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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파열: 세계적 재앙과 오늘날 극우 *

MARX21

  1. Luttwak, 1968, p27. 초안을 보고 유익한 논평을 해 준 조셉 추나라, 리처드 도널리, 가레스 젠킨스, 실라 맥그리거, 존 로즈, 마크 토머스에게 감사를 표한다.
  2. Singh, 2021.
  3. Snyder, 2021.
  4. Ocasio-Cortez, 2021.
  5. Kornfield, 2021.
  6. Mason, 2021a. Shirer, 1971, chapter 14에 2월 6일 사건의 생생한 목격담이 있다.
  7. Trotsky, 1934.
  8. Davis, 2020, p32.
  9. Mayer, 2000는 프랑스와 러시아의 혁명과 반혁명의 상호작용에 대한 심층적 역사 연구다. 필리핀의 지식인이자 정치인이자 반反세계화 활동가 월든 벨로는 이런 변증법에 근거해 극우에 관한 매우 중요한 글을 썼다(Bello, 2019). 이 글은 특히 개발도상국의 사례를 연구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인도네시아·칠레·타이·인도·필리핀이 포함돼 있는데, 놀랍게도 이집트가 빠져 있다.) 이 글의 주요 약점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벨로의 비교 연구 방법 탓에 그의 사례 연구가 다루는 역사적 시기 — 양차 세계대전 사이의 위기, 장기 호황기, 신자유주의 시기— 가 충분히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파시즘과 다른 형태의 반동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10. Hobsbawm, 1994.
  11. Mayer, 1981, p5.
  12. Gramsci, 1971, p68; Callinicos, 2009, pp144~164도 보시오.[국역본은 215~243쪽.]
  13. Mazower, 1998, p28.
  14. Trotsky, 1971, p276. 중요하지만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은 논의로는 Poulantzas, 2018을 보시오.
  15. 경제적 맥락을 보려면 Stramann, 2019를 보시오.
  16. Mazower, 1998, pp28~29.
  17. Mayer, 1981, p127. 메이어는 그의 주장을 과장한다. 1914년 이전 유럽의 모순에 대한 더 나은 개괄은 Hobsbawm, 1987와 Stone, 1983을 보시오.
  18. Bloch, 2018, part two.
  19. Poulantzas, 2018, p25.
  20. Paxton, 2004의 탁월한 개괄을 보라.
  21. Bloch, 2018, pp2, 108.
  22. Trotsky, 1971, p403.
  23. Trotsky, 1971, p405.
  24. Trotsky, 1971, p278.
  25. Callinicos, 2001, p395. 반면 이탈리아 파시즘 정권은 “나치의 실천과 달리 핵심 경찰력이, 무제한적인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특권적 국가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 관료주의적 원칙에 따라 움직였다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었다.” — Paxton, 2004, p152.
  26. Callinicos, 2001, pp395-396. 애덤 투즈는 나치 경제를 다룬 그의 탁월한 저작에서 그 관계를 비슷하게 묘사한다. Tooze, 2006의 4장 “Partners: The Regime and German Business”를 보시오.
  27. 이 분석은 Callinicos, 2001을 온전히 발전시킨 것이다. 최근, 피터 세즈윅의 짧은 에세이가 이 분석을 대체로 예견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해 기뻤다. Sedgwick 1970을 보시오.
  28. Paxton, 2004, p171. 파시스트 정권의 급진화에 관한 탁월한 논의는 Paxton, 2004 6장을 보시오.
  29. Gramsci, 1971, pp109, 110. 유기적 위기에 관해서는 Gramsci, 1971, pp175~185를 보시오.
  30. 수동 혁명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Tosel, 2016, pp121~139에 빚진 것이다.
  31. Harman, 1984.
  32. Adorno, 1973, p320; 번역을 수정함.
  33. Callinicos, 2014와 Tooze, 2018.
  34. Roberts, 2016.
  35. Harman, 2009, p307. Callinicos, Kouvelakis and Pradella, 2021 “Part 9: Marxism in an Age of Catastrophe”도 보라.
  36. Choonara, 2019.
  37. US Department of the Treasury, 2021.
  38. Palheta, 2018, chapter 2.
  39. Callinicos, 2011.
  40. Bello, 2019, p166. Thomas, 2019는 현대 유럽 극우, 특히 파시즘 세력에 관한 매우 귀중하고 유익한 연구다.
  41. Harman, 1988과 Harvey, 2005.
  42. Poulantzas, 1980, part four.
  43. Chacko and Jayasurira, 2018, p534.
  44. Bello, 2019, chapter 6, chapter 7, postscript.
  45. 이 중요한 논점에 관해서는 존 로즈에게 감사를 표한다.
  46. Pertwee, 2020, pp212~213.
  47. Orr, 2019.
  48. Pertwee, 2020, pp223~224.
  49. Van der Pijl, 1984.
  50. Harman, 1983.
  51. 그러나 “포퓰리즘”이라는 표현의 남용에 관한 유익한 경고인 D’Eramo, 2013를 보시오.
  52. Patnaik and Patnaik, 2021, p307.
  53. Roberts, 2020 and 2021.
  54. Traverso, 2019, p34. Palheta, 2018도 보시오. 팔예타는 국민연합이 현재 파시스트 정당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런 사정은 바뀔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55. Gowan, 1999.
  56. Brenner, 2020, p22.
  57. Lazare, 1996.
  58. www.archives.gov/founding-docs/constitution-transcript
  59. Du Bois, 2007, Foner, 2014, Gates, 2019는 재건과 그 좌절에 관한 훌륭한 연구다.
  60. Alexander, 2010.
  61. 미국 사회를 “백인우월주의”로 규정하는 것이 너무 단순한 이유 하나는, 흑인 민주당원의 정치적 영향력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2021년 1월에 이들의 조직화 노력은 조지아주에서 상원 2석을 바이든에게 가져다 줘 민주당이 양원을 모두 통제할 수 있게 했다. “백인우월주의” 딱지가 너무 단순한 또 다른 이유로는 2020년 11월 선거에서 “트럼프가 도시나 그 주변의 백인·공화당 지역에서 표를 잃었는데도 — 그것이 결국 그의 선거 패배로 이어졌는데도 — 이민자 거주지에서 새로운 표를 얻었다”는 섬뜩한 사실을 들 수 있다(Cai and Fessenden, 2020). 텍사스 남부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Davis 2020, pp10~15를 보시오. “백인우월주의 사회”론에 대한 탁월한 비판으로는 Nimtz, 2017을 보시오.
  62. Althusser, 1969, p100.
  63. 트럼프와 그가 자본·국가와 맺은 관계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Callinicos, 2016와 Callinicos 2017를 보시오. Zaretsky, 2021은 트럼프의 정치 스타일에 대한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적 진단으로 트럼프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하다.
  64. Edgecliffe-Johnson, 2020b.
  65. Davis, 2020, pp18~19.
  66. Davis, 2020, p20; Davis and Shatz, 2020.
  67. Financial Times, 2021.
  68. Davis, 2020, p17.
  69. Chaffin, 2021.
  70. Barrett, Hsu and Davis, 2021.
  71. Edgecliffe-Johnson, 2020a.
  72. Edgecliffe-Johnson, 2021.
  73. Snyder, 2021.
  74. Davis, 2021.
  75. The Economist, 2021.
  76. Durkee, 2021.
  77. Fedor, 2021.
  78. Frankel, 2021.
  79. Snyder, 2021.
  80. Foroohar, 2021.
  81. Palheta, 2021. 유감스럽게도 팔예타는 “파시스트화”라는 매우 문제 있는 개념을 쓴다. 이 개념은 파시즘으로의 점진적이고 평화로운 이행을 함축한다. 마크롱에 관해서는 Michel, 2021을 보시오.
  82. Mason, 2021b.
  83. Arendt, 1973, chapter 10을 보시오. 제국주의와 인종차별에서 파시즘의 뿌리를 찾는 아렌트의 연구는 큰 가치가 있다.
  84. Mason, 2021b.
  85. Trotsky, 1971, pp158~159.
  86. Jenkins and Millington, 2015, pp126~127.
  87. Paxton, 1972, p254.
  88. Jenkins and Millington, 2015, p154.
  89. Trotsky, 1935.
  90. Jenkins and Millington, 2015, p169.
  91. Shirer, 1971, p952.
  92. 1930년대와 1970년대의 투쟁에 관한 반파시즘 운동의 두 핵심 조직자들의 설명은 Piratin, 1978과 Holborow, 2019를 보시오.
  93. 그리스에 관해서는 Constantinou, 2021를 보시오.
  94. Nimtz,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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