 적대를 해결하지 못했고 두 번째 세계대전으로 가는 길을 닦았다.
12 그때까지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자본주의 국가인 영국은 제1차세계대전이 낳은 금융 불안정을 수습할 수 없었고, 그 결과 체제 전반이 자본주의 생산양식 역사상 전례 없는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이 위기는 제국주의 간 경쟁을 심화시켰으며 1930년대 후반에 열강이 전시 생산 체제로 전환하고 나서야 극복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심각한 불황: 1930년대 대불황은 양차 세계 대전으로 폭발한 제국주의 간 경쟁과 유기적으로 얽혀 있었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제국주의적 팽창의 근원을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 법칙에서 찾았다. “부가 풍족한 자본주의 유럽에서는 이윤율이 저하 경향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래서 직접 이익을 발생시킬 투자를 늘릴 영역을 확장해야 했다. 그 결과 1890년 이후 거대한 식민지 제국이 탄생했다.”혁명과 반혁명: 제1차세계대전이 몰고 온 파괴와 궁핍을 배경으로 1917년 러시아에서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인 10월 혁명이 일어나 혁명적 격변의 물결을 고무했다. 이 물결은 가장 강력한 유럽 국가인 독일을 휩쓸었고 1925~1927년에는 중국으로까지 이어졌다. 오른쪽에서 즉각 이에 대항하는 강력한 반동이 일어났다. 러시아 내전이 발발했고 독일에서는 로자 룩셈부르크와 카를 리프크네히트가 반혁명적 폭력에 희생됐다. 전쟁은 많은 젊은 남성들이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고 폭력에 무뎌지게 만들었고, 이들 중 많은 수가 아일랜드의 흑갈부대나 독일과 그 국경 지대의 자유군단 같은 반동적 무장 조직으로 결집됐다. 초기 파시스트 조직들은 이런 사회 부분들에서 지지자들을 대거 충원됐다.
그래서 지배계급의 정치는 (특히 유럽 대륙에서) 반혁명적 성격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대불황으로 기존 구조가 더 불안정하게 된 뒤에는 더 그렇게 됐다. 그 결과 프랑스와 영국 같은 서유럽의 주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국가들로 상징되는 의회 체제에서 어느 정도 멀어져 권위주의적 우익 정치 체제로 향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역사가 마크 마조워는 다음과 같이 썼다.
1930년대 중반이 되면, 북쪽 변방을 제외한 유럽 거의 모든 곳에서 자유주의가 기진맥진한 듯했고 조직 좌파는 이미 패배해 있었다. 이데올로기와 지배권을 둘러싼 투쟁은 권위주의 세력, 전통적 보수파, 기술관료, 급진적 우익 극단주의자 등 우익 내에서만 벌어졌다. 오직 프랑스에서만 좌우의 내전이 1930년대까지 이어졌지만 그 결말은 비시 정권이었다. 물론, 오스트리아에서도 내전이 잠깐 벌어졌고(1934년) 스페인에서는 좀더 장기화됐지만 여기서 승리한 쪽은 우익이었다. 이탈리아, 중부 유럽, 발칸 반도에서는 우익이 맹위를 떨쳤다.
니코스 풀란차스가 말한 “예외적 자본주의 국가”(파시스트 정권, 군부 독재, 보나파르티즘 체제 등)로 향하는 경향을 염두에 두고 트로츠키는 두메르그를 보나파르티즘으로 가는 첫 단계로 묘사했던 것이다. 트로츠키는 보나파르티즘을 “군사-경찰 독재”로 묘사했다.
두 사회 계층, 즉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착취자와 피착취자의 투쟁이 자아낸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면, 이내 관료·경찰·군부의 지배가 들어설 조건이 형성된다. 정부는 사회로부터 “독립적”이 된다. ⋯ 두 포크가 코르크 마개에 대칭적으로 꽂히면 그 코르크 마개는 바늘 끝에 놓아도 쓰러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보나파르티즘의 개요도다.
15 의원 내각제는 껍데기만 남았고 그 뒤에서 관료들과 군 장성들이 대은행가·대지주와의 밀접한 제휴 속에서 결정권을 행사했다. 이것은 위로부터의 반혁명이었다. 즉, 국가의 억압 기구를 이용해 대중(노동자·농민·소상공인)에게 자본주의적인 경제 위기 극복 방안을 강요한 것이었다.
독일의 경우에 트로츠키가 염두에 뒀던 것은 연달아 구성된 하인리히 브뤼닝 정부, 프란츠 폰 파펜 정부, 쿠르트 폰 슐라이허 장군의 정부였다. 1930~1933년에 이 정부들은 경제 위기를 수습하려고 (은행을 달래려고 주로 긴축 정책을 폈다) 대통령 파울 폰 힌덴부르크의 긴급조치권을 이용해 의회를 거치지 않고 시행령을 내렸다.마조워는 다음과 같이 썼다.
민주주의 이전의 특권층 시대로 역사의 시계를 되돌리고 싶어 한 옛 우파 정권들과, 대중 정치 기구로 권력을 잡고 유지한 새로운 우파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었다. 프랑코나 그리스 독재자 이오아니스 메탁사스는 전자에 속한다. 이들은 대중 정치를 두려워하며 왕가나 교회 같은 기성 질서의 보루와 동맹을 맺었다. 발칸 반도의 우파들은 19세기로 돌아가려 했다. 강력한 전제정이 장관을 지명하고 정당을 단속하고 철처한 통제 속에서 선거를 열던 시절로 말이다.
17 중부 유럽에서는 그런 상황이 그 뒤로 25년 더 지속됐다. 당시 영국·프랑스의 자유주의적 선진 자본주의가 유럽 대륙 전역의 금융을 지배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런 점에서 위로부터의 반혁명은 기존 정치·사회 질서의 연장으로서 일어난 것이었다.
권위주의적 우익 정권의 득세는, 메이어의 표현을 빌면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지주·공직 귀족들이 1914년까지도 유럽 지배계급 내에서 우세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18 풀란차스는 두 나라가 “러시아 다음으로 제국주의 사슬의 약한 고리”였다고 했다. 19
반면 파시즘은 아래로부터의 반혁명이었다. 파시즘이 순수한 형태로 부상한 경우는 드물었다(예컨대 스페인의 파시스트 세력인 팔랑헤는 프랑코의 군사 독재에 종속돼 있었다). 순수한 형태는 권위주의적 수구 세력을 사실상 밀어낸 무솔리니 치하의 이탈리아나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 등장했다. 자유주의적인 프랑스를 제외하면 독일과 이탈리아가 유럽 대륙에서 가장 산업화된 나라였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물론, 두 사회는 불균등 결합 발전 과정으로 형성된 사회였다. 그래서 독일의 마르크스주의자 에른스트 블로흐가 1930년대에 말한 “동시대적이지 않은 것들의 동시대성”이라는 특징을 보였다. 즉, 상이한 역사적 시대를 대표하는 사회 형태들이 공존했다. 루르의 제철소와 토리노의 자동차 공장이 융커가 소유한 동프로이센의 대토지나 이탈리아 남부의 대농장과 공존했다. 파시즘의 동학은, 특히 독일 나치라는 순수한 형태의 경우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였다. ⑴ 현재와의 혁명적 단절을 약속하는 정치 스타일. ⑵ 인종으로 규정된 “민족 공동체”와 이를 위협하는 외부인, 특히 “세계시민주의적 유대인 금융 자본”을 대립시키는 이데올로기. 적개심 가득한 반反마르크스주의가 특징이다. ⑶ 주로 중간계급(소상공인, 양차 세계 대전 사이에 비교적 특권을 누린 “봉급 생활자 계층”, 전문직) 속에서 충원되는 무장 조직을 보유한 대중 운동 건설. ⑷ 급진화의 동학 — 나치의 유럽 유대인 말살 시도는 파시즘이 정권을 잡은 가운데 나타나는 이런 동학의 가장 완전한 표현이었다.블로흐는 혁명적인 척하는 나치 이데올로기의 낭만적 반자본주의가 대중에 주는 매력을 포착했다.
공포에 휩싸인 독일에서 매시간 모든 말마다 드러나는 저열함, 경악스러운 만행, 무지, 두려움에 휩싸인 맹목 외에도 자본주의에 대한 케케묵고 낭만적인 거부가 얼마간 포함돼 있다. 이는 현실에 없는 것을 그리워하고 막연히 뭔가 다른 것을 갈망하는 것이다. 파시즘에 넘어가기 쉬운 농민들과 피고용인들의 처지에는 상이한 것들이 반영돼 있는데, 여기에는 단지 후진성만이 아니라 진정으로 “동시대적이지 않은 것”, 즉 앞선 시기의 경제적·이데올로기적 잔재가 때때로 반영돼 있기도 하다. ⋯ 이러한 모순의 시대착오적 성격이 “혁명”과 반동을 동시에 내세우는 기만과 열정을 가능케 한다.
물론 지배계급(자본가, 지주, 장성, 국가 관료)은 이런 종류의 정당이 집권하는 것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지배계급은 절박한 상황에서만 그들을 밀어 주는 모험을 감행하려 했다. 노동계급과의 대결이 바로 그런 절박한 상황이었다. 당시 노동계급은 잇단 패배(1918~1923년 독일 혁명과 1920년 9월 이탈리아 공장 점거의 패배)로 약화됐지만 여전히 조직과 전투성이 많이 남아 있어서 트로츠키가 말한 보나파르티즘적 군사-정치 독재로는 굴복시키기 어려웠다.
반동적인 유토피아적 이데올로기로 결집하고 추동되는 파시스트 대중 운동은 조직 노동계급을 분쇄하고 원자화시킬 원동력을 제공했다. 그러나 강조하건대, 파시스트들은 지배계급이 마지못해서라도 지지한 덕분에 집권할 수 있었다. 무솔리니와 히틀러 둘 다 자유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물론 헌법의 틀 안에서 정권을 잡았다. 그리고 일단 정권을 잡은 후에는 좌파를 분쇄하고 자신에게 권력을 집중시켰는데, 특히 히틀러는 1933년 봄에 신속하고 가차없이 “마흐터그라이풍”(권력 장악)을 추진했다. 그런 점에서 파시즘의 집권은 위로부터의 반혁명과 아래로부터의 반혁명을 결합한 것이다.
당시 독일 상황을 다룬 트로츠키의 저작이 탁월한 것은 온갖 부르주아적 반동 조류 사이에서 파시즘의 특수성과 노동자 운동에 가하는 치명적 위협을 포착했다는 것이다.
대부르주아지는 히틀러에게 자금을 대준 자들조차 히틀러의 당을 자신의 당으로 여기지 않는다. 독일 민족의 “부흥”은 국민의 가장 후진적 부위이자 역사의 바닥짐인 중간계급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다. 정치적 기예의 핵심은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공통된 적개심으로 프티부르주아지를 결집시키는 것이었다. 상황이 나아지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선 아랫것들을 목 졸라 죽여라. 대자본 앞에서 무기력한 프티부르주아지는 노동계급의 파멸을 통해 훗날 존엄을 되찾기를 바랐다. 나치는 혁명의 타이틀을 찬탈해 자신들의 정권 교체를 말한다. 그러나 사실 이탈리아뿐 아니라 독일에서도 파시즘은 사회 체제를 건드리지 않는다. 그 자체로 보면 히틀러의 정권 교체는 반혁명으로 불릴 자격도 없다. 그러나 이 사건을 맥락에서 떼어 놓고 이해해선 안 된다. 이 사건은 1918년 독일에서 시작된 격변의 주기 끝에 나온 결과다. 노동자·농민 소비에트에 권력을 준 11월 혁명은 근본 경향에서 프롤레타리아적이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를 지도한 당은 권력을 부르주아지에게 돌려줬다. 그런 점에서 사회민주당은 혁명이 과업을 완수하기도 전에 반혁명의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부르주아지가 사회민주당에 의존하고, 따라서 노동자에게 의존하는 한 이 질서는 여전히 타협이라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독일 자본주의의 국내외 상황이 양보의 여지를 없애 버렸다. 사회민주당이 부르주아지를 프롤레타리아 혁명에서 구해내자, 이번에는 파시즘이 부르주아지를 사회민주당에게서 해방시켰다. 히틀러의 정권 교체는 반혁명적 전환이라는 사슬의 마지막 고리일 뿐이다.
파시즘의 동학에 대한 트로츠키의 통찰은 권력 장악에서 멈췄다. 어떤 면에서 이는 그가 파시스트 정당과 지배계급의 대립을 예리하게 포착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트로츠키는 이 대립이 지배계급에게 유리하게 해결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탈리아 파시즘과 마찬가지로 독일 파시즘은 프티부르주아지의 지지를 딛고 권좌에 올랐으며, 이들을 노동계급 조직과 민주주의 기관을 함락시킬 파괴적 무기로 만들었다. 그러나 파시즘의 집권은 결코 프티부르주아지의 지배를 뜻하지 않는다. 이것은 오히려 독점 자본의 가장 무자비한 독재를 뜻한다.
24 그러나 내가 몇 년 전에 썼듯,
트로츠키는 이렇게 예측했다. “이탈리아 사례가 보여 주듯, 파시즘은 결국 보나파르티즘 유형의 군부·관료 독재로 이어진다.”나치 정권은 군부 독재로 끝나기는커녕 1944년 히틀러 암살 음모 실패를 계기로 군 장성을 대대적으로 처형했다. 풀란차스는 … 안정적인 파시스트 정권은 국가기구 내에서 정치 경찰이 지배적이라는 특징이 있다고 주장했다. 확실히 나치 정권의 마지막 국면에 부합하는 묘사다. 당시 나치 친위대SS와 그 경찰 조직인 RSHA[“국가보안본부” — 캘리니코스]는 어느 때보다도 막강한 힘을 행사했다.
26 집권한 나치의 급진화는 상당한 국가자본주의 부문의 건설로도 나타났는데(그 동기는 이데올로기, 제국주의 팽창 전쟁을 일으킨다는 히틀러의 목표, 정권 내 상이한 부문들 간의 경쟁, 세계 시장의 파편화가 두드러진 세계적 불황 속에서 경제를 관리해야 할 필요성 등이었다), 이는 민간 자본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민간 자본을 잠식하기도 했다. 한편, 나치 정권은 독일 자본의 필요나 두 전선에서 치르고 있는 전쟁의 우선순위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데도 유럽의 유대인들을 말살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이 또한 나치 정권의 정치적 자율성을 선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다. 특히, 이 자율성은 이데올로기적 지향이 분명한 경찰·군사 관료 조직인 SS의 힘이 갈수록 커지는 것으로도 표현됐다. 27
나치와 독일 자본의 관계는 “갈등하는 동반자 관계라는 말로 가장 잘 특징지을 수 있다. 이 관계는 나치와 일부 독일 자본(특히 중공업 관련)의 제한적인 이해관계 수렴에 기반했다. 이들은 특히 조직 노동계급을 분쇄하고 동쪽으로 제국주의적 확장을 꾀한다는 목표를 공유했다.” 궁극적으로 파시스트 국가들은 군사적 패배로 몰락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연합군이 침공하자 무솔리니의 측근들이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로 대표되는 구질서와 동맹을 맺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1943년 7월 무솔리니를 제거했다. 무솔리니는 나치에게 구출돼 괴뢰 정부 수반이 됐지만 1945년 4월 빨치산 부대에 붙잡혀 처형당했다. 한편 나치 정권은 연합군이 독일을 침공·분할하고 독일의 군사력과 인프라 대부분이 물리적으로 파괴되고 주요 나치 지도자들이 사망하면서 몰락해 버렸다. 역사가 로버트 팩스턴이 간결하게 묘사했듯 “이탈리아와 독일의 파시스트 정권들은 갈수록 더 아찔한 성공을 쫓다가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제1차세계대전 동안 폭발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유기적 위기”는 러시아 혁명과 이를 모방하려는 시도뿐 아니라, 자본주의를 살리기 위해 체제를 재건하려는 자본 측의 시도를 촉발하기도 했다고 그람시는 주장했다. 그람시는 이런 자본 측의 대응을 이해하려고 수동 혁명이라는 개념을 썼다. 수동 혁명의 핵심은 “기존 세력 구성을 점진적으로 수정해 새로운 변화의 모태를 만들어 낼 최소 입자적 변화들”이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기존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방어하고 그것의 전복을 막기 위해, 생산력을 사회화하라는 압력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는 “‘정립’[자본주의 — 캘리니코스]의 필요를 반영하는 것으로, 이 ‘정립’은 심지어 ‘반정립’[사회주의 혁명 — 캘리니코스]의 일부를 흡수할 만큼 완전한 발전에 도달하려 한다. 변증법적 대립 속에서 자신이 ‘극복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다.” 양차 세계 대전 사이 반혁명과 세계 불황의 시대에 수동 혁명은 주로 두 가지 형태를 띠었다. 하나는 파시즘이었다. 이것은 경제적 개입주의 요소들에 노동자 운동에 대한 체계적 탄압을 결합하는 해결책이었다. 다른 하나는 그람시가 “아메리카주의와 포디즘”이라고 일컬은 것으로, 이것은 유럽에서 실패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대량 생산 기반으로 재편하고, 재편된 생산의 리듬을 수용하는 쪽으로 노동자들의 의지를 전환시키는 것이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이 그 정점이었다.31 파시즘은 자본주의의 최대 위기에 대한 대응이었지만 그 위기를 해결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람시가 1933년에 제시한 이런 분석에는 중요한 단서를 하나 달아야 한다. 당시 대불황과 이에 대한 정치적 대응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었고, 그래서 그람시는 파시즘도 뉴딜도 위기를 극복하지는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제2차세계대전이 일어나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적 제국주의가 파시스트 제국주의를 패퇴시키고, 전쟁 중에 발전한 군비 경제가 미국과 미국의 옛 동맹이었던 소련 사이의 새로운 경쟁으로 지속되자 비로소 그 위기는 해결될 수 있었다.현대의 극우와 “항구적 재앙”
이러한 역사 개괄은 현재를 이해하는 기준점이 된다. 강조하건대, 역사가 반복돼서가 아니라 오늘날과의 차이점과 공통점(또는 잠재적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공통점은 오늘날도 재앙의 시대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재앙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메이어가 말한 “30년 전쟁”에서 숱하게 벌어진 대량 학살이 아니라, 대중의 빈곤과 자연 파괴가 결합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를 응축된 형태로 보여 줬다. 독일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개인의 삶을 지배하고 파괴하는 자본주의의 비인격적 논리를 역설적이게도 “세계 정신”으로 일컫는다.
사회는 적대에도 불구하고 존속하는 것이 아니라 적대를 통해 존속한다. 이윤 추구, 따라서 계급 관계가 생산 과정의 객관적 동인을 이룬다. 모두의 삶이 이 생산 과정에 달려 있지만 최고의 생산 과정은 모두의 죽음이라는 소실점으로 모인다. 세계 정신은 ⋯ 항구적 재난으로 규정돼야 한다.
그렇다면 현 시기를 규정하는 특징은 무엇인가? 세 가지 특징이 두드러진다. 미국 제국주의가 쇠약해지는 가운데 대對중국 경쟁이 증대하고 있다: 현 시기에는 1870~1945년 고전적 제국주의 시대와 달리 유동적인 지정학적 경쟁이 벌어지고 있지 않다. 더 정확히 묘사하자면, 1945년부터 패권을 잡은 자본주의 국가 미국은 세계 GDP(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몫이 장기적으로 줄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점령에 실패해 심각한 지정학적 패배를 겪어 왔다. 한편, 중국은 제조업과 수출 강국으로 부상하고 군사력을 키워서 미국 패권에 역사상 가장 만만찮은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국가 간 경쟁이 증가하긴 했어도 중국이 미국에 제기하는 군사적 도전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국한돼 있다. 게다가 2007~2009년 세계 금융 위기가 미국의 위상에 타격을 주기는 했지만 국제 금융 시스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중심적 지위는 오히려 더 강화됐다. 이것은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하 연준)가 2007~2008년과 2020년 공황에 대한 국가의 대응을 조율하고, 세계 통화 시장이 의존하고 있는 달러의 흐름을 유지하는 데에서 한 구실 덕분이다.
34 그리고 이런 위기 경향은 크리스 하먼이 말한 “자본의 새로운 한계”, 즉 “다른 모든 형태의 인간 사회와 마찬가지로 이 체제도 의존하는 상호 작용 과정을 파괴하는 경향” — 마르크스는 이런 상호 작용을 노동과 자연의 신진대사라고 했다 — 과 상호 작용을 일으켜, 코로나19 팬데믹을 만들어 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기후 변화가 몰고올 더 끔찍한 재앙들의 음산한 전주곡이다. 35
금융이 이끄는 더딘 성장이 계속되는 가운데(“장기 불황”), 인간이 자연과 맺는 관계의 위기가 증대하는 것이 문제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 질서는 1980년대에 지배적이 됐으며 생산의 국제적 구조조정과 금융 규제 완화를 수반했지만, 1960~1970년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발생한 이윤율 위기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그 결과 마이클 로버츠가 말한 “장기 불황”이 벌어졌다. 국제 금융 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의 중앙은행들이 값싼 신용 화폐를 대거 투입한 것에 기대어 상대적으로 저조한 성장률을 겨우 달성했다.36 세 번째 주기는 팬데믹이 시작된 후에도 지속돼, 2020년 여름 미국의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반란과 여기에 연대를 나타낸 세계 곳곳의 시위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런 운동들과 함께 극우도 국제적으로 부상했다. 선거에서 돌파구를 연 사례(모디·트럼프·보우소나루)도 있었고, 이집트(2013년)·타이(2014년)·볼리비아(2019년)에서는 쿠데타가 벌어졌으며, 2021년 미얀마에서도 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신자유주의가 일련의 운동과 반란을 촉발하고 이와 함께 반동적 운동이 성장했다: 갈수록 파괴적이 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반발로, 1990년대 후반부터 추나라가 말한 세 차례의 반란 주기가 왼쪽에서 일어났다. 첫 번째 주기(1994~2005년)에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반란, 볼리비아의 반反신자유주의 반란을 비롯한 개발도상국들에서의 반란, 국제적으로 일어난 다른 세계화 운동과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두 번째 주기(2011년)에는 아랍 혁명, 그리스와 스페인 국가에서 일어난 광장 점거 운동, ‘월가를 점거하라’ 운동이 있었다. 2019년 봄에 시작된 “새로운 반란의 주기”에 알제리·수단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홍콩·칠레·에콰도르·콜롬비아·레바논·아이티·기니·카자흐스탄·이라크·이란·프랑스·카탈루냐에서 대중 항쟁이 일어났다. 요컨대, 신자유주의적 형태의 자본주의는 경제적·정치적·생물학적 성격을 동시에 띤 다차원적 위기 속에서 무너지고 있다. 서구 지배계급 일부도 다중 위기의 심각성을 느낀다. 재닛 옐런은 바이든의 재무장관으로 임명된 직후 재무부 임직원에게 보내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지난 몇 주 동안 바이든 대통령이 한 말을 들어 보셨다면, ‘네 가지 역사적 위기’라는 얘기를 들으셨을 것입니다. 코로나19도 그중 하나입니다 ⋯ 이 나라는 그 외에도 기후 위기, 체계적 인종차별이라는 위기, 지난 50년 동안 누적된 경제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38 그러나 지금까지 왼쪽에서는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에 조금이라도 근접한 돌파구를 내지 못했다. 가장 근접한 사례는 2011년 1월 25일 이집트 혁명이다. 이 혁명에서는 무바라크 독재 정권에 대한 정치적 반대가, 세계 금융 위기와 신자유주의로 인한 경제적·사회적 고통에서 비롯한 불만과 결합됐다. 이것이 처음에는 청년들의 항쟁을 촉발했고, 그 뒤에 오랜 투쟁의 전통이 있는 노동계급이 여기에 합류했다. 39 그러나 이집트 혁명은 2013년 7월 3일 군 총사령관인 압둘파타흐 엘시시의 쿠데타로 분쇄됐다. 엘시시는 무바라크보다 훨씬 더 무자비하고 억압적인 독재 정권을 세웠다.
이는 헤게모니 위기를 낳았다. 즉, 부르주아 지배의 유력한 형태가 쇠약해졌다.선진국 중에서 투쟁이 가장 멀리 나아간 사례는 2010~2012년 유럽연합이 강요한 긴축에 맞선 투쟁이 벌어진 그리스일 것이다. 이 투쟁 덕분에 좌파 정당 시리자가 2015년 1월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6개월 후 당 지도자이자 총리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유럽연합과 독일에 굴복했다. 미국의 버니 샌더스, 영국의 제러미 코빈이 이끈 개혁주의적 좌파의 부상은 영감을 줬지만 선거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아일랜드는 아직 중요한 예외로 남아 있는데, 여기서는 급진좌파인 ‘이윤보다 인간을’이 남·북 아일랜드 모두에서 전진하고 있다. 100년 넘은 아일랜드 분단이 브렉시트로 불안정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요한 변화다.
40 타리크 알리가 말한 신자유주의적인 “극단적 중도”는 보수 세력과 사회민주주의 세력을 불문하고 모두 선거에서 입지가 좁아졌다.
극우가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을 주도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극우 경향들은 신자유주의 시기에 누적된 불만이 세계 금융 위기로 인한 경제적 고통과 혼란으로 더 깊어진 상황을 이용해 지난 몇 년 동안 눈에 띄게 성장했다. 이들은 특정 인구 부분의 분노를 한편으로는 “세계시민주의적 특권층”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이민자와 난민에게 돌리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세계화를 반대하고 일자리와 복지를 옹호한다는 말을 하며, 월든 벨로의 말처럼 “좌파들의 밥상을 뺏어갔다.”41 그러나 지금은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이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을 진보적 대안을 제시할 만큼 강하게 치고 나오지 못하는 상황 —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다 — 에서 신자유주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그래서 현 질서의 여러 기능 장애가 낳은 불만과 분노를 극우가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양차 세계 대전 사이에 벌어진 일이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때와 지금은 네 가지 핵심적 차이가 있다. 첫째, 오늘날 부상하는 극우가 처해 있는 전반적인 사회 상황이다. 선진국에서 극우의 반혁명적 성격이 1920~1930년대보다 덜 직접적이다. 다시 말해 좌파의 전진에 대항하는 성격이 그때보다 덜하다.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에 있은 지난번 노동자 투쟁의 국제적 고양기는 계급 세력 균형을 자본에 유리하게 만들려는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낳았다. 시야를 전 세계로 넓히면 그림이 조금 다르다. 예컨대 아시아에서는 프리야 차코와 카니시카 자야수리야가 말한 “권위주의적 국가주의”가 부상했다. 이 개념은 풀란차스에게서 가져온 것으로, 풀란차스는 “민주주의 정치 기구들이 쇠락하고 이른바 ‘형식적’ 자유가 여러 방식으로 엄격하게 축소되는 것과 맞물려 사회-경제 생활 모든 영역에서 국가 통제가 강화된다”는 뜻으로 그 개념을 썼다.차코와 자야수리야에 따르면, 아시아에서 이런 변화는 신자유주의 질서 자체가 붕괴하는 식으로 나타나기보다는, 여당들이 대중의 동의를 확보하는 데 써먹는 특정한 정치 형태에 신자유주의 질서가 파괴적인 영향을 주는 식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국가의 자원을 고용·소비 지원에 사용케 하는 후견 네트워크를 손상시켜, 차코와 자야수리야가 말한 “정치적 해체” 상태를 낳았다.
유력한 정치적 포섭 방식에 균열이 생기면서 정치 지배층은 자본주의 사회관계의 정당성을 확보할 다른 방식을 만들어 내려고 애썼다. 사회적 행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이 문화적 민족주의와 반反다원주의를 동원하는 것은 이런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차코와 자야수리야가 지적하듯 인도국민당BJP이 정확히 그런 사례다. 선거적 성공을 거둔 힌두 국수주의 정당인 인도국민당의 핵심에는 파시스트 조직인 국민자원군RSS이 있다. 국민자원군 창립자들은 공공연히 히틀러를 존경했던 자들이다. 역사 깊은 민족주의 정당인 인도국민회의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선도하다 그 기반이 붕괴하자 인도국민당이 이를 이용할 수 있었다. 한편, 벨로가 “파시스트 괴짜”라고 부른 로드리고 두테르테도 있다. 범죄 소탕을 공약으로 걸고 필리핀 대통령에 당선한 두테르테는 수십 년 간 계속된 신자유주의의 실패에 대한 대중의 염증에 힘입어 마약 복용자 대량 학살을 부추겼다. 아시아 바깥, 특히 브라질의 사례도 있다. 보우소나루는 노동자당PT 정부가 국제 금융 위기의 충격을 받고, 브라질 정치 엘리트들의 고질적인 부패에도 연루돼 붕괴한 상황을 이용할 수 있었다.
45 엘시시는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자본주의 국가들인 페르시아만 연안 군주국들에게서 재정 지원도 받았다.
이집트 엘시시의 쿠데타도 이런 패턴에 부합했다. 쿠데타 며칠 전인 2013년 6월 30일, 무슬림형제단의 무함마드 무르시 정권에 반대하는 중간계급들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2012년 대선에서 주요 좌파 후보로 출마한 나세르주의자 함딘 사바히나 독립노조 지도자인 카말 아부 에이타 등 좌파와 동맹했던 지도자들이 얼마간 동원했다. 엘시시는 순전히 무력으로만 무르시 정권을 타도하지 않았다. 엘시시는 이 충돌을 세속주의 대 이슬람주의의 대결로 포장했고 많은 좌파가 그 함정에 빠졌다.그래도 개발도상국에서는 저항의 붉은 물줄기가 더 세차게 흐르고 있다. 아랍 세계에서 일어난 반란이 가장 눈에 띄는 사례다. 이 혁명적 과정은 이집트와 시리아에서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알제리와 수단의 반란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편, 볼리비아에서 지난 20년 동안 일어난 일도 보라. 2003년과 2005년 두 차례 대중 반란이 일어나 신자유주의 대통령 둘을 퇴진시켰고, 2006년에는 사회주의운동당MAS의 에보 모랄레스를 수반으로 하고 원주민 근로 빈민들 사이에 지지 기반이 있는 좌파 정부가 들어섰다. 2019년 10월에 우익 쿠데타가 일어났지만, 이듬해 대선에서 사회주의운동당의 루이스 아르세가 다시 승리했다. 여기서는 혁명과 반혁명의 직접적 상호 작용이 벌어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2021년 인도에서는 전투적인 대규모 농민 운동이 일어나 시위 진압 경찰만이 아니라 모디의 국민자원군 깡패들과도 맞서 싸웠다.
양차 대전 사이 극우와 오늘날 극우의 두 번째 차이점은 반동적 이데올로기가 상당히 변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극우 이데올로기의 핵심 요소는 이슬람 혐오다. 에드워드 퍼트위는 한 중요한 글에서 초국가적 반反무슬림 정치 행동의 한 분야인 “카운터지하드”를 다룬다.
정치지리학적으로 보면 카운터지하드는 주로 구미에 집중돼 있다. ⋯ 카운터지하드 내에서 배양되는 다양한 백인 국가주의는 처음 등장했을 당시 새로운 것이었다. 히틀러식 역사철학이 유대인을 아리안의 대립형으로 상정하고 역사를 상이한 생물학적 “인종”들의 다윈주의적 투쟁으로 이해했다면, 카운터지하드는 역사를 문화주의적 신파극으로 이해한다. 역사는 근본적으로 양립 불가능한 “문명들”의 치열한 대결로 묘사되고, “이슬람”은 빈사 상태에 껍데기만 남은 “유대-기독교 서구”와 대립하는 젊고 활력 있는 문명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사상이 유럽, 북아메리카, 호주·뉴질랜드 일대, 특히 트럼프식 공화당 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여기서 현대 극우와 제국주의의 연관성이 나타난다. 이슬람 혐오가 서구 사회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은 미국의 중동 지배를 재천명하려고 조지 W 부시와 토니 블레어가 일으킨 실패한 “테러와의 전쟁”의 결과였다. 극우의 이슬람 혐오는 무슬림을 “내부의 적”으로 돌리는 국가와 미디어의 공격을 급진화시킨 것이다. 무슬림에 대한 편견은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서구 제국주의의 장악력을 약화시킨 무장 저항과 대중 반란에 대한 대응으로서 조장된 것이다. 전통적으로 극우는 여성의 순종을 지지해 왔는데, 일부 극우는 이슬람과 “서구 가치”의 양립 불가능성 주장을 부각하려고 그런 입장을 바꾸기도 했다.
그러나 퍼트위는 현대의 극우적 담론들이 양차 세계 대전 사이 파시스트들의 “혁명적 수구” 이데올로기와 강력한 친화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블로흐가 분명하게 보여 줬듯 신화적인 과거에 낭만적 향수를 갖는다는 점이 그렇다. “이들의 반혁명적 시대 인식은 신화적인 과거로 현재의 문화 정화 프로젝트를 정당화하는 구조를 공유하고 있다.” 퍼트위는 엄밀한 의미의 “카운터지하드”, “트럼프주의 공화당원들”, “공공연하게 인종차별과 여성 혐오를 드러내는 대안 우파”를 구별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세 조류는 이러한 반혁명적 시대 인식 구조로 볼 때 “고전적” 파시즘이나 나치즘에 근접해 있다고 할 수 있다. ⋯ 오늘날 이러한 반혁명적 시대 인식 구조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트럼프주의의 슬로건에 새겨져 있다.
게다가 극우 이데올로기의 내용에는 연속성이 있다. ⑴ 좌파에 대한 적개심은 여전히 중요한 요소다. 문화적 와해 때문에 서구 사회가 이슬람화에 무방비 상태가 됐다면서 보통 그 기원을 1960년대로 잡는 것을 봐도 그렇다. 트럼프가 민주당 인사들을 사회주의자라고 비난하고 비판적 인종 이론을 공격하는 것도 반反마르크스주의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징후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더 전통적인 반공주의가 원주민 출신 빈민에 대한 공격과 결합된다. 피에르 부르디외에 따르면 ‘계급 인종차별’이라고 할 만한 공격으로, 특히 볼리비아와 베네수엘라의 좌파 정부에 맞선 운동에서 두드러진다. ⑵ 유대인 혐오는 여전히, 특히 파시스트들에게 중요하다. 자본주의를 공격하는 듯하지만 문제의 근원을 체제가 아니라 “세계시민주의적 유대인 금융 자본”의 퇴폐적인 영향에서 찾는 사이비 반자본주의 비판의 토대를 유대인 혐오가 계속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두 주제는 “문화적 마르크스주의” 담론에서 결합된다. 현대 극우가 과거 극우와 구별되는 세 번째 특징은 인종차별적 포퓰리스트 선거 정당의 우세다. 물론 그런 정당 안에는 위험하고 상당한 파시스트 집단이 존재한다. 현재 유럽은 1920~1930년대와 맥락이 매우 다르다. 당시에는 권위주의 정권들이 대체로 전통적 토지 귀족 지배의 연장으로서 발전했다. 그런데 1945년 이후 미국이 주도한 서유럽 재건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더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해 줬다. 포드주의적 대량 생산과 복지 제도의 발전이 중요한 구실을 했다.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기반은 유럽 통합 과정을 거치며 더 강화됐는데, 이 과정 또한 미국이 촉진한 것이었다.
50 이 국가들은 1989년 혁명 이후 서구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질서에 흡수됐으며 그러면서 자유민주주의적 구조를 수용하고 나토NATO와 유럽연합에 편입됐다(이 또한 미국의 후견 하에서 진행됐다). 오늘날 폴란드와 헝가리가 권위주의로 미끄러진 것에 유럽연합이 당혹스러워하는 것은 노골적인 독재가 (적어도 아직까지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철의 장막 너머 동유럽과 중부 유럽에 소련군이 세운 국가자본주의 정권들은 옛 지주 계급을 분쇄했다. 따라서 오늘날 극우는 주류가 쇠약해진 덕에 1부 리그로 비집고 들어올 수 있었던 아웃사이더들인 경향이 있다. 이탈리아의 동맹당, 독일을위한대안당AfD, 영국독립당/브렉시트당, 덴마크 인민당이 그런 사례다. 전통적인 보수 정당이 극우 결집체로 변모하는 징후를 보이는 사례도 있다. 보리스 존슨 하 영국 보수당, 세바스티안 쿠르츠 하 오스트리아국민당, 프랑스 공화당이 그런 사례다. 유럽에서 극우는 유럽연합 비판과 이민자에 대한 적대적인 인종차별을 결합하는 데에 몰두하곤 한다. 이처럼 인종차별적 희생양 만들기와 반기득권 수사(유럽연합을 겨냥한 것이든, 아니면 더 광범한 “세계시민주의적” 지배층을 겨냥한 것이든)를 결합하는 것을 보면, 트럼프를 비롯한 현대 극우의 주요 경향이 인종차별적 포퓰리즘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의 극우는 양차 세계 대전 사이에 등장한 권위주의적 수구와 다르다.그러나 1920~1930년대와 마찬가지로 현대 극우는 스펙트럼이 있다. 개중에는 스스로를 성공적인 선거 정당으로 새로 포장할 수 있었던 파시스트 중핵이 있다. 이들은 인종차별적 포퓰리즘 소재에 집중하면서도 급진적인 권위주의적 해결책을 추구한다. 이들 중 가장 중요한 세력은 프랑스의 국민연합RN(국민전선의 후신)이다. 국민연합 지도자 마린 르펜은 현재 2022년 대선 여론 조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을 바싹 추격하고 있다. 국민연합 외에도 오스트리아 자유당, 스웨덴 민주당, 프라텔리 디탈리아(“이탈리아의 형제들”)도 중요한 사례다.
오늘날 극우에 특징적인 네 번째 요소는 신자유주의가 낳은 불만으로 득을 봤으면서도 자체 경제 강령이 없다는 점이다. 예컨대 국민연합은 세계화가 낳은 병폐를 끊임없이 공격해서 득을 보려 했고 트럼프도 그랬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일관된 경제적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떤 갈래는 유럽연합 회의론과 극단적인 경제적 신자유주의를 결합시키도 한다. 독일을위한대안당과 영국독립당/브렉시트당 내 일부 조류가 그런 사례다. 트럼프는 특히 중국을 상대로 관세를 무기 삼았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 교리에서 이탈했지만, 그 밖의 다른 경제 정책은 전형적인 레이건 이후 공화당 프로그램으로서 감세와 규제 완화라는 형태로 기업에 혜택을 제공하는 식이었다. 한때 유럽연합을 강경하게 비판했던 이탈리아의 동맹당은 이제 유럽중앙은행 전 총재 마리오 드라기가 이끄는 “국민 통합” 정부를 지지한다.
이는 실로 놀라운 일이다. 극우에게 엄청난 정치적 이점을 가져다 준 세계 금융 위기는 1930년대 대불황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자유주의의 실패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솔리니나 히틀러가 국가자본주의로 꽤 급격하게 전환한 것에 견주면, 오늘날 극우는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 질서로부터의 단절을 제시하지 않는다. 인도의 마르크스주의자 웃사 파트나익과 프라밧 파트나익은 이에 관해 흥미로운 주장을 했다.
대불황이 끝나고 전쟁이 시작되기 전의 짧은 기간에 ⋯ 파시스트들은 자유주의 자본주의 국가들보다 더 나은 경제적 조건을 조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조건에서는, 그 용처가 무엇이든 간에 국가 지출을 늘려 경제 활동을 확대하는 것을 국제 금융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 재원은 부자들에게 세금을 물리거나 적자 재정으로 마련하게 될 텐데, 국제 금융은 두 방법 모두에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파시스트 운동도 국경을 넘나드는 금융 흐름을 통제하자고 제안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국제 금융계의 반대는 결국 국가 지출로 국내 총수요를 늘리는 것을 막는 데서 결정적 구실을 할 것이다.
53 그러나 오늘날 자본이 훨씬 더 국제화돼 있어서, 극우 정부가 신자유주의가 아닌 대안적 경제 정책을 추구하는 데에서 제약을 받는다는 두 파트나익의 지적은 중요하다.(이것은 사회민주주의 정부에도 해당되는 얘기다.)
두 파트나익이 현대 자본주의 국가에 주어진 운신의 폭을 과소평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팬데믹 동안 국가는 정부 지출과 차입을 크게 늘려서 국제 금융 위기 때보다도 더 나아간 대응을 했다. 어떤 곳(예컨대 미국과 영국)에서는 중앙은행이 정부가 추가 지출 재원을 마련하려고 발행한 채권을 사들이는 “부채의 화폐화”를 감행했다.(물론 이렇게 돈을 푸는 것이 근저의 이윤율 위기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시장은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갈수록 우려하고 있다.) 이런 개괄이 시사하는 바는 주류 우파, 극우, 노골적인 파시스트로 이뤄진 구조물 내 경계가 매우 흐릿하다는 것이다. 이런 유동성은 불가피하다. 특히 보우소나루나 트럼프 같은 대단찮은 인물들이 급부상하는 등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이 때문에 엔초 트라베르소 같은 예리한 분석가들조차 우리가 “포스트 파시즘”을 상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트라베르소는 이렇게 주장한다. “극우의 인종차별주의는 ⋯ 오리지널 파시스트 기반을 상당히 흐렸다. 그런 점에서 이데올로기는 이제 극우에게 중요하지 않다. ⋯ 대체로 파시즘과 이데올로기의 관계는 사회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관계와 같다.” 즉, 파시즘이 실천에서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기 위해 파시즘 이데올로기를 포기했다는 것이다.마린 르펜 같은 오늘날 극우 지도자들이 자기 당을 현대화하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토니 블레어가 노동당을 “신노동당”으로 바꾸려 한 것과 적어도 외관상 유사성이 있기는 하다. 그렇게 보면 트라베르소의 주장이 타당한 듯도 하다. 그러나 트라베르소는 퍼트위가 지적한 현대 극우 이데올로기의 독특한 반反무슬림 인종차별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한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특정한 구조물에 어떤 딱지를 붙이는 것이라기보다는 오늘날의 극우를 빠르게 변하는 역동적인 힘의 장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파시즘이 힘의 장 안에서 중력을 행사할 수 있는 주된 이유는 이러저러한 조직의 역사적 유산 덕분이 아니라 현재 오른쪽으로의 급진화가 실질적인 정치적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을위한대안당 내 “국민적-보수주의” 분파와 “국민적-혁명” 분파 사이의 투쟁이 이를 보여 주는 사례다.
게다가 오늘날 극우 운동에서 선거 정치가 우세한 것은 실재하는 차이를 흐리는 효과를 낸다. 선거 정치는 그 정당 지도자들에게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만행과 거리를 둬야 한다는 압력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차 세계 대전 사이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상층 정치와 기층 운동 사이에서 상호 작용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진짜 파시스트 세력들에게 득이 될 수 있다. 미국은 이런 과정에 영향에 미치는 요소들을 아마 가장 생생하게 보여 주는 사례일 것이다.
미국: 약한 고리?
미국을 선진 자본주의 세계의 약한 고리로 지목하는 것은 다소 기이해 보일 수 있다. 사실 여전히 미국은 다른 어느 국가 조직보다 군사적·재정적 능력이 큰 헤게모니 국가다. 그러나 미국이 가장 약한 고리라는 생각은 1월 6일 극우의 국회의사당 난입 사건 이후 제대로 곱씹어 볼 가치가 있다. 세 가지 요소가 두드러져 보인다.
55 게다가 FAANG로 불리는 다섯 개 IT 대기업(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은 자본주의의 미래를 지배하려는 미국의 야심을 상징하며 미국과 중국·유럽연합의 충돌에 걸린 중요한 판돈이기도 하다. 그러나 로버트 브레너는 지난번(2020년 3월) 정부의 시장 구제가 시사하는 바에 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신자유주의와 세계 금융 위기의 누적된 경제적 효과: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트럼프의 어법은 미국을 세계화의 희생자로 그린다. 그러나 미국 거대 은행과 대기업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생산의 세계화와, 피터 고완이 말한 금융 부문의 “달러-월스트리트 체제”에서 큰 득을 봤다.미국의 경제 실적이 형편 없자 ⋯ 양대 정당을 불문한 주류 정치권과 주요 정책 입안자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엄혹한 결론에 도달했다. 비금융·금융 기업들과 그 기업들의 최고 경영자·주주, 여기에 더해 그들과 밀접한 끈이 있는 양대 정당 최고 지도자들의 재생산을 보장할 유일한 방법은 자산 시장과 전체 경제에 정치적으로 개입해서 정치적 수단으로 직접 사회의 부를 위로 재분배하는 일을 떠맡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 우리는 악화하는 경기 하강과 이에 상응하여 심화하는 정치적 강탈을 오랜 세월 겪어 왔다.
대다수 미국인에게 지난 한 세대의 경험은 임금이 억제되고, 국제 금융 위기로 제조업 고용·일자리·저축·집이 순식간에 대거 날아가고, 패배한 중동 전쟁에서 가족 구성원들이 죽거나 장애인이 되거나 정신적 상처를 입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트럼프와 공화당 우파는 이런 경험의 격차(벌이가 더 나은 화이트칼라 피고용인들은 대자본이 누린 번영에 비하면 아주 작은 몫을 나눠 가졌다)를 무기로 삼았던 것이다.
57 한편 지난 두 번의 민주당 행정부(1993~2001년 클린턴 행정부, 2009~2017년 오바마 행정부)는 신자유주의 질서의 능률적인 관리자로 처신해, 그들에게 표를 던진 진보적 유권자들을 실망시키고 공화당이 국회를 장악하는 데 도움을 줬다. 이렇게 해서 공화당은 1994년에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고 2010년에는 다시 하원을, 2014년에는 상원을 장악했다.
갈수록 공화당에 유리해지는 고장난 정치 구조: 미국의 헌법은 크고 작은 자본들에 득이 됐다. 이 헌법의 제정자들은 다수의 지배로부터 재산을 지킬 수 있도록 헌법을 설계했다. 헌법에는 이를 위한 여러 장치가 있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은 보통 선거권의 시대인 지금도 여전히 선거인단을 통해 간선으로 선출되며, 유권자들의 표보다 각 주별 선거 결과가 대선 결과를 더 좌우하게 돼 있다.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상원은 인구에 비례하지 않고 각 주에서 동수를 선출해 대표성이 매우 떨어진다. 연방법원 판사는 종신직이며, 그동안 정부의 교착 상태가 지속됨에 따라 헌법 재판관으로서의 힘이 커졌다. 승자 독식 선거 제도는 뼛속 깊이 자본주의적인 두 정당만이 정치적 경쟁을 하도록 제약하고, 법원은 말 잘 듣는 정치인들을 돈더미에 깔리게 할 기업들의 ‘권리’를 확인해 줌으로써 자본의 특혜를 더한층 뒷받침해 왔다. 공화당은 지난 30년 동안 대선에서 득표수로 이긴 적은 딱 한 번뿐이었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가차없는 게리맨더링[선거구를 자기 정당에 유리하게 변경하는 일]과 유권자 등록 기준 강화로 특히 주州정부들과 하원에서 입지를 다져 왔다. 이 모든 것이 자본에 득이 됐고 자본은 모든 주들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어느 방향으로든 변화를 요구하는 대중 운동에 꿈쩍도 하지 않는 정치 체제가 형성됐다.58 노예를 소유한 백인 농장주들과 소생산자 사이의 복잡하고 위태로운 세력 균형은 미국이 영토를 넓히고 19세기 전반에 독자적인 산업혁명을 일으키면서 무너졌다. 링컨은 마르크스가 예견한 대로 갈수록 혁명적 조처를 취해서, 즉 노예해방선언을 발표하고 해방된 노예를 무장시켜서 내전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1865년 북부 연방군이 승리한 후 흑인들과 그들의 백인 동맹자들은 전후 재건기에 남부를 철저히 재편하지 못했다. 그 결과 수정헌법 제14, 15조가 인정한 형식적 법적·정치적 평등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는 인정되지 않았다. 이런 불평등은 특히 남부에서 더 두드러졌고 남부 흑인들은 인종을 분리하는 ‘짐 크로우’ 체제 하에서 극심한 차별에 시달렸다. 59 1950~1960년대 평등권 운동과 그것이 고무한 도시 반란의 압력에 밀려 연방정부는 이른바 ‘2차 재건’에 착수해야 했고 이로써 짐 크로우 체제가 종식되고 흑인 중간계급이 만만찮은 정치적 영향력을 갖게 됐다. 그러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여전히 사회·경제 사다리의 제일 아래에 있다. 게다가 경찰에게 총을 맞거나 “감옥-산업 복합체”에 대거 투옥되는 등 체계적인 국가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미셸 알렉산더는 이를 두고 “미국의 또 다른 인종 카스트 제도”라 했다. 60 현대 미국 사회를 “백인우월주의”로 특징짓는 것은,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 후 미국이 “탈脫 인종차별 사회”가 됐다는 주장만큼이나 지나치게 단순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 사회에는 적잖은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실제로 존재한다. 이들은 붙박인 인종차별적 구조에 이끌려 그들의 불만을 흑인·라틴계·무슬림에 돌려 왔다. 61
인종적 균열: 모든 선진 자본주의 국가는 구조적으로 인종차별적이지만, 미국만큼 인종차별이 중심적인 곳은 없다. 미국에서 신줏단지처럼 여겨지는 헌법에는 노예제와 정착민 식민주의가 아로새겨져 있다. 제1조 3항은 각 주에 할당되는 연방 하원의원 수를 “과세되지 아니하는 인디언을 제외한 자유인의 총수에, 그 밖에 모든 인원수의 5분의 3을 더해” 결정한다고 되어 있다.62 되는 것이다. 2015~2016년에 대선 도전에 나선 트럼프는 피해의식(“미국인 대학살”), 기성 정치권의 부패와 교착 상태에 대한 분노(“막힌 하수구를 뚫겠다”), 2016년 11월 대선에서 이기는 데 충분한 미국인들의 인종차별을 체계적으로 이용했다. 그리고 똑같은 요소를 이용해 소란스러운 임기 동안 버티고 2020년 대선에서 7400만 표를 득표했다(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득표다).
이런 배경에서 볼 때 트럼프의 당선은 루이 알튀세르가 말한 “과잉결정”의 뚜렷한 사례였다. “과잉결정”은 “막대한 모순의 누적이 동일한 심급에서 작용하기 시작하고, 어떤 모순들은 근본부터 이질적이어서 그 기원과 의미, 적용되는 층위와 지점이 상이함에도 격변을 낳는 통합체로 ‘융합’”63 트럼프가 대자본과 맺는 관계는 전혀 단순하지 않다. 예일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 제프리 소넨펠드는 이렇게 주장했다. “몇 년 전에 우리 CEO 모임에 트럼프를 데려오려 했다면, 일류 CEO들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데려오지 말라. 우리가 보기에 트럼프는 일류 CEO가 아니다.’” 2016년 대선 이후 그가 트럼프에게 이 말을 전했더니 트럼프는 이렇게 답했다. “글쎄요, 이제는 다들 저를 보러 오던데요.” 64
트럼프는 파시스트가 아니라 사기꾼 사업가다. 트럼프는 유명세를 탄 사업과 미디어 스타덤을 이용해 엄청난 부호인 것처럼 행세하고 이를 이용해 더 광범한 청중을 확보해, 미국이 세계화, 더 구체적으로는 동맹국들과 중국 때문에 신세를 망쳤다는 극우적 주장을 폈다.그러나 트럼프는 백악관에 입성해서도 여전히 대자본에게 문젯거리였다. 트럼프의 가장 독특한 경제 정책은 중국·유럽연합과 무역 전쟁을 벌이고 신자유주의 시대에 발전한 국제 공급 사슬을 본국으로 다시 가져오는 것이었는데, 이는 미국의 주요 다국적기업 및 은행들의 이해관계와 정면 충돌했다.
트럼프의 계급 기반은 다른 데 있다. 이에 관해 마이크 데이비스는 트럼프주의의 사회지리학을 묘사한 탁월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레이건이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포천》 500대 기업의 연합)이 이끈 역사적인 반노조 공세에 발맞춰 집권했다면, 트럼프는 예수 사랑과, 샘 파버가 말한 “룸펜 자본가들”의 잡다한 무리 덕분에 집권할 수 있었다. 물론 군수산업계, 에너지 산업, 거대 제약 기업들은 공화당이 집권했을 때 늘 그랬듯이 지금도 백악관에 돈을 바친다. 그러나 2016년 트럼프가 공화당 예비경선에서 테드 크루즈를 이긴 후, 오바마에 맞선 반란에 돈을 대고 트럼프를 중심으로 단결한 기부자들의 연합은 전통적 경제 권력의 현장에서 대체로 주변적인 자들이었다. 개중에는 배리 골드워터[1964년 공화당 대선 후보]와 존 버치 소사이어티[1958년 설립된 반공주의 우익 단체] 시절부터 정계에 영향을 미치던 코크가家 같은 재벌도 있었지만, 트럼프의 핵심 동맹은 그랜드래피즈·위치타·리틀록·털사 같은 외진 곳에서 온 산업화 후기의 강도 남작들이다. 그들은 부동산, 사모펀드, 카지노, 사설 군대에서 고리대금업 체인에 이르는 다양한 서비스업으로 부를 쌓았다.
66 아시아·유럽의 산업·무역 강국과 대립하는 것이 이들의 이해관계에 그다지 해가 되지 않거나 심지어 소규모 제조업 회사들의 경우에는 도움이 됐을지도 모른다. 한편, 다국적 대기업들은 트럼프가 세금을 깎아 주고 규제 완화를 촉진하며 주식시장 거품을 키워 줬기 때문에 트럼프를 용인했다. 극우의 국회의사당 난입 사건 이후 〈파이낸셜 타임스〉의 ‘렉스’ 칼럼은 쓰라린 어조로 이렇게 표현했다.
데이비스도 “룸펜 억만장자”라고 부르는 이 집단은 국내 시장에 의존적이었고, 연방정부나 주정부에 의존할 때도 많았다. 가장 의미심장한 사례는 포레스트 L 프레스턴의 라이프케어센터오브아메리카로, 이 미국 최대 요양원 체인은 2020년 봄 코로나19 사망자가 다수 발생한 곳이기도 하다.트럼프는 금융 시장 호조에 거듭 대통령직을 걸었다. 그렇게 해서 월스트리트와 잘사는 미국인들을 조용히 부추겨 스멀스멀 뻗쳐 오는 그의 반反자유주의를 외면하게 만들었다. 그들도 그 과정에서 부유해졌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트럼프가 중국과의 무역이나 관세 문제에서 보이는 변덕스러움에 염증을 냈다. 그러나 트럼프는 미국 기업계가 원하는 것을 대체로 가져다 줬다. 전형적인 신흥 시장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즉, 정치가 지저분하고 부패해 있어도 장사와 자본주의는 여전히 번창했다.
68 게다가 악명 높은 공화당 기반은 그저 수동적인 숭배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지금 목도하고 있다. 트럼프는 1990년대부터 등장한 “애국” 민병대부터 큐어넌QAnon 음모론자들에 이르는 오만 가지 극우 소집단에 전국적 지도, 미디어의 관심,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해 줬다. 채프먼대학교 사회학부 부교수 피트 시미는 이렇게 말한다. “트럼프는 마치 흐릿한 잉크 얼룩 같은 존재여서, 주류로까지 뻗친 상이한 성향의 극우가 자신의 희망·공포·불안·좌절을 그에게 투사할 수 있다.” 69
그러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트럼프가 대자본과 맺은 양가적 관계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트럼프가 미국 우파 정치의 판을 새로 짰다는 것이다. 데이비스가 묘사했듯이 트럼프는 우선 “2017~2018년 동안 공화당을 빠르게 장악하고 당내 반대 세력을 가차없이 숙청했다. ⋯ 트럼프의 핵폭탄급 이점은 기층에서 누리는 인기였으며 복음주의 지도자들과 〈폭스 뉴스〉가 매일 트럼프를 향한 열광을 부추겼다. 물론 여기에는 그의 끝없는 트윗도 한몫했다.”트럼프와 기층 극우의 관계는 쌍방향적이다. 트럼프는 그들을 배양하고 동원해서 재선 가능성을 키우려 했다. 중요한 이정표에 해당하는 사건을 일부 나열하면 이렇다. 2017년 8월 트럼프는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우파 단결” 집회와 반파시즘 집회가 충돌했을 때(그 결과 반파시즘 시위대 한 명이 사망했다) 트럼프는 “양측 모두에 훌륭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2020년 여름과 가을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이동 제한 조처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대와 충돌한 극우 단체들을 격려했다. 9월 30일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는 파시스트 단체인 ‘프라우드 보이스’를 향해 “물러서서 대기하라”고 말해 그들을 두둔했다. 마지막으로 트럼프는 1월 6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선거 탈취 중단” 집회에서 연설을 했다. 그리고 바로 이 시위대가 국회의사당에 난입했다. 이런 개입들을 통해 트럼프는 새로운 정치 체제를 구축하려 하기보다는 자기가 득을 보려 했다. 그러나 그러면서 극우가 운동으로 결집하는 데 일조했다. 여기서 강조해야 할 것은 국회의사당 난입이 트럼프의 대통령직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거기에 관여했던 단체들에게는 성공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이제 연방정부의 권한이 “반란자”들을 처벌하는 데 행사되고 있지만, FBI와 법원이 만들어 낼 순교자들은 1월 6일을 둘러싼 신화에 후광을 더할 것이다. 수판그룹의 국내 테러리즘 전문가 콜린 클라크는 〈워싱턴 포스트〉에 이렇게 말했다. “국회 경비대가 이런 사태를 막지 못한 것은 안보 침해나 정보 실패라고 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 사람들[“반란자들”]은 이번 사태를 실패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대성공으로 보며 앞으로 이 일이 다른 사람들을 고무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럼에도 국회의사당 난입은 트럼프와 미국 지배계급이 갈라서는 계기가 됐다. 노골적인 인종차별적·성차별적 깡패 같은 자를 대통령으로 두는 것은 미국 지배계급에게 못마땅한 정도의 일이었지만, 극우 폭도를 부추겨 헌법을 거스르려 한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어쨌거나 헌법은 자본에 커다란 득이 돼 왔다. 펜스와 매코널은 기독교 우파의 힘을 확고하게 하려고 트럼프를 이용해 왔지만(가장 눈에 띄는 사례로 연방법관 자리를 우익 판사들로 채워 연방대법원의 3분의 2를 차지하게 했다) 1월 6일 직후 트럼프를 재빨리 버렸다.
71 전미제조업자협회NAM는 2020년 대선 운동 때 기부금의 70퍼센트를 공화당에 몰아 줬지만, 1월 6일 이후에는 펜스에게 “내각과 협력해 수정헌법 제25조를 발동하는 것을 심각하게 검토”하라고 촉구했다. 이 조항에 따라 트럼프가 “직무수행에 적합하지 않다”고 내각이 선언하면 부통령인 펜스는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을 수 있다. “주요 CEO들”이 트럼프와 맺은 “파우스트의 계약”에서 손을 떼면서 “이제는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소넨펠드는 〈파이낸셜 타임스〉에 말했다. 72
대선 전에 미국상공회의소,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 기업 로비 단체 6곳은 성명을 발표해 “모든 미국인들은 미국 연방·주 법률에 명시된 절차를 지지해야 하며, 평화롭고 공정한 선거를 치러 온 미국의 오랜 전통을 믿어야 한다”고 촉구했다.그래서 대자본의 관점에서 바이든의 취임은 다행스러운 정상 복귀를 뜻했다. 바이든 정부에는 오바마 임기에 활약한 베테랑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도 스스로를 기만해서는 안 된다. 트럼프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고 그 결과 만만찮은 전국적 파시스트 운동이 등장할 수 있다. 티머시 스나이더는 다음과 같이 예리하게 관찰했다.
1월 6일을 계기로 ‘체제를 이용해 먹으려는 자들’은 ‘체제를 깨려는 자들’과 충돌하게 됐다. 펜스와 매코널은 전자를 이끌고 있었고, 후자의 두드러진 인물로는 트럼프 자신뿐 아니라 국회 내에서 선거 결과 승인 반대를 주도한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와 조시 홀리가 있었다. 스나이더와 비슷하게 마이크 데이비스도, 공화당이 “당내 세력 재편을 추구하는” 자들과 “전미제조업자협회나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 같은 전통적 자본가 이익 집단” 사이의 “돌이킬 수 없는 분열을 겪었다”고 했다. “진성 트럼프주의자들은 사실상 제3당이 됐으며 하원에 대거 웅크리고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데이비스는 주장한다.현재 공화당은 두 부류가 연합한 당이다. 한 부류는 체제를 이용해 먹으려는 자들(정치인 대부분과 유권자 소수가 여기에 해당한다)이고 다른 한 부류는 체제를 깨뜨리기를 꿈꾸는 자들이다(정치인 소수와 유권자 다수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사정은 2021년 1월, 자신에게 득이 된다며 현 체제를 지키려는 자들과 현 체제를 뒤집으려는 자들 간 차이로 가시화됐다.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한 이래 40년 동안 공화당은 야당으로서 통치력을 행사하거나, 선거를 ‘혁명’으로 포장하거나(티파티), 반기득권 세력을 자처해서 둘 사이의 긴장을 극복해 왔다. 이 국면에서는 체제를 이용해 먹으려는 자들이 체제를 깨려는 자들 뒤에 숨을 수 있었다.
75 1월 23~25일 여론조사에서는 공화당원의 81퍼센트가 여전히 트럼프를 좋게 본다고 답했다. 76 공화당원의 13퍼센트만이 트럼프 탄핵을 지지했다(반면 민주당원은 92퍼센트, 무당파는 52퍼센트가 지지했다). 77 국회의사당 난입과 관련해 기소된 사람들을 분석한 한 연구는 “반란자들”의 많은 수가 형편이 어려운 프티부르주아들임을 보여 준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거의 60퍼센트가 ⋯ 지난 20년 사이에 파산, 퇴거·압류 통지, 악성 부채, 체납 등 금전 문제를 시사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기소자의 40퍼센트는 사업주거나 화이트칼라 노동자였다. 78
두 분파가 어떻게 계속 붙어 있을 수 있느냐는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진성 트럼프주의자”들의 선거적 강점은 공화당이 분열하지 않을 강력한 동기가 된다. 1월 7일에 실시한 악명 높은 유고브 여론조사에서 공화당원의 45퍼센트는 극우의 국회의사당 난입 행동을 지지했다.국회의사당 난입 이후에도 공화당 상원의원 51명 중 8명, 하원의원 204명 중 139명이 선거 결과 승인에 반대하는 표를 던졌다. 짧고 건성으로 치러진 트럼프 탄핵 재판에서는 새로 구성된 상원의 공화당 의원 50명 중 7명만이 트럼프를 ‘내란 선동’으로 탄핵하는 데에 찬성했다. 트럼프가 여전히 자기 기반에서 상당한 힘을 얻고 있음을 입증한다. 또, 스나이더는 다음과 같이 예리하게 관찰한다.
크루즈와 홀리가 깨달았을지 모르겠지만, 선거를 도둑맞았다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면 그 거짓말의 포로가 된다. 영혼을 판다고 꼭 유리해지는 것은 아니다. 홀리는 자신의 위선에 도무지 부끄러워할 줄을 모른다. 자기도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나 스탠퍼드대학교와 예일대 로스쿨을 나왔으면서 특권층을 비난한다. 크루즈에게 원칙이라는 게 있다면 그것은 주정부의 권한을 옹호한다는 것일 텐데 트럼프의 선동은 이를 대놓고 무시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의회에서 트럼프를 옹호하는 자들은 주로 자신의 정치적 야망에 따라, 특히 트럼프 지지 기반의 규모와 충성도를 보고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그 기반을 만족시키려면 양극화를 부추기는 트럼프의 수사를 따라해야 한다. 트럼프 자신은 1월 28일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연설에서 공화당을 떠나지 않겠다고 해 신당 창당론을 일축하며 다음 대선에 도전한다는 뜻을 넌지시 내비쳤다. 이에 따라 ‘체제를 깨려는 자들’은 ‘체제를 이용해 먹으려는 자들’, 즉 대자본과 계속 밀착하기를 원하는 자들과 앞으로도 더 부딪히게 할 것이다.
그러면서 벌어질 정치 투쟁과 이데올로기 투쟁은 진짜 파시스트 세력에게 기회를 열어줄 수 있다. 파시스트 세력들은 아직까지는 자기들 내에서 신망 있는 전국 지도부를 세우지 못했다. 하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고 자기 중심적인 가짜 억만장자 트럼프에 의지하는 것에 이들은 조만간 싫증을 낼 것이다. 홀리나 크루즈 같은 속이 빤히 들여다 보이는 더러운 자들은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현재까지 파시스트들은 이런 자들이 극우의 주제를 주류로 편입시켜 주는 것에서 득을 보았다. 한편, 클린턴·오바마 정부의 연장선상에 있는 바이든 정부는 극우 전체에 틀림없이 새로운 기회를 열어 줄 것이다.
기업들이 극우의 국회의사당 난입에 드러낸 거부감은 지금 상황이 1920년대 초 이탈리아나 10년 후 독일과 같지 않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대자본은 아직 파시즘은 물론 권위주의적 해결책에 기대를 걸 만큼 사정이 절박하지는 않다. 뭐하러 굳이 그래야겠는가? 조직 노동운동 지도자들은 지난 한 세대 동안 신자유주의의 공세를 묵인해 왔고, 팬데믹 발생 이후 전개된 일자리·임금·노동조건·안전 — 실로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 — 에 대한 대대적 공세에 매가리 없이 대응해 왔다.
그러나 대자본이 아직까지 극우의 권위주의적 해결책을 선뜻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안심해서는 안 되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상황은 더 악화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가 그런데, CNN의 라나 포루하와 〈파이낸셜 타임스〉는 제국의 위신에 먹칠을 한 극우의 국회의사당 난입과 돈을 마구 찍어내는 연준의 정책을 비트코인 거품과 연결지으며 흥미로운 예측을 한다.
비트코인처럼 극도로 불안정한 암호화폐의 인기 상승은 ⋯ 미국과 달러의 중요성이 줄어든 신세계 질서의 초기 징후로 이해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 2008년 금융 위기가 터진 이후 시장 안정화를 위해 도입된 재정 정책은 늘어나는 미국의 부채 부담을 화폐화하는 ‘포스트 코로나’ 정책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비트코인 상승은 미국이 그러다가 결국 어느 정도 바이마르공화국을 닮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투자계에 일부 퍼져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81 영국 보리스 존슨 정부의 경찰법 개악과 이민자 공격도 같은 과정의 일부다. 지난 50년 동안 반反파시즘 운동이 해 온 고전적인 주장이 있다. 파시스트들이 감지되는 즉시 대응에 나서서 너무 강력해지기 전에 그들을 분쇄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가 맞닥뜨린 다중 위기의 심각성 때문에 일부 지배계급은 근로 대중을 더 가차없이 공격하고 이를 뒷받침할 만큼 강력한 파시스트 운동을 이용하려 들 수도 있다. 이미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우고 팔예타가 말한 “권위주의적 경화”가 일어나고 있다. 마크롱의 프랑스가 중요한 사례다. 프랑스에서는 온갖 억압적 조처들이 도입되고 좌파와 이슬람을 “이슬람-좌파주의”라는 엉터리 개념으로 뭉뚱그려서 공격하는 이데올로기적 공세가 펼쳐지고 있다.둘째, 자기실현적 예언이라는 위험이 있다. 즉, 극우가 정치 체제를 크게 뒤흔들면 지배계급 일부가 질서를 회복할 세력으로 파시스트들을 반기기 시작할 수도 있다. 2016년 이후 미국과 영국 정치에서 일어난 내파에 가까운 격변들을 보면, 복잡한 체제 내의 사소한 듯한 변화가 갑작스럽고 당혹감을 자아내는 거대한 변화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부터의 반파시즘 투쟁
아래로그래서 폴 메이슨의 이런 지적은 옳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미국 파시즘은 서민 대중 기반이 있고 트럼프는 이들을 이끌기로 했다. 물론 정치 프로젝트와 활동 방식이 처음부터 파시즘적이지는 않았고 그 프로젝트가 재계의 핵심 지배층 사이에서 거의 지지받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82 미국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급진·혁명적 좌파가 부딪힌 과제는 갈수록 위험하고 심각해지는 이 위협을 어떻게 물리칠 것이냐 하는 것이다. 메이슨의 전략은 국가의 탄압 능력을 강화하고 자유주의적 중도와 동맹을 맺는 것이다.
국가가 부르주아지의 도구이고 그런 국가를 분쇄하고 싶다는 레닌주의의 입장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20세기에 모든 마르크스주의 정당은 파시즘에 직면해 깨달은 것이 있었다. 1) 폭력으로 파시즘에 맞서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공격성·기동성·활력 면에서 파시스트들의 폭력에 필적할 수는 없다. 2) 민주주의와 법치를 지키려면 국가에 도움을 구해야 한다. ⋯ 자본가 계급이라는 적수가 있다. 우리는 그들을 타도한 다음 7500만 명의 무장한 트럼프 투표자들과의 대결을 운에 맡겨 버릴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선택도 있다. 지배계급 내 분열을 이해하고 민주주의가 좌파와 노동운동에 제공하는 여지를 이용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는 것이다. ⋯
83 1월 6일에 글자 그대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 ⋯ 1930년대 유럽의 교훈은 중도와 좌파의 일시적인 동맹이야말로 지배층과 폭도의 일시적 동맹을 물리칠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1934~1936년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그랬던 것럼 그런 동맹을 구축하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 뿐 아니라 대중적인 반反파시즘 문화를 형성할 수 있다. 84
한나 아렌트는 파시즘을 “지배층과 폭도의 일시적 동맹”으로 묘사했다.
메이슨의 글이 아무리 유익하더라도 이것은 재앙을 낳을 잘못된 전략이다. 일단 메이슨은 잘못된 이분법을 제시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를 끝내는 사회주의 혁명만이 파시즘의 위협을 끝낼 수 있다. 물론 현 시점에서는 “민주주의가 제공하는 여지”를 이용해야 한다. 개혁주의와 파시즘을 동일시한 스탈린의 “제3기 정책”을 비판하면서 트로츠키는 그의 가장 뛰어난 통찰 하나를 제시하며, 그 여지를 방어하는 데에서 노동자 투쟁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수십 년 동안 노동자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이용하면서도 거기에 맞서 싸워서 그 안에 노동조합, 정당, 교육·스포츠 클럽, 협동조합 등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요새와 기지를 건설해 왔다. 프롤레타리아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공식적 한계 내에서 권력을 쟁취할 수 없다. 오직 혁명이라는 길로 나아가야만 그럴 수 있다. 이는 이론적으로나 경험으로나 이미 입증된 바다. 그리고 부르주아 국가 내에 존재하는 이 노동자 민주주의의 보루들은 혁명으로 나아가는 데에서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1930년대 이후 선진 자본주의 노동계급의 삶은 크게 바뀌었지만 트로츠키가 말한 이유로 여전히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방어해야 한다. 그런데 트로츠키는 이것이 계급 협력이 아니라 계급투쟁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1935년 코민테른은 이전에 채택한 정책이 독일에서 재앙적 실패를 낳은 후 인민전선 전략을 채택했다. 이 전략은 노동운동이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와 동맹을 맺는 것을 뜻했다. 이것은 메이슨이 옹호하는 전략의 핵심이기도 하며 메이슨의 전략 또한 193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재앙을 낳을 것이다.
왜 그런지 살펴보기 위해 1934년 2월 파리로 돌아가 보자. 달라디에를 끌어 내린 극우동맹의 승리는 왼쪽에서 더 강력한 반발을 낳았다. 2월 6일 사건에 대한 면밀한 연구에서 브라이언 젱킨스와 크리스 밀링턴은 다음과 같이 썼다.
공산당과 사회당은 즉시 극우동맹의 행동을 파시스트들의 쿠데타 시도로 규탄했다. 2월 9일 공산당은 맞불 집회를 열었고 경찰과의 충돌로 4명이 사망했다 ⋯ 그러나 좌파에게 결정적인 순간은 2월 12일에 찾아 왔다. 그날 사회당과 노동총동맹CGT은 총파업을 벌일 계획이었다. 공산당은 이 행동에 함께할 계획이 없었다. 오히려 경쟁자인 사회당이 2월 9일 집회에서 노동자들을 살상하는 데에 공모했다는 비난을 계속 퍼부었다. 그러나 공산당은 당원들이 파리의 거리에서 자발적으로 사회당원들과 뒤섞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런 기층의 단결은 연합을 꾸리는 것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공식적인 협력은 당장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1934년 7월이 되면 사회당과 공산당은 파시즘에 맞서 공식적으로 동맹을 맺게 된다. 이것이 인민연합이다. 이듬해 이 연합은 급진당까지 포함했다. 1936년 6월 “인민전선”의 선거 승리로 레옹 블룸이 프랑스 최초의 사회당 총리가 됐다.
87 그러나 젱킨스와 밀링턴이 강조하듯이 “1934년 2월 12일 사회당원들과 공산당원들의 시위는 2월 6일 극우 시위보다 더 큰 반향을 프랑스 전역에 일으켰다 ⋯ 연대 물결이 전국을 휩쓸었고 346개 노동조합 지부가 시위와 파업을 벌였다.” 88 단결은 대체로 아래로부터의 압력으로 사회당과 공산당 지도부에 강요됐다.(심지어 공산당의 참전 군인 그룹은 “제3기” 정책에 따라 2월 6일 행진에 참가했었다.)
이처럼 2월 6일의 사건은 좌우 양쪽이 더 급진화하고 팩스턴이 말한 “1930년대 중반 프랑스의 사실상 내전”이 시작되는 결과를 낳았다.89 급진당과의 동맹은 실천에서 노동계급의 이익을 프랑스 자본의 이익에 종속시키는 것을 뜻했다.
그러나 인민연합이 급진당을 끌어들이고 인민전선을 형성한 것은 메이슨의 가정과 달리 이런 과정의 자연스러운 귀결이 아니었다. 사회당과 공산당은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는 노동계급 정당이었다. 그러나 급진당은 제3공화국의 유력 정당이었다. 트로츠키는 급진당을 “프티부르주아지의 전통과 편견에 가장 잘 먹히는 대부르주아지의 정치적 도구”라고 묘사했다.그 효과는 1936년 5~6월에 가시화됐다. 인민전선의 선거 승리는 대중 파업과 공장 점거 물결을 고무했다. 금융 시장을 달래는 데 매진한 새 정부는 파업을 끝내는 것을 우선시했다. 마티뇽 협약으로 새 정부는 임금 12퍼센트 인상, 2주 유급 휴가 등 몇 가지 유의미한 양보를 제시했다. 그러나 이 협약은 노동자들을 동원 해제하는 효과를 냈다. 새 정부는 쉴 새 없는 자본 도피에 진땀을 뺐고 프랑화貨 가치 하락과 치솟는 인플레가 1936년 6월의 성과를 잠식했다. 블룸 내각은 1년 동안 유지됐다.
인민전선을 최종적으로 끝장낸 것은 아이러니이게도 2월 6일의 정치적 희생자였던 달라디에였다. 1938년 4월 달라디에는 블룸의 단명한 두 번째 정부를 중도-우파 연정으로 갈아치웠다. 블룸이 의회한테 승인받지 못했던 긴급조치권을 승인받은 달라디에는 많은 면에서 두메르그의 노선을 이어갔다. 1938년 9월에는 히틀러와 뮌헨 협정을 맺고 11월에는 총파업을 진압하더니 이듬해 8월에는 공산당을 불법화했다. 국가의 집행 권한 강화는 많은 경우 그렇듯이 좌파에게 휘두르는 새로운 무기가 됐다. 젱킨스와 밀링턴은 이렇게 쓴다.
1938년 동안 프랑스 좌파는 [히틀러 집권 전에 독일 노동계급이 당한 것과 같은 — 캘리니코스] 참담한 패배를 경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민전선이 불러일으킨 희망과 에너지는 흩어져 버렸고 그 성과는 후퇴했으며 우파의 거센 반격이 다가오고 있었다. 적개심 가득한 반공주의가 도를 더해가고 긴급조치권을 포괄적으로 행사한 달라디에의 비상 독재는 갈수록 우파적이고 권위주의적이 됐다. 급진당 자신이 약간 우경화해 유대인 억압을 인정하고 사회적으로 반동적인 입장을 채택했다. 급진당이 파시즘의 위협에서 공화국을 지키는 핵심 세력의 하나라는 주장에 의구심을 갖게 하는 행보였다.결국 제3공화국은 프랑스 극우가 아니라 1940년 5~6월 독일이 전개한 전격전으로 종말을 맞이했다. 1940년 7월 10일 인민전선 정당이 다수였던 의회는 필리프 페텡 장군에게 전권을 넘기기로 표결했고, 페탱의 비시 정권은 나치에 정성껏 부역하고 홀로코스트에 참여했다. 자유주의자 역사가 윌리엄 L 샤이러는 이렇게 썼다. “표결은 압도적이었다. 569명이 찬성하고 80명이 반대하고 17명이 기권했다. 두 세대 동안 공화국의 중심에 있었던 두 정당인 사회당과 급진당의 다수가 다수의 우파들과 함께 찬성표를 보탰다.”
따라서 1930년대 프랑스의 경험은 “중도와 좌파의 일시적 동맹”으로 파시즘을 물리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가 아니다. 중도는 동맹에서 손을 떼기만 한 게 아니라 아예 배신을 했다. 이런 판단이 옳다는 점은 오늘날 “극단적 중도”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더 분명해진다. 이들을 대표하는 인물을 떠올려 보라. 힐러리 클린턴,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토니 블레어, 고든 브라운, 데이비드 캐머런, 앙겔라 메르켈, 에마뉘엘 마크롱, 마테오 렌치 등이 바로 그런 자들이다. 이들은 현대 신자유주의 질서의 관리자들이다. 이들의 실패가 현재의 위기를 낳았다. 좌파가 이런 자들과 동맹하면 극우는 기존 질서에 진정으로 맞서는 세력을 자처하기가 지금보다 훨씬 더 수월해진다. 대안은 무엇인가? 메이슨은 “폭력으로 파시즘에 맞서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를 이런 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메이슨의 진술은 인민전선 정치냐 파시즘에 맞선 소수의 거리 전투냐 하는 식의 단순한 양자택일을 함축한다. 그러나 다른 선택이 있다. 바로 대중 동원으로 파시스트들의 조직과 행진을 막는 것이다. 이것이 1930년대 영국파시스트연합에 맞선 투쟁과 1970년대 반나치동맹ANL의 투쟁, 더 최근의 영국국민당BNP·잉글랜드수호동맹EDL·축구사나이연맹FLA에 맞선 투쟁이 주는 교훈이다.
반파시즘 대중 운동을 건설하려면 인민전선이 아니라 트로츠키의 주장대로 공동전선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좌파 내 상이한 정치 경향인 개혁주의 세력과 혁명적 세력, 더 일반으로는 노동계급 조직들을 한데 모아 파시즘에 맞서 싸우게 해야 한다. 이는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회민주주의와의 동맹은 그 운동과 “극단적 중도”를 잇는 가교 구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혁주의자들은 국가의 지원을 호소하는 문제에서 더 취약할 것이고, 1930년대의 경험이 보여 주듯이 국가는 강화된 힘을 좌파에게 휘두를 것이다. 그러나 만만찮은 개혁주의 세력을 동참시키지 않으면, 반파시즘 활동가들이 노동계급 사람들의 삶과 조직 깊숙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에 치명적인 제약이 생길 것이다. 이처럼 파시즘을 물리칠 방법은 좌파의 공동전선을 통해 아래로부터 대중을 동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양차 세계 대전 사이와 오늘날 극우의 부상을 낳은 위기·혁명·반혁명의 상호작용을 조명하고자 했다. 쇠락하는 신자유주의에 대응하는 대중 운동은 세계 금융 위기 이후 현재의 반동을 촉발하는 데 일조했지만, 극우를 물리칠 힘을 드러내기도 했다. 우리가 봤듯이, 재앙의 시대는 반란의 시대이기도 하다. 팬데믹 첫 해 동안 중요한 승리들이 있었다. 그리스에서는 파시스트 정당 황금새벽당의 지도자들을 감옥에 넣었고 볼리비아에서는 쿠데타를 되돌렸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는 인종차별 반대 운동이 흑인 집단은 물론 미국 바깥으로도 반향을 일으키는 중요한 원동력이 됐음을 보여 줬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마르크스주의자 어거스트 님츠는 1월 6일 실제로 국회의사당에 쳐들어간 자가 800명 정도일 것이라고 추산하면서 자유주의자들을 비판했다.
이들은 그토록 적은 인원이 참가한 행동의 중요성을 과장한다. ⋯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해 지난 봄과 여름에 코로나19가 한창인 와중에 미국 방방곡곡에서 피부색과 그 밖의 정체성을 불문하고 2500만 명 정도가 거리로 나왔는데도 말이다. 팬데믹으로 집에 틀어박혀 있는 몇몇 사람들이 퍼뜨리려고 하는 믿음과 달리 2020년은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인류 최악의 순간이 아니었다. 어떤 행동에든 참여할 기회를 갖는 것은 그야말로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것 같았다.
이런 종류의 운동은 신자유주의적 제국주의를 대체할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파시스트들을 약화시킬 수 있다. 극우를 쓸어버릴 힘은 이제 막 동원되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 힘이 제대로 동원된다면 최근 세대에 등장한 작은 히틀러들을 위협하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다.
주
- Luttwak, 1968, p27. 초안을 보고 유익한 논평을 해 준 조셉 추나라, 리처드 도널리, 가레스 젠킨스, 실라 맥그리거, 존 로즈, 마크 토머스에게 감사를 표한다. ↩
- Singh, 2021. ↩
- Snyder, 2021. ↩
- Ocasio-Cortez, 2021. ↩
- Kornfield, 2021. ↩
- Mason, 2021a. Shirer, 1971, chapter 14에 2월 6일 사건의 생생한 목격담이 있다. ↩
- Trotsky, 1934. ↩
- Davis, 2020, p32. ↩
- Mayer, 2000는 프랑스와 러시아의 혁명과 반혁명의 상호작용에 대한 심층적 역사 연구다. 필리핀의 지식인이자 정치인이자 반反세계화 활동가 월든 벨로는 이런 변증법에 근거해 극우에 관한 매우 중요한 글을 썼다(Bello, 2019). 이 글은 특히 개발도상국의 사례를 연구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인도네시아·칠레·타이·인도·필리핀이 포함돼 있는데, 놀랍게도 이집트가 빠져 있다.) 이 글의 주요 약점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벨로의 비교 연구 방법 탓에 그의 사례 연구가 다루는 역사적 시기 — 양차 세계대전 사이의 위기, 장기 호황기, 신자유주의 시기— 가 충분히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파시즘과 다른 형태의 반동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
- Hobsbawm, 1994. ↩
- Mayer, 1981, p5. ↩
- Gramsci, 1971, p68; Callinicos, 2009, pp144~164도 보시오.[국역본은 215~243쪽.] ↩
- Mazower, 1998, p28. ↩
- Trotsky, 1971, p276. 중요하지만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은 논의로는 Poulantzas, 2018을 보시오. ↩
- 경제적 맥락을 보려면 Stramann, 2019를 보시오. ↩
- Mazower, 1998, pp28~29. ↩
- Mayer, 1981, p127. 메이어는 그의 주장을 과장한다. 1914년 이전 유럽의 모순에 대한 더 나은 개괄은 Hobsbawm, 1987와 Stone, 1983을 보시오. ↩
- Bloch, 2018, part two. ↩
- Poulantzas, 2018, p25. ↩
- Paxton, 2004의 탁월한 개괄을 보라. ↩
- Bloch, 2018, pp2, 108. ↩
- Trotsky, 1971, p403. ↩
- Trotsky, 1971, p405. ↩
- Trotsky, 1971, p278. ↩
- Callinicos, 2001, p395. 반면 이탈리아 파시즘 정권은 “나치의 실천과 달리 핵심 경찰력이, 무제한적인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특권적 국가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 관료주의적 원칙에 따라 움직였다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었다.” — Paxton, 2004, p152. ↩
- Callinicos, 2001, pp395-396. 애덤 투즈는 나치 경제를 다룬 그의 탁월한 저작에서 그 관계를 비슷하게 묘사한다. Tooze, 2006의 4장 “Partners: The Regime and German Business”를 보시오. ↩
- 이 분석은 Callinicos, 2001을 온전히 발전시킨 것이다. 최근, 피터 세즈윅의 짧은 에세이가 이 분석을 대체로 예견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해 기뻤다. Sedgwick 1970을 보시오. ↩
- Paxton, 2004, p171. 파시스트 정권의 급진화에 관한 탁월한 논의는 Paxton, 2004 6장을 보시오. ↩
- Gramsci, 1971, pp109, 110. 유기적 위기에 관해서는 Gramsci, 1971, pp175~185를 보시오. ↩
- 수동 혁명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Tosel, 2016, pp121~139에 빚진 것이다. ↩
- Harman, 1984. ↩
- Adorno, 1973, p320; 번역을 수정함. ↩
- Callinicos, 2014와 Tooze, 2018. ↩
- Roberts, 2016. ↩
- Harman, 2009, p307. Callinicos, Kouvelakis and Pradella, 2021 “Part 9: Marxism in an Age of Catastrophe”도 보라. ↩
- Choonara, 2019. ↩
- US Department of the Treasury, 2021. ↩
- Palheta, 2018, chapter 2. ↩
- Callinicos, 2011. ↩
- Bello, 2019, p166. Thomas, 2019는 현대 유럽 극우, 특히 파시즘 세력에 관한 매우 귀중하고 유익한 연구다. ↩
- Harman, 1988과 Harvey, 2005. ↩
- Poulantzas, 1980, part four. ↩
- Chacko and Jayasurira, 2018, p534. ↩
- Bello, 2019, chapter 6, chapter 7, postscript. ↩
- 이 중요한 논점에 관해서는 존 로즈에게 감사를 표한다. ↩
- Pertwee, 2020, pp212~213. ↩
- Orr, 2019. ↩
- Pertwee, 2020, pp223~224. ↩
- Van der Pijl, 1984. ↩
- Harman, 1983. ↩
- 그러나 “포퓰리즘”이라는 표현의 남용에 관한 유익한 경고인 D’Eramo, 2013를 보시오. ↩
- Patnaik and Patnaik, 2021, p307. ↩
- Roberts, 2020 and 2021. ↩
- Traverso, 2019, p34. Palheta, 2018도 보시오. 팔예타는 국민연합이 현재 파시스트 정당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런 사정은 바뀔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
- Gowan, 1999. ↩
- Brenner, 2020, p22. ↩
- Lazare, 1996. ↩
- www.archives.gov/founding-docs/constitution-transcript ↩
- Du Bois, 2007, Foner, 2014, Gates, 2019는 재건과 그 좌절에 관한 훌륭한 연구다. ↩
- Alexander, 2010. ↩
- 미국 사회를 “백인우월주의”로 규정하는 것이 너무 단순한 이유 하나는, 흑인 민주당원의 정치적 영향력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2021년 1월에 이들의 조직화 노력은 조지아주에서 상원 2석을 바이든에게 가져다 줘 민주당이 양원을 모두 통제할 수 있게 했다. “백인우월주의” 딱지가 너무 단순한 또 다른 이유로는 2020년 11월 선거에서 “트럼프가 도시나 그 주변의 백인·공화당 지역에서 표를 잃었는데도 — 그것이 결국 그의 선거 패배로 이어졌는데도 — 이민자 거주지에서 새로운 표를 얻었다”는 섬뜩한 사실을 들 수 있다(Cai and Fessenden, 2020). 텍사스 남부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Davis 2020, pp10~15를 보시오. “백인우월주의 사회”론에 대한 탁월한 비판으로는 Nimtz, 2017을 보시오. ↩
- Althusser, 1969, p100. ↩
- 트럼프와 그가 자본·국가와 맺은 관계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Callinicos, 2016와 Callinicos 2017를 보시오. Zaretsky, 2021은 트럼프의 정치 스타일에 대한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적 진단으로 트럼프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하다. ↩
- Edgecliffe-Johnson, 2020b. ↩
- Davis, 2020, pp18~19. ↩
- Davis, 2020, p20; Davis and Shatz, 2020. ↩
- Financial Times, 2021. ↩
- Davis, 2020, p17. ↩
- Chaffin, 2021. ↩
- Barrett, Hsu and Davis, 2021. ↩
- Edgecliffe-Johnson, 2020a. ↩
- Edgecliffe-Johnson, 2021. ↩
- Snyder, 2021. ↩
- Davis, 2021. ↩
- The Economist, 2021. ↩
- Durkee, 2021. ↩
- Fedor, 2021. ↩
- Frankel, 2021. ↩
- Snyder, 2021. ↩
- Foroohar, 2021. ↩
- Palheta, 2021. 유감스럽게도 팔예타는 “파시스트화”라는 매우 문제 있는 개념을 쓴다. 이 개념은 파시즘으로의 점진적이고 평화로운 이행을 함축한다. 마크롱에 관해서는 Michel, 2021을 보시오. ↩
- Mason, 2021b. ↩
- Arendt, 1973, chapter 10을 보시오. 제국주의와 인종차별에서 파시즘의 뿌리를 찾는 아렌트의 연구는 큰 가치가 있다. ↩
- Mason, 2021b. ↩
- Trotsky, 1971, pp158~159. ↩
- Jenkins and Millington, 2015, pp126~127. ↩
- Paxton, 1972, p254. ↩
- Jenkins and Millington, 2015, p154. ↩
- Trotsky, 1935. ↩
- Jenkins and Millington, 2015, p169. ↩
- Shirer, 1971, p952. ↩
- 1930년대와 1970년대의 투쟁에 관한 반파시즘 운동의 두 핵심 조직자들의 설명은 Piratin, 1978과 Holborow, 2019를 보시오. ↩
- 그리스에 관해서는 Constantinou, 2021를 보시오. ↩
- Nimtz, 2021. ↩
참고 문헌
Adorno, Theodor W 1973, Negative Dialectics (Routledge). [국역: 《부정변증법》, 한길사, 1999]
Alexander, Michelle 2010, The New Jim Crow: Mass Incarceration in the Age of Colourblindness (The New Press).
Althusser, Louis 1969, For Marx (Allen Lane). [국역: 《마르크스를 위하여》, 후마니타스, 2017]
Arendt, Hannah 1973,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Harcourt Brace & Co). [국역: 《전체주의의 기원》, 한길사, 2006]
Barrett, Devlin, Spencer S Hsu, and Aaron C Davis 2021, “‘Be Ready to Fight’: FBI Probe of US Capitol Riot Finds Evidence Detailing Coordination of an Assault”, Washington Post (30 January).
Bello, Walden 2019, Counterrevolution: The Global Rise of the Far Right (Practical Action Publishing).
Bloch, Ernest 2018 [1935], Heritage of Our Times (Wi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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